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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정치

last modified: 2015-01-30 08:26:14 by Contributors


터키의 정치 정보
부패인식지수 49 점 2012년, 세계54위[1]
언론자유지수 46.56 2013년, 세계154위[2]

Contents

1. 개요
2. 막장 군부와 정치
3. 세속과 보수 사이
4. 쿠르드족 문제
5.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 문제
6. 인터넷 검열
7. 관련 항목


1. 개요

나라 안에서는 이슬람교가 득세하는 정치권을 세속주의적인 군부가 쿠데타로 억누른 뒤 다시 정치에서 물러나는 기묘한 현상(우리의 경우에 비추어 볼 때)이 자주 벌어지곤 한다. 이는 터키의 국부인 무스타파 케말이 정부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는 세속주의를 폈기 때문으로, 군은 국부의 정신을 수호하는 것이 자신들의 임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는 듯.[3]

즉, 터키 정치계의 전반적인 경향은 세속주의와 터키 민족주의, 서구화, 근대화를 지향하는 케말주의와 여전히 지방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이슬람교의 대립과 공존이라고 할 수 있다.

애당초 케말 아타튀르크 시절에는 기도할 때 파나마 모자(챙 동그랗게 달린 모자)를 쓰고 기도하게 하고(무슬림들이 기도하는거 보면 이걸 왜 강제했는지 감이 잡히실듯?), 이슬람계 여자들이 히잡을 쓰는 풍속에 대해서는 모든 창녀들은 반드시 히잡을 쓰도록 법에 박으면서 대응하고,[4] 문자도 기존 아랍어 문자에서 알파벳 체계로 갈아엎을 정도로 무슬림 국가에서는 유례없이 철저한 세속화를 추구한 나라다.

말하자면 세속주의를 추구한 케말의 유산이 전통적인 이슬람 사상과 대립과 공존을 지속하고 있는 것. 이런 면에서 보면 케말의 정신이 곧 현재의 터키 공화국을 만들어낸 정체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국부라는 말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모자란 데가 많지만우리나라같이, 80년간 세속주의 공화정을 운영해온 만큼 비상식적인 독재나 전제군주정이 집권하고 있는 중동권의 다른 나라들보다는 낫다. 그래서 2010-2011 아랍권 민주화 운동으로 새롭게 성립된 민주 정부들이 터키를 롤 모델로 삼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2. 막장 군부와 정치

그러나 이런 특징 덕에 터키 내의 군부의 위치는 상당하다. 유사시 징병가능한 병력만 2,200만명(…)에 달할 정도로 거대한 군사력에, 아타튀르크나 그 뒤를 이은 이스메트 이뇌뉘 같은 이들이 장군 출신이 많아 군부에 대한 대우나 인식이 좋은 편이다. 심지어 경찰은 썩어서 부정부패 저지르고 잔다르마(Jandarma, 헌병)가 와서 이를 바로잡는다는 이야기까지 있을 정도.[5]

그러나 군부의 특권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도 많다. 인권문제는 물론이고, 6.25때 터키 참전에 이바지한 당시 총리 아드난 멘데레스를 쿠데타로 축출하여 기어코 교수형시킨 것이 멘데레스가 하도 세력이 커진 군부 힘을 줄이고자 노력한 게 원인이었다. 이 사람도 이슬람 강경파들을 견제하고, 반공 정책을 취했으며 해외 자본 참여같은 일도 풀어주며 개방적으로 이끌던 인물이었다. 그 덕에 여러 사업을 독점한 군부가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켜 그런 인물을 묻지마 처형시켰으니... 터키의 치부와도 같은 이 사건으로 후일 멘데레스는 명예가 복권되었고, 후손들은 국가 연금을 받으며, 교과서에서도 여러 일로 잘했는데 군부와 충돌로 인하여 죽게 되었다고 뒤늦게 우호적으로 수정되었다.

이렇게 군부가 쿠데타를 벌여서 선거로 집권한 정권을 몰아내는 일이 자주 벌어졌는데,1960년을 시작으로 1971년,1983년,1998년까지 10여년을 주기로 정권에 대한 쿠데타가 반복되면서, EU에서는 이 일을 문제삼아 터키의 EU가입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젠 유로존 문제도 있고.. 이 때문에 터키는 여러가지로 강대국이 될 여건이 큰데도, 군부 때문에 발목을 잡는다고 브스에서도 보도할 정도로 알아준다. 위에 멘데레스 일에서도 언급하듯이 군부 고위직들이 여러 국영사업체들을 맡는 것도 문제.

