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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last modified: 2015-04-06 17:32:40 by Contributors

KBS 대하드라마
왕과 비 태조 왕건 제국의 아침
tjwnggn.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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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개요
2. 비판
2.1. 작위적 전개
2.2. 화수를 늘리기 위한 무리한 전개
2.3. 지나치게 단순해진 캐릭터
2.4. 삼국지연의 차용
2.5. 고증
2.5.1. 제국이라는 표현에 대해
3. 미디어믹스(?)
3.1. 만화 태조 왕건
3.2. 태조 왕건 - 제국의 아침
3.3. 천년의 신화(?)
4. 세 주인공
4.1. 왕건 측 인물
4.2. 궁예 측 인물
4.3. 견훤 측 인물
4.4. 신라측 인물
4.5. 기타 인물


1. 개요

태조 왕건 오프닝.[1]

KBS 1TV에서 방송한 전 사극. 2000년 4월 1일 ~ 2002년 2월 24일까지 방영. 대한민국 사극 역사상 최초로 후삼국시대를 다루었다.[2] 이환경 작가의 작품. 본격 주인공이 주인공같지 않은 드라마. 하지만 진짜로 주인공이 주인공같지 않은 드라마는 이것이 최강. 총 200회.

왕건 역은 최수종이 맡았으며, 견훤 역에 서인석, 궁예 역을 김영철[3]이 맡았다.

이전까지 청춘스타의 이미지가 강했던 탓에 최수종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지만[4] 무난하게 소화하면서 이후 오히려 최수종은 사극 주인공 역할을 많이 맡게 되었다.[5][6] 방영 전 광고영상에서 최수종이 비명을 지르는 똥간지를 보여줬다.

초중반에는 궁예, 중후반에는 견훤이 너무 부각되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럭저럭 무난한 성장형 영웅인 왕건에 비해 드라마틱한 면이 많은 궁예나 견훤이 주목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후삼국 시대의 비주류적 인물을 재조명했다는 면에서 호평을 얻었고, 궁중 음모가 주를 이루는 일반적인 사극과 비교하여 전쟁영웅적인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는 후삼국시대를 다루었다는 점이 큰 호평을 받았다. 이후 고려 등 과거사 사극, 주몽 등의 전쟁 사극 위주로 사극 역사를 바꾸는데 아주 큰 물꼬를 틀었다.
또한 인터넷의 활성화로 사극의 고증과 개연성 문제에 대해 일반 시청자들끼리 키배를 뜨는 최초의 사극이 되었다.[7][8]

고등학교 천재교과서의 문학(상)교과서에 2화의 대본 일부가 수록되어 있다.

이어지는 후속작으론 같은 작가가 집필한 제국의 아침이 있다. 고려 4대 광종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지만, 광종을 너무 미화한데다 진행도 하도 루즈해서 전작에 비해 인기는 별로 없었다…. 거기에 전작에서 등장한 인물중 몇몇은 제국의 아침에서도 등장하는데, 전부 배역이 교체되고 태조왕건때와는 전혀 다른 캐릭터성을 보여줘 시청자들에 큰 위화감을 준건 덤이다.
제국의 아침 뒤로는 무신정변기를 다룬 무인시대를 방영하였다. 그러므로 태조 왕건은 고려사 3부작의 시작인 셈이다. 하지만 2부 제국의 아침은 밝혔듯이 시종 루즈한 전개로 망했고, 이환경이 손을 뗀 3부 무인시대는 작품성을 인정받음에도 태조 왕건만큼 화려한 주목은 받지 못했다. 이들 3부작 이후 2005년 신돈, 2009년 천추태후, 2012년무신 등이 고려사를 조명했다.

사실 최초 기획 당시에는 고려사 드라마로만 10년을 갈 예정이었다. 원래 설정이라면 태조 왕건->제국의 아침->천추태후등으로 이어나갈 생각이었을지도 모르겠으나 제국의 아침이 시청률이 너무 저조해서 좀 더 선굵고 남성적인 무인시대로 방향을 틀었으나, 무인시대 이후에는 불멸의 이순신이 편성되는 바람에 4년을 가는 것으로 끝났다.[9]

대규모 물량을 동원하여 전쟁장면을 묘사한 소위 블록버스터 사극의 시초이다.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는 주말 드라마 시청률 1위(60.5%)를 자랑하고 있다. 2위는 파리의 연인(57.4%) 그 다음부터는 50%가 되지 못한다. 2000년대2010년대를 지나면서 미디어의 발달로 전체적으로 드라마 기대시청률이 낮아졌다 보니 앞으로도 태조 왕건의 60.5%가 깨지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여담이지만 정작 이 사극 이후로는 대규모 물량을 동원한 스펙타클한 전투 신을 보기 어려워졌다. 1화에 나오는 전쟁 장면을 찍기 위해 2달에 걸쳐 세트를 지었는데 이걸 하루 만에 홀랑 태워먹었다(…). 그 이후에는 조령 관문을 이용해서 대야성 전투를 찍었는데 역시 화염을 이용하다보니 성 군데군데가 그을리는 바람에 욕을 대차게 먹고(…) 그 이후에는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전투 신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

