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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오

Contents

1. 소개
2. 멤버 소개
2.1. 원년 멤버
2.2. 2집부터 탈퇴까지의 멤버
3. 앨범 일람
4. 해체 후의 행보
5. 사건 & 사고
5.1. 한현정 사기결혼 사건


1. 소개


대한민국의 3인조 걸그룹. 팀의 이름은 Come Listen EveryOne의 약자로 1999년 1집 앨범 Good Time으로 데뷔했다. 1집 타이틀 곡은 앨범명과 같은 Good Time으로 수학여행을 가면 당시 여학생들이 핑클, S.E.S 다음으로 선곡했던 곡 중 하나였을 정도로 인기가 꽤 많았었다.

당시에는 기대되는 신인가수로서 주목받았던 팀으로 99년부터 2000년까지 우후죽순 양산되던 걸그룹들 사이에서도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1] [2] 이후에는 후속곡인 니가 나를 꼭 사랑할 때만으로 활동했지만 Good Time의 인기는 뛰어넘지 못했고 1집의 최종 성적은 대박까지는 아니고 중박.[3]

멤버교체가 꽤 많았던 그룹으로 원래 1집 당시에는 박예은, 김하나, 채은정의 3인 체제였다. 당시 한층 고공행진을 하고 있던 SES핑클을 겨냥하고 만들어진 걸그룹 중 하나로 컨셉 또한 청순한 매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으나 이미 알 거 다 아는 소녀들이라는 말을 정도로 전체적으로 성숙미가 짙게 깔려있던 두 그룹과 달리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소녀들, 천연이나 백치미 쪽에 더 가까웠다.

1집 활동 종료 이후, 박예은이 탈퇴하면서 새로이 한현정을 영입하고 새로이 2집 활동을 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SES의 아류 컨셉으로 만들어진 그룹 중 하나였지만 1집의 청순미 하나만으로는 쉽사리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는지 2집은 베이비복스의 영향을 받아 섹시한 경향이 커졌다.[4]

2집 Ready For Love는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고 할 정도로 앨범의 완성도가 높았으며 이 때부터 멤버들 간의 포지션이 확립되었다.[5] 실제로도 이 때가 클레오의 리즈시절이었으며 그만큼 공중파 방송활동도 굉장히 많았는데 지금도 유튜브 등지에서 당시의 활동을 어느정도 볼 수는 있다.

거기다 2집을 기점으로 멤버들의 외모 포텐이 폭발했다고 할만큼 비쥬얼이 급상승했는데 특히 1집 때도 괜찮은 실력을 갖고있던 리더 김하나는 2집 들어서 늘어난 실력과 더불어 1집의 수수한 모습을 다 날려버렸다 할 만큼 매우 예뻐졌다. 1집 때, 채은정과 너무 겹치는 부분이 많아 코디가 안티라는 소리를 들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2집 때부터는 본인의 개성을 확립하여 채은정과 함께 팬덤을 양분했다.

1집 때부터 최고 인기 멤버로 당시 걸그룹 멤버 인기순위에서도 상위권에 랭크되었던 채은정의 경우, 젖살이 빠지면서 뭔가 모르게 1집과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Ready For Love 당시 금발로 염색을 했지만 전작부터 귀엽다는 이미지가 워낙 강했고 얼빠들이 매우 많았던 탓에 본인 스스로 이미지 변신을 하려고 했던 노력이 팬덤 사이에선 귀여운 일탈 정도로만 받아들여져서 절반만 성공을 거둔 셈이 되었다.

신 멤버인 한현정은 2집 작업 도중 탈퇴한 박예은을 대신해 영입되었는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다소 순진하게 생긴 김하나나 채은정만으로는 뭔가 심심하다고 느꼈는지 비주얼을 올리려는 의도로 영입된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듯이 굉장히 강한 인상에다가 당시 기준으로도 매우 예쁜 외모였기 때문에 곧바로 클레오의 신 멤버로 발탁된 듯 하지만 이미 1집을 거치면서 본인들의 실력을 키웠던 둘과 달리 급하게 투입된지라 실력은 그저 그런 편이었다.

