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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거

last modified: 2015-04-11 20:31:36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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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1. 호랑이독일어
2.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독일군 대형전차
2.1. 개요
2.1.1. 개발
2.2. 스펙과 활약상
2.3. 호랑이를 잡아라!
2.4. 생산량에 대한 이야기
2.5. 운용상의 문제에 대한 말들
2.6. 전쟁이 끝나고
2.7. 티거피벨
2.8. 추축국 진영 군대의 티거
2.8.1. 헝가리군 티거
2.8.2. 일본군에 소속될 뻔한 티거
2.9. 파생형
2.9.1. 포르셰 티거 (Tiger(P))
2.9.2. 티거 2 (Tiger 2)
2.9.3. 야크트티거 (Jagdtiger)
2.9.4. 슈투름티거 (Sturmtiger)
2.9.5. 베르게티거
2.9.6. 잡종 티거(Hybrid tiger)
2.9.7. 그 외
2.10. 총평
2.11. 매체 속의 티거
3. 곰돌이 푸에 나오는 호랑이


1. 호랑이독일어

Tiger.

남부식 발음은 티게르.

2.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사용된 독일군 대형전차

제2차 세계대전기의 나치 독일군 기갑장비
장갑차 반궤도 장갑차 Sdkfz251 하노마크
장륜 장갑차 Sdkfz222, Sdkfz232, Sdkfz234 퓨마
전차 경전차 1호 전차, 2호 전차
중(中)전차 3호 전차, 4호 전차, 5호 전차 판터
중(重)전차 6호 전차 티거, 6호 전차 B형 티거 2
돌격포 3호 돌격포, 4호 돌격포, 4호 돌격전차 브룸베어, 슈투름티거, 돌격보병전차 33B
구축전차 마르더, 헷처, 4호 구축전차, 나스호른, 5호 구축전차 야크트판터, 페르디난트/엘레판트, 6호 구축전차 야크트티거
자주포 1호 자주포, 베스페, 2호 자주포, 그릴레, 훔멜, 게쉬츠바겐 티거
노획전차와 개조품 35(t), 38(t), 소뮤아 S-35, 샤르 B1 bis(GW-B2), T-34, 호치키스 H35 (GW-39H), FCM 36 (GW-FCM36)
프로토타입 경 트랙터, 기갑 자주포 4호(Sd.Kfz. 165/1), 판터 2, 8호 전차 마우스, E-100
페이퍼플랜 3/4호 전차, VK 1602 레오파르트, 7호 전차 뢰베, 9호 전차, 10호 전차, E 시리즈, 라테, 몬스터
그 외 골리아트, 보르크바르트 4호, 600mm 자주박격포 칼, (독일 기갑 병기/기타)

tg1.jpg
[JPG image (1.28 KB)]
tg2.jpg
[JPG image (1.28 KB)]
대전 당시의 다색사진.
영화 퓨리에 출연한 바 있는 영국 보빙턴 박물관의 131호차 티거.

<티거 제원>
전체길이 8.24m
차체길이 6.20m
전체너비 3.73m
전체높이 2.86m
주포높이 2.19m
전비중량 56.9t
탑승인원 5명
엔진 초기형 : 마이바흐-HL210 P45 수랭식 V형 12기통 가솔린엔진
중, 후기형 : 마이바흐-HL230 P45 수랭식 V형 12기통 가솔린엔진
엔진출력 - 회전수 700HP - 3000rpm
600HP - 2500rpm
배기량 HL210 : 21,000cc
HL230 : 23,000cc
연료적재량 534L
연료소비량 535L / 100Km (도로)
최고속력 45km/h(도로)
20km/h(야지)
항속거리 100km(도로)
60km(야지)
중량당 마력 12.3Ps/t
현가장치 토션 바
변속기 Olvar 401216
(전진8단 후진4단)
조향장치 // 구동륜 위치 메리트 마이바흐 // 전방
선회반경 7.00m
무한궤도 폭 // 매수 72.5cm // 좌,우 각 96매
접지길이 // 접지압력 3.51m // 1.04Kg/㎠
초호능력 2.30m
초월능력 79cm
등판능력 35도
도하능력 1.20m
주포조준장치 TZF 9b
포탑회전방식 수동 및 유압겸용
무장 36식 56구경장 8.8cm 전차포×1 (92발)
7.92mm 기관총 MG34×2 (4,200발)[1]
9mm 기관단총 MP40×1 (전차병 휴대용)
장갑 차체 전면 100mm / 66도
차체 측면 상부 80mm / 90도
차체 측면 하부 80mm / 90도
차체 후면 82mm / 82도
차체 상면 26mm / 0도
차체 바닥 26mm / 0도
포탑 방패 최대 110mm
포탑 전면 100mm / 90도
포탑 측면 80mm / 90도
포탑 후면 80mm / 90도
포탑 상면 26mm / 0도 ~ 9도[2]

2.1. 개요

전장에 나간 타이거는 마치 맹수처럼 상대를 잔인하게 학살하는 사냥꾼이었다.
- 영국 크롬웰 프로덕션, '2차대전사' '독일 전차의 완성, 타이거' 편

우리 전차병들은 티거 전차의 성능에 완벽히 만족했으며 우리 보병들도 마찬가지였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 전차를 가지고 동부전선과 서부전선의 힘겨운 방어전투에서 살아남았다. 전쟁에서 살아남아 평화를 누리는 티거 전차병 출신이라면 마땅히 이 명품 전차에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이다.
- 오토 카리우스, '진흙 속의 호랑이' 中

제2차 세계대전독일군이 개발/운용한 중(重)전차. 정식 명칭은 Panzerkampfwagen VI Ausführung H (6호 전차 H형) 이였다가 1943년 3월 Panzerkampfwagen VI Ausführung E (6호 전차 E형)으로 재명명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식 명칭보다는 역시 Tiger I[3] 그러니까 '티거' 라는 별칭으로 부른다. 어원은 당연히 1번 항목. 무기 역사상 별칭이 이토록 잘 어울리는 녀석도 드물다.

공돌이를 마구 갈아넣고 외계인을 고문해 만든 것이 아니냐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만큼 압도적인 성능을 보여주었던 전차. 워낙 강력한 포스를 보여준 덕분에 티거는 제2차 세계대전의 지상전 그 자체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관련분야에서 유명하고 인기도 많다. 오죽하면 무적전차의 신화라고 불릴까.

잡설이지만 국내매체에서는 이 전차 이름의 한글 표기를 놓고 좀 혼동이 있다. 일단 원어 발음은 티이거에 근접하지만 한글외래어 표기법장음 표기는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티거라고 표기하는 것이 옳긴 하다. 1980년대까지는 영어식 발음인 타이거로 많이 불리다가 1991년 등장한 호비스트에서는 '오리지널 독일어식 발음'이라면서 티이거라고 불렀다.(이건 왠지 일본어식 장음처리를 곧이곧대로 한글로 옮긴 티가 나는데 일본에서는 어째서인지 티게르라는 표현이 더 많다는 것을 보면 아니면 타이거라고 다 써 놓고 한 글자만 바꿔 편집했거나). '티이거' 표기는 호비스트에서 싸우고 뛰쳐나와 만든 사람들이 만든 책인 모델러2000에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2006년 호비스트에서는 표기법을 티거로 바꾸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모형 메이커인 아카데미과학에서는 2012년 현재까지도 여전히 자사의 해당 전차 모형 상품명에 타이거 표기를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타이거', '티이거', '티거' 3가지 표기가 난무하고 있다(사실 취미가 내부에서도 표기가 오락가락했다.).

형식번호상 6호 전차라곤 하지만 5호 전차인 판터보다도 앞서 개발되고 배치되었기에 대전 후기에 대세를 탄 경사장갑이 아니라 전통적인 대전 초기 독일군 전차의 특징인 수직방향 장갑을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티거를 보면 상자곽 혹은 꼭 책을 차곡차곡 쌓아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1942년 초반에 생산을 개시하여 1942년 9월 23일 레닌그라드 공방전에서 데뷔하게 된다. 하지만 첫 데뷔전을 치른 티거는 대부분이 소련군의 대전차포에 격파되거나 기계적 결함 때문에 가다가 주저앉아 버리는[4] 굴욕을 겪는다. 투입된 전장도 소련군이 이미 정조준하고 노리고 있는 좁은 곳인데다가 티거에게는 걸맞지 않은 늪지대나 연약지반이 많아서 이렇게 영 안좋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티거의 진가가 드러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942년 12월 20일, 튀니즈의 레조 디 칼라브리아 항구에 도착하여 북아프리카 전역에 투입된 티거를 장비한 1942년 5월에 창설된 501 중전차대대는 이미 북아프리카에서 추축군이 신나게 밀리는 상황에서 부대 자체도 티거를 완편 장비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5] 11월 8일에 알제리로 상륙한 미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였고 이후 3월 13일에 추가로 지원온 504중전차대대 1중대가 합류되면서 5월 17일까지 150여대의 미군 전차를 날려버리더니 카세린 전투에서 미1기갑사단을 격파하며 10대의 피해만 입는[6] 대활약을 펼쳤다. 거기다 티거의 불썽 사나운 데뷔전을 만들었던 502중전차대대는 1942년 말부터 계속된 레닌그라드를 해방시키려는 소련군의 공세를 막아내며 독일 중전차 대대 중에서도 특출난 활약으로 수백대의 소련군 전차를 날려버리며 이를 저지하는데 성공했다. 거기다 제3차 하르코프 공방전에선 중대 단위로 투입된 티거가 하르코프 북방에서 펼쳐진 소련군 기갑부대의 반격을 분쇄해 내며 티거의 위력을 톡톡히 보였고,[7] 여기서 티거는 설원에서의 기동전까지 수행해 내는 능력을 보였다. 한 예로 이 무렵 티거 2대가 T-34 수십여대와 교전하여 16대를 격파하자 나머지 소련 전차들이 후퇴하기 시작했지만 이들을 추격하여 18대를 추가로 격파했다.

그리고 전쟁 중반기 이후 각 전선의 독일군이 끝없이 패퇴하던 무렵에도 노련한 전차병의 경험과 맞물려 다대한 전과를 기록했다.

티거 전차 에이스 중 유명한 사람으로서는 무장친위대 소속 미하엘 비트만과 육군 소속 오토 카리우스가 있다. 오토 카리우스는 전후에는 티거약국을 운영하면서 노년기를 보내고 계셨다. 이 분은 아직 살아 계시다.생각보다 정정하시다. 2015년 1월 24일 별세하셨다...

두 사람과 승무원들은 각각 연합군 전차 113대, 150대씩을 자신의 티거 1대로 격파해냈다. 단, 비트만의 경우에는 그가 SS 소속이었기 때문에 현 독일 연방군에서는 전과기록이 말소되었다.

