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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야마 아키라

last modified: 2015-03-14 05:29:55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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鳥山明[2]
오너캐는 가장 유명한 것이 방독면을 쓴 로봇의 모습. 이외에 새[3]나 본인 모습의 자화상 등이 있다.

일본만화가게임원화가일러스트레이터로, 일본 최초로 만화가로서 납세금액 Top 10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 때문에 일본 10대 부자를 꼽을 때마다 여전히 거론되는 인물. 1955년 4월 5일생.

<닥터 슬럼프>, <드래곤볼>의 작가이며,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캐릭터와 몬스터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다. 『크로노 트리거』, 『블루 드래곤』에서도 원화를 맡았다. 그림 활동을 할 때의 저작권 표기에서는 보통 BIRD STUDIO의 이름으로 표기하고 있다.[4] BIRD STUDIO의 BIRD는 토리야마(鳥山)의 토리에서 따온 것.

Contents

1. 소개
2. 데뷔 전
3. 데뷔에서 첫 연재까지
4. 드래곤볼과 그 전설
5. 화풍
6. 취미
7. 성향
8. 기타
9. 작품 목록

1. 소개

일본 만화가 가운데 서구권에서도 절대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몇 안되는 작가. 독자들 사이에서는 데즈카 오사무의 뒤를 잇는 제2대 만화신으로 추앙받는다. 일본 만화가 중 가장 돈을 많이 번 사람으로도 유명하며 일본 내에서 10대 부자[5]중 한 명에 속해있다. 오죽하면 세금 때문에 거주 지자체인 아이치 현에서 이사도 못 가게 한다. …물론 실제로는 정말로 못 가게 하는게 아니라, 각종 편의를 제공해서 이사가지 않게끔 하고 있다고 한다. 아래에 서술된 집 앞 도로 개통건이 그 예다.

일본 오덕들 사이에선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로 인정받는 듯(…). 사실 오덕이 아니라도 객관적인 재산의 양이나 사회적 인지도를 보면 인생의 승리자 맞다. 일본뿐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만화가로서 이 정도 부자는 엄청 드물다. 그 예로 1992년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에선 미국 만화가의 최고 갑부인 찰스 M.슐츠(<피너츠>의 원작자)보다 더 부자인 만화가라며 토리야마를 취재한 적도 있다!


대충 얼마나 대단한 양반이냐면 이쪽을 참조

2. 데뷔 전

어렸을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으며 학창 시절에는 포스터로 전국대회에서 수상한 경력도 있었다. 유년기에는 만화애니메이션에 열중했지만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영화나 TV드라마에 빠져들어서 만화에 대한 관심이 멀어지고 접할 기회가 없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것도 좋아하고 자신도 있어서, 공업고등학교에서 디자인 공부를 한 끝에 디자인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회사에 적응하지 못해 때려치고[6] 놀고 있다가 금전적으로 심각하게 쪼들리게 된다. 그때 마침 소년 매거진의 공모전 광고를 보고 우승 상금 50만 엔을 받을수 있다!는 이유로 투고작을 그렸다. 소년 매거진의 공모전을 목표로 투고작을 그렸지만, 시간에 맞추지 못해 매주 투고작을 접수받는 소년 점프로 가져갔다고 한다.

3. 데뷔에서 첫 연재까지

첫 투고작에서 비록 수상은 하지 못했지만 데생이 뛰어나고 여러 가지의 구도를 사용해서 대상을 그렸다는 점과 효과음 등을 영어로 표현한 센스가 당시 점프 편집자였던 토리시마 카즈히코 눈에 띄어 새로운 원고를 가져와 보라고 권유받아 1년간 500페이지 이상이라는 수많은 원고를 폐기당한 뒤 1978년 단편 <원더 아일랜드>로 데뷔했다. 다만 당시 인기순위는 최하위를 먹었다고 한다. 여담으로 오바 츠구미오바타 타케시의 만화 <바쿠만>에서 나왔던 일화인 편집자가 만화가의 원고를 칭찬한 뒤, 눈앞에서 절단기에 넣어 갈아버렸다의 주인공이 바로 토리시마와 토리야마라는 건 아주 유명한 이야기.