2집 타이틀 곡은 1집과 마찬가지로 앨범명과 같은 Ready For Love. 빠른 비트의 유로 댄스곡이며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명곡 중의 명곡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도 클레오의 팬들 대다수는 이 노래를 가장 좋아하는 노래 1순위로 꼽을 정도로 퀄리티가 높은데 공중파 순위에서 상위권에 진입하는 등[6] 많은 주목을 받았다.

발랄하고 신나는 멜로디와 외우기 쉬운 가사가 장점으로 꼽히는데 거기다 이 노래는 당시 기준으로 수학여행 장기자랑 최고의 인기곡 중 하나로 매우 높은 인기를 자랑했다. 전작의 Good Time과 함께 2년 연속으로 많은 여학생들의 사랑을 받은 셈.

다만 SBS 인기가요에서 방송사고가 한번 있었는데 채은정의 상의가 계속 흘러내려서 자칫하면 큰 문제로 확산될 뻔한 일이었으나 다행히 채은정의 임기응변이 빨라 무사히 잘 넘어갔다. 물론 지금도 팬들 사이에서는 회자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안무도 2000년대 초반답게 상당히 쉬운 편.[7]

후속곡은 Always In My Heart와 모순. Always In My Heart는 Ready For Love와 모순에 가려서 오랜 활동은 없었지만 클레오 2집에서도 손에 꼽히는 명곡이며 특이하게도 뮤직 비디오가 모순 촬영 당시의 모습을 담은 것이라 이 곡 이후로 나오는 후속곡을 금방 예측할 수 있었다는 것이 특징.

모순은 라틴 팝 계열의 댄스곡으로 당시 전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라틴 음악 열풍에 힘입어 만들어졌는데 이 컨셉은 동 시기 라틴 음악풍의 댄스곡으로 활동하던 백지영과 약간 겹치는데다가 무리하게 발랄한 이미지에서 섹시한 이미지로 변신하려 한다는 세간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백지영과는 독자적으로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데는 성공했다.

Ready For Love와 함께 클레오의 전집에서 양대 산맥을 이룬다고 할 정도로 노래 자체의 인기도 높았던 명곡 중 하나. 하지만 모순은 앨범에 수록된 곡과 뮤직비디오 및 방송 활동곡이 약간 다른데 앨범에 수록된 곡 쪽이 원곡이며 이쪽은 라틴 음악 요소가 삽입된 댄스곡이라는 성격이 강했지만 뮤직비디오와 공중파 방송 활동시의 노래는 리믹스 버전으로서 이쪽의 평이 더 좋은 편이다. 일명 모순 나이트 리믹스

뮤직비디오에서의 상반신 노출도 그렇고, 노래 자체가 진짜 라틴 댄스 음악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원곡보다 더 시원시원하다. 원곡과 리믹스 부분의 차이는 한현정의 파트 유무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다.[8]

그 밖에도 2집 자체는 클레오의 이미지를 확고히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음반의 판매량도 그렇게까지 떨어지는 수준은 아니었고 매우 적절한 판매량과 적절한 인기를 확보하는데까지 성공했는데 지금도 클레오를 회상하는 수많은 팬들은 2집 때를 최고 전성기로 여기며 그 다음을 1, 4집을 꼽을 정도로 클레오 2집이 갖는 의미는 다양하다.

2000년대 초반, 전국시대라고 봐도 될 정도로 수많은 걸그룹이 난무하는 가운데, 특급 걸그룹인 핑클과 S.E.S에 버금가는 대인기를 얻었고 거기다 이 시절 만들어진 인지도가 지금까지도 이어져올 정도니...[9] 실제로도 당시 핑클, S.E.S 등 거대 팬덤을 가진 걸그룹으로 편을 갈라 언쟁을 벌이던 남학생들 사이에서도 클레오의 이름이 나오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10]

그러나 2집 때의 엄청난 인기와 인지도는 3집 이후부터 추락하기 시작했다. 3집 타이틀곡인 Triple은 빠른 비트의 테크노 댄스곡으로 전작에서 보여준 발랄함을 배제하고 섹시한 여전사 타입으로 변신함으로서 기존의 이미지를 쇄신하려는 목적이 강했으나 테크노 열풍이 지나간 뒤였던지라 그렇게까지 크게 인기를 모으지는 못하였다.

