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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팍 샤커

Contents

1. 개요
2. 앨범 리스트
3. 그러니까 남자들은 여자를 멀리하고 자위행위를 하는 게 낫습니다

1. 개요


The Notorious B.I.G.와 더불어 힙합계의 양대산맥.
서해안 힙합의 제왕

힙합계의 엘비스 프레슬리 혹은 비틀즈존 레논격인 존재이다. 그는 특히 존 레논과 비슷한 점이 많은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으며, 자신이 만든 노래에 사상과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등 마치 사회운동가와도 같은 음악 활동으로 대중의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음악계에 큰 족적을 남긴 뒤 이른 나이에 총탄의 이슬로 세상을 떠났다는 점이다.

본명은 투팍 아마루 샤쿠어(Tupac Amaru Shakur). 가끔 2pac에서 2를 ''로 잘못 읽어서 실수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친형은 그 라이프의 멤버 모프림 샤쿨.

그의 이름은 잉카의 마지막 황제였던 투팍 아마루에서 따왔다. 예명도 본명의 Tupac을 변형시킨 것이다. 본토에서는 아직도 Tupac이라고 불린다. 더불어 마카벨리라는 예명도 있다. 이 예명은 그가 스 로우 레코드에 영입된 후 마키아벨리즘에 심취하여 지은 예명이다. 뉴욕에서 랩하던 시절엔 MC 뉴욕이란 예명으로 활동했다.

그는 1971년 6월 16일에 뉴욕에서 출생했으며, 1996년 라스베가스에서 벌어진 총격사건에서 젊은 나이에 살해된 비운의 천재 랩퍼이다.

스눕 독, 닥터 드레 등과 함께 웨스트 코스트를 대표하는 랩퍼 중의 한 명이다. 그러나 팍의 초창기 음악 성향은 그의 고향인 뉴욕에 있는 래퍼들의 영향을 받은건지 웨스트 코스트 랩과는 거리가 있어보인다. MTV에서 베스트 래퍼를 뽑으면 5위권 이내, 1위 아니면 2위 하는 인물이다. 전세계 힙합계를 통틀어서 최고의 랩퍼로 손꼽히는 인물이며, 참으로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다. 20살이 되던 해까지 8번의 체포 경력을 가졌으며 8개월 동안 수감되기도 하였다. 물론 따라하다가 인생 종치는 일이 없어야 하겠다.

Digital Underground의 수장 쇼크 G에게 프리스타일 랩을 들려준 뒤, 그의 로드매니저로 일하다가 'Same Song'[1]에 객원 래퍼로 피쳐링을 하면서 데뷔 했을때는 그저 그렇게 히트를 쳤고 'Strictly 4 My N.I.G.G.A.Z'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렸지만 강도에게 을 맞았다 되살아난 적도 있다. 그 사건 당시에 절친이었던 Notorious B.I.G.와 배드 보이 소속사 사장인 션 콤즈가 같이 있었기 때문에 비기가 투팍을 총으로 쐈다는 언플이 나오면서 투팍은 비기(Notorious B.I.G.)를 범인으로 간주하지만 사건은 미궁으로 빠지고 만다.

그리고 이 사건은 서부(west coast), 동부(east coast)의 힙합 지역 감정이 생겨난 원인이기도 하다. 다른 이야기로 따르자면 건물에 괴한이 칩입하자 Notorious B.I.G.가 친구인 투팍을 구하러 총을 가지고 가다가 경찰의 조사를 받아 오해를 받았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배신감을 느낀 투팍이 비기와 퍼프 대디를 죽이려고 총을 가지고 가려다 경찰에 저지되었다고 한다. 팍은 이 사건을 모토로 'Holla at me'라는 곡을 만들었다. http://youtu.be/XpntYM4wcAo]죽음을 넘어서 뭘 봤는지 총격사건 직후에 낸 앨범 'Me Against World'가 히트를 쳤지만 이 앨범이 나온 후 활동하기도 전에 투팍이 위의 그 짤방 유래가 된 강간죄로 구속되어서 교도소로 갔고 이 앨범이 히트를 쳤을 때는 투팍이 교도소에서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데스 로우 사장인 슈그 나잇이 투팍을 보석금에 풀어주고 투팍은 유명 힙합 소속사 데스 로우로 이적을 한다. 자유를 얻은 투팍은 비기에게 분노하게 되고 아웃로우즈 컴필레이션 앨범에 비기와 퍼프 대디, 배드보이 레코드, 동부 힙합을 디스하는 곡인 'Hit'em up'를 넣게 된다. 그러나 사태가 심각해지다 보니 동부 힙합과 협동하는 곡을 만들고 화해하려고 했으나 무산되었다.[2] 여러 싱글을 대박시키고 그 다음 최강의 프로듀서와 투팍의 랩핑이 합친 'All Eyes on Me'이라는 앨범을 탄생시킨다. 참고로 많은 사람들이 팍과 비기의 비프가 동서부 힙합 전쟁의 시초로 잘못 알고있는데, 사실 투팍 이전에도 서부 힙합이 부흥할 때 동부 래퍼의 대선배격인 故 도그가 폭력적이고 물질만능주의적인 서부 힙합에 강력하게 반대하는 'Fuck Compton'이라는 곡으로 당시 서부 힙합의 대표적인 그룹 N.W.A와 그들의 고향 컴튼을 깐 적이 있다.[3]

