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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

last modified: 2015-09-18 03:25:08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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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직사령기 또는 황저사선기(黃底四線旗)로 부르는 카탈루냐 주기(州旗). 얼핏보면 옛 남베트남당직부관국기와 혼동할 수 있다.
노란색은 '카탈루냐의 황금빛 대지'를 상징하며, 붉은색은 카탈루냐 독립군 사령관 손에 묻었던 피를 상징한다. 자세한 사항은 따로 찾아보도록 하자.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8세기 이전
2.2. 바르셀로나 백작
2.3. 아라곤 연합왕국
2.4. 스페인 제국
2.5. 수확전쟁
2.6.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2.7. 현대
3. 카탈루냐 독립 주장
3.1. 독립찬반 투표에서 찬성표가 더 나온다면?
4. 유명인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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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상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까탈레나와 헷갈리면 곤란하다.

스페인 북동쪽 지방으로 북쪽은 레네 산맥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프랑스와 경계를 이루며, 동쪽과 남쪽은 지중해에 면하고, 서쪽은 에브로 강 유역의 아라곤 지방과 발렌시아 지방에 접한다. 주도는 바르셀로나이며 바르셀로나·헤로나·레리다·타라고나 4개 주를 포함한다. 면적은 31,950 km²이며, 2007년 현재 720만 명 정도가 거주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그렇고 스페인 내부에서도 바스크 지방과 함께 가장 분리주의 성향이 강한 지역으로 유명하다. 이들의 상징기는 노란색빨간색 줄무늬로 이루어진 깃발이다. 북부 산악 지대는 겨울이 춥지만 지중해에 면한 지대는 지중해 특유의 온화한 기후가 나타나는 편이다.

바르셀로나가 바로 이 지역에 위치하는 도시이다. 카스티야 지역을 대표하는 마드리드와는 라이벌 관계이고, 유명한 엘 클라시코도 두 지역간 자존심 대결이다.

2. 역사

2.1. 8세기 이전

카탈루냐 지방은 2차 포에니 전쟁 이전까지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 위치한 완층지대로 고대 그리스의 식민지였다. 카르타고의 장군 '하밀 바르카가 점령한 도시'라는 뜻으로 '바르셀로나'라고 불렸다. 이후, 히스파니아 시테리오르라는 속주로 편입되다가 BC 27년 로마 제정이 시작되었을 때 타라고나를 수도로 하는 히스파니아 타라코넨시스라는 속주로 개칭되었다. 이후 사두정치때 디오클레티아누스에 의해 카르타기엔시스로 나누어지다가 5세기부터 로마 제국이 쇠퇴해지면서 서고트족들이 침입하면서 서고트왕국의 일부가 되었지만 711년 이슬람교를 앞세운 무어인들의 정복으로 그 영향력 아래에 있게 된다.

2.2. 바르셀로나 백작

801년 프랑크 왕국샤를마뉴 대제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 원정하여 이슬람 세력을 공격한 다음 에스파냐 변방백령(Marca hispánica)을 설치했다. 에스파냐 변경백령은 여러 백작령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프랑크 왕국에 신종하는 백작이었던 바르셀로나 백작이 다른 변경백령을 상속, 흡수하면서 우월한 지위를 획득한다. 바르셀로나 백작을 중심으로 한 카탈루냐 지역을 '카탈루냐 군주국'으로 부르게 된다. 다만 카탈루냐 군주국은 독립 국가로서 실체가 있는 '왕국'이나 '공국'이 아니라 그저 바르셀로나 백작이 봉건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차지한 지역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카탈루냐 군주국의 군주는 단지 '바르셀로나 백작'의 위치에서 주변 영토를 다스리고 있었다.

서프랑크 왕국의 왕계가 끊어지고 파리백작 위그 카페랑스 왕국의 왕으로 등극했다. 그러자 바르셀로나 백작은 세력을 믿고 프랑스와 오랫동안 이어져온 신종관계를 일방적으로 거부하고 프랑스에서 독립을 선포했다.

2.3. 아라곤 연합왕국

아라곤 왕국은 어린 여왕 페트로넬라(Petronela d' Aragón)가 즉위하자 이웃나라 카스티야 왕국의 침공을 우려하여 바르셀로나 백작 라몬 바란게 4세와 페트로넬라 여왕을 약혼시킨다. 약혼할 당시 페트로넬라 여왕은 고작 1세에 불과했다.