또 다시 엄청난 분량을 폐기당한 뒤 내놓은 작품이 <걸 형사 토마토>. 여기서 어느 정도 인기를 얻어 드디어 '연재'를 맡게 된다. 그리고 <걸 형사 토마토>의 캐릭터들을 조금 디자인을 바꾼 뒤 동물, 로봇, 인간, 외계인이 공존하는 독특한 세계에서 벌어지는 코미디 <닥터 슬럼프>로 큰 성공을 거둔다. 연재 당시만 하더라도 코미디 만화에 있어서는 아키다쇼보의 소년 챔피언이 독보적 위치에 있었으나 그 독자층을 소년 점프로 끌어오게 만드는 일등 공신으로서 소년 점프 1차 중흥기의 주역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이미 이때부터 살인적인 스케줄 때문에 연재 1년째에는 사흘에 한 번밖에 못 잤다거나 철야를 6일 연속으로 한적도 있다고 하고, 작업한 기억이 아예 없는 회도 있었다고 한다. 5년 정도 연재를 이어 가지만 소재와 아이디어의 고갈을 이유로 들며 1984년 연재종료를 하게 된다.

엄청 고생한 것 같아도 데뷔하고 2년 정도만 구른 것뿐인데다가 이때의 작품을 봐도 이미 토리야마 특유의 화풍이 확립되어 있다. 이후로 그림체가 자주 변하기는 해도 작품의 분위기에 따라서 스타일이 변하는 것에 가깝다. 그림 실력은 있었어도 만화에 대한 지식이라고는 전혀 없던 문외한이 2년여의 수련으로 완전체에 가깝게 성장한 것만 봐도 범상치 않은 재능을 느낄 수 있다.그냥 천재라고 하면 되지 뭔 설명이 필요해

4. 드래곤볼과 그 전설

닥터 슬럼프의 성공을 거둔 뒤 내놓은 작품이 <드래곤볼>. 다만 드래곤볼 초기에는 인기순위가 연재작 중 15위권으로 상당히 인기가 적었다고 한다. 원래대로라면 연재가 언제 잘려도 이상하지 않았던 상황이었으나, 당시 애니메이션 <닥터 슬럼프>의 말도 안되는 성공[7]을 뽑은 후지TV는 이미 연재 전부터 토리야마 아키라의 신작은 무조건 애니메이션화 한다는 계약을 체결해놓은 상태였기에 연재 시작과 동시에 애니메이션 제작이 들어갔다.[8] 편집부에서는 이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있는 작품을 2권만에 끝내버릴 수는 없었기에 드래곤볼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기로 하며, 토리시마와 토리야마 두 사람이 머리를 싸메고 회의한 결과 개그 모험에서 액션으로 장르를 변경. 그리고 전설로….

그 결과 드래곤볼의 영향력이 일개 만화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커져 버려 연재를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는 지경에 달했고[9] 작업량은 더욱 더 증가. 쉬게 좀 해달라고!!! 다만 닥터 슬럼프 때의 경험치 덕분인지 이때는 철야 작업의 빈도는 줄었다고 한다. 역시 만화가인 아내와 결혼하기 전까지는 출판사에서 붙여주는 어시스턴트 이외엔 거의 대부분의 그림을 혼자서 그렸다.[10] 그러면서도 10여년간 연재 펑크가 한 번도 없었다.[11] 심지어 드래곤볼 연재 기간 중에는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 등의 게임 캐릭터, 몬스터 디자인과 일러스트 작업, 부정기 단편 연재, 그 외에도 자동차 디자인을 비롯한 각종 디자인 작업 의뢰 등을 동시에 진행하는 등 실로 엄청난 작업량을 훌륭하게 소화하였다.[12]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미지나 본인이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굉장히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그냥 초천재 맞다니까 다만 무리한 스케줄로 만화가들의 직업병인 초염이 생긴데다 진절머리가 났는지 장기 연재는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선언, 가끔씩 단편 연재만 하고 있다. 이 단편 역시도 점프 계열의 새 잡지 창간 기념 등을 이유로 출판사에서의 요청에 의한 것이 대부분으로 실질적인 작가 활동은 드래곤볼 이후로 종료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디자인 관련 작업 등 다른 작업은 아직 활발한 편이다. 2009년 말에는 완전은퇴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신 극장판에도 참여하고 활동도 계속하는 것을 봐서는 한동안은 무리일 듯하다. 논 자유의 모미 아냐

5. 화풍

독특한 화풍으로도 유명한데, 스크린톤 등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먹칠과 펜화만으로 그림을 그렸었다. 특히 일본 만화가로서는 정말 보기 드물게 연필 밑선을 그리지 않고 바로 펜터치만으로도 그림을 그리는데도 입체감을 잘 살리는 보기 드문 인물이다.[13] 다만 여기에도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닌데, 이래서 자잘한 작화 미스가 많은 편. 드래곤볼의 에피소드별 비판점 항목에서 볼 수 있듯이 작화질의 하락인데, 후반부에서는 등장인물이 짝다리나 짝눈이 된다든지 하는 경우가 꽤 생기는 편이다. 프리더 에피소드와 마인 부우 에피소드를 비교해 보면 확 드러나는 부분. 이런 문제는 비슷한 시기의 작가이자 역시 연필 데생 없이 바로 펜터치로 그림을 그리는 걸로 유명한 미야시타 아키라 또한 가지고 있는 문제. 그래도 크게 망가져 보이지 않고 일부 컷에서만 어색한 수준으로 그치는 점이 대단하지만...결론은 따라하지 마시오.[14]

