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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크 비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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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파트리크 도날레 비에라 (Patrick Donalé Vieira)
생년월일 1976년 6월 23일
국적 프랑스
출신지 세네갈 다카르
포지션 중앙 미드필더(박스 투 박스)
신체조건 193cm / 82kg
등번호 4번(아스날, 프랑스)
프로입단 1993년 AS칸
소속팀 AS 칸(1993~1995)
AC 밀란(1995~1996)
아스날 FC(1996~2005)
유벤투스(2005~2006)
인테르나치오날레(2006~2010)
맨체스터 시티(2010~2011)
국가대표 107경기 / 6득점
별명 라 피브레 문어라는 뜻
스태프 맨체스터 시티 이사(2011~2013)
맨체스터 시티 리저브팀 감독(2013~ )

2001 UEFA BEST 11
FW
다비드 트레제게
FW
티에리 앙리
MF
리 곤살레스
MF
지네딘 지단
MF
파트리크 비에이라
MF
데이비드 베컴
DF
비셴테 리사라수
DF
파트리크 안데르손
DF
사미 히피아
DF
스민 콘트라
GK
티아고 카니사레스

아스날 FC 역대 주장
니 아담스
(1988~2002)
파트리크 비에이라
(2002~2005)
티에리 앙리
(2005~2007)

Contents

1. 소개
2. 어린 시절
3. 클럽 커리어
3.1. 초기
3.2. 아스날
3.3. 아스날 이후
4. 국가대표 커리어
5. 플레이스타일
6. 여담

1. 소개

BTB 미드필더의 대표격 선수
아스날과 프랑스의 전성기를 이끈 중원의 핵.

1990년대 후반부터 00년대 중.후반까지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의 아이콘으로 불렸던 사나이.
강력한 피지컬과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중원을 전범위 커버하던 최고 미드필더였다.

2. 어린 시절

세네갈카르에서 카보베르데인 부모로부터 태어났으나, 8살 때 부모를 따라 프랑스로 이주해왔다. 비에이라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이혼했고 어머니와 살게 된다. 이후 아버지를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비에이라라는 이름은 카보베르데에서 유래했으며 어머니쪽 성씨이다.

3. 클럽 커리어

3.1. 초기

17세에 AS 칸에서 성인팀에 데뷔하였으며, 19세에 이미 주장을 맡았을 정도로 뛰어난 리더십을 가졌다. 1995년 여름 이탈리아 세리에 AAC 밀란으로 이적하였으나 경기에는 출장하지 못하고 대부분 벤치에 머물렀다.

3.2. 아스날

웽거가 이끌던 전성기 아스날에서 중원 핵심이었던 비에이라. AC밀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던 그를 벵거가 영입하여 1997-1998 시즌 프리미어리그와 FA컵 더블을 이루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토니 아담스가 주장이던 때에 부주장을 맡았는데 아담스가 은퇴하고 주장이 된다. 주장이 된 첫 시즌인 2001-2002 시즌에 또다시 리그와 FA컵을 거머쥔다. 아스날 무패 우승의 멤버로서 질베르투 실바, 피레 등과 함께 아스날의 강력한 미들진을 이끌었으며 맨유의 로이 킨과의 라이벌관계는 유명하다. 대표팀 동료인 티에리 앙리데니스 베르캄프, 베르 피레스와 함께 무패 아스날을 이끌었다.

라이벌이던 맨유의 공격적인 영입 정책과 달리 아스날은 소극적인 영입 정책을 펼쳤고 비에이라는 항상 불만을 제기해왔다. 레알 마드리드가 매년 여름마다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것은 유명한 일. 비에이라도 레알로 갈 것처럼 행보를 보여오면서도 항상 아스날에는 꼬박꼬박 남았으나...

피지컬적인 측면에서 점차 하향세가 오던 그에게 2004-2005시즌이 끝나고 유벤투스가 접근해왔고 비싼 값에 마지막으로 팔 수 있는 시점이라 여긴 벵거 감독이 그에게 새로운 도전을 허락해주었다.[1] 비에이라는 늘 챔스 트로피를 열망했고 장기적으로 팀이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옮기는 데에 따른 소극적인 이적시장 정책을 계속해서 보일 것을 알았기 때문에 더 늦기전에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고 2004-2005시즌 FA컵 트로피를 마지막으로 팀을 떠난다. 2005년 7월 14일 그의 유벤투스행이 확정되었다.

3.3. 아스날 이후

유벤투스로 이적했으나 경기력은 그말싫........ 다음 시즌 칼치오폴리로 유벤투스가 세리에B로 강등되면서 인테르 밀란으로 이적했다. 인테르 이적 이후에는 과거와 같은 포스를 보여주지 못했다. 나이가 나이인만큼.
2010년 1월 맨시티로 임대를 갔고 이후 완전이적한다. 그런데 그가 팀을 떠난후 인테르가 챔스 우승을 했다. 챔스와는 인연이 지독하게도 없다.
이후 맨체스터 시티에서 2011년 선수생활을 마감한다. 은퇴이후 맨체스터 시티 이사에 취임했으며 2013년부터 리저브팀을 지휘하고 있다. 차기 감독으로 키워지는 중.

