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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 비

last modified: 2015-03-27 10:57:17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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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여우 닮았다.

아키시노노미야 키코(秋篠宮紀子) 비.[1] 1966년 9월 11일생. 일본의 황족으로, 아키시노노미야 후미히토 친왕의 아내.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황후의 작은며느리. 결혼 전의 이름은 가와시마 키코(川嶋紀子)[2].

자녀로는 마코 내친왕, 카코 내친왕, 히사히토 친왕이 있다. 특히 히사히토 친왕은 41년 만에 태어난 왕자라서 대단한 화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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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슈인 여자 고등과 시절의 모습.

Contents

1. 집안과 조상
2. 어린 시절
3. 후미히토 친왕과의 만남
4. 진상은??
5. 결혼과 화젯거리
6. 결혼 후의 생활
7. 자녀
8. 히사히토 친왕의 출산
9. 조카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와의 경쟁
10. 남동생의 이혼


1. 집안과 조상

부친 가와시마 타츠히코(川嶋辰彦)와 모친 가와시마 카즈요(川嶋和代)[3]의 1남 1녀 중 첫째로 시즈오카에서 태어났다. 가와시마 가문은 대대로 학자, 교수, 의사 등이 많이 나온 학구적인 집안이라고. 타츠히코는 가쿠슈인 대학 경제학부 교수를 지낸 이름 높은 경제학자이며, 7살 아래의 남동생 가와시마 슈(川嶋舟)는 수의사이자 도쿄농업대학 강사이다.

키코 비의 할머니는 가와시마 이토코(川嶋紀子). 손녀와 같은 한자를 쓴다. 할머니를 닮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지었다고. 어차피 자라서 시집을 가면 성씨가 바뀌니까 상관없었을까 이토코의 아버지는 이케가미 시로(池上四郞)인데, 후쿠시마 출신으로서 보신전쟁을 겪었으며 제6대 오사카 시장을 지냈다. 그리고 조선총독부 제6대 정무총감을 지낸 인물이기도 하다. 천하의 개쌍놈

한편 키코 비의 조상 중에 부라쿠민이 있다거나, 재일교포가 있다거나 하는 악의적인 소문들도 있다.

2. 어린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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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쿠슈인 여자 고등과 시절, 교복 차림의 키코 비. 청순한 소녀.

어린 시절에 외국 생활을 오래 하여[4] 외국어에 능통하다는 점에서 형님 마사코 황태자비와 비슷하다. 타츠히코가 펜실베니아 대학교 대학원에 유학하게 되어, 가와시마 일가는 1967년 9월부터 1973년 여름까지 미국에서 살았다.

귀국한 후 키코는 초등학교를 몇 군데 옮겨 다니다가, 아버지가 가쿠슈인 대학에서 교편을 잡게 되어 1976년 4월부터 가쿠슈인 초등과 4학년으로 편입했다. 한 학기를 다닌 후 가와시마 일가는 다시 외국으로 떠났다. 이번에는 오스트리아였고, 키코는 영어에 이어 독일어에도 능숙해졌다.

가와시마 일가는 1979년에 귀국했고, 키코는 가쿠슈인 여자 중등과에 편입했다. 이후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를 거쳐 1985년 4월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심리학과에 입학했다.

3. 후미히토 친왕과의 만남

키코는 가쿠슈인 대학에서 1년 선배인 아야노미야 후미히토 친왕을 만났다. 후미히토 친왕은 당시 법학부 정치학과 2학년이었는데, 그가 자주 이용하던 교내 서점인 세이분도(成文堂)에 신입생인 키코가 드나들자, 서점 주인이 후미히토 친왕에게 "가와시마 타츠히코 교수님의 따님입니다."라고 키코를 소개했다고. 그 뒤로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는 캠퍼스 커플이 되어 테니스, 자연문화연구회 등의 동아리 활동들을 함께 하며 교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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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동아리 활동 당시의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 이때도 후미히토 친왕은 수염을 길렀다.