과감한 생략과 데포르메를 사용하면서도 양감 있는 화풍을 가꾸어내는 그만의 감각과 맛을 가지고 있다. 또한 그의 얼핏 투박해보이는 그림체는 웬만해선 알아보기 힘들 것 같은 시점과 복잡한 장면에서도 의외로 가독성이 매우 뛰어난 커다란 장점을 갖고 있다. 특히 그의 캐릭터는 어떤 각도로 그려도 웬만해서는 캐릭터의 모습이 달라지는 작붕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자동차나 메카닉을 비롯하여 사물의 묘사력도 정평이 나 있는데, 돈이 없던 시절 갖고 싶었던 물건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만족하던 버릇이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디자인으로 그림을 배웠기 때문에 전체적인 작화나 채색 등에서 균형 감각이 대단히 뛰어나고, 배경 등을 그리지 않아도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는 구성력과 디자인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토리시마는 평가했다.

사실 토리야마의 투박하며 간결한 펜선은 상대적으로 따라 그리기는 쉬운 편이라 한때 일본에서도 카피 작가들이 횡행한 적도 있었지만 결국 그만의 맛과 매력을 살리지 못하는 단순 복제에 지나지 않아 모두 사라졌다는 일화도 있다.[15] 실제로 따라 그리기는 쉬울지언정 크리에이티브적인 면에서는 극도의 심플함을 가진 그림이 디테일한 그림보다도 어떤 의미에서는 더욱 힘들다고 한다. 단순히 그림에 있어서도 대가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일반인보다는 프로에게 더욱 극찬을 받는 편인데 이는 <마이러브>와 <까꿍>의 이충호가 쓴 에서도 알 수 있다.

드래곤볼 연재 종료 후부터는 Mac을 사용하기 시작. 이후 제작 과정에서는 CG를 사용한 것이 상당히 많고 화풍이나 채색등에서 이전과는 다소 바뀌었다. 이는 드래곤볼의 연재 후반부부터 팔에 통증이 심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PC가 없었다면 펜을 놓았을지도 모른다고. CG를 사용한 작품으로는 네코마인지카, 게임은 드래곤 퀘스트8부터.

CG를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흑백만화의 작법도 매우 많이 바뀌었다. 기존 펜촉보다 마찰력이 적은 태블릿을 사용하게 됨에 따라 펜터치가 완전히 바뀌어, 드래곤볼 후반부의 직선적인 화풍이 아닌 곡선적인, 어찌 보면 토리야마 초창기 작품인 닥터 슬럼프에 가까운 펜터치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프로그램의 손떨림 보정 기능을 사용하지 않는지 태블릿의 인식 문제로 선이 살짝 떨리는 그림이 자주 보이고 있다. 스크린톤 또한 사용이 늘어, 최신작 하 패트롤 쟈코의 경우 페이지당 2~3종류 이상의 톤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톤이 들어가지 않은 페이지를 찾기가 정말 힘들 정도.

6. 취미

취미는 모델건 수집과 프라모델을 만드는 것이며 피규어 제작 실력도 수준급이다. 바쁜 일정 중에도 타미야의 1/35인형 개조 콘테스트에 거의 개근하다시피 참가했고 수 차례 수상한 경력도 있다. 당연히 자기 작품 캐릭터의 피규어는 본인이 직접 감수한다고 한다. 또한 상당한 메카 페치에다 중증 밀덕후라 자동차 디자인에 참여하거나 밀리터리 잡지에 기고한 사례도 있다. 파인 몰드에서 발매한 본인 디자인의 1/12 월드 피규어 컬렉션을 보면 고강한 밀덕력이 여실히 드러난다. 프라모델 만드는 시간을 내기 위해 마감을 꼭 지켰다는 이야기도 했다. 덕분에 작품에도 다양한 로봇이나 탑승물이 나오고 있는데 닥터 슬럼프 연재 당시에는 차를 너무 그려대서 편집자인 토리시마가 이 만화는 자동차가 주인공이냐며 불만을 토로한 적도 있다고 한다. 스타워즈같은 SF영화 팬이기도 하지만 차량에 대해서는 한때 오토바이 레이서였던 아버지의 영향도 있다는 듯하다.