단 티거가 막강한 전차인 것은 맞지만 무적은 절대 아니다. 서부전선에서는 M4셔먼의 76mm HVAP 나 셔먼 파이어플라이의 17-pdr APDS 에도 장갑 방호력을 기대하기에는 무리있었고 동부전선으로 가면 SU-152,ISU-152 의 주포인 152mm ML-20S의 무지막지한 고폭탄의 위력때문에 장갑이 찢긴다! 티거의 전설은 어디까지나 경험많고 숙련된 병사들이 이룩한 성과라는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8]

2.1.1. 개발

티거 개발의 시초는 1935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935년 7월 쿠머스도르프 기갑훈련 종료 후 결과분석에서 15톤급 주력전차, 20톤급 지원용 중형전차, 30톤급 적 전선 돌파용 중전차의 개발요구가 제시되었는데 이중 15톤급 주력전차 계획안은 3호 전차, 20톤급 중형전차 계획안은 4호 전차, 그리고 마지막 30톤급 중전차 계획안은 티거의 개발 프로젝트가 된다.

이러한 기획안에 따라 30톤급 시제 중전차인 VK 30.01을 개발하였으나 고작 10-20톤급의 전차가 주력전차로 굴러다니던 개전 이전의 상황과는 달리, 타국의 신형 주력전차(셔먼, T-34)들 역시 30톤급으로 대폭 체급이 커진 덕분에 기존의 계획안대로는 쉽사리 상대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이러한 상황에서 고작 30톤급의 전차로는 적 방어선 돌파가 가능할 정도의 중장갑과 대화력을 실현하는게 곤란해졌으므로 VK30.01 개발안은 기각되고[9] 티거의 개발계획은 헨셸 사의 주도로 중량을 36톤으로 올린 VK36.01 개발계획으로 전환된다.[10]

VK 36.01은 당시 독일군이 원하던 전면 100mm, 측면 80mm 장갑에 8.8cm L/56 주포를 탑재한 시제전차였으나 36톤이라는 제한 안에서 중장갑과 대구경 포를 탑재하다 보니 필연적으로 내부 용적이 좁아지는 문제가 생겨 휴행탄수가 30발도 안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에 독일 병기국은 게라트 725 7.5cm 구경감소포[11]의 탑재를 고려했으나 7.5cm이라는 작은 구경 덕분에 탄의 작약량이 부족해지기에 고폭탄의 위력이 부족하다는 문제가 제기되었고 또한 당시 독일의 공업환경으로는 미국수준으로 대량의 전력을 들여서 충분한 텅스텐 가공을 하는 것도 어려운데다가 텅스텐 자원 자체의 양도 부족해서 게라트 725의 탑재는 취소, 전차 중량을 45톤까지 끌어올린 VK45.01 계획안으로 변경된다.

이 VK 45.01 계획안에 포르셰와 헨셸이 참여의사를 내비쳤고 포르셰의 모델(VK 45.01 (P))과 헨셸 사의 모델(VK 45.01 (H))이 테스트를 거친 끝에 최종적으로는 헨셸의 안이 채택되어[12] 우리가 아는 모습의 티거가 탄생하게 된다.

사실 VK 45.01의 개발도 순탄치많은 않았는데 주포 탑재 문제가 이유였다. 대공포를 전차포로 전용한 8.8cm 주포는 당시로서는 독일군이 보유한 대전차 화기 중에서도 손꼽히는 관통력을 자랑했지만 독일군이 원하는 수준은 그 이상이었기 때문이다. 마침 라인메탈 사에서는 7.5cm 장포신 전차포를 개발하는 중이었고 독일군 상층부는 이 주포에 눈을 돌려 티거에 탑재할 계획을 세운다.

이러한 선택엔 이유가 있었는데 일단 개발 당시 8.8cm 56구경장 포와 7.5cm 70구경장 포는 관통력 차이가 거의 없었던데다 7.5cm은 구경이 작기 때문에 더 많은 탄약을 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선행양산분에만 8.8cm 주포를 탑재하고 이후 본격적인 양산형에는 새로이 설계한 라인메탈 포탑과 7.5cm 주포를 탑재하여 출고하기로 계획하기에 이르나 8.8cm 주포용의 신형 철갑탄이 개발되어 상기한 관통력 문제가 해결됨으로써 포/포탑 교체안은 없었던 것이 된다.[13] 이러한 우여곡절을 겪고 나서야 VK45.01은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가게 되었다.

2.2. 스펙과 활약상


티거는 경사장갑을 채용하지 않은 사각 형태의 전통적인 독일 전차 디자인을 충실히 따랐지만 경사장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방어력이 훌륭한 수준이라. 연합군의 교전기록을 보면 지근거리에서 발사한 75mm 철갑탄이 수백m씩 하늘로 튕겨져나가는 목격담이 아주 많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75mm가 대수냐 싶겠지만 50mm급 전차포도 전선에서 주력으로 뛰었던 시절인 것을 감안하면 75mm도 꽤나 물건이다.[14]

  • 1943년 2월 11일, 로스토프 전선에서 503 중전차대대의 사벨 소위가 탄 티거는 76.2mm 포탄 11발, 45~57mm 대전차포14발, 14.5mm 대전차총탄 227발, 대전차지뢰 3발...을 다 맞고도 적을 유린한 후 60km 떨어진 아군 부대로 무사히 자기 힘으로 돌아갔다(…). 즉 "괜찮아! 튕겨냈다!" 전설의 원조인 셈.

  • 1943년 1월 10일, 503 중전차 대대의 121호차와 141호차는 각각 적 전차포와 대전차포 250발 이상 맞고도 버틴 사례가 있다.

  • 1943년 7월 12일, 시칠리아에 배치된 504 중전차대대 2중대의 티거 2대는 적탄 100발 이상씩 맞고도 포위망을 뚫고 탈출했으나 연료가 없어 자폭해야 했다.

이 외에도 더 많은 활약상이 있으나 그걸 다 적으면 문서가 너무 길어지므로 쓰지 않겠다.

더구나 생존성 역시 상당해서 전투불능이 되어도 일단 회수만 된다면 정비 후 재투입이 가능한 경우도 허다했다. 이와 같은 생존성의 확보는 티거는 그 거대한 덩치 때문에 기계적으로 무리가 가는 곳이 많다는 점이 감안되어 대대 단위에 상당히 우수한 정비반이 항상 편성돼 있었던 탓도 크며 또한 중전차의 가치 때문에라도 부품 생산 및 보급 우선순위가 높았던 탓이다.[15]


화력 또한 상급으로 당시 최강의 대전차포로 칭송받던 8.8cm(56구경장)포까지 장착하고 있다. 8.8cm는 원래는 대공포로 쓰이던 물건인데 독일군은 이걸로 온갖 걸 다 잡았다. 직격탄 한 방이면 M4 셔먼 따위야 고철덩이로 만드는 것쯤 식은 죽 먹기였다. 심지어 셔먼이 3,000m 대의 거리에서도 관통당하는 실적을 올렸으니...[16]

8.8cm라는 대구경으로 인해 고폭탄 위력도 위엄이 넘쳐주셔서 어지간한 강화 토치카도 일격에 격파 가능함은 물론 300m 내외의 T-34를 고폭탄으로 때려잡는 것도 가능했다. 고폭탄을 지연신관으로 세팅하고 T-34의 측면장갑에 사격을 가하면 고폭탄이 측면장갑을 관통(!!)하고 차내에서 기폭 T-34를 그야말로 완전분해시키는게 가능했던 것. [17]


1943년 4월 21일에 영국군은 제펠자파에서 거의 손상되지 않은 501 중전차대대의 3소대 소속의 131호[18] 티거를 노획한다.[19] 이렇게 노획한 티거를 본토로 가져와 테스트를 해본 영국의 평가도 상당히 좋았다. 정지사격 명중률도 대단하지만 이동간 사격의 명중률이 대단하였기 때문에 영국군 관계자들은 이동간 사격을 실전에서 사용가능한 수준이라는 점에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덕분에 티거를 다룬 영국산 다큐멘터리에서는 티거의 이동간 사격능력에 대한 칭찬이 빠지지 않는다. 다만 이는 평지에서나 가능한 소리이며 험지에서는 스테빌라이저가 장착되지 않은 전차는 아무리 좋은 포를 장착했다고 해도 명중률은 0에 수렴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아이젠하워 원수는 아예 대놓고 "독일군 전차, 특히 티거 시리즈의 손실은 대부분 항공공격 혹은 독일 전차병들이 직접 파괴시킨 경우에 한한다. 우리의 전차는 티거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연합군 최고 사령관까지 이런 평가를 했으니…….

가격 대 성능비로 보자면 티거는 대당 30만 라이히스마르크로 4호 전차(12만 라이히스마르크)에 비하면 대략 세 배 판터(15만 라이히스마르크)에 비해 2배에 조금 못 미치는 가격이다. 그러나 티거가 1943년 한 해동안 때려잡은 적 전차 및 자주포는 약 5천여 대 같은 기간 소련군이 잃은 전차 및 자주포는 총 2만 2천 대로 티거가 독일군 전차에서 차지하는 비율(5% 이하)을 생각하면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가격 대비 성능 또한 훌륭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한가지 유의할 것은 이 티거의 가격은 평균가라는 점이다. 티거 극초기형은 80만 라이히스마르크에 달했는데 소량생산[20]과 노동자 숙련도 부족 등이 원인이었다. 이후 생산량이 늘고 노동자들이 숙련된 중 후기형까지 합쳐지면서 평균가가 하락하였다. 당대 독일의 야금 기술과 차량 기술의 정점인 티거나 판터가 싼 이유는 당시 독일은 전시준비를 위해 1930년대 후반부터 철저한 배급제를 유지를 했고 본국이나 동맹국 국민에게 강제적인 노동을 시킨 덕분에 생산비에서 임금의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티거 운용 부대의 전체 교환비
Unit Losses Kills Kill/Loss Ratio
schwere Panzer-Abteilung 501 (424) 120 450 3.75
schwere Panzer-Abteilung 502 (511) 107 1,400 13.08
schwere Panzer-Abteilung 503 (Feldherrnhalle) 252 1,700 6.75
schwere Panzer-Abteilung 504 109 250 2.29
schwere Panzer-Abteilung 505 126 900 7.14
schwere Panzer-Abteilung 506 179 400 2.23
schwere Panzer-Abteilung 507 104 600 5.77
schwere Panzer-Abteilung 508 78 100 1.28
schwere Panzer-Abteilung 509 120 500 4.17
schwere Panzer-Abteilung 510 65 200 3.08
13./Panzer-Regiment Grossdeutschland 6 100 16.67
Ⅲ./Panzer-Regiment Grossdeutschland 98 500 5.10
13./SS-Panzerregiment 1 42 400 9.52
8./SS-Panzerregiment 2 31 250 8.06
9./SS-Panzerregiment 3 56 500 8.93
schwere SS-Panzer-Abteilung 101 (501) 107 500 4.67
schwere SS-Panzer-Abteilung 102 (502) 76 600 7.89
schwere SS-Panzer-Abteilung 103 (503) 39 500 12.82
Total 1,715 9,850 5.74
이 표에서 제시하고 있는 티거의 손실(Losses)은 연합군 전차 뿐만 아니라 항공기 폭격, 야포 등에 의한 다른 전투손실을 비롯해 유기, 승무원에 의한 자폭까지 포함한 티거 총손실이다. 전차 대 전차의 순수한 교환비는 앞서 말했듯 1:10을 넘는다. 다만 전과가 꽤나 과장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그리 믿을만한 것은 되지 못한다.[21][22]

당시로서는 선진적인 유압식 조향장치, 반자동 트랜스미션 그리고 효율적인 토션바 서스펜션의 도입으로 56톤 덩치에 비해 사기적으로 경쾌한 조작성능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티거의 기동성은 동시대의 타 전차와 비교해서 떨어지지 않았다. 다만 그 뒷감당을 해야하는 정비병들이 조종수와 차장을 때려죽이고 싶어질 정도가 되는 게 문제였을 뿐(…).
참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4호 전차(28톤)보다 오히려 더 기동성이 좋은 면도 많았고 처음 T-34와 동계전투에서 교전한 전차병들은 심지어 T-34보다도 기동성이 좋다고 느꼈을 정도다. 얼마 안 되는 1942년 동계전투 티거 운용 경험자 거의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느낀 탓에 이런 느낌이 반영된 보고서가 공식적으로 상부에 올라갔다고 한다.