두 사람은 나루히토 황태자가 먼저 결혼하기를 기다렸지만, 나루히토 황태자의 결혼 문제는 거의 진척되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한 후미히토 친왕은 가쿠슈인 대학 근처 횡단보도의 신호등 아래에서 키코에게 청혼했다. 이 사건은 일명 신호등 아래의 청혼으로 당시에 큰 붐을 일으켰다. 시어머니 미치코 황후가 1959년 황실로 시집올 때 '미치 붐(ミッチーㆍブーム)'이 일었던 것처럼 키코 붐도 크게 일었다. 또한 당시 후지 테레비에서는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의 만남, 교제, 결혼 과정을 <헤이세이의 신데렐라 키코 님 이야기(平成のシンデレラ 紀子さま物語)>라는 제목의 애니메이션으로까지 제작하여 방영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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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결혼식 전의 모습. 당시 후미히토 친왕은 25세, 키코는 24세였다. 앳된 느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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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두고서 아버지 타츠히코 교수, 어머니 카즈요와 함께. 소매가 바닥까지 닿을 듯 치렁치렁한 후리소데를 입은 키코와, 짧은 토메소데를 입은 카즈요의 모습이 대조된다.

4. 진상은??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들은 아름답고 예쁘기만 한 사랑 이야기이지만, 두 사람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뒷이야기들도 많다. 사실 키코는 후미히토 친왕의 친구의 여자 친구였는데 후미히토 친왕이 빼앗았다는 NTR 설,[5] 후미히토 친왕은 난봉꾼이며 함께 활동했다는 동아리는 사실 그의 '하렘 관리용'이었다는 설[6], 심지어 결혼 전에 두 사람이 낙태를 몇 번 했고, 후미히토 친왕은 키코를 그저 잠시만 데리고 놀다가 버릴 생각이었는데, 타츠히코 교수가 강력하게 항의하여 겨우 결혼이 성사되었다는 설 등등.

또한 두 사람이 대학 시절에 서로를 알게 되어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고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사실 고등학교 시절에 이미 알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가쿠슈인 고등과 시절 사진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후미히토 친왕은, 몇 군데의 명문 여고에 "예쁜 여학생들의 사진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이에 다른 학교들은 모두 거절했지만 가쿠슈인 여자 고등과에서만 그 요구에 응하여 몇몇 여학생들의 사진을 제출했는데, 그 가운데 키코의 사진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와중에도 키코는 스스로 원하여 황실로 시집을 왔다고 한다(시어머니형님과 크게 다른 점, 정반대이다). 키코는 후미히토 친왕을 만나 그가 왕자임을 알고 난 후, 말씨를 그때까지 쓰던 보통의 말씨에서 일본 황실 특유의 말투로 싹 바꾸었다고 한다. 즉, 그때부터 황실로 시집갈 것을 작정했다는 의미. 어린 나이에 야심이 대단했다.

형님 마사코 황태자비와 달리 황실 생활에 잘 적응하며 시부모와 원만하게 지냈다지만, 결혼 전에는 미치코 황후로부터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카즈요와 키코 모녀는 결혼을 앞두고 미치코 황후를 찾아뵈었다. 이때 가 나오자 카즈요는 키코의 앞에 찻잔을 놓아주었는데, 미치코 황후가 큰 목소리로 꾸짖었다. "딸이 어머니에게 시중을 받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감히 어머니에게 시중을 받다니, 이러면 안 됩니다!!"라며 모녀를 한참 나무랐다고.

시어머니 미치코 황후1959년 황실로 시집올 때 장갑 문제로 호되게 당한 이야기는 유명하다.[7] 재벌이지만 평민 신분이었던 쇼다 가문은, 황족 & 화족들이나 쓰는 긴 장갑을 구하지 못해 무척 애를 먹었다. 그리고 키코가 황실로 시집오던 1990년. 이때는 백화점 등에서 얼마든지 황실용 긴 장갑을 구입할 수 있었다. 당시 키코가 구입한 긴 장갑은 2,000엔이었다. 그런데 타츠히코 교수는 이 장갑 가격 2,000엔의 대금을 황실에 청구했다. 딸이 황실에 시집가서 사용해야 할 물건이니, 황실에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던 것. 참고로 당시 타츠히코의 연봉이 800만 엔이었다고. 이에 사돈인 미치코 황후는 몹시 황당해했다고 한다.

결혼 후에도 잡음은 존재한다. 즐거운 가족 모임 도중에 후미히토 친왕이 만취하여 시녀를 희롱하는 등 분위기를 깼고, 나루히토 황태자가 이를 꾸짖었으나 후미히토 친왕은 오히려 형님에게 대들었다고. 사야코 공주가 달려와 험악한 분위기의 두 를 간신히 뜯어말리는 험악한 와중에, 당시 새댁이었던 키코 비는 남편의 그런 포악한 행동을 그저 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또한 후미히토 친왕은 태국 여성과 바람을 피웠으며, 2003년 차남 일가가 태국 순방[8]을 갔을 때도 그 여성을 만났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키코 비는 이를 참으면서, 순방 일정 내내 억지로 미소를 지어야 했다고 한다.

