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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

last modified: 2015-02-24 16:02:52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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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統合進步黨. 대한민국에 존재정당이다.
upp.jpg
[JPG image (25.65 KB)]
정식명칭 통합진보당(統合進步黨)
영문명칭 The Unified Progressive Party
(UPP)
약식명칭 진보당(進步黨)
설립일 2011년 12월 13일
해산일 2014년 12월 19일
주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 26
솔표빌딩 12층
대표 이정희
전직 의원(18대)
원내대표 오병윤
초선(19대)
해산 당시 국회의원
광역단체장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5석[2] / 300석[3]
0석 / 17석
3석 / 762석
0석 / 273석
34석 / 2,888석
웹사이트 홈페이지

Contents

1. 개요
2. 탄생 과정
2.1.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
2.2. 국민참여당 논란
2.3. 통합에 이르기까지
3. 성향
4. 다른 정당들과의 관계
5. 사건사고
5.1. 19대 총선 비례대표 부정경선
5.2. 유령 당원 의혹
5.3. 이석기 의원의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수사 사건
5.4. 통합진보당 해산심사 청구
6. 부정경선 이후 집단탈당과 분당
6.1. 제 18대 대통령 선거와 그 이후
7. 2014년도 6.4 지방선거
8. 자매결연
9. 약칭
10. 관련항목
11. 역대 선거결과

1. 개요

'민주노동당'과 '새진보통합연대'[4], 그리고 '국민참여당'의 3자 합당으로 출범하게 된 정당. 2011년 12월에 통합을 위한 제반 절차가 마무리되고 있었고 2012년 1월 창당대회가 열렸다.

이중 민주노동당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민승리21[5]부터 시작되어,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탄핵 바람에 힘입어 10명의 진보정당 국회의원을 만들어냈으나 2012년 1월 대회를 통해 딱 12년 채우고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록은 2011년 12월 6일. 2014년 현재 국회 의석은 6석. 공식적으로 등록된 약칭은 진보당이나, 통진당이라는 약칭도 많이 쓰인다.


2. 탄생 과정

2.1.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까지

시작은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분당 직후, 두개의 진보정당은 4월 제18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역시나 좋지 못한 성적을 거둔다. 민주노동당은 10석에서 5석으로 의석이 반토막나고[7] 진보신당0.1%(2만표)차이로 비례대표의 문턱인 3%을 넘지 못한다.[8] 게다가 당내 두 간판인 노회찬(상대가 노원구병의 정욱)과 심상정(고양시 덕양갑)이 민주당과 단일화 불발로 근소한 차이로 낙선. 국회 진출에 실패한다. 만약 이때 조금만 더 성공했으면 민주노동 5 대 진보신당 5(노,심 2석 + 비례 2석 + 조승수 1석)로 의석 유지할 뻔 했는데...

그나마 그 직후의 2008년 촛불집회로 나름 희망을 꿈꿨으나.... 선거가 없네[9] 이후 존재감도 희미해져가고, 어쨌거나 분당된 직후부터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진보진영에서는 진보대통합 주장이 제기되기 시작되었다. 이 당시에는 민주노동당+진보신당+사회당+알파였다.

그러나 이 때는 분당 과정에서의 양당 사이에 앙금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런데 2009년 노무현대통령의 서거로, 정국이 급변하게 된다. 민주당 친노세력은 노무현 정신 계승을 표방하였고, 이듬해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을 중심으로 국민참여당이 창당된다.[10]

두번째 문제는 2010년 6.2 지방선거.

민주노동당은 적극적인 야권연대로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11] 진보신당은 거의 내분 직전의 후폭풍을 겪게 되는데, 심상정이 투표 3일 전 독단적으로 후보사퇴하여 유시민 지지를 표명하여 당기위에 회부될 정도로 사태가 커진다. 이러고서 결과라도 좋으면 욕이라도 안먹는데, 심지어 유시민 낙선![12]게다가 노회찬이 완주한 서울특별시장 선거에서도 한나라당 오세훈 시장이 0.6% 차로, 그것도 새벽 개표 중에 재선에 성공하며 넷상에서의 反 진보신당 정서가 들끓었다. [13]물론 그리고 이로써 진보신당은 거의 존재감 상실에 가까운 위기에 처했고, 비로소 당내에 진보대통합 논의가 불붙....어야 하는데 심상정의 후보사퇴 후폭풍[14]으로 또다시 시간만 흐른다.[15]

2.2. 국민참여당 논란

뭐 어쨌거나 진보신당이 미적댄 것도 있지만,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진보신당과의 통합을 그다지바라지 않았다. 합쳐봤자 지지율 별로 안오를 것 같고, 여러 사안에서 부딪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민주노총을 비롯한 진보진영의 압박으로 연석회의가 만들어지고, 분당의 원인인 패권주의 논란부터 논의가 시작된다. 어쨌거나 조승수 의원이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 종북주의 발언을 사과하고, 권영길 의원이 진보대통합을 위해서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양당간의 앙금은 어느정도 해소된다.

문제는 합당 이후의 지분인데, 진보신당 독자파가 워낙 강하게 나와서 거의 진보신당이 하자는 대로 되었다. 당세가 9대 1인데, 통합 후 지분은 1대 1.

새로 불거진 문제는 국민참여당 논란이었다. 국민참여당이 5.31합의문에 동의하는 세력이냐는 논란이었다. 애초에 유시민은 FTA에 찬성을 여러번 표했고, 민주당의 3무 1반 정책은 포퓰리즘이며, 반값 등록금보다 부실 사학을 국유화시키는 것이 더 빠르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었다. 이에 유시민은 한미 FTA에 대한 입장에 대한 요구에서는 양심의 자유라고 말했다.

기사 진보신당독자파 쪽에서는 한미 FTA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고,[16] 일각에서는 대선후보를 하려는 술책아니냐는 비난도 일었다. (그러자 포기할 수 있다고 했다.)

결국 창당날 연석회의에서 나온 결과물로 '자본주의 폐해 극복, 재벌 해체, 상의료, 무상교육, 파견제 철폐, 종속적 한미동맹 해체' 등이 담겨있다. 국민참여당은 중앙위 회의에서 이것은 '들어가기 위한 형식에 불과하고 들어가서 우리 내용을 반영하자'라면서 통과시켰다.