전체적으로도 3집은 발라드나 인도 음악, 전작과 비슷한 유로 댄스를 비롯해 다양한 시도가 있었지만 몇몇 곡은 앨범 준비기간에 비하면 못 만들었다고 혹평을 듣기도 하였다.[11] 실제로 2집보다는 빠른 시기에 활동을 마무리 하였다.

이러한 세간의 악평 때문인지, 4집은 3집 발매 이후, 2년이나 걸려서 만들어졌다. 원래는 디지털 싱글 형식으로 먼저 곡을 광역살포한 다음, 앨범을 발매하는 것이었는데 이 전략이 성공을 거두어 디지털 싱글은 호평 속에 모두 품절되고 성공리에 4집을 발매할 수 있게 되었다. 타이틀 곡은 동화. 남자친구에 대한 바람을 여자친구의 입장에서 노래한 것인데, 가사나 멜로디가 커플들의 심경과 상당히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여학생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많았다.

그 당시에는 노래방이나 싸이월드에서 여학생들이 애창하고 배경음악으로 등록하기도 했던 인기곡으로 주요 평가는 1세대 걸그룹들 중에서는 거의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클레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노래. 4집은 전체적으로 2집 시절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노력이 엿보이는데 멤버들 전반적으로 실력도 크게 상승하고[12]이 시기에 예능 활동도 어느정도 활발했다.

4집 활동 도중, 소속사로부터 누드 촬영을 강요받았다는 사실이 뉴스를 타게 되었는데 소속사 측 입장은 제안한 적은 있지만 강요한 적은 없다는 입장. 어찌됐든 소속사의 병크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4집 활동도 꽤 성공리에 마무리했다[13] 하지만 4집 활동 종료 이후, 원년 멤버 채은정이 탈퇴하였는데, 1집부터 4집까지 김하나와 보컬을 양분하던 채은정의 탈퇴는 그룹 자체에는 상당한 손실이었다.

사실상 클레오의 얼굴마담이자 대중의 인지도도 가장 높고 인기도조차도 그룹 내 최상위였던 채은정이 탈퇴했다는 것은 1세대 걸그룹 최후의 생존자인 클레오에겐 이미 사형선고 수준이었다. 이미 1집 때부터 세간에는 김하나와 채은정이 닮았다, 자매냐는 의혹이 비일비재할 정도였으니...[14]

어쨌든 채은정의 탈퇴 이후, 신예 정예빈을 영입하여 2004년 5집 Rising Again을 발매하였는데... 이 앨범은 정말 3집에 이어 최악이라고 할 정도로 엄청나게 실패했다. 수록곡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앨범 자체가 워낙 안 팔렸던 탓도 있고 소속사의 홍보조차도 당시 치고 올라오던 후발주자들을 제치기에는 부족한 수준이었다.

결국, 5집 또한 별다른 활동 없이 종료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해체함으로서 멤버들이 서로 갈 길을 간 상태다. 6집을 발매한다 카더라는 얘기도 있지만 불투명한 상황.

그리고 그렇게 잊혀진 그룹이 될 줄 알았는데 2011년 11월 16일 SBS플러스 '컴백쇼 톱10'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가요계 컴백을 선언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속 활동하려는거 같지 않고 프로그램을 위한 단발성 복귀일 가능성이 높은듯.[15] 복귀 멤버는 원년 멤버인 김하나, 채은정, 박예은.[16]

2000년대 후반에 데뷔한 그룹 중에서는 카라가 클레오와 가장 색깔이 비슷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17] 노래 자체에서 풍기는 이미지나 전반적인 컨셉, 원더걸스가 S.E.S, 소녀시대핑클의 포지션을 맡은 특급 그룹인 와중에 그 사이에서 분투하며 인지도를 쌓아올리고 마침내 정상에 오르게 되었다는 점이 비슷해서 비교하는 경우가 있다. 다만, 해체 직전의 위기에서 벗어나 명실공히 영향력 있는 걸그룹 중 하나로 자리잡은 카라에 비해서 클레오는 결국 해체한 것이 유일한 차이점.

