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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럼비아호

(ɔ) NASA Johnson Space Center, Photo number: EC81-15104, also S81-30746 from

STS-1 미션을 마치고 귀환하는 사진

(ɔ) NASA from

모든 일의 화근이자 마지막 발사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던 그 발사

Contents

1. 미국의 우주왕복선
2. 마지막 임무
2.1. 승무원
2.2. 임무 수행
2.3. 사고
3. 사고 조사
4. 사고 원인
5. 사고 이후


1. 미국의 우주왕복선

아폴로 계획을 이어 소련소유즈에 대항하기 위해 6년만에 재개된 유인 우주왕복선 실험의 주인공으로, 제작 계약은 1972년 7월 20일에 했고 이후 제작되어 1981년 4월 12일에 처음으로 취항한 NASA 최초의 우주 왕복선. 이름은 미국 건국 초기에 탐험선으로 활약했던 범선 컬럼비아[1]에서 따왔다.

제식번호는 OV-102, 추력은 3,000톤이나 되며 전체 중량은 2,000톤이다. 승무원이 타는 오비터, 외부 연료탱크와 고체 연료 로켓부스터 등으로 구성되어있으며 전체길이는 56.1m. 오비터는 전장 37.2m 전체 폭 23.8m 제트여객기 DC-9와 거의 비슷하고 승무원 7명이 탑승하며 오비터 표면에는 내열용 타일이 장착되어 있다. 수행 임무는 28회, 마지막 까지 탑승했던 인원 수는 169명이었고 최초 비행임무는 유리 가가린의 인류 최초 우주 비행 20주년에 맞춰 발사한 STS-1 미션이었으며, 첫 비행에서 근지점 273,9km 원지점 274,1km인 위성궤도에 들어가는데 성공해 지구 주위를 36바퀴 돌고 지구로 돌아왔다. 첫 임무 뒤 22년간 26번의 임무를 무사히 마쳤으나 아래에서 소개할 마지막 임무였던 28번째 임무 STS-107을 수행하고 돌아오던중 공중분해되고 만다.

1998년 4월에는 인간 신경계에 미치는 무중력상태의 영향에 관해 실험할 목적으로 발사되어 16일간 우주에 머무르면서 불면증, 불안정 등에 대한 실험을 하기도 했으며, 귀뚜라미, 물고기, , 달팽이 등 2,000여마리의 동물이 함께 탑승한뒤 실험 대상이 되면서 '우주 아의 방주' 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 마지막 임무


2.1. 승무원

(ɔ) NASA from

좌측부터 데이비드 브라운, 릭 허즈번드, 로렐 클라크, 칼파나 촐라, 마이클 앤더슨, 윌리엄 맥쿨, 일란 라몬

릭 허즈번드(선장) - 1957년 7월 1일생, 텍사스 출신으로 4살때 부터 우주비행사를 꿈꿨으며, 1994년 우주비행사로 선발된뒤 1999년에 STS-96으로 첫 비행을 했던 미 공군 대령이자 기계공학 석사이다. 귀환 하는대로 아내 에블린과 결혼 21주년을 축하할 예정이었다.

칼파나 촐라(미션 스페셜리스트) - 1961년 7월 1일 인도에서 태어났으며 1994년 12월에 우주비행사 후보로서 선발된뒤 1995년 3월 존슨 우주 센터에서 훈련을 개시해 1년 후 미션 스페셜리스트로 선정되었다. 첫 비행은 STS-87의 로봇 팔 오퍼레이터.

윌리엄 맥쿨(파일럿) - 1961년 9월 23일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났다. 미 해군 중령이자 컴퓨터 과학 석사로, 1996년 우주비행사에 선발되었다. 이 미션이 첫 비행이었다.

데이비드 맥도웰 브라운(미션 스페셜리스트) - 1957년 4월 16일 버지니아주에서 태어났고, 미 공군에서 복무하다 1996년 4월에 우주비행사로 선발되어 같은 해 8월에 존슨 우주 센터에서 훈련을 개시한뒤 2년간 훈련을 수료하고 미션 스페셜리스트에 선정되었다. 미 공군 대령이기도 했다.

로렐 클라크(미션 스페셜리스트) - 1956년 4월 16일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태어났고, 1996년 4월 우주비행사 후보로서 선발된뒤 2년 후 존슨 우주 센터에서 훈련을 수료해 미션 스페셜리스트로 선정되었다. 미 공군 중령이기도 했다.

