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
국명 "카보베르데(카부베르드)"는 포르투갈어로 녹색의 곶(=베르데 곶)[1]"이라는 뜻인데 정작 포르투갈의 엔리크 대공이 목격한 진짜 베르데 곶은 세네갈에 있다(...) 하기야 섬나라에 무슨 곶이 있겠냐만은
여담이지만 아프리카 최서단에서도 좀 더 서쪽으로 떨어진 해상에 있다보니 지역별로 세세하게 그리는 세계지도에는 여백상 문제(→이 나라를 표기해주려면 그만큼 남쪽에 의미없는 바다를 더 그려줘야 하니까)로 인해 자주 누락되거나 독도처럼 붙여넣기 형식으로 꼽사리 껴서 나오는 비운의 나라이기도 하다. 심지어 가장 공신력이 큰 지도책인 아틀라스(Atlas)에서도 어지간하면 발견하기 쉽지 않다. 수도인 프라이아는 간혹 나와도 국명 카보베르데는 잘 안 나오는 정도.
인구는 429,474명(2010), 56만 6천명(2014명)으로, 그 가운데 가톨릭 신자는 53만 1000명으로 국민 93%가 가톨릭 신자다. 2015년 1월 5일 부로 첫 추기경이 프란체스코(교황)에 의해 선출되었다.
3. 역사 ¶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다른 여러 아프리카의 나라들과는 역사가 달랐다. 페니키아인, 아랍인, 무어인 및 인근 서아프리카의 부족들이 이 섬을 왔다갔는데 포르투갈의 항해사들이 발견했을 때는 무인도였다고 한다. 그 이후로 포르투갈인들이 건너와 정착하기 시작하고 16세기경에 노예무역이 성행했을 때 아프리카의 수많은 흑인노예들이 끌려왔다. 이들이 혼혈이 이뤄진게 현재 카보베르데 주민의 조상이다. 노예무역이 쇠퇴한 후에도 대서양의 거점항으로 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프리카에 불어닥친 민족주의 열풍에 편승하여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며, 1975년 독립하였다. 이 때 같은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기니비사우와 통합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해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왼쪽이 카보베르데의 옛 국기(1975년부터 1992년까지), 오른쪽이 기니비사우의 국기이다. 둘이 서로 비슷하게 생겼는데, 둘 다 기니-카보베르데 독립 아프리카당의 당기에서 유래한 디자인으로 이는 카보베르데와 기니비사우가 함께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기니비사우와 통합하려는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에도 1992년 현재의 국기가 제정되기 전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5. 사회 ¶
아프리카 국가 가운데서는 상당히 잘살고 자유도 존재하는 나라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나라가 원래 잘 살았던 것이 아니고 국제연합에서 지정하는 최빈국 카테고리에서 벗어나서 소득수준이 올라간, 그러니까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간 몇 안되는 나라라는 것이다.[3]
세계 자유 보고서에서 아프리카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정치적 자유 지수와 시민적 자유 지수가 동시에 1점을 받아 가장 자유로운 것으로 평가받았다. 공동 1위가 전세계에 49개국이다 된다는 게 함정...인가? 또한 실패국가지수에서는 73.7점으로 세계에서 94위를 기록했다. 이건 아프리카에서 국가 실패 위험이 8번째로 적은 국가라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겨우 5년 전인 2008년에는 80.7점으로 65위였다. 5년 새 30계단 가까이 내려간 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