국민참여당이 갑자기 진보정당 쪽으로 붙은 것은 민주당으로 가면 그대로 흡수만 될것 같았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2011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지지율이 급감하고, 독자생존이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국민참여당에 대한 비토는 엄청났다. 8월 28일 민주노동당 당대회에서는 당권파가 낸 안을 뒤집고, 진보신당의 동의 없이는 국민참여당은 통합 대상이 아니다라는 결의를 했고, 민주노동당 내의 구도를 생각하면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에 호응하듯 마침내 진보신당9월 4일 당대회에서 진보대통합을 부결시킨다!!! (응??)

진보신당 독자파는 통합을 아예 반대하기엔 명분이나 상황이 되지 않아서, 이런저런 조건을 걸었지만, 막상 그 조건이 다 성립해도(다시 말하지만, 지분이 1:1까지 갔다.) 끝까지 반대했다. 이로써 진보신당 핵분열 시작. 당의 간판인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가 통합의 불씨를 살려보고자 탈당한다.[17] 이에 민주노동당 당권파는 다소간의 무리를 해가며 9월 25일 당대회에서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시도하나, 도리어 부결. [18] 그럼 이제 진보신당하고 다시 합.....칠 줄 알았는데 그게 안되고 걍 독고다이.

2.3. 통합에 이르기까지


결국 진보신당 탈당파가 구성한 새진보통합연대가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에 합의하면서, 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새진보통합연대의 3자 원샷 통합이 성사되었다. 민주노동당의 경우엔 다시 통합여부를 설문하자 분위기가 또 바뀌었다고 한다. 이는 민주통합당이나 기타 여러 시점에서 당의 의석, 즉 원내 교섭단체를 지키기 어렵다는 우려가 높아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주노총은 여전히 배타적 지지를 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나마 표 몰아주기라도 시전하려고 했지만 합당을 2012년 2월 22일날 계획했던 진보신당과 사회당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즉, 민주노총 등의 경우는 여전히 갈팡질팡중이란 이야기.[19] 이런 급변은 진보신당 탈당파 역시 비슷했는데, 진보신당 탈당파의 급작스러운 입장변화는 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30807.html를 참고. 국민참여당이야 원래 통합하려고 했고...

각 당의 지분은 민주노동당 55%, 국민참여당 30%, 새진보통합연대 15%로 합의되었고,[그러나] 기타 지역구 후보 조정 문제 등의 협의를 거쳐, 창당에 이른다. 당명으로 통합진보당, 진보정의당, 진보노동당이 후보로 올랐고, 여론조사 등을 통해 통합진보당으로 결정되었다. 당명에 대한 여론은 통합진보당이 대세였고, 국민참여당 내에서는 진보정의당[21]이, 민주노동당 내에서는 진보노동당이 비교적 다득표를 하였다.[22] 창당 직전인 11월 말 여론조사에 의하면 정당지지율 14.7%(민주당 29%)로 양호한 출발. 총선 목표는 원내 교섭단체인 20석으로 하고 있다.

한편 진보신당은 언론인 홍세화 씨를 대표로 선출하고 독자노선 구축에 들어갔다.

3. 성향

왜 이렇게 창당부터 복잡하냐 싶지만은 그게 바로 한국 역사상에 없었던 진보정당자유주의(리버럴) 정당이 같은 방을 쓰기 때문이다.


창당시의 당내 여러 정파들 구도다. 앞으로는 한 당 안에서 이런 조합 보기 힘들거다. 참고로 저 중에서 강기갑은 2012년에 이미 정당활동 및 정치활동에서 은퇴해 귀농한 상태다.

국민참여당은 정통 좌파가 아닌 자유주의 포지션에 가깝고, 화이트칼라 출신 진성당원들이 당의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몇몇 정책은 상당히 친기업, 보수적이다. 이로 인해 민주노동당의 우경화 경향(사회주의 강령삭제나 민주대연합론이나 연립정부론 등.)이 이로써 돌이킬 수 없이 심해질 것이라는 비판과 노동이 배제될 것이라는 우려가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는 가령 노무현의 FTA vs 이명박의 FTA 같은 상황에 있어서 당내에서 이견이 크게 분출될 가능성이 높다. 일부 국민참여당 당원들이 "노동이란 단어로 통합당에 재뿌리지마라!"는 입장을 내면서 노동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 [23]

강령은 자본주의 극복을 포함하고 있는 과거 진보정당의 것에 비해서 복지국가 추구로 많이 우클릭 되었다. 거기다가 민주노총이나 등 과거 민주노동당의 기반이 되어 온 조직들이 움직여줄 지는 미지수[24][25]

하지만 북한의 광명성 3호 발사 강행이 이슈가 되자 타 원내 정당(새누리당,민주통합당,자유선진당)이 북한을 비난하는 논평을 냈을때 혼자서 미국의 대북정책을 비난하는 논평을 발표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그리고 구 당권파가 북한의 지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설도 있다.(단, 이기사에 나온대로 무조건 지령에 따랐다고 하는걸 믿으면 골롬이다. 물론 구당권파의 친북성향이 엄청 강한건 사실이긴하다.)

4. 다른 정당들과의 관계

한편, 정치권 개편은 통합진보당만의 일이 아니었다. 민주당이 혁신과 통합이 창당한 민통합당[26]과 각종 시민단체 및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 탈당파, 한국노총 등과 함께 민주통합당(약칭 민주당)을 만들기로 하면서 야권은 중도개혁 성향의 통합된 민주통합당과 진보-자유연합의 통합진보당으로 재편되었다. [27]

일단 통합진보당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최소 20석, 안정적 30석 확보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야권연대는 필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지지율 목표는 10%, 최대 목표는 20%로 유시민이 비례 12번을 받았다.(찬반투표만 거치면 확정) 이는 정당투표 20%를 득표해야 당선되는 것.[28]

하지만 현실은 시궁창. 20석 이상을 확보하려면 최소한 10개 이상의 지역구는 확보해야 한다. 통합진보당은 조만간 통합될 민주당 측에 중요 지역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는 상황. 이는 수도권에서 민주당이 눈독들이는 여러 지역구에서 부딪치게 될 상황이다. 이정희 공동대표가 출마를 선언한 관악구 을의 경우, 민주당의 몇안되는 서울 현역의원인 김희철 의원이 버티는 곳이라 이후 선거연대에서 논란이 예상된다.[29] 김희철 의원은 대표씩이나 되시면 한나라당 지역가서 붙으시죠?라고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낸 상황.[30] 그 외에도 앞서말한 노원병[31], 고양덕양갑[32]과 영호남 일부지역[33]의 양보를 요구하고 있어서 안그래도 골치아픈 민주당을 더 곤혹스럽게 하는 상황이다. [34]

단일화가 결렬되면 한나라당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서, 2012년 총선에서의 단일화 압박이 그 어느 때보다도 거세질 전망이었다. 과거까지는 이것이 사표론으로 연결되면서 진보정당에 사퇴 압박이 집중되어왔다.[35] 그러나 대중적인 스타급 정치인들을 다수 보유한 만큼, 이들 출마지역에 대해서는 역 단일화 압박이 민주통합당에 강하게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2008년, 2010년 등의 '막가파' 민주당의 원죄도 있다.

