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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로스 벨트란

last modified: 2015-02-05 04:16:06 by Contributors


뉴욕 양키스 No.36
카를로스 벨트란(Carlos Ivan Beltrán)
생년월일 1977년 4월 24일
국적 푸에르토리코
출신지 푸에르토리코 마나티
포지션 외야수
투타 우투양타
프로입단 1995년 2라운드 캔자스시티 로열스 지명
소속팀 캔자스시티 로열스(1998~2004)
휴스턴 애스트로스(2004)
뉴욕 메츠(2005~2011)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201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2012~2013)
뉴욕 양키스(2014~)

1999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신인왕
벤 그리브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카를로스 벨트란
(캔자스시티 로열스)
사사키 가즈히로
(시애틀 매리너스)


1. 소개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야구선수. 지금은 나이가 들었지만 젊은 시절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5툴 플레이어로 각광받았던 선수다.

2. 선수 생활

2.1. 캔자스시티 로열스


1995년 드래프트 2라운드로 캔자스시티에 입단했고, 좀 더 많은 경기를 뛰고자 하는 의지로 입단 1년만에 스위치히터로 변신하는 모험을 선택한다. 첫 3년간은 싱글 A에서 뛰면서 상당히 고전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1998년 더블 A로 승격되어 0.352의 타율에 홈런 14개를 때려내면서 일취월장한 모습을 과시하며 후반기에 메이저리그로 승격해 58타수 16안타(0.276)를 기록한다.


그리고 1999년, 캔자스시티는 제프 코나인이 떠난 좌익수 자리에 자니 데이먼을 세우는 대신, 벨트란을 주전 중견수로 낙점한다. 그리고 벨트란은 0.293, 22홈런 108타점 27도루의 맹활약을 펼치며 기대에 부응했고, 시애틀 매리너스더 락 레디 가르시아를 제치고 아메리칸리그 최우수 신인으로 선정된다.[1] 그리고 캔자스시티는 자니 데이먼-카를로스 벨트란-메인 다이라는 황금 외야진을 구축하게 된다.외야진 한정 리즈시절

벨트란은 이듬해인 2000년에는 부상과 소포모어 징크스가 겹치면서 0.247, 7홈런에 그치며 부진했지만, 2001년에 0.306 24홈런 101타점 31도루의 훌륭한 성적을 거두며 주변의 우려를 불식시켰고, 이어 2002년에는 0.273 29홈런 105타점 35도루, 2003년에는 0.307 26홈런 100타점 41도루를 기록하며 메이저리그 정상급 호타준족으로 이름을 날린다.

그리고 2004시즌, 벨트란은 0.278 15홈런 51타점 14도루로 여전히 마이크 스위니와 함께 팀 타선을 먹여살리고 있었지만, 재정도 넉넉하지 않은데다 번번히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 중인 약팀이었던 캔자스시티가 FA를 불과 1년 앞두고 있던 벨트란을 계속 붙잡고 있을 수는 없었다.

결국 6월 25일, 캔자스시티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벨트란을 휴스턴으로 트레이드하게 된다. 이때 오클랜드 어슬레틱스빌리 빈 단장은 키스 포우크가 떠나면서 마무리로 키워서 팔아먹을겸 부실해진 뒷문을 보강하기 위해 휴스턴 애스트로스에서 최고의 자질(을) 지닌걸로 유명한 그분을 데려왔는데 오클랜드 이적 후 신나게 불을 지르며 결과적으로 대망해버렸고 캔자스시티는 벨트란을 보내고 유산으로 휴스턴에서 포수 존 벅, 오클랜드에서 2002년 머니볼 드래프트의 1라운더로 유명한 3루수 마크 티헨과 투수 마이크 우드를 받아왔지만 결과는 글쎄...

결과적으로 자니 데이먼-카를로스 벨트란-메인 다이로 이어지는 로열스 황금의 외야진 해체작업에는 모두 빌리 빈이 개입한 꼴이 되었다(...)