놀랍게도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펜실베이니아뉴저지주를 비롯해 뉴욕워싱턴 D.C의 일부까지 커버하는 필라델피아의 공영 채널인 WYBE방송(채널 35)에서는 이 드라마가 대박을 치자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려 6시간이나 '태조 왕건 쇼'를 돌려댔다.(초반 클라이막스인 금성이 배경이라고) 한 자원봉사자는 기부행사에서 궁예처럼 한쪽 눈을 가리고 기부 전화를 받기도 했다.(…) 물론 2003년이니 꽤 된 이야기지만, 세계적으로 먹히는 삼국지 오마쥬 사극이었던 것. 대장금보다도 빠른 한류의 선구자라고 할 수도 있다.## # 'Emperor Wang Guhn'이란 제목으로 방영되었다는 증거

그리고 여담이지만 이 사극은 주인공이 마지막화에 죽지 않는 몇 안되는 정통사극이기도 하다. 태조 왕건은 후백제를 멸망시키고 개경에 돌아와 왕건이 신하들에게 환호받는 장면[10]에서 끝이 나며 왕건은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 2화에서 사망한다.[11] 굳이 따지자면 이후로는 대왕 세종 등 결말에서 주인공이 안 죽는 경우가 꽤 늘어났다.

얼마나 대박을 치고 화제가 되었는지는 가족오락관에서 왕건오락관 그러면서 태조 왕건 출연진들만 모은 특집을, 출발 드림팀에서도 왕건 드림팀하면서 태조 왕건 출연진들이 나왔을 정도. 심지어 MBC 주말 예능 브레인 서바이버에서도 직접 드라마 제목만 언급 안 될 뿐이지 출연배우 왕창 데려다가 사실상 태조 왕건 특집을 방영한 적도 있다.

2. 비판

방영 이후 막장 사극이 많아 추억보정으로 많이 미화되었으나 방영 당시에도 많은 비판에 휩싸였다. 주로 작위적 전개와 화수때우기용 에피소드, 지나치게 단순한 캐릭터 등이 많이 지적받았다. 이것은 KBS와 각본가의 전작인 용의 눈물보다 퇴보한 요소로 훗날 다른 전쟁을 다룬 사극에도 그대로 영향을 받는다.

2000년 이후 제작되는 사극의 문제점들이 태조 왕건 스타일을 계속 수용했다는 점에서 현재 제작되고 있는 사극의 문제가 발생한 시발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지금 보면 왕건이 나은 수준이지만(…).

하지만 무엇보다 강조돼야할 부분은 어디서 본 듯한 내용(특히 삼국지연의)에서 내용을 베꼈다는 점이 가장 크다. 그리고 이걸 대조영(드라마)가 그대로 베꼈지

여담으로, 대본에 비문(非文, 문법에 어긋난 문장)이 상당히 많이 쓰였다. 비문이 들어가지 않은 편을 찾기가 힘들 정도. '~라 보여지옵니다'와 같인 이중 피동은 물론이요, '신이 듣건대 ~라 들었사옵니다'와 같은 웃지 못할 문장도 많이 보인다.[12]

2.1. 작위적 전개

현대의 사극이면서도 운명론, 도술같은 요소를 지나치게 끌어들였으며 지나친 우연의 의한 사건 전개가 심했다. 때문에 별로 개연성도 없이 형미는 궁예가 나라를 세우기도 전에 운명을 끌어들여 궁예를 비판하며, 도선이나 석총, 형미 같은 고승들의 모습은 삼국지연의의 좌자우길같이 묘사되었다. 또한 현지의 전설에 따라, 꿈에서 나온 도인의 말대로 견훤이 지렁이로 괴질을 고치는 고소설급의 막장 에피소드가 있다. 다만 이런 개입들은 시청자 취향 나름이라는 평가도 많았다.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남북국 시대 말~후삼국시대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미륵신앙과 풍수지리설에 기초한 온갖 예언과 도참/비기, 운명론에 기초한 각종 반정부 세력들의 발흥이 나타난 시기라는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적절하게 작품에 반영하였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도참설, 운명론은 실제로는 상당한 정치적 함의를 가진 것들이었고, 그것을 당대의 언어로 표현한것 뿐이다. 중세인들이라고 그렇게 미신적이지만은 않았다. 그런데 이 사극은 '진짜 운명론'을 주장했다는게 문제다.

2.2. 화수를 늘리기 위한 무리한 전개

넣을 내용이 없다 싶으면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의 시트콤식 개그장면이나 왕건의 부인들이 걱정하는 모습[13]으로 시간을 때웠다.

