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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에이 애니메이션

last modified: 2015-04-03 23:29:14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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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映アニメーション(Toei Animation)

토에이 애니메이션은 주식회사 토에이 산하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로 1948년 설립되었다. 마스코트는 '장화신은 고양이', '장화 삼총사', '장화신은 고양이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주인공인 페로이다.


Contents

1. 소개
2. 연혁
2.1. 1950 ~ 1960년대
2.2. 1970 ~ 1980년대
2.3. 1990년대
2.4. 2000년대 이후 ~
3. 특징
4. 대표작

1. 소개

정식 명칭은 토에이 주식회사 산하의 '토에이 애니메이션 주식회사'가 맞다. 하지만 줄여서 토에이로 부르고 있다. 설립일은 1948년 10월 1일이다.

원래 1948년에 설립된 회사는 일본 동화 주식회사(日本動画株式会社)이었으나 1952년에 일동영화주식회사로 상호가 변경되었으며, 이를 당시 토에이의 사장이었던 오오카와 히로시가 사원체로 흡수(1956년 7월)하여 만든 것이 토에이 동화 주식회사이다. 오오카와 사장은 미국의 월트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에 대한 비전을 내다본 후,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해 토에이 동화를 설립했다.

일본 최초의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인 백사전을 제작한 바 있었고(1958년작), 이후부터 장편 애니 시장을 주도했다. 1998년에 토에이 애니메이션으로 사명을 변경하였다.

애니메이션 산업부분은 디즈니와 많이 닮은 편이다.[1] 그러나 제작비에 비해 수익률이 저조하게 된 나머지 결국 리미티드 방식으로 사업을 전향한다.

2. 연혁

2.1. 1950 ~ 1960년대

1948년, 일본 동영상 주식회사가 설립되었다. 처음 설립했을 때는 재정적 문제로 인하여 세이죠 고등학교의 빈 교실 약 100평을 사용해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1952년 8월 일동 영화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한다.

1955년 일동의 야부시타 타이지와 야마모토 사나에가 토에이 동화의 이마다 치아키 영업 과장(후의 토에이 애니메이션 사장)을 찾아 "우리는 일동이라는 애니메이션 회사를 24, 25명으로 무엇을 하는지 어려울 것 같다. 협력해 줄수 있을까요" 로 상담을 하였다. 당시의 국제 영상 작업으로 큰 잠재력을 느꼈던 토에이 사장은 "동양의 월트 디즈니가 됩시다"라고 즉각적으로 말했고, 머지 않아 일동의 인수를 결정하게 되었다.

1956년 1월 토에이는 토에이 동화의 설립을 위한 '만화영화 제작 연구위원회'를 출범하였다. 위원장은 오카와 히로시 사장이 맡았고, 설립 준비 실무 담당 위원으로는 아카가 코이치 관리 과장과 이마다 치아키 등이 임명되었다.

그런데 사업 계획안을 놓고 아카가와 이마다의 의견이 서로 대립하였다. 이마다는 "컬러 장편을 제작하는 것 외에도 월트 디즈니 사를 비롯한 미국의 장편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와 제휴하여 그 제작 기술을 도입해보자", "작품을 제작하는 사업뿐만 아니라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것과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등 광범위한 사업 전개를 도모하자", "절대로 총천연색인 장편 만화가 아니면 수입은 오르지 않는다"라고 방법을 제안했다. 그는 2010년대 현재의 캐릭터 사업 및 머천다이즈에 가까운 발상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아카가 교육 영화 부장의 의견이 우선 채택되었다.

도에이 동화를 발족할 즈음에는 단편과 중편을 제작하는 사업의 계획들만 포함되었을 뿐이었지 장편에 관련된 소식은 기재되지 않았다. 같은 해 7월 토에이가 일동 영화를 인수하였다. 이어서 모리 야스지, 야부시타 타이지 등을 신규 직원으로 포함시키게 된 토에이 동화 주식회사가 발족했다. 원래는 홍콩에서 반입할 기획이었던 백사전의 제작을 시작했다. 당시 일본 내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는 손에 꼽을 정도였고, 장편을 제작한 경험도 거의 전무했던 가운데 토에이는 일동 영화를 인수하여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노하우를 얻고자 한 것이었다.

