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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last modified: 2015-03-28 20:29:00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역사
2.1. 기계식 TV
2.2. 전자식 TV (브라운관)
2.2.1. 컬러TV
2.3. 한국의 상황
2.4. 2000년대
2.5. 2010년대
3. 종류
3.1. 텔레비전의 종류
4. 방송 종류
4.1. 디지털 방송
4.1.1. ATSC
4.1.2. DVB
4.1.3. ISDB
4.1.4. DTMB
4.2. 아날로그 방송
4.2.1. NTSC
4.2.1.1. NTSC-J
4.2.2. PAL
5. 기타
6. 매체에서의 텔레비전
7. 관련 항목

1. 개요

Television. 텔레비전 수상기. 전파적인 신호를 받아서, 그것을 보여주는 전자 기기. 흔히 TV 라고도 한다.

2. 역사

2.1. 기계식 TV

TV의 시작은 셀레늄이 광전효과 즉 빛을 받으면 전기가 흐르는 효과를 아일렌드의 전신기사 조지프 메이가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이 원리를 이용하여 셀리늄판을 이용 빛을 셀리늄판에 투과시켜 빛을 전자신호로 바꾸고 역으로 과정을 거처서 빛을 발산하여 화면을 보이게 하는 기술을 알렉산더 베인이 개발하였으나 이것은 단일사진만 보낼수 있는 한계가 있었다 이유는 추가바람.

그리고 이후 독일의 전기기술자 파울 고틀리베 닙코프라는 사람이 닙코프 디스크라는 것을 개발하였는데 디스크에 24개의 구멍을 나선형으로 뚫고 각부분을 영화처럼 전기 신호를 한 프레임씩 보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좀 더 쉽게말하면 영화필름을 세로로 24조각으로 나눈후 각 조각마다 순서대로 빛을 보내는 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후 영국의 사업가 존 로지 베어드가 텔레바이저(televisor)라는 이름으로 상용화 하였고 1929년 BBC에서 최초로 기계식 TV방송이 시작되었다,

2.2. 전자식 TV (브라운관)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이 1897년에 전자를 쏘아서 형광 물질을 때리게끔 하여 형상을 나타내게 하는 브라운관을 발명한다. 그후 기계식과 브라운관을 혼용하는 등 수많은 개발을 거쳐 미국의 필로 판스워스가 1921년에 완전한 브라운관 텔레비전을 개발하면서 우리가 잘아는 화면이 볼록한 TV가 등장하였다. 이후 1936년 BBC를 시작으로 방송국들이 브라운관용 TV방송을 선택하면서 기계식 TV는 빠르게 쇠퇴해 갔다.

2015년에 샤프전자 및 인도 업체들이 마지막으로 브라운관 TV 생산을 중단할 예정.##

2.2.1. 컬러TV

텔레비전을 컬러로 방송한다는 아이디어는 19세기부터 존재했었지만 본격적인 컬러방송을 시도한 것은 1950년 4월 미국 CBS에서 '필드 연속 컬러 시스템'이란 방식을 선보인것이 최초이다.

earlycolorcbs_paintbrush_ver.jpg
[JPG image (15.26 KB)]

위 그림처럼 브라운관과 유리막 사이로 3원색이 칠해진 원판을 모터로 돌려서(...) 컬러신호를 주고받는 방식으로[1] 구조가 복잡하고 실용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자연히 수상기가 필요이상으로 비싸져 상업적으로 실패한데다 하필이면 6월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져버리는 바람에 얼마 못 가 사장되었다. 이후 1954년 우리가 아는 NTSC방식이 등장하면서 디지털TV가 생겨나기 이전까지 오랫동안 북미권과 한국, 일본의 방송 시스템으로 군림했었다.

이후 1960년 9월에 NTSC 방식을 받아들인 일본을 시작으로 주요 강대국인 소련, 영국, 프랑스[2], 서독등이 각각 PAL과 SECAM방식으로 컬러TV 방송을 개시하여 전 세계적으로 컬러 텔레비전의 수요가 급속히 늘기 시작했다. 다만 이 나라들이 처음부터 올컬러로 방송을 개시했던것은 아니었다.