라몬 바랑게 4세는 아라곤 여왕의 남편 자격으로 아라곤을 통치했고, 두 사람의 장남 알폰소 2세가 아라곤 왕 / 바르셀로나 백작의 지위를 계승했다. 이로서 카탈루냐 지방은 아라곤 왕국의 새로운 중심부가 되었고, 원래의 아라곤 내륙지방은 중심지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단, 이렇게 성립된 아라곤 연합왕국(Corona d'Aragón, Crown of Aragon)에는 정해진 수도가 없었기 때문에 바르셀로나가 수도가 되지는 않았지만, 원래 수도였던 사라고사는 졸지에 수도 위치를 잃고 아라곤 국왕이 대관식을 치르는 도시(...)정도로 위상이 내려갔다. 이후 아라곤 연합왕국의 국왕들은 대부분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나폴리에서 궁정을 꾸렸다. 현재, 흔히 노란색과 빨간색 줄무늬로 이루어진 깃발을 카탈루냐의 상징으로 쓰고 있는데, 이것이 원래는 아라곤 왕국의 깃발이다. 현재의 아라곤 주는 이 줄무늬에 문장만 추가된 형태의 깃발을 쓴다.

카탈루냐 지방에는 카탈루냐 의회(Corts catalanes)가 설치되었다. 현재의 카탈루냐 민족주의자들은 이 의회를 '민족 자치의 상징'으로 받아들이고 있으나, 이 의회는 교회의 대표, 봉건 귀족, 왕립 도시 대표 등의 제한적인 신분이 모여서 하는 전형적인 중세 유럽식 분제 의회였다.

2.4. 스페인 제국

1469년, 아라곤과 카스티야는 동군연합이 되었다. 하지만 카탈루냐의 중심이 되던 지중해 무역은 오스만 제국의 대두로 침체해서 축소되었고, 반대로 카스티야 왕국은 아메리카 식민지 개척으로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되었다. 아라곤 왕 페르난도 2세 마저도 카스티야로 이동하고, 카탈루냐에는 부왕을 두고 통치하게 하면서 카탈루냐는 스페인의 일개 지방이 되었다.(역사적 혼란)

2.5. 수확전쟁

30년 전쟁이 벌어지자 스페인 제국은 프랑스와 전쟁을 시작했다. 프랑스 국경인 카탈루냐 지방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프랑스를 공격하려 한 것이다. 그런데, 군대가 주둔하면서 물자를 징발하자 카탈루냐 농민들이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으니 이것이 바로 수확전쟁이다.

당초 카탈루냐는 프랑스 왕국에 편입을 결의하고 프랑스 군을 영입하려 했다. 하지만 협상을 하면서 카탈루냐 귀족들은 기존까지 자신들이 유지해왔던 봉건제도를 유지시켜 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당시 절대왕정을 추구하던 프랑스의 재상 리슐리외은 당연히 거절하였다.

결국, 프랑스 군은 카탈루냐에 진주하여 스페인 군과 맞서싸우게 되었으나 카탈루냐인 들은 프랑스 군에게 협력하지 않았다. 자기들을 불러들인 카탈루냐인 들이 지원은 제대로 해주지 않는 상황에 의욕을 상실한 프랑스 군은 스페인 동부에서 철수했다. '자신들의 자치권만 보장되면 어느 나라의 왕을 모셔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프랑스 왕은 딱히 카탈루냐를 보호해줄 가치를 느끼지 못한 것이다. 결국 단독으로 벌어진 바르셀로나 공성전 결과 카탈루냐는 항복했다.

1659년 피레네 조약의 결과, 카탈루냐 북부의 루시는 프랑스에 할양되었고, 사루다냐 지방은 프랑스와 스페인 사이에서 분리되었다. 현재의 피레네 오리앙탈(Pyrénées-Orientales) 지역이다.

2.6.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

18세기 초(1701 년~1714 년)에 벌어진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에서 카탈루냐는 발렌시아와 함께 칼 대공 측의 편을 들어 펠리페 5세에 맞서 싸웠다.