동물 애호가이기도 하다. 서브 캐릭터로 동물을 많이 그리는 것도 인간 캐릭터만 그리면 얼굴을 나누어(서로 구분할 수 있게 디자인을 달리해서) 그리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원체 동물을 좋아한다고 한다. 어릴 때 부모님께 침팬지를 기르고 싶다고 떼를 썼다고 하고 고양이를 시작으로 토끼, , 물고기 등의 사육을 취미로 하고 있다. 단행본의 작가의 말 코너를 보면 기르는 동물(특히 개)에 대한 이야기가 몇 번이나 나온다. 유일하게 만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아이들이 졸라서 기르기 시작한 햄스터 영향으로 이쪽도 괜찮아진 듯.

7. 성향

좀 특이한 사람이라 만사를 귀찮아하는 경향이 있는데, 의외로 그게 작품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예를 들어서 내리는 걸 그리는 게 귀찮다고 결혼해서 아내가 그려주기 전까진 펭귄 마을에 절대 비가 내리지 않았으며, 초사이어인 탄생 계기도 손오공 머리에 까맣게 먹칠하기 귀찮아서, 드래곤볼에서 마을이고 별이고 죄다 한 방에 박살나는 이유는 배경 그리기 귀찮아서(어차피 박살난 것들은 드래곤볼 모아서 다시 복구하면 그만,배경이 궁전말고는 아예 없는 정신과 시간의 방도 만듬), 스크린톤을 잘 안쓰는 이유도 자르고 붙이기 귀찮아서,[16] 사실 전술한 연필 밑선 안그리기도 귀찮아서 펜선으로만 하다보니 그렇게 됐다고 하고, 연재 작품의 컬러 페이지는 아마도 매번 잉크를 사는 것이 귀찮아서 그런지 수성 사인펜을 접시에 바른 후에 그걸 으로 적당히 물을 풀어서 칠한다고 한다.진정한 고수는 도구를 가리지 않는다. 그런 것이 어느새 그만의 매력으로 정착되었다.

귀차니즘과 더불어 자신의 작품에 별다른 애정이 없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여러 인터뷰에서 그렇지만 특히 국내에 잘 알려진 오다 에이이치로와의 대담 인터뷰[17]를 보면, 무슨 기억상실증에 걸린 토리야마의 기억을 오다가 각성시켜 나가는 정신치료 상담같은 느낌이 든다(…). 아마도 연재 당시에는 일정 때문에 정신없이 작업을 해서 거의 기억에 남는게 없었을 것이고, 작업 이후에도 자신의 작품을 잘 보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18] 덕분에 원작자인데도 불구하고 작품에 대한 발언을 독자들이 신뢰하지 않는다. 실제로 별 생각없이 그때그때 즉흥적으로 대답을 하기 때문에 같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인터뷰 때마다 달라질 때도 있다.[19] 다만 정말로 작품에 애정이 없다기보다는 방임주의 부모 같은 느낌에 가깝다. 자식 같은 캐릭터들이 도박에 사용되는 것은 내키지 않는다고 파칭코화에 대해서만은 거부했던 일화를 봐도 작품에 애정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20] 전작들도 같은 상업주의이긴 하지만 본래 유쾌했던 개그적인자신의 작품이 자신취향과 먼 액션작품으로 연재방향을 틀어야 했던 작품에 대한 애정이 식고, 그저 업무로써 만화를 그려 왔었기 때문일도 모른다.

독자에게서 받은 팬티가 누래질 정도로 담배를 피우는 대단한 골초라고 한다. 하루에 많으면 세 갑, 마감 전에는 100개비 이상을 피울 때도 있다고 하며 빡빡한 일정과 본인의 성격상 이것 말고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반면 은 거의 못해서 맥주 한 잔 정도가 한계라고 한다.

스토리에 대해선 본인 외에 초대 담당 편집자였던 토리시마가 많은 조언을 해줬으며, 오공이 계왕을 웃기기 위해 썼던 개그나 퓨전의 아이디어 등은 카츠라 마사카즈가 생각해 냈다고 하는 것 역시 유명한 이야기다. 스토리 진행은 즉흥적으로 짜는 편이며 원활한 전개를 위해서 일부러 느슨하게 설정을 짠다고 한다. 그러는 편이 설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데다, 스스로도 어떻게 되어갈지 몰라서 두근거리면서 그릴 수 있다고. 또한 막상 작업을 하다보면 머릿속에서 생각한 것과는 달라져 버리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스토리 진행에 한해서이고 하나의 큰 스토리 라인을 시작할 때, 이런저런 캐릭터의 모습이나 설정, 배경 스토리 같은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설정을 짜놓고 작업을 하는 편이다. 꽤 많은 뒷 설정이 머릿속에 있었지만 설명같이 되기 때문에 대부분 그리지 않았다고 발언하고 있으며, 작품의 뒷 설정을 만드는 것도 비교적 재미있다고 했다. 실제로 만화에는 묘사되지 않는 역사나 세계관에 관한 설정, 스토리의 공백 기간 동안의 캐릭터의 생활 등의 메모와 자료가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이상의 내용은 드래곤볼 대전집에서의 인터뷰나 점프 특집 인터뷰 등에서 작가 본인이 직접 밝힌 바 있다.

