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커트 실링


이름 커티스 몬태규 실링(Curtis Montague Schilling)
생년월일 1966년 11월 14일
국적 미국
출신지 알래스카앵커리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6년 1월 드래프트 2라운드 전체 39순위
보스턴 레드삭스 지명
소속팀 볼티모어 오리올스(1988~1990)
휴스턴 애스트로스(1991)
필라델피아 필리스(1992~2000)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2000~2003)
보스턴 레드삭스(2004~2007)

2001년 월드 시리즈 MVP
데릭 지터
(뉴욕 양키스)
커트 실링 & 랜디 존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트로이 글로스
(애너하임 에인절스)

2001년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 선정 올해의 스포츠맨
타이거 우즈 커트 실링 & 랜디 존슨 랜스 암스트롱

메이저리그의 투수. 2000년대 초반 랜디 존슨과 함께 최강의 원투펀치를 이뤘으며, 그 뒤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해 86년만의 메이저리그 우승에 한 몫을 단단히 한 에이스 투수다. 또한 알래스카를 대표하는 메이저리그 선수이기도 하다.[1]

통산 성적 216승 146패 ERA 3.46 3261이닝 3116탈삼진 711볼넷.[2] 누적 fWAR 80.1로 역대 메이저리그 투수 20위.

Contents

1. 선수 시절
1.1. 필리스에서의 역투
1.2. 디백스에서의 황금기
1.3. 레드삭스에서의 황혼기
2. 피칭 스타일
3. 불운한 상복
4. 이야기거리
4.1. 포스트시즌의 사나이
4.2.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5. 기타
5.1. 입방정의 사나이
5.2. 38 스튜디오, 실패한 제2의 인생
5.3. 38스튜디오 파산 후
5.4. 잡다한 이야기
6. 연도별 주요 성적

1. 선수 시절

1986년 1월 드래프트에서 보스턴 레드삭스에 지명되어 1988년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트레이드되었고, 1991년에는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갔지만[3]를 주로 불펜에 머물렀고, 이후 1992년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이적하고 나서부터 선발로 자리잡아 기량이 꽃피기 시작한다.

1.1. 필리스에서의 역투

1993년 월드시리즈까지 진출했던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주축 선발투수로 활약하며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두 경기 선발로 나서 16이닝 3자책 4실점으로 챔피언십 MVP를 수상했고, 월드시리즈에서도 두 경기 선발로 나서 15.1이닝 동안 6자책 7실점으로 호투했으나 당시 당대 최강팀이었던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막을 순 없었다. 그 뒤에도 잔부상에 시달렸던 94~95시즌을 제외하고 매 시즌 200이닝-3점대 평균자책[4]-300개를 전후한 삼진을 기록하는 등 호투하나 소속팀이었던 필라델피아 필리스[5]가 지구 꼴찌를 밥먹듯이 하던 약팀이라 다시 포스트시즌에서 투구할 기회를 얻을 수는 없었다. 밑에서도 얘기할테지만, 하여간 팀 잘못 만나서 지지리도 복도 없었던 선수.

여담으로 핵이빨은 이 시절부터 갈고 닦았는지(...) 1997년 드래프트에서 터져나온 그 유명한 'J.D. 드류 사태'에서 스캇 보라스의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진지한 공개토론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사건 이후 정확히 10년만에 드류와 한솥밥을 먹게 될 줄은 몰랐겠지

1.2. 디백스에서의 황금기

이렇게 약팀의 에이스로 이름을 날리던 중, 2000년 시즌 도중에 우승을 위해 모든 것을 올인하고 있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오마 달, 넬슨 피게로아, 트래비스 리[6]와 비센테 파디야 등 4명의 선수를 내주며 커트 실링을 영입한다. 이적 후 랜디 존슨에 이은 2선발로 대활약, 메이저리그 최고의 원투펀치를 이뤄 본격적인 전성기를 달린다.

2001년 시즌 랜디 존슨과 함께 당시 월드시리즈 3연패를 이루고 4연패에 도전하던 뉴욕 양키스를 물리치고 애리조나 디백스에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선사한다. 월드시리즈 7차전에서 로저 클레멘스와의 벼랑끝 승부는 지금도 인구에 회자되는 투수전의 백미. 당시 7차전 시리즈에서 세 번 선발로 나서 21.2이닝 동안 자책점 4점만을 허용하는 짠물피칭을 보인다. 결국 7차전을 마무리한 랜디 존슨과 함께 월드시리즈 공동 MVP를 수상. 월드시리즈의 자세한 이야기는 2001 월드 시리즈 항목 참조.

그 뒤에도 꾸준한 활약을 보이다가 슬슬 리빌딩에 들어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의해 다시 4:1 트레이드로 보스턴 레드삭스로 건너갔다. 1993년 포스트시즌, 2001년 월드시리즈로 이미 포스트시즌의 사나이로 인정받은 그였지만, 그 역량을 활짝 꽃피운 것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일 것이다.