다만 이 부분은 어느 정도 변호를 해줄 수 있는데, 일단 아자개의 경우 극 중반부까지만 등장하는데다[14] 정통 사극인 관계로 시종일관 진지하고 경직되어있는 분위기를 완화하는 데 적지 않게 활약하여 많은 인기를 얻었다. 실제로 아자개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현재 상주 지역의 영농조합법인의 이름은 아자개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또한 왕건의 부인들이 걱정하는 장면은, 물론 쓸데없는 군더더기가 많긴 하지만 전장에 나가 있는 왕건의 상황을 황궁에서 볼 때의 시각으로 다시한번 해설해 주며 빠진 부분이나 앞선 화면들에서 전달이 미흡했던 부분을 보완해준다. 또한 갑작스럽게 공간적 배경이 전환될 경우에도 쓰인 장면이 많은데, 예를 들어 신라의 조정이 등장해야 할 경우 그냥 신라 조정의 모습을 보여주기보다 왕건의 부인들이 신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을 넣고. 그 다음에 서라벌 왕궁을 비추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2.3. 지나치게 단순해진 캐릭터

현재까지 정통사극의 주류를 이루는 주인공느님 대 사악하고 멍청한 적 구도가 이 작품에서 완성되었다. 물론 사서에서도 왕건 찬양을 위해 자주 이용하는 방식이기는 했으나, 주변인물도 개성이 없는 경우가 많고 주인공이나 주변 인물이나 욕망에 휘둘리고 번뇌하며 나쁜면도 가감없이 보여줬던 용의 눈물과[15] 달리 진지한 능력자와 개그캐릭터, 열폭하는 악역이라는 단순한 패턴만 남았다. 최수종의 연기 자체는 호연이었지만 왕건이란 캐릭터 자체는[16] 성인군자로 고정되어 실제 행적과는 상관없이 욕망에 초탈한 선인이 되고 악행은 본인이 꺼리는데 주변 사람들이 밀어붙인걸로 처리되거나 아예 생략해버리는 전개가 많아졌다. 이 부분은 이후 거의 모든 사극에 충실하게 계승되어 고질적인 문제점이 되었다. 이후 반역전에 오른 난신적자들의 이야기인 무인시대를 제외한 사극들은 방송사, 시간대, 퓨전, 정통 불문하고 거의 예외없이 이 루트를 밟았다.[17] 이환경 본인도 연개소문과 무신에서 이런 전개가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자신을 배신하고 후백제로 투항한 호족의 가족들을 참살하라고 왕건이 명령을 내리는 냉혈한 모습을 보여주긴했다.# 심지어 극중에선 이때의 왕건을 궁예와 비교하는 대사까지 나왔다. 어쨌든 후기작에 비하면 미화의 강도가 낮은편이라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한없이 착하고 무르기만 한 캐릭터에 억지로 역사에 등장하는 냉정한 일면을 쑤셔넣으니 제대로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입체성이 부족한 캐릭터가 문제였다.

어쨌거나 태조 왕건에서 왕건 및 고려쪽 인물들이 대체적으로 삼한통일을 위해 일치 단결된식으로 좋게 묘사하다보니[18] 바로 다음 후속작인 제국의 아침에서 고려의 왕자들과 호족들이 피튀기는 권력투쟁을 이어가는 것을 보고 괴리감을 느낀 시청자들이 많았다.

2.4. 삼국지연의 차용

삼국지연의의 패러디 같은 장면이 너무 많았다는 비판도 있다.

우선 왕건과 신숭겸, 박술희가 맺은 의형제도원결의와 너무 흡사하며 심지어 이미지도 비슷하다. 그에 따라 자동으로 복지겸조운의 이미지로…중간에 죽는 책사 태평은 당연히 공명의 이미지. 그리고 최응곽가의 이미지...왠지 왕건 빼고 다 일찍 죽는 것 같다.


나중에 팔공산전투에서 사망한 신숭겸의 수급을 견훤이 보는데 수급이 담긴 상자의 뚜껑을 열자 눈을 부릅뜨고 견훤을 노려다보는 신숭겸의 수급도 삼국지에서 조조가 관우의 수급을 보고 식겁하는 장면과 같다. 심지어 옆에서 최승우가 속았다며 하는 말이 '고려 왕은 언월도를 잘 쓰지 않는데 어젯밤 고려 왕은 줄곧 언월도를 들고 있었사옵니다.'였다.[21][22]

또한 문신이 참모가 되어 전쟁상황에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계략을 짜는 것도 삼국지의 군사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승우나 최응 같은 문신들이 제갈량 비슷한 모습이 되었다.

후삼국시대가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행간을 채워넣기 위해 삼국지를 차용한 것으로 보이나 너무 지나치게 따라하다 보니 눈에 밟히는 부분과 모순이 적지 않다.