그러나 1996년 소속사 사장 슈그나잇과 함께 마이크 타이슨의 경기를 보고 나오던 투팍은 또 다시 총에 맞았고 사망한다. 그 후 약 1년 뒤 앨범 홍보를 위해 L.A로 간 Notorious B.I.G.도 같이 총에 맞아 사망했다 유명 인사의 갑작스런 사망 뒤엔 늘 그렇듯 음모론이 따르기 마련이었고, 투팍도 다르지 않았다. 한창 갱단끼리 대치하던 동부 지방에서 자객을 보냈다는 이야기도 나돌았으나, 실제로는 총격을 당한 당일 라스베가스 MGM에서 타이슨의 경기를 관람 하던 중 유명 갱단 '콤튼'파의 '올랜도 핸더슨'과 시비가 붙고 그를 폭행한 앙갚음으로 인한 총격을 당한 것이다. 당시 CCTV에 찍혀서 뉴스에도 보도됐는데 투팍이 총을 맞아 사망하기 전에 라스베가스에 있는 카지노에서 누군가를 투팍과 그의 지인들이 함께 집단폭행을 했었다.

생존설도 돌고 있다. 여러 증거들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사후에 발표된 뮤직비디오에 투팍이 신고 나온 신발은 투팍 사망 전에는 발매되지 않은 모델이라는 점, 사망 후 바로 화장되었다는 점, 사고 당시 경찰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 등이다. 심지어 자메이카에서 살아있는 투팍을 만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또는 쿠바 그들이 말하기론 2014년에 그가 돌아올 것이라는 데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거 아시죠?

그러나 엘비스 프레슬리, 커트 코베인, 가장 최근의 마이클 잭슨의 사망 당시에도 생존설은 돌았다. 지금껏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세상을 떠났음이 확실하다. 그가 화장한 것을 본 사람도 있으니 죽은 것이 맞다. 솔직히 생존설이 돌고 살아 나온 가수가 있었냐? 이런 쓸데없는 추측보다는 구글링만 해봐도 2pac 부검 사진이라 검색하면 나온다. 물론 생존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부검사진이 조작 되었다고 말한지만 말이다. 궁금한 사람은 한번 읽어보자. http://www.egotripland.com/evidence-2pac-tupac-still-alive/

이 시대, 그리고 서부 힙합이 늘 그래왔듯이 가사에는 폭력과 마약 그리고 섹스에 대한 내용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흑인의 인권에 대한 내용, 여성 보호에 대한 내용들을 다뤘다. 그의 슬로건인 "깡패 같은 삶(Thug life)"라는 말 자체가 사회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자신같은 사람을 일컫는다. 험난한 인생을 살았음에도 상당히 시적인 가사를 써서 이 분야에선 누구도 따라올 수 없다는 평을 받는다.

사후에도 앨범이 계속 나오고 있다. 생전에 이미 수백곡을 녹음해놨기 때문에 죽은 뒤에도 계속 앨범이 나오고 있다는 것. 이 쯤 되면 생존설이 생길 만도 하다. 미스터리 갤러리의 유명한 고인드립 꾸준글 중에는 '투팍은 살아있다'라는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꾸준글도 있다.

