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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무로 테츠야

last modified: 2015-03-13 17:25:16 by Contributors

小室哲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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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약력
2.1. 학생 시절
2.2. TM NETWORK∼TMN 시대
2.3. 코무로 붐
2.4. 새로운 시도
2.5. 몰락
2.6. 활동 재개
3. 음악성
4. 기타
5. 대표작

1958년 11월 27일 생. 음악 프로듀서 겸 작사, 작곡, 편집자, 키보디스트, DJ 등 수많은 이력을 가진 음악가.


1. 개요

일본 대중음악계의 거물이자 90년대의 J-POP을 거의 구축하다시피 한 인물이다. 애칭은 텟쨩, 테츠, 코무로, TK 등. 통칭하여 TK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 레이블을 세우면서 여러가지 음악 장르를 두루 섭렵하고 서브컬쳐계와 일본음악계 자체의 트렌드를 주도했던 전설적인 프로듀서이다.

잘나가던 시절에는 페라리매니아로, 색만 다른 페라리 여러대를 소유하고 있었을 정도로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였고 수많은 여자 연예인들과 염문설을 뿌리기도 했다. 애니메이션과 SF에도 조예가 깊어 최근엔 케로로의 팬이라고 밝히기도 하였다.

2. 약력

2.1. 학생 시절

학생 시절부터 음악에 커다란 재능을 가졌으며 집에서 가지고있던 기타 바이올린을 맘대로 팔아서 당시 16만엔 이상의 고가였던 신시사이저를 구입했다는 것으로 보면, 집안도 웬만큼 음악에 뜻을 둔 부유한 가정이었던 걸로 예상된다. 1974년 16세의 나이에 아마추어 밴드에서 활동을 시작으로 다음 해 프로 뮤지션으로 데뷔하여 하쿠류[1], 하라다 신지 등의 백밴드를 경험하였다.

와세다 대학 사회 과학부에 5년정도 재적(중퇴)후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

2.2. TM NETWORK∼TMN 시대


아이돌 붐이 성행한 80년대에는 오카다 유키코, 미야자와 리에, 나카모리 아키나, 마츠다 세이코 등 다수의 아이돌에게 곡을 제공했으며 1986년 타나베 미사토의 'My Revolution'으로 일본 레코드 대상 작곡상을 수상하며 작곡가로써 크게 활약하였다.

여러 밴드를 결성하고 해산하다가, 우츠노미야 타카시, 키네 나오토와 함께 1984년 TM NETWORK를 결성. 초창기에는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의 아류라는 평을 받기도 했지만 점차 락과 전자음악을 결합한 자신들만의 스타일을 구축하였다. 1987년에는 시티헌터의 주제가 'Get Wild'을 히트시키며 인기 그룹으로 발돋움한다. 이후로도 'Self Control', 'SEVEN DAYS WAR', 'Still Love Her' 등 명곡을 쏟아내면서 TMN은 존재감을 굳건히 한다. 물론 TMN의 성공에는 우츠노미야와 키네의 공헌도 상당히 컸고, 당시에는 코무로만이 주목을 받는 모양새는 아니었다.

TM NETWORK 최후 라이브인 'Last Groove'에 현 B'z의 기타리스트 마츠모토 타카히로를 출연시킨 적도 있다.[2]

1988년 기동전사 건담 역습의 샤아의 엔딩 곡인 BEYOND THE TIME ~뫼비우스의 우주를 넘어서(メビウスの宇宙を越えて)~는 당시 애니메이션 관련 음반 순위를 석권하였으며, 명곡으로 현재까지 회자되고 있다.

89년 자신이 리드 보컬을 맡은 솔로작 'RUNNING TO HORIZON','GRAVITY OF LOVE'가 오리콘 1위를 기록한 것을 시작으로 점차 개인 활동을 늘려나간다.