군부는 케말주의 이념을 계승한 공화인민당(Cumhuriyet Halk Partisi)[6]과 긴밀한 연대를 구축하고 있으나 역사적으로 군부와 공화인민당이 꼭 죽이 맞았던것은 아니었다. 군부쿠데타 이후 공화인민당이 군부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던 역사도 있었고, 기본적으로 정당이란 정권획득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군부와 대립하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현재의 집권여당은 정의개발당(Adalet ve Kalkınma Partisi)으로 친이슬람적 성향[7]으로 인해 군부, 공화인민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하지만 만성적인 인플레이션 문제를 잡고 국민 소득을 크게 끌어올리는 등 현실적인 경제문제에 성과가 탁월해서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는 중. 덕분에 2000년대에는 쿠데타가 일어나지 않고 지났다. 군부에서도 압둘라 귈을 비롯한 정의개발당 정치인들의 친이슬람정책에 대하여 반발이 크지만 예전처럼 쿠데타를 벌였다간 국제적 비난과 같이 경제적으로 꽤 안정을 잡은 현 정권에 대한 지지 때문에 여론에게 군부가 역으로 비난당할 걸 우려하며 물러서고 있다. 군정 세속주의냐 민정 이슬람주의냐.. 터키가 이 오랜 갈등을 잘 해결햐고 나아갈지는 좀더 지켜봐야 할듯.


터키 정치에서 군부에 대한 평가는 매우 모순적인 결과로 귀결되며, 이는 종종 터키 정치에 관심있어하는 사람들의 머리 속에 혼란을 불러 일으킨다. 터키 정치에서 군부에 대한 정확한 표현은 '터키 세속주의의 수호자'일 것이다. 터키인들 대부분이 무슬림이며, 신앙심이 꽤 깊은 편이다. 아무리 케말 아타튀르크 이후 꾸준히 세속화, 튀르크화가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터키 사회에서 세속주의의 대척점에 위치한 이슬람주의가 아예 힘을 잃었다고 하는 것 역시 무리다. 오히려 히잡을 쓰고 등교하고 싶다는 작은 욕구에서부터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무능과 부정부패에 환멸을 느끼는 것까지 다양한 이유로 이슬람주의는 꾸준히 힘을 얻고 있다.

민주주의, 의회제도, 선거제도 등은 모두 서양의 문물이며, 터키 정치에서 이슬람주의에 대항해 이와 같은 서구의 제도를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가 바로 군부다. 그러나 민주적인 방법으로 힘을 얻은 이슬람주의에 대해 쿠데타를 일으켜서라도 서구의 제도를 지켜야한다는 군부의 입장은 전혀 민주주의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민주주의를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즉, 서구식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전혀 민주적이지 않고 오히려 민주주의를 크게 저해시키면서까지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모순적인 모습이 아타튀르크 이래 터키 군부가 터키 정치에서 차지하고 있는 위치이다.

군부를 억누르고, 강력한 개혁정책을 펼쳐 국민들의 막강한 지지를 받는 에르도안 현 대통령이 총리, 대통령 임기를 합쳐 집권 10년째를 넘어가자 슬슬 언론을 검열, 통제하고 자신에게 비판하는 사람들은 잡아가두는 [9] 일이 잦아지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자기 입맛에 맞는 사법기관을 신설하고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으로 나서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는 상황. 이렇게 되니 터키 민중들에게 군부가 이럴땐 필요하다는 모순을 생각하게 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에르도안 정부는 1980년대까지의 쿠데타를 일으켰던 장군, 장교, 병사들을 모두 잡아서 터키 군사재판과 대법원으로 넘겼고, 300명이 넘는 기소 대상자들은 모조리 무기징역이나 징역 20년형 등 중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로써, 터키 군부의 세력은 완전히 몰락했다.

이렇게 집권에 방해되는 군부를 완전히 숙청한 에르도안 정부는 점점 독재에 가까워져가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2013년 6월 들어 터키 최대의 도시 이스탄불의 시민공원에 대형 쇼핑몰을 짓겠다는 정부 방침에 항의하는 집회와 시위가 폭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에르도안 총리의 강경한 대응방침에 분노한 터키 국민들이 전국 각지에서 시위를 하며 경찰과 충돌, 전국 90여 곳에서 수백 명이 체포되는 사태가 발생해 정치적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기사 참조

이에 압둘라 귈 대통령이 시위대를 지지하면서 에르도안과 갈등을 빚고 있다. 귈 대통령도 이슬람 정당 소속이지만 에르도안의 막가파 독재에 이전부터 반발해왔다. 이상은 2013 터키 시위 항목 참조.