1956년 도쿄도 네리마 구의 도에이 토쿄 촬영소에 스튜디오를 완성하였다. 토에이 동화는 1957년 1월 9일에 이 새로운 스튜디오로 이전하였다. 스튜디오를 완성하는 것과 동시에 새롭게 채용된 토에이 동화 1기생 중에는 오츠카 야스오, 楠部大吉郎 등이 있었다. 또한 데즈카 오사무도 촉탁으로 제작에 종사하고 있었다. 이 때의 노하우를 데즈카는 시 프로덕션에서 활용하게 된다.

새로운 스튜디오에서는 백사전 제작을 위한 직원의 증가와 CM 필름의 수요 증가에 대응할 책략을 마련하고 있었다. 머지 않아 같은 해 말에 스튜디오 1차 증설 공사에 들어갔다. 이어서 준공 2년 후인 1959년 6월 15일에는 2차 증설 공사를 준공하였다. 또한 대소년 켄 등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제작에 대응하기 위해 1964년 6월 2일, 3차 증설 공사를 준공하면서 현재 규모의 스튜디오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런 스튜디오의 증축을 통해서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체제가 갖추어졌다. 구 일동 영화 스태프들의 지도 아래 1957년 5월에 첫 단편 작품인 '고양이 낙서'를 제작했다. 이어 1958년 10월에는 백사전을 완성하였다. 그 후 미야자키 하야오 등의 '백사전'에 영향을 받았던 애니메이터들이 제작에 참여한 '태양의 왕자 호루스의 대모험', '장화 신은 고양이' 등의 장편 작품을 발표하면서 1960년대의 토에이 동화 장편 시대가 개막하게 되었다.

2.2. 1970 ~ 1980년대

1970년대에 들어가면서 인기도와 애니메이션 제작 편수를 모두 확대하기 시작한 TV 시리즈의 제작에 밀려 장편 영화 작품의 제작은 축소되어 가고 있었다. 대기업 제작 회사라는 이미지가 안심하고 일을 맡길 수 있다는 인상을 방송국과 광고 대행사 및 출판사 등에서 알아챈 것도 있었다. 이 때부터 토에이 동화에는 주간 소년 만화 잡지 원작으로 텔레비전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려는 의뢰가 많게 들어왔다.

이로써 제작의 중심은 텔레비전 시리즈로 자연스레 옮겨갔고, 극장판 작품은 코믹스 원작의 '토에이 만화 축제'가 중심이 되어 토에이 장편 시대는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한편 애니메이션 제작 편수의 증가와 애니메이터들의 노동조합 관련 파업이 심해지면서 1973년부터 대원미디어(구. 대원동화)나 세영동화같은 한국인 애니메이터들에게 하청으로 제작하는 작업을 의뢰하게 된다. 해외 주문의 강화와 함께 스튜디오 주변에 하청 생산을 늘려 제작 하청과 외주화를 불편 없이 진행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자사에서 안고 있던 크리에이터의 대부분이 이러한 과정들을 겪으면서 다른 제작사나 프로덕션 등으로 이동하면서 토에이 동화를 떠났다.

1974년 이마다 치아키가 토에이 본사에서 파견된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이마다는 이후 1993년까지 역대 최장으로 20년간 사장직을 맡게 되었으며, 그 동안 2개의 큰 업적을 남겼다.

