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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4년
          * [[9월 29일]] : 서울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 개장. 같은 날 [[판문점]]을 통해 북한 [[적십자]]사로 부터 남한에 [[쌀]] 5만석(7300톤), [[옷감]] 50만㎡, [[시멘트]] 10만[[톤]] 등의 [[수해]] [[구호물자]]가 왔다. 남한 내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 1번 국도
         || '''종점''' || '''[[판문점]]'''[* 주소는 [[경기도]] ~~[[장단군]]~~[[파주시]] 진서면 어룡리] [[br]] [[평안북도]] [[신의주시]][* 종점은 신의주이나 현실적인 이유로 2곳 다 기입] ||
         전체적인 노선을 보면 [목포시]-[무안군]-[함평군](학교)-[나주시]-[광주광역시]-[장성군]-[정읍시]-[김제시](금구)-[전주시]-[익산시](금마)-[논산시]-[계룡시]-[대전광역시][* 과거에는 논산에서 서대전으로 진입, 현 계백로를 이용 대전시가지를 관통하여 [[서대전네거리역]]에서 계룡로를 이용 유성으로 넘어가는 루트였으나 2000년대 초반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과 공주시 반포면을 잇는 우회도로가 생긴 이후로는 이 도로와 동학사-계룡대 방면 ~~산악~~도로가 1번 국도가 되어 대전광역시를 지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0년대 후반 대전 방동에서 공주시로 넘어가는 계룡터널 및 고속화도로가 생긴 이후로 다시 이곳이 1번국도 구간으로 되어서 현재는 1번국도가 [[대전광역시]]를 ~~살짝 스치고~~지나간다.]-[공주시](반포면)-[세종특별자치시]-[청주시]-[천안시]-[평택시]-[오산시]-[화성시](병점)-[수원시]-[의왕시]-[군포시]-[안양시]-[광명시]-[서울특별시]-[고양시]-[파주시]-'''[[판문점]]'''[* 바로 그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1번 국도 구간이다.] 순으로 올라온다.
         북한 지역 구간은 -'''[[판문점]]'''-[개성시]-[평산군](남천읍)-[사리원시]-[평양시]-[안주시](신안주)-[정주시]-[선천군]을 거쳐 [신의주시]에서 끝난다.
  • 2006년
          * [[1월 6일]] : [[북한]]의 [[비전향 장기수]]들이 [[판문점]]을 통해서 [[국가인권위원회]]와 [[과거사정리위원회]] 앞으로 [[고소]]장을 보냈다. 또, 이 날 [[Fate/stay night]]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어 방영되기 시작하였다.
  • 2013년
          * [[3월 8일]] : 북한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을 통해 남북 불가침 협정을 모두 폐기하고 [[판문점]]의 남북연락채널을 단절하겠다고 [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303083948g 발표하였다].
  • 7월 27일
          * [[1953년]] - [[판문점]]에서 [[UN]]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와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wiki:"중공군"중국인민지원군]] 사령원 [[펑더화이]]가 휴전협정서에 최종적으로 서명함으로써 휴전협정이 체결되었다. 이로써 약 3년간 [[한반도]] 전역을 죽음과 공포로 내몰았던 비극적인 [[한국전쟁]]이 휴전을 맞았다. 이 휴전체제는 [[2014년]]을 기하여 61년째를 맞이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http://www.rfa.org/korean/in_focus/727-05152012161947.html 이 날짜를 뜻하는 번호 ‘727’이 북한 고위 간부들의 차량번호로 할당]되고 있다.
  • 8월 18일
          * [[1976년]] [[판문점]]에서 [[8.18 도끼만행]]이 일어난 날이다. [[북한군]] [[장교]]가 휘두른 [[도끼]]에 [[미군]] [[장교]] 2명이 죽고 8명이 중상을 당했다.
  • EC-121 격추 사건
         미국은 강력하게 대응하여 '''항모 [[엔터프라이즈]]를 비롯하여 40척의 함정으로 구성된 71기동함대를 동해에 진입, 원산 앞바다에서 무력시위'''를 벌였고, [[판문점]]에서는 공산측의 요청으로 290차 군사정전위가 긴박하고, 살벌한 분위기속에서 열렸으나, 미국의 응징조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닉슨]] 행정부는 '''전술 핵무기[* 당시만 해도 주일, 주한미군기지에는 전술핵이 있었다.]를 사용한 보복 공격을 검토'''했으나, 실행되지는 않았다.
  • JSA
         ==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
  • 개성평양간 고속도로
         전체 노선은 평양 충성의다리 남단을 기점으로 하여 평양, 황주, 사리원, 봉산, 서흥, 평산, 금천을 거쳐 개성시를 남쪽으로 지난 뒤 판문점에서 약 2km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서 [[1번 국도]]와 합류하는 식으로 끝난다. 중간에 평양과기대 앞에서 [[평양원산간 고속도로]]가 분기하며, 사리원에서 [[신천사리원간 고속도로]]가 2차선으로 분기해서 신천군으로 빠진다.