또한 <닥터 슬럼프> 때는 어차피 대단한 내용의 만화도 아니라 스케치북만 지긋이 보고 있으면 스토리가 떠오른다고 한적이 있다. 참 쉽죠?

스타워즈』의 대단한 팬이며 데뷔를 준비하는 시기에는 패러디 만화 등을 자주 그렸다고 하며 그 외에도 SF 작품을 대단히 좋아한다고 알려져 있다. 오공의 표정이나 동작에서 이소룡이나 성룡을 생각하면서 그렸다고 하고, 아이들과 슈퍼전대 시리즈를 보고서 패러디로 기뉴 특전대를 등장시켰다.

언론 등에 노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인터뷰 기사나 본인의 사진이 공개, 게재되는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워낙 유명인인 관계로 사진도 이름도 연락처도 대부분 다 알려져 있다. 넉살좋은 아저씨처럼 생겼지만 실제로는 낯가림이 심해 가족, 친구, 지인 외에는 사람 대하는게 서툴다고 한다. 어찌보면 만화가가 천직인 듯. 실제로 어시스턴트의 도움을 받지 않는 것도 이 성격 때문일지도 모른다. 또한 장난기 많고 순수한 사람으로 닥터 슬럼프의 보너스 페이지에 묘사된 모습을 보면 어린애 같은 일면을 많이 볼 수 있다. 아내와 만나게 된 계기가 자신이 건 장난전화 때문이라고 하며, "그 센스와 지식에는 당할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특이하게 개그트리오 니분노고(ニブンノゴ)의 보케인 오오카와 토모히데와 친분이 깊어서, 드래곤볼의 할리우드 영화화에 대한 상담을 했다고 한다. 니분고노는 97년 데뷔 이후 전혀 뜨지 못하고 있는 망한 개그맨이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거의 10년에 가깝게 사귀어온 듯 하다.[21]

드래곤볼 연재 당시엔 유달리 2인 1조로 나오는 캐릭터들이 많은데[22], 이는 2인 1조의 경우 내레이션을 쓰지 않고도 상황 설명 등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015년 골든 위크에 공개되는 드래곤볼 Z 극장판 관련 토리야마 코멘트에서 사실은 화려한 액션물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8. 기타

루머였지만 자기 집 앞 도로 상태가 안 좋자 다른 사람들도 편하게 다니라고 사비로 몇 억을 털어서 아예 도로 아스팔트를 새로 깔았다는 도시전설이 존재했다. 정확하게는 이것은 아이치현에서 계획중이던 고속도로의 차선계획을 일부 변경해 토리야마의 집 앞에서부터 추부 센트레아 국제공항까지 거의 일직선으로 운행할 수 있는 도로를 건설했다고. 이는 토리야마가 자신의 원고는 꼭 자기 집에서 작업하고 마감 하루 전날 항공우편으로 보내는 습관때문이다. 이 사실을 안 현 정부에서 아이치현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인물[23]인 토리야마를 위해 택배차가 지나갈 수 있도록 도로건설 계획을 변경해 토리야마 자택 앞에 도로를 연결한 것이다. 토리야마 본인도 나고야를 떠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오히려 본인이 깐 것보다 이쪽이 더 대단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착각이다.

동네를 떠나는 것을 싫어하는데[24], 어느 정도냐 하면 마감을 어기면 도쿄로 올려보낸다고 편집부가 엄포를 놓았는데 딱 한번 편집자(토리시마 카즈히코)가 마감이 위험했을 때 작업하는 옆자리에서 조용히 정좌하고 기다렸던 것이 무척 부담스러워 도쿄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마감을 칼같이 지킨다는 내용의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사람 대하기 힘들어 하는 그의 성격을 생각하면 있을 법한 일화. 지금은 애들을 도시에서 키우기 싫어서 나고야를 고집하는 듯. 그가 고백한 실책 중의 하나가 이렇게 유명해질 줄 모르고 본명으로 데뷔한 것인데,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얼마 없어서 전화 번호가 공개되어 있다는 사실이 괴롭다고. 데뷔 초에 생각했던 필명은 미즈타니 키사쿠.

