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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애벌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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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L 서부 컨퍼런스
센트럴 디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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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슈빌 프레더터스
(Nashville Preda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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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인트루이스 블루스
(St. Louis B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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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애벌랜치
(Colorado Avalan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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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 블랙호크스
(Chicago Blackhaw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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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러스 스타스
(Dallas St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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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니펙 제츠
(Winnipeg J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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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소타 와일드
(Minnesota W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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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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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애벌랜치
Colorado Avalan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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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1972년 노르디크 드 케베크 / 퀘벡 노르딕스[1]
연고지 콜로라도덴버
연고지 변천퀘벡(1972년~1995년)[2]
덴버(1995년~)
현재 연고지로 이동 1995년
홈구장 펩시 센터
스탠리 컵
(통합우승)
2회
1995–96, 2000–01
컨퍼런스 우승 2회
1995–96, 2000–01
프레지던트 컵 2회
1996–97, 2000–01
디비전 우승 9회
1995–96, 1996–97, 1997–98, 1998–99, 1999–00, 2000–01,
2001–02, 2002–03, 2013–14

Contents

1. 소개
2. 역사
2.1. 퀘벡 노르딕스
2.2. 콜로라도 애벌랜치

1. 소개

NHL 서부지구 센트럴 디비전 소속팀. 산동네팀. 애벌랜치라는 긴 이름대신 앱스(Avs)라는 애칭으로 주로 부른다.

2. 역사

1970년대 NHL의 라이벌로 창설한 신생리그 WHA는 WHA 첫해 참가한 샌프란시스코 샤크스가 1년만에 도산해버리자, 하키는 역시 캐나다지라는 생각에 전통의 캐나다 시장을 확보하기 위해 손을 벌렸지만 그 중심인 캐나다 동부지역에는 몬트리올 커네이디언스,토론토 메이플리프스의 위세가 워낙 막강해서 뛰어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안으로 몬트리올 다음 가는 퀘벡 주의 대도시인 주도 퀘벡 시에 들어와 1920년 NHL팀이 잠시 활동하던 이후 처음으로 하키팀을 창단한다. 팀의 이름은 노르디끄 데 퀘벡(Nordiques de Québec)으로 영어로는 퀘벡 노르딕스가 되었다.

2.1. 퀘벡 노르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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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벡 노르딕스 / 노르디크 드 케베크
Quebec Nordiques / Nordiques de Québec

노르딕스 엠블렘.

퀘벡에서 활동을 시작한 노르딕스는 J.C 트렘블리,세르제 베르니에,르쟌 울레등의 스타플레이어들을 키워내면서 점차 전력을 끌어올린뒤 이후 가세한 센터 레알 클루티에,마크 타르디프,크리스티앙,파울린 보르데로 형제들의 맹활약이 이어지면서 1976년 위니펙 제츠를 물리치고 WHA 우승을 차지한다.

WHA가 NHL과 합병한 이후에도 살아남은 노르딕스는 76년 우승멤버들을 중심으로 NHL에서 싸워나갔고, 같은 주 라이벌이 된 햅스와의 치열한 라이벌리가 80년대 하키를 뜨겁게 달구었다. 이 라이벌리는 Good Friday Massacre라는 사건으로 회자되기도 했고 여러모로 가장 뜨거운 캐나다의 라이벌리중 하나였다.

그러나 문제는 80년대 후반부터 터졌다. 바로 퀘벡 주분리운동. 그리고 1969년 본격적으로 불어 모국어 사용법이 통과되었고 이 때문에 그나마 영어 공용이라도 하던 몬트리올과 달리 무조건 불어만 써야 했던 퀘벡 시에 위치한 노르딕스는 퀘벡 전체에 닥친 경제적 손실에 피해를 봤을 뿐 아니라 비불어권 선수들이나 탑 유망주들이 들어오기 싫어하는 팀이 되었다. 실제로 노르딕스는 이때의 여파로 88,89,90년 시즌 3년 연속 리그 꼴찌를 먹었고, 그 대가로 3년 연속 드래프트 전체 1위 지명권[3]을 얻었지만 91년 노르딕스 몰락의 결정타인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문서에 기술된 에릭 린드로스 홀드아웃 사건이 터진다. 결국 노르딕스는 92년 린드로스를 플라이어스로 넘기고 말았다. 그런 누적된 팀 운영문제와 재정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노르딕스는 연고이전을 선택한다.

2.2. 콜로라도 애벌랜치

1994~95시즌이 끝난뒤 팀은 퀘벡 시를 떠나 미국으로의 연고이전을 선택하고 그중 관심을 가지던 스탄 크론케[4]에 인수되어 콜로라도주 덴버로 연고지를 이전한다.[5] 그리고 팀 이름도 로키산맥의 눈사태를 의미하는 애벌랜치로 바꾼다.


팀의 프랜차이즈 센터 듀오 조 새킥(좌측)과 피터 포스베리(우측)