처음에는 칼 대공이 유리해서 제1차, 제2차 바르셀로나 공방전에서 유리하게 이끌어나갔지만 1710년 부터 펠리페 5세가 점점 유리해졌다. 1713년 위트레프트 조약으로 1714년 칼 6세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스페인 왕위를 포기했다. 칼 6세를 지원하던 다른 나라들 역시 합의하에 전쟁을 종결했다. 이로서 대세는 펠레페 5세에게 완전히 기울었다. 제3차 바르셀로나 공방전 결과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부르봉 군에 포위되어 마침내 함락당했다. 1714년 9월 11일, 카탈루냐는 완전히 진압되었다. 이후 1716년에 새로운 국가기본법(Decretos de Nueva Planta)이 만들어져서 카탈루냐는 최소한의 자치권을 완전히 박탈당하고 단순한 일개 주로 강등되었다.

이 당시 바르셀로나 시장으로 바르셀로나 공방전에서 지휘관으로 활동한 라파엘 카자노바(Rafael Casanova i Comes)는 현재 바르셀로나에 동상이 세워져 있으며, 최고의 애국자의 한 사람으로 존경을 받고 있다. 하지만 비판자들은 라파엘 카자노바는 단지 친 오스트리아 성향의 인물이며, 카탈루냐의 애국자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주장한다.

카탈루냐의 독립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카탈루냐가 스페인에 합병된 것을 이 시점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냉정한 평가를 하자면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직전까지도 스페인 왕국의 일부였던 카탈루냐가 스페인 왕위계승전쟁 시점에서 잠깐 외부세력과 결탁했다고 이전까지 독립국이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바르셀로나 백작이 변경백으로 웅기한 시점에서 카탈루냐 세력이 큰 세력권을 형성했던 아라곤 왕국시기 정도가 카탈루냐가 독립국으로 존재했던 시기라고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1].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왕위계승전쟁에서 승리했다면 카탈루냐의 이후 모습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보면 더욱 단순하다. 칼 대공이 손을 땐 후에 카탈루냐만으로 스페인 전체에 대해서 승리한다라는 것은 애초에 카탈루냐 지도부가 예측한 것도 기대한 것도 실현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넘어가면, 결국 칼 대공이 스페인의 왕이 되고 카탈루냐는 봉건영주들이 스페인이라는 국가 안에서 여전히 자치권을 가지는 형태 밖에 예상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결국 칼 대공이 이겨봤자 카탈루냐는 오스트리아 령 카탈루냐가 된다. 수확전쟁에서 프랑스가 이겼을 때 프랑스령 카탈루냐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이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동군연합 이후 카탈루냐의 저항 모습이 독립국으로 존재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자치권을 달라는 형태였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전부터 존재하던 독립국가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일정국가 내부에 존재하는 자유도시나 봉건영주의 자기 권리 요구의 형태이고 실제로 유럽 역사에서 이런 형태로 독립국 취급을 받은 나라는 없다. 애초에 이런 자치권을 가진 봉건제후들이 자치권을 잃고 중앙집권국가의 일부 지방으로 변해가는 것이 유럽 중앙집권 국가의 탄생과정이기도 하다. 이것은 프랑스가 대표적이고 스페인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이 늦어져서 현대 막바지에서야 이뤄진 국가가 독일과 이탈리아이고, 이 재편과정에서 자력으로 독립해서 살아남은 대표적인 지역이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있는 플랑드르 지역, 그리고 스위스이다.

2.7. 현대

1931년 4월, 지방 선거에서 약진한 카탈루냐 좌파 공화당(ERC)의 당수 프란시스코 마시아는 4월 14일 '이베리아 연방' 내에서 '카탈루냐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했다. 이 선언에 놀란 스페인 제2 공화국 임시정부는 카탈루냐의 독립을 철회시키고 대신 자치 정부 '제네랄리타드'를 구성하도록 했다.

1934년 10월 6일, 제네랄리타드 데 카탈루냐의 수반인 ERC의 류이스 쿰파니스가 스페인 연방 공화국 내에서 카탈루냐 공화국의 성립을 선언했다. 이 사태에 스페인 정부는 군을 투입해서 쿰파니스 등 자치 정부 각료를 행미하고 체포했으며, 쿰파니스트는 30년 형을 선고받았다. 1936년 좌파 인민전선 정부가 들어서자 석방되었다.