하나는 노동조합 문제에 흔들렸었던 토에이 동화를 살리기 위하여 검토를 지시한 컴퓨터 작업의 도입이었다. 이 방법은 훗날 회사의 디지털화가 진행된 계기로 작용하였다. 다른 하나는 사내에 프로젝트 팀을 발족시켜 일본 내의 대형 가전 업체들과 연계하여 연구 개발에 종사하게 된다. 1985년에 일본 IBM과 연계해서 처음으로 시도하기 시작했지만, 초기 비용과 유지 비용도 천문학적인 숫자에 달하여 실현될 순 없었다. 1991년에 후지쯔와 연계하여 애니메이션 제작 프로그램인 CATAS (Computer Aided TOEI Animation System)를 개발해냈지만, 비슷한 문제로 역시 실패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컴퓨터의 성능이 향상하기 시작하면서 가격도 내려가기 시작하였다. 1992년에 '북두의 권'의 게임 데이터 작성을 시작으로 일부분 실험적으로 시험을 시작하였다. 결국 1997년 '게게게의 키타로 4작'의 4월 방영분부터 디지털 제작으로 완전히 전환하였다. 이 작품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디지털화가 이루어진 첫 작품이 되었다.

또한 일본 애니메이션의 해외 수출을 추진하는 기업으로서 진두적으로 지휘를 하였다. 이마다는 토에이 동화가 창업한 때부터 "애니메이션은 일본의 영상 산업이 세계로 수출할 수 있는 유일한 제품"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토에이 동화는 그가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해외에도 눈을 향하는 정책을 수립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토에이가 가지고 있던 해외 판매를 1975년에 신설된 저작권 영업부에 동아시아, 동남아시아를 시작으로 유럽, 미국 등 전세계 각국의 텔레비전 및 영화 박람회에 매년 출전을 하였다.

이마다는 스스로 전세계의 영화제들과 배급사들을 찾아 일본 애니메이션의 수출을 촉진하는데 장려하였다. 필름을 수출하는 것과 해외 저작권 ​​판로의 확장을 동시로 추진했다. 1976년부터 '마징가Z'를 비롯한 자체 제작 작품의 일본 국외로 판매를 적극적으로 실시하게 된다. 특히 'UFO로보 그렌다이저', '캔디 캔디'는 세계 각국에서 방송된 일본의 애니메이션 수출에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2.3. 1990년대

1992년, 필리핀 현지 기업 EEI와의 합작으로 EEI-TOEI ANIMATION CORPORATION(1999년부터 TOEI ANIMATION PHILS, INC. 약칭 : TAP, Toei Phils)를 설립하였다. 따라서 이해부터 80년대 중반 이후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전반적으로 일본과 질적으로 크게 비슷해진 한국 애니메이션 제작사에게 하청을 맡기지 않는 대신 필리핀에 제작하는 위탁 체제가 확립되었다. 1996년에 토에이 그룹의 대규모 인사 개혁의 영향으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던 TV 애니메이션 작품 전체를 일시적으로 중지했다. 1998년, 토에이 애니메이션 주식회사로 상호를 변경한다.

1995년, 인재 육성을 목적으로 토에이 애니메이션 연구소를 개설하였다. 디렉터 애니메이터 미술 디자이너 CG 크리에이터의 연구생 모집을 개시하였다(현재는 폐쇄). 1997년 4월, 일본 애니메이션 최초로 게게게의 키타로 4작부터 촬영 과정을 디지털로 전환하게 된다.

2.4. 2000년대 이후 ~

2000년, 펜 태블릿으로 의한 작화 공정의 디지털화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또한 필리핀과 일본의 프로덕션을 광섬유 통신으로 연결하는 '토에이 애니메이션 제작 네트워크 시스템'의 운용을 개시하였다. 이는 소재의 수송에 걸리는 시간을 대폭 단축시켜서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그리고 TV 시리즈 및 극장판 작품을 아울러 2010년대 현재까지 업계 최다 수준의 제작 편수를 유지하고 있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한다.

2003년에 오이즈미 스튜디오에 토에이 애니메이션 갤러리를 개관했다. 역대 작품이 패널로 전시되어 있고 시기에 따라 특정 작품에 초점을 맞춰 클로즈업한 기획전이 진행되기도 한다.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사옥에 출입하게 되면 관계자들한테, 입장시에는 수위한테 신청을 수속해야 한다.