그러나 이런 곡들은 앨범에 발매되지 않을 만한 퀄리티라는 점, 같이 껴서 나오는 기존곡들의 리믹스가 개판이라는 점 등에 의해 사후 앨범은 계속해서 까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랩퍼라는 위상에는 변함이 없을 듯 하다.

죽어서도 이지 이와 더불어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다. 더 게임 같은 베테랑이나 켄드릭 라마, 쿨보이 Q 등의 최근 뜨고있는 신인들에게도 상당한 리스펙을 받으며, 극단적인 경우는 이분의 스타일을 말 그대로 벤치마킹한 소위 짝퉁 투팍 래퍼도 있을 정도. 대표적으로 자 룰 등이 있다. 이 작자는 아예 뻔뻔하게 팍의 랩 자체를 모창했다. 심지어는 인터부에서 자기가 투팍이랜다.


2012년 4월 15일 코아첼라 뮤직페스티벌에서 홀로그램으로 투팍을 복원해 스눕 독과 함께 Hail Mary, 2 of Amerikaz Most wanted 2곡을 부르게 했다. 1년동안 40만달러를 투입해서 만들었다고...#[4]

이에 대해서 갑을론박이 오고갔으나 공연 반응은 괜찮은 듯 하다.

이걸 투피에이씨로 읽느냐 투팍으로 읽느냐에 따라서 힙덕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골라낼 수 있다. 가끔 자기가 힙합 매니아라고 하는 사람한테 읽으라고 해보자. 이승철은 퍼스타k2에서 투팩이라고 읽었다[5]

음악에 입문하기 전에 투팍의 시를 담아낸 '콘크리트에 핀 장미' 라는 책도 발간되었다.

타임지에서 선정한 미해결 힙합 살인사건 탑 10중 1위에 올랐다.

여담으로 방일한 적이 있다http://www.youtube.com/watch?v=RYChUEOqW8w

2. 앨범 리스트

'2pacalypse Now'부터 'All eyez on me'까지는 투팍이 생전이 발매한 스튜디오 정규 앨범이고 그 다음부터 나오는 앨범은 거의 미수록곡을 짜깁기해서 나온 곡이다. 지금은 거의 망해가는 데스 로우가 아마루 레코드와 힘을 합쳐서 짜깁기 앨범을 만들어 내려는 중(...). 2010년에 투팍 사후 앨범 미발표곡으로 닥터 드레와 제이지를 디스한 'war gamez'라는 곡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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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집 2pacalypse Now (1991년)

투팍의 데뷔 앨범이며 약 50만장의 판매고를 올렸다. 사회 비판적인 성격이 강한 노래가 주를 이룬다. 그리고 여성이나 경찰을 비꼬는 가사가 나온다. 이 앨범을 들은 한명이 경찰을 쏘거나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할 정도. 실제로 한 소년이 경찰에게 총을 쏜 후 3번 트랙곡인 'soulja's story'가 그에게 '경찰을 쏘게할 동기를 주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로 인하여 일부 정치가들에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고 당시 부통령이였던 댄 퀘일은 공중파방송에서 투팍을 비난했다. 심지어 불매운동까지 벌일 정도로 사회의 파장을 일으킨 앨범이다. 그리고 1년 뒤...전설이 된 그의 데뷔작이긴 하지만 사회작 파장에 묻혀 대중의 인지도는 적은 편이었다. 그래도 이 앨범이 알앤비 차트 13위에 오른 적 있으며 싱글인 'BRENDA'S GOT A BABY'이 3위를 차지한 적 있다. 대부분 국내 리스너들에게도 별로 언급되지 않는 앨범이기도 하지만 매니아에서는 호평을 받는 앨범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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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 Strictly 4 My N.I.G.G.A.Z. (1993년)

1집보다 더 과격하게 변해서 돌아온 노래. 1집의 노래들이 경찰과 백인들을 비판하는 한편 '흑인들이 이대로 가난하고 무식하게만 살 수 없다. 우리 스스로 변하자.' 같은 메세지를 전하는 것에도 초점이 맞춰진 것과 달리 2집의 노래들은 사회를 까는 과격한 가사 자체에 중점이 맞춰져 있다. 그래도 어느 부분에서는 1집보다는 많이 순해진 앨범. 수록곡 중에선 1집의 메시지가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 흑인 여성들에게 힘을 내라고 전하는 'keep ya head up'과 파티송인 'I get around'[6]가 가장 유명하다.