1.3. 레드삭스에서의 황혼기

자신을 지명했지만 곧 트레이드했던, 자신이 그토록 닮고 싶었던 로저 클레멘스의 친정으로 오랜 세월을 돌고 돌아 황혼기에 도착한 2004년. 그는 입단식에서부터 "밤비노의 저주를 깨겠다"고 맹세한다. 다행히 NL에서 AL로의 이적에 훌륭히 적응하며 37세의 나이에 21승 6패 평균자책 3.26을 기록한다. 그리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월드시리즈 2차전에 등판, 부상에도 불구하고(아래 부분 참고) 6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는 투혼을 보이면서 86년만에 보스턴에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선사한다.


그런데, 이것이 피가 아니라 치료용 빨간약 요오드라는 얘기가 있어서 나중에 구설수에 올랐다. 부상이 있었던 건 이후 월드시리즈 트로피를 들고 풋볼 경기장에 나올 때에도 목발을 짚고 나왔던 것을 보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나, 이것이 약간의 허세가 섞여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가 아니라는 구체적인 증거는 아직 없다. 여러 다큐멘터리를 봐도 진짜라고 주장하고 있고, 아직 피가 아니라니 페인트니 요오드니 하는 소리는 몇번 근거가 제시되지 않은 루머로서 나왔을 뿐, 공식적으로는 진짜 피가 맞다.수술 자국 애초에 이게 제일 먼저 퍼진 계기가 방송 캐스터의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니까... 근거를 확인하시는 분이나 실링의 당시 부상에 대해 잘 아시는 의느님 위키니트의 가열찬 수정바람.

또한 이 양말에 K ALS를 적어놓은 것으로 본인이 후원하는 루게릭병 재단을 홍보하는 센스까지 발휘했다.[7] 여담으로 당시 최훈은 관련 카툰에서 그가 신은 신발이 리복임을 빗대어 "나이키는 땅을 쳤을 그 장면"이라고 평했고 나이키 신발이었다면 바로 대대적으로 광고 삽입해서 '불가능은 없다'는 드립을 쳤겠지, 그 직후엔 '요오드 설'을 의심하는 내용을 그렸다.

2005년에 살짝 부진했으나 2006년 부활, 그리고 2007년 다시 월드시리즈[8]에서 콜로라도 로키스를 상대로 5.1이닝 1실점이라는 호투를 보인 후 은퇴한다. 팬들은 이번이 마지막 월드시리즈가 될지도 모르는 영웅이 마운드를 내려갈 때 존경과 감사를 담은 기립박수를 보냈고, 결과적으로 그 경기는 현역으로서 마지막 경기가 되었다.

사실 2008년에도 디스카운트를 해서 계약은 했다. 다만 갑작스레 어깨 부상을 당해서 출전도 못하고 기약없는 재활을 하다 2009년 초에 은퇴를 선언하고 말았다. 어쨌든 2008년에 뛰진 않았으니 명예의 전당 투표가 늦춰지진 않았고, 비록 마지막 해에는 의도하지 않은 심각한 부상으로 인해 먹튀화했지만, 레드삭스는 그의 은퇴 이후 38번을 비공식 영구결번화하여 예우하고 있다. 아마 실링이 명예의 전당 입성이 확정된다면 원래 레드삭스에서 드래프트도 되었던 인연을 들어 프랜차이즈 스타에 준하는 대접으로 공식적인 영구결번이 선포될 것으로 보인다. 마침 실링도 가장 오래 뛰었던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의 그때가 딱히 좋기만 한 세월은 아니었고 포스트시즌의 해결사 이미지가 강하니까 삭스 모자를 쓰고 갈테고...

2. 피칭 스타일

피칭 스타일은 완벽한 파워피처의 전형이다. 최고 90마일 후반대(2002년 평속 93.4마일)에 이르는 포심 패스트볼과 뚝 떨어지는 스플리터를 주무기로 한다.[9]

통산 3261이닝 동안 3116개의 탈삼진을 잡아냈으며 로저 클레멘스도 못한 300삼진을 잡은 시즌도 3번(97, 98, 02)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통산 3000탈삼진 이상을 기록하면서 허용한 통산 볼넷은 711개[10]에 불과할 정도로 커맨드 역시 뛰어났다. 아마 MLB 역사상 가장 커맨드가 뛰어난 투수 중 하나로 꼽힐 수도 있을 것이다. 2000년 이후로는 피볼넷이 경기당 1개를 간신히 넘길 정도였으며 2002년엔 35게임에 등판하며 고의사구 포함 볼넷이 34개만 허용하는 짠물피칭을 보인다. 이런 짠물 피칭의 비결은 메이저리그 정상급의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11] 초구부터 스트라이크 존을 공격적으로 공략하다보니 왕왕 안타도 맞긴 했지만, 굳이 DIPS 이론까지 끌어오지 않더라도 볼넷을 매우 짜게 내줬으니 상관 없었다. 정면 승부의 대가이면서도 타자들을 요리할 줄 알았던 괴수. 이 인간 때문에 허구연이 MLB는 공격적으로 정면승부만 한다라는 개드립을 치게 되었다

