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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그리피 주니어

last modified: 2015-03-05 02:35:00 by Contributors


이것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타격자세


왼쪽이 켄 그리피 주니어, 오른쪽은 잘 아시다시피 스즈키 이치로

이름 George Kenneth Griffey, Jr.
생년월일 1969년 11월 21일
국적 미국
출신지 펜실베이니아주 도노라
포지션 중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7년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시애틀 매리너스 지명
소속팀 시애틀 매리너스(1989~1999)
신시내티 레즈(2000~2008)
시카고 화이트삭스(2008)
시애틀 매리너스(2009~2010)

1997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MVP
후안 곤잘레스
(텍사스 레인저스)
켄 그리피 주니어
(시애틀 매리너스)
후안 곤잘레스
(텍사스 레인저스)

1994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홈런 더비 우승자
후안 곤잘레스
(텍사스 레인저스)
켄 그리피 주니어
(시애틀 매리너스)
프랭크 토마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1998, 1999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홈런 더비 우승자
노 마르티네스
(뉴욕 양키스)
켄 그리피 주니어
(시애틀 매리너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1992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MVP
칼 립켄 주니어
(볼티모어 오리올스)
켄 그리피 주니어
(시애틀 매리너스)
커비 퍼켓
(미네소타 트윈스)

Contents

1. 개요
2. 커리어
3. 이모저모

1. 개요


90년대 MLB의 아이콘이자 최고의 슈퍼스타, 약쟁이들의 시대를 제패한 진정한 홈런왕.
통산 타율 .284, 630홈런, 2781안타를 기록한 메이저리그를 대표했던 강타자로, 켄 그리피 시니어의 아들이다. 별명은 The Kid 혹은 Junior[1]

2. 커리어

1987년 드래프트에서 전체 1지명을 받고 마이너리그에서 착실히 성장한 뒤 1989년 메이저리그로 승격. 신시내티 레즈에서 방출된 그의 아버지 켄 그리피 시니어가 1990년 8월 29일에 매리너스와 계약하여 같은 팀 동료가 되더니 아버지 계약 후 이틀 뒤에 아버지-아들의 백투백 안타가 나와서 후속 타자의 적시타로 같이 득점을 하는 진귀한 기록을 세운다. 그리고 보름 뒤인 9월 14일에 급기야 아버지-아들이 백투백 홈런을 기록했는데, 이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전무후무한 '한 경기 부자(父子) 홈런'으로 지금까지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타격폼으로 유명하며, 한시즌에 50개 이상의 홈런을 칠 수 있을 정도로 장타력도 좋았던 강타자였다. 그리피가 기캐릭 시절이었던 90년대 중후반 행크 애런이 자신의 통산 최다홈런 755홈런을 넘길 선수로 유일하게 지목했다. 뿐만 아니라, 2년차 시즌인 1990년부터 1999년까지 아메리칸리그의 골드글러브를 10시즌 연속으로 수상할 정도로 몸을 사리지 않을 정도로 다이나믹한 수비능력으로도 이름이 높았다. 준족들이 주로 보는 중견수 자리임에도 나름 넓은 수비범위를 자랑했다. 동시대에 내셔널 리그에서 활약하던 배리 본즈에 비견되던 최고수준의 외야수였다. 홈런성 타구를 펜스 밟고 올라가서 걷어내는 수비를 종종 보여줘 '펜스 워커'라는 별명도 있었다. 당시 아메리칸 리그 골드글러브의 경쟁자는 양키스의 버니 윌리엄스였는데 같은 중견수이지만 약간은 다른 수비 스타일로 비교가 되곤 했다. 버니 윌리엄스는 그리피처럼 넘어갈 것을 막아내고 그런 비상식적인 호수비를 보여주진 못했지만 흠잡을 데가 없는, 튀진 않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안정적인 수비력을 보여줬다. 그 덕에 리그의 수많은 스타들을 제치고 1994년 그의 이름을 딴 켄 그리피 주니어 프리젠츠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게임이 슈퍼패미컴으로 발매되었다.[2]

