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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그윈

last modified: 2015-01-23 15:38:57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커리어 및 플레이 스타일
3. 은퇴 이후
4. 기타



메이저리그 데뷔 타석 때의 토니 그윈


메이저리그 마지막 경기 때의 토니 그윈

이름 Anthony Keith Gwynn Sr.
생몰년도 1960년 5월 9일 ~ 2014년 6월 16일
국적 미국
출신지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1년 드래프트 3라운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지명
소속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1982~2001)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영구결번
No.19

1. 개요

메이저리그 선수로 포지션은 외야수.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20년 동안 선수생활 했다. 그야말로 파드리스를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다.

2. 커리어 및 플레이 스타일

영원한 3할 타자라는 닉네임이 있다. 1982년 데뷔 시즌 .289를 기록한 이후 15년 연속 규정 타석 3할을 넘겼으며(5년 연속 타율 3할 5푼 시즌 포함), 1994년 단축 시즌에서는 테드 윌리엄스 이후 가장 4할에 근접한 .394의 기록을 남겼다.[1] 스즈키 이치로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기 전까지 미국에서 타격의 달인은 바로 토니 그윈을 말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속팀이 약체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라 MVP 등의 개인상의 인연이 없었던 점이 아쉬운 점이나 통산 8번의 타격 1위, 7번의 최다 안타를 기록했으며 통산 타율 .338로 현대 야구가 확립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선수 중에서는 테드 윌리엄스 다음이다.

90년대 말부터 메이저리그를 지켜본 팬들은 그윈이 '방망이만 잘 돌리는 후덕한 아저씨'로 생각하겠지만, 위 그림에서 보다시피 젊었던 시절에는 통산도루 319개에 달하는 빠른 발과 정교한 컨택트가 일품인 타자. 홈런은 그다지 많이 생산하지는 않지만 최고의 선구안[2]과 외야 어디로든지 공을 날릴 수 있는 타격 능력이 고루 갖춰져 2루타를 많이 생산하는 공격적인 2번 타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이런 고타율의 커리어를 가져가다보니 3000안타는 기본 옵션이었고, 1900년대 출생 타자들 중 가장 적은 경기수 만에 3000안타에 도달한 대기록 또한 갖게 되었다.(2284경기) 거기에 골드글러브 5회 수상에 빛나는 안정된 수비 또한 일품. 하지만 잔부상에 시달리기 시작한 30세를 넘김과 동시에 도루를 포기하고 몸을 불린 뒤 컨택트에 집중했다. 그래도 30대 중반의 나이에 매 시즌 10개 정도의 도루를 할 정도로 주루 센스는 녹슬지 않았다.

80-90년대 타격의 상징은 아메리칸 리그의 웨이드 보그스, 그리고 내셔널리그의 그윈이었다. 커리어 초기인 80년대에는 보그스가 타격왕 5회를 따내며 앞서가는 듯 했으나 그윈은 80년대 4회, 90년대 4회, 통산 타율 .338 이라는 무시무시한 커리어 스탯을 완성하며 커리어 종합 평가에서는 더 앞서게 된다. 다만 선구안이 좋은 보그스가 출루율은 앞서며, 그윈은 선구안보다 컨택 능력이 좋았던 타입이다. 그리고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그윈은 주루가 빼어났지만 보그스는 발이 느렸다.

탁월한 야구 센스도 뛰어났지만 토니 그윈을 타격의 달인으로 만든 비결은 끊임없는 연구와 연습이었다고 한다. 특히 언제나 공부하는 자세로 임했던 선수였는데, 자신의 타격 내용을 복기해 보는 것은 물론이고 상대팀 투수를 분석하는데 무척 꼼꼼했다고 한다. 파드리스 라커룸에는 그윈만을 위한 비디오실이 따로 있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베이스볼 레퍼런스 그윈 페이지에는 별명으로 캡틴 비디오가 붙어있다.

커리어 말년엔 칼 립켄 주니어와 더불어 메이저리그를 대표했던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의 상징이었다. 마지막 올스타전이었던 2001년 올스타전에 립켄처럼 비록 인기 투표에 뽑히지 못했지만 감독 추천으로 참가할 수 있었다. 2007년에 칼 립켄 주니어와 같이 97.6%의 득표율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그윈의 등번호는 당연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영구결번으로 처리되어 있고, 펫코 파크를 지나는 도로의 이름에도 "토니 그윈"이 들어가 있으며(토니 그윈 드라이브), 구장 앞에는 "Mr.Padre"라는 문구가 새겨진 그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3. 은퇴 이후

은퇴 후 모교인 샌디에이고 주립대학의 감독직을 맡았다. 그가 길러낸 제자 중에 드래프트 1순위 1번 지명을 받은 괴물 투수 스티븐 스트라스버그가 있다. 그렇게 순탄하게 대학야구 감독직을 하다가 후두암에 걸렸다고 한다. 원인은 씹는담배. 무척 후회했다고 한다. 흡연은 언젠가는 자기 몸을 망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는 사례.

결국 2014년 4월 들어 세 번째로 암이 발병했는데 상태가 심해지면서 대학 감독직도 휴직을 신청했고,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6월 16일 향년 5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직접적 사인은 씹는 담배로 인해 발병한 침샘암이었다.


그로 인해 그가 세상을 떠난 당일 메이저리그에서는 경기 전 추모가 있었다.

2014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서 데릭 지터만 수십번 언급하고 토니 그윈은 단 한번도 언급되지 않아 논란이 되고있다. MLB 측과 주관 방송사였던 FOX가 해명했지만 변명 취급 받고 있다.

4. 기타

학창 시절에 야구와 농구를 병행했다고 한다. 이미 고등학생 때 지역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손꼽혔고, 샌디에이고 주립대학 재학 시절에는 실제로 NBA 구단들이 그의 게임 리딩 능력을 눈여겨보며 매의 눈 눈독을 들였다고 한다. 실제로 1981년 NBA 드래프트에서 샌디에이고 클리퍼스가 그윈을 지명하기도 했다.[3]

아들인 토니 그윈 주니어는 2006년에 메이저리그에 콜업되어 밀워키 브루어스-샌디에이고를 거쳐 현재 필라델피아 필리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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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메이저리그 파업으로 인한 피해자 중 한 명이다 그가 4할에 거의 근접했을때 총 파업으로 인해 .394로 시즌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다.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시즌을 풀로 치렀으면 [시즌이 마감하기 전 마지막 1달간 4할 5푼의 타율을 기록하며 한껏 페이스를 올리고 있었기에 아쉬움은 더욱 컸다. 시즌이 약간만 더 지속되었어도 테드 윌리엄스 이후 4할 타자가 나왔을지도...
  • [2] 물론 적극적으로 컨택트를 가져갔기 때문에 커리어 내내 볼넷 수는 딱히 많지 않지만 삼진은 더더욱 적어서 한 시즌 20개도 안되는 삼진만 당하는 기록을 풀타임 소화 기준 8시즌이나 기록했다. 오죽하면 "그윈이 삼진을 당하면, 그윈 본인과, 코치들과, 그리고 공을 던진 투수까지도 놀랐다" 라고 농담삼아 말할 정도.
  • [3] 단, 그윈이 야구 쪽으로 진로를 결정했기 때문에 클리퍼스는 가장 마지막 라운드에서 그윈을 지명했으며 사실상 의례적 절차인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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