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트리엔트 미사

last modified: 2015-04-08 21:15:49 by Contributors

Sancta Missa Tridentino

리엔트 공의회 교령에 따라 1570년에 로마 미사 전례서가 인쇄된 이후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령에 따른 1970년 전례개혁 이전까지 400년간, 전세계의 로마 전례를 따르는 서방 가톨릭 교회에서 봉헌되던 미사를 말한다.

한국어로는 트리엔트, 트리덴틴, 트리덴티노 등으로 표기할 수 있다.

tridentine01.jpg
[JPG image (153.81 KB)]
트리엔트 미사에서의 거양성체
tridentine02.jpg
[JPG image (263.63 KB)]
실제 거양성체 때의 모습. 계단의 높이에 따라서 사제, 부제, 차부제이다.

Contents

1. 정의
2. 특징
2.1. 장궤 영성체
2.2. 벽제대
3. 순서
4. 기타
5. 한국 현황

1. 정의

트리엔트 미사는 트리엔트[1] 공의회 이후에 지정된 양식이다. 이 전례서를 인쇄하기 전까지는 서방교회에서도 지역마다 전례양식이 대동소이했다. 즉, 트리엔트 전례는 진정한 의미에서 서방교회의 첫 번째 통합 미사 양식이다.

당시에는 역사가 200년 이상된 전례를 거행하는 공동체는 트리엔트 전례서를 받아들이지 않을 자유가 있었으나, 그런 전례전통이 있는 곳마저 자청해서 트리엔트 전례서를 받아들였다. 자기네 고유한 전례전통을 지킨다는 자부심보다는 여러 지역 교회가 같이 쓰는 '표준판'을 함께 쓴다는 매력이 컸던 듯하다. 여기에는 인쇄술도 한 몫 하는데, 전례서는 두껍기 때문에 필사할 때 오탈자가 있을 수밖에 없는 반면, 트리엔트 전례서는 인쇄술 덕분에 똑같은 사본을 보급할 수 있었다. 다만 최초의 인쇄된 미사경본은 1474년에 등장해서 이미 거의 100년 전에 인쇄되긴 했다. 트리엔트 전례서에는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도 몇 번 개정이 있었고 최신판으로는 1962년판이 존재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1963년에 인쇄된 판본이다. 1962년에 미사경본에 여러 차례의 수정이 가해졌고 이게 실제로 반영된 것이 1963년이기 때문이다. 이 1962년도 판 미사경본, 특히 실제 미사 때 사용되던 제대용 경본은 트리엔트 미사를 지지하는 사람들이나 고서적 수집가들에게 최고의 소장품으로 모셔진다카더라. 현재 트리엔트 전례라고 말할 때는 이 1962년판을 기준으로 한다.

트리엔트 공의회 당시에 여러 문제를 논의하면서 또한 전례 문제도 불거졌다. 당시에 교부들은 각 지역 교회마다 전례가 달라서 통일성이 없고, 또한 신학적 비판을 거치지 않은 대중신심이 전례에 영향을 끼친 것도 있어서 교부시대의 로마 전례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학술적인 연구가 부족해서 교부들이 원하는 로마 전례 복구작업을 할 수 없었는데,[2] 그러한 한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통합 전례서를 발간할 것을 결의하고 공의회를 폐막한다. 그 후 성 비오 5세 교황은 공의회 교령에 근거하여 로마 미사 전례서를 1570년에 발행한다. 이후 400년 간 트리엔트 전례는 서방 가톨릭 교회에서 사실상 유일무이한 교범으로 인식됐다. 세부적인 개정작업이 없지는 않았으나 큰 틀은 1570년판과 다를 게 없었다.