3집 Me Against The World (1995년)

'All eyes on me'와 함께 투팍의 최고 명반 중 최고로 꼽힌다. 투팍이 가진 서정성을 가장 잘 표현한 앨범으로 1, 2집이 사회적인 분노를 담았다면 3집의 경우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dear mama' 같이 시적인 내용이 주가 되고 있다. 특징이라면 앨범의 전곡에 샘플링이 사용되었다. 앨범은 차트에서 장기간 머무르며 수백만장을 팔았지만 정작 투팍은 앨범이 나올 쯤에는 감옥에 있었다. 별다른 활동 없이 앨범만 수백만장을 판 것이다. 흠좀무.


4집 All Eyez on Me (1996년)

스 로우 레코드석금을 내고 투팍을 석방하는 조건으로 투팍과 계약한 뒤 투팍이 그곳으로 소속사를 옮기면서 발매한 앨범이다. 힙합 앨범 사상 최초의 더블시디로 제작되었다(이로 인하여 더블앨범 제작이 유행이 되기도 했다.). 톱스타 반열에 올라서 투팍의 위치를 대변해주는 앨범으로 닥터 드레 같은 최고의 프로듀서가 만든 비트와 조지 클린턴이나 로저 트루먼 같은 전설적인 뮤지션들까지 참여해서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피쳐링진도 스눕 독 파운드 같은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서부 힙합 뮤지션과 더불어 메소드 맨 & 레드맨 같은 동부 힙합을 대표하는 래퍼들까지 참여하였다. 상업성과 작품성 모두를 겸비한 앨범으로 극찬을 받았으며 지금도 최고의 힙합 앨범을 꼽을 때 베스트 5 안에 반드시 들어가는 앨범이기도 하다. 투팍의 앨범 중 2000년에 와서 재발매되는 앨범이기도 하다.

All eyez on me 이 곡으로 인해 투팍이 보라돌이를 좋아했음이 밝혀졌다? 물론 몬데그린일 뿐이다...


Makaveli - The 7 Day Theory(1997년)

투팍 사후 1주일만에 발매된 앨범이다. 원래 발매 예정이었으나 앨범 발매 직전에 투팍이 사망하였다(...). 특이하게 투팍이 아닌 아웃로우즈 시절 예명인 마카벨리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으며 'All Eyes on Me' 같이 대중적이라기보다는 예전의 과격함을 부각시킨 앨범이다. 자신의 크루인 'Outlawz'를 제외하고는 다른 뮤지션의 참여도 없었지만 앨범 자체의 평가는 상당히 좋다. 동부 힙합을 디스하는 듯 나스에 대한 디스곡도 존재한다. 참고로 나스는 이걸 듣고 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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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U Still Down (1997년)

투팍이 데스로우로 소속을 옮기기 전에 녹음해뒀던 미발표곡 모음집이다. 앨범에 수록곡들이 예전 앨범보다 못하더라도 'Do for love'[7]와 같이 명곡이 있어서 들을 만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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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est Hits (1998년)

사후에 나온 베스트 앨범 미발표곡 중 하나였던 'Changes'가 대히트를 쳤다. 아마 투팍의 대박을 친 곡들은 여기에 다 수록되어 있으니 베스트 앨범 중에서 입문자에게나 매니아에게도 소장가치가 상당히 있는 편이다.


2pac & outlaws - Still i rise(1999년)

그의 크루인 'Outlaws'와 함께 합작한 앨범. 투팍의 전담 프로듀서나 다름없는 Johnny J가 대부분을 프로듀싱하였다. 이 중에서 'keep ya head up'의 후속곡 격인 'bady don't cry' 수록.



Until the end of time(2001년)

역시 미발표곡 모음집. 평가는 그저 그렇고 프로듀싱을 전부 다시 했지만 사람들의 평가는 이전곡들이 더 좋았다고... 그러나 투팍의 이 사후 앨범은 계속해서 차트에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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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ter dayz (2003년)

미발표곡 중 이때부터 음악 퀄리티가 하락하기 시작... 그냥 이전 곡이 낫다. 투팍의 앨범이면 무조건 사겠다는 열혈팬이 아니라면 소장하지 않는 것이 좋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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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ixx Klazzics (2003년)

투팍의 믹스 앨범. 그러나 원곡을 너무 망치고 리믹스도 좋은 편이 아니라서 까이고 있는 앨범.