그런데 '삼국'임에도 신라가 너무 약하고 망조가 든데다 비중도 별로 없다보니(…) 신라는 오나라보다는 망해가는 후한에 더 가까운 입장이 되어버렸다. 사실 후삼국시대의 후고구려와 후백제가 신라에서 갈라져 나온 걸 생각해본다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리고 무력(武力)과 인덕(人德)의 대비가 극명한 견훤과 왕건의 대립은 삼국지보다는 초한지와 닮아있다.

2.5. 고증

고증 측면에서도 비판을 많이 받기도 했는데 신라 말이라는 배경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에 가까운 건축양식을 보이며, 시대와 국가의 양식이 뒤섞인데다, 허술해보이는 재질의 갑옷이나 인건비를 아끼려다 보니 지나치게 늘어난 야간전투, 창 대신 검을 휘두르는 기병이 등장한다. 진형의 개념은 무시되었고 전투마다 난전이나 삼국지연의를 연상시키는 일대일 대결 장면으로 해결하는 장면 등은 먼저 방영된 삼국기용의 눈물 등의 전투신보다 퇴보한 것이다. 이것은 태조 왕건의 영향을 받은 다른 사극들이 고치지 않고 답습하여 작품의 질을 떨어뜨리게 된다.
다만 세트 고증의 문제는 사실 세트장을 문경안동에 거창하게 지어놨는데 고증이 맞지 않다고 또 허물고 다시 지을 수는 없기 때문에 이 후 사극들은 잘(?)지어놓은 기존의 세트장을 이용하게 되고, 고증의 문제는 고쳐지지 않고 하는 무한반복의 형태다.

몇 안 되게 남아있는 사서 내용마저 대놓고 무시하거나, 일부 장수들은 너무 일찍 리타이어시켰다. 후백제 계열 인물들 중 몇몇은 끝이 유야무야해 나오지 않거나 다르게 전개되기도 했다. 초기 멤버인 추허조는 배우 강재일가 견훤의 배우 서인석숙소에서 폭력사태마찰이 있어 12년이나 빠른 대야성 공략전에서 전사해버렸고 이어 꽤 비중있던 공직, 지장형 에이스가 될 신강 등은 어느샌가 사라져 나오지 않는다. 사실 이것은 배우들의 문제가 겹친 것으로 신강은 그 역을 맡은 故 태민영이 간암으로 별세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출연이 없고, 공직 역의 이정웅도 건강 문제로 중도 하차해 대사상 전사 처리되었다고 한다. 공직은 적절한 시점에 고려와 후백제를 각각 배신함으로서 후삼국 시대의 구도를 흔들어놓은 장본인인데도 배우 문제로 하차해 후반부 내용이 중심을 잃는 모습이 보인다. 덕분에 신강은 견훤이 얻기 위해 1화를 꼬박 소비해 버리고서 그 뒤부터는 아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몇몇 캐릭터의 미화도 문제가 되는데 궁예, 환선길, 이흔암의 최후 등이 대표적인 예. 근데 궁예, 환선길, 이흔암은 '폄하됐다'라고 얼마든지 해석할 수 있는것이고 솔직히 이 정도의 재해석은 요즘 사극에 비하면 양반이라는 평도 있다. 그리고 궁예는 궁예 항목에서 보듯 궁예의 죽음을 미화하고 있는 민담이 실제로 존재하니 무조건적인 미화라고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따지고보면 궁예에 대한 묘사가 일방적인 미화라고 하긴 뭣한게, 그를 간지폭풍으로 묘사하는 한편으로, 그 잔혹함과 광기도 묘사했다. 그리고 최후를 맞은 이후 내레이션으로 정사에서 궁예의 죽음이 어떻게 묘사되었는지 제대로 설명해주기도 했다.

용어 사용에서도 오류가 있다. 먼저 나레이션에서 자꾸 '실록' 드립을 치는데, 고려왕조실록은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고 알려져 있다(…). 《고려사》는 실록이 아니라 정사(正史)이다. 전통적인 사서에서 실록과 정사는 분류 자체가 다르다. 사서에 속하는 서로 다른 서브카테고리라고 보면 된다.

또 '마마'라는 호칭도 문제. 극중에서 계속 '황후 마마'라는 등의 용어가 쓰이는데, 이는 고려 후기 의 간섭을 받으면서 들어온 중국어 '媽媽('엄마'라는 뜻)'의 영향을 받아서 생긴 말이다. 마마 대신 폐하라 하는 것이 옳은데, 동일 작가의 후속작 제국의 아침에서도 그대로 '마마' 호칭을 써먹는다.