흔히 라틴어 미사 또는 전통 미사 등으로 불린다. 이 문서에서 '지금', '현재'라고 명시된 시점의, 자국어로 올리는 '현행 미사'는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정해진 미사로, 미사 경본의 제목에 '바오로 6세에 의해 인준됨'이라는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에 바오로 미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제대가 벽에 붙어있어 가끔 '벽미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현행 미사도 사실은 라틴어로 된 미사경본이 표준판이고 벽에 붙은 제대에서 드려도 문제가 없으며[3], 그에 따라 미사를 봉헌하는 본당도 있기에, 웬만하면 정확한 이름으로 불러주거나 그냥 '전통 미사'라고 해 주자. 한국에서는 감곡 매괴성지 성당, 명동성당 등에서 라틴어 바오로 미사를 봉헌한 예가 있지만, 이 외에도 많은 곳에서 봉헌되기 때문에 다 적을 수는 없다.

2. 특징

강론 부분만 빼고 전부 라틴어로 미사를 거행한다. 단, 트리엔트 미사라고 해도 라틴어 사용이 근본적인 요소는 아니다. 교회가 허락하면 번역판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400년간 가톨릭 교회는 정말로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고서는 번역판 사용을 허가하지 않았다.

당장 눈에 띄는 가장 큰 특징은 사제가 회중을 등지고 제대를 향한다는 것.[4] 하지만 이는 눈에 띄는 차이에 불과하며, 실제 전례 양식을 살펴보면 신자석에서는 잘 보이지 않는 여러 중요한 부분에서 큰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현재의 미사는 미사의 공동집전이 가능하지만 트리엔트 미사에서는 그런 거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지만 사제는 하루에 적어도 한 대의 미사를 봉헌해야 했다. 그래서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성당은 주 제대와 함께 부속제대가 최소 2곳이 있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지금도 명동성당 같은 경우 지하성당을 포함하여 주제대와 부속제대, 총 8곳의 제대가 남아있으나 현재 사용하는 제대는 2~3곳에 불과하다. 가끔 옛날 전통을 아시는 분이나 옛날에 이곳이 제대였음을 아시는 분들은 앞에서 예를 표하시거나 제대의 성석에 친구(親口)[5]하시는 분들을 뵐 수 있다.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저기에 뭐가 있길래 저러나, 하면서 제대 위를 둘러본다(...).

2.1. 장궤 영성체

tridentine03.jpg
[JPG image (131.11 KB)]
제대 앞 장궤틀. 명동성당에 가도 볼 수 있다. 성찬의 전례 때 성체를 모시기 위해
장궤하는 신자들을 위해여, 또한 제대와 회중석을 분리하기 위하여 설치한다.
tridentine04.jpg
[JPG image (196.61 KB)]
영성체 시 밑을 수반으로 받친다. 수반은 손잡이가 달린
성반으로 성체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마련된 제구.

영성체를 할 때 기본적으로 장궤 영성체를 한다. 장궤 영성체란 무릎을 꿇고 혀로 성체를 모시는 것으로, 밑에 성체의 가루가 떨어지지 않도록 접시나 긴 천을 받친다. 또한 현대처럼 성체분배 봉사자라는 개념이 없고 무조건 사제만이 성체를 분배한다. 단, 서기 100년경에 쓰인 디다케를 보면 성체를 평신도들이 집으로 모셔가고, 성찬례가 없는 날이면 스스로 영했음을 짐작게 하는 구절이 있다. 물론 현대 기준으로는 대경실색할 노릇.

장궤 영성체에 대한 시각은 나라와 본당마다 다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본적으로 손 영성체로 통일되었지만, 외국에서는 손으로 받는 사람도 있고 장궤를 하고 혀로 영성체를 모시는 사람도 있다. 외국에서는 장궤 영성체를 하겠다고 하면 "너님 전통신심이시네요"라고 하는데, 한국에서 장궤 영성체를 하겠다고 하면 본당 신부에게 장시간 설교를 들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장궤 영성체를 하면 베이사이드 이단이나 비슷한 분파, 그러니까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거부하거나 전례개혁을 거부하는 종파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해서 신부들이 예민하게 반응할뿐더러, 우리나라는 가톨릭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서양과 비교하면 트리엔트 전례에 애착을 지닌 사람이 매우 적다. 상황이 이러한데 장궤 영성체를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사제들이 의혹의 눈길을 던짐은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다. 트리엔트 전례를 거행하는 신부님을 찾아가는 게 가장 마음 편하겠지만, 일반 본당에서 이렇게 해 보고 싶다면 미사 전에 주임신부를 미리 만나서 "손 영성체를 폄하하거나 부정하지 않지만 그냥 옛 예법에 가깝게 무릎 꿇고 영성체를 하고 싶으니 양해해 달라"하고 미리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낫다. 물론 그 신부가 그 말을 곧이 들으라는 법도 없고, 베이사이드 이단의 물이 들었는데 자기 앞에서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각오는 하는 편이 좋다. 다만 명동성당에선 가끔 장궤 영성체하는 사람들을 볼 순 있다.