3. 불운한 상복

뛰어난 실력을 가졌지만 동시대에 그렉 매덕스, 페드로 마르티네즈, 랜디 존슨, 요한 산타나 등의 괴물급 투수들이 많아서 사이 영 상은 4위 한 번(97), 2위만 세 번(01, 02, 04)에 그치며 상을 수상하지는 못했다. 특히 필리스 시절에는 팀이 워낙 약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승수가 적어서 사이영 표도 얼마 받지를 못했는데 그 대표적인 경쟁자들이 브레이브스 왕조 3인방이었고, 거기다 97년에는 몬트리올 엑스포스외계인이 리그를 쑥대밭으로 만든 탓에 17승 319K에도 불구하고 4위까지 밀려나야 했다. 2위 세 번의 경우 01~02년에는 랜디 존슨, 04년에는 요한 산타나가 가져갔다.

4. 이야기거리

4.1. 포스트시즌의 사나이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포스트시즌 성적이 19게임 11승 2패, 133.1이닝 동안 120탈삼진, 25볼넷 평균자책 2.23일 정도로 포스트시즌에서 날라다녔던, MLB 역사에 길이 남을 빅게임 피쳐[12]다. 레드삭스의 원쑤 뉴욕 양키스의 프랜차이즈 스타 앤디 페팃이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19승을 기록하였지만 ERA가 3.83로 높은 편인지라 실링과는 그 격을 달리한다. 갓 창단한 신생팀 디백스에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안겨줬고, 86년 묵은 밤비노의 저주를 쳐부수면서 2차례의 우승을 선사했을 정도니...[13] 가장 오래 뛰었던 필라델피아 필리스X만패약체라서 포스트시즌에 많이 진출하지 못했던 게 아쉬울 뿐인 선수.

2010년 espn에서 선정한 역대 최고의 포스트시즌 투수 순위에서 밥 깁슨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스몰츠는 4위, 리베라는 번외로 소개됐다.) 참고로 클리프 리는 8위이고 기사의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기사 자체가 당시 클리프 리가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해서 마련된 것인데 그 후 월드시리즈에서 쪽박을 찼다(...).#

4.2.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통산 성적을 보면 ERA에 비해 패가 엄청 많은 편인데, 이게 다 젊었을 때 만패팀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오래 뛰어서 승리를 많이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를 감안할 때 사실 216승만으로는 입성하기가 어려운게 사실이다. 샌디 쿠팩스처럼 리그를 지배했던 수준의 선수는 아니었기 때문에...

하지만 역대 최강의 빅게임 피쳐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만한 위대한 포스트시즌의 업적, 그리고 밤비노의 저주를 깬 투수라는 점, 커리어 통산 3000이닝 - 3116K로서 3천K를 넘어섰다는 점[14], 약물 시대를 겪었다는 보상 판정 등을 감안하면 직행은 아니더라도 명예의 전당행은 아마도 가능할 듯 하다. 게다가 같은 2007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로저 클레멘스배리 본즈에 대한 반발심리가 크게 작용한다면 2013년 첫해 입성이 마냥 꿈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일단 2012년 투표에서 밀린 후보에는 제프 배그웰, 잭 모리스(13회째), 리 스미스(10회째), 에드가 마르티네즈, 버니 윌리엄스 등 거물들이 많으며, 함께 출발하는 2013 동기 중에는 스테로이드 혐의자인 본즈, 클레멘스, 새미 소사를 제외하더라도 크레익 비지오 같은 흠좀무한 레전드근데 정작 비지오도 그해 못들어갔다는 점은 함정들도 버티고 있어 첫해 통과는 무리라는 평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이후에도 그렉 매덕스, 톰 글래빈,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 등이 쏟아지니 첫해 통과하지 못하면 오랫동안 장수하게 될게 뻔하며, 이렇게 이리저리 밀리다가는 버트 블라일레븐처럼 14수 15수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대체적인 평에 의하면 어찌어찌 명전은 갈 것 같다는게 지배적.

해외야구 떡밥 중 하나가 무시나 vs. 실링의 명전행인데, 승수, 이닝과 같은 누적 스탯은 무시나가, ERA와 같은 비율 스탯은 실링이 유리해 일단 한번 터지면 제대로 불이 붙는 논쟁이다.[15] 하지만 무시나도 상복이 실링 뺨칠 정도로 나빠서 골드글러브 7회 수상[16] 말고는 이렇다할 수상 경력이 없는 것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눈물겨운(?!) 대결이다. 일단 블랙 잉크(리그 내에서 홈런, 탈삼진 등에서 얼마나 1등을 얼마나 했는가를 매기는 점수 - 쉽게 말해 리그를 얼마나 지배했는가)와 HOF 모니터(시즌 별, 통산 성적이 얼마나 되는가로 매기는 복합 점수)는 쉴링이 더 앞서며 그레이 잉크(리그 내에서 홈런, 탈삼진 등에서 10등 이내에 얼마나 들었는가를 매기는 점수 - 리그에서 얼마나 꾸준히 던졌는가), HOF 스탠다드(일정 수준 이상의 성적을 매기는 누적 점수)는 무시나가 앞선다. 대체로 둘다 겨우겨우 들어갈 것이라는게 중론.