20세기 초 독립파들은 위와 같이 두 차례 카탈루냐 공화국의 설립을 발표했으나 스페인 내전 이후 프란시스코 프랑코 정권은 제네랄리타드를 중지하고 자치 정부는 망명했다. 프랑스에 망명했던 쿰파니스트는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1940년 10월 15일 바르셀로나에서 총살당했다.

프랑코 집권기를 맞이하면서 다른 스페인의 모든 지역과 마찬가지로 심하게 탄압당했다. 프랑코 사후 다시 자치권을 얻었으며 현재 스페인의 경제 상황으로 인해 독립 떡밥이 한창 달아오르고 있다.

3. 카탈루냐 독립 주장

© Huhsunqu (cc-by-sa-2.5) from

카탈루냐 독립파들이 쓰는 깃발

카탈루냐의 독립 주장은, 굳이 비유하자면 현재의 프랑스 영토인 르고뉴 지역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카탈루냐가 독립적인 국가였던 시기가(아라곤 왕국으로) 약 450년 정도 있긴 하였으나, 역사의 대부분 시기는 스페인의 자치 지방이였던 것이 사실이다. 아예 민족 자체가 다른 유럽계와 차별되는 바스크와는 달리 민족적인 면에서도 많이 차이나지 않는다. 언어도 비슷한 편. 다만, 스페인어와 프랑스 남부 사투리와 비교하자면, 카탈루냐어는 후자에 더 가깝다고 한다. [2]

카탈루냐가 독립을 원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사적인 배경과 더불어 중앙 정부 카스티야의 무능함이 가장 큰 원인이다. 카탈루냐와 바스크 지방은 스페인에서 가장 세금을 많이 내는 지방이다. 물론 이 두 지방이 스페인 다른 지방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부유한 지방이기도 하다. 이 높은 세금들은 카탈루냐와 바스크는 내버려두고, 중앙 정권인 카스티야 지방에만 집중 투자되든가, 상대적으로 빈곤한 남부 지방에 땅투기 시도하다가 말아먹는 병크짓을 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최근 독립 운동 이전에 가장 큰 사건도, '카탈루냐와 상의도 없이, 카탈루냐 중부로 흐르던 강을 남부인 안달루시아로 강제로 물길을 돌릴려고 계획했었던' 것이 들통난 일이다. 당시에도 대대적인 독립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여하튼, 가뜩이나 높은 세금으로 불만인 카탈루냐와 바스크는 세금은 계속해서 오르고, 정부의 차별도 갈수록 심해지니 속이 뒤집어지는 셈. 예전에는 인종, 문화적인 문제로 독립을 원했던데 비해서 지금은 경제적, 정치적인 측면 때문에 독립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사파테로 총리 시절에는 지방 정권들에 어느 정도 높은 자치권을 부여했는데, 그 다음 정권에서는 지방 정권들의 자치권을 대부분 몰수해버렸다. 줫다 뺏으니 화남

또한 이 측면에서, 카탈루냐의 독립, 또는 자치확대 요구에 대한 스페인 중앙 정부의 반응은 좋게 말해서 단호하고, 나쁘게 말하면 억압적이다[3]. 독립적인 면모가 강한 지역에 대해 폭 넓은 자치권을 내 주는 경우가 많은 다른 유럽국가들과 달리, 스페인의 경우 자치권 허용의 폭이 굉장히 좁은 편이고, 독립을 요구하는 스코틀랜드에 자치권 확대등의 보상을 제공하며 달래려고 했던 영국의 경우와는 달리 카탈루냐 독립/자치운동에 대한 스페인 중앙정부의 입장은 (반대급부를 주지 않는) 무조건 불인정에 가깝다. 이런 태도는 일단 카탈루냐 독립 운동의 규모를 축소하는데는 효과적이지만, 운동의 저변에 있는 대중적 감정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더구나 잉글랜드가 경제적 우위를 가지고 스코틀랜드를 보조할 수 있는 영국의 경우와는 달리 스페인의 경우는 카탈루냐가 카스티야에 비해 오히려 경제적으로 부유한 터라... 카탈루냐와 바스크에서 걷은 세금을 다른 지역에 쓰면서, 정치적 권리는 확대해 주지 않고, 이 때문에 카스티야 주도의 중앙정부가 인구우위를 이용해 정치적으로 카탈루냐를 삥뜯고 있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는 것. 말하자면 세금은 제일 많이 내는데 정치적으로는 전혀 배려받지 못하고 있다는 인식때문에 독립여론이 수그러들지 않는 것이다. 사실 스페인의 유로화 동전 도안을 보더라도 중앙 정부가 카탈루냐 지역에 대한 배려에 별 관심이 없음을 쉽게 알 수 있는게, 후안 카를로스 국왕, 세르반테스, 오브라도이로 대성당 모두 카스티야 문화에 속하는 주제들이다.(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라도 넣어줬으면 카탈루냐인들의 기분이 좀 풀렸을지도...)