Goryofac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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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노숙패이수 라는 갑옷이오
드라마 제작 당시 갑옷(…?)으로 인터넷상 고려패딩 이라느니 혹은 머리에 이글루(…)를 쓴 고려 장수라고 돌아다니는 짤이다. 1화의 장면으로 궁예군(미륵군)의 철원성 함락을 다룬 화로 철원성 전진방어 기지의 신라측 장수들이다. 이후 닥돌해오는 궁예군에게 '활을 쏴라', '공격하라!'를 외치며 방어하다가 불타는 세트장과 함께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참고로 중앙의 장수분은 항복을 권하러 온 사신을 활로 쏴죽여 궁예군의 분노를 한층 업그레이드 시킨다.(...) 그외에도 철(비늘)갑옷을 묘사했지만 자세히 보면 고무로 철갑을 만들어 놓는등 재밌는 고증이 몇몇 보인다.

2.5.1. 제국이라는 표현에 대해

KBS 대하드라마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작품으로 이후의 사극들이 황제와 제국, 폐하와 같은 단어를 남발하게 만든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극중에서 신라, 후고구려, 후백제에서 자기 국가 안에서 황제, 폐하라는 호칭을 사용했는데 이것은 역사적인 사실과 다른 부분이 일부 있다.

물론 외왕내제 식으로 경쟁국가의 군주는 황제라고 안 부르고 왕이라고 부르면서 황제 논란을 약간 비껴나가긴 했지만 여하튼 이 작품 이후로 조선시대 이전을 배경으로 한 사극에서 제국의 호칭이 남용되기 시작한 게 사실. 단, 폐하는 오류가 아니다. 실제로 고려 이전의 문헌을 보면 폐하라고 부른 예가 여럿 발견된다.[23] 가끔 환빠 싫어하는 사람들이 폐하에 태클 거는 경우들이 있는데 이는 과도한 태클이다. 어설프게 태클 걸었다간 환빠들한테 역습당하기 좋으니 주의하자. 백제의 금석문에도 '대왕 폐하'라는 말이 나온 예가 있고 김부식이 쓴 글에도 성상 폐하(聖上陛下)라는 말이 버젓이 나온다. 다만 대놓고 '황제'라고 했던 때는 고려 광종, 경종 시대 정도에 국한되는 것으로 보이고[24] 다른 때는 태왕이나 대왕 등 '왕'이 들어간 칭호를 사용했다고 봐야 할 듯. 참고로 '제국'이니 '왕국'이니 하는 표현들은 근대 이후에 서양의 empire, kingdom 등을 번역하면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전근대에는 보기 힘든 표현이다.

3. 미디어믹스(?)

3.1. 만화 태조 왕건

동명의 만화. 작가는 강기연.

애초에 패왕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듯 하지만 인기가 없어서 궁예의 이야기가 나온 후 묻혔고, 후에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다시 연재를 시작한 듯 하다. 2권 마지막 화부터 그림체가 완전히 달라졌다.

패왕에서는 왕건의 할아버지 작제건의 모습이 나오고 왕건이 어릴 때 도선대사를 만나며 궁예가 자기의 정체를 알고 광분하는 등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만 다시 연재된 이후에는 드라마와 별 다르지 않은 행보를 보인다. 물론 드라마와는 다르게 견훤의 경우 수달과 1:1 데스매치를 무려 하루종일 벌이면서 겨우 아군으로 끌어들이고 최견, 최필, 종훈 등의 캐릭터가 백제 건국의 기반이 되는 모습이 나오고 궁예의 경우 부하로 나오는 신훤이 같은 줄의 스님이었고 서로 연적 다툼을 하는 모습, 미륵으로 각성하는 모습 등에서 드라마와 큰 차이를 보이긴 한다. 중반 이후 거의 궁예에 관련된 사건과 내면 갈등이 나오는데 상당히 볼 만 하다.

견훤이 수달, 추허조 등과 도원결의를 하는 모습이나 양길의 휘하에 은부, 복지겸, 환선길, 이흔암 등 드라마와 똑같은 구성을 보이는 모습, 양길의 딸이 궁예에게 반하는 것, 종간의 역할 등에서는 드라마와 거의 같다. 다르다면 전투가 거의 장수 한 명의 활약이나 일기토로 끝나는 건데 이건 만화의 특성상 어쩔 수 없지만. 거기다 마지막에 신숭겸, 박술희가 갑자기 나타나서 유금필과 대결하고 유금필이 왕건에게 부하가 되기를 자청하는[25] 고속 전개를 보이더니 결국 궁예와 왕건이 만나는 부분에서 연중.

그래도 패왕으로 연재하던 시절 견훤 초기의 부하로 추허조와 능환이 나오는 걸로 봐선 드라마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수도 있다. 포지션도 무식한 맹장 스타일의 추허조와 모사 타입의 능환이었으니까. 계속 연재되었으면 괜찮았을 만화겠지만 학습만화가 아닌 이상 역사 만화는 한국에선 마이너 장르다.