온갖 국내외적 반발에도 사상 첫 직선 선거제로 열린 2014년 8월 대선에서 에르도안이 승리했다. 그러나 아슬아슬하게 이긴 것과 같이 해외 거주자 투표에 대한 표 공개가 감춰졌다는 야당의 반발, 탁심 광장개발에 대한 절대반대가 여전한 가운데 터키의 푸틴,[10] 술탄이라는 온갖 비이냥이 쏟아지는 상황. 게다가 2014년 8월 들어서 이라크 및 시리아에서 난리를 피는 이슬람 국가를 에르도안이 옹호하고 있다는 반발까지 거세지고 있다.

2014년 8월 28일부터 에르도안이 대통령이 되었다. 에르도안의 후임으로 에르도안의 충복인 아흐메트 다우트오을루 전 외무장관이 총리가 되었다. 대통령이 된 에르도안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새로 지어지는 총리 관저와 대통령 관저를 맞바꾼것. 국가의 상징적인 수반이었던 대통령이 실세가 되고 총리는 대통령의 예스맨이 될 듯하다. 에르도안 : 새 집으로 이사하고 싶다.

3. 세속과 보수 사이

정치적인 세속주의와 달리 일반 국민문화는 아직도 상당히 보수적이다. 도시지역에는 해당사항이 없는 이야기지만, 시골지역에서는 일례로 명예살인2005년에서야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그나마 처벌은 종신형까지만 가능하고[11] 터키에는 이전 군사독재시절에 사형을 남발했던 나쁜 기억과 더불어 EU가입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형제도를 폐지했다. - 폐지의 계기도 UN의 문제제기와 EU국가들의 지적이 너무 많아 EU가입에 걸림돌이 될까봐 불법화한 것. 게다가 불법화 이후, 처벌을 피하기 위해 해당 여성에게 자살을 강요하는 풍습이 만연하고 있다. 이젠 명예 자살이냐

지역적으로 보면 터키 서부지역은 상당히 세속적이고 자유분방한 편이지만, 동부로 갈수록 보수적이고 과격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배트맨을 두고 소송까지 벌인 바트만(BATMAN?!)시 같은 곳에선 명예살인 및 여러 이슬람 과격 논쟁도 벌인 바 있고 아주 드물게 과격파에 의한 테러도 벌어지는 실정. 이슬람 보수파와 소수민족들이 동부에 많이 살기도 해서 과거의 치안은 내전 수준으로 불안했다. 90년대 초반에는 터키군이 길을 묻다가 터키어를 못알아듣는 쿠르드인 농부를 그냥 쏴죽인 사건도 있을 정도.

처음 터키에 도착하면 길거리 가판대에서 플레이보이를 대놓고 파는가 하면 신문, 방송에도 굉장히 선정적인 모습을 보여서 서유럽만큼이나 자유분방한 나라처럼 여길 수 있으나, 정작 터키 사람들의 생활은 매우 보수적이다. 커플 사이라도 길거리에선 손을 잡거나 스킨쉽을 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으며[12] 시골에서는 전원적인 풍경이 아름다워서 사진을 찍으려 하면 여자들이 황급히 도망가거나 제지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외간남자에게 얼굴 팔리는게 곧 동네 망신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라도 남녀가 함께 손잡고 걸으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야단친다.

이는 여행할때도 굉장히 핸디캡으로 작용하는데 대부분의 (저렴한) 숙소가 커플숙박객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한 남녀가 아닌 이상 같은 방을 주지 않기 때문에 싱글룸 두개를 잡아야 한다. 아니면 결혼했다고 사기를 치든지 [13] 터키의 중도보수 신문인 휘리예트(Hürriyet)의 2004년 조사에 의하면 터키인은 유럽에서 가장 성생활 빈도수가 적으며, 평균 지속시간도 4분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여하간 터키는 유럽이란 소리로군! 재밌는건 19세기때 유럽에서는 튀르크인들은 섹스를 좋아한다는 편견[14]이 있었다는 것. 한국이 일본에게 가지는 환상과 비슷할 듯..