지금까지 단일화 과정에서 국민참여당독불장군식 치킨게임이 많았다면,[36] 민주노동당은 당근과 채찍 전술을 펼쳐왔다. 2010년 재보궐선거에서는 광주 남구에서 색깔공세에도 불구하고 은평을의 단일화를 깨지 않았고,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울산을 제외한 거의 모든 광역자치단체 후보 사퇴 등이 당근(?)이라면, 광주 남구에서는 40%가 넘는 득표로 민주당의 기를 죽인것, 순천을 양보받은 것과 인제군수 재보궐선거 완주[37]가 채찍(?)이겠다. 제19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통합진보당이 얼마나 협상력을 발휘할지 보다 지켜봐야 하겠다.

그런데... 정작 2012년 들어서는 그리 좋지많은 않다. 새해 전후를 기점으로 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고작 3~5%대에 머물고 있다. 민주통합당 경선이 흥행을 거두면서 여론의 관심이 민주통합당으로 가 버린 탓이 크다. 2월에도 답보상태.

한때는 진보신당보다 지지율이 떨어지던 조사도 있었다. # 진보신당 1.9% 대 통합진보당 1.4%. 물론 인지도가 낮고, 또 통합진보신당이란 이름으로 여론조사를 했다는 의혹도 있지만.. 일단 세 정당 지지율의 합산만큼도 안나오고 지지율이 세토막되었다는게 문제.

거기에 유시민의 당무거부(서울시당 창당대회 불참 등) 등으로 다시 쪼개지는 거 아닌가 싶은 상황.[38][39] 거기에 민주통합당이 강령을 왼쪽으로 옮기고, 지지율이 솟구치면서 (39%까지 올라갔다.) 단일화 안해도 이기겠다싶은 분위기가 몰아치고, 통합진보당의 야권연대 논의 제안[40]을 거절하면서, 상황은 더욱더 암담해지고 있다.

물론 최근 민주통합당의 컨벤션 효과(전당대회 직후 반짝 상승세)도 어느정도 끝났고, 한미FTA를 둘러싼 공방과 석패율제 논란, X맨이라고 지칭되는 김진표 논란 등으로 향후 양당의 줄다리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거기에 도중 이정희 의원 측 보좌관이 관악乙 선거구 단일화 경선에서 여론조작을 저질르는 바람에 위기에 몰렸으나, 이정희 의원이 후보직을 사퇴하기로 하면서 어느정도 봉합했고, 이를 바탕으로 19대 총선에서 수도권 교두보를 마련하는데 성공, 비례대표에서도 두자릿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자유선진당을 제치고 원내 3당에 등극하고, 진보정당으로선 사상 최다 의석수를 확보하는데 성공했으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경남 (특히 권영길 전 대표가 2선을 했던 지역구인 창원 을[41])과 울산(김창현)에서 의석을 얻지 못하고 민주통합당이 생각보다 부진한 성적을 내면서 캐스팅 보트 위치에 서는데 실패했다.

여담으로 당 색깔이 주황색(민주노동당), 노란색(국민참여당), 빨간색(진보신당 - 탈당파지만..) 중에 어느것도 아닌 보라색인것도 문제. 난 보랏빛이 좋아!/ 초기엔 주황색과 노랑색의 혼합이 유력했으나, 보라색이 된 것이다. [42] 거기에 민주통합당이 슬그머니 연두색 + 노란색으로 로고를 확정하고, 새누리당도 색깔을 흰색+빨강색으로 하면서 진보신당과 겹치는건 안자랑. 초기의 "보라 돌풍" 호언장담과 달리 급속도로 정체성을 상실하고 있다. 2012년 2월 하순때에도 5% 아랫대의 지지율을 유지중... 왠지 계속 갈것 같았다. 3월에는 조금 오른 지지율이 관악을 이정희 여론조작 사건으로 잠시 5%까지 급락했다가 다시 반등, 4월 1일에 12%에서 피크를 찍고 다시 10% 전후의 감소 추세에 있다는 분석이다. [43]

아무래도 10년간 존재감을 유지한 주황색(+ 최근의 고양이 로고)과, 노무현을 상징하던 노란색이 빠지니까 영 모양이 나지 않는 듯. 참고로 아이디어는 참여당 측에서 냈다고...

5. 사건사고

2012년 2월 20일 아직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해커들의 공격으로 인해 홈페이지가 인공기 그림으로 뒤덮이고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가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해킹 피해를 입었다. 당 제목은 "통합종북당"이라고 쓰고, 인공기 한가운데 김정일 사망에 오열하는 북한 주민 사진에 이정희 대표를 합성한걸 보니, 통합진보당이 곧 민주노동당이라는 인식 하에서 이루어진 범행으로 보인다. 통합진보당 측에서는 경위 파악을 거쳐 사법기관 수사 의뢰 여부 등을 결정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구 민주노동당이 그동안 김정은 세습과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을 나타내지 않으면서 동시에 뚜렷한 의견을 제시하지 않은 것 역시 사실이고, 일심회 사건 등 주사파로 추정되는 당원들에게 관대했던 것 역시 사실이나, 통합진보당은 대한민국의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정당이므로 의도가 어떻든 범죄는 범죄이다. 그리고 통합진보당은 진보신당 일부 탈당파(심조)와 국민참여당이 결합한 정당이다.

그리고 청년 비례대표 경선 후보인 김지윤이 해적기지라는 주장을 한 사진을 올리면서 논란의 중심에 서버렸다. 이 논란의 여파 때문인지 경선에서 탈락했다.

19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서울 관악을 선거구 야권연대 통합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정희 대표의 보좌관과 선거캠프국장의 여론조작 시도가 발각되어 파문이 일었다. 결국 진통 끝에 이정희 대표가 후보직 사퇴 및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5.1. 19대 총선 비례대표 부정경선

5.2. 유령 당원 의혹

유령 당원 의혹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 당시에도 제기되었던 의혹인데, 6월 말 당 대표를 포함한 당직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또 다시 유령 당원 의혹이 제기되었다.

