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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민주당(1995년)

last modified: 2014-09-20 20:18:12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합당과 소멸
4. 의의
5. 후일담
6. 연혁
7. 역대 선거결과
8. 관련 항목


1. 개요

1995년 9월 분당 사태 이후 잔류한 민주당(1991년)이 시민단체 계열의 개혁신당과 합당하여 같은 해 12월 21일 창당한 정당. 1996년 15대 총선에서 15석을 확보해 원내 교섭단체에 실패했으며, 이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와 당권파로 내부 분열이 있었다. 결국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소속 정치인들은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고 1997년 11월 24일 신한국당과 합당하여 한나라당을 만들면서 소멸되었다.

2. 역사

분당 갈등의 시초는 민주당이 압승을 거둔 1995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였다. 이 때 경기도지사 후보 공천을 놓고 김대중 아태재단 이사장은 옛 민정계 출신의 이종찬[1]을 추천했다. 그러나 공천권을 쥐고 있었던 기택 대표는 장경우 전 의원[2]을 고집했고 결국 생각보다 큰 표차로 신한국당 인제가 당선되었다.[3] 얼마나 갈등이 심했냐하면 김대중이 다른 지역 유세는 다 가면서도 정작 경기도 유세에는 다소 소극적이었을 정도#.

지방선거 결과 광역자치단체는 여5:야10으로[4], 기초단체장, 지방의회 선거에서도 민자당을 제칠정도로 민주당의 성적이 좋았으나[5] 김대중과 이기택의 갈등 심화로 인해 민주당(1991년)을 탈당한 김대중과 동교동계는 새정치국민회의로 독립하여 나갔다. 꼬마민주당 시즌 2라고 할까나.


왼쪽 끝에 노무현 전 의원, 가운데에 키 큰 사람이 기택 총재, 오른쪽 끝에 부영, 강창성 의원이 눈에 띈다.

이에 잔류한 민주당 파벌은 시민운동 계열을 끌어들여 당명을 "통합민주당"으로 개편한다.[6] 초기에는 민주화시대의 명사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등의 시민단체가 "개혁신당"을 창당하고 합당, 대거 합류하면서 의외로 개혁적인 민주정당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이는 국민회의가 대선 승리를 위해 보수온건화 노선을 탔기 때문이다.) 민주당 시절 입당했던 강창성 장군, 홍성우 변호사[7] 등도 인기를 끌었다. 경실련의 서경석 목사도 대표적.

하지만 대중적인 인지도에 비해서 삼김시대(신한국-국민회의-자민련)가 정립된 상황에서 제4당이 살 길은 별로 없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5석(지역구 9석 + 전국구 6석) 확보에 그치면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에 실패, 당세가 약화되었다. 서울특별시 지역에서는 강동구 갑의 이부영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이 낙선을 면치 못했고, 부산광역시에서는 전원 낙선이었다. 게다가 신한국당이 과반수 확보를 위해 황규선(이천시), 이규택(여주군), 최욱철(강릉시 갑) 등의 당선자 빼가기에 나서면서 폭망 확정.

물론 되돌아보면 성과도 없지는 않았다. 당시 경상남도 울산시에서만 5개 지역구 가운데 2개 지역구 당선, 1개 지역구 선전을 거두는 성과를 올렸다. 민주노동당 조상 기믹?[8] 또 경북 안동시갑에서 첫 도전한 권오을(당시 도의원) 후보가 권씨 문중의 힘으로 깜짝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승리에도 의석이 30석에서 반토막이 난 것은 변호하기 어려웠다. 서울에서 민주당은 거의 전지역 3위의 성적을 거두었으며, 선전할 경우 국민회의 후보가 낙선하는 결과만을 낳았다. 이때 김진명이 떨어졌으니까 잘 된거다

3. 합당과 소멸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조순 서울시장을 후보로 추대(=시장 사임)했다. 그러나 지지율의 부진으로 결국 1997년 11월 신한국당과 합당하면서 한나라당의 일부가 되었다. 당시 한나라당은 "전통 여당과 전통 야당의 결합"으로 선전되었다.