사실 티거의 최고속도는 이론상 45km/h로 사실 스펙상의 속도는 T-34에 별로 안 꿀린다. 야지 기동성에서도 무리해서 굴리면 비슷한 속도를 낼 수도 있었다. 게다가 야지 기동성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수준, 즉 20km/h 정도였다. 다만 트랜스미션 및 종감속기에 가해지는 부하의 강도는 전차가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큰 편이었고 그런 점에서 이론상으로는 T-34보다 티거의 야지 기동시 부담이 더 큰 게 정상이었다. KV라면 티거보다 더 사정이 나쁘기 십상이고... 그런데 현실은 부품의 품질유지 및 설계상 배려 문제,그리고 승무원들의 숙련도 때문에라도 티거가 T-34보다도 나은 편이었다. 더군다나 전차전은 카 레이싱이 아닌지라 단순히 최고속도나 중량대비 출력이 전부가 아니다. 광폭의 궤도로 회전반경이 적었고 당시의 자동차도 일부만 적용된 유압식 파워핸들을 갖추는 등 조향장치가 훨씬 고급이었으며 전/후진 기어도 더 다양했다. T-34의 조향능력이 어찌나 한심했는지 독일군 사이에선 "오리 궁뎅이(…)"라고 불릴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부분. 하지만 흔히들 속도=기동성으로 오해하다 보니 많은 매체에서는 중장보병같은 전차라고 소개하곤 한다.

심지어 오토 카리우스는 그의 회고록에서 전차의 화력과 방호력, 기동성의 이상적인 조합은 티거에서 현실화되었다고 기록했다. 굳이 티거에서 불만족스러운 점을 찾았다면 구식 큐폴라(후기형에서는 개선됨)과 중량때문에 교량과 연약지반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 정도다.[23] 사실 카리우스는 티거를 타기 이전까지 대전차 소총에도 숭숭 뚫리는 38(t)에서 생사를 넘나들었으니 티거에 감탄하는 거야 자연스러운 일이겠지만 그래도 전설의 전차 에이스의 평이다. 게다가 일단 그는 38(t)를 탔고 티거도 탔고 야크트티거도 탔고 레오파르트1도 탄 후 '티거보다 승무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라고 평했다. 커다란 크기와 사각 상자형의 구조로 내부 공간이 넉넉했던 티거에 비하면 좁아터진 현대 전차의 내부가 맘에 들지 않았던듯.[24]
...사실 무른 땅이나 다리를 건너는데 조심해야 된다는 것도 가볍게 볼 문제는 아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 그게 바로 연료 소모량이다. 독일이 잘 나갈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전황이 기울어지면서... 하 생략.

티거는 독일의 대 기갑전 교리에 부합하는 우수한 전차였고 전쟁 내내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적은 생산대수와 대전후반 전략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낼 만큼 생산할 능력이 없었던 독일의 사정상 성과는 제한적 또는 지역적 전술 우위가 대다수였다.#

2.3. 호랑이를 잡아라!

미군이 티거와 싸우고 싶다면 보병, 포병, 전차, 항공까지 총망라된 제병연합작전이 필요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면 살았든 죽었든 영웅이 대량으로 나오든가. 그나마 76mm 탑재형 셔먼이나 파이어플라이는 티거를 원거리에서 잡을 능력이 있었지만...[25] 전자가 대량으로 나올 때쯤에는 이미 독일군 장갑 부대 자체가 거의 씨가 말랐고[26] 여전히 전반적인 공수에서 밀렸으며 후자는 탄종에 상관없이 관통력은 매우 뛰어났지만 셔먼에서 나아진게 없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방어력과 17 파운더 대전차포 자체의 고질적인 문제로 인해 확실히 명중 할거라고 자신하며 만약 재수 없서 빗나가더라도 안전하게 튈수 있는 미묘한 거리까지 끌어들여서 쏘는 쪽이 선호 되었다고 한다. APDS던 APCBC던 맞추는게 문제지 명중만 하면 관통은 문제가 아니니까... 가끔 17파운더의 APDS 탄의 막장 명중률과 크고 아름다운 포구 섬광으로 인한 탄착 오차 수정의 난해함을 이유로 들어 '17파운더 대전차포는 티거에게 별 위협이 아니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원거리 명중률이 어쩌니 해도 파이어플라이의 17파운더 포에 맞기만 하면 티거도 고철 신세를 면할 수 없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27] 티거 에이스로 유명한 미하일 비트만 조차도 최후의 순간엔 파이어플라이에게 격파당했다는게 일반적인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니까. 다만 파이어플라이같은 맹수 사냥꾼의 출현 자체가 보통 전차로는 티거를 상대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연합군 전차병들에겐 공포의 존재였다는 말도 틀린 말은 아닌듯.

덤으로 미군은 성능이 향상된 M26 퍼싱 전차를 들고 오긴 했지만 개발은 한참전에 됐어도 투입을 반대하는 똥별들 때문에 전쟁이 끝날 무렵에나 배치되는 바람에 실전을 많이는 치르지 못했다. 그래서 동급의 90mm 전차포를 탑재한 M36 잭슨이 독일 전차를 전담해야 했으나 이 녀석은 그나마 독일군의 괴수 전차에 먹히는 전차포를 가진 탓에 판터등 다른 독일군 전차도 상대해야 하는데다가 오픈탑 경장갑 포탑을 가진 대전차 자주포라 정면에서 티거와 격돌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선제공격당해서 박살나거나 서로 동시에 쏘고 양패구상 당하는 경우가 흔했다. 영국은 센추리온을 준비했지만 개발이 늦어져 2차대전에 투입하지는 못했고 결국 남은 건 파이어플라이 뿐. 1943년부터 1945년까지 2,100~2,200대 정도가 파이어플라이로 개조되었고. 1945년 5월 경에 남아있는 파이어플라이는 1,350대 정도였다. 그래도 퍼싱의 경우 늦게 투입된 것에 비해 교전은 자주 일어난 편이라서 티거와 정면으로 격돌해 격파한 사례가 있다.


소련군의 경우 기갑전의 주력인 T-34의 주포를 85mm포로 업그레이드하는 한편, IS-2 같은 중전차와 SU-100, ISU-152, SU-152같은 대구경 자주포들을 운용해 티거에 대항했다. 특히 SU-152나 ISU-152 같은 경우 선회 포탑이 없어 일반적인 전차처럼 전차전을 벌이기는 무리지만 대구경 화포의 무식한 화력으로 명중 시키기만 하면 일격에 장갑을 찢어발기는 위력으로 '맹수 사냥꾼'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사랑 받았다고...

2.4. 생산량에 대한 이야기

단 한 가지 형식만 사소한 개량을 거쳐가며 생산된 티거의 총 생산대수는 약 1,350대로서 중(重)전차임을 감안해도 연합군의 동급 차량 생산에 비해 부족한 편이었다. 모든 차종의 전차 생산량을 합계할 경우 독일이 5만, 소련이 7~8만이다. 그런데 중전차만은 독일이 2천뿐인데 비해 소련은 1만을 넘는다. 소련이 중전차를 독일보다 2년 정도 먼저 생산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감안해도 확실히 생산량 격차가 특히 큰 편이다. 하지만 티거가 배치되던 당시에는 적이라곤 소련밖에 없는데다 당시 소련군은 전차고 뭐고 공장도 못돌릴 정도로 패색이 짙었다. 그리고 양 군 편제를 고려해 보면 독일군은 GD사단이나 무장SS의 극소수 정예를 제외하면 중전차를 독립 전차대대에 집중 배치한 반면 소련군은 1941년도 편제상 KV중전차를 전차사단 당 63대를 보유하게 되어 있었으며 이들이 해체되고 전차부대가 여단 단위로 재편되는 와중에도 편제상 중전차의 비중이 상당했다. 따라서 애초에 요구하는 수요가 다른 만큼 단순히 생산 대수로 따질 문제는 아니다.

더군다나 전쟁에 쓸 장비의 대량생산은 그 장비의 생산성 자체보다는 오히려 해당 국가의 중공업규모와 자원, 생산 설비 및 노동력의 수급과 배분이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나머지는 사실상 별 의미가 없다. 80만 라이히스마르크의 생산가는 그렇다 치더라도(판터는 15만 라이히스마르크, 4호 전차는 12만 라이히스마르크), 티거는 30만 인시에 달하는 노동력과 엄청난 양의 고급 자원을 소모했고 생산 후의 실제 작전에서도 많은 연료를 지속적으로 소모했으며 이는 나치 독일이 쉽게 감당할 것이 못 됐다. 돈만 생각한다면 티거만 찍어내도 문제가 없었겠지만 티거는 노동력과 자원의 소모가 엄청난 실로 고급 차량이었고 독일의 공업생산력은 애초부터 열세였는데다 자국이 전쟁터가 되면서 그마저도 엉망이 되어 제대로 생산되지 못한 것이다. 전투 차원에선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했던 티거가 제대로 생산되지 못해 전략 차원의 불리함을 뒤집지 못한 건 결국 나치 독일의 잘못된 정치와 전략의 문제라 할 수 있다.

특히 독일의 산업능력은 다른 상대국, 특히 미국에 비하면 매우 열세했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은 '원정'이었지만 독일은 홈그라운드에서 흠씬 두들겨 맞으며 전쟁중이였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더 열세해졌으면 열세해졌지 상황이 우세해질리는 만무했다. 게다가 독일 본토의 공장을 빼면 점령지 공장들은 거의 반쯤 작살 난 상태로 공장을 돌리는 상태. 더구나 상호간의 협력이 비교적 원활했고 다들 한가락 하는 강대국들이 뭉친 연합국과는 달리 독일의 동맹국들은 전부 하나같이 잉여(…)거나 나름 열심히 싸워도 세력에 한계가 있는 중소국가라 도움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자기네 사정도 안습인데 형식상으로나마 지원을 해줘야 했다. 당장 독일이 아프리카에 발을 들여놓은 건 원래 괜히 사자의 콧털을 건드렸다가 엉덩이에 불이 난 이탈리아를 도와주려던 거였다. 어떤 사막의 여우 아저씨가 "이곳에서 방어전벌였다간 사기만 깍이니까 한번에 몰아내자"라며 닥돌을 해서 일이 커진 거였지... 아니 그 이전에 롬멜있는데까지 진격한 영국군의 탓도 있고 이탈리아 군대가 애초에 잘 했으면 일이 그렇게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병크는 일본의 대미 개전선언. 일본만 아니었더라도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할 일이 없었다[29]는 점과 미국만 없었더라도 독일이 그렇게 쭉쭉 밀리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건 뭐 동맹이라는 놈들이 동맹인지 적인지 분간이 안 갈 지경이다.