2.2. 벽제대

tridentine05.jpg
[JPG image (201.73 KB)]
제대가 지금처럼 벽에서 떨어진 식탁의 모습이 아니고 동쪽을 향하여 벽에 딱 붙어 있으며, 감실이 중앙에 놓이고 그 위에 십자고상 또는 성상[6]이 올려진다. 감실을 중심으로는 좌우에 3개씩 6개의 촛대가 놓이고 전례의 등급에 따라 켜지는 초가 달랐다. 1970년 전례개혁 당시에는 제대를 다시 성당의 중심이자 그리스도를 나타낸다는 상징성을 회복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제대 위에는 감실을 올려두지 못하게 막았다.

동쪽을 향해 있는 모습은 동방교회에서 유래하여 서방교회까지 유입된 관습으로, 기도할 때에 동쪽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일출을 자연이 보여주는 그리스도 부활의 표징으로 여겼기 때문에 동쪽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그리스도가 재림할 때에도 동쪽에서 온다는 전승이 생겼다. 원래 로마 전례에서는 제대가 벽에 붙어있지 않았으며, 오늘날 미사 때처럼 사제와 신자들이 제대를 사이에 두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형상이었다. 대교황 레오 1세는 동쪽을 바라보는 관습을 이교도의 유산이라고 타매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동방교회에서 동쪽을 바라보는 관습이 유입되자 제대가 벽에서 떨어져 있는 것은 아주 불편해졌다. 또한 사제와 신자들이 똑같이 동쪽을 바라보려면 제대가 동쪽 벽에 붙어 있어야 편했다. 본래 벽에서 떨어진 식탁의 모습이 주님의 성체성사, 즉 최후의 만찬을 재현할 수 있는 좀 더 올바른 모습이긴 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자연스럽게 제대가 동쪽 벽에 붙게 되었다. 성공회정교회에서는 아직도 제대를 동쪽에 두는 관습을 유지하는데, 현대의 대도시에서는 부지 문제로 성당을 설계할 때 제대를 동쪽에 두기 어려워서 성당 구조를 일부러 비트는 등 갖가지 건축적 잔재주를 부리기도 한다. 사실 전례개혁 때 의도한 바는 아니었으나, 현대 미사의 구조는 초기 로마 전례의 형태를 복구한 것이다.

제대 안에는 보통 성인의 성유물, 특히 유골 조각을 모셨다. 이 성유물은 현대식 제대에도 종종 넣는 경우가 있다. 제대가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에 성인의 유물이나 유해는 신자를 상징하며, 제대에 성유물을 봉안함은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와 교회의 지체들의 결합을 상징했다. 즉, 총체적으로 교회를 상징한다.

제대 위에는 경문카드라고 하여 미사 중 주요 경문들이 쓰여진 3장의 카드를 올려놨는데, 각각 중앙의 감실 앞, 오른쪽 끝의 서간편, 왼쪽의 복음편 끝에 놓였다. 중앙에 있는 경문카드에는 대영광송과 복음성경 낭독 전에 바치는 기도문(Munda cor meum),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 헌병헌작시 바치는 기도문, 면병포도주축성경, 거양성체/거양성혈 때 바치는 기도문이 적혀있다. 제대 오른편에 있는 경문카드에는 사제가 물과 포도주를 섞을 때 바치는 기도문과 성체를 만지는 손가락을 씻을 때 바치는 기도문이 적혀있다. 제대 왼편에 잇는 경문카드에는 마침복음경인 요한 복음서 1장 1절 ~ 14절까지의 내용이 적혀있다.