송재영 통합진보당 군포시 당위원장의 주장에 의하면, 중앙당이 배포한 선거인단 자료를 분석한 결과 경기도 성남시에서만 무려 160명의 당원이 주소지나 연락처가 불분명한 것으로 드러났으며 특정 주소지에 61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와 있어 확인해 본 결과 그 61명이 거주하고 있다는 곳은 한 중국집으로 드러났다. 가정집도 아닌 음식점에서 61명이 거주하고 있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가? 그런가 하면, 31명은 도서관에 함께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도라에몽같은게 있었나? 이 소식이 전해지자 어떤 사람은 "한 곳에 당원 수십명이 함께 사는 통진당이야말로 진짜 서민정당이다"며 비꼬는 반응이다.


5.4. 통합진보당 해산심사 청구

2013년 11월 5일 국무회의를 통해 통합진보당의 위헌정당 해산심판이 청구되었다. 2014년 12월 19일 오전, 통합진보당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정당으로 인정받아 해산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문서 참고.

6. 부정경선 이후 집단탈당과 분당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에 대해서 통합진보당 지도부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여 평당원들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그런데 김제남 국회의원(애초에 제명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가 의총에서 뒤퉁수를 때렸다.)이 이석기 김재연 출당(제명)안에 무효표(를 가장한 거부권)을 발동하여 출당을 무산시키자, 통합진보당 평당원들은 줄 탈당을 결행하고 있다.

국민참여당계 당원들이 많이 탈당을 하고 있으며, 국민참여당계 강동원 국회의원이 김제남 의원한테 배신감을 느낀다며 아예 대놓고 분당탈당을 입에 올리는 상황이다. 강동원 의원 탈당 발언.

민주노총 역시 분노하고 있으며, 민주노총 금융노조 소속의 현대증권 노조가 가장 먼저 탈당을 선언하였다. 그리고 금속노조 박상철 위원장도 탈당하였다.

2012년 7월 27일 하루동안만 무려 1500여명의 당원이 빠져나갔다 그리고 일부 국민참여당계 탈당 당원들을 중심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권재진 법무부 장관 앞으로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해 달라는 청원을 하고 있다. 해산 청원 뉴스.

통합진보당은 통합을 선언한지 1년도 안 되어서 사실상 재분당 수순으로 들어섰다. 이 와중에 김미희, 김재연, 김선동, 이석기, 오병윤, 이상규의원은 호소문을 내며 이제 갈등을 접고 화합하자는 내용의 호소문을 발표했으나 애초에 탈당계기를 만들어준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생각하면 참으로 뭐라 할말이 없다.

이 와중에 열흘동안 칩거하던 강기갑 대표는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게 실현되면 구당권파들은 사실상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게 될 전망. 하지만 서기호, 정진후, 박원석 의원의 거취 문제 때문에[44]실제 분당까지는 시간이 다소 걸릴 예정이다. 반발하고 있다. 헌데 그 전에 이석기, 김재연 의원 사퇴안에 동의했으면 이 정도까지 가지 않았다는걸 생각하지 않았겠지?

당초 분당까지는 어려울것이라는 전망도 있었다. 일각에서는 구당권파가 김재연은 살리는 대신 이석기가 자진사퇴하여 당을 유지할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결국 그딴건 없었다. 되려 구당권파는 구 국민참여당의 빚까지 거론해 더 어그로를 끈 상황. 더욱이 강기갑 대표의 계파로 분류되는 인천연합[45]도 분당 대열에 동참할 경우 계파 조직력이 흔들 거릴것이기 때문에 분당을 못할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으나 결국 분당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신당권파는 9월까지 신당창당을 완료할것이라고 밝힌 상황. 민주통합당이 9월에 대선후보를 확정하고 안철수 교수도 출마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라 어떻게든 야권연대에 참여하기 위해선 신당창당을 서둘러야 하는 상황이라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구당권파는 제2 당원비대위를 조직하겠다고 한다. 제2 당원비대위 운운은 신당권파의 분당 및 탈당 흐름에 제동을 걸려는 목적인것으로 보이지만 워낙 구당권파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탓에 분당을 막기는 어려울것이라는게 지배적이다.

구당권파는 분당과 탈당은 진보진영의 공멸이라고 주장하면서 묘하게 구 국민참여당계를 맹비난하고 있다. 심지어 김미희 의원의 남편이라는 사람이 유시민과 심상정은 노동자와 농민의 정당이라면서 왜 아메리카노 쳐드심?이란 글을 버젓이 올리기까지 하고 있다. 이쯤되면 답이 없다.
강기갑 대표는 구당권파를 향해 이석기, 김재연의 자진사퇴, 구당권파의 폭력사태 사과, 백의종군을 요구했다. 사실상 구당권파에 대한 최후통첩이라는 시각이 지배적. 하지만 구당권파가 백의종군 할일이 없다는 분석이 많은 탓에 결국 분당 크리는 막을수 없을것으로 보인다. 한편 일각에서는 안철수 교수가 출마를 선언하면 민주당의 친 안철수 성향 의원들과 시민사회단체, 통합진보당의 신당권파가 통합한 안철수 신당이 나올것이라는 소문도 있지만 아직 통합진보당 신당권파에게 안철수와의 연대란것도 머나먼 이야기일듯. 일단 뭘 좀 정리해야 안철수 신당에 들어가던지 말던지...

민주노총이 통합진보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면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통합진보당 이탈이 가속화 되고 있다. 7월 26일부터 8월 23일까지 6천여명의 당원들이 탈당했으며 8월 23일 이후에도 민주노총 서비스 연맹 조합원 3천여명도 탈당을 선언해 9천여명의 당원들이 탈당한 상황. 결국 구당권파가 발악할수록 통합진보당의 붕괴만 가속화시킬뿐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있다.

8월 28일, 민주통합당이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를 철회할것을 29일 열리는 최고위원 회의에서 논의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단은 논의라고는 하나 결과적으로는 통합진보당과의 야권연대 파기로 갈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또한 이석기, 김재연에 대한 자격심사도 논의할것으로 알려졌다. 민주통합당은 앞으로 야권연대는 새로 태어날 진보당이나 안철수 교수와의 연대를 의미한다라고 선을 그어 신당권파의 신당을 지지하고 남아서 끈떨어질 구당권파는 나가리 시킬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민주통합당의 이런 전격행보에 따라 신당권파의 분당과 신당창당 움직임은 더욱 가속도가 붙을것으로 보였지만... 민주통합당은 추후 논의로 이 사안을 미뤄버렸다.