명전에 갈 경우 어떤 모자를 쓰느냐도 작은 떡밥인데, 사실 필리스 시절이 승패만 빼면 가장 오래 있었고 성적도 좋았던 때다. 그러나 정작 우승했던 시절이 디백스와 레드삭스이다 보니 대체로 디백스 또는 레드삭스 모자를 쓸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는 레드삭스가 팀 명전에 올려주면서 물밑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디백스도 가만히 손가락만 빨 리 없기 때문에 향후 추이를 지켜봐야 할듯.

2013년 명예의 전당 첫 투표에서는 38.8%라는 득표율로 세간의 전망에 비해 비교적 선전하며 향후 전망을 밝혔다. 참고로 이 득표율, 36.2%인 본즈와 37.6%인 클레멘스보다 조금 높다.

2014년도에는 29.2%로 10% 가까이 떨어졌다. 다른 레전드 후보들 탓이 큰것으로 보이는데 향후 몇년간은 레전드급 선수들이 줄줄이 후보로 등록되는지라 몇년은 물을 먹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2014년 7월, "투표의 타당성을 높이기 위해" 라는 명분으로 명예의 전당 후보자격 유지 기간이 10년으로 줄어들었다. 실링에겐 더 큰 악재로 찾아온 듯.

2015년도에는 다행히 첫해보다 약간 오른 39.2%의 득표율을 얻어냈다. 유지 기간이 10년으로 줄었어도 이 정도 득표율이면 아직까지 승산은 있어 보인다.

이후 한 인터뷰에서 자신이 명예의 전당에 많은 득표를 못한이유로 공화당을 지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자신과 달리 존 스몰츠가 첫 턴에 명전에 들어간 데는 브레이브스 왕조빨 + 민주당 지지자라는 점이 작용했다고 해서[17] 어그로를 끌었다. 나중에 농담으로 한 말이라고 해명은 했다지만... 하여간 그놈의 핵이빨 그래도 요즘 살만하신듯#

5. 기타

5.1. 입방정의 사나이

이렇게만 보면 정말 대단한 투수지만 그놈의 입버릇 때문에 평가절하된 대표적인 선수다. 미국 대통령을 꿈꾸는 어떤 알래스카 출신 아줌마처럼 정치적으로 골수 공화당원에다 정치적인 발언을 매우 많이하고[18] 이런저런 구설수를 많이 뿌리는 사람이다. 특히 대놓고 민주당 텃밭인 보스턴에서 그런 발언을 막 하다보니 미국 내에서도 안티가 상당수 있다. 국내에선 디백스 시절만 하더라도 그다지 나쁜 이미지는 없었으나, 보스턴 레드삭스 이후로 이런저런 설화를 많이 만들어내며 이미지가 많이 나빠진 선수. 2004년 월드시리즈 당시 전세계적이로 이슈가 됐던 '피로 물든 양말'(위의 그 사진 맞다.)이 조작이라는 주장이 제기[19]되면서 그 당시의 감동이 퇴색된 탓도 컷고, 결정적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김병현과 사이가 안 좋다는 이야기가 퍼진 탓이 컸다[20]. 분명 3년 전에는 훈훈한 장면을 연출했는데?

또한, 나쁘게 말하면 더럽게 나불대는 성격이고 좋게 말하면 소신이 있는 싸나이다운 성격(...)은 실링의 영웅이자 롤모델이라 할 수 있는 로켓에 대한 태도에서 잘 나타난다. 2004년 보스턴으로의 트레이드 후 2006년 로켓이 알바멘스로 거듭나 새해까지 푹 쉬고 있을 무렵, 테오 엡스타인 GM이 로켓맨의 복귀를 염원하는 여러 보빠들의 영상을 담은 DVD를 클레멘스에게 전달하고 진지한 오퍼를 넣으며 클레멘스의 귀향을 추진했는데, 당시만 해도 커트 실링은 로켓이 돌아오면 발레복을 입고 춤추겠다(...)며 대환영 의사를 밝혔고, 06년에 잠시 펜웨이 파크에 방문하며 "10년만의 위대한 귀향"이라는 설레발의 주인공이 되었던 클레멘스를 만나자 굉장히 기뻐했다. 그러나, 07년 미첼 리포트에서 로켓의 이름이 거론된 후, 실링은 그에게 굉장한 배신감을 느꼈는지 토론토 시절부터의 4차례 사이영상을 반납하라(!)며 대차게 깠다. 그 이후로도 약을 빤 선수는 HOF에 가면 안된다는 등의 강경한 입장을 보이며 늘 소신 있는 옳은 말만 시끄럽게 나불대는 입실링(...)의 이미지를 굳혔다. 2012년에는 2008년 어깨 부상으로 재활 중일 당시 레드삭스 프런트[21] 측으로부터 PED 복용을 권유받았다는 주장을 하며 MLB 사무국이 수사에 나서기도 했다.