일본만 해도 1960년대에는 대부분의 프로그램과 광고들을 여전히 흑백으로 방송했었고 컬러로 제작된 프로그램을 1~2편정도 따로 편성하는 식이였었다.[3] 하나다 소년사아따맘마의 번외편(쇼와 아따맘마 목욕탕 이야기)을 보면 1960년대 중반까지는 일본에서도 컬러TV는 아무나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단 걸 알 수 있다. 실제 60년대 초반에는 컬러TV 1대가 수십년치 봉급 수준인데다가(당시 일본 공무원 초봉이 연 1만엔 정도의 수준이었는데 컬러TV 가격은 54만엔.) 기껏 컬러TV를 사와도 컬러로 볼수 있는 프로그램이 많지않아서 그다지 큰 메리트를 가지지 못해 부자집에서나 가졌던 물건이었고 60년대 중반에 도쿄올림픽 등의 영향으로 컬러TV가 좀 늘어나긴 했지만(당시 대졸 신입사원의 초봉은 2만엔 수준이었고 컬러TV가격은 20만엔정도의 수준)대부분의 가정집에서 컬러TV는 꿈도 못꾸고 흑백TV로 만족해야하며 컬러TV는 밖에 나갈일이 있을때에나 조금 볼 수 있었던 물건이었다. (번화가나 기차역, 백화점에서 컬러TV 홍보 목적으로 텔레비전을 설치하는 일은 있었기 때문 하지만 컬러TV를 사는 사람은 극소수라는게 함정) 그러다가 60년대 후반-70년대 중반에 걸쳐서 전면 컬러화가 이루어지고 일반 가정집 소득이 컬러TV를 살 수 있을 정도가 되어가자 컬러TV가 대중화 되었다.

서유럽권에서도 방송 전체가 컬러화 된건 1970년대 초중반부터이며[4] 역시 컬러 수상기도 이때를 기점으로 대중화 되었다.

2.3. 한국의 상황

한국에 도입된 시기는 1950년대 초, 중반 외국에서 수입으로 들어온 흑백 텔레비전이 시초이며, 검정 고무신을 봤다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최초의 국산TV는 금성사(현재 LG전자)의 VD-191이다. 19인치의 진공관 흑백 TV로 1966년부터 생산이 시작되었다.

(최초의 한국산 TV인 VD-191)

하지만, 당시 TV 보급률은 낮았는데, 당시 텔레비전 자체가 무척 비싼 물건이라 (60년대 후반 기준으로 일제 TV가 10만원, 미국산이 13만원, 위에 금성TV가 7만원 정도로 당시 서울 집값이 평당 5~10만원 정도라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고가) 전화기와 마찬가지로 어느정도 살만한 가정에나 살 수 있던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일전이나 인기 드라마같은 대박 프로그램이 있는 날이면 온 동네 사람들이 동네 한 두군데 있는 텔레비전 있는 집으로 몰려들어서 방송을 보기도 했고, 일부 만화방에서도 이를 이용해 단골로 만화책 보는 얘들에게 TV를 볼 수 있게 하는 식으로 영업했다고한다.

이후 1970년대 중후반 TV가 좀 잘사는집 위주로 그럭저럭 보급되면서 디자인상 약간의 현지화가 이루어졌는데 좌식생활에 맞게 다리가 짧아지고 고가품답게 도둑맞지 않도록 화면을 가리는 미닫이문과 자물쇠가 채워진 형태[5] 즉 보통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흑백TV의 형태로 바뀌게 된다.