2.3. 코무로 붐

1994년 'TM NETWORK'를 해산. 90년대 초부터 trf, globe, 카하라 토모미, 아무로 나미에, 스즈키 아미 등의 프로듀스 및 작곡을 맡으며 수많은 밀리언 셀러 및 히트를 시켜 '코무로 사운드'라는 단어를 탄생시켰고 90년대 전반에 '코무로 붐'을 일으켜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다는 사회 현상을 만들어내었다. 코무로가 프로듀스하는 아티스트들은 '코무로(속칭 TK) 패밀리'라고 불리기도 했다.

95년에는 4년 연속 프로듀서한 곡이 레코드 대상을 수상하고 96년 오리콘 싱글 차트에 프로듀스 곡이 톱5을 독점, 96년에는 globe의 앨범이 당시 오리콘 차트 기록을 갱신하는 400만장 이상을 기록.아무로 나미에의 곡도 300만장을 뛰어넘는 등 코무로 패밀리는 폭발적으로 리즈시절을 맞게되었다. 이로 하여 97년엔 세금만 11억 7천만엔을 내고 고액 납세자 전국 4위에 일렀으며 코무로 테츠야가 프로듀스한 음반의 총 판매량은 1억 7천만장에 이른다.

이 시기의 코무로는 스스로 "당시엔 주로 80점~90점의 곡을 만들어야한다는 생각으로 계속 쫒기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빨리 이것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싶은 것과 일본 시장이 차이가 났었기 때문에 이 시기가 끝나서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음악을 만들고싶었다"고 자신의 시대를 하나의 붐으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90년대 말부터 코무로 패밀리의 가수들이 활동을 축소함에 따라서 2000년대로 넘어가는 시점에서는 코무로의 프로듀스 곡 수가 줄어들었고, 전반적으로 활동이 잦아들었다. 이 시기 연인 관계에 있던 카하라 토모미와도 이별하고, 코무로가 프로듀스한 가수 중 마지막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던 스즈키 아미마저 소속사 문제로 활동을 중단하였다. 또한 우타다 히카루, MISIA, SMAP, 시이나 링고, 하마사키 아유미 등이 떠오르면서 복합적 요인에 따라 코무로 붐은 종막을 맞게 되었다.

2.4. 새로운 시도

코무로 붐을 이뤄낸 코무로는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 팝 아티스트에서 일렉트로니카로 노선을 전환하여 트랜스, 프로그레시브 락 등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그러나 이 시기 그가 프로듀스한 곡은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거의 자신의 컬러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을 1년에만 서너곡 이상 내는 혹사에 가까운 90년대의 행보 이후 TK의 프로듀싱은 인간이 무슨 컴퓨터도 아니고 한계가 있겠지...수준으로 코무로 테츠야 자신의 팬들에게 옹호를 받지만 퀄리티가 따라주지 않아 대중적으로 점점 혹평 내지 외면을 받게 된다. globeLights 2연작이 4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는 등 성과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코무로 테츠야는 점점 대중과 멀어지고 있었다.

2000년 초반에는 globe에 X-JAPAN의 YOSHIKI가 가입. 각종 음악 활동에 몰두하였으나 2003년에는 신종 인플루엔자의 유행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예정 중이었던 자선 라이브가 중지, YOSHIKI가입 이후 처음으로 가지는 라이브가 중지되는 등 불행이 계속되었다.

잘생긴 외모때문인지 여성 편력도 심했던 코무로는 2001년 아티스트 ASAMI와 결혼하였으나 결혼 10개월 만에 이혼. 그리고 몇 개월 뒤 globe의 멤버였던 KEIKO와 결혼하여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ASAMI와 이혼 뒤 합의한 위자료 7억엔을 한번에 내지는 못하여 분납해서 지불하기로 했으나 그 돈도 자금 악화로 2004년까지 밀려있었다고 한다. 이 시기부터 자금난이 시작된 그는 소유하고 있던 고급 승용차와 크루저, 별장 등을 팔게되었고 약 70억원의 손실을 낸 Rojam Entertainment도 철수하기에 이르렀다.