8월 30일, 이상규 의원은 백의종군하라는 강기갑 대표의 발언에 부정적인 견해를 밝히며 사실상 최후통첩을 거부했다. 이의원은 이석기 김재연 자진사퇴에 대해서는 이미 절차상 끝난일인데 재론할 필요가 없으며 폭력사태의 원인은 일방적인 의사결정 때문이었다라고 주장했다. 사실상 구당권파는 싫은데염이라고 선언한 셈이라 양측은 이제 제 갈길을 갈것으로 보인다.

8월 31일, 뜬금없이 이정희 전 공동대표가 대선 출마를 준비중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신구 당권파가 제갈길을 갈것이 분명해진 시점에서 이정희의 대권 출마 운운은 대단히 치졸한 정략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번 대선이 초박빙의 승부로 흘러갈 가능성이 큼에 따라 민주당이나 유력 대선주자로 거론되는 안철수 교수측에 이정희의 지지율을 양도하여 야권연대에 참여하는 대신 일정 지분을 보장받겠다는 술수가 아니냐는것. 여기에 대선출마를 선언할 경우 28억의 선거보조금이 나오기 때문에 이것도 고려 대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진보개혁성향의 네티즌들은 드디어 저것들이 대선까지 발목을 잡으려고 작정했구나라고 분개하는중. 잘들 논다!

결국 당 최고위원회에서 혁신 재창당 안건이 상정되지도 못했고 9월 6일에 개최될 예정이던 당 중앙위원회 개최까지 취소되면서 분당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강기갑 대표는 분당의 책임을 속죄하겠다는 의미로 물과 소금도 먹지 않는 단식에 돌입했고 신당권파에선 "남은것은 질서있는 퇴장뿐"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상황. 한편 이정희 대표는 대선출마를 고민중임을 시인해 엄청난 비난을 받고 있다.

결국 9월 5일에 신당권파는 구당권파와 더이상 한 당에 있을수 없다라는 성명을 발표할 예정인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강기갑 대표가 단식중인 상황을 고려해서 구체적인 탈당 일정 발표는 뒤로 미룰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대한 문제중 하나인 김제남,박원석, 서기호,정진후등 신당권파 소속 비례대표 의원들은 제명절차를 밟을것으로 전해졌다. 현행 국회법상 비례대표 의원은 당에서 제명되어야만 의원직을 유지한채 탈당이 가능해지기 때문. 근데 김제남 당신은 왜 당을 나가려고 그러우? 지방의원 11명도 같은 절차를 통해 통진당 당적을 벗을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제명되어 당을 나가게 되면 신당권파 소속 당원들이 줄탈당한후 신설정당으로 합류하여 분당이 마무리 될것으로 보인다.

결국 9월 6일, 강기갑 대표는 희망의 끈을 놓겠다고 선언해 분당이 공식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했다. 네명의 신당권파 비례대표 의원들에 대한 제명절차가 진행되어 서울시당 당기위에서 이들을 제명한후 강대표가 주관한 의원총회에서 10명의 의원중 7명이 찬성해 제명이 가결되었다. 구당권파측은 셀프제명에 권한도 없는 강대표가 의원총회 주관이 말이 되느냐며 법적조치까지 불사하겠다고 하고 있지만 분당은 거스를수 없을것으로 보인다.

신당권파의 신당창당에 대해서는 대선이 불과 100여일 남은 상황에서는 어려울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대신 창당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진보세력들을 규합한 뒤에 민주당과 안철수 교수와의 연대를 추진할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변수는 민주노총의 지지여부로 진보신당 창준위가 민주노총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어서 민주노총의 선택이 변수가 될것이라는 지적이다.

9월 10일, 강기갑 대표는 분당의 책임을 지고 당대표직을 사퇴한뒤 탈당을 선언했다. 또한 진보진영 분열에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겠다는 의미에서 정계은퇴도 선언했다. 강동원, 심상정, 노회찬등 3명의 지역구 국회의원도 탈당을 선언하고 탈당한 4명의 비례대표 의원들과 합류할것으로 알려졌으며 구 국민참여당계 당원 3천명은 이미 모아둔 탈당계를 한꺼번에 제출할 예정이다. 인천연합과 통합연대는 지도부의 방침에 따라 개별탈당할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구당권파는 기다렸다는 듯이 민병렬 최고의원을 당대표 대행에, 오병윤 의원을 원내대표로 추대하고 4명의 비례대표의 제명을 의결한 의원총회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낸 상황이다. 구당권파는 효력정지 처분을 얻어내 4명의 비례대표 의원들을 사퇴시키고 빈자리에 자신들의 주구들을 세울 속셈인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정희 전 대표의 대선출마도 공식적으로 논의될것으로 보여 이들이 이번 대선에 얼마나 초를 칠지 기대가 모아지는 상황.

9월 11일에는 구 민주노동당의 핵심이었던 권영길,천영세 전 의원이 탈당을 선언했으며 구 국민참여당계 3800여명이 일시 탈당했다. 이후 천호선 최고의원등이 탈당했으며 마지막으로 유시민 전 대표도 탈당하면서 탈당이 마무리 되었다. 탈당파들은 새진보정당추진회의를 결성하여 내부결속을 다지면서 창당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이후 진보정의당을 창당한다.

한편 구당권파는 자기들만의 세계에 도취되어 강남스타일 말춤이나 추는 행태로 서기호 의원에게 비난받기도 했다. 니들이 말춤출 게제냐?

6.1. 제 18대 대통령 선거와 그 이후

9월 25일, 경기동부의 이정희 전 대표가 미국대사관을 등지고 광화문에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당 대표 대행을 지냈던 민병렬 최고의원도 대선 출마를 선언하며 당내 경선을 통해 후보를 확정할 예정이라지만... 결과적으로 경선은 요식행위일 뿐이고 이정희 전 대표의 후보 확정이 유력하다.

결국 이정희 전 대표가 대선후보로서 확정되었다. 후보 등록기간에 가장 먼저 등록해서 지지율도 낮은 후보가 제일 먼저 등록했다고 까였다. 여의도 텔레토비에서까지도 깠을 정도. 진보정의당이 심상정 후보의 정식등록을 포기하고 문재인 후보 지지를 선언한것과는 상반된 태도라서 제발 문재인 후보 발목이나 잡지마라라는 태도가 야권 지지층들 거의 대다수의 태도였으나...

