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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의 변

last modified: 2015-04-12 01:58:40 by Contributors

토목 공사하곤 상관없다!

Contents

1. 개요
2. 원인
3. 결과
4. 그 후
5. 탈문의 변
6. 조선에 끼친 영향
7. 기타

1. 개요

土木之變

명나라 중기(1449년)에 있었던 사건. 토목보의 변(土木堡之變)이라고도 부른다.

2. 원인

명나라와 몽골계통의 오이라트족 사이의 무역분쟁이 그 원인이었다. 1406년 영락제가 몽골 부족과의 조공무역을 승인한 이후, 명나라에서는 비단과 의류, 식량을 수출하고 몽골 부족들은 말과 모피 등을 수출하는 마시(馬市)가 관례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초기에는 기껏해야 수십명 단위의 소규모 교역에 불과했던 마시의 규모가 점점 커져 수 천명 단위가 되어버리고, 여기에 위구르 상인까지 가세하면서 무역의 규모가 지나치게 커져버렸다. 게다가 오이라트 쪽에서는 무력상의 우위를 바탕으로 실제 말 숫자보다 명목상의 말 숫자를 늘리는 형식으로 말 값을 몇 배로 올려받았고, 한 몫 잡으려는 사람들이 가세하여 밀무역이 벌어지는 등 이래저래 영종 정통제 시절에는 명나라의 골치거리로 자리매김하였다. 그래서 명나라에서는 무역을 제한하기 시작하였고, 환관 왕진이 나서서 조공무역 이외의 무역은 금지하고 오이라트에도 실제 숫자에 해당되는 요구하는 말 값만을 지불함으로써 말 값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3. 결과


이와 같은 갑작스런 개같은조치에 오이라트의 타이시 에센[1]은 군대를 이끌고 1449년 명의 산시성을 공격하였다. 이에 왕진은 정통제에게 친정을 주장하였고 여러 신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통제는 50만 대군을 구성하여 변방에 침입한 오이라트족을 공격하기 위해 친정에 나섰다.

문제는 이 50만 대군이란 병력이 문신이나 귀족들이 포함된 단순히 숫자만 뻥튀기한 병력이라는 점이었다. 다함께 소풍가는 기분! 물론 당시 수도인 북경을 수비하던 경군의 대부분이 포함되는 등 정예병력의 수도 많고, 이를 지휘할 능력이 있는 장수도 다수 포함되었지만, 총지휘자가 정통제이고, 실제 지휘자가 환관 왕진이라는 점에서 이미 개판 5분전상태.

그나마 앞서 출격시킨 호위부대가 박살난 정황을 목격하고는 황급히 철수하기로 해서 원래는 비극을 겪지 않을 수 있었지만, 환관인 왕진이 자신의 고향을 군대가 통과할 경우 입을 피해를 우려해서 철수길을 우회시키는 뻘짓을 감행하였고, 결국 물이 없는 토목보라는 작은 요새에 포위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당연히 이 환관 왕진의 뻘짓 + 물 없는 작은 요새의 이중효과로 인해 50만 대병력은 간단하게 개박살나고 토목보에서 황제 정통제포로로 잡혀버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때의 충격이 얼마나 심했냐 하면, 황제가 포로로 잡히고, 정부의 상당수의 대신과 장군들이 전사했으며, 수도를 지키는 정예군인 경군이 그 장비와 함께 전멸하는 바람에 수도인 북경성은 그야말로 무방비에 대혼란인 상태...

이 문서가 수정되기 전에 에센의 군대가 2만정도라고 나와있었지만 틀린편에 가깝다. 먼저, 오이라트부 4부족 연합이라는 명칭 자체가 몽골 제국 이후 부족단위로 여겨진 4개 투멘(만인대)이 하나로 뭉친 것이다. 1 투먼이 1만명을 다 채우지 못했을 것이라 여겨진다고 해도 2만명까지 낮게 추측할 수 없다. 또한 에센의 아버지인 타이시 토곤 시절에 몽골의 40개 투멘을 이기고 복속시켰으므로 이들까지 끌어낸다면 오이라트부의 동원 가능 병력은 더 증가한다.그래도 명군이 병력 수는 더 많았을 것이란 점은 변하지 않는다

4. 그 후

명나라 조정에서는 남경에 남아있던 제2조정의 신하들을 주축으로 해서 신하들 사이에서 남경으로의 천도도 진지하게 논의하였지만, 병부상서 우겸이 총대를 매고 남쪽으로 도망간 의 예를 들어가면서 강력히 반발한 까닭에 간신히 진정되었다. 그리고 황제가 포로로 잡힌 상황에서 본국에 황제가 없으면 안되니까 정통제의 이복동생 주기옥을 황제로 옹립시켰다. 이후 북경 방어의 총책을 짊어진 우겸은 거의 총력을 다해 남경의 무기와 병력을 이동시키는 등 방어전력을 모으고 전쟁에 대비하였다.