3.2. 태조 왕건 - 제국의 아침

제국의 아침(게임) 항목 참조.

3.3. 천년의 신화(?)

감마니아의 RTS 게임 천년의 신화는 원래 진짜 삼국시대를 다루는 게임이였지만 드라마가 방영되고는 여기에 드라마 등장인물들을 베이스로 한 영웅 캐릭터를 추가하고는 고구려 진영과 조합해서 '고려'란 이름으로 추가하고 나름대로 새로운 게임으로 내놓았다.

영웅 캐릭터들은 단순 베이스 수준이 아니고 이 드라마의 배우들을 그냥 복붙한 수준으로 만들었으며 결정적으로 진영 자체는 고구려의 재탕일 뿐이였다.[26] 거기다 추가 미션도 꼴랑 4개[27]밖에 없으며 이 마저도 드라마에서 가장 주목받은 순간들을 우려먹은 독창성이라곤 없는, 말 그대로 드라마가 흥하니 편승해서 팔아보자는 식으로 만들어진 날림이였다.

그래도 반대로 기존 진영을 우려먹었기 때문에 기존 게임의 밸런스는 크게 해치지 않았고 새로 추가된 영웅들이 개성이 강해서 쓰는 맛은 있는 편이다. 여하튼 큰 반향없이 조용히 사라졌다.