2.2. 휴스턴 애스트로스


당시 휴스턴은 통칭 Killer B's 트리오인 크레익 비지오, 제프 배그웰, 랜스 버크먼이 이끄는 타선에, 에이스 로이 오스왈트와 더불어 양키스에서의 은퇴 선언을 번복하고 고향팀으로 돌아온 로저 클레멘스사이영상 퍼포먼스에 힘입어 포스트시즌 진출을 노리고 있었는데 여기에 벨트란의 가세는 큰 힘이 되었다. 벨트란은 휴스턴에서만 23개의 홈런과 28개의 도루를 추가했고, 휴스턴은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한다. 2004시즌 통합 성적은 0.267 38홈런 104타점 42도루.

그리고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와의 디비전시리즈. 벨트란은 시리즈에서 0.455의 타율에 홈런 4개, 9타점을 기록하며 애틀란타 투수진을 개발살내버렸다. 특히 시리즈의 승부를 결정짓는 5차전에서 벌인 5타수 4안타 2홈런 5타점의 원맨쇼는 그야말로 백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의 챔피언십시리즈에서도 그의 방망이는 식을 줄 몰랐는데, 0.417 4홈런 5타점의 맹활약을 펼쳤지만 팀은 아쉽게 월드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벨트란은 포스트시즌 최다 연속경기홈런 기록(5경기 연속), 포스트시즌 최다 홈런 타이기록(8개)[2], 리그 챔피언십시리즈 최다 홈런 타이기록(4개)[3]을 세우며 그야말로 엄청난 임팩트를 남긴다.

그렇지 않아도 메이저리그 최고의 5툴 플레이어로 각광받고 있던 차에 포스트시즌 활약까지 곁들여지면서 벨트란의 가치는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그의 에이전트는 스캇 보라스였다. FA를 맞이하는 그가 과연 어느 정도의 계약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가 팬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2.3. 뉴욕 메츠


휴스턴은 벨트란을 잡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4] 결국 뉴욕 메츠가 7년간 1억 1,900만달러의 계약으로 벨트란을 잡는 데 성공한다. 매년 적지 않은 돈을 들이면서도 포스트시즌은 커녕 하위권을 맴돌던 메츠는, 벨트란과 함께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FA가 된 페드로 마르티네즈까지 영입하면서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오프시즌 초기만 해도 양키스행이 유력하게 점쳐졌었으나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조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가 하비에르 바스케스+벨트란 or 랜디 존슨+버니 윌리엄스 조합 중 후자를 고를 것을 양키스 프런트에 지시하며 벨트란에서 발을 빼고 랜디 트레이드에 올인했다고. 벨트란이 휴스턴에 잔류하지 않은 이유는 홈구장 미닛메이드파크 중견수 뒤쪽에 경사져 있는 탈스힐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벨트란은 이적 첫 해 0.266, 16홈런 78타점 17도루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팀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면서 먹튀가 될 기세였지만, 절치부심한 이듬해인 2006시즌 0.275, 41홈런과 116타점을 기록하면서 실버슬러거와 골드글러브를 함께 수상하면서 먹튀논란을 싹 잠재우며 부활했고, 2007시즌에는 0.276, 33홈런 112타점 23도루를 기록하며 2년 연속 실버슬러거와 골드글러브를 차지한다. 2008시즌에도 0.284 27홈런 112타점 25도루로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고 3년 연속 골드글러브를 수상한다.

그러나 이후 무릎 부상에 시달리며 2009시즌에는 81경기, 2010년에는 64경기 출장에 그쳤는데, 무릎 상태가 좀처럼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결국 2011시즌을 앞두고 중견수 자리를 신예 앙헬 파간에게 내주고 포지션을 우익수로 바꾸게 된다.

