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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니 로저스

last modified: 2014-08-17 23:50:35 by Contributors

Kenny Rogers. 케니 (Kenny)는 보통 "케네스 (Kenneth)"라는 이름을 쓰는 사람들의 애칭이다.

재미있는 것은 아래 항목에 있는 사람 모두 텍사스와 연관이 있는 사람. 1은 텍사스 출신이고, 2는 그 텍사스에 있는 메이저리그 의 에이스 투수였다. (게다가 2의 별명은 1이 쓴 노래에서 따왔다!)

Contents

1. 미국컨트리 뮤직 가수
1.1.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사업
2. 미국의 야구 선수
2.1. 소개
2.2. Dirty Hand
2.3. 은퇴 이후


1. 미국컨트리 뮤직 가수


1938년 태어난 미국의 컨트리 뮤직 가수. 싱어송라이터이며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배우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70개의 히트 싱글을 냈으며 총 420주 동안 빌보드 싱글차트 1위에 이 곡들을 올렸다.[1] 그의 히트앨범인 'The Gambler','Kenny'는 온라인 통신회사인 어바웃 컴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컨트리 뮤직 앨범 200선'에 올랐다. 또한 그는 70년대 받은 2번의 그래미 상을 포함해 지금까지 수많은 미국 음악차트의 상을 받아왔으며 2012년인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중이다.

또한 유명 TV 시리즈인 The Gambler에 출연하기도 하였다. 이 시리즈가 상당한 인기를 끌었으며, 총 5개 시즌이 제작되어 방영되었다.[2] 이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케니 로저스가 배우인 줄 아는 경우가 있었을 정도.

1.1. 패밀리 레스토랑 체인사업



1991년 KFC의 과거 오너였던 존 브라운 Jr.와 위의 케니 로저스가 함께 자기 이름을 딴 치킨 브랜드를 런칭했다.

1998년 본사는 파산하고 그 권리를 말레이시아의 기업이 사가서 아시아에서 여전히 영업중이다. 주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영업중이며,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에서는 쉽게 볼 수 있는 치킨 레스토랑 중 하나.

물론 가수 케니 로저스와의 관계는 끊어진지 오래이다. 처음부터 경영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이며, 케니 로저스 본인부터가 사업 막바지에 이른 1997년에 TV쇼에 출연하여 자기는 "치킨은 별로고 햄버거가 좋다(...)"라는 발언을 하여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럼 햄버거를 팔지 닭집은 왜해[3]

한국에서도 이 브랜드가 잠깐 들어왔던 적[4][5]이 있었다. 강동구의 짜투리 땅을 사서 들어온 뒤 공세적으로 지점을 늘려오다 IMF크리를 맞고 철수했다. 일부 지점이 남아있다고 하는데 아시는 분은 추가바람.

여기서 파는 컵케잌의 평이 좋았다고 한다. 파파이스[6]의 비스킷과 포지션이 비슷하다.

2.1. 소개

이름 케네스 스캇 로저스 (Kenneth Scott Rogers)
생년월일 1964년 11월 10일
국적 미국
출신지 지아 주, 사바나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1년 드래프트 39라운드
소속팀 텍사스 레인저스 (1989-1995, 2000-2002, 2004-2005)
뉴욕 양키스 (1996-1997)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98-1999)
뉴욕 메츠 (1999)
미네소타 트윈스 (2003)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2006-2008)

주로 텍사스 레인저스에서 활약한 전직 메이저리그 투수. 별명은 1의 노래 "Gambler"에서 따 온 "승부사" (The Gambler). 사실 동명이인이 부른 노래이기도 하지만, 로저스가 도박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별명도 타짜구나

1981년 드래프트에서 마이너리그와 계약하면서 겨우 1,000달러밖에 받지 못했고, 그 후로도 몇년 간 외야수로 썩다가 뛰었다가, 부진하자 강견만 믿고 투수로 전향하기에 이른다. 1989년부터는 좌완 계투로 활약했으며, 1993년부터 선발 투수로 나오기 시작하는데 1994년, "엘 프레지덴테대통령가카" 데니스 마르티네즈 (몬트리올 엑스포스) 이후 3년 만에 퍼펙트 게임을 기록했다. 다만 텍사스 레인저스 본 항목에서는 존재감 없어서 묻혔다고 기술되어 있다. 안습.[7]

1996년 뉴욕 양키스로 이적했는데 그닥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음에도 (12승 4.68. 게다가 포스트 시즌에서는 삽질.) 다른 선수들의 활약으로 우승 반지를 공짜로 얻어갔챙겼다. 그 후 1998년 오클랜드에서는 나름의 커리어하이 (16승 3.17)를 찍고, 1999년 삽질로 패망한 뒤 텍사스와 미네소타 등을 전전했다.[8]

골드글러브를 5회나 수상할 정도로 마운드에서의 수비가 좋기로 유명했다. 투수들은 펑고 훈련을 거의 안하는데, 케니 로저스는 자청해서 수 백 번의 펑고를 했다고. 그래선지 특히나 투수강습 타구 처리에 일가견이 있었다.

2005년 텍사스 레인저스시절에는 노쇠화인지 좋지 않은 경기를 하다가 6월 23일 선발등판뒤 조기 강판당했다가 홧김에 물통을 때려서 왼손 골절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고도 분이 안풀렸는지 다음주인 30일에는 공중파 TV 카메라맨에게 폭행을 가하여 20경기 출장정지에 5만달러 벌금의 중징계를 받게된다.