이정희는 카이저 소제였다.

박근혜 떨어트릴려고 나왔다고 스스로 자처한 대로 1차 tv토론에서 토론은 둘째치고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를 매우 거세게 깠다. 심지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일본 이름 다카기 마사오를 공중파 TV에서 대놓고 언급했을 정도. 원래 토론에는 약했던 박근혜 후보는 이정희 후보의 까기에 맥을 못추었으며 안철수 전 후보의 사퇴와 박근혜 후보의 상승세에 침체된 분위기던 야권 지지층들에게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물론 이때의 맹목적인 비난은 정치에 별 관심없던 보수들마저 한자리에 뭉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방송이 끝나고 되려 박근혜 지지율이 엄청 올랐다.

방송이후 0%대이던 이정희 후보의 지지율은 1%대로 상승했고 문재인 후보 입장에선 한표가 아쉬운 상황이라 이정희 후보가 완주할지 안할지에 노심초사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결국 이정희 후보는 3차 TV토론 직전에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이정희 후보의 사퇴에도 불구하고 결국 문재인 후보는 3%차로 박근혜 후보에게 패배했다. 패배의 원인에는 그녀가 지목되고 논란이 되고 있다. 그녀가 분명 보수층들을 결집시키는 역풍을 불러온것은 분명하지만 동시에 침체되어 있던 야권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고 진보의 결집에도 (의도한건 아니겠지만) 나름 영향을 미치긴 했다고 볼수 있을듯. 참고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은 재보선에서 상당한 역량을 보였다. 평균 20% 득표에 당선자 한명은 호남에서 민주당과 경쟁, 한명은 완전 초선이다. 거대 양당외에 통합진보당을 제외한 어떤 정당도 이 같은 역량을 보일 여건이 없는 관계로 절대 무시할 수 없다. 특히나 15% 이상의 득표는 선거비용을 전액 환급받기 때문에 앞으로도 얼마든지 재도전이 이뤄질 수 있다.

문재인 후보의 낙선이후 새누리당의 보수 파워가 아주 세진 상황에서 통합진보당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놓고봤을때 통합진보당은 이정희 후보의 존재감을 얻긴 했으나 종북세력이라는 낙인표는 모든 야권세력을 침몰시키게 만드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따라서 민주당과 안철수 전후보 세력, 진보정의당, 진보성향의 시민사회 세력들이 주축이 되어서 재편될 야권에서 통합진보당이 설 자리는 없어보인다. 다만 안철수 신당이 너무 시간을 오래 끌어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면 달라 질 수 도 있다. 또한 가장 강력한 내부 경쟁자인 진보정의당이 식물화 되가는 상황이고, 진보신당은 이미 식물화 되었기 때문에 세력 재규합에 성공하고 기존의 관계를 재복원에 성공한다면 다시 부활하는 것도 점처지는 바이다.

2013년 1월 28일, 합의 추대형식으로 이정희 전 대표가 대표직에 복귀했다.

2013년 5월 15일 이정희 대표는 변희재를 상대로 한 종북발언에 대한 명예훼손 재판에서 승소하여 종북논란에의 깨긋함이 밝혀지고 1500만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46]

노동현황에서 유력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긴 하다. 노동, 학생, 청년 등의 운동권 분야에서도 조직력을 잘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내란혐의로 국정원과 검찰이 이석기 등 주요인물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면서 당 창당이래 최악의 위기상황에 빠졌다.

그러나 지방선거를 앞둔 현재 1000명 이상의 후보선출을 선언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계속전개하고 있으며, 당해산신청은 사실상 기한을 넘길 확률이 높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다시 살아날 가능성이 점쳐진다.[47]

7. 2014년도 6.4 지방선거

총 520명의 후보를 등록하였다. 세월호 참사 등으로 당초 목표인 1000명의 후보는 채우지 못하였으나 군소진보정당 중에서는 가장 많은 수의 후보를 선출하였고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후보도 출마하였다. 호남지역에서의 약진이 예상되며, 울산지역에서도 시장선거는 포기하였지만 구청장선거를 석권할 가능성도 높다. 특히나 현역 구청장이 평가도 높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또한 발목을 잡을 수 있는 해산청구 소송도 사실상 기한을 넘겼기 때문에 통합진보당으로써는 한시름 놓은 셈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참패. 광역단체장은 전남과 전북에서만 겨우 10%를 넘겼고, 나머지는 5%의 지지율도 얻지 못했다. 특히 대전, 대구, 경북 등 정의당 후보가 함께 출마한 곳에서는 정의당 후보에게조차 지지율이 밀렸다. 기대를 모았던 울산 북구의 윤종오 후보와 울산 동구의 김종훈 후보조차 새누리당 후보들에게 패배했다. 특히 이 두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이나 노동당 후보와 단일화에 성공했다면 재선에 성공할 수도 있었던 표차여서 더 충격이 크다.

결국 최종 결과는 광역의원 3명[48]과 기초의원 34명(지역구 31명, 비례대표 3명). 기대했던 것을 훨씬 밑도는 최악의 성적이었다.

8. 자매결연

민주노동당 시절에 북한 조선로동당의 우당(관제야당)인 조선사회민주당과 자매결연을 맺고 있었는데, 여전히 자매결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조선사민당 쪽에서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을 헷갈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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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공문을 진보신당에 보내버렸다. 진보신당이 북한을 비판적으로 바라본다는 점을 본다면 그야말로 흠좀무.

9. 약칭

통합진보당의 약칭으로 진보당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진보신당이 등록 취소되고 진보신당연대회의로 창당준비위원회를 다시 등록하면서 개명을 할 수 있게되자 개명 추진을 하다가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부정경선 사건으로 당이 어수선해진 가운데 한 진보정치인이 진보당이라는 창준위를 등록, 개명이 무산됐다. 비공식으로 통진당으로 불렸다. 10월 말 진보당 창준위가 해산되자 또다른 사람이 진보당 창준위를 등록했다. 어느 세력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11월 초 통진당에서 진보당을 약칭으로 당명을 개정, 다음날 (새) 진보당 창준위가 해산, 통진당이 진보당을 약칭으로 신고해 진보당이 공식 약칭이 됐다.