4. 국가대표 커리어

98월드컵 까지만 해도 카랑뵈의 백업으로 활약했으나 유로 2000부터 당당한 주전으로서 막강 프랑스 중원의 한축으로 자리 잡는다. 2002 월드컵과 유로 2004에서는 부진했으나 06 월드컵에서는 클로드 마케렐레와 함께 막강한 후위 미들진을 구성, 16강에선 스페인, 8강에선 브라질 중원을 완벽하게 차단하며 프랑스의 결승진출에 기여한다. 유로 2008 이후 국가대표에서 은퇴했다.

5. 플레이스타일

그야말로 BTB 미드필더의 상징과 다름없다. 당대에 수비적 전술이해도로는 누구보다 뒤떨어지지 않았다. 거기에 우월한 신체조건까지 결합되었다. 190cm가 넘는 큰 키와 당당한 체구에 흑인의 유연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긴 다리로 남들보다 수비반경 또한 넓었다. 상대방의 공만 정확히 따내는 태클이 일품. 활동량과 피지컬을 바탕으로 중원을 장악하는 능력은 역사상 손에 꼽을만큼 특급이었다. 피지컬을 앞세운 전진능력도 준수하며, 순간적인 침투로 득점을 뽑아내는 능력도 상당했다. 다만 피지컬과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뛰는 BTB 스타일이다 보니 게임을 조율하는 능력은 거의 전무하다. 패싱능력은 단순히 2선 미드필더에 전달만 해주는 수준. 3선에서 빌드업과 플레이메이킹을 기대하기는 힘든 선수다. 아스날과 프랑스에서는 베르캄프와 지단이라는 역대급 2선 자원들이 있어서 이런 문제가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유벤투스와 지단이 없는 프랑스에서는 정말 답답한 경기운영능력을 보여줬다. 과거 마케렐레와 조합이 안맞았던 이유도 이런점에 근거하게 된다. (마케렐레 역시 패스, 빌드업과는 전혀 무관한 선수라..... 하지만 2006 월드컵에선 2선~3선을 왕복하는 지단에게 있어 최고의 중원 조합이 되어준다.)

6. 여담

전형적인 만능 육각형 미드필더답게 FM시리즈에서는 능력치가 20으로 도배되어 있는 선수로 유명했다(...) 원조 FM사기유닛.

상당한 성질(...)로 유명하다. 로이 킨과의 앙숙관계는 이미 전설[2][3]이며 그 마리오 발로텔리 마저도 비에이라의 말은 고분고분 들었다고 한다.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서 그를 자극하면 말릴 수 없을 정도이고 실제로 그는 인종차별퇴치 홍보대사이기도 했고...뭐 더한 선수들도 있긴 하다. 미하일로비치라든가...

마켈렐레와 영혼의 듀오로 손꼽혔지만 그건 06 독일월드컵만 본 사람들의 평가[4]로 출장시마다 잉글랜드의 스티븐 제라드, 프랭크 램파드의 조합처럼 현실은 시궁창인 조합이였다. 무엇보다 플레이스타일이 유사한 둘의 플레이는 시너지는 커녕 서로의 동선만 방해하는 플레이만 보여주었다.

뭐, 그래도 끝까지 답을 못찾은 제라드-램파드 조합과는 다르게, 06월드컵에서 기어이 제대로된 콤비플레이를 보여줬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확실히 06월드컵 토너먼트에서는 지단의 전성기 빙의와 마케렐레-비에이라 조합의 포텐이 터진 것 때문에 프랑스가 결승전에 갈 수 있었다.

그의 다리는 워낙 길어서 구너들이 학다리라고 불렀었다. 잘 안 알려진 사실인데 그의 다리는 한쪽다리가 다른쪽다리보다 3cm나 길다고 한다. 뛸때야 모르겠지만 사실 반듯하게 선 자세를 가만 보면 매우 구부정한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좋지 못한 신체조건이 하향세가 빨리 오는 결과를 낳았다. 비에이라가 아스날에서 뛰던 시절 니 아담스가 비에이라의 다리길이가 상이하다는점을 지적하며 말년에는 부상에 시달릴 가능성이 크다고 발언했었는데 과연 그 말대로 30대가 넘어가며 부상이 많아졌다.

현재는 맨체스터 시티의 유소년 관리팀에서 일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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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말이 좋아 새로운 도전이었지 사실상 내친 거나 다름없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비에이라는 이 당시 나갈 생각이 없었는데도 팀으로부터 재계약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다는 사실에 슬프고 당황했다고 말했다. 유벤투스 이적 이후 밝혀진 비화에서는 벵거가 이제 세스크 파브레가스도 써야 하니 비에이라에게 주전을 보장할 수 없다고 자극했다. 지금이야 세스크가 월드클래스 미드필더 중 하나로 꼽히지만 당시엔 비에이라는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였고 세스크는 미래가 촉망되어도 17살짜리 꼬맹이었다.
  • [2] 둘의 앙숙 역사는 이 동영상으로 정리된다.
  • [3] 로이 킨은 자신의 두번째 자서전에서 비에이라와 대치할때 속으로는 무척 겁을 먹었다고 고백했다. 만약 비에이라가 폭발한다면 자신은 비에이라의 상대가 되지 못할거라고.
  • [4] 국내에 해축이 본격적으로 보급된 시기는 05년으로 마케렐레는 유로 2004 이후 대표팀에서 은퇴한 상황이라 당시 소속팀인 첼시에서의 활약만 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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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3 21:4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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