국내에서도 여러 루머가 있었는데, 드래곤볼 이후로 뚜렷한 활동이 없어서인지 몰라도 뜬금없이 웬 사망설이 나돌기도 했었고, GT를 제자들이 제작했다든지 여러가지 루머가 있었다. 이런 루머를 봐도 그렇지만 국내에서는 묘하게 취급이 좋지 않다. 당장에 인터넷에서만 해도 리그베다 위키를 제외하고는 작가 자신도 작품도 처절할 정도로 정보가 없는데다 설명이 빈약하다.

원래 드래곤볼은 편에서 마치려고 한 것을 일본 문화부 차관이 와서 연장시켜주십시오 했던 전설이 있다.[25][26]#

현재의 소년 점프 연재 만화가들은 대부분이 토리야마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세대라 스크린톤을 잘 쓰지 않는다. 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등을 잘 보면 토리야마처럼 펜선으로 명암을 표현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정작 토리야마는 톤을 붙이기 귀찮아서 그런 거였는데...[27]

만화를 그리고 싶어서 만화가가 된 것이 아닌 만큼, 드래곤볼 이후로 장편 연재는 하지 않고 가끔씩 단편 연재는 하는 편인데, 본인이 선호하는 스타일의 가벼운 개그물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마저도 점프에서는 감지덕지인지 <네코마인>의 경우, 단행본 발간시 처음부터 완전판으로 발매가 되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있다. 신작이 완전판의 판본으로 처음부터 출간된 것은 아직까지는 네코마인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28]

장편 연재를 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일본에서는 한탕주의,[29] 국내에서는 드래곤볼 이후로는 다 망한 만화가[30]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는 편이다.


사실 드래곤볼은 담당 편집자들이 악당으로 등장해서 털리는 만화였다.

장난기가 많은 성격인지 드래곤볼 캐릭터 이름들이 대부분 패러디란 것은 유명한 이야기고, 악역 이미지를 담당 편집자에게서 가져오는 경향도 있다. 편집자들이 그렇게밖에 안 보이는 모양 초기 담당인 토리시마 카즈히코는 닥터 슬럼프의 메인 악역인 닥터 마사리트와 드래곤볼 초기 악역인 피콜로 대마왕의 모델이 되었고, 2대 담당인 콘도 유는 프리더의 모델, 3대 담당인 다케다 후유토는 마인 부우의 모델이다. 하단 이미지는 드래곤볼 대전집에서 가져온 것인데, 사진 옆에 캐릭터를 배치해 놨다.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캐릭터, 몬스터 디자이너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나 실은 토리야마는 슈에이샤 이외의 출판사의 출판물에 일러스트를 투고할 수 없는 전속 계약[31]에 묶여 있으므로, 게임의 표지나 패키지 수록 메뉴얼 일러스트, V점프 부록 일러스트까지는 그릴 수 있지만 스퀘어에닉스가 출간하는 드퀘 관련 공략본까지는 그림을 게재할 수 없어서, 그런 류의 서적엔 본인 일러스트가 한 장도 들어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거기다 토리야마 본인의 스케쥴 문제도 있고 해서 보통 대부분 드퀘 일러스트는 토리야마의 그림체를 똑같이 그릴 줄 아는 사람들이 대신 그리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론 나카츠루 카츠요시, 무라카미 유미코 등이 있다.

드퀘의 경우 위저드리같은 서양 RPG의 영향을 많이 받은 호리이 유지의 성향 때문에 처음에는 리얼한 형태의 디자인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토리야마가 디자인을 맡으면서 슬라임으로 대표되는 드퀘 특유의 귀엽고 아기자기한 캐릭터가 탄생하게 되었다. 당시 호리이 유지의 러프 스케치를 보면 크리처 디자인이 그냥 대놓고 서양식 RPG였던 점을 감안해 보면, 의도하지는 않았겠지만 슬라임 계열 모에화의 선구자. 다만 서양 RPG의 경향을 완전히 뿌리칠 수는 없어서 이런저런 소스들이 남아 있게 되었고, 거기에 어른의 사정이 좀 끼어들어 비키니 아머의 실질적인 창시자가 되었다.

2013년 제 40회 앙굴렘 국제만화페스티벌에서 40주년 기념 특별상을 수상했다.