11. 역대 선거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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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정당해산심판에 따라 해산되었으므로, 이후로는 통합진보당의 강령과 기본정책, 기본정책과 유사하거나 동일한 취지를 내세우는 대체정당의 창당이 원천적으로 금지되며 통합진보당이란 당명을 사용 할 수 없게 되었다. 말 그대로 영구제명인 셈.
  • [2] 이석기 의원 포함. 김선동 의원은 6월에 이미 박탈되었으므로 제외.
  • [3] 해산 이후 비례대표 2인은 궐석.
  • [4] 진보신당 탈당파인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가 결성한 정치단체.
  • [5] 이 정당은 당시 대선을 맞이하여 정식 정당을 창당할 시간적 여유가 없어 만들어진 가설 정당의 성격이 있었다.
  • [6] 농담같지만 우스갯 소리는 아니다(...) 참여당이 펀드 빚을 다 갚지 못한채 통진당으로 합류해서 통진당으로 옮겨졌는데 분당 이후에 펀드 빚 관련해서 펀드 투자자들이 통진당에 소송을 걸게 되었고 통진당은 역 소송을 걸게 되나 애초에 당을 깨먹게 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계파가 계파인지라(...) 펀드 소송에서 연달아 패했고 결국에 통진당 측에서 8억 정도의 펀드 빚을 이자까지 쳐서 갚게 되는 처지에 몰려 유동성 위기에 물렸다는 웃지못할 얘기.
  • [7] 그나마 강기갑 의원이 사천에서 친이 직계 이방호를 100여표 차이로 제껴서 분위기는 좋았던 듯.
  • [8] 이 당시 성향이 비슷한 사회당이 3만 5천표(0.17%)를 득표했으니 아쉬운 상황. 그야말로 지못미가 되었다고.
  • [9] 사실 재보궐 선거가 치뤄지긴 했지만 대형선거가 아니다 보니 의석을 얼마 못얻었다.
  • [10] 슬로건부터가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는'이다.
  • [11] 주 지지 기반인 울산/경남과 더불어 수도권에서 진보정당 최초로 기초자치단체장 2곳을 가져갔다. 뭐 광역자치단체장을 죄다 사퇴하다보니 비례득표는 다소 저조했다. 전국 평균 7.18%
  • [12] 당시 무효표가 18만표나 되었다. 그러나 이 표가 싸그리 다 유시민에게 갔어도 여전히 김문수가 앞섰기에 결과 자체는 바뀌지 않았을 거다. 다만 본래 심상정에게 가려던 무효표를 조금이라도 더 많이 확보해서 격차를 좀 더 줄였다면 유시민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기에 유시민/국민참여당 지지자들은 아쉬운 마음이 있다고.(당시 선거에서는 김문수 52.2%, 유시민 47.8%, 약 4.4% 차이로 경기도임을 감안하면 상당한 표차로 졌지만 무효표가 모조리 유시민에게 간다는 전제하에 계산해보면 김문수 50.1%,유시민 49.9%, 약 0.2% 차이로 초박빙이었다.
  • [13] 물론 이것이 정당한 것은 아니었다. 서울 경기의 기초단체장(구청장/시장/군수) 선거에서 민주당이 거두었던 우세에 비하면 한명숙과 유시민은 상대의 재선프리미엄을 감안해도 훨씬 못미치는 성과를 거두었던 것도 사실이고, 진보신당을 지지한 3~4%의 국민들의 한표도 소신껏 내린 선택이었다고 볼 수 있다. 더욱이 그해 초 심상정, 노회찬의 지지율은 민주당 후보들을 앞선 10% 초반이었는데 이것이 3%까지 떨어진것은 이른바 '사표심리'의 영향일 것이다. 결국 사퇴를 안해서 졌다는 식의 주장은 무리가 있다.
  • [14] 막판에 개인적 결정으로 사퇴했다. 당내에 사퇴했다고 비난이 들끓었고, 당밖에서는 너무 늦게했다고 난리나고...
  • [15] 사실 진보신당의 전략 자체는 아주 큰 실패는 아니었다. 09년엔 의석을 확보해 (조승수, 울산 북) 원내 정당이 되었으며,(민주노동당과 결렬 직전까지 갔지만 단일화) 이번 선거에서도 광역단체장 덕에 비례에선 3.17%의 득표를 했던 것.(수도권은 민주노동당보다 다소 앞섰다.) 하지만 대내외적인 상황이 꼬이면서 당당하지도, 그렇다고 유연하지도 못한 선거가 되고 말았다.
  • [16] 이에 을 방문한 자리에서 사과를 하긴 했다. 뭐 하긴 했어야 한다는 뉘앙스였지만,
  • [17] 부대표를 지냈던 박용진은 혁신과 통합에 합류하여, 이후 민주통합당 창당에 참여한다. 민주통합당 대변인을 지냈고, 최고위원 선거에 출마하나 낙선했다. 보통 진보정당에서 민주당으로 들어간 세력은 지금까지 NL이 대부분이었지만, 박용진을 따라서, 혹은 박용진 이후 PD계열도 민주당에 합류하는 사례가 꽤 됐다. 대표적으로 2012년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의 손학규 캠프의 캐치 프레이즈 저녁이 있는 삶은 손학규 캠프 내 PD출신들의 작품이다.
  • [18] 한미FTA 추진과 신자유주의 정책 추진으로 참여정부라면 이를 가는 민주노총에서 강력하게 반발했고, 민주노동당 내의 다함께를 비롯한 좌파가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하지만 다함께는 통진당에 남았지.
  • [19] 다만 당시 상황에서 국민참여당과의 합당을 이유로 민주노동당에서 탈당한 당원은 거의 없었다.
  • [그러나] 당원수나 규모로 보나 민주노동다계가 최소 80%이상의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21] 이후 (참여계가 주축이 된) 통합진보당 탈당파가 세운 신당에서 이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 [22] 다만, 선거법상 약칭으로 진보당을 쓸 수 없었다. 진보신당이 있기 때문에 유사 명칭이어서 안되는 것. 약칭없이 등록하겠다고 했으나, 진보신당에서는 반발하는 모양새. 도의상 피해서 정해야하는 거 아니냐고
  • [23] 이런데에 대해서 진보신당에 남은 측에서는 "노동빠진당"(약칭이;;)이라는 조소를 하기도 했다. 혹자는 민주자유당을 성립시킨 민주정의당,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 삼당합당과 비기면서 "민주유당"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 [24]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은 12월 11일 열린 창당식에 영상축하메세지만 전달, 민주노총 내부에서는 과거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등으로 된 정치방침을 새롭게 세우기 위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 [25] 유럽의 많은 진보정당들은 강력한 노동조합에 기반한 경우가 많다. 근데 이러다간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도 못받게 생길 기세. 결국 배타적 지지 드립은 나오지 못했다. 사회당과 진보신당이 있기 때문이다.# 몰아 표주기도 반대하는데... 물론 앞서 말하듯이 몰아서 표주기(지지후보 선출)가 일어날 것 같다지만,# 누구말마따나 연대파업도 제대로 못하는 노총이 개개인의 비밀투표는 어떻게 관리하겠는가?