또한 당시 독일은 해군에도 일반적인 인식보다 굉장히 많은 자원을 투자했다. 당장 영국을 말라죽여야 했기때문에 유보트만 하더라도 1000 척 이상 건조했는데 이중 거의 70%를 차지하는 유보트 타입 VII 생산에 쓴 돈만 하더라도 티거 5천 대의 가격과 비슷하며 최신 기술을 투입한 XXI라면 이거 하나 뽑는데 드는 돈이 티거 10대 값을 우습게 넘는다. 그런데 이것 역시 100척 이상 건조했다. 더구나 어뢰 한 발당 가격은 5만~ 2만 5천 라이히스마르크였는데 판터 한 대가 얼추 15만 라이히스마르크 수준임을 생각해보면 해군에 투입한 자원은 절대 적은 수준이 아니다.

결국 티거의 생산량이 적은 원인은 그저 비싸고 복잡한 사치품이어서가 아니라 애초에 열세한 생산 역량과 그런 상황에서 전 지구적 소모전을 자초한데다 그나마 있는 여력도 효과적으로 쓰지 못한 나치 독일의 정치력 문제다. 당장 티거보다 훨씬 저렴한 4호 전차는 파생형을 모두 합쳐도 1만대를 겨우 넘기는 수준이다.

어디까지나 만약의 이야기지만 만약 미국이 티거의 설계도를 가지고 티거를 뽑아냈다면 티거가 셔먼 찍혀나오듯이 찍혀나오는 광경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장 미국과 소련이 셔먼과 T-34생산을 위해서 십여 곳이 넘는 거대한 공장을 가동한 것과는 달리 독일은 6천량 남짓한 판터 생산을 위해 3개 공장을 가동했고 티거에 이르면 단 1개 공장만 가동했다. 만약 티거 생산공장이 3개였다면 티거의 총생산수는 최소한 4천대에 이를 것이다. 거기에다 독일의 전쟁 초창기에 많이 노획된 군수품 파생형 군수품과 그로인해 과도할정도로 많은 유지를 위한 품목과 탄종도 심각할정도로 생산에 낭비와 큰 악영향을 미쳤던 것까지 감안하면 답이 나온다. 따라서 미국이 독일보다 공업력이 훨씬 우세했기에 셔먼이 그렇게 찍혀나온 것 뿐이지 딱히 셔먼이나 T-34가 티거보다 생산성이 좋아서 많이 찍혀나온게 아니라는 말. 물론 체급이 다르니 자원이 좀 더 들기야 했겠지만...

물론 소련은 독소전쟁 당시 주요 공업지대였던 우크라이나 돈바츠 지역 같은 서부공업지역을 잃고도 T-34를 9만여대를 찍어냈지만 주요 생산지역 및 곡창지대를 잃고도 이런 대량생산이 가능했던 것은 미국이 랜드리스를 통하여 피복,식량,트럭 및 전투화 등 각종 일상용품 및 소모물자를 지원해준 덕분에 남은 산업역량을 전투장비 생산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는 것이 근본적인 이유이다. 아무리 T-34가 설계상 생산성이 좋다고 해도 수만대를 뽑아낼려면 수백만톤의 강철 및 각종 부수기재 등 어마어마한 물자 및 노동력이 투입되는 것은 불가피하며 이는 산업역량이 안정된 국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30]

한가지, 생산량에 대한 비판은 모든 결과를 지켜본 후대인의 관점에서 이뤄지는데 이와 관련하여 나치 수뇌부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볼 필요도 있다. 독소전쟁이 장기화 되면서 나치 수뇌부가 아무리 암덩어리라 할지라도 의도치 못한 소모전에 빠져 누적되는 인명손실 통계를 보며 '이대로가면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문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인적자원이 고갈되어가던 독일이 똑같이 "양이 곧 질이다"라며 양산병기를 찍어내서 전선에 축차투입 하는 일은 해가 지지않는 식민지의 나라 영국, 공산체제를 이용해 요술처럼 노동력을 부리던 소련, 세계최강 공업국 미국을 상대로 애시당초 독일이 시도할 수 없는 일이었다. 바꿔말하면, 미국처럼 셔먼을 마구 찍어낼수도 없었지만, 있다고 치더라도 만들 자원도 없었고, 만들었다 치더라도 소련처럼 그 승무원들을 일회용품으로 운용할 수도 없었다는 말이다. 따라서 나치 수뇌부가 다소 비싸고 숫자가 부족하더라도 고성능의 병기를 운용한 것은 독일이 처한 현실에선 그들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31]

2.5. 운용상의 문제에 대한 말들

티거의 경우 운용상 난점에 대한 말이 많고 가동률 자체가 낮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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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데 이런 자료를 보면 아예 여타 독일 전차들보다 티거의 가동률이 높을 때까지 있을 정도로 세간의 인식과는 다른 결과를 보여준다.
즉 총 차량 숫자 대비 운용가능 차량 숫자를 따져보면 무난한 수준. 전시 가동율이라는 통계가 갖는 허상 때문에 그런 경향이 더욱 강하게 퍼졌는데 사실 티거의 가동율이 낮다고 까이는 시기를 보면 다른 전차들의 가동율은 훨씬 낮고 이중 대부분은 애초에 정원조차 채우지 못한 상태인 탓이 크다. 아예 대파돼서 회수, 공장에 들어간 장기수리 차량도 대대/연대 보유 차량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다.

어째서 이런 결과가 되었는가 하니 티거는 56톤이라는 현대의 주력 전차급 무게를 가지고 있었지만 수냉 V형 12기통 마이바흐 HL210(650)마력을 장착하면서 톤당 마력 비율은 4호전차보다 더 나은 수준이었고 배기량을 늘린 수냉 V형 12기통 마이바흐 HL230(700마력)으로 바꿔 장착하면서 톤당 마력은 4호전차를 완전히 상회할 수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티거는 무거웠으나 외려 접지압 면에선 M4 셔먼보다도 수치가 낮았다. 즉 무게는 무거우나 엔진과 차체에 걸리는 하중은 충분히 커버 가능하고 남는 수준이었던 것.

거기다 티거는 제작 당시 트랜스미션부터 엔진까지 여러모로 품질 면에서 공을 들여서 만들어졌고 이는 험한 운용 상황에서도 티거가 견뎌나갈 수 있게 해주었다.

물론 티거가 운용하기 쉬운 전차인 건 결코 아니었다. 티거의 경우 필수 정비가 상당히 어려웠다. 기계적으로만 복잡한 게 아니라 물리적으로 힘들었다.

오버랩되어 있는 전륜의 경우에는 하나의 교체를 위해 최대 9장까지 제거 해야되는 경우도 빈번했으며 50톤이라는 무게를 받칠 잭과 크레인이 흔치 않은 관계로(혹은 동부전선에 많았던 진흙탕 지형의 경우 잭과 크레인이 있더라도) 차체 밑으로 땅을 파고 내려가서(…) 정비를 해야 하며 트랜스미션 점검만 하려고 해도 포탑을 들어내고 트랜스미션을 통째로 꺼내야 하는 등 중장비 없이는 정비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시 정비병들의 원성이 자자했다고. 게다가 티거는 점점 악화되어가는 전황 속에서 소방대로 끊임없이 여기저기에 불끄러 다니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다른 전차들에 비해서 소수가 혹사당하는 와중에 유지/보수/점검에 할애할 시간이 그만큼 부족했다는 이야기다. 한쪽으로 불끄러가면 다른 쪽에서도 T-34나 M4 셔먼들이 꾸역꾸역 몰려오는 상황.

거기다 50톤이라는 중량 덕분에 엔진이나 현가장치에 문제가 생겨서 노상에 퍼진 티거를 수리를 위해 견인하는 것도 심각한 골칫덩어리였는데 급박한 전선에선 50톤이나 되는 물체를 견인할만한 수단이 마땅찮았던 것. 같은 티거로 견인하려 들면 견인하던 티거도 같이 퍼질(…) 확률이 높았기에 티거로 티거를 견인하는 것은 엄격하게 금지했다. 운용 교범상에는 정비대 표준장비인 18톤 트럭 3대를 이어서 견인토록 했으며 후기에는 르게판터 등의 중전차 회수차량으로 견인토록 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 18톤 트럭 숫자도 적은데다 방어력의 문제로 전선 가까이까지 끌고 오기는 좀 골룸했고 베르게판터는 수가 적은지라 그냥 다른 티거로 견인하는 사진이 많다. 빌레르 보카쥬 전투 직후 231호차를 다른 티거로 견인하는 유명한 사진도 있고... 동부전선 한정으로 전투시 파손된 티거의 포탑을 떼어 견인차량으로 사용한 베르게 티거도 있었으나 페르디난트/엘레판트 운용대대의 포르셰 타입 티거를 개조한 베르게 티거 외에는 전부 현지 개조품으로 육군에서는 이를 엄격히 금지했다. 전쟁 말기가 되면 마땅히 견인할 수단과 시간이 없어 고장난 티거는 바로 방치/유기되기 일쑤였다.[32]

또한 큰 포를 탑재하고 공간성을 위해서 포탑을 크게 만들다보니 포탑 정면과 자체 사이의 틈이 크고 외부로 포탑링이 상당히 노출되어 있다는 약점이 있었다.[33] 그래서 엘리트급 승무원이 탑승한 셔먼의 경우에는 티거의 포탑링에 포탄을 날려서 포탑 선회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험지주파를 위해 넓게 설계한 무한궤도에 포탄을 날려서 기동불능에 빠지게 만들어서 티거를 전투불능으로 만드는 일을 가뭄에 콩나듯이 해내기도 하였다. 당연히 이건 티거의 정확한 포격을 숙련된 조종기술로 개나리 스텝으로 피하면서 근거리까지 접근해서 정확한 사격을 날려야 가능하므로 통상적인 전투에서는 거의 당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안그래도 숫적 열세 때문에 장거리전을 치루더라도 곧 근거리 접전이 벌어지는 독일의 전차전 특성상 티거가 100% 무시하고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독일은 티거 생산 과정에서 철저하게 품질 관리를 함과 더불어 중전차 대대 정비대에 최대한의 지원을 해서 운용상의 난점들을 가지고도 티거가 버틸 수 있게 했고 그것이 좋은 가동률의 이유가 되었다. 사실 4호 전차나 판터라면 연대까지 가야 있는 정비중대가 티거는 대대급부터 붙고 훨씬 높은 우선순위로 정비부품 및 기타 소요 물자를 지급받을 수 있으니 가동율이 올라가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2.6. 전쟁이 끝나고

전후에는 판터4호 전차처럼 주변국/신생국에 보상 공여되지도 못했는데 1945년 4월 이전에 가동 가능한 차량 자체가 거의 남지 않을 정도로 마지막까지 계속 소모에 소모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베를린 전투에 참가한 차량도 있는 등 최후의 한 대까지 전투가 가능한 상태라면 어떻게든 전투에 투입하고 봤다는 점도 크게 작용했다.