9. 작품 목록

  • 닥터 슬럼프
  • 드래곤볼
  • 리야마 아키라 ○작 극장
    • VOL.1
      • 원더 아일랜드
      • 원더 아일랜드2
      • 걸 형사 토마토
      • POLA&ROID
      • MAD MATIC
      • CHOBIT
      • CHOBIT2
    • VOL.2
      • 오늘의 하이라이트(ハイライ島)
      • ESCAPE
      • PINK
      • 기룡소년(드래곤 보이)
      • 톤프 대모험
      • Mr.호
      • 켄노스케님
      • SONCHOH
    • VOL.3
      • 마메지로군
      • 카라마루군 일본맑음
      • 저금전사 캐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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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왼쪽은 본인을 그대로 그린 것이고, 오른쪽은 '토리봇'이라고 불리는 오너캐이다.
  • [2] 한자 그대로 읽어서 조산명 선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 [3] 닥터 슬럼프 초기에는 새 모습으로 나오다가 나중에 가면 방독면 쓴 로봇으로 나와 에게 먹혔다(...)
  • [4] 이는 세금 문제 때문으로, 비슷한 경우가 아즈마 키요히코의 요츠바 스튜디오. 저작권 문제로 정반대의 포지션을 취할 때도 있는데, 야츠데 사부로야다테 하지메 같은 케이스가 있다.
  • [5] 정확히는 1981년에 만화가로는 최초로 일본에서 개인 세금 납부자 10위권에 들어갔다. 닥터 슬럼프 하나만으로도 이 정도였는데 드래곤볼은…. 참고로 다른 9명의 세금 고액 납부자들은 모두 재벌 오너들이었다고 한다.
  • [6] 이유가 가관인데,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게 힘들어서.
  • [7] 평균 시청률 23.8%, 최고 시청률 38.1%를 기록. 역대 점프 원작 애니메이션 중 최고의 시청률 기록을 아직도 유지중이며, 역대 애니메이션 최고 시청률 3위를 기록하고 있다.
  • [8] 이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처사로 원피스가 원작 8권 분량, 나루토가 원작 10권 분량이 진행되고 나서야 애니메이션화가 결정된 걸 보면 잘 알 수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원피스와 나루토는 분명 대단한 작품이지만 신인 작가가 내놓은 히트작이고 토리야마는 이미 닥터 슬럼프로 인해 점프를 대표하는 거물급 작가 중 하나였으니 위치가 다르긴 하다.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동시에 제작하는 결정 때문에 연재가 진행될 수록 양쪽의 호흡이 안 맞아서 시간 질질끌기 등의 병크가 발생했다.
  • [9] 연재를 쉬면 점프 편집부, 애니메이션 제작진, 완구회사 직원들까지 잘려버릴 지경.
  • [10] 연재 당시 어시스턴트의 작업은 먹칠 정도로 한 주에 하루, 그마저도 와서는 거의 놀다가 갔다고 한다. 정말로 거의 혼자서 다 그렸다!!! 닥터 슬럼프의 보너스 페이지의 만화를 보면 어시가 작가에게 원고를 빨리 달라고 옆에서 놀리면서 재촉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 [11] 닥터 슬럼프 연재 종료 후 바로 드래곤볼의 연재를 시작했기 때문에 사실상 15년 정도이다.
  • [12] 사실 말이 15년이지 작업 대부분을 혼자서 하는데다가 휴재도 거의 없었고, 디자인이나 일러스트 작업도 대충 그림만 슥슥 그리는 것이 아니다. 이쯤 되면 귀차니즘을 가장한 초인이 아닌가 싶다.
  • [13] 심지어 콘티도 그리지 않는다. 3번이나 그리는게 귀찮다는 이유로 토리시마에게 요청해서 그러기 시작했다고. 이에 대해 2대째 담당 편집자인 콘도 유우는 밑그림이 없이 올라와서 작화 수정에 대해 말해도 될지 어떨지 몰라 당황했었다고 한다.
  • [14] 토리야마처럼 일본 만화 역사상 독보적 최고이며 세계 만화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아니 그냥 유력한 세계 1등 만화가라고도 논해지는 레전드천재도 작화 미스를 만드는 판인데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라 평균보다 꽤 뛰어난 상위권 수준의 작화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이런 스타일로 한다면 당연히 결과가 매우 나쁠 것이다는 망해. 그냥 천재도 완전 망해. 하지마. 심지어 도 고쳤어. 죽어도 하지마.