또한 언젠가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 비의 결혼기념일에 한 방송사에서 두 사람의 얼굴 모양으로 케이크를 만들어 선물했는데, 키코 비가 케이크 상자를 열어보지 않더란다. 왜 그런가 물으니 "전하께서 열어보시지 않았는데 어떻게 제가 먼저 열어 보겠어요…"라고. 심지어 남편의 코트를 일일이 다 입혀주는 모습, 키[9]도 훨씬 큰 남편을 위해 우산을 들어주는 모습의 사진들을 보면… 일본 황실의 보수성과 남존여비도 대단하지만, 그런 고통을 다 견디고 살며 늦은 나이에 기어이 아들을 낳고야 만 키코 비도 대단하다.

5. 결혼과 화젯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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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에 약혼 발표 기자회견을 했다. 당시 시할아버지인 쇼와 덴노의 상중(喪中)이라서 야! 신난다 후미히토 친왕과 키코는 검은 옷을 입어야 했다. 청록색으로 보이는 것은 기분 탓 옛날 사진이라서 화질이 구리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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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날 아침, 아버지 타츠히코, 어머니 카즈요, 남동생 슈의 배웅을 받으며 정든 친정을 떠나는 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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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 날. 사진 속에서 키코 비는 남편 후미히토 친왕의 머리를 다듬어주고 있는 모습. 그런데, 감히 남편의 머리에 손을 댔다고 비난을 당한(…) 사진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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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6월 29일에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키코는 가쿠슈인 대학 대학원생이었고, 결혼 후 황족으로서의 공무(公務)[10]육아를 병행하면서도 전공인 심리학 공부를 계속했다. 1995년에 석사학위를 받았고, 2013년에는 국립 오차노미즈 여자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화에도 능통하다고.

시어머니 미치코 황후에 이은 평민 출신의 비(妃)로서 화제가 되었다. 결혼 전까지 키코는 가쿠슈인 대학 교직원용 아파트에서 가족과 함께 살았는데, 일명 3LDK의 공주님(3LDKのプリンセス)[11]이라고 떠들썩하게 알려졌다. 그리고 당시 키코의 친정에는 TV가 없어, 가와시마 가문의 독특한 교육 방침도 화제가 되었다.

6. 결혼 후의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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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봄, 황실 행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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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행사에서.

결혼 후 곧 임신하여 첫째 마코 공주와 둘째 카코 공주를 낳았다.[12] 마코 공주가 태어날 때 나루히토 황태자는 아직 미혼, 카코 공주가 태어날 때 황태자 부부는 결혼한 지 고작 1년이었다. 그 때문에 다카마도노미야 히사코(高円宮久子) 비[13]"황태자비가 아직 아기를 낳지 않았는데 작은며느리가 계속 임신을 하다니, 황실 내 서열을 생각하고 행동하길 바랍니다."라며 한 소리를 하기도 했다. 이런 일도 있었지만… 시집오자마자 금방 아기를 둘이나 낳았고, 종종 덴노 부부를 방문하여 어린 두 손녀의 재롱을 보여주면서 덴노 부부와 차남 부부는 친밀해졌다.

황실 학교[14]가쿠슈인을 졸업한 덕분에 시집오기 전부터 남편 후미히토 친왕 및 시누이 사야코 공주와 친밀했으며, 황실 일가와도 친하게 지냈다. 특히 사야코 공주와는 종종 만나서 함께 케이크쿠키를 만들기도 했는데, 이때 시어머니 미치코 황후도 함께 어울리곤 했다고. 결혼 후에도 키코 비는 상냥하고, 순종적이며, 애교 있게 굴어서 시부모의 환심을 샀다고 한다.

아키히토 덴노의 숙모 지치부노미야 세츠코(秩父宮勢津子) 비[15]는 자녀를 낳지 못하여 후미히토 친왕을 손자처럼 귀여워했는데, 훗날 후미히토 친왕의 아내가 된 키코 비 또한 귀여워했다. 세츠코 비는 자신이 오랫동안 맡고 있었던 결핵예방협회 총재의 자리를 키코 비에게 물려주기도 했는데, 자신과 마찬가지로 귀국자녀이며 친왕의 아내인 키코 비에게 많은 동질감과 친근감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세츠코 비가 1995년 사망하자, 지치부노미야 부부가 살던 저택은 아키시노노미야 일가가 물려받아 거주하게 되었다.