2.5. 몰락

그러다 2008년 11월에 저작권을 이용한 사기 혐의로 체포된다. 자신의 명의로 JASRAC에 등록되어 있는 곡들의 저작권을 10억엔에 양도하기로 하여 피해자로부터 5억엔을 선금으로 받았는데 이 곡들의 실제 저작권은 이미 양도되어 있어[3] 코무로가 저작권을 양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 사건에 일본은 뉴스의 톱으로 속속히 방송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기사가 날 만큼 큰 사건이 되었다. 2009년 5월 11일, 오사카 재판부로부터 징역 5년 집행유예 5년의 판결을 선고받았다. 꽤나 부담스러운 액수의 추징금이 남아 있었으나 현 AVEX의 사장인 마츠우라 마사토(MAX 마츠우라)가 꽤나 많은 액수를 지원해줬기에[4] 큰 문제 없이 다시 활동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코무로의 신뢰와 명성은 곤두박질쳤고 80~90년대 코무로의 음악을 듣고 자라오던 일본인들에게는 커다란 충격을 주게 되었다. 체포 소식이 들린 후 그의 모든 곡을 TV와 라디오에서 금지당하게 되었고 CD판매까지 금지당해 그야말로 개발살이 났으며 매스컴과 음악계에서도 코무로를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사건이 일어나고 바로 모 잡지와의 인터뷰에서는 아내인 KEIKO와 함께 쓸쓸하게 은둔생활을 하고있는 코무로의 안습한 모습이 비춰서 과거의 화려했던 명성도 빚 앞에선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과거 돈을 펑펑 쓰던 화려한 생활으로 유명했던 그의 통장엔 돈이 단 몇만원밖에 들어있지 않았다고 하여 사람들에게 더더욱 충격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2.6. 활동 재개


그러나 지속적인 팬들의 염원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활동을 재개할 수 있었다. 2009년 'a-nation09'에 globe의 멤버로써 출연, 팬들에게 사죄와 함께 감사하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내비치며 활동을 재개하게 되었다.

2010년 5월부터 프로듀서를 맡게 된 혼성그룹 AAA의 'Dream After Dream ~꿈으로부터 깨어난 꿈~/만나고 싶은 이유'를 시작으로 작곡가로서의 활동도 재개하였다. 복귀 후에는 작곡만 하고 있으며 편곡은 거의 다른 사람이 맡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망해가다가 일본 진출한 초신성의 작곡도 맡고 있어서 트위터에 한국어나 한류 연예인에 관한 얘기를 자주 언급하기도 한다.

2011년에도 하마사키 아유미, AAA, 키타노 키이, DiVA 등 다양한 가수들에게 곡을 공급하고, 10여년 만의 솔로 앨범인 'Digitalian is eating breakfast 2'를 발표하는 등 활동을 꾸준히 했지만, 아내이자 동료인 글로브의 보컬 케이코가 급성지주막하출혈로 쓰러지는 아픔을 겪었다.

2012년 3월에는 VOCALOID를 사용한 커버앨범 '코무로 테츠야 meets VOCALOID'를 출시. 1~10번 트랙은 유명 보컬로이드P들이 코무로 테츠야의 과거 곡들을 커버했으며, 11번 트랙인 LOVE IS ALL MUSIC은 코무로 테츠야가 직접 하츠네 미쿠를 사용해서 셀프커버했다.

그 후 trf의 프로듀스, 신인 이키오 아야카 발굴 등 여러 면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2013년 2월 25일 trf의 신작 미니앨범 'PUSH YOUR BACK', 3월 6일 'Digitalian is eating breakfast 3', 3월 27일 globe의 셀프 커버 앨범 'globe EDM SESSION' 등 다양한 앨범을 발매하며 활동하고 있다.