  • [15] 정작 본인은 지금도 그림을 잘 못그린다고 말하는, 의외로 겸손한 인물이기도 하다. 실제로 닥터 슬럼프 시절 여성 캐릭터 얼굴이 죄 똑같다는 것을 개그 소재로 삼는 셀프 패러디를 하기도 했다.
  • [16] 시간 절약을 위한 이유가 가장 크다고 한다. 그 덕분에 비교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단편인 <COWA!>에서는 스크린톤을 많이 사용했다.
  • [17] 원피스 Color Walk vol.1 권말 수록. 이 인터뷰를 보면 토리야마가 정말 자기 만화에 별 감상이 없구나라는 느낌이 든다. 대범한 점이 거장답기도 하지만.
  • [18] 드래곤볼 완전판 발매 당시에 표지를 새로 그리기 위해서 원작을 다시 읽어 봤다고 하는데 이때 인터뷰를 보면 원작 종료 이후에 한 번도 자기 작품을 안 봤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19] 예를 들면 드래곤볼 연재 종료 후의 천진반런치의 관계. 처음 관련 인터뷰에서는 "결국 둘이 결혼에 골인했다"고 했지만 2013년 인터뷰에서는 "런치가 농사하고 있는 천진반을 찾았지만 런치는 농사에 흥미가 없고 천진반은 연애에 흥미가 없어 서로 이어지진 못했다"라고 이야기한 것.
  • [20] 이 발언의 진위 여부는 불명이지만 파칭코화가 안되는 것은 본인의 의사가 분명할 것이다. 실제로 드래곤볼은 파칭코화에 대한 요청이 대단히 많았지만 모두 거절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슈에이샤에서 딱히 거부할 이유는 없으니 토리야마의 의사라고 생각해야 한다.
  • [21] 사족이지만 굳이 니분고노 아니여도 묘하게 97년에 데뷔한 게닌들 중 인기 있는 게닌이 거의 없다. 오죽하면 아메토크에서 '망한 97년 데뷔 게닌'이라는 기획을 두 번이나 했을 정도...
  • [22] 오공과 부르마, 야무챠와 푸알, 베지터와 내퍼 등등
  • [23] 일본 전체로 봐도 상위 1%안에 들어갈 고액 납세자이다.
  • [24] 태어난 고향에서 지금까지 살고 있다. 그런데 일본어 위키에 의하면 집이 나고야 인근의 키요스 시로 되어 있다. 아마도 집이 나고야시에 가까운 키요스시 외곽에 사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사람으로 치자면 인천에서 태어난 사람이 인천에 살다가 부천에 살다가 하면 그냥 인천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쭉 살았다고 말하는 정도랄까.
  • [25] 드래곤볼 항목에도 있지만 드래곤볼이 연재 종료한 다음 주 소년 점프의 발매부수 100만 부가 날아갔다. 거기에 관련 업종, 미디어믹스 등의 손실은 막대했다.
  • [26] 당시 장관이 직접 와서 빌었다는 소문에 만화가 박성우가 이게 진짜인지 확인하려, 일본 업계 편집 기자에게 물어봤다고 했을 때 '에이~ 설마 장관이 왔겠어요?' 라는말을 들었다고. 그래서 그럼 그렇지~ 라고 생각하고 그럼 뭐 높으신분 오셨던 이야기는 왜나온거죠? 하니깐 문화부에서 오시긴 오셨습니다. 장관님 대신 차관님이였죠.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교장이 시켜서 교감선생님이 담임으로 온꼴. 사장님 대신 부사장님이 집에 찾아온꼴 어쨌건 문화부의 높으신 분들이 만화 하나 연재를 연장해달라고 온것은 사실이란 말. 차관이 왔을 때도 거절했으면 장관이 찾아갔겠지, 아니 총리가 갔을 지도 몰라
  • [27] 바쿠만에서는 톤이 없는 산뜻한 느낌의 그림체의 만화가 오히려 인기가 많다는 식으로 말하긴 했다. 어쨌든 그 시초격중 하나가 드래곤볼인건 사실.
  • [28] 우스타 쿄스케와 토가시 요시히로는 편집부에 연재 영향을 안 받는 것만 해도 특별한 대우인데 이쪽은 아예 그려주시면 감사합니다 수준...
  • [29] 대부분은 닥터 슬럼프를 모르는 연령층이다. 80년에 연재를 시작한 작품이다 보니...
  • [30] 1권짜리 작품들은 대부분 단기 집중 연재작으로 처음부터 1권 분량으로 기획된 작품들인데, 이걸 인기가 없어서 잘린 작품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 [31] 연간 약 1억 엔 정도라 한다. 그림을 그리지 않고 놀고 있기만 해도 12억 원 정도를 받는 셈. 전속계약 자체는 인기 작가로서는 별로 특별한 건 아니지만 연재도 안 하는 작가가... 이미 토리야마의 그림이라는 것 자체가 슈에이샤의 브랜드가 돼버렸다는 의미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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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14 05:2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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