명나라가 그럴 동안에 에센은 우선 정통제를 앞세우고 명나라 변방을 돌아다니면서 각지의 요새들을 무혈항복시키려는 시도를 한다. 그러나 북경처럼 요새화된 도시를 공략하는건 상당히 다른 차원이고 여러 요새에 공격을 시도해봤지만 격퇴당하고 남쪽에서 근왕병들이 속속 증원되어 올라오자 북경 공략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사로잡은 정통제를 이용해 협상하려 했는데 이 때는 이미 명나라는 경태제를 세우고 정통제를 버린 상태(...)라 "정통제? 아~ 그분? 그분은 이미 태상황이 되셨는데 ㅉㅉ...당금의 천자는 경태황제임!"을 외쳤고, 결국 성과는 없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에센은 격노하여 북경으로 쳐들어갔다. 그러나 이미 명나라는 이미 22만여 병력을 베이징에 모아 놨고, 장비들도 남경과 기타 지역, 심지어는 토목보 주변에 버려진 것까지 싹 회수해서 배치한 상태였다. 게다가 단순한 수성전이 아니라 북경 주변에 있는 옛 성의 성벽 등을 이용해서 주변에 진지도 다수 깔아 놓은 상태.

여담으로 토목보 주변에 버려진 화기가 매우 많았는데, 그 이유는 평소 화약을 사용하는 화기에 대한 명나라의 비밀엄수가 너무 심해서 병사들이 화기를 휴대만 했지 사용법을 몰랐기 때문에 미사용 상태로 화기를 버렸으며, 역시 에센의 병사들도 화기를 사용하는 법을 몰라 그대로 화기가 방치되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북경 공방전에서는 이 때의 교훈을 살려 병사들에게 화기 사용법을 숙지시켰기 때문에 명군이 화력 면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다. 그 결과 오이라트군은 창의문과 덕승문을 중심으로 벌어진 교전에서 패하고 베이징을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렇게 지고 돌아온 후 오이라트측은 정통제를 가지고 송환협상이 진행되었지만, 위에서 말했다시피 명나라는 정통제를 버려서(...) 협상 자체가 잘 되지 않았고, 결국 1450년 아무 조건 없이 석방되었다.

5. 탈문의 변

경태제는 정통제가 다시 오면 황제 자리를 내놔야 되나 싶어서 매우 망설였지만 신하들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설득해서 정통제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정통제는 사실상 연금 상태에 놓였다. 경태제가 매우 불안할 수 밖에 없는 게 애초에 명나라의 종친왕들은 의전상 예우만 높지 실권은 박탈된 채 살았는데, 자신은 그렇게 살다 정통제의 생모 성모태황태후[2]가 정통제가 사로잡히고 나서 옹립한데다가 제왕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고, 민심 안정을 위해 황태자는 정통제의 맏아들 주견심을 그대로 놔둬서 권력기반은 매우 약한 상태였다. 형이 복위하면 형 허락도 없이 즉위한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지는 건 당연했다.

권력기반이 어느 정도 다져져, 경태제는 형의 아들을 폐위 시키고 자신의 아들 주견제를 황태자로 책봉했지만 몇년 후 경태제의 태자가 병으로 죽었다. 그런데 경태제는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후계자 지명을 거부해서 후계자가 없는 상황이 지속되는 마당에 몇 년 뒤 경태제 본인도 병에 걸려서 위독해졌다. 이에 정통제는 자기를 따르는 군사를 모아 쿠데타를 일으켜 경태제를 퇴위, 감금하고 황제에 복위하였다. 이걸 탈문의 변(奪門之變)이라고 한다. 그래도 정통이란 연호를 그대로 쓰기는 쪽팔렸는지, 연호를 천순으로 바꿔 복위 이후로는 천순제라고 불렸다.

참고로 이 '쿠데타'라는 것도 실상은 매우 어설펐다. 경태제가 병을 앓아 드러눕게 되자 정통제가 밤중을 틈타 유폐되어 있던 궁문을 부수고 자금성에 당당히 들어가려 했으나 궁문 수비병들이 이를 막았고, 이에 정통제는 "짐이 태상황이니라!" 라고 외쳤는데, 그 한 마디에 수비병들은 모두 만세를 부르고 문을 열어 주었단다(…). 이 쿠데타를 주도한 사람은 서유정과 조길상인데, 서유정은 토목의 변 당시 남경으로 천도하자고 하다가 우겸의 꾸중에 데꿀멍했던 사람이고, 조길상은 환관이었다. 우겸은 어쩌면 서유정 때문에 죽었는지도 모른다. 후일 쿠데타 주도세력은 서로 권력투쟁을 하다가 모두 망했다.