사실상, 카탈루냐가 독립을 못하고 있는, 또는 꺼리는 이유는 EU와 스페인의 압박 때문이다. 카탈루냐가 독립에 성공하더라도, 스페인이 카탈루냐 EU 참여에 반대할 것이기 때문. 유럽에서 EU에 참가하지 못한다는 것은 경제적 손실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역시 경제적인 측면. 스페인 내부적인 측면으로는 연쇄적인 독립 때문. 하나라도 독립을 승인해버리면 일단 카탈루냐보다 독립 성향이 더 강한 바스크를 비롯하여, 카나리아 제도도 독립 요청을, 넓게는 서북부의 갈리시아, 스페인 북부나 발렌시아같은 어느 정도 높은 자치권을 요구하는 지방들도 지금보다 더 높은 자치권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날 것이기 때문. 그야말로 이베리아 반도 자체가 박살나는 셈. 특히 '카스티야'는 잘못하다가는 주변 국들에 둘러싸인 내륙 국가가 되어버린다. 참고로, 스페인 동부의 마요르카와 이비사 섬도 카탈루냐 권이다. 더 넓게 보자면, 사라고사와 발렌시아 인근도 카탈루냐 권이긴 하다. 단순한 '지도상의 주' 단위로만 잘라서 보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카탈루냐 독립 투표는 스페인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 스페인 의회에서도 독립청원에 대하여 압도적 차이로 반대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이런 와중에 카탈루냐 주정부에서 드디어 분리 독립을 공식 추진키로 하였으며 2014년 11월 9일 카탈루냐의 분리 독립을 묻는 주민 투표를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물론 스페인 중앙 정부에서는 극력 반대 중으로 주민 투표 자체를 막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물론 이 분리 찬반 투표에 법적인 의미는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현재 진행하는 주민투표는 양식상으로도 중앙정부의 허가가 필요하고, 그게 아니라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 받았으니 결과물이 뭐가 나오던 위헌무효다. 법적으로 평화롭게 독립할 방법 따위는 애초에 없다는 것. 하지만 정치적 의미는 존재한다. 다만 이 경우는 위법 위헌한 독립국가 선언이 스페인 입장에선 반란군놈의 시키 취급이고. 만약 같은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진다면 분리 독립을 시도한 것에서 반국가단체 결성, 실제 독립선언을 한 것으로 내란죄에 해당하여 사형 및 무기 징역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카탈루냐의 실질적인 독립 과정은 아마 우크라이나에서 동부지역이 독립하는 과정과 유사할 것인데 이 경우에 국제사회의 승인이 이뤄질지도 의문이다. 이럴 경우 분리 독립 이전 모국과 국교를 맺은 국가는 독립국과의 국교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것이 상례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카탈루냐의 모국은 스페인, 더 나가면 스페인이 가입한 EU가 된다.

하지만 실제로 독립이 이뤄지느냐와 별개로 독립 찬반투표에서 상징적으로 찬성표가 더 나온다는 것은 정치적 의미가 크기 때문에 주목의 대상이 된다. 찬반투표에서 독립 주장이 더 나올 경우에는 민족주의 성향 강화와 더 많은 자치권을 요구하면서 강하게 압박할 수 있을 것이고, 반대의 경우라면 카탈루냐 독립운동 진영은 세가 확 떨어지게 된다.