또한 2008년에 본인이 부상으로 고생하고 있었음에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트레이드를 요구하며 대놓고 태업을 한 매니 라미레즈의 행동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언행을 본 레드삭스 팬들은 만약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실링과 적으로 만나서 설전이 벌어졌다면 어땠을까 하는 흠좀무한 상상을 하기도.

하지만 국내에서는 김병현의 입지 축소 등과 좋지 않다는 사이 등 여러가지가 맞물려 악의적인 기사가 나오기도 했는데, 오마이뉴스의 기사 - 아니, '칼럼'이 하나 있다. # 차라리 이쯤 되면 그냥 싫다고 하는게 나았을지도...

물론 약물 시대에서 이만큼 롱런한 투수가 드물다는 사실을 아는 이상 실링의 피칭을 폄하할 수 없는게 사실이지만 원체 핵이빨은 핵이빨인지라... 현재 보스턴에서는 조시 베켓이 비슷한 행보[22]를 걷고 있지만, 사실 말빨에서는 상대가 안된다.

5.2. 38 스튜디오, 실패한 제2의 인생

메이저리그 선수 중에선 특이하게 선수 시절부터 게임 관련한 부업으로 유명했으며, MMORPG '에버퀘스트'의 광팬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선수시절때부터 보드게임 회사를 경영하면서 경력을 쌓았던 커트 실링은 자신의 등번호를 딴 게임 개발사 '38 스튜디오'를 설립하며 게임 업계에 본격적으로 발을 내딛기 시작한다.

야구하던 사람이 게임을 만든다고 해서 처음에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실링은 2006년부터 매사추세츠 지역에 개발사 부지를 준비하고 로드 아일랜드 주에서 7500만 달러 지원을 받고, 에버퀘스트의 리드 디자이너 등을 영입하는 등 판을 엄청나게 크게 벌였다. 특히 게임을 펼칠 세계관의 설정을 베스트셀러 포가튼 렐름의 작가 R. A. 살바토레에게, 게임의 아트 디자인을 야덕 토드 맥팔레인에게 맡기는 등, 상당히 규모가 큰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 상태에서 굉장히 오랫동안 소식이 없었다.

이러다가 결정적인 돌파구가 찾아온 것은 2009년이다. 당시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로 잘 알려져 있는 빅 휴즈 게임즈는 아직 발표되지 않은 RPG를 만들고 있다가 모회사 THQ에 의해 해산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몇년 째 소식도 없이 돈을 계속 쏟아붓고 있던 38 스튜디오의 상황도 문제였지만, 빅 휴즈 게임즈는 이미 창립자는 나간 상황에서 외부에서 데려온 엘더스크롤 시리즈의 리드 디자이너가 남아 그 전까지 빅 휴즈가 만들어본 적도 없는 RPG만 잡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커트 실링은 THQ의 해산 데드라인 직전에 빅 휴즈 게임즈를 38 스튜디오의 자회사로 인수했다. 그리고나서 빅 휴즈 게임즈의 싱글플레이어 RPG에 38 스튜디오가 보유한 '아말러' 세계관을 덧씌우는 방향을 선택했다. 이 결과물이 굉장히 좋았던 데다가 38 스튜디오와 빅 휴즈 양측의 거물들의 이름이 달라붙게 되면서 대형 게임 배급사 EA가 접근해 배급 계약까지 순식간에 체결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2011년 Kingdom of Amalur: Reckoning이 발표되면서 요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개속 메이저리그의 유명 인사였던 실링은 일약 게임 업계의 인사로 급부상한다. 그리고 이 킹덤 오브 아말러: 레코닝은 2012년 2월 7일 한국에 정식발매되었다. 그리고 아말러시리즈와 이어지는 38 스튜디오의 MMORPG 역시 여전히 착실하게 개발중이라고 한다. 야구 선수의 은퇴 후 커리어 치고는 대단히 예외적인, 그리고 성공적인 경우라 할 수 있겠다. 또한 덕질과 자본이 만나면 무서운 결과가 나온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덕중의 상덕은 양덕이니라

여기까지, 그러니까 2010년 중반에 아말러의 배급 계약 체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시점부터 게임이 성공을 할 때까지는 분위기가 정말 좋았다. 그런데...

2012년 5월 29일(현지시각), 현지 언론에서 38 스튜디오가 사실상 부도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미 임금 체불 상태까지 갔다고 하니 매우 심각한 상황인 듯. 이어 현지시각 6월 7일에 결국 회사는 파산했다. 이 사업에 7,500만달러의 거금을 지원한 로드 아일랜드 주 측에서도 실링에게 책임을 묻는 분위기라 이래저래 진퇴양난이다.

38 스튜디오의 패착에 대해서는 많은 설이 나돌고 있다. 5월에 들어와 로드 아일랜드 주에 갚기로 한 약 112만 달러의 빚을 갚고 나서 더 이상 직원들에게 임금을 주지 못했다는 점은 확실한데, 이에 대해 38 스튜디오 및 산하 빅 휴즈 게임즈의 고위 직원들이 "이번 달 빚을 갚으면 지원을 해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로드 아일랜드 주에서 입 닦고 가만히 있다"고 비난을 하고 있다.