2. 멤버 소개


2.1. 원년 멤버

2.2. 2집부터 탈퇴까지의 멤버

4. 해체 후의 행보

팀 해체 후, 정예빈공서영이라는 본명으로 KBS N 스포츠 아나운서로 재기에 성공했으며 XTM에서 포텐이 만개하기 시작했다. 한현정은 지상파 DMB 방송의 아나운서로 컴백했다. 그 후에는 ETN의 연예뉴스 아나운서로 재기에 성공하였다.[20]

항간에는 새로이 멤버를 모아 클레오를 재편성하고 컴백한다는 소문도 있었지만...지금은 망했어요. 리더였던 김하나는 현재 뮤지컬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연기자로 컴백한다는 소식도 있다.[21]

채은정은 2007년 솔로로 컴백하여 'ENJEL'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한 때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의 고정 패널을 맡았으며 화보를 발매하는등 클레오 시절 못지않은 왕성한 활동을 했지만 2009년 경, 연예계를 돌연 은퇴하고 치과 코디네이터로 전환하여 많은 팬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지인과 함께 쇼핑몰을 개업하고 CEO로 살고 있다가 어느샌가 연예계에 복귀했다. 클레오 시절 때부터는 물론이고 지금도 대중의 인지도가 가장 높은 멤버인 것은 여전하다.

5. 사건 & 사고

90년대 걸그룹 중에서는 의외로 사건 사고가 많은 편에 속한다.[22]

운이 없는 걸그룹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잘 나가다가 악재가 발생하거나 시대의 흐름을 잘못 읽어서 어쩔 수 없이 활동을 마무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상술한 것처럼 1집 때는 신인답지 않게 의외로 중박 이상의 인기를 누리면서 그럭저럭 잘 나갔었다.

그러나 당시 가요계의 양대 먼치킨 중 하나였던 핑클이 컴백하면서 그야말로 관광 수준까지 추락했는데 그래도 소수나마 팬덤 확보에는 성공했다. 다행히도 이 때 확보했던 클레오의 팬덤이 가요계 걸그룹 팬덤 중에서는 어느정도 메이저한 규모였다. 이미 데뷔 3년차였던 베이비복스에 비하자면 팬덤이 적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동시대 걸그룹들이 금방 활동을 접은 것에 비하자면 상당한 선전이기도 했다.

2집 때는 1집의 서러움을 날려버릴만큼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팬들의 규모도 확대되고 팀 자체의 인기도 무시무시하게 상승하면서 핑클이나 SES 정도는 아니어도 나름대로 입지를 확보했었으나...

모순 활동 당시엔 백지영과 충돌하는 일 없이 독자적으로 인기를 늘려나가고 있었는데 이 해 8월에 서태지가 컴백을 선언하는 바람에 모든 대중의 관심이 서태지에게로 모아지게 된다. 거기다가 연말이 되면서 박지윤성인식을 발표하고 설상가상으로 1집 당시에 클레오를 격추시켰던 핑클이 신곡인 NOW로 컴백하게 된다.

2집 컴백 당시만 해도 이렇다 할 라이벌 걸그룹이 사실상 없어서 나름대로 잘나가던 클레오의 천하가 불과 반년만에 폭삭 무너진 상황이 발생한 것. 이 때문에 2집 활동은 클레오가 어느정도 메이저 그룹으로 성장하는데 엄청난 기여를 했지만 한편으로는 전 국민적 인기를 모으고있던 메이저 걸그룹과 가수를 앞세운 거대 기획사 앞에 영세 기획사가 무너질 수 밖에 없었던 활동이기도 했다.