이러한 벽제대를 볼 수 있는 곳은 서울의 명동성당과 옛 용산신학교 부속성당, 중림동 약현성당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에 지어진 몇몇 오래된 성당에서 볼 수 있다. 다만 이 몇몇 성당 중에서는 멀쩡한 제대를 뜯어내고 현대식 제대로 교체한 성당도 있다.(…) 대표적으로 부산의 중앙성당. 약현성당도 1970년에 제대를 뜯어냈지만 복원했고 1999년 화재로 불타서 다시 복원했다.(...)

3. 순서


트리엔트 미사는 장엄미사와 창(唱)미사, 염경미사[7], 이렇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장엄미사는 집전 사제 외에 부제, 차부제를 거느리고 성찬 전례문과 기타 경문을 뺀 대부분의 기도문과 경문을 노래하듯이 하는 미사로 주로 대축일에 드려졌다. 창미사는 장엄미사에서 부제와 차부제가 빠진 형식으로 주일에 주로 봉헌되었고, 염경미사는 사제가 복사 한 명만 대동하고 모든 미사 경문을 말로 드리고 회중은 침묵으로 예절을 따라가는 형식이다. 대개 평일미사가 여기에 해당되었다.

아래는 대략적인 트리엔트 미사의 모습.


본격적인 준비는 제의실에서 이루어지는데 여기서 일단 사제는 전례복을 착용한다.


차례로 개두포 → 장백의 → 띠 → 수대 → 영대 → 제의 순으로 착용한다. 각 제의를 입을때 외우는 경문이 따로 따로 있는데, 다음과 같다.

사제는 머리 위에 개두포를 덮었다가 스쳐 내려가 목과 어깨 부분에서 멈추며 두 끈으로 몸통을 고정시키면서 아래의 경문을 외운다.

>Impone, Domine, capiti meo galeam salutis, ad expugnandos diabolicos incursus.
>(주여, 내 머리에 구원의 투구를 씌우사 마귀의 공격을 막게 하소서.)
 
그 다음 장백의를 입으면서 아래의 경문을 외운다.

>Dealba me, Domine, et munda cor meum; ut, in sanguine Agni dealbatus, gaudiis perfruar sempiternis.
>(주여, 나를 결백하게 씻으시어 내 마음을 조찰케 하시고 어린 양의 피로 결백하게 되어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띠를 허리 부분에 착용하면서 아래의 경문을 외운다.

>Praecinge me, Domine, cingulo puritatis, et extingue in lumbis meis humorem libidinis; ut maneat in me virtus continentiae et castitatis.
>(주여 조찰함의 띠로 나를 매어 주시고 내 안에 사욕을 없이 하시어 절제와 정결의 덕이 있게 하소서.)
 
사제는 수대의 십자가 부분에 친구를 한 후 다음과 같은 경문을 외며 왼쪽 손목에 수대를 착용한다.

>Merear, Domine, portare manipulum fletus et doloris; ut cum exsultatione recipiam mercedem laboris.
>(주여, 체읍과 통고를 씻어버리는 수대를 가지게 하사, 내 수고를 그친 후에 상급을 즐겨 받게 하소서.)
 
다음은 영대 순인데, 전통미사에서는 사제는 영대를 X자로 교차해서 착용하고 주교는 11자로 착용하게 되어있다. 이 때 다음과 같은 경문을 외우면서 영대를 두른 뒤 띠로 고정시킨다,

>Redde mihi, Domine, stolam immortalitatis, quam perdidi in praevaricatione primi parentis; et, quamvis indignus accedo ad tuum sacrum mysterium, merear tamen gaudium sempiternum.
>(주여, 주께 봉사하기에 합당치 못하오나 원죄의 타락으로 잃은 불사불멸의 영대를 내게 도로 주시어 주의 영원한 즐거움을 누리게 하소서.)
 
마지막은 제의를 착용 제의는 고딕식과 로마식이 있는데 로마식은 팔 부분이 없다. 동영상에 나오는 제의는 고딕식 제의. 착용할 때 바치는 경문은 다음과 같다.