마이클 앤더슨(페이로드 커맨더) - 1959년 12월 25일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1994년 12월에 우주비행사 후보로 선발되었다. 존슨 우주 센터에서 훈련을 개시해 1년 후 미션 스페셜리스트로 선정된 미 공군 중령이다.

일란 라몬(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 - 1954년 6월 20일,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태어났으며 1981년에 F-16의 파일럿으로 이라크원자로를 폭격하는 바빌론 작전에 참가했던 이스라엘 공군의 베테랑 조종사였다. 1997년 NASA 페이로드 스페셜리스트로 선정되어 첫 이스라엘인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2.2. 임무 수행

2003년 1월 16일 오전 7시 5분, 연료 급유한지 1시간이 지나고 주황색 외부연료통에 200만리터의 액체수소와 산소를 채워넣었다. 선장은 NASA의 전통에 따라 탑승준비팀의 책임자와 플레잉 카드로 게임을 했고, 책임자가 지기 전까지는 대원들은 이동 차량에 타지 못했다. 독특한 전통이다. 7시 30분 카드 게임에서 이긴뒤 이동차량을 타고 우주왕복선으로 출발했고, 7시 53분에 선장을 비롯한 모든 승무원들이 탑승했다.

10시 38분, 카운트 다운을 시작하고 1분뒤 이륙했다. 고도 43km에서 고체 로켓 추진채를 분리해고, 10시 47분, 컴퓨터가 주 엔진의 가동을 중단하면서 우주에 무사히 진입했다. 한편 NASA에서는 발사순간 영상을 분석하던도중 발사직후 외부 연료통의 절연조각하나가 떨어져 나간뒤 컬럼비아의 날개를 강타한것을 확인했다. 평소에도 자주 떨어져 나간적이 있는지라 NASA에서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1월 17일 컬럼비아가 시속 28,000km로 궤도에 진입하고 우주비행사들은 계획을 진행했다. 79가지 실험[2]을 마친뒤 2월 1일 승무원들은 다시 우주복을 입고 지구로 진입을 시도했다.

2.3. 사고

8시 10분, 존슨 우주기지에서 대기권 진입을 승인하고 8시 15분, 선장이 재진입을 위한 위치로 이동했다. 반음각 40도를 이루고 대기로 진입했다. 8시 44분, 시속 28,000km로 하강했다. 마찰열로 날개 온도는 1,400도 가까이 오르고, 8시 54분에는 착륙이 순조로이 진행되는듯 했으나 8시 59분 왼쪽 바퀴 2개의 압력감지기를 시작으로 감지기들이 계속해서 고장나기 시작했다. 관제소에선 선장과 교신을 하려했으나 갑자기 끊기고 끝없이 시도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오전 9시 지상에서 컬럼비아호의 귀환을 구경하려던 사람들은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컬럼비아호가 지구로 진입하다가 공중분해되버린것이다. 관제소에서는 아직 이 상황을 몰랐고, 9시 3분 텍사스 동부 헴프힐의 동쪽 상공에서 굉음이 들렸다. 9시 12분이 되서야 관제소에서 우주왕복선이 사고를 당했단 사실을 알게됬다.

왕복선은 84,000개의 잔해가 되어 텍사스와 루이지애나에 쏟아졌고, 오후 1시, NASA가 컬럼비아호의 폭발을 공식으로 언급했고, 우주센터에는 조기가 게양되었으며,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이 긴급 애도 성명을 냈을 정도로 나라는 큰 충격에 빠졌다.[3] 한편 국민들의 열렬한 성원을 받았던 일란 라몬 대령의 사망에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다. 그러자 세르 아라파트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집트, 요르단 등 이웃 중동 국가들도 위로를 하던 마당에 유독 이라크가 이스라엘의 침략자가 천벌을 받았다[4]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쳐대서 크게 까였다. 뭐, 그렇게 오래 외쳐대지는 못했다만(...)

3. 사고 조사

3시간 만에 NASA 부국장은 퇴역한 해군 대장 해롤드 게먼에게 수사 지휘를 부탁했고, 백악관의 승인을 받아내 12명의 조사관을 모은뒤 조사를 했다.