그나마 노획 후 전시된 차량들이 미국과 영국, 러시아에 각 1대씩 있다. 미국과 영국은 티거는 북아프리카에서 노획한 이후 추가 노획하지 못했고 소련은 1942년부터 운좋으면 노획했다가 1944년부터 줄줄이 노획, 보존 중인 것은 단 1대 뿐이고 나머지는 노획할 때마다 실험 및 자잘한 패전 때문에 선전용으로서 각종 화포의 표적판으로 써먹은 탓에(…) 원형을 유지할 수 없었다고 한다. 물론 독일 군사박물관에도 1대가 전시 중이다.


한편 영국의 보빙턴 전차 박물관은 전 세계에서 오리지널 부품을 긁어모으는 근성과 눈물의 복구 작업으로 노획한 초기 생산형 131호 티거(북아프리카에서 연합군측이 최초로 노획한 바로 그놈!)를 가동 상태로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당시 131호 티거는 노획 이후 바로 영국으로 보내져 티거 잔해들에서 찾아낸 부품으로 수리하여 여러 테스트를 받았다.[34] 각지역마다 전시되었다가 9월에 대대적인 조사 이후 방치되었는데 1959년 9월에 박물관에 인도된 것이다. 이후 1990년부터 약 13년동안 우리돈 1억 3천만원에 해당하는 8만파운드를 들여서 위와 같은 근성과 눈물의 작업으로 2003년부터 매년 전시회 등에서 공개[35], 거기까지 찾아올 정도로 그 쪽 바닥을 잘 아는 인간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단, 원래 북아프리카에서 노획했던 상태를 완벽하게 재현한 건 아니다. 일단 엔진이 다르다. 노획 당시엔 HL210이었지만 당장 가동 가능한 엔진은 전부 티거II용 HL230이었어서 부득이하게 아르덴 대공세 당시에 라 글레즈외각에서 노획된 무장친위대 제 501 독립중전차대대 1중대 소속 제프 프란츠 하사의 104호 티거II의 HL230 엔진을 빼서 탑재했고 원래 탑재돼 있던 HL210 엔진은 컷오프 전시물로 전용했다. 하지만 유일하게 가동 가능한 티거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고 2014년 개봉하는 2차 대전 영화 퓨리에 등장하게 되면서 많은 밀덕들의 눈길을 끌었다.

2.7. 티거피벨


티거에 탑승할 전차병들을 위해 만들어진 매뉴얼로. 티거에 모에선을 쬐면 나오는 엘비라 티거라는 여성이 주인공이다. 이 여성의 비위를 맞추는 법을 상세히 설명함으로서 티거 전차를 다루는 법에 숙달되도록 이끄는 것이 이 책자의 목적이다. 탈것(배, 자동차 등)을 여성화시켜 부르는 서양 문화에서는 모에화(?) 자체는 특별할 것 없지만 이런 매뉴얼이 군에서 정식 채용된 매뉴얼이란 것이 놀라운 점이다.

모에! 전차학교 3권에는 티거피벨의 현대판이 수록되어 있으며 티거피벨을 공식적으로 채용하인츠 구데리안의 위업을 찬양하고 있다.

2012년 번역되어 나온 오토 카리우스의 자서전 진흙 속의 호랑이 별책부록으로 완전번역되어 제공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출간이 늦어진 이유가 티거 피벨을 부록으로 주기 위해서라고.

여담이지만 판터의 매뉴얼인 판터 피벨도 모에화까지는 아니지만 전혀 군용 메뉴얼스럽지 않은 분위기를 자랑한다.

걸즈 & 판처 3화에서는 레이제이 마코4호 전차의 조종을 위해 한번 훑어본 PzIV fibel이란 명칭으로 패러디되어 등장한다.

2.8. 추축국 진영 군대의 티거

티거는 생산량이 많지 않았고 티거 중전차대대가 군단 직할 부대로 운영될 만큼 전략적 예비대로서 중요한 전력이었기에 다른 독일제 무기들과 달리 추축국 군대에 공여된 예가 매우 희귀하다.

2.8.1. 헝가리군 티거

독일군 이외의 군대에서 티거를 운용한 대표적 혹은 유일한 예로 1944년 4월, 북우크라이나 집단군 사령관에 새로이 임명된 발터 모델 원수가 헝가리 1군을 시찰한 뒤 이들 전차부대의 전공을 높이 평가하여 1944년 5월 4일, 헝가리 왕립 제2전차사단에 Pz.Kpfw.Ⅳ H형 12대, 3호 돌격포 10대, 티거 10대를 배치시켰다.

헝가리 전차병들이 티거를 운용하기 위한 훈련을 마무리 짓고 실전 투입을 앞둔 7월 말, 3대의 티거가 추가로 헝가리군 왕립 제2전차사단에 배치되었는데 무려 생일선물로 준 것이라고 한다. 체코에서 출판된 <Obrněná technika. 6. Střední Evropa 1919-1945 II část.>에서는 이를 라즐로 홀로시-쿠티 소장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선물이었다고 적어놓았는데 이는 당시 2전차사단장이었던 졸탄 제디니 소장의 이름을 잘못 표기한 것으로 보인다. 홀로시-쿠티 소장의 직책은 보병사단장이었고 그의 생일은 8월 23일인 반면, 제디니 소장의 생일은 7월 22일이며 모델 원수가 제디니 소장의 실력을 높이 평가해왔던 것을 고려해보면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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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7월, 갈리치아 전투에서 티거에 탑승한 에르빈 타르차이. 이후에는 독일군으로부터 판터를 수령하여 주로 판터에 탑승한다.)

사단장의 생일 다음 날인 7월 23일, 헝가리군 왕립 제2전차사단은 스타니슬라프와 사르투니야 방면 전투에 기존의 티거 10대에 생일 선물을 더하여 12대의 티거를 투입하였고 이를 2개 중대로 나누어 에르빈 타르차이 중위와 야노슈 베드레슈 중위가 지휘를 맡았으며 특히 타르차이는 단 두 대의 티거로 30분 동안 소련군 T-34전차 14대를 격파하여 언덕 고지를 사수하는 전공을 세웠다. 그러나 연료와 정비 부품 부족으로 인한 손실은 어찌할 수 없어서 1944년 12월에 헝가리군이 보유한 잔존 티거는 4대 뿐이었다.

2.8.2. 일본군에 소속될 뻔한 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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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거를 타보는 일본군 장교들. 전차장석에 있는 사람은 주독 일본대사였던 오오시마 히로시이다.

놀랍게도 일본군(…) 역시도 티거를 도입하려 했던 전적이 있다. 독일에 사절차 방문한 일본 장교단이 티거의 위용을 보고는 한눈에 반해서(…) 즉석에서 구매계약을 체결하고 2대분의 대금까지 완납했으나... 때는 독소전이 한창이던 때라 육로로는 일본으로 수송할 수단이 없었으며(…) 티거같이 무거운 물건을 수송할 수 있는 잠수함도 없던 지라 독일에서는 무슨 방법을 써도 일본으로 운송할 수 없었다.(…)[36] 일본에서도 이미 대금을 양도한 물건을 차마 환불해달라고는 말을 하기는 뭐했던지(…) 구입한 2대분을 독일에게 양도해서 독일군에 의해 사용된다. 이 일본군 소속 티거(…)는 SS에 의해 사용되어 동부전선에서 파괴되었다고 전해진다.

다만 어디까지나 IF의 이야기지만 설령 어찌저찌 일본이 티거를 자국까지 수송하는 데 성공했더라도 전황에 별 영향은 끼치지 못했을 것이다. 원본 국가인 독일이 충실하게 증명했지만 전쟁은 결전병기의 원맨쇼(…)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당시 일본의 수준은 티거와 같은 중전차를 제대로 운용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기술력은 종전까지 겨우 M4하고 동등한 치토 같은 전차-그것도 시제차 몇 대-를 만드는 데 그친 수준이었으며 전술교리는 그야말로 구시대적인 개념이었던데다 설상가상으로 자원이 모자라였기에 보급 역시 처참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줘도 못써먹는 한심한 수준.

탄약 보급 문제도 그렇다. 만약 초기에 전차와 같이 구입한 8.8cm 탄을 다 소모하고 나면 독일에서 추가로 도입하던가 일본군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탄을 조달해야 했을텐데 독일에서 보급해온 포탄이 아니라 일본에서 제작한 포탄을 사용했더라면 일본이 자국 전차에서 여러 차례 선을 보였던(…) 저질 철갑탄 문제에서 보여지듯 셔먼을 뚫지 못하는 8.8cm 탄이라는 괴랄한 결과물이 나와도 전혀 놀라울 것이 없다.(…)

수리 및 유지보수 문제도 발목을 잡는데 일본보다는 사정이 나았던 독일도 연료부족에 골골이면서 전장에서 기관계에 문제가 일어난 티거를 견인해 수리할 여력이 되지 못해 폐기하는 일이 잦았는데 그보다 훨씬 더 안습한 일본의 사정이라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이 必要韓紙? 일본의 여력으로는 독일에서는 간단한 수리로 해결되었을 사소한 문제라도 문제가 발생했을 시 제대로 수리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이다. 손상을 수복할 수가 없으니 결과적으로는 1회용 병기가 돼버리는 꼴. 좋은 무기를 쥐여 줘도 그걸 지속적으로 보수해가며 운용할 환경이 안되면 말짱 도로묵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가 되겠다.

아마 일본이 티거를 도입하였다면 치토야마토급 전함의 경우처럼 본토결전용으로 본토에서 썩혀두었다가 그대로 종전을 맞고 고철처분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제대로 쓰긴 했을지도 의문이지만.

2.9. 파생형

2.9.1. 포르셰 티거 (Tige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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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셰 사에서 개발한 티거의 프로토타입. 당시의 제식명칭은 VK 45.01 (P). 흔히 포르셰 티거나 티거(P)라고 불린다. 포탑이 헨셸사의 티거보다 전면에 있는 것이 특징. 헨셸사의 안이었던 VK 45.01 (H)에 밀려 채택되지 못했다.>

이때 포르셰의 책임자였던 포르셰 박사는 당연히 포르셰의 안이 채택될 거라 굳게 믿고 최종발표가 나기도 전에 총 90대 이상의 차체 및 포탑을 미리 생산해두는(…) 뻘짓을 했다. 포탑이야 간단한 수정을 거쳐 헨셸사의 차체에 얹으면 그만이었지만 차체는 고스란히 악성재고로 전락했고 후에 티거 2의 8.8cm 71구경장 대전차포를 얹고 추가장갑 100mm를 떡칠한 중구축전차 '페르디난트/엘레판트'로 나름 이름을 떨치게 된다. 아울러 이때 엘레판트 부대의 지휘용으로 티거의 포탑을 얹은 진정한 포르셰 티거도 5대가 생산되어 같이 배치된다.[37]

포르셰 버전 티거의 경우 매체에 나왔을 경우 실전 기동 쪽에서 영 좋지않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간단하게 걸즈 & 판처에서의 장면으로 설명가능하다.