>Domine, qui dixisti: Jugum meum suave est et onus meum leve: fac, ut istud portare sic valeam, quod consequar tuam gratiam. Amen.
>(주여, 주께서 말씀하시길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하셨으니 나로 하여금 주의 은총을 얻어 누리도록 이 미사를 잘 집전하게 하소서. 아멘.)


그리고 사제는 비레타를 쓰고 세팅한 성작세트를 들고 집전을 위해 제대로 나간다. 일단 평미사는 이렇고

장엄미사나 창미사는 성수예절이 진행되기때문에 사제는 제의를 입기전에 영대위에 깝빠를 입고 머리에 비레따를 쓴뒤 복사나 부제 차부제와 함께 입장한다 입장한후 사제는 제대앞에서 무릎절을 한뒤 Asperge me를 선창하면서 제대와 복사들에게 성수를 뿌리고 회중을 순회하면서 성수를 뿌린다. 이 때 바치는 노래는 시편 51편을 바탕으로 한다.





P. Asperges me
C. Domine, hyssopo, et mundabor: lavabis me, et super nivem dealbabor.
Ps. 50 Miserere mei, Deus, secundum magnam misericordiam tuam.

V. Gloria Patri, et Filio, et Spiritui Sancto,
R. Sicut erat in prin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aeculorum. Amen

Asperges me, Domine, hyssopo, et mundabor: lavabis me, et super nivem dealbabor.


주님 히솝의 채로 제게 뿌려주소서 저는 곧 깨끗하여지리이다 저를 씻어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지리다

하느님 자비하시니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애련함이 크시오니 저의 죄를 없이 하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신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주님 히솝의 채로 제게 뿌려주소서 저는 곧 깨끗하여지리이다 저를 씻어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지리다




부활시기의 성수예절 때는 Vidi Aquam이라는 성가를 부르는데, 이 성가는 가톨릭성가 67번 "성전 오른편에서"라는 성가의 가사는 이 시편을 번역한 것이다. Vidi Aquam은 부활성야에 집전사제가 성수예절을 할 때에도 부른다.

P. Vidi aquam
C. egredientum de templo, a latere dextro, alleluia: et omnes ad quos pervenit aqua ista salvifactci dunt, et dicent: Alleluia, alleluia. Ps. 117 Confitemini Domino, quoniam bonus; quoniam in seculum misericordia ejus.
V.Gloria Patri, et Filio, et Spiritui Sancto,
R. Sicut erat in prin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aeculorum. Amen

사제가 회중에게 성수를 뿌리고 제대로 돌아오면서 다시 제대에 무릎을 꿇으며 예를 표한뒤 일어서서 제대를 향해 아래의 기도를 바친다

P. Ostende nobis, Domine, misericordiam tuam.
S. Et salutare tuum da nobis
P. Domine, exaudi orationem meam.
S. Et clamor meus ad te veniat.
P. Dominus vobiscum.
S. Et cum spiritu tuo.
P. Exaudi nos, Domine, sanctae Pater, omnipotens aeterne Deus et mittere digneris sanctum Angelum tuum de caelis, qui custdiat, foveat, protegat, vistet, atque defendat omnes habitantes in hoc habitaculo. Per Christum Dominum nostrum.
S. Amen

사제:주여 네 인자하심을 저희에게 보이소서
회중:또한 구원을 베풀어주소서
사제:주여 우리 기도를 들으소서
회중:또한 당신께 부르짖는 소리가 사무쳐 지이다
사제: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회중:또한 사제와 함께
사제:기도합시다 거룩하신 주님 전능하신 아버지 영원하신 하느님 저희를 들으시고 하늘로부터 인자로이 거룩한 천사들을 보내주시어 이 집에 머무는 이들을 보호하시고 보존하시며 마음을 위로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회중:아멘



성수예절이 끝나면 사제는 복사의 도움을 받아 깝빠를 벋고 제의를 입은뒤 바로 성가대가 초입경(현재의 입당송)을 부른다. 초입경은 그날 그날마다 다르다.