Resurrection (2003년)

영화 투팍의 OST라고 하지만 투팍의 목소리를 갖다 붙인 곡도 있다. 평판은 좋지 못한 편.


2pac Live (2004년)

투팍의 라이브 앨범. 정식 라이브도 아닌데 짜깁기로 발매한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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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yal to the Game (2004년)

미발표곡. 에미넴이 프로듀서를 했지만 투팍이 랩한 것에 그냥 음악 덧붙인 수준.


Pac's Life (2006년)

미발표곡. 쓰레기 앨범이다. 투팍의 어머니가 투팍을 너무 추모하고 싶었는지 장르를 따지지 않고 아무나 다 피쳐링을 시켜서 그런지 앨범이 개판이다. 참고로 이 앨범에 수록된 'Pac's Life'는 E스포츠 팬이라면,[8] 한번쯤 들어봤을텐데 바로 단군의 명곡(...) 청춘부재의 MR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3. 그러니까 남자들은 여자를 멀리하고 자위행위를 하는 게 낫습니다

이 소항목은 그러니까 남자들은으로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jerk_up_is_better_than_bitchs.jpg
[JPG image (39.07 KB)]


"So you need to stop checking these bitches and keep your dick in. Niggas need to go back to the OG penitentiary days and start jercking off."[9]

짤방(...)의 주인공 되시겠다. 원본 플짤(자막 있음)

위 짤방은 2pac의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의 한 장면이다. 위 장면은 투팍이 강간죄로 구속되었다가 석방된 직후 인터뷰 장면. 여자랑 클럽에서 원나잇을 했다가 낚여서 구속되고 법정 싸움에다가 합의금까지 물어준 상황이니, 그야말로 억하심정을 토로하면서 저런 말을 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할 수도 있다. 사실, 다큐멘터리의 내용은 매우 진지하며 2pac 본인은 비극적 인생을 살았던 인물이므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다큐멘터리 내용 일부 캡쳐

근데 정작 이 말을 내뱉은 당사자 본인도 여자를 억수로 밝힌다. 이스 에반스에게 면전에서 대놓고 성관계를 맺자며 성희롱을 시전했고, 심지어 총에 맞아 죽기 직전에도 길가던 여자 두명을 꼬시려고 했다. 사실 원문은 "너"는 자위행위나 하는게 낫다고 하는 내용이므로 본인은 해당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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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뮤비에서 나오는 아프리카 왕을 묘사한 복장과 랩스킬 덕에 충격적인 첫 등장을 선보인 래퍼 25인의 리스트 중 하나에 들어가기도 했다.
  • [2] 팍은 동부 래퍼들 전체에게 악감정을 가지진 않았다. 데스 로우 레코드로 영입되기 직전 퍼블릭 에너미의 척 D에게 직접 친필 편지를 써서 보내고, 버스타 라임즈가 소속될 당시의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와도 약간 서먹했던 일도 있었지만 친했다. 자신을 존경하는 나스를 디스하기도 했지만 그와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다. 그리고 우탱 클랜을 좋아해서 그들과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 [3] 물론 서부 지방에서도 DJ 퀵이나 N.W.A 소속이었던 닥터 드레 역시 디스곡으로 맞대응 하였다. 드레의 수제자격 래퍼 스눕 독도 팀과 디스전을 벌이기도 했다.
  • [4] 투팍 홀로그램을 제작한 회사는 타이타닉,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같은 유명 영화에 참여한 적이 있었으나, 현재 파산했다.
  • [5] 참고로 제이지도 이러한 점을 지적하는 걸 보면 미국에서도 이렇게 발음하는 사람들이 있는듯. 90년대 활자 매체에서는 종종 투팩이라고 표기하기도 했다.
  • [6] 디지털 언더그라운드 멤버들이 피처링해줬다.
  • [7] 투팍의 몇 안되는 러브송.
  • [8] 특히 나이스게임TV를 한번이라도 봤던 이라면
  • [9] 직역하자면 "그러니까 친구(흑인)들은 걸레년들 그만 쫓아다니고 똘똘이는 가만히 둬. 친구들은 오리지널 갱스터(OG는 Original Gangster의 줄임말이다. 사람을 죽여본 갱스터를 일컬음)의 수감 생활 시절처럼 딸이나 치는게 낫다고."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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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29 23: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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