그러나 황실 생활과 시집살이고충이 아주 없을 수는 없는지, 차남 일가의 시종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간간이 흘러나온다. 키코 비가 대외적으로는 항상 미소를 지으며 상냥하게 말하지만, 집안에서 시종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만만한 대상이 시종들일 것이다. 참고로 키코 비의 미소는 일명 키코 짱(ちゃん) 스마일 모 만화 이름이 생각난다면 기분 탓이다 이라 불리며 유명한데, 사진들을 보면 젊은 시절 해맑고 순수하던 미소가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억지스럽고 이상하게 변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7. 자녀

8. 히사히토 친왕의 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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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히토 친왕의 출산을 앞두고서 찍은 아키시노노미야 일가의 가족사진. 당시 큰딸 마코 공주가쿠슈인 여자 중등과 3학년, 작은딸 카코 공주가쿠슈인 초등과 6학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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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사히토 친왕을 낳고 아이쿠(愛育) 병원[16]에서 퇴원하는 키코 비와 후미히토 친왕. 키코 비는 늙어가는데, 후미히토 친왕은 머리만 빼놓고 얼굴은 그대로다. 혹시??

황태자 부부의 무남독녀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를 염두에 둔 여제 논의가 한창일 때 키코 비의 셋째 임신이 발표되었고, 2006년 9월 6일 오전 8시 27분, 아이쿠 병원에서 히사히토 친왕을 낳았다. 1965년 후미히토 친왕이 태어난 이래로 41년 만의 왕자 탄생이었다. 후계자의 탄생에 일본은 열광했고, 여제 논의는 잠잠해졌다.

이 출산은 일본 황실 사상 최고령 출산으로 기록되었고, 전치태반[17] 때문에 일본 황실 최초로 제왕절개를 하기도 했다. 그만큼 키코 비에게는 여러 모로 힘들었던 출산.[18] 나이도 많고 몸도 아픈 마사코 황태자비에게서 더 이상 아들을 기대할 수 없자, 황실에서는 키코 비에게 아들 출산을 종용했다. 차남 부부에게도 야심이 있었던 듯하고. 히사히토 친왕이 태어남으로써 차남 일가는 엄청난 각광을 받기 시작했고, 황태자 부부와 아이코 공주는… 망했어요

2010년 4월, 히사히토 친왕은 가쿠슈인 유치원이 아닌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유치원에 입학했다. 예상을 뒤엎은 진학에 대하여, 차남 부부는 "다양한 또래 친구들과 적극적으로 교류하기 위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했다.[19] 키코 비가 오차노미즈 여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던 인연도 있고. 3년 후인 2013년 4월에는 역시 오차노미즈 여대 부속초등학교로 진학했다.

아키히토 덴노와 미치코 황후는 손자가 태어나자마자 아이쿠 병원으로 달려왔고, 이후로도 하나뿐인 손자와만 휴가를 함께 보내고 식사를 하는 등 유독 각별한 애정 혹은 편애 을 보여 왔다. 또한 차남 부부는 2013년에 들어서는 히사히토 친왕을 데리고 이세신궁과 역대 덴노들의 무덤을 참배하였고, 오키나와 현의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하여 전몰자 묘역을 참배하기도 했다.

9. 조카 도시노미야 아이코 공주와의 경쟁

아이코 공주가쿠슈인 초등과 2학년 말기이던 2010년 3월[20]부터,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여 한동안 등교를 거부한 적이 있다. 학우들의 난폭한 행동황녀를 괴롭히는 비범함이 두렵다면서 복통과 불안감 등을 호소하며, 아이코 공주는 조퇴와 결석을 반복했다. 이에 마사코 황태자비는 적응장애와 우울증으로 칩거하고 있던 와중에도, 딸과 등하교를 함께 하고 수업을 참관하는 등 각별하게 신경을 썼다. 궁내청과 가쿠슈인 초등과 측은 애써 별일 아닌 것처럼 표현했지만, 황태자 부부와 아이코 공주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하다.[21]