  • [26] 문성근, 문재인 등 친노인사들을 중심으로 김기식 등 일부 시민사회 세력, 박용진과 같은 진보진영 일부가 가담했다.
  • [27] 이에 대해 굽시니스트는 친노의 영토 분할이라고, 재편이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보수 40 / 개혁 30 / 진보 10의 구도는 당연히 변함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 [28] 04년에 민주노동당이 정당득표 13%를 하면서 노회찬 전 의원이 비례 8번으로 당선되었다.
  • [29] 참고로 이정희는 관악구 출신이긴 한데, 출생지역이 관악 을 지역이 아니라 관악 갑 지역이다. 참고로 관악 갑의 국회의원은 한나라당소속이었다가 2011년 12월 탈당해 무소속이 된 김성식 의원으로, 이 지역은 민주당 경쟁자도 많고 김성식 의원에 대한 지지도도 높은 지역.
  • [30] 근데 사실 지역구에서 진보정당 후보가 당선되기는 매우 힘들다. 서울에서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꼽히는 곳이 서민층이 많고 무엇보다 이정희의 지역적 기반인 관악, 금천구 등지.
  • [31] 선거구 통폐합은 다행이 일어나지 않았다.08년 총선에서 노회찬 전 의원이 민주당 후보의 완주 속에서도 홍정욱에게 단 2000여 표의 석패를 한 것을 생각해보면...
  • [32] 마찬가지로 민주당 후보의 완주속에 심상정 전의원이 석패한 곳
  • [33] 특히 순천, 여수 등. 민주당이 민주노동당에게 재보궐을 양보했거나, 민주당 의원들이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유죄를 선고받은 곳. 여기에 FTA 찬성(김성곤 의원, 여수갑)이 겹쳤다.
  • [34] 사실 2011년 하반기 재보궐선거 때만해도 민주노동당은 10~20%대의 평균 득표를 올리며 박빙의 승부를 벌인 민주당의 여러 기초단체장(시장,군수)를 낙마시켰고, 야권연대 없이는 민주당이 자력으로 당선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35] 아이러니하게도 과거 04년 총선 막판에, 민주노동당 사표론을 설파하며 열린우리당 지지를 호소한 것은 지금 통합진보당 공동대표 유시민.(+ 강준만) 이 때 진중권과 한판 싸우고, 노회찬과 지갑논쟁을 벌였다.
  • [36] 경기도지사 후보 단일화, 김해을 재보궐 등... 기반이 없으니까 그런 것도. 이 때문에 유시민 안티가 늘었다.
  • [37] 당시 11%를 득표하였다.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됨.
  • [38] 이는 상대적으로 당내 소수파인 국참계열과 진보신당 탈당파(노,심,조)의 당내 경선에서의 구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횡포에 대한 항의였다. 일단은 유시민 판정승.
  • [39] 민주당내의 야권연대관련 문건에 의하면 유시민의 당무거부시 첫번째 요구조건이 장원섭 사무총장의 사퇴였다. 그로 인해 이의엽 사무총장으로 교체되었다.
  • [40] 독일식 정당명부제처럼 권역별 지지율 비율로 공천하자는 제안/근데 그러면서 다른 진보정당과의 연대는 고려하지 않는 다는 점에서 "민주당에겐 을, 다른 군소당에겐 갑 노릇하냐"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심지어는 민주당에게 숱하게 당했을 '사표론'까지 일부 당원들에게 주장되고 있어 비판을 받기도 했다.
  • [41]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후보의 단일화에 실패했다.
  • [42] 혹자는 아디다스 삼선슬리퍼를 연상시키는 로고라 평했다. 참고로 저 세 줄은 노동자, 농민, 그리고 시민으로, 세 정파의 연합이란 것을 상징하는 의미도 있는 듯. 뭔가 노동자, 농민과 시민이 겹치거나 상충되는 것 같지만 넘어가자.. 사실 이 이야기도 재벌도 시민에 들어가는거 아니냐라는 비판 등 당 내의 "노선갈등"의 떡밥이 되기도 했다.
  • [43] 리얼미터-중앙일보의 정례조사와 한겨레의 여론조사 참조. 총선 7일 전부터는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다.
  • [44] 현재 공직선거법 제192조(피선거권상실로 인한 당선무효 등) 상으로는 "비례대표 의원이 탈당하면 의원직을 상실한다"는 조항이 있기 때문. 물론 출당이나 당 해산을 통해 당직을 상실한다면 의원직을 유지할수있지만 구당권파측에서 필사적으로 반대하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기도 하다.
  • [45] 울산연합의 경우 처음에는 신당권파와 함께 경기동부연합을 압박했으나 애매한 포지션을 취하더니 지도부 선거에서 구당권파와 함께하고 결국 통합진보당에 남았다.
  • [46] 변희재는 일베등의 넷극우 집단에서 가장 활발한 이데올로거로 활약한 사람이다. 실제로 진중권 교수를 상대로 소송전에서 이겼던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그 위상은 상당히 있는 편. 하지만 이번 소송전의 패배로 이정희나 통합진보당에 대해서는 사실상 입을 다물어 버린 상황을 맞이하고 말았다.무너져버렸으니 상관없을지도
  • [47] 특히나 안철수와 단일화한 민주당이 기초무공천논란에 빠져 재대로된 후보도 선출하지 못한 상황에서 세월호 침몰사고까지 겹쳐 무주공산이 되었기에 통합진보당의 역할이 커질 확률이 높다.
  • [48] 그나마도 모두 비례대표. 전남, 전북, 광주에서 각 1명씩 당선되었다.
  • [49] 노동당 김종철 후보와 단일화하여 사퇴. 통합진보당과 노동당의 관계를 생각하면 놀랄 노 자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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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2-24 16: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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