찬반투표가 정부와의 협의로 없어질 듯하던 2014년 중반 상황에서, 주정부 마스 주지사는 찬반투표 강행으로 선회했다. 아마도 스코틀랜드 독립 찬반투표의 영향인 것 같은데, 정작 그 스코틀랜드 독립 찬반투표는 결국 10% 이상의 차이로 반대 의견이 더 많은 것으로 결정이 났다. 물론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는 이 과정에서 영국 본국으로 부터 상당한 수준의 자치권을 얻어내었지만 이건 스코틀랜드 독립이 합법적으로 진행되었고 영국과도 협상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앙정부에 대놓고 반기를 든 카탈루냐와는 상황이 다를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번 투표에서는 아슬아슬하게 '반대' 입장표가 더 많았다.(출처 추가바람.[4]) 이번에는 어떨까?

2014년 10월 14일, 카탈루냐 주 정부에서 독립투표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으나, 대신 11월 9일 독립여부에 대해서 의견을 묻는 형태로 비공식 투표[5]를 하기로 했는데, 유권자 등록절차 없이도 투표가 가능하고 실질적인 효력이 전무하고 2번째 문항의 문제 때문에 대부분은 이를 여론조사로 인식하고 있다.

이렇게 대폭 입장이 대폭 후퇴한 이유는 2가지인데, 첫번째는 스코틀랜드의 독립투표가 예상보다 큰 차이로 부결되었단 것이 당연히 언급된다. 하지만 진짜 심각한 것은 두번째 이유인데, 여론조사상으로 찬성률이 예상보다 낮았다라는 것이 그 이유이다. 무엇보다 이 독립투표가 스페인 정부에 의해서 불법으로 결론이 나온 것이 크게 작용했다. 현지 여론조사에서 분리독립투표를 강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전체의 27% 밖에 되지 않았고, 응답자의 45%는 현행 스페인 헌법을 존중하는 방법하에서 독립투표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는데 현행 스페인 헌법에 의하면 하늘이 두쪽나도 카탈루냐는 독립할 방법이 없다. 즉, 이것은 현실적으로 카탈루냐의 독립을 강하게 원하는 비율이 저 27% 밖에 안된다라는 의미이다. 결국 공화당좌파에서도 언급이 나왔지만, 현실적으로 카탈루냐 주정부가 투표같은거 없이 대놓고 독립을 선언고 스페인 당국에 의해서 체포되는 것 외에는 한동안 카탈루냐의 독립 이야기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예정이다.

11월 9일 비공식 투표 결과, 첫 번째 문항 “카탈루냐는 국가가 되어야 하는가"와 두 번째 문항 "첫 번째 문항에 찬성했다면, 카탈루냐가 독립국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모두에 찬성한 비율이 80.76%로 집계되었다. 10.07%는 첫 번째 문항에는 찬성했으나, 두 번째 문항에는 반대했다. 다만 투표율은 집계하기 불가능하며, 37.0(엘 파이스)~41.6%(BBC)로 추정할 뿐이다. 그렇더라도 이런 비공식 투표로는 카탈루냐는 독립 못한다.

3.1. 독립찬반 투표에서 찬성표가 더 나온다면?

신생국가 카탈루냐가 탄생하...지 않는다.

앞서서 언급된 것처럼 카탈루냐에게는 독립 찬반투표를 할 권한이 없다.

스코틀랜드의 경우는 연방왕국(United Kingdom)을 구성하는 사실상 연방국의 일부로서 미국의 주와 같이 원래 독립적인 존재이다[6][7]. 스코틀랜드는 1706년 Treaty of Union을 제정하고 1707년 Acts of Union 최종적으로 스코틀랜드 의회에서 비준됨으로써 연합왕국으로의 통합을 마쳤고, 바꾸어 말하면 법리적으로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의회가 합의를 이루면 충분히 독립이 가능하다. 그래서 스코틀랜드 독립 투표는 영국 법률에 의해서 자체적으로 독립을 결의하고, 이 진행을 연방정부와 협상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8] 하지만 스페인은 한국과 마찬가지인 중앙집권국가이고, 카탈루냐의 자치권은 제주특별자치도나 세종특별자치시와 같이 국가의 일부인 일개 지역에 대해서 자치권을 좀 더 부여한 형태일 뿐이다. 그래서 카탈루냐 주정부가 뭐라고 주장을 하건 현행 스페인 헌법상으로는 카탈루냐 지역에 한정해서 찬반투표를 하는 것으로는 스페인 헌법에 영향을 줄 수 없다. 현행 스페인 헌법상으론 스페인 전체 지역에서 카탈루냐 지역의 분리독립 찬반 국민투표를 해서 찬성이 더 많이 나올 경우에만 독립이 가능하다. 물론 이 방법으로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카탈루냐 독립 찬성표가 더 나올 가능성은 없다.[9]