성호를 그은 뒤, 사제는 제대에 올라가기 전 계단 아래에서 바치는 경문인 '층하경'을 바친다. 이때 층하경은 시편 43편(42)으로' 나 주의 제단 앞으로 나아가리다'라는 내용이다.


P. In nomine Patris, et Filii, et Spiritus Sancti.
S. Amen


P. Introibo ad altare Dei
S Ad Deum qui laetificat juventutem meam.
P. Judica me, Deus, et discerne causam meam de gente non sancta: ab homine iniquo et doloso erue me.
S. Quia tu es, Deus, fortitudo mea: quare me repulisti, et quare tristis incedo, dum affligit me inimicus?
P. Emitte lucem tuam et veritatem tuam: ipsa me deduxerunt et adduxerunt in montem sanctum tuum, et in tabernacula tua.
S. Et introibo ad altare Dei: ad Deum qui laetificat juventutem meam.
P. Confitebor tibi in cithara, Deus, Deus meus quare tristis es anima mea, et quare conturbas me?
S. Spera in Deo, quoniam adhuc confitebor illi: salutare vultus mei, et Deus meus.
P. Gloria Patri, et Filio, et Spiritui Sancto.
S. Sicut erat in princip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aeculorum. Amen
P. Introibo ad altare Dei.
S. Ad Deum qui laetificat juventutem meam.
P. Adjutorium nostrum in nomine Domini.
S. Qui fecit coelum et terram.


고백기도를 바칠 때는 지금처럼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가슴을 치지 않고 손가락 끝을 세워서 쿡쿡 찌르는데, 이는 스스로가 죄인임을 좀더 확실히 지각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또한 고백기도를 할 때 사제와 회중이 따로 따로 바쳤고. 회중의 고백기도문에는 라틴어로 '사제이신 당신(tibi Pater/te Pater)'이라는 구절이 있어 이 부분에서는 고개를 들어 사제를 바라보았다. 이는 현재의 미사에서 없어진 구절이다.

이후 사제는 제대에서 자비송, 대영광송을 차례대로 바친다.


지금과 달리 '주님/그리스도님 자비를 베푸소서'를 3번씩 반복한다. 자비송 악보는 주간이나 축일에 따라 불려지는 버전이 엄청나게 많다. 위 동영상은 그레고리안 제5선율에 따른 자비송으로 가장 일반적인 자비송 중 하나.


대영광송은 보통 미사 때 주례 신부가 라틴어로 선창하는 노래이다. 어떤 분은 이 부분을 보려고 미사를 안 빠진다는 분도 계신다카더라.

트리엔트 미사에서는 대영광송에서도 성호를 긋는다. 정확히는 대영광송 제일 마지막 구절인 '성령과 함께 아버지 하느님의 영광 안에 계시나이다' 부분에서 성호를 그었다.

성호를 그은 후 사제는 제대에 친구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인의 유해나 유물이 모셔져 있는 성석[8]에 친구한다. 이는 전례개혁 이후의 미사에서도 마찬가지이며, 기도문을 바꾸었을 뿐이다. 한국 천주교는 입을 맞추는 예식이 문화적으로 맞지 않는다 판단하여 머리 숙여 인사하는 것으로 바꾸었는데, 몇몇 나이 많이 드신 성직자 중에는 친구하는 예를 쉽사리 찾아볼 수 있다.

대영광송이 끝난 뒤 사제는 회중을 향해 'Dominus vobiscum(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라고 말하고 회중은 'Et cum spiritu tuo(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화답한다. 그 다음 사제는 'Oremus(기도합시다)'라고 말하고 본기도를 바치는데, 본기도도 그날 경본을 참조해야 한다. 이 때 교우들은 모두 무릎을 꿇는 장궤 자세를 취한다. 본기도가 끝나면 오른쪽 서간편에서 서간경을 낭독한다. 서간경이 낭독되면 성가대는 그날 경본에 나오는 층계경이나 알렐루야 연경 구경 부속가를 부르고, 복사는 미사경본을 들고 왼쪽 복음편으로 옮겨가며, 사제는 복음성경을 읽기 전에 마음과 입술을 깨끗이 해달라는 기도를 바친다. 사제가 복음성경을 낭독하기 전에 교우들은 모두 기립하고, 사제가 'Dominus vobiscum'이라 하면 'Et cum spiritu tuo'라고 화답한다.