더욱이 자기가 관할하는 주에 있는 회사가 위기에 처해 있는데 120만장을 팔고 업계에서 성공했다고 평가하는 덤 오브 아말러: 레코닝을 대놓고 "망했다"고 비난하며 상황 타개를 불가능하게 만든 주지사의 행보를 보고 있자면 굉장히 이해가 안 가거니와 대단히 재수가 없어 보인다. 커트 실링과 38 스튜디오에게 융자를 해주었던 이전 주지사를 비난하기 위한 정치 싸움의 일부라는 추측이 많다.

그런데 그렇다고 커트 실링도 잘못이 없는 건 아닌게, 회사가 38 스튜디오에서 일하기 위해 다른 도시에 있다가 옮겨온 직원들의 이전 주택 융자를 처리해주기로 해놓고서 알고 보니 처리를 안 해서 해고당한 직원들이 예전 주택 융자까지 떠앉게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더욱이 퍼블리셔도 잡지 않고 엄청나게 비싼 MMORPG를 5년동안 만들고 있던 38 스튜디오의 경영 전략 역시 영리한 방법은 아니었다. 개발팀을 새로 사들여 "킹덤 오브 아말러"같은 히트작을 내놓은 지 반 년도 되지 않았는데 회사 전체가 이렇게 순식간에 망해버리는 건 전적으로 경영 실수다. 다만, 로드 아일랜드 주정부의 공식 입장에 따르면 300만장을 팔아야 손익분기점을 넘는다는 말이 나왔는데, 아마도 판매고로만 손익분기점을 넘기기 위한 기준이 300만장 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는 새 IP가 가지는 상업적인 한계, 당초 예측치,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보았을 때 대성공으로 평가한 것. 허나 그걸 따질 새도 없이 스튜디오는 파산했다.


회사 파산을 앞두고 로드 아일랜드 주정부와 담판을 짓고 나오면서 언론의 취재 공세를 받는 실링.

무엇이 진실이든 간에, 한 가지는 확실하다. 이 회사에 무려 5000만달러의 재산을 쏟아부은 실링은 그야말로 망했어요. 지못미.

5.3. 38스튜디오 파산 후

38스튜디오 파산 후에는 ESPN에서 해설가로 일하고 있다. 엄청난 투자에도 불구하고 삽질을 거듭하고 있는 다저스를 상대로 "돈으로는 승리를 살 수 없다"#라고 핵이빨 답게독설을 날리기도 했다.

2014년 갑작스럽게 암 진단을 받게 되어 그동안 하고 있던 ESPN 해설 활동을 잠시 중단하게 되었다.

5.4. 잡다한 이야기

피부암에 걸린 아내를 위해 돔구장 뱅크원 볼파크를 쓰는 애리조나 디백스를 선택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가정적인 선수라 한다. 그런데 디백스엔 트레이드로 합류한 것이고, 보스턴 레드삭스의 구장인 펜웨이 파크는 노천구장임을 감안해 보면 아마도 헛소문일 듯. 아니면 피부암이 나았나? [23]

그러나 가정적인 것과 상관 없이 그는 선수생활 내내 좋든 싫든 가족들과는 떨어져 지내야 했는데 아이들이 커가면서 네 아이를 데리고 사실상 싱글맘 노릇을 했던 부인과도 불화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24] 그러던 중 4명의 자녀 중 막내아들인 그랜트는 2007년에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증후군을 진단받았고, 2008년에 선수 본인이 계약 상태에 있었음에도 어깨 부상[25]까지 길어지자 은퇴를 결심하는 계기로서 작용하였다고 한다. 이 병에 대해서는 해당 항목을 읽어보길 권한다. 관련해서 부부가 을 냈다니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찾아보길. 실링 부부는 이런 인연으로 매사추세츠 주 자폐증 관련 재단을 후원하기도 한다.

잭 그레인키가 굉장한 WoW 게이머임을 나불댔다 말했다. #

그의 직설적인 인터뷰를 보면, 은근히 호걸스러운 면모를 볼 수 있다. 사실 말이야 바로 하지, 이런 커트 실링도 기자들과의 불화만 없었다면 아마 입실링 소리를 듣지는 않았을 것이라 보인다.과연 명예의 전당 입성 시 인터뷰에서는 무슨 말을 할까 (...)