극장에서 상영하는 대한뉴스의 경우에는 1974년부터 컬러 필름으로 상영이 되었지만, 당시 방송쪽은 거의 안습일 정도로 시험방송에 가깝게 컬러 텔레비전 방송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 제작된 일부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일부 광고를 보면 컬러로 제작된 것이 존재)

1980년 12월 1일 컬러 텔레비전 방송을 개시하긴 했지만[6], 애석하게도 이는 전두환 제 5공화국의 우민화 정책3S 정책의 일환으로 시행된 것이었다. 결국 당시 한국에 컬러 텔레비전은 땡전뉴스를 더욱 효과적으로 방송하는 기계로 전락하고 말았다.(...) 덤으로 컬러 텔레비전 방송 개시 바로 전 날은 언론통폐합이 시작된 일자로, TBC는 컬러방송도 못 해보고 폐국되었다. 지못미.[7]그래서 JTBC 로고가 무지개색인건가? 이듬해인 1981년에는 광고도 전면 컬러화 되었다.

한국에서는 2012년 12월 31일 오전 4시부터 전국 지상파 아날로그 방송이 전면 중단되었다. 디지털 방송 리시버를 달거나, 기존 아날로그 TV를 교체하지 않으면 방송을 볼 수 없다. 다만 기존 아날로그 TV 이용자들에게는 정부에서 무상 임대 방식으로 디지털 -> 아날로그 변환 셋탑박스를 제공해 준다.[8]

  • 수도권 아날로그 TV 송출 종료 장면 (KBS 1TV, UHF 25) : ##

디지털 수신기 보급이 미비한 북한 주민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정부는 전방 지역의 아날로그 송출을 유지하기로 했다.기사 전파라는 특성상 경기 북부 지역에서도 수신이 가능할 듯 싶다. 가령 송신소가 근처에 있는 동두천시, 연천군이라든가.[9]

2.4. 2000년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크고 무겁고 발열도 많은 CRT 제품이 주류였으며 기존 CRT의 방식으로는 어느 정도 이상은 화면을 크게 키울 수 없으므로 기기 아랫쪽에서 상을 비스듬히 쏴올리면 거울을 통해 반사되어 화면에 비춰지는 방식의 '프로젝션 TV'가 고가의 대형 화면 제품 포지션을 맡았다.

이 프로젝션 TV는 기존 CRT에 비해 얇긴 얇지만 대신 아래에서 쏴올릴 공간이 확보되어야 하기에 높이가 올라간다. 크기도 크기지만 제법 보급됐던 DLP 방식의 프로젝션 TV는 램프의 수명 문제가 심각했다. 램프의 수명이 다해 밝기가 떨어질 수록 화면도 어두워지기에 보통 2년에 1번씩 교체해줘야 하는데 램프값으로 10만이 기본으로 깨지는 환상적인 유지비용을 보여준다. 결국 LCD 패널의 보급과 함께 금방 사장되어버린 과도기적 제품. 이런 사정을 모르고 가끔 무료나눔 같은걸로 프로젝션 TV가 나오면 얼씨구나 업어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2006년 이후로 LCD 패널의 가격이 급속도로 하락되어 HD-TV가 대중화되어 기존 아날로그 방식의 CRT TV는 시장에서 완전히 사장되어 자취를 감추었고, LCD 디스플레이의 라이벌 격이었던 PDP 디스플레이도 LCD 디스플레이에 화질/전력 소모/제품 수명등에 약점을 보여 PDP 디스플레이 TV 조차 시장에서 도태되기 시작한다.

00년대 중후반까지는 LCD TV의 BLU(back light unit)로 CCFL(Cold Cathode Flourscent Lamp)이나 EEFL(External Electrode Flourscent Lanm)이 많이 쓰였고, 00년대 후반부터는 고급형 모델로 CCFL 대신 LED 백라이트 유닛을 사용한 LED TV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보통 LED 백라이트 LCD TV를 LED TV라고 많이 표현하나 LED 자체에서 색상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니고, LED는 단지 백라이트 유닛 발광만 담당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LED TV는 잘못된 표현이다.