2006년에는 환동사와 공동으로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와는 다른 영상 카테고리 "화이안(가니메)" 라벨을 시작하였다. 2013년 7월 16일 영업 관리 부서 및 자회사인 토에이 애니메이션 음악 출판 사무실을 카구라 자카에서 나카노 센트럴 파크 이스트로 이전했다.

2014년에는 주주 총회의 승인을 얻은 후 등기상의 본점을 실질적인 본사 기능이 있는 나카노 사무실로 이전했다. 이외에 같은해 9월부터 노후화된 오이즈미 스튜디오를 재건축하는 것을 포함한 부지의 전면 리뉴얼을 실시하기 위해서 스튜디오의 기능을 2017년까지 약 3년간 네리마구 히카리가오카에 있는 스튜디오로 임시적으로 이전하기로 했다.(오이즈미 스튜디오에 있는 토에이 애니메이션 갤러리에 대해서도 같은해 9월 23일부터 휴관 중이다.)

3. 특징

TV가 대중적인 보급이 완료된 1970년대 중반부터 주로 저연령층-청소년 대상의 TV 애니메이션들을 제작하고 있다. 지금이야 수많은 애니메이션 제작사들이 매니아 계층에 어필해서 덕후들한텐 '애들 만화나 만드는 곳'이라며 은근히 평가절하 당하는 경향이 있는데[2] 사실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큰손. 지금은 업계 탑을 달리는 선라이즈도 설립초기에는 토에이 하청으로 먹고 살았을 정도이며[3] 일본 애니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가 처음 업계에 투신한 곳도 이곳이다. 사실 이들이 제작한 작품은 매니아층을 넘어 너무나도 유명하기 때문에 매니아들 사이에서는 잘 언급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대표작만 해도 드래곤볼, 슬램덩크, 원피스, 은하철도 999, 프리큐어, 세일러문, 세인트 세이야, 근육맨 등등... 이 작품들의 개별적인 인지도만 생각해봐도 무시무시하다.

물론 꼭 이런 애니만 만드는 것은 아니며 우로부치 겐미즈시마 세이지 조합으로 '낙원추방'이라는 극장판을 만들거나 TV 애니메이션 모노노케 같이 실험적으로 성인 취향의 애니를 시도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교토 애니메이션 제작 애니판에 밀려 인지도가 낮지만 AIR카논, 클라나드 애니판을 제작하기도 했었다.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의 특징으로는 유명 원작들의 판권을 사서(원피스, 드래곤볼) 작품을 만드는 편이지만[4][5] 요즘에는 유명 원작이 아니거나(금색의 갓슈, 세일러문) 또는 새롭게 원작을 만드는 편이다.(프리큐어, 오쟈마녀 도레미)[6]

과거에는 주로 아오니 프로덕션의 성우를 독점적으로 많이 기했지만 최근들어 토에이 아카데미가 캐스팅 협력을 실시하는 경우가 있어 그 정도는 아닌듯.