2012년 8월, 보스턴 레드삭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했던 커트 실링이 무사히 수술을 마쳤는지, 딸 개비 실링이 현지시간 2014년 2월 11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소식을 알렸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기록(MLB)
년도 소속팀 경기수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이닝 WHIP
1988볼티모어 오리올스 4 0 3 0 9.82 10 11 4 14.2 2.18
1989 9 0 1 0 6.23 10 3 6 8.2 1.50
1990 35 1 2 5 2.94 38 19 32 46.0 1.23
1991 휴스턴 애스트로스 56 3 5 5 3.81 79 39 71 75.2 1.55
1992필라델피아 필리스 42 14 11 0 2.35 165 60 147 226.1 0.99
1993 34 16 7 0 4.02 234 61 186 235.1 1.23
1994 13 2 8 0 4.48 87 31 58 82.1 1.39
1995 17 7 5 0 3.57 96 29 114 116.0 1.05
1996 26 9 10 0 3.19 149 53 182 183.1 1.08
1997 35 17 11 0 2.97 208 63 319 254.1 1.04
1998 35 15 14 0 3.25 236 67 300 268.2 1.10
1999 24 15 6 0 3.54 159 49 152 180.1 1.12
2000 16 6 6 0 3.91 110 33 96 112.2 1.26
2000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13 5 6 0 3.69 94 13 72 97.2 1.09
2000 '00시즌 합산 29 11 12 0 3.81 204 46 168 210.1 1.18
2001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35 22 6 0 2.98 237 40 293 256.2 1.07
2002 36 23 7 0 3.23 218 36 316 259.1 0.96
2003 24 8 9 0 2.95 144 35 194 168.0 1.04
2004보스턴 레드삭스 32 21 6 0 3.26 206 35 203 226.2 1.06
2005 32 8 8 0 5.69 121 25 87 93.1 1.53
2006 31 15 7 0 3.97 220 31 183 204.0 1.21
2007 24 9 8 0 3.87 165 25 101 151.0 1.24
통산 '20시즌 569 216 146 10 3.46 2998 736 3116 3261.0 1.13