김대중의 민주당 탈당 때 반대한 노무현, 김원기, 정길 등의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 소속 대부분은 이에 반발해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하여 김대중과 재회하였다. 단, '통추' 가운데 [9], 제정구 등의 소수파는 한나라당 창당에 참여했다.[10] 민주당 소장파였던 권오을(안동), 이주영(마산), 장광근(비례) 의원 등도 합당에 동참했다.[11]

4. 의의

이 정당의 의의는 최후의 비DJ계(비호남계) 야당이었다는 점이다. 당시의 정치적 좌표가 좌우 보혁보다는 DJ(+JP 등 반 YS계)와 반DJ, 혹은 호남(+충청)과 비호남으로 나뉘었다는 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결국 선명 야당을 내세우던 이들의 노선은 실패하였다. [12]

새천년민주당이나 열린우리당도 영남쪽 인사들을 많이 포괄했다는 의의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비호남 민주당계 정당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13]

5. 후일담

이로서 지역구도는 격화 되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보혁 대결은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부터 본격화 되었다. [14]

이부영 등은 한나라당 부총재를 지내고 최고위원에 선출되기도 했으나, DJ vs 반 DJ 구도가 깨지고 대북정책 중심으로 재정렬 되면서 다수가 민주당계로 돌아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른바 이부영 김부겸 김영춘 등의 "독수리 5형제". 한나라당이 패배하고 노무현의 탈지역 개혁신당이 구체화 되면서 이들이 대거 참여한 것이다. 이들이 새천년민주당에 참여하는 건 명분상 어려웠기 때문에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여당 분당이 불가피했단 시각도 있다.

흥미로운 점은 통합민주당계의 합류로 김대중 정권기의 한나라당은 무조건 보수적인 정당만은 아니었다는 것. 당시의 한나라당은 이회창계 + 반 DJ계의 계파 정당, 영남 지역정당에 더 가까웠다. 도리어 민주당의 의원들이 더 보수적일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민주당의 보수화는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 후 시도한 "한나라당 의원 빼오기"나 새천년민주당 창당 과정에서의 "몸집 불리기"로 더욱 심화되었다.

대표적으로 신한국당과 통합 과정에서 이미경 전국구 일국회의원은 의원직 상실을 원치 않았는지[15] 새정치국민회의 등으로 당적을 옮기지 않고 당적을 신한국당, 이후의 한나라당으로 옮기긴 했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한나라당에 반감을 가져서 이후 정계 활동 때 당의 노선에 전혀 따르지 않아 '내부의 적'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16] 어느 정도였냐면 1999년 동티모르 평화유지군 파병 동의안에 한나라당이 당 차원에서 반대해 표결 자체를 거부하고 회의장에서 모든 소속 의원들이 퇴장할 때도, 혼자 본회의장에 남아 반대표도 아닌 찬성표를 던졌을 정도. 결국 당에서 출당(제명) 조치되어 무소속 의원으로 남았다가 바라던 바다! 2000년에 새천년민주당에 도로 입당했다. 의원직에 대한 욕구와 개인의 정치적 소신이 절묘하게 결합해 일어난 일화이다. 현재 이분은 제19대 국회까지 5선 의원을 지내고 있다. 오오?

개혁성향을 가진 통합민주당의 전국구 의원 6명 중 과반인 3명(이미경, 이수인, 김홍신)이 이런 행보를 보였다. 2명이 제명당했고(한 명은 무소속 유지), 한명은 16대 비례대표까지 지낸 후에야 사퇴하여 열린우리당에 입당했다.

6. 연혁

  • 1995년 9월 5일: 김대중의 아태재단(동교동계)이 궐기하여 상당수의 민주당(1991년) 인사들을 탈당시킴. 탈당한 인원들과 김대중은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함.

  • 1995년 12월 21일: 잔류한 민주당(1991년)의 인원들과 개혁신당이 통합함. 결국 통합민주당이 창당됨.

  • 1996년 4월 11일: 국회의원 총선에서 실패해 제4당으로 추락함. 의석수는 15석.

  • 1996년 6월 13일: 당명을 민주당으로 변경함. 대표는 기택이 선출됨.

  • 1997년 9월 18일: 대통령 후보로 서울시 시장인 조순을 영입하고 동시에 대표로 추대함. 조순의 지지도는 초반 15% 이상까지 올라 4강 구도를 이룸.
  • 1997년 11월: 조순의 지지율이 점점 떨어짐에 따라, 신한국당(한나라당의 전신)과 합당 추진. 민통합추진회의 계열인 노무현, 김원기, 김정길 등은 탈당하여 새정치국민회의에 합류함.