"뭐... 지면을 파고들어 버리거나 과열돼서 불이 붙어버리고는 해서 망가지기 쉬운 게 단점이지만요.
- 아키야마 유카리

구동과 동시에 최고토크를 뽑는 전기모터의 특성상 가속도와 최고속도는 헨셸 티거를 능가했지만 이건 포장 도로에서의 이야기였을 뿐이고 실상은 험지 돌파 능력이 상상외로 엄청나게 구렸던데다[38] 선회반경이 안드로메다 수준이었다. 거기에 저기서 뻘에 빠졌다고 불나는 것도 고증에 의한 것인데 포르셰에서 개발한 차량들의 경우 구동계에 관한 포르셰 박사의 믿음 덕택에 연료를 태우고 그 에너지로 발전기를 돌려 발전기가 생산한 전기로 전기모터를 돌려 차량이 굴러가는 방식, 즉 하이브리드 기관[39]을 탑재했기 때문이다.

요즘에야 연비 때문에 주목받는 기관이고 철도 교통 쪽으로 들어가면 아예 힘까지 우수해서 포르세 박사가 디자인한 방식 그대로 돌리는 디젤 전기 기관차가 다니고 있지만 당시엔 기계식 트랜스미션의 충분한 신뢰성 확보가 어려워서 50톤 이상의 전차를 움직이려면 부득이하게 이것 이외의 방법이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로 이 방식은 기계식 트랜스미션보다 속도 제어에 유리하며 효율 측면에서도 나름 유리하다. 또한 뻘짓으로 악명 높은 마우스 초중전차도 포르셰 설계답게 같은 방식의 동력계통을 채택했는데 사실 이놈 정도 되면 이 방법이 아니면 제대로 기동시키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포르셰 사의 전차들이 죄다 프로토타입 단계에서 끝난 것만 봐도 대충 짐작이 가겠지만 이 시절의 하이브리드 엔진은 실전에서 도저히 못써먹을 물건이었던 것이 진흙에 빠지거나 25도 경사만 만나도 기동모터가 타버려서 가동불능이 될 정도였다. 포르셰 티거를 개수해서 써먹은 엘레판트도 총 손실의 절반이 모터 과열 및 소손으로 인한 자폭/방치였을 정도. 아울러 포르셰 티거에 탑재된 강력한 발전기 및 구동모터는 귀중한 전략자원인 구리를 무지막지하게 퍼먹는 물건이었고 이때문에 생산 및 유지비용이 확 올라갈 것이 분명했다. 엘레판트는 이미 생산된 것을 어쩔 수 없이 유용하려던 것이니 그렇다 치고 포르셰 티거는 수천대를 찍어낼 주력전차가 저러면 어쩌자는 것인지 의문스럽지만 그래도 다행히 채용되지는 않았고(…) 포르셰 티거의 포탑이 개수돼서 헨셸 티거의 양산형에 적용되었다는게 위안이었다.

게임 월드 오브 탱크에서 티거(P)가 200mm 전면장갑을 지닌 탱크로 나오기 때문에 티거(P)의 전면장갑이 200mm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선행 생산되어 운용된 지휘전차에 100mm 추가장갑이 용접된 중대장 전용 차량으로 투입된 것이 포르셰 티거가 유일하게 실전에 투입된 형태이기 때문에 200mm 전면장갑으로 나온 것. 물론 기본형은 헨셸과 같이 100mm 전면장갑이다. 게다가 게임이라는 환경상 스펙상의 차이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같은 티어에 배치된 이상 모자라는 기동력의 반대급부를 설정해야 하기도 했으니...

2.9.2. 티거 2 (Tiger 2)

티거의 발전형. 해당 항목 참조.

2.9.3. 야크트티거 (Jagdtiger)

해당 항목 참조. 정확히는 이녀석은 티거 2의 차체를 사용한 물건이다.

2.9.4. 슈투름티거 (Sturmtiger)


티거의 차체에 큼지막한 전투실을 얹고 여기에 해군에서 대잠폭뢰발사기로 쓰던 38cm 로켓발사기를 장착한 시가전용 돌격전차. 독일군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의 전훈에 따라 이와 같은 시가전용 돌격전차의 개발에 비교적 적극적이었는데 그 결과물 중에서도 가장 거대한 것이 바로 이 슈투름티거이다.

38cm 로켓발사기는 포격을 버틸 목적으로 구축한 장갑화 강화콘크리트 요새를 제외하면 포격에 가장 강한 구조물인 적벽돌을 두껍게 쌓아 만든 거대한 건물도 일격에 무너뜨릴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으며 실전 투입 결과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막강한 화력을 선보였다. 다만 상기의 사진에서도 보이듯 로켓탄의 구경이 구경인지라 차내 휴행탄수가 고작 14발에 불과하였으며 탄약의 무게가 자그마치 351kg에 달해서 장전수 2명이 달라붙어 천장에 달린 도르래를 이용해 장전함에도 불구하고 재장전 속도는 매우 느렸다.[40] 거기에다가 이 무거운 로켓탄의 최대 사거리는 5670m에 불과해서 본격적인 야포로 써먹기에도 곤란했다.

상기한 특성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근접전을 고려하여 방어력 면에서도 개선이 이루어졌는데 대전 초기의 설계안이라 수직장갑 구조를 지녔던 티거와 달리 전면에 경사장갑 설계를 채용하였고 두께 역시 150mm로 늘려서 전면 방어력은 티거 2와 동등한 수준으로 강화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조로 중량이 크게 증가하여 67톤에 달하게 되었으며 방어력도 티거 2 무게도 티거 2 무게가 크게 늘어난 것에 반해서 엔진 출력의 개선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기동성이 크게 저하된 것은 물론이고 사소한 기동에도 고장이 속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38cm 로켓발사기의 화력은 매우 준수했으며, 방어력 역시 뛰어났기 때문에 시가전이라는 본래의 용도에서는 나름대로 활약하였다. 극소수 생산된 슈투름티거는 1000기갑돌격구포중대, 1001중대, 1002중대에 배치되었으며 1944년 바르샤바 봉기 진압작전에 투입되어 로켓탄 한 방으로 건물과 장애물을 쓸어버리는 상당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후 독일군이 패주해가는 상황에서 공격전 용도인 슈투름티거는 별다른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고 조직적으로 전투에 투입되지도 못했다. 수가 너무 적은데다 연료도 많이 먹으면서 느리고 고장도 잦은 슈투름티거는 일선에서는 애물단지였으며 거의 대부분의 차량이 자폭으로 파기되었다. 그나마 언급할만한 대전 말 전과라면 1945년 1월에 1000중대가 건물을 파괴하기 위해 한 발을 쐈더니 옆에 있던 셔먼 3대가 개발살난 적이 있고 단 한 발로 셔먼 1개 중대가 개발살난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전과 따위로 전세를 바꿀 수는 없었기에 평가를 역전시킬 수는 없었다.

슈투룸티거의 생산량은 매우 적었는데 이는 티거 섀시의 생산량 자체가 적어 조달 자체가 어려웠던데다 이러한 한정된 용도의 전차를 귀중한 티거 1량을 희생하면서까지 만들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생산된 슈투룸티거 전부는 전선에서 포탑이 파손된 티거를 회수한 뒤 개조하여 생산되었고 덕분에 생산량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게다가 슈트룸티거가 생산되어 실전배치된 시기는 독일군이 후퇴를 거듭해가던 때였기 때문에 공격전에 쓰려고 만들어진 이 돌격전차를 써먹을 곳이 없었기에 추가 생산계획 역시 중단되어 생산량은 18대에 그쳤다.

2.9.5. 베르게티거

베르게티거들의 사진과 그림들. 오른쪽이 베르게티거(P).

Bergetiger

포탑이 파괴된 티거에서 포탑을 들어내고 구난전차로 전용한 물건으로 군 상부에서는 피를 토할 정도로 아까운 티거 섀시를 고작 회수차량으로 쓰는짓을 감당할 수가 없어 엄격하게 금지했으나 보통 현지부대에서 임기응변으로 만들어 쓴 경우가 있다. 상술한 바와 같이 티거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회수하려고 노력하던 중요 전력이었으나 전장에서 50톤 가까이 되는 전차를 끌어낼 방법이 마땅치가 않아서 머리를 굴린 결과물. 포탑을 들어내면 전체 중량이 감소하여 구동계에 가해지는 부담이 줄어드는 만큼 다른 차량을 견인할 여력이 생기며 아울러 섀시는 당연히 티거니까 적탄이 날아다니는 전장에서도 회수차량의 생존성이 크게 높아진다.
임기응변인 만큼 포탑만 제거하고 차체 내부는 휑하게 드러내고 다니는 차량부터 최소한 나무로라도 뚜껑은 덮어준 전차 아예 크레인 등 상부구조물까지 올린 본격파 등등 다종다양하다. 다만 치타델레 작전시 페르디난트를 운용한 제 653 중구축전차연대에 티거(P)섀시 3대와 파손된 페르디난트 섀시 2대를 이용하여 정식으로 베르게티거(P) 5대를 제작해 배치한 예가 있다.

2.9.6. 잡종 티거(Hybrid tiger)

전황이 급박해지자 교육 및 훈련부대에 있던 티거도 결국 전선으로 내몰렸는데 후방에만 있다가 전쟁 말기에 이르러 실전 투입을 준비하다 보니 초기형 차체에 후기형 부품이나 장비가 섞인 '잡종' 차량들이 많았다. 이를 하이브리드 티거라 부른다.

야전에서 수리할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티거를 독일의 공장으로 가져가서 재생한 차량들도 비슷한 이유로 다양한 형식의 장비가 이것저것 뒤섞인 것을 볼 수 있다. 특히 1944년에 티거 생산라인이 폐쇄될 때 만들어진 54대의 티거가 대표적이다.

2.9.7. 그 외

  • 보르크바르트 4호를 원격 조종하는 무선조종장치를 추가한 티거가 있다. 그중 안치오 전선에서 유기된 티거 한대의 사진이 베르게 티거의 사진이라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으나 실은 바로 이 보르크바르트 4호 조종용 티거. 베르게티거와 구분할 수 있는 부분은 베르게티거는 포탑을 들어낸 반면 보그바드 조종용 티거는 포탑을 그대로 얹어놓은 상태에서 크레인 등의 상부구조물을 추가한 점이 다르다. 보르크바르트 4호는 무선조종이긴 해도 근처에서 조종을 해야 했기 때문에 튼튼한 전차에서 조종해야 안전했으므로 독일군 전차중 그나마 장갑과 기동성이 다른 중전차보다 훌륭한 티거가 담당했다.