         평양을 관광하러 오는 외국 관광객들 중 관광 일정에 [[판문점]] 견학이 포함되어 있는 경우 이 고속도로를 통해 개성까지 오도록 되어 있다.
  • 공동경비구역
         공식 명칭은 <유엔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영어로는 United Nations Command Military Armistice Commission Joint Security Area - Pan Mun Jom. 통상적으로는 공동경비구역(JSA, Joint Security Area)이라고 짧게 지칭하며, 일반인들은 간단하게 [판문점]이라고 부른다.
         사실 판문점이라는 이름에는 사연이 좀 있다. [[6.25 전쟁]] 중 양측의 휴전회담이 처음에는 개성에서 진행됐으나, 보다 중립적인 장소를 물색하던 UN측이 개성에서 남쪽으로 20리 떨어진 이곳을 제안하여 여기서 휴전회담이 열리게 된 것인데, 그 장소가 당시 경기도 장단면 ‘널문리’라는 동네에 있는 '널문리가게(주막을 겸한 조그마한 가게)' 앞 콩밭이었다고 한다.
         당시 휴전회담은 중국어를 포함한 3개 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하였는데 ‘널문리가게’를 중국어로 표기하기가 마땅치 않아 "판문점"으로 표기하면서 조그만 구멍가게 일대가 오늘의 역사적인 장소가 된 것이다. [* 널문리라는 이름에도 나름 사연이 있는데, 옛날 어느 임금이 이곳을 지나 강을 건너게 되었는데 다리가 없어 건너지 못하게 되자 마을 백성들이 집집마다 대문을 뜯어다가 임시로 다리를 놓아 임금이 무사히 건널 수 있도록 하였고 그 후, 이곳은 판자(널)문으로 다리를 놓았던 곳이라 하여 ‘널문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1953년 당시 판문점
         [남한]([대한민국])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파주시]] 진서면, [[북한]] 행정구역 상으로는 [[개성특급시]] [[판문군]] 판문점리에 해당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쌍방 어느 쪽의 영토도 아닌 것으로 되어 있다. [[서울특별시]]에서 서북방으로 62Km, [북한]의 [평양직할시]에서 남쪽으로 215Km, 개성시로부터는 10Km 떨어져 있다.
         공동경비구역의 설치 이후 구역 내에서는 군사분계선의 효력이 반쯤 소멸되어[* 아예 없었던 것이 아니다! 도끼만행 이전에도 JSA 내에는 군사분계선이 엄연히 존재하였으며 군사분계선 표지판도 세워져 있었다.] 남북 쌍방의 관계자들은 구역 내에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지만, 1976년 8월 18일에 발생한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후 군사분계선의 효력을 완전히 되살리고 기존의 표지판 외에 추가적으로 자재를 들여와 군사분계선을 표시,[* 회의장 구역에는 그 유명한 콘크리트 경계석으로, 그밖의 지역에는 일정 간격으로 하얀색 말뚝을 박았다.] 이후 상대 영역에 있던 병력들은 모두 철수하였으며 모든 군인들은 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상대측의 지역에 넘어갈 수 없게 되었다(상대측 병사에게 말을 걸지도 못한다).[* 그러나 사건 이전에 친분을 다졌던 남북 경비병들이 이후에도 분계선에서 몰래몰래 만나 전역할 때까지 친분을 유지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물론 세월이 지나고 세대가 바뀌면서 이런 모습은 대부분 사라졌다고는 하는데..... 과연 그럴까?][* 현재에도 정전위나 중감위 회의장을 비롯하여 분계선 상에 세워진 가건물 내에서는 군사분계선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물론 '''상대 쪽 출입문으로는 절대 나갈 수 없다.''']
         하지만 군사분계선에 걸쳐서 지어져있는 건물들은 관할권이 수시로 바뀐다. 만약 남측 관광객들이 판문점에 와서 회담장에 들어갈 경우 이 건물은 일시적으로 남측의 관할이 된다. 이 때 남측 경비병 중 한명이 건물의 북쪽 출입문을 걸어잠그고 그 문앞에 서서 북한군의 돌발행위..에 대비하여 경비를 서고 또 한명은 회담장 한가운데 있는 회담테이블 끄트머리에 서서 경비를 서게 된다. --...라기보다는 관광객들의 사진 모델이 되어준다...-- 반대로 북한측의 관광객이 같은 건물에 들어오게 될 경우 북측에서도 거의 동일한 루틴으로 경비를 서게 된다.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장에 서양관광객들이 방문한 모습.