  • 1997년 11월 24일: 통합민주당과 신한국당은 통합하여 한나라당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창당하면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7. 역대 선거결과

  •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 15/299 11.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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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민주정의당 국회의원을 거쳐 민주자유당에서도 활동했다. 그러나 1992년 김영삼이 당권과 대권을 모두 잡게 되자 탈당해 새한국당을 결성했다가 뜬금없이 김대중의 편에 선 인물. 이후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바 있다.
  • [2] 이 사람도 이종찬과 함께 새한국당을 결성한 민정계 출신.
  • [3] 흥미로운 것은 이 때부터 이인제의 존재감이 커졌으며 불과 2년 뒤 김대중의 대통령 당선에 절묘한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 역사의 아이러니다.
  • [4] 민주자유당이 경기/인천/부산/경남/경북, 민주당이 서울/광주/전남/전북, 자유민주연합강원/대전/충남/충북, 무소속이 대구/제주를 차지했다.
  • [5] 특히 서울에서는 그야말로 압승을 거뒀는데 구청장의 경우 강남구서초구를 제외한 23개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고 시의회는 총 133석중에 123석을 민주당이 가져갔다. 이는 원래 서울에 호남 출신 유권자가 꽤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상당히 큰 격차로, 그만큼 김영삼 정권에 대한 서울시민의 반감이 심각하다는 근거였다.
  • [6] 하지만 민주당의 정통 계통은 자신들에게 있다며 언론에겐 통합이란 말을 빼고 그냥 '민주당'이라고 불러달라고 했다.
  • [7] 배우 출신인 홍성우 전 국회의원과 동명이인으로 인권변호사. 한자 표기는 洪性宇로 같다.
  • [8] 참고로 5개 지역구 가운데 하나는 정몽준의 지역구(동구, 민주당 비출마 지역)였으니 결국 4개 가운데 2곳이 성공한 셈이다. 울주군(당시는 울산시 울주구)에서는 과반 득표(53.8%)를 기록했으며, 낙선한 지역구에서도 26.7%(남구갑), 35.7%(중구, 신한국당 당선자와 2.5% 격차)의 혁혁한 득표를 올렸다. (구) 창원시 갑/을에서도 15%를 넘기는 득표들을 올렸다.
  • [9]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은바 있으며, 2000년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정계를 은퇴했다가, 2002년에 다시 정몽준국민통합21에 합류하면서 정계에 복귀했으나 막판 단일화를 깬 정몽준을 비판하며 결별. 2004년 열린우리당 공천으로 부산 북구(부산) + 강서구갑에 출마했으나 낙선한다. 그 이후 정치권에서 물러나 2005년 6월 30일 ~ 2008년 1월 21일까지 한국철도공사 사장을 역임했다. # 위백 항목 참조
  • [10] 굳이 드립을 치자면 경남의 경우 낙동강을 기점으로 경상좌도 쪽은 반DJ, 경상우도인 부산 쪽은 친DJ가 되었다고 보아도 좋다. (제정구는 고성, 이철은 진주 출신.) 이거 뭔가 남인 북인 나누는 것 같은데요 김해도 경상좌도 아닌가 정확히 말하면 당시 부산 출신 정치인들의 야성이 좀더 강했다는 평가.
  • [11] 이들은 모두 2014년 현재까지 새누리당에 남아있다.
  • [12] 이런 분위기는 96년 총선과 98년 지방선거의 결과가 잘 보여준다. 96년 총선은 새정치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지역정당임을 분명히 했으며, 98년 지방선거 결과는 영남과 강원은 한나라당이, 수도권, 충청, 호남은 국민회의와 자민련이 정확히 동서로 나눠가졌던 것이다. 텃밭 땅따먹기
  • [13] 이기택, 조순 등의 비호남(혹은 비DJ)계 민주당 인사들은 민주국민당에서 정계 마지막 도전을 했지만, 민주자유당 출신 허주 김윤환이나 군부화평 등을 끼고 있는 당의 정체성상 민주당계 정당이라고 보긴 힘들다.
  • [14] 그나마도 노무현 후보가 경선에서 패배했다면 인물, 계파, 지역 대결이 계속 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 [15] 비례대표직은 타 정당과 합당하거나 출당 조치의 경우에만 의원직을 유지할 수 있으며, 해당 정당에서 자의로 탈당하거나 합당하는 정당이 아닌 다른 정당으로 당적을 옮길 경우 의원직을 상실한다.
  • [16] 이 시기 한나라당엔 통합민주당 출신으로 국가보안법 폐지에 찬성하는 인사도 많았다!
  • [17]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의 지지율은 34.5%, 새정치국민회의는 약진을 예상했음에도 25.3%였다. 민주당계 두 정당의 지지율의 합이 신한국당 지지율을 미세하게 넘기는 상황이었다. 만약 두 당이 통합했으면 과반을 넘겼을 거라는 예측도 있지만 역사에 만약은 없고.. (참고로 민주한국당신한민주당이 모두 나왔던 1985년 12대 총선, 통일민주당평화민주당1988년 13대 총선도 비슷한 상황. 2004년17대 총선 때도 새천년민주당-열린우리당 동시 출마로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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