2.10. 총평

이래저래 문제도 많았지만 한마디로 전차의 로망이 실체화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봐도 다른 병과의 강력한 지원을 받기는커녕 기본적인 연료와 탄약마저 부족하고 아군은 전반적으로 무너지는 상황속에서 당시 세계 최강급 강대국들이 보유한 대다수의 전차들을 일방적으로 때려잡은 물건이다. 그런 주제에 57톤에 달하는 거대한 중전차의 기동성이 30톤급 중형 전차와 비슷하거나 더 우월하다! 이러니 외계인 고문 드립이 나오는게다. 그저 숫자가 적어 전쟁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을 뿐. 하지만 이런 전차가 있었기에 독일의 패망이 늦추어진 것은 확실하다.

물론 전쟁 후반으로 갈수록 같은 독일의 쾨니히스티거나 미국의 퍼싱, 소련의 IS-2M같은 스펙상으로는 티거를 능가하는 중전차나 잭슨이나 ISU-152같은 티거를 한방에 격파 가능한 대전차자주포도 나왔지만 전쟁의 중요한 국면에서 티거처럼 가장 필요한 방법으로 힘을 써준 전차는 별로 없을 것이다.

1990년대에 생존한 2차대전 참전 전차병 100명을 무작위로 고른 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때 어떤 전차를 골라서 돌아가겠느냐?"는 질문을 했을 때 100명 모두 티거, 티거2 를 골랐다는 도시전설이 전해진다. 러시아인은 물어볼 것도 없다는 투로 미국인은 당연한 걸 물어본다고 째려봤다고.[41]

2.11. 매체 속의 티거

  • Fate/stay night타이가 도장에서는 제자 1호가 몰고 나온다.

  • 제로의 사역마에서는 간달브의 창으로 소환된것으로 등장. 스퀘어급 골렘조차 상대가 안되는 초강력 골렘 요르문간드를 1 대 10 무쌍을 찍어버리면서 간단히 떡실신 시켜버렸다. [42][43] 나름 대포도 들고있고 전함[44]도 격침시킬수있는 위력이라고 해도 50m도 안되는 지근거리에서 발포된 75mm철갑탄을 튕겨내버리는 티거의 장갑에 중세시대의 대포탄 따위가 먹힐리 만무한데다 아무리 마법사들도 어쩔줄 모르는 아이언 골렘이라지만 티거의 주포는 100m 이내의 근거리에서 120mm, 2km에서도 84mm의 관통력을[45] 자랑하는 88mm 56구경장 포다.

  • 문명 5에서 팬저의 기본 모델로 등장한다. 4에서는 판터가 팬저모델이었다.

  •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후반부 다리 사수 작전에 2대가 등장한다.

1대는 양말 폭탄을 맞고 무한궤도가 끊어진다. 다른 1대는 다리를 건너는가 싶다가 P-51의 폭격을 맞고 폭파된다.

  • 켈리의 영웅들에서는 작은 마을에 주둔하면서 금괴 호송을 엄호중이던 티거 3대가 등장한다.

이 3대의 티거 중 첫 번째 티거는 승무원들이 사살당하고 오드볼의 셔먼 전차에게 후미를 기습공격당하여 격파당한다. 두 번째 티거는 길을 잘 못 들어 막다른 골목에서 갇혀버린 상태에서 오드볼의 셔먼이 티거의 후방을 잡는데 성공하여 사격하지만 페인트탄이였다. 재장전하는 사이 티거는 포탑을 돌리려고 하지만 주포가 한쪽은 돌담에 반대쪽은 나무에 걸려서 반격도 하지 못한채 허무하게 터져버렸다.[46] 나머지 1대는 켈리와 협상하여 은행 문을 전차포로 때려부수고 미군들과 사이좋게 금괴를 나눠가진 뒤 전차장과 승무원들은 다른 차량을 이용해 떠나고 전차는 오드볼에게 팔려나간다.


오리지널에 비해서 포탑이 더 크고 약간 전방에 달려 있어서 포르셰 티거와 비슷한 점이 포인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 등장하는 티거 전차는 개조를 맡았던 군용 차량 동호회의 회원이었던 스티브 라몬비의 취향에 의하여 티거 전기형으로 등장하였다.


  • 월드 오브 탱크에서는 독일 7티어 중전차로 등장한다. 실제 양산된 헨셸 티거 말고도 VK 45.01(P) 포르셰 티거도 구현해 놓았다. 차체에 100mm 두께의 추가 장갑을 두른 중대장용 사양인데 경사진 곳을 오른다고 엔진이 고장나거나 불타버리는 일도 없고 속도도 의외로 잘나온다. 헨셸이나 포르셰나 같은 주포를 최종포로 가져가며 헨셸은 살짝 뒤로 물러나 정신나간 DPM으로 승부를 보고 포르셰는 DPM은 떨어지지만 두툼한 전면장갑으로 앞에서 방어하는 식으로 플레이 방식이 갈린다.

  • 애니메이션 걸즈 & 판처에서는 주인공 격인 오아라이 학원에서 포르셰 티거가 후반부에 합류하여 레오폰팀이 탑승. 헨셸 티거는 작중 상대팀인 쿠로모리미네 여학원에서 운용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고바야시 모토후미의 만화 해피 타이거에서 진주인공급. 마지막엔 일본군을 돕기 위해 인도차이나로 간다! 후에 전투가 끝나자 강물로 직행.

  •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에서는 국방군 전격전 트리에서 800 맨파워로 호출 할 수 있다. 퍼싱의 추축군 버전 같은 느낌. 하지만 옆 트리의 킹타이거와 비교가 돼서 많이 까이기도 한다. "티거 에이스" 캠페인을 클리어했다면 해당 캠페인의 주인공인 막시밀리안 보스 대위가 지휘하는 티거 전차로 교체할 수 있다. 단 스킨과 대사만 바뀌고 유닛 능력은 안바뀌니 주의.

  • 속편인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2에서는 독일 동부군의 소환 유닛으로 등장한다. 맨파워 800만 있으면 됐던 전작과는 달리 200이 넘는 연료도 요구하기 때문에 부르기가 다소 까다롭다. 대신에 맷집과 화력 하나는 끝내주며 보급 제한과 자원에 여유만 있다면 숫자 상관 없이 마음 껏 불러낼 수 있다. 이외에도 "엘리트 독트린" 지휘관은 "티거 에이스"라는 유닛을 불러낼 수 있는데 한 번 불러내면 몇 분간 자원 수급이 바닥을 치게 된다. 대신에 더욱 더 강화된 성능을 자랑하며 약점 사격 스킬을 통해 상대 기갑을 정신 못차리게 할 수도 있다. 등장 형식은 전부 초기형.

  • 2014년 10월 15일에 미국에서 개봉되었고 동년 11월 14일 우리나라에 개봉된 전쟁 영화 퓨리에 출연하여 관객들에게 엄청난 존재감과 포스를 과시하였다.

그런데 세계 최초로 레플리카가 아닌 진짜 대전 당시 제작된 티거 전차가 등장했다. 그것도 바로 문서 상단에 나온 보빙턴 박물관의 131호 티거가! #BBC의 관련보도(영문)

3. 곰돌이 푸에 나오는 호랑이


Tigger라고 쓴다.
꼬리를 스프링 마냥 통통 튕기면서 다닌다. 호랑이지만 매우 온순하고 명랑 쾌활한 성격으로 곰돌이 푸 일행의 분위기메이커를 맡는다. 티거 무비라는 자기 이름의 영화도 나왔다. 성우설영범.

자기 주제가도 있다.


The wonderful thing about tiggers
Is tiggers are wonderful things
Their tops are made out of rubber
Their bottoms are made out of springs
They're bouncy, trouncy, flouncy, pouncy
Fun, fun, fun, fun, fun!
But the most wonderful thing about tiggers is
I'm the only one

티거에 대한 멋진 사실은
멋진 건 바로 티거라는 거지
윗부분은 고무로 만들어졌고
아랫부분은 스프링으로 만들어졌지
그들은 잘 튀고 힘이 넘치고 당당하고 용감하고[47]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재미있지
하지만 티거에 대한 가장 멋진 사실은
티거는 나 하나뿐이라는 거야!