과격 보수파수꼴들에겐 이스라엘과 같이 군사훈련도 하는 터키의 현재 모습이 불만일테고 때문에 여러번 테러도 벌어졌다. 2003년에 벌어진 영국계 은행 HSC 은행과 영국 총영사에 벌어진 자폭테러도 비슷한 경우. 이 사건으로 480명 가까운 사상자를 내면서 터키의 치안은 더 엄격해지고 과격파에 대한 탄압과 감시가 지독하게 심해졌다. 터키에서는 백화점에 쇼핑하러가거나 회사에 출근할때도 입구에서 검문검색대를 통과해야하는데 이때부터 이어진 법이다. 저 당시에는 지하철, 전차를 탈때 조차도 검문검색대를 통과해야했다.

보수주의 외에도 민족주의자들 문제도 큰 편. 역사적으로 소수민족, 특히 아르메니아인과 마찰이 잦았던 만큼 오스만 제국 치하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문제는 입에 올리기만 해도 목숨이 위험해질 정도이다. 아르메니아계 언론인 흐란트 딩크(Hrant Dink)라는 사람이 이 문제를 언급했다가 오귄 사마스트(Ogün Samast)라는 청년에 의해 대낮에 총탄에 벌집이 되어 사망했는데, 사마스트와 함께 공범이였던 야신 하얄(Yasin Hayal)이라는 청년은 "다음에는 오르한 파묵 차례다!" 라는 인터뷰까지 했다. 반 학살[15]이나 카르스 학살[16]이 대표적 떡밥.

심지어 노벨상(벨 문학상) 수상자 르한 파묵도 자기 나라에서 학살 문제를 언급했다가 살해협박을 받고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하기도 했다가 지금은 돌아왔다.[17] 아르메니아는 오르한 파묵의 이 발언에 입다물고 있다. [18]

법적으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국민 대다수가 이슬람인지라 기독교에 대해선 배타적인 편. 하지만 세속적인 성향은 분명히 드러나 이스탄불이나 라브존, 앙카라, 에디르네, 이즈미르 같은 서부 쪽 대도시에선 에잔[19]이 울리면 무조건 엎드려 기도하는 이들도 있는 반면, 담배 피우면서 일하거나 책보거나 먹을 거 먹는 이들도 꽤 된다고 한다. 라마단 때도 은근히 숨어서 먹는 이들도 많고, 눈치껏 조용히 뭘 먹는 이들도 꽤 된다. 이래서인지 골수 아랍국가들은 터키는 무늬만 이슬람인 엉터리 나라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다만 동부로 갈수록 여기서도 보수적인 신앙을 가진 이들이 많으니 조심할 것.

터키는 이슬람교와 세속을 아슬아슬하게 왔다갔다하는 나라인데, 도시(서부)는 대체로 세속주의가 강하고, 향촌(동부)으로 갈수록 보수주의가 강하다. 그래서 도시에서는 자체 포르노 영화까지 제작되는 판국인데 반해, 농촌에서는 여성이 결혼 전에 처녀성을 잃었다는 이유로 명예살인을 당하기도 한다. 이슬람 율법에 금지된 음주는 도시에서는 거의 지켜지지 않지만, 개중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들은 꼭 지킨다.

4. 쿠르드족 문제

터키 남동부 광범위한 지대에 약 1200~1500만명 가량의 쿠르드족이 살고 있다. 이들은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 그리고 혈통을 가지고 있는 민족으로 터키인과 여러가지 마찰이 있다. 터키는 오랜 세월동안 이들의 독자적인 언어,문화,교육을 금지하고 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엄청난 인권탄압과 경제적 차별, 홀대가 이어지면서 쿠르드족의 반발이 극심하다. 쿠르드 노동자당(PKK)이란 지하저항단체가 분리독립을 외치면서 계속 테러 등 활동중이다. 최근에는 EU가입을 의식해서 쿠르드족에 대해서 조금씩 유화조치가 취해지고 있다고는 한다. 하지만 2009년 이스탄불에 벌어진 쓰레기통 폭탄 테러를 비롯한 여러 테러에 쿠르드인이 관여한 것이 드러나자, 터키인들의 분노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자기들이 한 짓을 생각해야지

사실 쿠르드족은 터키, 이라크, 시리아, 이란 접경지대에 총 2500~3000만명이 각 나라별로 찢어져 살고 있다. 역사상 한번도 독립국가를 세워보지 못한 채 이 나라 저나라에 털리면서 살아온 민족으로 이들의 꿈은 독립국가 가칭 '쿠르디스탄'건국이다. 그러나 관련된 각 나라들은 이들의 독립운동을 매섭게 탄압했다.