하지만 2013년 알려진 것에 따르면, 초등과 6학년이 된 아이코 공주는 학교에 잘 적응하여 매우 우수한 성적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이는 여러가지 면에서 키코 비에게 심적인 부담을 안겨 줄 가능성이 높다. 일단 히사히토 친왕의 성적이 아이코 공주보다 뒤쳐지면 황실 내에서 "차차기 황위 계승권자의 어머니가 되어 아들 교육을 어떻게 했느냐?!"라는 비난이 쏟아질 수 있고[22] 학업 성적이 우수하고 점점 어머니를 닮아가고 있는 아이코 공주의 인기가 히사히토 친왕을 추월하게 된다면, 그것만큼 황위 계승에 위협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기사에 따르면, 키코 비가 히사히토 친왕의 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황태자 부부가 아이코 공주를 장래 도쿄대학에 진학시키려 하는 듯하기 때문에, 키코 비도 히사히토 친왕을 도쿄대학에 보내려 하리라는 것. 그런데 문제는 히사히토 친왕의 큰누나 마코 공주와 작은누나 카코 공주가 제 아비를 닮아 공부를 지지리도 못했고[23][24], 키코 비도 형님 마사코 황태자비에 비해 학력과 경력에서 부족하다는 것이다. 학력 높은 부모의 아이가 부모를 따라 학력이 높아질 가능성이 더 높다는 연구결과도 있으니, 키코 비의 바람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은 반반이다.

10. 남동생의 이혼

남동생 슈가 아내의 부정행위로 인해 이혼했다고 한다. 슈는 2006년 4월, 타시로 마사미(田代麻紗美)라는 여성과 결혼했다. 이 결혼은 속도위반이라는 말도 있다고. 마사미는 소마 나카무라(相馬中村) 신사의 제관(祭官)인 타시로 세이신(田代誠信)의 장녀로 보조 제관이었는데, 수의사인 슈는 후쿠시마 현 이와키 시의 한 목장에서 일하다가 마사미를 만났다고 한다.

그러나 마사미는 도호쿠 대지진 구호활동에서 알게 된 한 남성과 깊은 관계가 되었고, 5살짜리 딸도 제대로 돌보지 않고 방임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결국 슈와 마사미는 이혼하고, 딸은 슈가 키우게 되었다고.