4. 세 주인공

4.1. 왕건 측 인물

4.2. 궁예 측 인물

4.3. 견훤 측 인물

4.4. 신라측 인물

4.5. 기타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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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잘 보면 재밌는것이 있는데, 이야기가 흐를수록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진다. 모습뿐 아니라 표정도 달라지는데, 예로 들어 초반부의 궁예는 낡은 승복에 칼을 메고 인자한 미소를 짓다가 이야기가 흐를수록 옷은 화려해지지만 표정이 점점 굳어져가는데, 궁예라는 캐릭터의 변화를 잘 보여주는 연출이다.
  • [2] MBC도 후삼국시대를 다룬 사극으로 맞불을 놓으려 했다가 그만두었다고 한다.
  • [3] 캐스팅 할 때 이덕화도 거론되었으나, 당시 궁예의 재해석을 하려 했던 제작진은 너무 요승 같은 이미지로 나올 것 같아 김영철을 캐스팅했다고 한다. 당시 이덕화의 사극 대표작은 한명회였다. 결과적으로 김영철이 재해석된 궁예를 훌륭히 연기했으므로 신의 한 수가 되었다.
  • [4] 캐스팅 전에 세 후보 가운데 하나였다. 나머지 두 명은 노영국과 윤승원이다. 영국은 연기력이 탁월했지만 나이가 많아서(당시 49세, 청년 역은 무리였다.), 승원은 당시 연기를 오래 쉬고 있었고 사업실패로 구설수를 들었던 시기이기 때문에 캐스팅되지 못했다.
  • [5] 궁예가 살아있는 때는 궁예 역의 김영철의 연기력과 비중에 가려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궁예의 죽음 이후부터 견훤과 대립하면서 캐릭터가 분명해지고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 [6] 1962년생이지만 동안이라 10대 후반 시절부터 커버하는 것이 가능한데다 어쨌든 중년이니 중년 가능(…), 게다가 연기력도 어느 정도 이상으로 보장되어 있어서 적응도가 높았다.
  • [7] 이 항목에 나온 태조 왕건에 대한 비판들은 그 당시에 이미 게시판에 올라온 것들이다.
  • [8] 방영할 때에는 스케일 큰 사극이 보기 드물었으므로 인터넷 게시판에도 태조 왕건에 대해 옹호적이었고, 고증을 다소 무시하더라도 재미를 추구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대세였다. 그리고 이런 반응은 드라마 제작자들에게 잘못된 신호를 주어 수많은 막장 사극이 범람하는 원인이 된다.
  • [9] 당시 KBS 정연주 사장의 성향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무인시대가 후반부부터 그런 이야기가 KBS게시판에서부터 시작되어 인터넷 여러 곳에 퍼졌으나 불멸의 이순신이 흥하면서 묻혀버렸다. 이런 글 특성상 그럴 듯하면서도 실질적인 근거 자체는 부족(참고로 고려사 계획을 승인한 당시 KBS 사장직을 역임하던 박권상 사장은 정연주의 동아일보 선배였고, KBS 사장이 되기전에 시사저널 주필직을 지냈다.)하기 때문에 그런 얘기도 있다 정도.
  • [10] 원래대로라면 뒷이야기인 신검과 견훤의 최후를 당겨서 보여주느라 왕건의 귀환신의 시점이 헷갈리게 한다.
  • [11] 사망 직전 회상신에서 태조 왕건의 마지막 장면을 그대로 가져다 쓴다.
  • [12] 당연히 '~라 하옵니다'라 해야 한다.
  • [13] 말 그대로 그냥 걱정만 한다(...).
  • [14] 물론, 극의 극후반부. 견훤이 고려로 귀부하는 장면에서 재등장한다. 다만 이 때는 '시트콤식 개그장면'과는 거리가 멀기에, 논외.
  • [15] 용의 눈물의 이방원은 업적도 잘 묘사되지만 이거이를 협박하기 위해 방석의 기생첩을 죽여버리는 등 필요하다면 죄없는 사람도 죽이고 누구도 믿지못해 독화살 맞은걸 이용해 주변인들을 떠보고 권력에 대한 욕망도 미화없이 드러났다.
  • [16] 그나마 궁예는 얼마 안되는 기록속의 복잡한 면모가 배우의 호연과 합쳐져 제법 잘 드러났고 견훤도 저돌적이고 대가 센 모습이 대부분이었지만 용맹하고 호탕한 무장군주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정작 그 둘을 찜져먹은 왕건은 마냥 성인군자로 묘사되었다.
  • [17] 기성작가들 말고 젊은 축에 드는 작가들도 이러한 실수를 반복했다. 대표적으로 불멸의 이순신과 대왕 세종의 윤선주. 그녀가 만들어낸 이순신과 세종은 욕망에 초탈하고 이상을 추구하며 가슴에 상처를 간직한 동일한 캐릭터성을 보였다. 그리고 여기에 역사왜곡까지 겹쳐 오지게 욕 먹었다. 불멸의 이순신은 김명민의 호연과 때마침 터져준 일본의 독도 망언 버프로 흥행했지만 대왕 세종은 채널이동크리로 망했다.
  • [18] 아예 없는건 아니고 후반부에 왕식렴홍유, 유금필의 갈등이 나온적이 있다.
  • [19] 시청자들의 비판이 있자, KBS는 기상청까지 동원해서 나주에는 동남풍도 불기 때문에 표절은 아니다라고 했다. 게다가 나주 전투 이후 갈대밭에서 견훤이 고려군의 매복을 만나 고생하는 장면은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패한 뒤에 겪은 그 고생과 판박이인데다 그 매복군을 이끈 건 신숭겸, 신숭겸=관우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더구나 견훤이 퇴각하면서 자기라면 그 갈대밭 즈음에 매목군을 두겠다고 하며, 거기까지는 왕건이 생각하지 못했는가라고 말하고 나서 곧이어 신숭겸이 이끄는 매복군을 만난 것은 완전히 적벽대전에서 퇴각하는 조조의 행동과 판박이 수준이다.
  • [20] 이쪽은 아예 '하후돈이 그랬다는데 맞는 말이다'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물론, 금강이 눈을 잃었다는 설정은 허구.