물론 이후 클레오는 3집 활동을 이렇다 할 큰 성과없이 마무리하고 4집에서 다시 한번 재기하는 듯 했으나 최고 인기 멤버인 채은정의 탈퇴와 가요계의 지각변동으로 인한 대형 신인들의 출현으로 인해 5집 활동에서 고배를 마시며 결국 해체를 선언하게 되고만다.

5.1. 한현정 사기결혼 사건


그런데 현재 한현정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입국을 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 언론에서는 한현정이 중국 남성과 결혼한다며 50억을 챙겨 한국으로 도주하려고 했다고 하며 중국 공안이 신변을 요청했다고 하는 중. 한현정측은 “중국인 무모 씨가 여권과 핸드폰까지 빼앗아갔으며 폭행하고 감금을 했다”고 반박 중이었으나 사실은...

남성 측에서 벌인 자작극으로 50억이나 결혼설이나 전부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애초에 사건의 피의자인 중국 남성이 이별 선고에 의한 충격으로 홧김에 자작극을 벌인 것. 전성기 시절에도 채은정과 김하나에게 밀려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한현정이 오랜만에 검색어 순위에 올라왔지만 하필이면 본의 아니게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 하고 있다. 본인 또한 사건으로 인해 적잖이 충격을 받은 상황.하루빨리 한국에서 다시 자리를 잡고 활동하기를... 인줄 알았는데!

남성측이 벌인 자작극이 아니라 한현정과 이 중국 남성은 실제 부부관계이며(!) 부부 싸움후 별거중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 한현정은 어차피 이 남자와 헤어질 생각이었기 때문에 소속사에 자신의 결혼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둘은 화해하고(!) 모든 소송을 취소하고 같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이미 결혼한 사람들의 부부 싸움에 전국민이 낚인 꼴.