바퀴칸에서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일어난걸 확인했는데 이는 표면에 틈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이게 진짜인지 알기위해서는 블랙박스를 회수해야 했는데 문제는 컬럼비아호의 블랙박스는 추락과 화재에 견디도록 만들어지지 않았고, 60km 상공에서 떨어진지라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찾기가 힘들었고, 찾는다 하더라도 멀쩡할 가능성이 적었다. 결국 잔해 회수 작전을 시작해 미국 전역에서 25,000명을 뽑은뒤 텍사스와 루이지애나를 수색했으나 6주가 지나도록 성과는 없었다. 6주간 발견한 잔해들의 무게와 크기등을 계산해 예상 낙하지점[5]을 알아낸뒤 그곳에 수색대를 파견했고, 인디언 출신 소방관 천시 버드테일이 기록장치를 찾아냈다. 다행히 멀쩡한 상태였다.

기록장치 분석결과 온도가 상승하기 시작한곳은 바퀴칸이 아니라 왼쪽 날개의 앞쪽이었다. 구멍은 재 진입전부터 있었고, 비행 초기단계에서 온도상승의 초기 징후가 보인것으로 드러났다. 다시말해 대기권 진입 전에 문제가 발생 했단 것이었다. 발사 후 82초에 타일이 떨어져나가 날개에 부딪힌것을 떠올린 조사관들은 2개월에 걸쳐서 영상을 좀더 선명하고 자세하게 복원한뒤 분석했다. 떨어진 타일의 무게는 약 770g으로 크기는 작은 서류가방정도였으나 시속 800km로 충돌해 충격량이 엄청났다.

이후 버드 스트라이크 실험 장비를 개조해 서류가방 크기의 절연채를 RCC복합체에 발사하는 실험을 계획했으나 문제는 절연판 하나의 가격이 6억 이상이나 되어서 NASA 에서 실험용으로 주기를 꺼려했다. 다시 조사를 나서고 고장난 온도기의 순서를 파악해 어디부터 고장난지 알아내고 고장난 절연판들만 골라서 얻어낸뒤 실험을 시작했다. 절연채를 발사하는 순간 8번 절연판에 구멍이 생겼다. 이로써 사고의 원인이 밝혀졌다.

4. 사고 원인

이륙당시 충격으로 절연채가 떨어져나가 왼쪽날개의 8번 절연판을 강타하면서 구멍이 생겼었다. 당시에는 이렇게 떨어져 나가는게 흔한일이라 그리 신경쓰지 않았으나 생각보다 문제는 심각한 상태였다. 지구 대기권으로 재진입을 할때 충돌로 생긴 25cm의 구멍으로 1,400도의 열기가 들어오면서 왼쪽 날개에 구멍을 뚫어 공기에 저항이 발생했고, 공기와의 마찰이 계속해서 생기면서 온도는 4,400도까지 올라갔다. 온도 감지기는 온도를 버티다 못해 다 타버려서 작동을 멈추고 겉면이 떨어져 나가 내부 구조물이 녹아내리고 모든 장비가 고장나버리며 기체가 불안정해져 공중에서 분해된것이다.

5. 사고 이후

NASA는 2003년 8월 26일 사고 보고서를 발표했고, 절연채의 약한부분을 제거하고 궤도에 오를시 반드시 위성 사진을 찍어서 기체에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도록 했다.

알링턴 국립묘지엔 추모비가 설립되었고, 화성 탐사선 스피릿에 추모패가 달렸다. 로버가 탐사한 화성의 지형 중 7개의 봉우리가 나란히 솟아있는 언덕에 이들의 이름이 각각 붙여졌고, 소행성이 이들의 이름을 따와서 명명되기도 했다.

아폴로 1호와 챌린저호 사고도 1월 말에 있었던지라 이후 NASA에서는 저주받은 시기 1월 말~2월 초 기간을 추모 기간으로 정하고 고인들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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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72년 보스톤을 떠나 컬럼비아 강을 탐험했다. 또한 아폴로 11호 사령선의 이름이기도 하다.
  • [2] 무중력이 인체세포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는 실험이 포함되었다. 암이나 골다공증 치료에 쓰일 예정이었다.
  • [3] 이 와중에 반미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오만방자한 미국이 천벌을 받은 것이다!" 라는 도를 넘은 고인드립이 나오기도 했다. 옛날 챌린저호 사고 때와 달리 이 시기는 미국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드립을 쳐대며 세계로부터 욕 먹던 시기라...
  • [4] 일란 라몬은 1981년 오시라크 원전 폭격 당시 F-16 조종사 8인 중 최연소였다.
  • [5] 굉음이 들렸던 헴프힐 부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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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2 01:4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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