후쿠시마 현 소마 시는 지방의 좁은 지역사회이며, 소마 나카무라 신사는 역사와 전통이 오래 된 신사. 게다가 마사미는 퍽 화려한 외모의 여성이라는 듯. 때문에 마사미의 행동은 단번에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고, 지역 주민들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아 마사미는 신사의 제사에 일절 참가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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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비공식적으로 '키코 왕자비'라고도 하나, 정식 명칭은 '아키시노노미야 키코 비'이다.
  • [2] 네이버에서는 결혼 전 이름으로 프로필이 기록되어 있다. 형님 마사코 황태자비도 마찬가지.
  • [3] 결혼 전의 성씨는 스기모토(杉本). 스기모토 가문에는 하급 사무라이가 하나 있었다고 한다.
  • [4] 그 때문에 귀국 후 일본어가 서툴러 고생했다고도 한다.
  • [5] 기자회견 자리에서 "지금의 남편이 첫사랑이신가요??"라는 질문을 받자, 키코 비는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다가 "네."라고 대답했다고.
  • [6] 후미히토 친왕은 마음에 드는 여학생을 발견하면, 꼬붕을 시켜(…) 그 여학생을 동아리에 가입시키도록 했다고 한다. 키코도 그러한 여학생들 중의 하나였다고. 물론 세간에는 '테니스 클럽'이니 '자연문화연구회'니 하는 이름의 동아리로 알려졌다.
  • [7] 시할머니 고준황후(나가코)도 황태자비 시절, 장갑 때문에 자신의 시어머니 데이메이 황후(사다코)로부터 꾸중을 들은 적이 있다.
  • [8] 당시 가쿠슈인 초등과 6학년이던 마코 공주와 3학년이던 카코 공주에게는 첫 해외 순방이었다.
  • [9] 후미히토 친왕이 178cm, 키코 비는 162cm라고. 실제 후미히토 친왕은 現 일본 황실에서 가장 키가 크다. 윤상?
  • [10] 황실과 갈등하며 심신의 병을 앓아 오랫동안 공무를 하지 못하고 칩거한 형님 마사코 황태자비와 대조적으로, 키코 비는 공무를 열심히 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히사히토 친왕을 낳은 후 차남 부부는 더욱 이런저런 공무 자리에 얼굴을 내밀며 존재감을 높이고 있으며, 마코 공주카코 공주도 자라면서 점점 부모의 공무에 동반하는 일이 늘고 있다.
  • [11] 방 3개에 거실(living room), 식당(dining room), 주방(kitchen)을 갖춘 집. 당시 가와시마 일가가 살던 집이 작아서, 혼수품을 놓아둘 공간이 없어 애먹었다고 한다. 시어머니 미치코 황후처럼, 키코 비도 혼수깨나 들고서 시집갔다고.
  • [12] 딸만 둘을 낳아서 구박을 받았다고 한다. 작은며느리라서, 큰며느리인 형님 마사코 황태자비보다는 압력이 덜했지만.
  • [13] 아키히토 덴노의 사촌 동생 故 다카마도노미야 노리히토 친왕의 아내. 노리히토 친왕은 생전에 황태자 부부와 친밀하게 지내며 많은 도움을 주었다.
  • [14] 본래 일본 황족들은 모두 가쿠슈인에서 공부했지만, 근래 들어서는 다른 학교를 택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 [15] 다이쇼 덴노의 둘째며느리로, 이방자 여사의 이종사촌 여동생이기도 하다. 아이즈 번의 마지막 다이묘를 지낸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의 손녀.
  • [16] 도쿄에 있는 산부인과소아과 전문 병원으로, 일본 최고의 산부인과ㆍ소아과ㆍ마취과 의료진들이 동원되어 출산했다고 한다.
  • [17] 표면적인 이유는 전치태반이지만, 사실은 사주팔자를 맞추기 위함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 [18] 키코 비가 부인과 질환이 심한 상태였고, 일본에서 그녀를 거쳐가지 않은 산부인과 의사가 없다는 소문도 있다. 때문에 차남 부부의 낙태설이나 후미히토 친왕의 바람 이야기가 더욱 신빙성있게 비추어지는 듯.
  • [19] 항간에는, 조총련계 스파이가 가쿠슈인의 교직원이어서 차남 내외가 가쿠슈인을 피했다는 카더라도 있다.
  • [20] 일본에서는 4월에 새 학년이 시작되므로.
  • [21] 일각에서는 아이코 공주 이지메 사건의 배후에 숙모인 키코 비가 연루되어 있다는 카더라도 있다. 굳이 그것이 아니더라도, 히사히토 친왕이 장래의 황위 계승자로 각광을 받는 것과 반대로, 장래 여제가 될 것으로 주목받다가 히사히토 친왕의 탄생으로 찬밥 신세가 되어버린 아이코 공주의 처지를 나타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 [22] 일본에서는 친인척 간에 성적을 비교하는 것이 심하다고 한다. 한국도 남 말할 처지가 아니긴 하다만 더구나 키코 비의 두 딸 마코 공주카코 공주는 성적이 좋지 않았고(…) 이미 대학에 입학했기 때문에, 자녀들 중 아이코 공주와 성적 대결을 할 아이는 아들 히사히토 친왕밖에 없다.
  • [23] 후미히토 친왕은 1984년 4월 가쿠슈인 대학 법학부 정치학과에 입학하였는데, 그의 성적이 커트라인이 되어 그해 가쿠슈인 대학의 입학생이 많았다고도 한다. 장녀 마코 공주는 특별 전형으로 국제기독교대학 교양학부 예술과학과에, 차녀 카코 공주에스컬레이터 식 진학으로 신설학과인 가쿠슈인 대학 문학부 교육학과에 입학했다. 두 공주의 진학에 대해 학교와 궁내청에서는 "일반 수험생들과 같은 조건으로 경쟁하여 선발되었다. 경쟁률은 결코 낮지 않았다." "(하필 카코 공주가 입학하는 해에 교육학과가 신설된 것에 대해)예전부터 개설을 준비하던 학과인데 우연히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지만…
  • [24] 하지만 마코 공주가 졸업한 국제기독교대학은 옛날부터 입학 후에도 수업 난이도(특히 영어)가 매우 높아, 신입생들이 캠퍼스의 낭만은커녕 피터져라 공부만 하기로 유명한 곳이다. 가쿠슈인에서의 보장된 편안한 대학생활을 내던지고 굳이 국제기독교대학을 택한 것을 보면, 정말로 공부에 흥미가 없고 머리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도쿄대학보다는 훨씬 쳐지지만 국제기독교대학은 편차치나 학교 평가 면에서도 가쿠슈인 대학보다 항상 높게 랭크되는 명문대이다. 한국에서는 인지도가 별로 높지 않은 듯 보이나, 일본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악명높은 입학시험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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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27 10:5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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