그리고 2011년, 메츠는 7년 계약의 마지막 해를 맞아 FA로이드를 복용하고 맹활약을 펼치던 벨트란을 트레이드 시장에 내놓았고, 7월 28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선발투수 유망주 잭 윌러를 내주고 그를 데려오게 된다.

왜 이런 트레이드가 벌어졌냐면 벨트란의 계약에는 계약 마지막해인 2011년 종료 후 구단 측에서 연봉조정신청을 하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어서 벨트란이 타 팀과 FA 계약을 체결해도 메츠는 보상 픽을 받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메츠 입장에서는 재계약이 불투명해진 마당에 반드시 계약 만료 전에 트레이드를 단행해야 한다는 압박이 되었고, 마침 사는 입장인 자이언츠에서도 타선 보강이 절실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이언츠가 무리해가면서 최고 투수 유망주 잭 윌러를 내주며[5] 트레이드가 성사되었다.

2.4.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팀 린스컴, 맷 케인, 매디슨 범가너, 라이언 보겔송으로 이어지는 리그 최고의 선발진을 보유했음에도 부실하다못해 해도해도 너무한 물타선 때문에 고전하던 샌프란시스코 FC 자이언츠는 벨트란을 영입해서 어떻게든 반전을 노려볼 생각이었다.

하지만 벨트란은 이적 후 거의 한달여간 빈타에 허덕이며 힘을 쓰지 못했고, 팀은 8월에 11승 18패라는 뼈아픈 성적을 기록하며 사실상 포스트시즌과 멀어졌다. 벨트란은 9월에 들어서야 4할대의 맹타를 휘두르며 뒷북을 울렸으나 결국 자이언츠는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밀려 NL 서부지구 2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벨트란의 2011시즌 최종 성적은 142경기 0.300 22홈런 84타점. 성적도 성적이지만, 그간 부상에 시달리던 것과 달리 다시 큰 부상 없이 풀타임으로 140경기 이상 출장하며 OPS 9할을 마크했다는 점에서 건재를 과시하는 시즌이 되었다. 또한 개인통산 300번째 홈런을 스플래시 히트로 작렬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리고 시즌이 끝난 후, 벨트란은 스캇 보라스를 해고하고 새 에이전트인 로자노와 계약했다.

2.5.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우승 반지에 대한 욕심이 있는지, 2년 계약으로 2011시즌 우승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행을 선택했다.

2012시즌 5월까지 타출장 3/4/6의 미친 포스에 한때 NL 홈런 공동 1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FA로이드를 맞은 대괴수에 가려 있는 와중에 한화-롯데전을 중계하던 허구연 해설위원에게 요즘 부진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6월 16일에는 친정팀인 캔자스시티 로열스전에서 통산 300호 도루에 성공하며 MLB 역사상 8번째이자 스위치히터 최초의 300-300 클럽 가입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후반기에는 다소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홈런왕 경쟁에서는 멀어졌지만, 어쨌든 0.269/0.340/0.495 32홈런 97타점 13도루의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감하며 2007년 이후 5년만에 30홈런 시즌을 기록했다. 그리고 포스트시즌에서도 그의 진가를 발휘했는데, 2번타자로 주로 나서며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NLDS에서 18타수 8안타를 기록했고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NLCS에서도 맹활약했다. 하지만 2004년 애스트로스, 2006년 메츠와 마찬가지로 7차전까지 가는 끝에 패배. 미묘하게도 자기는 잘하는데 팀은 챔피언십 시리즈 7차전까지 가서 패배한다(...)

2013시즌에도 타율 0.296에 OPS 0.830의 준수한 비율 넘버에 24홈런 84타점을 치면서 세인트루이스 타선에서 제 몫을 충실히 했다. 그리고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의 디비전시리즈에서 타율은 0.222에 그쳤지만 2홈런과 6타점을 기록하며 가을 사나이의 위엄을 과시했다. LA 다저스와의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5차전까지 타율 .176의 부진을 보였으나, 팀이 3승 1패로 앞선 가운데 벌어진 6차전에서 3안타 2타점에 좋은 수비까지 보여주며 승리에 기여, 생애 처음으로 월드 시리즈 무대를 밟게 되었다.[6] 그러나 생애 첫 월드 시리즈에서는 고자 같은팀 타선 때문에 보스턴 레드삭스에 패하며 끝내 우승 반지 획득에는 실패.