  • [21] 삼국지를 지나치게 차용한 것은 틀림없으나, 이 평가만은 지나쳤다. 조조가 관우의 목을 보고 놀라는 것은 오랫동안 아꼈던 사람의 죽음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충격을 받은 것인 반면, 견훤이 신숭겸의 목을 보고 놀란 것은 틀림없이 '왕건 아우'의 목일 거라고 여겼던 것이 실은 전혀 엉뚱한 사람의 목임이 밝혀졌기 때문. 즉, 서로 전혀 다른 상황이다. 적국의 왕이나 장수를 베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수급을 베어오는 것이고, 예상과는 달리 전혀 엉뚱한 사람의 수급이 도착하여 놀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 [22] 앞의 각주의 반론은 타당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비판이 있는데 이 장면 전까지 신숭겸은 언월도가 아닌 검을 주로 썼다. 그런데 갑자기 언월도를 쓰기 시작한 것. 게다가 초반에 "능산"일때 다른 사람들과 어느 정도 비슷하던 길이의 수염이 어느 순간부터 점점 길어지기 시작한 걸 보면 관우의 이미지를 차용안했다고 보기 거의 불가능하다. 사소한 포인트지만 신숭겸이 죽는 전투에서 그는 녹색옷을 입었는데 이마저도 대중문화에서 관우의 이미지와 비슷하다.
  • [23] 고려 이전의 문헌에 전하로 쓴 예들도 있지만, 원문에 폐하로 적혀 있던 것들을 고려 원 간섭기 이후에 필사 과정에서 전하로 고쳤을 가능성이 크다. 왕을 부르는 호칭으로 폐하와 전하를 혼용했을 리가 없으므로 '전하'라고 돼 있는 본은 후대에 고친 걸로 봐야 할 것이다.
  • [24] 고려사에 광종이 개경을 황도로 부르게 했다는 기록이 있고, 경종 시대에 '황제'가 기재된 금석문이 발견되긴 했다. 이후 고려사 기록에 성종 때 왕의 명령을 교(敎)라고 낮춰 쓰도록 조치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때 황제 칭호를 폐지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후 국왕이 황제라는 칭호를 복구시켰는지 여부는 불확실하다. 다만 칭호는 강등시켰더라도 원 간섭기 이전까지는 '폐하' 등 황제에 준하는 표현들을 계속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 [25] 이 혼란한 시대에 젊은 피를 수혈하자는 왕건의 대사는 나름 간지 나긴 한다.
  • [26] 영웅들만 다를 뿐, 나머지는 완벽이 복붙이었다. 다만 광개토대왕이 없어서 공간의 문을 못만들 수 없는게 또다른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 [27] 금성(나주) 점령, 고려 건국(궁예 축출), 공산 전투, 일리천 전투(후백제 멸망)들을 소재로 한 미션들이다.
  • [28] 고려의 시중 벼슬에 있는 원로대신으로 왕건의 역성혁명 이전부터 관직에 몸을 담아왔던 인물이다. 왕건이 즉위한 이후에 시중에 임명되는데, 상당히 유한 성격의 소유자. 왕건의 장인들을 비롯한 원로대신들이 하나둘씩 보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문신들 중에선 왕규, 추언규, 최지몽과 함께 최종화까지 등장했다.
  • [29] 청주 출신의 인물로 아지태의 천거에 의해 법률을 관장하는 의형대의 일을 맡아 보고 있었다. 아지태의 역모에 참여하고 있었으나, 궁예의 관심법과 종간과 은부가 이끄는 내원의 감시가 두려운 나머지 신방과 함께 역모를 고변한다. 여담으로 입전 역을 맡았던 故 오성렬은 극 후반부에 박영규의 집사로 출연하여, 견훤을 금산사에서 탈출시키는데 주역을 담당하였다.
  • [30] 공중파 버전 드라마에선 '연화'라는 이름으로 이름이 각색되었다.
  • [31] 우직한 맹장타입으로 설정된 가상인물로 상주 전투에서는 겨울에 방심하고 있다가 조령을 넘어온 왕건의 군사들의 기습을 받아 대패하였고, 나주 전투에서는 화공에 당한 후 퇴각하는 견훤을 호위하다 신숭겸에 의해 죽는다. 아마도 담당 배우인 방형주의 성을 따서 만든 것 같다. 방형주는 대조영(드라마)에서 돌궐인 계필사문의 부장 '퉁소'와 같은 우직하면서도 은근히 개그캐릭터 타입인 무장 역할로 자주 출연한 배우로, 광개토태왕(드라마)에서는 '여석개' 역을 맡았다.
  • [32] 작중 백제의 어의로 등장한다. 조물성 전투에서 괴질이 만연해서 고려군 백제군 모두 고생을 할때 견훤의 조상신의 도움으로 괴질을 치료하는 활약을 보여주었지만, 한창 뒤 운주 전투에서 등창을 앓으면서도 친정을 나가려는 견훤을 만류하지 못하고 대신 종군을 하였다가 패퇴하던 도중 낙마, 고려군의 기병에게 죽게 된다. 이 소식을 들은 견훤과 금강, 박영규와 최승우가 안타까워 하는 장면을 보인다. 실제로는 '고려사 권92 열전5 유검필'에 의하면 죽지는 않고 포로로 잡혔었다고.
  • [33] 마의태자 역을 맡았던 이병욱은 극 중반부에 최승우가 사주하여 궁예를 암살하기 위해 보낸 자객의 일원으로 등장한 바 있다. 자객들은 왕건의 숙부인 왕평달이 사주하여 왕씨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 궁예를 암살했다고 진술하지만, 궁예가 국문장에서 철퇴로 동료 자객을 죽이자 두려움에 떨면서 자신들이 백제에서 왔음을 실토하고 살아남았다.
  • [34]용개말고 아자개의 아들
  • [35] 경문왕이 즉위하는 데 공을 세운 인물로, 극 중에서는 처음에는 화랑의 일원으로 나온다. 경문왕에게 기대를 걸고 있었지만, 그가 왕위에 오른 후 자신의 기대에 어긋나자 크게 실망하였다. 궁예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으며, 세달사에서 그를 받아주고 길러주었다. 수행을 마친 궁예가 자신이 미륵이 되어 세상을 구제하겠다고 하자, 궁예를 나무라지만 한편으로는 종간과 더불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왕륭을 통해 갈 길을 주선해주었다. 나중에 왕건을 가르치기 위해 도선대사가 세달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궁예가 세상을 구원할 사람인지를 물었지만, 도선은 궁예가 뒷날에 올 성인을 위해 그 자리를 예비할 뿐이라고 대답하자 매우 놀라고 안타까워 하면서 열반에 들었다. 궁예의 뜻을 듣고 나무라기도 했지만, 내심으로는 제자를 아끼고 그가 원하는 바를 성취하기를 바라며 걱정을 많이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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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6 17: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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