1999 시즌이 끝나고 아버지 켄 그리피 시니어가 뛰었던 신시내티 레즈에 트레이드된다. 외야수 마이크 카메론을 포함한 4:1 트레이드로 아버지가 뛰었던 팀[3]으로 이적한만큼 구단 프런트에서 좋은 대우를 해 줄 것으로 예상됐지만 처음부터 꼬이고 말았다. 그리피는 시애틀 시절 24번을 달았고 신시내티에 와서도 24번을 계속 쓰고 싶어했지만 트레이드가 성사되자마자 빅레드머신의 일원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토니 페레즈의 24번을 구단 영구결번으로 지정해버리면서 결국 아버지가 썼던 30번을 쓰게 됐다. 또한 신시내티가 스몰마켓 팀이다 보니 적은 금액에 계약하게 되는데 당시 보스턴 레드삭스의 모 본애너하임 에인절스에 FA로 이적했을 때 받았던 계약금액보다 적은 금액으로 연장계약을 했다.[4]

2000년에 통산 400홈런을 달성. 그 경기에서도 또 공교롭게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 달성했는데 아버지 시니어는 상대팀인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타격코치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급격하게 부상으로 주저 앉았고[5] 2004년 다시 부활하기 전까지 자신의 모든 커리어를 깎아먹었다. 그리피 개인으로서는 흑역사. 2004년 6월 21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원정경기에서 통산 500홈런을 기록했다.[6] 부상이 아니었다면 최연소 통산 500홈런을 기록했겠지만 미 팍스의 말년이 그랬던 것처럼 개인적인 흑역사가 생각 외로 길어서 이 당시에는 네 번째로 어린 나이로 통산 500홈런을 기록했다.

2006년 WBC 미국 대표팀 일원으로 발탁. 2라운드 대한민국 전 3회초에 솔로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7] 이후 시즌에서 자신의 번호 30번에서 3번으로 바꿔 달았다. 3번으로 바꾼 이유는 그의 아이들을 기리기 위해. 2008년 6월 9일 對 플로리다 말린스 원정경기에서 통산 600홈런을 기록했다. 그리고 얼마 후 2008년 시즌 트레이드 마감시한 전인 7월 31일에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전격 트레이드 된다. 이후 2009년 다시 친정팀인 시애틀 매리너스로 이적하여 지명타자로 뛰게 된다.

밝고 성실한 성격으로 클럽하우스의 분위기메이커 역할도 했다. 2009시즌 시작 전 시애틀 매리너스가 그리피를 영입한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 다소 겉돌던 스즈키 이치로와 다른 선수들의 사이를 훌륭히 중재했고,[8] 시한폭탄과도 같았던 악동 튼 브래들리를 과감한 영입했던 이유도 그리피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매리너스의 팀 분위기를 좋게 만들었다고는 하지만 나이를 이기지 못했기에 성적은 좋지 못했다.

2010년 6월에 은퇴선언을 했다.[9] 최종 통산기록은 타율.284 630홈런 2,781안타 1,836타점. 약물 복용[10]이 밝혀진다거나 하는 변수가 없는 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행이 매우 유력하다. 이미 메이저리그 팬들에게는 전설의 레전드로 등극.

2013년 8월 10일 시애틀 매리너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이후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다면 공식적으로 영구결번도 가능할 듯.

3. 이모저모

  •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미국-캐나다 경기가 열리던 때에 비행선을 타고 애리조나피닉스의 전경을 방송하는 자리에 동석했는데, 이때 JTBC에서 방송을 하던 박노준 해설위원이 Ken Griffey Jr.라는 자막이 뜬걸 보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오랫동안 뛰며 수위타자도 한 선수"라 소개하는 병크를 저지르기도 했다. 다행히 사태가 커지기 전인 다음 이닝에 토니 그윈과 헷갈렸다고 인정하며 어물쩡 넘어갈 수 있었지만 사기꾼 해설로 욕을 왕창 먹고 있던 중이라 저 정도는 그러려니 한다는 반응이 메이저리그 팬들 사이에서 나왔다.