그리고 사제는 'Sequentia sancti Evangelii secundum N.(성 아무개[9]에 의한 거룩한 복음의 연속입니다)'라고 말하고 회중들은 'Gloria tibi Domine(주님 영광 받으소서)'라고 화답한다. 현재의 미사에서는 '주님 영광 받으소서'에서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소성호를 긋지만, 전통미사에서는 사제가 복음서에 소성호를 그으면서 '성 아무개에 의한 복음'이라고 말한 뒤 자신의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소성호를 그을 때 회중들도 똑같이 성호를 긋는다. 복음성경 낭독이 끝나면 사제는 강론을 하고, 강론이 끝나면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바친다.

여기까지가 예비미사이고, 이제 성체성사가 거행되는 제헌미사가 시작된다. 제헌미사에서는 사제가 소리를 내는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신자들은 따로 공과집을 보면서 기도문을 바치거나 묵주기도를 드리는 경우도 있었다.

먼저 성가대가 제헌경을 바칠 때 사제는 성체포를 벗겨내고 헌병을 한다. 이어서 사제는 서간편으로 가서 복사에게 주수병을 받는데, 이 때 복사는 주수병에 친구를 하고 사제에게 드린다. 사제는 주수병에 십자성호를 긋고 물과 포도주를 섞은 뒤 제대에서 헌작한다. 헌병헌작이 마치면 사제는 복사의 도움을 받아 손을 씻는다. 이 모든 동작에는 기도문이 다 정해져 있지만 복사들만 들을 수 있을 뿐 신자들은 듣지 못는다.

4. 기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옛 전례 방식을 이용한 베이사이드 등의 이단들이 발생했기 때문에, 이 미사를 올리는 사제나 신자들은 약간 이상한 취급을 받았다. 이 이단들은 트리엔트 전례가 아니고서는 전례로서 효력이 없다고 주장해 파문을 일으켰다. 이런 상황에서 바티칸 공의회 이후 발표된 미사 전례를 완전히 정착시키고자 아예 트리엔트 전례를 금지시키기도 했다. 이후 새로운 전례가 정착했다 싶을 만큼 시간이 지나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교구장 또는 직속 장상의 허락과 이를 올리길 바라는 신자들이 있다면 트리엔트 미사를 올리는 것을 허락한다."는 교령을 내렸다. 그리고 2007년 7월 7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자의 교서 "교황들(SUMMORUM PONTIFICUM)"을 통해 성전(聖傳)에 의한 트리엔트 공의회 전례 양식의 전통 라틴 미사 성제를 특별 양식(Forma extraordinaria) 미사 성제로 선포하여 더이상 교구장 또는 장상의 허락 없이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함을 허락했다. 단 성삼일에는 현행 미사를 드리도록 했다.

5. 한국 현황

한국에서는 현재 성 비오 10세회전통 라틴 전례회 두 단체에서 트리엔트 미사를 정기적으로 봉헌하고 있다.

성 비오 10세회에서는 회에서 운영하는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모무염시태성당[10]과 전북 김제시에 위치한 제공소[11] 두 곳에서 트리엔트 미사를 정기적으로 봉헌하고 있다. 한국에 신부가 상주하지는 않고 필리핀에서 신부가 방문하는데, 성모무염시태성당에서는 한 달에 두 차례 김제공소에서는 한 달에 한 차례 신부가 방문하여 트리엔트 미사를 정기적으로 봉헌[12]하고 있다. 한 차례 방문할때 마다 짧게는 이틀에서 길게는 이레정도 머무르며 미사를 봉헌한다.