천순제로 복위한 이후 베이징을 방어했던 우겸을 사형시키는 등 엄청난 삽질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고생한 때문인지 개판이었던 정통제 시절보다는 조금 괜찮게 정치를 했다고 하며, 포로로 잡힌 기억 때문에 그 동안 명나라에 전해지던 몽골 습속을 제거하는데 심혈을 기울여서, 후궁과 궁녀의 순장을 당대에서 끊어버렸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겸의 사형 건은 천순제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생각해보라. 전란이 끝난 후 전시에 큰 공을 세운 공신은 반란을 일으킬 용의자 0순위이다. 그렇지 않아도 쿠데타로 즉위한 천순제에게 우겸은 참으로 부담스러운 존재였을 것이다. 더군다나 우겸은 경태제를 옹립시킨 1등 공신이다. 다른 걸 떠나서 자기를 공기로 만든 존재를 용서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겸은 황위나 권력에 야심이 없어서 대국적 견지에서 용서했다면 의외로 정통제에게 충성을 다했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에서 대뻘짓이었다는 견해가 다수다. 실제로 천순제도 우겸을 사형시키고 가산을 몰수하는 과정에서 우겸이 청렴결백한 신료였다는 것을 알고 크게 후회했다고 하며, 경태제의 즉위 과정을 다시 조사한 후 우겸을 모함한 자기 측근들을 처형했다.

6. 조선에 끼친 영향

원정을 하기 전에 명나라에서는 조선도 원정을 지원할 병사를 보내라는 요구을 해왔는데, 실록의 기록으론 명나라에서 "우리가 오랑캐들 정벌하러 가는데 너희 조선은 평안도에 10만 대군을 배치하고 부를 때 와서 호응해라"...였고, 여기서 한술 더떠 원정 준비하면서 "너희 나라엔 말이 많이 난다고 하더라.조상님들 허풍에 넘어갔다... 3만 마리쯤 준비해라, 더 보내도 된다. 돈은 내주겠다." 이런 식으로 민폐를 부렸다. 토목의 변을 당한 후에는 아주 적극적으로 요청한다. 하지만 정작 이후 벌어진 교전에서 다행스럽게도(?) 명군이 승리해서 넘어갔다.

당시 조선은 세종대왕 즉위 31년이었는데, 세종은 군사 요청은 어물쩡 넘겨버렸다. 하지만 갑자기 말을 2만에서 3만마리 준비하라는건 조선에도 큰 부담이어서 신하들은 "성의 표시로 5천필만 보내죠" 하는걸 세종대왕은 "그래도 지금까지 비위맞췄는데 1만필은 채워 보내자." 정도로 쇼부를 쳤다고... 이미 알다시피 정통제가 사로잡히는 사태가 발생하고 중국에서 비상시국이 터지자 세종은 건강이 매우 안좋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국사에 시달려야 했다. 세자 문종은 이 당시에 평소 앓던 종기가 악화되어 세종보다 더 심각한 상태였다.

토목의 변으로 황제가 오랑캐에 잡혀 퇴갤하면서 중국에서 이 소식을 알리고 새로운 황제의 등극을 알리는 칙사가 왔는데도 세종은 노환으로 아프고[3], 세자 문종도 종기 때문에 위급하고, 세손 단종은 이제 겨우 9살이라 이런 엄청난 문제를 맡기기는 곤란했다. 그렇다고 차남 수양대군더러 접대하라고 하는 건 결례이기 때문에, 접대를 어떻게 하나 조정에서 매우 곤란스러워 했다. 세상물정에 어두운 젊은 유학자 출신 신하들이 "왕이 아프면 세자가 대신 세자가 아프면 세손이 하면 되지 않나요?"라고 말하자 세종대왕이 격분해서 "아오 이 더벅머리 X" 하면서 시원하게 욕을 시전했다고 전해진다. 중국이 상황이 안 좋아서 군사적으로 더 무리한 요구를 하면 난처한데 어린 세손이 실수라도 해서 구실을 줄까봐 염려했다고 한다.

결국엔 사신 접대는 수양대군(세조)이 하고 황제의 칙서는 병상이 누워있던 문종을 결국에 부축을 해서 받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명나라 사신들은 "왕이 아픈 건 예전에 들어서 알았는데 세자는 젊은데 아프다고 꼬빼기도 안비치니 우리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님?", "수양대군은 세자랑 동모형제인 건 맞긴 하냐?"라고 했고 조선에선 세자가 매우 아프다는 게 레알이며 사신 홀대하려고 하려는게 아니라는 것을 해명하려고 진땀을 뺐다고 한다. 이후 세종대왕은 실무적인 대비로 6진 개척 후 조정에 있던 김종서를 다시 북방에 파견하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도 했다.

7. 기타

홍콩 신파무협의 대가 양우생의 대표작 중 하나인 평종협영록이 토목의 변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양우생의 스타일대로 역사적 사실이 세세한 부분까지 비교적 충실하게 반영되어 있어 읽어볼 만하다. 김용과는 다르다 김용과는! 희대의 먼치킨 주인공 단풍이 등장하는 첫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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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때 에센은 대칸이 되기 전이었다.
  • [2] 경태제의 생모는 즉위 하면서 태황태후에 봉해졌다.
  • [3] 실제 세종은 다음해 세상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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