----
  • [1] 그런데 학창시절의 대부분은 애리조나에서 보냈다.
  • [2] 통산 K/BB는 4.38로 역대 2위다. 그런데 1위 투수가 메이저리그는커녕 야구란 스포츠 자체가 제대로 정착하기도 전인 1800년대 투수라서 라이브볼 시대만 카운트하면 커트 실링이 1위다. 참고로 실링의 다음 순위에는 4.15의 페드로 마르티네즈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뒤로 댄 해런, 마리아노 리베라 등이 4 이상의 비율을 자랑하고 있다.
  • [3] 이 과정은 역대급 삽질 트레이드였다. 볼티모어는 당시 20홈런 정도를 꾸준히 기록하던 타자 글렌 데이비스를 영입하기 위해서, 피트 해니쉬, 커트 쉴링, 스티브 핀리를 이적시켰다! 글렌 데이비스는 이후 폭력사태 등을 일으키면서 10홈런 미만으로 몰락하여 3년만에 은퇴한다.
  • [4] 스테로이드 시대였다. 2000년대 후반부터의 투고타저에서의 좀 흔한 편에 속하는 3점대 투수와는 그 격을 달리한다.
  • [5] 1992년 시즌부터 2000년 시즌까지 9시즌 중 4시즌이나 지구 꼴찌를 기록
  • [6] 디백스가 스캇 보라스에 사기당해서 10m 계약 맺어준, 'Loop-Hole FA 사태'의 그 선수 맞다.
  • [7] 실링은 비록 레드삭스의 레전드지만 루 게릭을 매우 존경했고, 큰아들의 이름을 Gehrig으로 지었다. 트위터 계정도 게릭38.
  • [8] 2004년의 영웅들은 대부분 얼마 안가 보사구팽당했고, 팀은 더스틴 페드로이아, 케빈 유킬리스, 조시 베켓, 마이크 로웰, 마쓰자카 다이스케, J.D. 드류, 카지마 히데키, 자코비 엘스버리, 조나단 파펠본 등의 새 얼굴이 나타나며 대대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실링은 제이슨 배리텍, 데이빗 오티즈, 매니 라미레즈 등과 함께 팀의 베테랑으로서 새 얼굴들을 규합하는 임무를 맡았다. 2007 월드시리즈 무비 프로모션.(목소리는 맷 데이먼)
  • [9] 본인이 드래프트된 해에 레드삭스에서 24승 2.48을 찍은 로저 클레멘스를 영웅으로 추앙했던 커트 실링은 위협구도 마다않는 강력한 패스트볼과 스플릿을 연마하여 그야말로 로켓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으로 거듭났다. 근데 오리지날이 워낙 ㅎㄷㄷ해서 그렇지 다운그레이드가 안좋은게 전혀 아니었다(...)
  • [10] 이는 2015년 1월 8일 현재 16명 뿐인 3000K 선수 중 가장 적은 수치인데, 3000K 선수 중 볼넷 가장 적은 선수 2~4위는 바로 페드로 마르티네즈(760), 퍼거슨 젠킨스(997), 그렉 매덕스(999). 맨 위에서도 언급한 K/BB 수치에서도 함께 언급된 것을 보면, 커트 실링은 정말로 어쩌다가 만패팀 에이스가 되어가지고 지지리도 서러운 커리어를 보냈다고 볼 수 있다(...)
  • [11] 관련 집계가 이루어진 2002년부터 마지막 시즌 2007년까지의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을 보면 무려 68.8%로 메이저리그 전체 선발투수 중에서 래드 래드키에 이어 2위다.
  • [12] 물론 그와 비슷하거나 조금 나은 포스트시즌 성적을 거둔 투수로는 브레이브스 왕조의 빅게임 피칭 담당 존 스몰츠가 있다. 그러나 장로님은 15승 4세이브 2완투 2.67의 기록을 25차례의 시리즈에서 달성한 것이고 실링은 11승 4완투 2.23의 기록을 12차례의 시리즈에서 달성한 것으로, 필리스를 떠나 얻은 우승반지만 3개나 된다. 그러므로 실링은 당대 최고의 빅게임 피쳐로 꼽히는데 손색이 없다. 아, 물론 클로저 중에 마리아노 리베라라는 괴수가 존재하긴 한다만...
  • [13] 농담이 아니라 04, 07년 레드삭스의 우승을 본 시카고 컵스의 팬들이 커트 실링의 영입을 강력히 주장했을 정도(...). 그런데 진짜로 갔으면 실링이 컵스를 우승시켰을지도 모른다는 데에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 레알 충격과 공포. 야구에 만약은 없지만, 정말 그렇게 됐다면 명실공히 '저주 브레이커'가 됐을 것이다.
  • [14] 역대 3천 탈삼진 달성자 중 2015년 현재 HoF에 입성하지 못한 선수는 약물 논란이 있는 로저 클레멘스와 본 항목의 커트 실링 뿐이다.
  • [15] 게다가 이들은 한 때 보스턴과 양키스에 속해있었던 터라...
  • [16] 하지만 투수에게 골글이란... 별 의미없다. 안습. 게다가 실링은 자신의 레드삭스 첫 시즌에 우승을 이끌었고 마지막 시즌에 다시 우승을 이끌어서 겨우 4년만 뛰고도 비공식 영구결번 대접을 받고 있지만, 무시나는 01년에 절대반지를 얻기 위해 양키스로 올 때부터 양키스가 우승을 못하더니 자기가 은퇴하자마자 양키스가 우승했다. 빌어먹을(...)
  • [17] 근데 정작 스몰츠는 독실한 기독교인에 정치성향도 공화당 쪽(...)이다. 그쪽 선거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을 정도. 팀킬?
  • [18] 2004년 조지 W. 부시 vs F. 케리 대결에서 팀 동료들이 민주당을 지지할 때 혼자 공화당의 부시 지지를 선언했다(...) 아무튼 당시 선거운동도 같이 했던 로저 클레멘스의 성향과 이런 점도 일치한다.
  • [19] 2007년 4월, 방송 캐스터로 유명한 게리 쏜(Gary Thorne)이 덕 미라벨리가 비꼬는 농담으로 한 말을 귓등으로 들어서 그걸 진담으로 받아들이고 방송에서 말했다. 실링은 이후 미라벨리와 대화를 나눠서 그 사건에 대해 파악하게 되었고, 블로그에 게리 쏜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말을 올렸다.# 그래도 레드삭스 팬들은 그것이 진짜든 아니든 실링에 대한 감사와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는 반응이었다. 사실 80년 넘게 묵은 저주를 풀려면 그런 레어템이 필요하긴 했...
  • [20] 2001년 월드시리즈에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우승을 차지한 지 얼마 후 실링이 모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월드시리즈 당시의 에피소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 김병현을 신나게 씹어 잡수셨다는 후문. 그 사건 이후로 김병현은 지금도 실링을 인간 취급 안 한다고 함.
  • [21] 선수라는 주장도 있다
  • [22] 파워피쳐, 종변화구(실링의 스플리터와 베켓의 커브), 그리고 핵이빨(베켓이 한번 고인드립을 쳤던 적이 있었다)
  • [23] 팩트를 보자면, 커트의 아내 숀다는 실링이 디백스로 옮겨온 후인 2001년에 피부암을 선고받았으니 이 이야기는 근거가 없다. 사실, 피닉스야말로 굉장히 햇볕이 뜨거운 동네다보니 피부암 환자에게는 헬게이트일 것(...) 그녀의 피부암 투병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2001 월드시리즈를 관람하던 숀다의 가슴에서 피부암 수술 흉터가 사진에 찍힌 것이다. 다행히 5차례의 수술은 성공적이었다고. 이후 숀다는 피부암 관련 재단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 [24] 이는 많은 운동선수들의 가족들이 겪는 중대한 사안이다. 몇몇 선수들이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나이에도 가족과 함께하고 싶다고 조기 은퇴를 고려하는 것이 괜히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 [25] 어깨 회전근(Rotator Cuff)이 찢어진 부상으로, 대표적인 예가 브랜든 웹이다. 이 부상은 팔꿈치 인대가 끊어진 것과 달리 회복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투수들에겐 최악의 부상이다. 물론 2011년 현재 바톨로 콜론 등의 선수들이 새로운 치료법인 줄기세포 치료를 받아 재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까진 걸음마 단계일 뿐.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12 03:16:07
Processing time 0.2654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