결국 카탈루냐에서 주장하는 바는 원래 권한이 없지만, 자신들을 독립개체로 인정해서 주민투표를 인정해달라는 것이었고, 스페인 중앙정부는 이를 일관되게 부정했다[10]. 즉 이 장면에서 카탈루냐의 독립가능성은 제로가 되는 것이다.

결국 카탈루냐 주정부의 독립 방법은 딱 하나 밖에 없다. 외교독립론. 전세계에 원래 자신들은 독자적인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스페인이 카탈루냐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안 좋은 쪽으로 인식을 몰아가서 스페인을 압박하는 것이다. 그래서 스페인이 굴복해서 스코틀랜드와 같이 독립투표를 하게 해주는 것이 현재 카탈루냐 주정부의 목표이다.

문제는 이건 스페인 중앙정부가 인정안하면 땡이란 것이다. 애초에 스페인을 압박할 국가도 없다. EU에는 스페인과 딱히 사정이 다르지 않은 나라가 득시글 거린다. 그 나라들 입장에서는 카탈루냐 독립을 인정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분열을 의미한다. 심지어 프랑스만 해도 코르시카와 바스크 같은 껄끄러운 구석이 있다.[11] 그리고 이런 카탈루냐의 독립 주장과 아주 유사한 사례가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바로 우크라이나 동부와 크림반도이다. EU 입장에서는 카탈루냐를 인정한다는 것은 우크라이나 문제와 관련해서 굉장히 껄끄러운 상황이 되게된다. 이는 EU와 연대해서 러시아에 압박을 가하고 있는 미국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런 식의 분리주의가 강해진다면 EU 전체가 지금보다 훨씬 작은 소국의 연합으로 쪼개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저런 상황에서 카탈루냐가 독립투표를 강행해서 실제로 찬성표가 더 나왔을 경우의 전개는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스페인정부는 독립 찬반 투표 자체를 불법으로 규정해서 막으려고 할 가능성이 높지만, 이 부분은 일단 넘어가자.

우선 카탈루냐 주정부는 독립국가임 선언할 것이고, EU에는 자신들이 EU가입국임을 인정해주거나 혹은 가입시켜줄 것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스페인에 대한 보호와 중재를 요청할 것이다. 반면 스페인 정부는 독립 카탈루냐 정부를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이를 체포하려고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 카탈루냐는 무장독립 투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확하게 하고 있으므로, 카탈루냐 정부 구성원은 스페인에 의해서 체포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카탈루냐 독립단체 시민들이 몸으로 막을 수도 있으나 이 경우는 운이 좋으면 공무집행방해죄, 운 나쁘면 내란 및 외환에 관한 범죄의 종범으로 처리될 것이다.