2.5. 2010년대

2010년 이후로 기존 CCFL 백라이트 TV보다 더 밝고 전력 소모도 적고, 더 얇은 팬널의 생산이 가능한 LED 백라이트 LCD TV가 대세가 되었다. 이후 3D TV, 스마트 TV, OLED TV, UHD TV 가 등장했다.

3. 종류

3.1. 텔레비전의 종류

4. 방송 종류

4.1.1. ATSC

디지털 방식으로 미국에서 표준화되었다[10]. 변조방식으로는 8VSB를 사용한다. 2~6ch(54~88MHz)는 사실상 DTV 서비스가 불가능하므로 예비용으로 사용하고 7~13ch(174~216MHz)는 지상파 DMB용으로 사용하도록 되었다. 이전에 할당된 698~806MHz는 다른 용도로 분배하기로 결정.
  • 14ch~51ch : 470~698MHz

4.1.2. DVB

유럽 방식. 남아프리카공화국, 대만, 호주 등에서 채택하고 있으며 한국의 경우 Skylife에서 위성방송 전송방식인 DVB-S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4.1.3. ISDB

일본과 필리핀, 타이, 몰디브, 남미 대부분 국가에서 채택하고 있는 디지털TV 전송 방식으로 사단법인 전파산업회(Association of Radio Industries and Businesses, ARIB)에서 관리한다. 모바일 방송으로 원세그가 있다.

4.1.4. DTMB

중국 방식

4.2.1. NTSC

한국에서 사용되는 NTSC 방식의 경우 채널당 대역폭 6MHz씩으로 영상은 4.5MHz의 AM으로 변조하며 음성은 1.5MHz의 대역폭으로 50~15k Hz의 음성 신호를 FM으로 변조하여 전송한다.[11]
4.2.1.1. NTSC-J
일본에서는 NTSC를 자국에 맞게 변형해서 썼었다. 주파수 대역이 타국에서는 FM방송으로 쓰는 대역이었기 때문에 1번 채널이 존재했었다.

  • VHF
    • 1ch~3ch : 90~108MHz
    • 4ch~12ch : 170~222MHz
  • UHF
    13ch~62ch : 470~770MHz

4.2.2. PAL

유럽 방식으로 디지털 전환 이전에는 프랑스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전역[15], 남/동/북아프리카, 아르헨티나, 브라질, 오세아니아 등에서 정말 폭넓게 이용되었다. 물론 한국/일본의 전파월경을 바라지 않았던 냉전시절 중국/북한도 PAL 방식을 사용. 상당수 국가들은 PAL과 SECAM을 동시에 송출했다. 원칙적으로는 NTSC와는 달리 채널 번호 1번부터 사용할 수 있지만 미국의 영향을 받은 나라들은 관습적으로 안쓰기도 한다. 참고[16]

기계적으로 보았을때 유럽의 1960~80년대 초반 텔레비전 수상기는 동시기 NTSC권 수상기와 채널을 돌리는 방식도 좀 달랐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로터리 방식(VHF, UHF 다이얼을 돌려서 채널을 바꾸는 방식)이 아니라 프리셋 버튼 방식으로[17] 1에서부터 7까지 임의로 버튼이 있으면 각 버튼마다 일일이 실제 채널을 맞춰주는 방식이었다. 유럽의 몇몇 텔레비전 방송국이 채널 1 비슷한 을 달고 있는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70년대 텔레풍켄 수상기의 채널 버튼)

참고로 NTSC와 PAL/SECAM과는 주사선 수 부터 많은 것이 다르므로 한쪽 수상기로 다른 쪽 방식은 전혀 수신할 수 없다. 물론 가격이 비싼 겸용 수신기를 사용하면 세 방식 모두 수신 가능하다.[18]
  • 47~806MHz