허나, 사건 종결 3개월 만에 결국 한현정은 이혼당하고 귀국한 후에 자살을 기도하는 등 그야말로 나락으로 추락해버렸다. 자세한 것은 한현정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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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양대 산맥인 핑클SES이 공동 1위였고 그 다음이 베이비복스, 클레오가 4위 정도였다. 나머지는 몇 번 활동하다가 해체하면서 사라졌지만 이 팀은 걸그룹이 사실상 전멸된 2000년대 중후반까지 생존해있었다.
  • [2] 라곤 하지만 2000년에 데뷔한 샤크라에게 밀리고, 이전부터 입지가 있었던 디바한테도 밀려 사실상 6위권이라고 보면 된다. 이 두팀은 클레오가 한번도 못해본 1위를 두번이나 해본 그룹이다.
  • [3] 하필이면 한참 활동할 적에 핑클가요 역사상 불후의 명곡 중 하나로 당당히 꼽히는 영원한 사랑을 들고 컴백하는 바람에 청순한 컨셉 부분에서 겹쳤다. 그리고 신인들이다보니 이미 연예계 3년차인 핑클보다는 팬덤이 다소 미흡해서 금방 활동을 마무리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와는 별개로 1집 활동 마무리 시점에는 상당한 숫자의 팬들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 [4] 원래 이 항목에는 베이비복스의 라이벌이라 적혀 있었지만 1위 곡이 4개나 있는 베이비복스와 클레오를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 할 수 있다. 오히려 베이비복스의 라이벌은 디바에 가까웠으며 위에서도 말했듯 클레오는 샤크라에게도 밀리는 수준이었다. 굳이 따지자면 비슷한 시기에 데뷔한 샤크라의 라이벌이 가장 적당한 편.
  • [5] 1집 때는 대부분의 포지션이 채은정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김하나도 비중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2집을 기점으로 완전히 김하나와 양분 체제가 된다.
  • [6] 1위를 했다고 전에 적혀져 있었으나 수정되었다.
  • [7] 솔직히 이 시절 걸그룹 안무 중에 어려운 건 그다지 많지 않았다.
  • [8] 오리지날에서는 아예 한현정 파트가 초반부 영어 부분을 빼곤 없다. 리믹스 버전에서는 중간 부분을 담당하여 농염하고 섹시한 이미지를 어필했으나 상기한 것처럼 한현정이 원년 멤버인 박예은보다도 실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김하나-채은정의 투톱 체제는 여전했다. 한현정은 다른 노래에서는 파트가 많은 편이지만 이상하게 타이틀 곡에서의 파트는 굉장히 적다.
  • [9] 2009년도 춘추전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수많은 걸그룹들이 등장했지만 사실 99년 말부터 2000년 말까지 이어진 걸그룹 전국시대가 시기상으로 앞선다.
  • [10] 근데 이 경우엔 마이너로 취급돼서 S.E.S와 핑클 팬들인 남학생들 사이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 [11] 상당수의 곡들은 완성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단, 가사는 둘째치더라도 멜로디가 굉장히 난해해서 전작의 발랄한 멜로디에 익숙했던 팬들이 적응 안된다고 했을 정도로 3집은 여러모로 아쉽다는 평가가 많다.
  • [12] 심각하게 말아먹었다고 대차게 까인 3집과는 달리 멤버들의 가창력이나 퍼포먼스의 완성도가 넘사벽 수준이다.
  • [13] 3집에 비하면 정말 엄청난 성공. 물론 대성공이라 할 수 있는 2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 [14] 그만큼 그 둘이 클레오 자체를 상징하는 고유명사격 존재였기 때문에 대중들의 시선에 각인된 것. 어쨌든 채은정 탈퇴 후에는 최후의 원년 멤버인 김하나만이 남았다.
  • [15] 그런데 단발성 복귀라고 해도 1990~2000년대의 걸그룹들이 한두팀이 아닌데 유독 클레오만 이 프로그램에 등장한 것은 조금 의문점이 있다. 아무래도 S.E.S, 핑클 같은 특급을 제외한 걸그룹 중에서는 상당히 높은 인지도와 팬덤 덕분이 아닌가 싶지만... 자세한 것은 프로그램의 진행 여부가 어떻게 되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애초에 프로그램 취지 자체가 '잊혀진 가수들을 재기'시킨다는 것이기 때문에 잘만 되면 1세대 걸그룹 중에선 거의 최초로 그룹 자체가 부활하는 상황이 발생할지도... 몰랐지만 프로그램 자체 인지도가 바닥을 쳤고 결과적으로 조기종영했기때문에 실질적인 복귀는 힘들어보인다.
  • [16] 원래 박예은보다 한현정이 우선시 됐던거 같으나, 불미스러운 먹튀낚시사건 때문에 제외되고 근 10년간 거의 일반인으로서의 삶은 산 박예은을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 [17] 정작 카라는 핑클의 소속사였던 DSP 소속이다.
  • [18] 비록 2004년에 탈퇴했지만 2011년 현재까지도 클레오 하면 생각나는 인물로 꼽힐 정도로 사실상 클레오를 상징하는 고유명사격인 멤버.
  • [19] 1집 종료 이후 탈퇴했으나 최근 컴백쇼 톱10을 통해 클레오로 복귀 했다.
  • [20] 문제는 대다수의 클레오 팬들은 5집 멤버인 정예빈을 절대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이전 시대의 인기에 편승해서 반짝 하고 끼어들려했다는 것과 "쟨 뭔데 클레오 이름 팔아먹음?"이라는 이유 때문인데, 실제로 워낙 5집 활동이 흑역사였던데다 예능 활동도 사실상 정지였기 때문에 정예빈은 활동할 기회조차 없었다.
  • [21] 네이버에 검색해보면 최근 사진이 나오는데 이마저도 2006년에 찍은 사진.클레오 활동 시절의 외모와는 약간 달라진 듯하다.
  • [22] 물론 대형 걸그룹인 핑클과 SES에 비하면 적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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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4-01-12 21:0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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