걸프전 이후 이라크 북부 유전지대를 포함한 쿠르드족 지방정부가 쿠르드노동자당을 지원한다는 구실로 터키군이 이라크 북부 침공을 준비한적도 있다. 이라크와 터키 접경지대 양쪽에 나뉘어 살고 있는 쿠르드족의 연결에 대해서 터키는 극도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20]

그리고 1990년대부터 터키는 동부의 물부족현상을 우려하고 있다. 이스라엘에 물도 수출하고 서부쪽은 별로 걱정이 없는데 사막성 기후가 많은 동부쪽의 물부족을 우려해 댐을 연이어 짓고 있다. 터키에서 가장 큰 아타튀르크 댐은 다 만들었고 더더욱 많은 댐을 지으려고 하는데, 이 문제로 시리아와 전쟁 직전까지 가고 주변 나라와 갈등이 장난아니다. 거기에 문제는 댐들이 지어지면 쿠르드족이 많이 사는 도시들, 디야르바크르와 하산케이프를 비롯한 곳이 물에 잠기는 점. 여기에 쿠르드족 말고도 여러 나라가 지배하고 살았던만큼 많은 전근대에서부터 고대 유적지까지 있다. 때문에 터키 및 국제 고고학계는 결사반대를 부르짖고 있다. 이에 대하여 터키 측은 이집트 아스완 댐 건설때처럼 유적지를 옮긴다는 의견을 보였다가 실컷 비웃음이나 듣었는데 아스완 댐이 건설 이후 벌어진 자연기후 변화 문제로 계속 까이고 있다.

더불어 친터키 쿠르드인들도 당연히 이건 쿠르드 독립이니 뭐니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문제인 만큼 이 문제에 대해선 독립지지 쿠르드인들과 협조하여 막겠다고 이를 갈며 저항한다. 동부가 아닌 서부 및 이스탄불이나 앙카라 수도권 거주 쿠르드인들도 이건 결사반대중이다. 수백여만 쿠르드인들 거주지를 물바다로 만들기 때문에 오히려 쿠르드인들이 반터키 감정을 가져 내전을 더 크게 벌인다는 우려와 반대도 만만치 않다.

터키 내 환경보호단체들도 기온 변화로 인한 부작용이 닥쳐온다고 결사반대하고 동부에 있는 고대 아르메니아 수도이던 아니를 비롯한 고대 아르메니아 유적지들이 가득한 터라 여기가 물에 잠기는 문제를 두고 조상의 역사를 수몰한다며 아르메니아도 결사반대하여 터키측은 고민 중이라고 한다. 결국 이 댐 건설에 입찰하려던 유럽 여러 나라 건설사들은 스스로 입찰을 포기하고 물러났으며 미국이나 일본,한국 및 중국 건설사들도 이라크 및 아랍권과 아르메니아를 통한 유럽권 우려를 눈치보며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기에 현재 댐건설은 무기한 보류 중이다.

사실 쿠르드인 문제는 더욱 더 복잡한데, 쿠르드족항목에도 나오지만 쿠르드들은 단 한번도 뭉쳐본 적이 없다. 애초에 쿠르드는 부족집단이고, 각 부족마다 사용하는 말도 크게 다른데다가 문화도 꽤 다르다. 단지 사는 곳이 같아서 '쿠르드'라고 묶인것일뿐 한번도 동족적 유대관계를 경험한 적이 없었다. 터키에 살고 있는 쿠르드부족가운데 가장 큰 세개 부족을 예로 들자면, 자자(Zaza), 쿠르만즈(Kurmancı), 소라니(Sorani)가 있는데 이 안에서도 씨족별로, 종교별로 갈라진다. 때문에 분리독립파를 지지하는 쿠르드와 터키에 남기를 원하는 쿠르드 부족들도 서로 충돌하고 있다. 이를테면 1925년 반공화국, 반세속주의를 명분으로 일단의 쿠르드 부족들이 반란을 일으키자 이들을 진압한건 터키군도, 터키 의용군도 아닌 이웃한 적대적인 쿠르드부족이었다(...)