3. 음악성


일반인에게는 90년대 J-POP 댄스 뮤직의 1인자로 알려져있지만, 사실 댄스음악만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테크노, 펑크, 유로비트, 하우스, 트랜스, 힙합, R&B, 얼터너티브 록, 월드 뮤직, 엔카 등 여러 폭넓은 장르의 곡조를 만들어내며 복수의 장르를 융합하여 음악을 만들어낸다는 특징을 가지고있다.

코무로 사운드의 커다란 특징은 '갑작스런 곡조'에 있는데 이것을 자주 사용하게 된 계기는 TMN의 퍼스트 앨범 레코딩 때 소프트에 오류가 작동하여 음이 변한 것을 듣고 '의외로 괜찮다'고 생각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러한 멜로디가 정착되었다. 그가 작곡한 음악에는 공통된 특유의 코드가 들어가기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한번만 들어도 이것이 코무로의 곡임을 알게해준다.

작곡에선 아무로 나미에에게 준 곡 'CAN YOU CELEBRATE?'의 영어 표현이나 가사의 의미가 이상하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코무로는 "사운드에 맞는 표현을 선택했다"고 얘기했다. 작사에서 크게 영향받은 것은 타나베 미사토와의 일이 시작이라고.
TRF의 명곡 '寒い夜だから…(너무 추우니까…)'는 스튜디오에서 나오니 날씨가 너무 추워서 만들어진 곡이라고 한다(...)

1990년대에 마이클 잭슨으로부터 작곡 의뢰를 받지만, 채택된 곡은 없었다.

코무로는 90년대를 회상하며 "4일에 1곡을 작곡했었다", "수많은 기록들이 기쁘지 않은건 아니었으나 전혀 실감되지 않았다", "돈을 스스로가 얼마만큼이나 썼는지 몰랐었다. 완전히 벌거벗은 임금님이었다"고 얘기했다.

코무로붐의 종막에 대해서는 "그건 자연스레 왔었죠. 제 안에선 우타다 히카루씨가 나왔을 때 '새로운 시대가 왔구나'라고 느꼈습니다"라고 얘기하였다.

4. 기타


게임 제작에도 손댄적이 있다. 그가 디자인하고 시스템 사콤에서 개발한 가볼 스크린(ガボール スクリーン)이라는 게임. 가볼(GABALL)이란 코무로가 2001년 무렵 세웠던 유닛 프로젝트인데, 한국에서도 활동했던 가수 '조앤'이 이 유닛의 싱글 '幸せの表現'에 참가한 적이 있다.

플레이스테이션 1로 발매된 어드벤처인데, 한때 일본 대중음악계에서 유명했던 그답지 않게 일단 외견만 보면 스크린샷에서 보이는 포스LSD 맞먹기 짝이 없다. 다만 일단 명확한 게임의 목표가 있고, 코무로 테츠야의 팬이라면 OST 같은 감각으로 즐길 수도 있는 게임이기 때문에 LSD와 비교하기는 좀 힘들다.하드코어게이밍 101의 리뷰

이후 2013년 어과초 2기 2쿨 오프닝인 fripSide의 eternal reality를 야기누마 사토시와 공동작곡. 후반부 코러스에도 참여했다.

5. 대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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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한국 이름은 전정일. 재일교포 2세인 뮤지션 겸 배우.
  • [2] 한때 마츠모토 타카히로는 TM NETWORK의 게스트 세션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다. 이 때의 인연 때문에 TMN 멤버들과는 친분을 유지하고 있으며, 1994년 최후 라이브 뿐만 아니라 2004년에 가졌던 TM NETWORK 더블 디케이드 투어 때도 우정출연했다.
  • [3] 현재 코무로의 곡들은 전부 일본 연예계 만악의 근원 바닝프로덕션의 소유로 되어 있다. 천하의 개쌍놈들.
  • [4] 코무로와 마츠우라는 AVEX 창립 초기부터 공, 사적으로 파트너로써 함께 활동한 사이다.
  • [5] 하마다 마사토시와의 프로젝트 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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