제작을 맡아 진행하는 감독 역시 전체 시리즈의 감독이라기보다는 각 화(단편)의 감독으로 분류한다. 덕분에 '감독'이라는 표기 대신 시리즈 디렉터라는 표기[7]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 때문에 작품은 아는데, 감독은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8] 그 예로 디지몬 시리즈의 팬들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을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개봉한 뒤에야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80~90년대에 자사 애니메이션이 전성기를 맞이하자, 업계에 온갖 횡포를 부렸고 이러한 일로 인해 현재까지 토에이의 작품들은 일본의 에니메이션 잡지에서 표지는 물론, 잡지 본문 내용에서도 수록되고 있지 않다. 하지만 최근부터 그나마 좀 나아진 듯하며 프리큐어 시리즈는 아니메쥬 등에 표지로 나온적이 있다. 또 세일러문이 표지를 장식한적은 있으니 이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듯.[9]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 중에서 상당히 오랜기간 3D 애니메이션에 투자를 해온 업체이기도 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청자 사이에서 일본 3D 애니메이션은 굉장히 인기가 없었기 때문에 풀 3D로 된 애니메이션은 방영하지 않았고 중간 중간 CG 삽입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다. 3D 애니메이션의 개발은 본사가 영화사이기 때문에 영화CG와 함께 진행하였다. 특히 '표정'이라는 부분에서 독자적인 기술을 연구한 것으로 보인다. 카툰 렌더링과 같이 질감을 표현하는 렌더링이 아니라 아예 표정을 실제 인간의 표정을 따고 그 표정을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맞추는 기술이다. 지금까지 3D 애니메이션은 디즈니나 드림웍스같은 서양 회사에서 주도하였는데 미국 애니메이션식 캐릭터와 서양 애니메이션의 과장된 표정은 실제 인간과는 다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이런 기술은 주로 영화에서 사용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얼굴 표정이 지금까지 나와온 3D 애니메이션과 토에이의 3D 애니메이션은 겉보기에도 감각이 다르다. 계속 애니메이션을 만들면서 트라이 앤 에러로 토에이만의 3D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는 것 같다.[10] 이것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은 추가바람

캡틴하록3D를 개봉했을 때, 역시 일본 3D애니메이션은 자국내에서 인기가 없어서인지 성적이 나빴다. 우리나라에서도 일본 애니메이션은 3D가 인기가 없고 기존 3D애니메이션과 괴리감 때문에 성적이 좋지 않았으나 프랑스이탈리아에서 평가가 좋았기 때문에 2차 수익까지 합하면 적자는 줄일 수 있을것이라 한다. 왜 미국에서는 개봉하지 않았는지가 의문이지만(...)

참고로 아무래도 상관 없을거 같지만, 이 회사에서 제작한 작품의 음반은 대부분 일본 콜롬비아가 발매하고 있다.[11][12]

근래에는 원피스 애니 외엔 마땅한 대표작이 없어 제작사의 존재감 자체가 미친듯이 사그러 드는 중이다. 그래도 드래곤볼 신극장판, 세일러문 크리스탈으로 2000년대 초까지 밥줄로 써먹었던 작품들을 서서히 부활시키면서 다시 우려먹고 있다.이제 작작 좀 하지 요즘에도 별로 수입이 별로 짭잘하지 않는지, 리메이크/리부트 작들은 리미티드 기법에 충실한데다 선명하면서도 윤기있는 색감이 불안정한 작화와 맞물려 예산 절감 수법의 절정을 보여주는 중. 그래서인지 사람들한테 작품에 대한 애정없이 상업성만 따지는 건 여전하다고 까이고 있다.