2.6. 뉴욕 양키스


시즌 종료 후, FA 자격을 획득했는데 카디널스의 퀄리파잉 오퍼를 거절하고 시장에 나왔다. 만 36살인데다가 픽까지 소모하는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기량이 여전히 녹슬지 않았다는 점과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점 때문에 많은 팀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친정팀인 캔자스시티 로열스를 비롯, 뉴욕 양키스, 텍사스 레인저스, 시애틀 매리너스 등이 유력한 행선지로 꼽혔다. 결국 3년 $45M에 뉴욕 양키스행이 확정되었다. 양키스는 경로당?? 벨트란 자신은 양키스에서 뛰어보고 싶었는데 소망을 이루었다고 한다.

ESPN은 2014년 양키스에서 가장 실망스러울 선수로 그와 데릭 지터를 뽑았다.

그리고 ESPN의 예상은 틀리지 않아 2014년 5월 2일 현재까지 .253 .299 .495라는 처참한 비율 스탯을 기록하고 있다. 9개의 2루타와 홈런 5개를 때려내며 장타율은 상당히 높지만 노쇠화로 인해 도루 개수는 단 1개에 풍기질 덕에 6개의 볼넷을 기록하는 동안 21개의 삼진을 당하며 출루율을 깎아먹고 있는 중.
2014년 6월 21일 볼티모어 오리올스 전에서 끝내기 홈런을 때려내며(시즌 7호) 팀의 3:5 대역전승에 화룡점정을 찍었다.

시즌 최종 성적은 109경기 출장 .233/.301/.402 15홈런 49타점.

3. 여담

  • 야구선수로서도 훌륭하지만, 실력 못지않게 인간성도 굉장히 훌륭한 선수. 팀의 젊은 선수들에게 직접 타격기술이나 노하우 같은 것을 1:1 코칭으로 알려주며, R.A. 디키의 말에 의하면, 마이너로 강등돼서 내려가는 선수에겐 직접 양복을 사서 선물한다고 한다. 사회봉사에도 열심이라 2013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수상자로도 선정되었다.

  • 항목을 쭉 읽었으면 알겠지만,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가을의 사나이이다. 포스트시즌 통산 성적은 .333/.445/.683 60안타 16홈런(역대 9위) 40타점으로, 그야말로 약먹은 본즈 부럽지 않은 성적을 찍어주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반지가 없다는 건 야구는 혼자서 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

  • 추신수가 귀국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그의 이름을 언급했다. 정확히는 벨트레를 언급하려고 한 것인데 이름이 비슷한지라 혼동해서인지 벨트란이라고 계속 말했기 때문.

  • 메이저리그 팬들에게는 '암 보 잭슨'으로 유명한 5 Hour Energy 드링크의 광고 모델로 2014년부터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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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프레디 가르시아의 성적은 17승 8패 평균자책점 4.07이었다.
  • [2] 2002년 배리 본즈,2011년 넬슨 크루즈와 타이.
  • [3] 2011년 ALCS에서 6홈런을 기록한 넬슨 크루즈에 의해 경신.
  • [4] 휴스턴 크로니클지가 추정한 휴스턴의 제시액은 7년 1억 500만달러였다고 한다.
  • [5] 경쟁 구단들은 여러 유망주로 구성된 패키지를 제시했다고 한다.
  • [6] 대신 3차전에서 나온 야시엘 푸이그의 셀레브레이션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국뽕한국 포털사이트에서는 온갖 욕을 다 얻어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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