  • 일단 대외적으로는 약물과 매우 무관한 선수로 알려져 있지만, 2007년경의 한 기사에서 그도 약물(경기력 향상 물질은 아니지만 각성제의 일종인 암페타민)을 '하긴 했을거다'라는 식으로 간접적으로 알린 기사가 뜬 적이 있다. #

  • 팀 내 분위기 메이커를 도맡아 할 정도로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지만 학창 시절 때 큰 감정 기복과 우울증을 겪으면서 자살 시도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리피가 17살 때 자살 충동을 느꼈는데 그 충동으로 아스피린을 277알을 먹고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준수한 야구 선수였던 지라 뛰어난 재능을 물려받을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주위에 대한 압박으로 부담감이 컸다고 하고 이 때문에 자살 시도까지 했다고. 하지만 그런 그리피를 다 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는데 그리피가 심리적으로 흔들릴 때마다 어머니가 다 잡아주었고 이것이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것보다 훨씬 큰 성공가도의 요인으로 보고 있다.

  • 어찌보면 재키 로빈슨 데이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리피는 2007년에 '재키 로빈슨의 데뷔일자인 4월 15일에 42번 저지를 입는 것을 허용해달라'는 건의를 메이저리그 사무국 측에 했고 사무국은 이를 받아들여 처음에는 4월 15일에 팀의 흑인 선수 한 명에게만 42번 저지를 입히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이후에는 모든 선수와 코칭 스태프, 심판들까지 42번을 달고 경기에 임하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다만 기원은 재키 로빈슨이 '다음 경기에도 42번이 나오면, 42번을 총으로 쏴버린다.'는 협박을 받자, 진 허마스키가 '우리가 모두 42번을 입으면 누군지 모르겠지?'라고 말한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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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Junior는 원래 칼 립켄 주니어를 지칭하는 별명이었지만 켄 그리피 주니어의 사기캐릭스런 활약으로 자연스레 옮겨지게 됐다. 물론 연속경기기록을 경신하던 시절 립켄 별명이 '철인(Iron Man)'으로 바뀌어 칭송받게 되니...
  • [2] Software Creations이 제작하고 닌텐도가 발매했다. 단 MLB 선수노조의 네이밍 사용권을 따낸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게임 제목외에 실제 MLB선수들의 실명은 없다. 대부분 가명처리.
  • [3] 신시내티는 그리피의 아버지가 뛰었던 팀이라 자신에게도 고향같은 곳이다. 또한 1999년 비행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그의 친구이자 PGA 스타 골퍼였던 인 스튜어트의 가족들이 살고있는 곳이기도 했다.
  • [4] 한 동안 FA선수들이 생각보다 다소 모자른 금액에 계약하곤 했다.
  • [5] 이때 고질적인 부상부위가 햄스트링인데, 이것에 대해서는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부터 제대로 워밍업을 하지 않고 경기에 나서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 [6] 참고로 이 경기의 선발투수는 봉중근이었다. 봉중근은 이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첫 선발승을 거뒀다.
  • [7] 모두다 알다시피 그 경기는 최희섭의 쓰리런이 터지면서 우리나라가 7-3으로 이겼다.
  • [8] 사실, 이치로는 미국 진출 이전부터 켄 그리피 주니어 빠돌이었다.
  • [9] 시즌 종료 후 정상적으로 은퇴하기로 되어있었지만 경기 중 덕아웃에서 졸았다는 구설수에 올라 생각보다 빨리 은퇴를 선언했다.(...)
  • [10] 98년에서 99년 사이 시애틀에서 뛰었던 무명의 선수가 시애틀 클럽하우스에서 단 한 명을 제외한 팀 전원이 약물을 돌렸다는 폭로를 하게 된다. 이는 그리피가 약물과 연관되었다는 유일한 주장으로 이 당시 시애틀에는 랜디 존슨, 에드가 마르티네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제이미 모이어, 라울 이바녜즈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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