5. 기타

종종 '바보상자'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교사나 교수 같은 교육자 집안에서는 아예 텔레비전이 없는 경우도 있다.[19] 방송국에서 내보내는 영상 자체가 사실 유익한 것은 별로 없고, 또한 뇌발달을 고려해볼 때 유아의 경우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동안에는 뇌가 사실상 아무 행동도 하지 않기 때문에 뇌발달이 저해된다. 그래서 교육자 집안에는 텔레비전이 없는 경우가 있는 경우보다 많고, 대신 가족간의 담화를 나눈다거나 책을 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움베르토 에코는 인터뷰에서 TV를 바보상자라고 여기는 것은 음악회를 가거나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등의 문화적 경험이 가능한 사람들의 생각이고 오지에 살거나 직접적 문화적 경험이 불가능한 사람들에게 TV는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도구라고 옹호했다. 실제로 밥값을 걱정해야 할 처지의 빈민들조차 TV는 사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20]

"텔레비전은 처음 6개월이 지나면 시장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매일 합판으로 만든 상자를 보는데 지겨움을 느낄 것이다."
- 대릴 자눅(Darryl F. Zanuck). 당시 20세기 폭스 회장
이 말은 현재 와서 희대의 개드립으로 회자되고 있다.

여담으로 텔레비전의 발음 자체가 어려워서인지 아니면 일본어의 영향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은 그냥 '테레비'라고 발음하고 있다. 또 1970년대 광고 등에서는 텔이라는 더욱 영어스러운 얄딱꾸리한 표기도 자주 보였었다(...)

6. 매체에서의 텔레비전

방송이 끝난 뒤에는도 그렇고 여러 매체에선 은근히 호러쪽으로 자주 묘사되는 주 아이콘. 매체에서 주로 TV속의 존재가 TV 밖으로 빠져나오는 연출이 자주 보인다.