그리고 카탈루냐 주정부가 그렇게 개입해줄 것을 요구하는 EU는 스페인 중앙정부가 군대를 동원하려고 하는 경우에만 중재에 나설 것이다. 실제로 카탈루냐에서 무장투쟁을 포기한 것이 이 때문이다. 만일 카탈루냐가 무장 투쟁을 하면 스페인 중앙정부는 내전상황으로 선언하고 군대로 진압해버리고, 주도자 처벌하고 일을 끝낸다. 하지만 무폭력 독립선언의 경우는 경찰이라면 몰라도 군대는 못들어온다. 군대를 동원할 경우에는 국외에서 압박을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을 고려하기 때문에, 일부에서 카탈루냐의 독립주장은 보여주기 식 퍼포먼스이고, 실제 목적은 자치권 확대와 독립을 원하는 강성 유권자의 지지획득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4. 유명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디자인한 안토니오 가우디의 고향이기도 하며, 종영되었지만 미녀들의 수다에 출연했던 스페인 여성 알바 꾸닐 풀껫이 카탈루냐인이었다. 前 IOC 위원장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피아니스트작곡가 이삭 알베니스, 화가 살바도르 달리, 테너 가수 호세 카레라스도 이 지역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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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억지로봐줘도 동군연합 시기 정도가 연맹국의 일부로 봐줄 수 있는 한계이다. 합스부르크 왕조가 형성되고 중남미 지역을 털어먹으면서 펠리페 2세에 의해서 중앙집권화가 이뤄지는 시점에서 카탈루냐의 독립국 지위는 이미 사라졌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 [2] 언어학적 분류에 따르면 스페인어(카스티야어)는 포르투갈어 등과 이베로-로망스 어군에 속하지만, 카탈루냐어는 이들과 달리 갈로-로망스 어군에 포함된다. 실제로 카탈루냐어에서는 스페인어보다 프랑스어에 가까운 단어들이 상당히 발견된다.
  • [3] 70년대까지 권위주의 독재 정권이 남아있었던 것의 여파라는 설도 있다. 프랑코 정권 당시에 카탈루냐가 당한 탄압과 억압이 다른 지역보다 더 심했던 것도 사실이고...
  • [4]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카탈루냐는 1931년, 1979년에 자치권 확대와 관련, 2006년에 카탈루냐 자치 지위와 관련하여 주민투표를 했고 세 차례 다 찬성표가 더 많았다. 독립과 관련된 투표를 한 적은 없다.
  • [5] 첫 번째 문항 “카탈루냐는 국가가 되어야 하는가" 두 번째 문항 "첫 번째 문항에 찬성했다면, 카탈루냐가 독립국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 [6] 카탈루냐가 스페인에 합병된 시점을 독자적 자치권이 박탈되고 스페인의 일개 지역이 되는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으로 보는 카탈루냐 독립파들의 기준으로 본다면, 스코틀랜드는 지금도 독립국이다. 물론 현행 국제법상으로는 스코틀랜드는 별도의 주권을 가진 독립국이 아니고, 이 기준으로 본다면 카탈루냐가 스페인에 합병된 것은 동군연합시기까지 소급된다.
  • [7] 영국이 연방국이 아니라고 보는 입장이 메인이 되는 잉글랜드에는 자치권이 없다라는 것을 언급한다. 이는 잉글랜드가 영국의 형성을 주도했고 실제적으로 영국의 80%를 좌우하는 상황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해도 영국은 절반 이상은 연방국가이고 스코틀랜드 독립투표는 이를 현실적으로 드러내는 결과가 되었다.
  • [8] 2012년 에딘버러 합의가 이뤄지며 2014년 독립 투표를 합의한 것이다. 양 측 의회가 합의한 사항이라는 것.
  • [9] 한국의 예를 들면 정말 이해하기 쉬워진다. 서울이건 제주도건 독립을 하려고 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내란 외환 어쩌고 하는 법률 이전에 헌법의 영토조항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 및 그 부속도서로 한다'''에 떡하니 걸려버린다. 때문에 특정 지역이 분리독립을 하고 싶다면 영토조항을 개정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를 개정하기 위해서는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국민투표를 해야 한다. 북한은 뭐냐고? 헌법상으로 북한은 미수복영토이고, 헌법적으로 북한 땅은 한국 땅이고 북한 주민은 한국 국민이다.
  • [10] 스코틀랜드 독립과 관련된 항목 등이나 일부에서는 이게 투표에서 승리할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고 잉글랜드는 이길 자신이 있어서 승락했다라는 식으로 적혀 있었는데, 개소리다. 스페인 정부는 부분 투표를 허용할 헌법적 권리가 없다. 한국에서 서울이 독립하겠다고 할 때 정부가 질 것 같으면 허용하지 않지만 결국 독립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면 독립투표를 허용할 수 있을 것 같은가? 헌법 개정사항을 행정부나 의회가 자신감에 따라서 마음대로 변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오류이다. 영국은 왜 가능하냐고? 영국은 헌법이 없다니까.
  • [11] 이 점 때문에 FC 바르셀로나가 르 샹피오나에 가입할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들이 많다. 아니 카탈루냐 축구리그가 UEFA에 가입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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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9-18 03:2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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