그리고 정말 알려지지 않은 게 터키에 다른 소수민족도 여럿 살고 있다. 흑해 지역에서 아르메니아계인 헴신 족(1만 6천명)과 캅카스계인 라즈 족(3만명)과 체르케스 족(2만 5천명, 이상 통계는 2009년 이뤄진 것)이 살고 있다. 대부분이 이슬람을 믿고 사는데 쿠르드족에 견주면 수가 워낙 적어서 터키에서도 잘 모르는 경우도 많고 상당수가 터키와 동화되어있다.

5. 북키프로스 터키 공화국 문제

터키정치에서 꽤나 큰 이슈로 북키프로스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1974년 터키군이 키프로스의 터키계 주민들을 지원한 이래로 키프로스는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터키군이 북키프로스의 안보를 지원하기 위해 아직 4만명 가까이가 주둔하고 있다. 터키측에서는 1960년 키프로스 독립당시 터키, 그리스, 영국이 협상한 '키프로스에 변란이 일어났을때 세 국가가 개입해 평화유지에 힘쓴다.'는 조약을 근거로 터키군의 주둔이 합법적이라고 주장하지만, 남키프로스에서는 불법침략이라고 본다. 또한 남키프로스가 단독으로 EU에 가입하게 되면서 터키가 EU가입을 하기 위해서는 남키프로스를 주권국으로 인정해야하는데, 이 또한 북키프로스측의 반발로 딜레마에 부딪히고 있다.