티거 무비에서는 2절까지 나오고(위 영상 24초~55초까지) 영화 중반부에서는 맨 끝의 가사를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거야!(I'm not the only one!)"으로 바꿔 부르기도 한다.[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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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지휘 전차는 동축기관총을 제거하고 추가 무전기를 장착했으며 탄약수가 조작한다.
  • [2] 1944년 이후에 제작된 후기형은 연합군 공군의 기관포 사격과 박격포 때문에 40mm로 강화되었다. 전차장용 큐폴라 역시 이때 개선되었다.
  • [3] 독일어로 티거 아인스라고 읽으면 된다. 참고로 티거라는 별칭을 붙여준 사람은 페르디난트 포르셰이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포르셰 사의 그 분 맞다.
  • [4] 이 퍼진 티거들 중 1대는 소련군에 노획된다.
  • [5] 2개 중대만이 티거를 배치받았고 나머지는 3호전차 N형으로 편성되었다.
  • [6] 7대는 공병들을 통해 자폭.
  • [7] 미하엘 비트만이 티거 에이스로서의 능력을 처음 보인 게 이 때.
  • [8] 숙련된 병사의 중요성은 당장 쾨니히스 티거 3대가 T-34/85 1대에게 격파당한것만으로도 알수있다. 제 아무리 최강의 전차라도 그걸 운용하는 병사의 숙련도가 중요하다.
  • [9] 해당 계획안은 이후 중량을 더 늘린 VK30.02를 개발안으로 이어졌고 MAN 사와 벤츠 사 두 사의 모델이 경합을 거친 끝에 MAN사가 제시한 시제 전차가 채택. 판터가 된다.
  • [10] VK 30.01개발에 참여했던 포르셰는 이 사업에는 불참했다.
  • [11] 약실의 구경과 포신의 구경이 다른 포로 포탄도 텅스텐 탄심을 연철제 라이너가 감싸고 있는 형태이다. 발사되면 연철제 라이너가 포신 내에서 우그러들면서 포신을 통과하기 때문에 포신 내 압력이 올라가고 이는 탄심에 더 많은 운동에너지를 줄 수 있게 된다. 포탄은 거의 현용 120mm 활강포에 맞먹는 수준의 포구초속을 지니게 되어 7.5cm임에도 불구하고 8.8cm와 거의 동등한 관통력을 갖는다.
  • [12] 경합에서 승리한 헨셸 사의 설계를 기반으로 양측 회사의 안이 적절하게 조합된 결과물이다.
  • [13] 이 7.5cm주포는 후에 판터의 주포가 된다
  • [14] 다만 미군의 75mm 전차포는 본디 야포로 쓰이던 프랑스제 75mm 평사포에서 따온 물건이라 장갑관통능력은 많이 떨어진다. 대신 보병지원용으로 적합.
  • [15] 덕분에 시간이 가면 갈수록 판터만 밀린다.(1945년 1월 가동률은 티거가 58%, 판터가 45%이고. 그 외 듣보잡들은 지못미)
  • [16] 전면이 아니었을 확률이 높다. 게다가 이건 88mm의 특성이라기 보다는 승무원의 숙련도와 운이 따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칼 자이스사의 조준경 품질은 좋았지만 어차피 FCS 따위는 전혀 없는 목측식이라 원거리 명중률은 실질적으로 바닥을 치게 된다.
  • [17] 고폭탄으로 마틸다를 잡은 사례도 존재하지만 이는 관통한 것이 아니라 외부 장비를 박살내거나 승무원에게 부상을 입혀 전투불능으로 만들었다고 보는 편이 옳다.
  • [18] 카셀의 헨셀 공장에서 생산된 초기형 티거로 3소대의 1호차가 되면서 131호라는 숫자가 그려짐에 따라 131호로 불렸다.
  • [19] 당시 영국군 제 48 전차연대 소속 처칠전차 1개 소대가 선제 공격을 하여 6파운드 포 3발을 명중시켰다. 물론 티거에는 먹히지 않았다. 문제는 맞은 부위였다. 첫번째 탄은 포신에 맞아 도탄되었는데 하필 포탄이 튕겨나오면서 포방패 아래를 강타하여 포탑링이 파손되어 포탑의 회전이 불가능 해졌다(!) 게다가 이때 생긴 파편이 튀어 조종수와 통신병이 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두번째 탄은 포탑측면 기중기용 돌출부에 명중되어 도탄하였으나 하필 포탄이 상하불가 포신아래의 주포상하작동기구를 파손시켰다(!) 그리고 3번째는 문제가 많았던 해치에 명중했다.맞추어도 하필... 본격 영국군의 집념 결국 티거 승무원들은 부상병들을 데리고 도주하였고 덕분에 우리가 아는 131호를 획득하게 된 것이다.
  • [20] 티거 초기형은 1942년 8월부터 1943년 6월까지 347대가 생산, 중기형은 1943년 7월~1944년 1월 동안 478대 생산, 후기형은 1944년 2월~1944년 8월 동안 530대 생산.
  • [21] 티거의 교환비 도표의 1차 출처는 Tigers in Combat, Vol I&II., Wolfgang Schneider, 2차 출처는 모든 티거 운용부대의 전투일지를 요약해서 기록해 둔 웹사이트 Tiger I infomation center이다. http://www.alanhamby.com/losses.shtml 교차검증이 필요할지는 몰라도 악의적으로 부풀려진 통계는 아니다.
  • [22] 미군의 투입 차량을 생각하면 말도 안되는 자료라는 의견이 있는데 본 도표는 모든 독일 중전차부대의 운용 일지를 바탕으로 한 통계다. 2차대전중 소련군이 손실한 기갑차량 수만 계산해도 10만대에 근접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불가능한 숫자가 아니다.
  • [23] 구식 큐폴라의 문제점은 뚜껑을 닫으려면 전차장이 최대한 몸을 내밀어서 뚜껑을 닫아야 했다는 점, 그리고 뚜껑이 위로 열리기에 소련군이 멀리서 그걸 보고 "저 티거 뚜껑 열렸다 패자"라고 할 수 있다는 점이다. 후기형에서는 뚜껑이 수평으로 열리므로 그런 일이 없으며 몸을 내밀지 않고도 뚜껑을 닫을 수 있게 개선되었다.
  • [24] 레오파르트1의 개발 이유가 M48의 성능 문제였다는건 사실이 아니다. 냉전이 시작되자 서독이 자유진영의 최전방이 되었다. 때문에 서독 재무장의 필요성이 부각되었고 서독이 공여받은 M41 전차는 성능이 당시 전차로서의 역할은 기대하기 힘들기에 자체적인 전차 생산이 가능해질때까지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서 M48 전차를 들여온것이다. 자세한건 레오파르트1 항목 참고.
  • [25] 76mm HVAP의 관통력은 500야드/1000야드/1500야드에서 157mm/135mm/116mm였다. 17파운더는 이보다 훨씬 강력했는데 APCBC는 140mm/130mm/120mm이었고 APDS는 208mm/192mm/176mm였다. R.P.Hunnicutt. Sherman: A History of the American Medium Tank. PRESIDIO 1976.
  • [26] 미군의 76mm포가 전장에 대량으로 등장한건 43년을 넘겨서 44년이 되어서였고 76mm HVAP T4(M93)탄은 1945년 2월이 되어서야 제식 채용 되었다. 이때 쯤이면 티거는 거의 씨가 말라 전장에서 찾아보기조차 힘들었을 시기(티거의 전장 데뷔는 1942년이다.). M62 피모 철갑탄으로도 1200 야드 거리에서 정면이 관통 하다는 실험 결과도 있으나, 여기에 대해서 전사 연구가 S. J. Zaloga는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자세한 내용은 셔먼 항목을 참조.
  • [27] 실제로도 파이어플라이는 티거를 운용하는 전차병들에게도 위험대상으로 인식되어 우선적으로 격파하려 들었고 그 때문에 파이어플라이가 아닌 보통 셔먼에 위장용 더미 포신을 덧대 공격을 분산시키거나 포신에 위장도색을 해 단포신 일반 셔먼 처럼 보이게 하려는 시도가 나타났었다.더미 포신 달린 보통 셔먼 타는 애들은 무슨 죄야?
  • [28] 심지어 M8 그레이 하운드 정찰 장갑차의 승무원들이 '타이거를 잡았다.'고 보고를 올려 확인한 결과 실제로 격파된 차량은 4호 구축전차였던 경우 마저 있었다고 한다.
  • [29] 물론 나중에라도 참전할 확률이 농후하긴 했지만 그 전까지는 랜드리스만 했을게 뻔하다. 오히려 참전을 안했으면 영국이 빚더미에 깔릴 판. 그만큼 일본의 선전포고는 예상을 벗어났던 것이었다.
  • [30] 여기에 또 한가지 문제가 있었는데 일단 공장과 인력이 소련 깊숙히 이동하고 나니까 독일 공군의 쌍발 중폭격기의 항속거리로는 거기까지 폭탄을 떨구러 갈 수가 없었고 결국 전략폭격이 불가능해졌다.
  • [31] 이 이성이 마비된 집단은 결국 대전말 패망이 다가올수록 국민을 사지에 몰아넣고 시간을 끌며 소수로 다수를 제압할 결전병기를 개발해 드라마틱하게 전황을 바꿔줄 방법만을 찾는데 병적으로 집착하게 된다....온갖 페이퍼플랜과 황당한 시제품, 나치의 비밀무기로 알려진 병기들이 바로 그 증거들이다.
  • [32] 이 고증을 따라 컴퍼니 오브 히어로즈 테일즈 오브 밸러의 캠페인중 하나인 '티거 에이스' 첫 미션에서 엔진이 고장나서 가만히 앉아서 수리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툭하면 발생한다. 오죽하면 미션 도중에 "슬슬 엔진 나갈 때가 됐는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다행히도 승무원이 나가거나 하진 않고 차내에서 수리하는데다가 이 캠페인에서 티거는 전차 무쌍을 찍으니...
  • [33] 위에 나온 131호 티거 역시 포탑링이 손상을 입어 노획되고 말았다.
  • [34] 6월 6일에는 조지 6세가 직접 시찰까지 할 정도로 영국은 티거에 대해 큰 관심을 보였다.
  • [35] 보존과정에서 수리 될 당시에도 남아있던 노획 당시의 도탄 흔적을 보존하여 전쟁의 참혹성을 관람객들에게 알리고 있다.
  • [36] 비단 잠수함 뿐만이 아니라 수송선에서도 전차만한 무거운 물건을 운송하기는 쉽지 않은 지라 영국은 만들어둔 전차를 운송할 수단이 없어서 본토에 쌓아두고 있었다.
  • [37] 포르셰 박사의 독단에 의해 선정이 확정되지도 않은 전차의 차체를 생산해둔게 아니라 구축전차를 비롯한 이런저런 목적에서 쓰일 대전차차량의 차체도 필요한데 굳이 새로개발하느니 기존것을 쓴다는 취지에서 그대로 생산시켰다는 얘기도 있다
  • [38] 이는 엔진부의 무게 밸런스가 기존 전차들에 비해 상당히 달랐던 것도 있었다. 다른 차량들은 제대로 무게중심이 실려야 하는 구동축 부분에 엔진을 실으면 되었으나 포르셰 버전은 엔진실에 엔진 + 발전기 + 모터 + 제어장치를 모두 탑재해야했던 관계로 차체가 길어지고 사실상 중앙에 위치해야 했다. 이 때문에 구동축에 제대로 무게가 실리지 않았고 이게 전기모터의 무식한 토크와 맞물려서 안좋은 쪽으로 시너지가 나버린 것.
  • [39] 사실 이 양반은 1901년에 이미 하이브리드 기관을 이용한 자동차를 만든 바 있다. 괜히 천재 엔지니어로 불리는게 아니다.
  • [40] 재장전을 위해서는 차체 상판을 열고 크레인을 써서 포탄을 장전해야 한다고 넷상에 알려져 있으나 크레인은 로켓탄을 슈트룸티거 내부에 적재할 시에만 사용했고 전투시에는 차내에 적재된 탄약을 천장에 달린 도르래를 사용해 인력으로 재장전했다.
  • [41] 디스커버리 채널의 2차대전 당시의 무기를 비교하는 프로그램에서 티거와 셔먼이 비교된 적이 있었고 방송 막바지에 이들의 조종병에게 다시 전차를 타면 어느 것을 타겠냐고 질문을 했었는데 티거 조종병은 물론 셔먼 조종병도 티거를 골랐다.
  • [42] 13권 일러스트에서는 후기형 크룹 포탑의 티거 2가 그려져 있지만 14권 일러스트에서는 티거가 그려져 있다. 어느것이 진짜?
  • [43] 파이퍼 전투단으로 유명한 SS501 중전차 대대에서 304, 314, 324, 334 네 대의 티거 2가 탑승원이 밝혀지지 않았다. 일러스트의 324호차가 어쩌면 혹시나...
  • [44] 장갑함이라고 생각하면 골룸하다. 중세시대의 목제 전열함이다.
  • [45] PzGr.39탄 기준. PzGr.40탄의 경우 100m에서의 관통력은 170mm다.
  • [46] 이 장면은 Girls und Panzer에서 그대로 재현되는데 희생양이었던 엘레판트는 돌릴 포탑조차도 없었다.
  • [47] 이 부분은 의역이다. bounce는 '통통 튄다'와 '활기가 넘치다'라는 뜻이 있고, trounce는 '완파하다', flounce는 '여봐란 듯하다', pounce는 '공격하려고 덮치다'라는 뜻.
  • [48] 티거 무비의 주요 내용은 가족이 아무도 없어 쓸쓸해하던 티거의 가족 찾기다. 이 모습을 가엾게 여긴 친구들이 티거의 가족이 보낸 척 가짜 편지를 써서 티거에게 보내는데, 이것을 받은 티거가 자신에게도 가족이 있었다며 "내가 혼자가 아니었다니 너무나 멋진 일이야!"라고 외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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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1 20:3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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