전통 라틴 전례회에서는 1달에 1번 회원들을 중심으로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트리엔트 미사를 서울에서만 하던 것을 담당 신부가 자신의 본당[13]에서도 올리기로 결정하여, 서울과 대구 2곳에서 트리엔트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하지만 담당 신부님이 포항으로 발령이 난 뒤 대구대교구 지역의 트리엔트 미사 봉헌은 불투명하게 되어버렸다. 2013년 현재는 군포시의 성 요한의 집에서 정기적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2007년까지만 해도 명동성당에서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특전미사에서 라틴어 새 미사로 봉헌했었는데, 신자들의 참석 저조와 기타 여러사항이 겹쳐 사라졌고 그 시간은 영어 미사로 대체되었다가, 다시 2013년부터 주요 미사곡만 라틴어 그레고리오 성가로 부르는 형태로 복구되었다.

이 항목을 잘 읽었으면 알겠지만 한국 사극의 미사 재연은 전부 틀렸다![14] 조선 후기의 미사는 공회의 전이기 때문에 당연히 트리엔트 미사여야 하지만, 미사 장면을 묘사하고 있는 대다수 사극은 우리가 알고 있는 바오로 미사에 해당한다.
----
  • [1] 이탈리아 북부에 있는 도시. 트리엔트(Trient)는 독일어 이름이고, 이탈리아어로는 Trento(트렌토), 라틴어로는 Tridentum(트리덴툼). 1918년까지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다가 이후 이탈리아의 영토가 되었다.
  • [2] 이 당시에 요구하던 수준의 작업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나 가능했다. 일단 학문적 성과가 축적된 수준이 달라서...
  • [3] 프란치스코 교황도 2014년 주님 세례 축일 미사에서 벽에 붙은 제대를 사용했다.
  • [4] 동방교회 전례에서 기도할 때 동쪽을 바라보게 하던 전통이 서방교회로 유립되면서 생긴 전통이다. 고대 로마 전례는 오히려 현행 미사처럼 제대를 사이로 사제와 신자들이 서로 마주보는 형태였으나, 기도할 때 동쪽을 바라보는 전통이 유입되자 아예 제대를 동쪽 벽에 붙이고 그 앞에서 미사를 드리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제가 회중을 등지는 자세를 취함은 구조상 어쩔 수 없었다. 이후, 반드시 동쪽을 향해야 한다는 전통이 쇠퇴했음에도, 제대를 벽에 붙여놓고 미사를 드리는 형태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현행 미사에 들어와서야, 비록 전례서에서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고 규정하지 않았는데도 초기 로마 미사의 형태처럼 제대를 벽에서 떼어놓고 사제와 신자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는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 [5] 입을 맞춘다는 뜻.
  • [6] 동유럽의 가톨릭 성당에는 이콘을 모신 곳도 종종 있다.
  • [7] 낭독미사라고도 한다.
  • [8] 대리석판 가운데 감실을 만들어 성유물을 봉안하고 대리석 덮개를 덮은 후 교구장 직인이 찍힌 종이 봉인을 바른다. 부산 중앙성당에 가면 볼 수 있다. 원래 제대는 교회의 머리인 그리스도를 상징했으며, 위에도 언급된 바 같이 성유물을 안치함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교회의 지체가 결합된, 총체적인 교회를 상징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제대에 친구하는 것이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에 인사한다는 의미보다 성유물에 인사한다는 의미로 바뀌었다. 이 때문에 전례개혁에서는 중세 이전 모습대로 머리인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에 인사하는 의미로 복구했다.
  • [9]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 중 한 명.
  • [10]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대로 55길 17, 5층(서초동 중추빌딩). 평범한 오피스텔 건물인 중추빌딩의 5층에 입주해 있다.
  • [11] 전북 김제시 금산면 수류7길, 97. 김제공소는 김제시에 사는 한 가톨릭 가족의 요청으로 2013년 9월 문을 열었다고 한다.
  • [12] 미사 시간표는 http://sspx.or.kr/bbs/board.php?tbl=schedule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 [13] 경산 소재인데 대구랑 어느 정도 가까운 거리이다.
  • [14] 다만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에서는 제대… 로 쓰는 상이 벽에 붙어있는 모습으로 나오기는 하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08 21:15:49
Processing time 0.1856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