결국 40세의 나이에 텍사스 레인저스와 재계약에 실패하고 디트로이트 타이거즈로 자리를 옮기는데...

2.2. Dirty Hand

이 사람이 전국적으로 하이라이트를 얻은건 다름아닌 2006년 월드시리즈였다.


손바닥부분을 자세히 보길 바람

2006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이반 로드리게스,커티스 그랜더슨, 매글리오 오도녜즈 등 타선이 고르게 활약하고 신예 저스틴 벌랜더와 41세의 노장 투혼 케니 로저스가 축이 된 선발진의 고른 활약으로 95승을 거두고 아메리칸리그 중부지구 우승을 거둔뒤 예상을 뛰어넘고 당시 최강팀으로 꼽히던 뉴욕 양키스를 디비전시리즈에서 격침시키고,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의 ALCS에선 4차전 매글리오 오도네즈의 극적인 끝내기 홈런으로 승리하고 올라왔다.

이때 케니 로저스는 41세의 노장임에도 정규시즌 17승을 거뒀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도 시리즈 0-1로 지고 있는 가운데 선발 등판해 8이닝 2피안타 무실점으로 카디널스 타선을 꽁꽁 묶고 승리를 거둬 월드시리즈 역사상 최고령 승리투수가 되는 활약을 보여줬지만 경기 끝나고 어떤 사진이 공개되면서 문제가 되었다. 위의 사진이 바로 그것.

저 손에 묻은 그것이 파인 타르냐, 송진이냐 라는 논쟁이 치열했지만 케니 로저스는 그냥 마운드의 흙이 묻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마운드의 흙이 저렇게 끈끈하게 손에 붙어있기 어렵기 때문에 로저스의 부정투구 의혹은 계속 이어졌고[9], 이 논란 이후 타이거즈는 거짓말 같이 3연패로 무너지며 정규시즌 83승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가 역대 정규시즌 최소승으로 월드시리즈 우승하는데 희생양이 되고만다. 그리고 그 흙묻은 손 파문 이후 케니 로저스는 다시는 2006년의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고 2008년 메이저리그를 은퇴하게 된다.

2.3. 은퇴 이후

통산성적을 보면 알 수 있듯, 평균자책점이 3점대 중후반에서 심하면 6점대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10] 등, 200승을 거두기는 했지만 믿음직한 에이스로 여기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거기다 장수한 좌완 선발투수라는 이미지로 밀고가자니 오래 뛴 것은 제이미 모이어에게, 통산 성적은 톰 글래빈등의 투수에 미치지 못하는 콩라인 신세라 2014년 투표 때부터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후보로 올라오긴 하겠지만, 광탈이 예상된다. 어쨌든 퍼펙트 게임 때문인지 레인저스의 자체 명예의 전당에는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2014년도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꼴랑 1표(0.2%)를 얻으며 일찌감찌 탈락했다. 안습

은퇴 이후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2010년 시즌 스프링 캠프에서 저스틴 벌랜더 등의 인스트럭터를 맡았으며, 2011년에는 ALDS에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시구를 했다. 아니, 기아 타이거즈 말고. 타이거즈의 상대는 아이러니하게도 로저스에게 무임승차권 우승 반지를 선물해줬던 뉴욕 양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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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국내에서는 미국 음악이라 하면 팝이나 힙합음악이 잘 알려져 있으나, 컨트리 역시도 무시 못하는 마켓쉐어를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의 트로트를 생각하면 될 듯.
  • [2] 정확히 말하자면 5개의 TV 영화이지 시즌별로 방영되는 시리즈가 아니다. 앞에서도 서술된 로저스의 최고 히트곡 The Gambler의 내용을 기초로 한 서부극.
  • [3] 사실 닭이 메인이긴 했지만 햄버거류도 팔았다.
  • [4] 피자헛을 한국에서 열었던 사업가 성신제 씨가 1994년 열었다가 호되게 망했다. 당시 케니 로저스가 직접 나와서 TV광고까지 했음에도 사실 국내에서 케니 로저스는 듣보잡이었으니...
  • [5] 전 작성자의 언급과는 달리 케니 로저스는 당시에도 국내에서 전혀 듣보잡이 아니었다 (전성기는 지났을지언정). 애초에 국내 정서와 거리가 있는 정통 컨트리가 아닌 크로스오버 성향의 노래들을 선보였기 때문에 해외 팝에 대한 수요가 본격적으로 태동하기 시작한 80년대 한국에서도 상당한 인지도가 있었으며 내한 공연도 가진 바 있다
  • [6] 여기는 케니 로저스 치킨과 비슷한 시기에 들어와 지금도 국내에서 명맥을 잇고 있다.
  • [7] 구글이나 야후에서 "케니 로저스" 또는 "Kenny Rogers"라고 검색하면 1.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다.
  • [8] 2000년대 초반 로저스는 꾸준히 두자릿수 승수를 찍긴 했지만, 평균자책점이 에이스로 여기기엔 괴랄하게 높아서... 자세한 건 링크된 통산성적을 참조.
  • [9] 사실 흙 발라 던지는 것도 원칙상 부정투구다. 경기중 땅에 튀어서 흙이 묻었다고 우길 수도 있지만 저렇게 손에 묻어있으면 그게 진짜 흙이어도 발랐다는 의심을 살수 밖에.
  • [10] 그것도 삽질한 시즌에 평균자책점이 높았던 게 아니라, 20승 가까이를 거두고도 5점대 바로 아래를 밑도는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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