애벌랜치(이하 앱스)는 첫해부터 대형사고를 쳤다. 1988년 노르딕스에서 데뷔한 팀의 에이스 조 새킥이 중심에 자리잡고 위에 언급된 에릭 린드로스 트레이드의 유산인 스웨덴의 센터 피터 포스베리가 94~95시즌부터 NHL에 들어온뒤 포텐셜이 제대로 터지면서 새킥에 뒤지지 않는 슈퍼에이스로 거듭났고 여기에 발레리 카멘스키,클로드 르뮤[6] 좌우 쌍포와 신예 공격수 아담 데드마쉬와 스티븐 옐, 그리고 팀의 에이스 오웬 놀란을 트레이드해 데려온 산디스 오졸린쉬와 애덤 풋을 중심으로 한 수비진. 그리고 결정적으로 시즌중 골문 강화를 위해 전격적으로 영입한 햅스의 레전드 골텐더 패트릭 롸의 가세로 힘을 얻고, 서부지구로 이동하면서 처음 플레이오프에서 상대하는 서부팀들을 맞아 혈전을 벌인 끝에 밴쿠버 커넉스,시카고 블랙호크스,디트로이트 레드윙스를 연파하고 연고이전 첫해 스탠리컵 파이널에 진출했고, 스탠리컵 파이널에서는 플로리다 팬서스를 간단하게 4:0으로 제압하고 팀 최초의 스탠리컵 우승을 거둔다. 그리고 퀘벡의 노르딕스 팬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이때의 성공으로 빠르게 애벌랜치는 콜로라도의 인기 스포츠팀으로 자리 잡았고 이때부터 생긴 디트로이트 레드윙스와의 라이벌리는 서부지구 최고의 흥행카드이자 NHL에서 가장 유혈낭자한 라이벌리로 NHL팬들에겐 가장 재미있는 볼거리이자 가장 살벌한 볼거리로 인기와 악명을 동시에 얻었다. 이들의 혈전에 대해서는 레드윙스 문서에 첨부된 동영상을 참고바람. 그렇게 이들은 90년대 후반 처절하게 스탠리컵을 목전에 두고 치고받았고, 앱스는 2000~01년 스탠리컵 파이널에 두번째로 진출하여 뉴저지 데블스를 꺾고 통산 2번째 우승을 거둔다.

몇몇 팀들이 2004년 일어난 파업이 결과적으로 득이 되었지만, 앱스의 경우는 2004년 일어난 파업은 팀에 매우 안좋은 영향을 미쳤다. 팀의 에이스였던 조 새킥이 30대 중반이 되어 자연스럽게 30세의 전성기 나이인 피터 포스베리가 그 자리를 이어받아야 할 상황에서 파업과 동시에 앱스와 계약이 만료된 포스베리는 파업기간동안 고국 스웨덴으로 돌아가 1시즌을 뛴 뒤에 자유계약선수 자격으로 그의 신인지명을 처음 받았던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로 가버린다. 이렇게 팀의 핵심스타를 파업으로 허무하게 잃은 앱스는 파업이전부터 레드윙스와의 라이벌리를 위해 질러댔던 롭 블레이크,패트릭 롸,폴 카리야,티뮤 셀라니등의 베테랑 선수들이 노쇠화나 팀 이적등을 이유로 떠나면서 대체자를 구하지 못했고 다비드 애비셔,마렉 스바토스등의 젊은 유망주들이 파업이후 크게 변해버린 NHL환경적응에 실패하면서 팀 성적이 차츰 떨어졌고, 결국 2010년 이후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실패라는 침체기를 겪다가 13-14 시즌 지구우승을 차지하며 모처럼만에 PO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14-15 시즌 1월 18일 현재 와일드 카드에 약 3-4게임차로 뒤쳐져 있다. 그래도 신인인 부르나 렌둘리치(다만 8주 골절상), 캘빈 피카드 등이 쏠쏠한 활약을 해주면서 중하위 그룹에 안착 중. 특히 피카드는 발라모프가 부상으로 빠진 이후 콜업되서 콜업 이후로 미친 활약을 보여주고는 있다.(물론 경험이 좀더 필요하지만...) 하지만 공격진에서는 알렉스 탱게이가 복귀하고 제롬 이길라가 그나마 선전중이지만, 라이언 오레일리와 가브리엘 렌스스트로크가 게임 가치에서 -대로 퇴보했다. 그리고 수비진에서는 닉 홀든이 노답모드(현재 -15로 애벌런치 플레이어 중 최악이다.), 반면 에릭 존슨은 올스타에 선정되으나... 결국 부상으로 3-8주 결장이 확정되었다.. 지못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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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79년 NHL 가입
  • [2] 舊 노르디크 드 케베크 / 퀘벡 노르딕스. 연고이전할 때 퀘백 시는 그야말로 눈물바다였다. 그래도 퀘백 하키팬은 죽지 않았는지라 아직도 노르디크 유니폼을 입고 남의 집에 쳐들어가는 퀘백 시민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마치 팀 없을 때의 ASU RED같이.
  • [3] 맨 처음 지명한 89년 전체 1번 스웨덴의 센터 매츠 선딘은 노르딕스에서 4년간 잘 뛰었지만 1994년 1차 파업사태이후 모국인 스웨덴으로 돌아갔는데, 이때 노르딕스가 선딘을 데려올 돈을 마련하지 못해 선딘을 토론토 메이플리프스로 트레이드 했고 선딘은 토론토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성장한다. 두번째로 지명한 90년 전체 1번인 오웬 놀란은 선딘만큼 활약하진 못했고 93년 큰 어깨부상으로 시즌을 날리기도 했지만 3시즌동안 주공격수로 활약했다. 놀란은 팀이 콜로라도로 이전 후에도 앱스 유니폼을 아주 잠시 입었지만, 산디스 오졸린쉬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산호세 샤크스로 트레이드 된다. 그리고 91년 전체 1번인 에릭 린드로스는 아래 항목 참조.
  • [4] 아스날의 구단주겸 덴버 너기츠구단주이고 홈구장 펩시 센터의 오너.
  • [5] 이 지역은 원래 하키팀이 있었던 지역이다. 뉴저지 데블스가 콜로라도 로키스라는 이름으로 있었지만 흥행 면에서 망한 바가 있다.
  • [6] Claude Lemiuex, 피츠버그 펭귄스의 레전드 마리오 르뮤와는 성만 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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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1-28 20: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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