6. 인터넷 검열

2006년 경 없는 기자회에 따르면 터키도 인터넷 감시 국가로 선정되어있으며 예전에 유튜브에 케말을 게이로 묘사한 동영상이 올라왔다는 이유로 차단하다가 풀어준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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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http://cpi.transparency.org/cpi2012/results/
  • [2] 수치가 높을수록 언론 자유가 없는 국가, 언론자유 최상은 0점, 언론자유 최악은 100점, 2013년 이전 자료는 수치가 넘어가는 것도 존재한다, http://en.rsf.org/press-freedom-index-2013,1054.html
  • [3] 물론 그 대가로 상상을 초월하는 인권 탄압국이 되었다.
  • [4] 말하자면 히잡을 법으로 금지하지 않고도 사라지게 만들려는 의도였다. 히잡을 쓴 여자는 창녀로 오인받는 상황이 되기 때문. 거기다가 히잡이라는 풍속 자체가 여성의 정숙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나온 풍습이니 법을 저렇게 박는다고 해서 굳이 반박할 명분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 [5] 실제로 터키 헌병들은 민간 치안일도 병행하고 있다. 관광유적지에 가면 순찰차를 세워놓고 돌아다니는 헌병들을 볼 수 있을것이다.
  • [6] 그런데 이 정당은 의외로 한때 사회민주주의시도하려던 적이 있었다. 현재도 야당으로서 사민주의 색채를 어느정도 갖고 있다고 하니 흠좀무
  • [7] 물론 여기서도 아타튀르크 뜻을 거론하면서 히잡 강요라든지 보수 이슬람 정책은 일절 생각하지 않겠다면서 젊은 층의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노력한다. 이 정당의 집권을 두고 터키를 아랍화한다는 비난 및 공화인민당 지지자들의 반대시위도 거셌기도 했다.
  • [8] 사실 터키와 우크라이나는 흑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 [9] 중화인민공화국(14억)에서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를 구속수감하는 것보다 터키(7600만)에서 정권에 비판적인 기자를 구속수감하는 수가 더 많다고 한다! 심지어 푸틴 치하의 러시아보다 인권탄압문제로 국제사회에 탄원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 [10] 경제분야에서의 성과를 냈고 어지럽던 나라 사정을 다잡아 지지를 얻었고, 그 지지를 바탕으로 장기집권하며 반독재를 한다는 점에서 이둘은 상당히 유사하다. 다만 푸틴은 에르도안과 달리 종교나 이념에 얽매이는 인물은 아니며 경제 분야에서는 지하자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한 푸틴보다는 에르도안쪽이 좀 더 능력있다고 볼 수 있다.
  • [11] 터키는 2004년사형을 폐지했다.
  • [12] 커플들은 주로 맥도날드나 서구식 카페 구석진 곳에 앉으며, 에서부터 직원이 알아서 안내한다.
  • [13] 외국인이라면 모를까, 터키인 미혼커플이 한 방에서 묵는다는건 상상하기 힘들다. 터키에서는 숙박시 신분증을 보여줘야하는데, 두 숙박객이 결혼했는지 안했는지 다 쓰여있기 때문. 쿠르드 테러리스트 색출때문에 경찰이 때때로 숙박부를 검사하는데, 만약에 미혼커플을 한 방에 묵게 해줬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그 호텔/여관은 벌금도 벌금이지만 문 닫을 각오 해야한다. 영업정지를 1년 이상 때리기때문에.
  • [14] 뭐, 하렘, 키탕을 비롯하여 왜곡된 편견이 가득했는데, 오리엔탈리즘의 산물이지만 은근히 부러워했었다..
  • [15] Van. 터키 동부 도시(쿠르드인들은 완으로 발음)로 1915년 4월 24일 여기 거주하던 르메니아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5천명이 넘는 오스만인을 학살했다. 이 사실에 열뻗친 쉬드 에펜디(그도 그럴 것이 이 폭동과 학살 와중에 살해된 사람들 가운데 공무원으로 있었던 아우 무스타파와 그의 식구들이 거의 몰살당했기 때문이다) 대장은 가는 길에 만나는 아르메니아인은 이슬람 빼곤 죽여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반지방 주지사인 제브데트(Cevdet)도 아르메니아인은 놔두면 위험하니 아주 씨를 말려야 한다는 분노섞인 연설을 했다.
  • [16] 1919년 1월 아르메니아군이 카르스를 점령하면서 카르스에 살고 있던 오스만 및 소수 아르메니아 무슬림을 닥치는 대로 학살했다.하지만 1920년 9월 튀르키예 공화군이 카르스를 탈환했고 아르메니아 점령기 때 있었던 아르메니아군의 무슬림 학살에 대한 보복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했다.
  • [17] 오르한 파묵이 언급한 학살 문제는 다음과 같다. '오스만 제국은 100만이 넘는 아르메니아인들과 13만이 넘는 쿠르드인을 학살했다.(하지만 그도 이 당시 벌어진 시리아 기독교인 학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그것은 비난받을 잘못이다. 하지만 아르메니아인들끼리 싸우고 나아가 그들도 오스만인들을 학살한 학살이나 카르스 학살같은 일같은 여러가지 잘못도 언급해야 한다. 아르메니아인들은 그런 것도 죄다 오스만 인들 탓을 하고 있으면서 아제르바이잔인들에게 나고르노 카라바흐에서 학살과 약탈을 저지르지 않았던가? 아르메니아는 터키에게 사죄받고 싶으면 자신들도 사죄하고 인정해야 한다.' 사실 중립적 언급이라고 보기엔 규모면에서 좀 차이가 있긴 하지만 일단 오스만의 학살을 인정했다는 점은 인정해야한다. 조금 터키쪽에 쏠린 발언이긴 하지만 아르메니아 인들이 학살(약 5만에서 8만 정도 추정. 아르메니아(일부,아르메니아도 대다수는 부정하여 터키에서 까임받는다)에선 100만이 넘는 아르메니아 학살 적다고 맞서지만 터키에서 겨우 몇 만 죽은 거 가지고 왜 이래라는 논리라면 히틀러가 수백만 유태인 죽인것보단 적다고 입다물면 된다는 거네? 라고 비웃던 터키 여론에 데꿀멍했다.)한것 자체를 숨기는건 사실이니까.
  • [18] 여담으로 그가 2008년에 발표한 소설 <순수박물관 - Masumiyet Müzesi>에 등장하는 주인공 퓌순이 살았다는 추쿠르주마(Çukurcuma)의 한 집에 1960년대 터키 젊은이들의 생활과 사랑에 대한 주제를 담은 박물관(이름도 소설제목과 같다)을 2011년에 개관했다.
  • [19] 이슬람 기도를 드리는 시간을 알리는 말
  • [20] 이라크 북부 쿠르드족은 이라크인보단 쿠르드족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하다. 따라서 이들을 이라크에 묶어두기 위하여 대통령직을 쿠르드족에게 양보하는 등 미국의 중재로 여러가지 타협이 이루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이라크의 생명줄 유전의 상당수가 북부 쿠르드족 지역이라서... 반대로 터키는 쿠르드 자치정부가 터키 쿠르드족과 연합하는걸 극도로 경계해서 유사시 무력행사도 공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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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1-30 08:2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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