4. 대표작

혹시, 다른 토에이 작품 항목을 찾으신 분들은 위키백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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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1958년 백사전
1970년대
1975년 강철 지그
1978년 은하철도 999
1980년대
1980 우주대제 갓시그마
1981 백수왕 고라이온
1982 더 카보챠 와인
기갑함대 다이라가XV
1983 근육맨
스톱!! 히바리군!
1986년 강Q초아 잇키맨
세인트 세이야[13]
1990년대
1991년 타이의 대모험
1993년 슬램덩크
1994년 마멀레이드 보이
1997년 소년탐정 김전일
꿈의 크레용 왕국
2000년대
2002년 카논
근육맨2세
2003년 금색의 갓슈
내일의 나쟈
2004년 모험왕 비트
2005년 극장판 에어
2006년 파워퍼프걸Z
2007년 극장판 클라나드
2008년 못말리는 3공주
2010년대
2011년 토리코
쿄소기가
2012년 탐험 드리랜드
세인트 세이야 Ω
2014년 마진 본
월드 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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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방송국의 대주주인 것도 비슷하다. 토에이는 TV 아사히의 대주주이며 디즈니는 아예 ABC의 모회사이자 이외에 별도의 방송 채널들을 두고 있다. 토에이도 방송 채널을 두고는 있다. 그렇지만 애니보단 영화 위주인지라...
  • [2] 사실 이건 토에이가 인기작들을 제작하면서도 성의없는 작화나 연출을 보여주는 경우가 꽤 있기 때문에 밉보인 탓도 있다.
  • [3] 기동전사 건담 제작 비록을 다룬 만화인 '기동전사 건담씨'의 코너 건담 창세를 보면, 당시 토에이 쪽에서 선라이즈를 구멍가게라면서 무시하는 에피소드가 실려있을 정도.링크
  • [4] 참고로 이게 와전되어 판권만 잡고 있어도 돈을 번다는 말이 있는데 이건 잘못된 말이다. 작품을 만들기 전에 판권을 '일부' 사서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권리를 차지하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되팔거나 일부만 가지고 있는다. 오리지널 애니의 판권은 우선 팔고 시작한다. 제작비는 방송사와 원래 판권을 가지고 있는 스폰서에서 주는 걸로 만든다.
  • [5] 원피스는 제작하고 몇년 뒤에 판권을 대량 사들였다. 토에이 에니메이션의 매상을 년도별로 보면 원피스의 매상 비중이 급격하게 올라가는 시기가 있다. 혹자는 원피스 붐의 편승이라는 말이 있는데 원피스는 원래 인기가 많았고 그 시기에 판권을 사서 장부에서 늘어난 것이다. 이게 순이익에 얼마나 영향이 있을지는 판권을 구매한 비용이 있으니 원피스 완결날 때쯤 알 수있을 것이다.
  • [6] 보통 일본 내의 애니메이션 제작사들과는 다르게 한 방송사에만 애니메이션 제작을 붙들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 [7] 시리즈 디렉터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한 건 1980년대부터였고 이 전에는 아예 표기를 안 하거나(1970년대 중반 이전) '팀 디렉터'라는 명칭으로 표기했다.(1970년대 중반~후반, 1980년대 초반)
  • [8] 디즈니는 픽사와의 합작으로 이 부분은 조금씩 감소하고 있지만 토에이는 여전하다.
  • [9]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잡지사는 거의 다 기레기들이라 애니메이션 기사를 실을 때 쓰는 그림에 관한 로얄티를 지불하지 않았다. 잡지에 나오는건 광고를 낼 여력이 없고 심야에 방영하는 소형 회사들이야 반길만한 이야기고 5대 방송사중 한개의 2대주주에 전국에 영화관을 30개 이상 가지고 있고 굳이 토에이가 광고를 안내도 판권 가지고 있는 스폰서들이 광고를 하는 상황이니 그림은 내가 그리고 돈은 잡지사가 버는 상황을 반길리가 없다. 무엇보다 토에이는 어린이 시청자를 주대상으로 하는 회사인데 어린이는 이런 잡지 안본다.
  • [10] 토에이 애니메이션들 중 액션이 들어간 애니메이션에서는 작중 간간히 다른 작화와는 다른 역동적인 작화가 그려지는데 토에이 애니메이션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크게 젤을 바르고 마치 액체같이 보이면서도 명암이 뚜렷한 그림체와 명암이 진하지는 않지만 차이가 눈에 띄게 보이며 연기나 효과 등이 매우 역동적으로 보이는 그림체가 있다.
  • [11] 오쟈마녀 도레미 시리즈나 프리큐어 시리즈 같이 예외인 작품도 있다.
  • [12] 한때 아사히 신문사의 자회사인 아사히 소노라마 등에서도 발매되었으나, 아사히 소노라마는 연이은 적자로 결국 망했다(..)
  • [13]세인트 세이야 THE LOST CANVAS 명왕신화는 TMS(도쿄무비신사) 제작
  • [14]겟타로보 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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