역으로 시청자가 TV 속으로 들어가는 연출도 있다.
The Twonky 처럼 텔레비전 수상기 자체가 생명력을 지니는 작품도 있다. 호러라기보단 코미디에 가깝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주파수가 안 잡히거나 스크램블이 걸려 화면이 나오지 않는 경우 기계의 옆이나 뒤를 쳐서(...) 다시 화면이 나오게 하는 경우가 있어 드라마만화의 클리셰처럼 여겨졌지만, 방송송출이 안정화된 2010년대부터는 그런 현상이 거의 사라졌다. 때리려고 해도 벽걸이가 되어서 칠 수가 없다. 그 외에 외지에서는 전파를 잡기 위해 기와집의 지붕 위로 올라가 안테나의 방향을 고치는 일도 있었다. 나라는 다르지만 아이언맨 3의 개리가 대표적인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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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당연히 전용 촬상관이 있는 카메라로 제작된 프로그램이여야 한다. 아무 프로그램이나 저 색원판을 돌린다고 컬러화면이 되는게 아니란 소리.
  • [2] 1967년 ORTF 제2텔레비전(지금의 France 2)에서 개시했다.
  • [3] 그래서 당시 방영된 컬러프로그램들을 보면 화면 밑에 '컬러방송'이란 식으로 자막이 떴었거나 본방송이 시작되기전에 "컬러로 방송됩니다"라는 안내방송이 떴다.
  • [4] 프랑스의 경우 제1텔레비전이 1974년 TF1로 분리 독립한 뒤에도 76년 1월까지 흑백으로 방송했었다. 당시 프랑스의 경우 흑백방송이 819주사선, 컬러방송이 615주사선으로 흑백이 화질면에서는 좋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거라고 한다.
  • [5]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TV나 피아노, PC처럼 고가품, 귀중품으로 가치가 있다고 간주되는 물건들은 예외없이 이런 잠금장치가 내장되어 있었다.
  • [6] 물론 대한민국뿐 아니라 당시 아시아, 아프리카 개도국들 중에는 컬러TV 나이가 동갑이거나 더 늦었던 나라들이 수두룩하긴 했다. 공산권에서도 중국(1973년)이나 윗동네(1974년), 베트남(1978년)처럼 남한보다 더 빠른 나라가 있는가 하면 미얀마(1984년)나 부탄, 네팔, 라오스처럼 더 늦은 나라도 있을 정도. 서아시아에서는 이스라엘시리아, 터키(...)가 한국과 동갑이다. 그리고 유럽에서 컬러방송이 가장 늦었던 나라는 포르투갈로, 한 때 식민지로 두었던 나라가 1972년에 개시한 것보다도 훨씬 늦었으며, 대한민국보다는 9개월 빨랐다(1980년 3월 7일).
  • [7] 그래도 TBC에서 제작된 일부 프로그램은 컬러로 제작된 것이 존재하는데, 공연 프로그램은 컬러로 제작된 것이 존재하며 고별방송 프로그램도 컬러로 제작.
  • [8] 일반 안테나를 이용하여 TV시청을 하는 가정에만 해당하며 유선방송, 케이블TV, IPTV, 위성방송(스카이라이프) 시청 가정은 해당 사항이 없다.
  • [9] 단, 북한과 중국의 아날로그 TV 방식은 PAL 방식이라서 한국용 NTSC 방송은 수신 불가능하다. 전방 지역 송출이 대북방송 전용으로 PAL 방식으로 송출하는지 한국용 NTSC 방송으로 송출하는지는 아는이가 추가바람. 전자라면 극소수의 겸용 수신기가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국에서 수신은 전혀 불가능하며 후자라면 NTSC/PAL 겸용 수신기가 아닌 이상 북한에서 수신 불가능하다. 애당초 NTSC/PAL 겸용 수신기가 있다는 자체가 남한방송을 보려고 한다는 뜻인데 어지간한 최고위급이 아닌 경우라면 불가능할 듯.
  • [10] 사실상 특허의 대부분은 LG전자를 비롯한 한국 기업이 갖고있다. 뭐 정확하게 말하자면 LG전자의 미국 자회사인 제니스사가 가지고 있는거지만.
  • [11] 이론적으로는 주파수만 맞으면 FM 라디오로 아날로그 TV방송의 음성신호를 들을 수 있다곤 하지만 대한민국과 미국의 경우 라디오보다 주파수가 너무 낮았기 때문에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했다.
  • [12] 원래 NTSC 초기에는 45MHz 대역으로 1ch가 있었으나 미국에서 타 무선통신과 겹친다는 이유로 해당 주파수대역을 회수했다. 또한 대역 특성상 노이즈가 많은 등 TV방송용으로는 영 좋지 않았던 것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채널번호가 방송사의 브랜드처럼 여겨지는 상황에서 채널번호를 하나씩 밀어 재할당하기가 곤란하자 그냥 1번 채널 없는채로 표준화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 참조.
  • [13] 83ch까지 할당되어 있으나 규정상 69ch, 실제로는 59ch까지만 사용한다
  • [14] 휴대이동통신이 800MHz 대역을 사용하는데 채널과 채널 사이이다
  • [15] 이 두 나라는 SECAM을 사용했다
  • [16] 북한도 마찬가지, 그런데 여기는 반미 성향이 강함에도 채널번호 1번부터 사용하지 않았다.(조선중앙TV는 10번, 만수대TV는 8번, 룡남산(前 교육문화TV)는 12번
  • [17] 자동차 라디오의 숫자버튼을 떠올리면 된다.
  • [18] 주로 중동지역처럼 같은 아랍어를 사용하면서 국가마다 TV 방식이 다른 지역을 위해 이런 수신기를 만들었다. 물론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필요 없다. 과거에 한국에서 북한TV를 보거나 북한에서 한국TV를 보려면 필요 하긴 하다. 그 전에 코렁탕
  • [19] 1990년 6월, 가와시마 키코가 일본 황실로 시집올 때, 그녀의 집에 텔레비전이 없어 가와시마 가문의 독특한 교육이 화제가 되었다. 키코의 아버지는 가쿠슈인 대학의 교수이며 가와시마 가문은 대대로 학자, 의사, 교수 등이 많이 나온 집안이었다.
  • [20] 아비지트 배너지, 에스테르 뒤플로 저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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