         재미있는 사실은, 판문점은 원래 군사정전위원회의 회담을 위해 만들어진 장소이고 지금은 남북간의 교류를 위해 자주 사용되는 장소인데, 정작 이 곳을 방문하는 대부분의 인원들은 일반 민간인 관광객들이라는 점이다.
         보통 판문점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인근의 도라전망대와 제3땅굴까지 패키지로 둘러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런 분위기의 장소가 전세계적으로 드물기는 하다. 삐까번쩍하는 서울과는 너무나 비교되는 판문점과 그 일대 비무장지대의 풍경과 분위기가 이 곳을 굉장히 특색있는 관광지로 만들어준 것이다.
         그렇다보니 판문점을 경비하는 부대입장에서도 관광객 보호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군사정전위원회, 적십자 등의 정부관련 인원들이야 이 곳을 드나드는 게 일상이다보니 알아서 처신을 잘 하지만, 하루에도 수백명이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일사분란하게 통제하고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예방하는 게 보통 힘든 게 아니다. 특히 한여름에 근무복 안에 방탄조끼 받쳐입고 헌병화이바 쓴 채로 부동자세로 20~30분씩 땡볕 아래에 서 있으면 헬이 따로 없다.
         즉, 한국군으로 입대하여 차출된 다음, 공식적으로는 UN군 사령부 소속으로서 미군 시설과 장비를 사용하면서 미군과 한국군 간부들의 교차지휘를 받는 특이한 형태의 군대였다.[* 이 때문에 생긴 재미있는 에피소드 중 하나를 소개하자면, 외박을 나간 JSA 경비병 한명이 술을 마시던 중 사소한 시비가 붙어 어찌어찌 경찰서까지 가게 되었는데, 담당 경찰관이 소속부대를 물어보자 "UN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경비대대" 소속이라고 하자, "그러니까 다국적군이란 말이지?"라고 다시 물어봤다는...] 한국군으로 경비임무가 완전히 이양된 지금도 JSA는 공식적으로 UN군사령부 군사정전위원회의 관할구역이며 한국군에게 경비책임을 이양한 형식인 것.
         이곳의 거의 모든 장소에는 나름의 사연이 담겨있다. 동명의 영화에서도 자주 등장하여 더욱 유명한 [[돌아오지 않는 다리]]는 한국전쟁 포로교환이 이루어진 장소로 이 다리를 건너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영화에서는 이 다리 앞에 있는 초소에서 근무를 서다 [[월북]] 하였으나...판문점을 기준으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가면 공동경비구역 밖이 되므로 이 다리 건너편의 북한군 [감시초소]는 병력이 많고 중무장 되어 있다. 건너가면 벌집 확정...반면 그와 대치해야하는 한국군 [[감시초소]]는 공동경비구역 내부에 있어 정전협정에 의거 중무장이 불가능한 관계로 무인 감시장비만을 가동하고 병력은 배치하지 않고 있다.
  • 공동경비구역 JSA
         [판문점] 등의 배경은 자유의 탑, 팔각정을 포함하여 모두 [[남양주시]] 종합촬영소에 지어진 세트이다. 충남 아산에 지어진 남북 초소를 포함하여 약 9억원 가량의 예산이 들었다고 한다.
         ~~이병헌이 판문점 요원인것도 옥의 티. 당시에도 판문점 경비대원은 신장 180cm이상의 건장한 체격을 갖춘 군인만이 자격요건이 있었는데 아시다시피 이병헌의 키는...~~[* 이병헌의 키는 177cm이라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173cm도 될까 말까 한다. 이 키는 실제 헌병으로도 뽑히기 간당간당한 수준.]
  • 공비
         1.21 사건 이후로 사살된 무장공비의 시신은 경기도 파주시 소재 [[적군묘지]]에 안장되어 있다. 공식적으로 북한은 그들을 '''보내지 않았으니'''까 북에서 인수하지는 않았다. 물론 눈가리고 아웅이지만. 참고로 적군묘지에는 1960~70년대에 공사 중 발견되었거나 2000년 이후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이 발굴 도중 발견한 [[조선인민군]], [[중국군]] 유해도 안장되어 있다. 다만 북한에서 훈련이나 근무중 사망한 군인, 혹은 민간인들의 시체가 바다나 강을 통해서 남으로 떠내려 오는 경우는 북한에서 인정하기 때문에 [[판문점]]을 통해서 운구되었다.
  • 군장/중국군
         QGF02의 개량형. 일단 단가가 낮아지고(...) 세부적인 디자인이 변했다. 앞쪽의 돌출부를 줄이고 귀와 목의 방호면적을 늘렸으며, 나사의 수도 줄어들었다. 턱끈의 위치도 개선된 듯. 현재 중국군의 표준 헬멧이며, [북한군]도 이를 수입하여 [판문점] 경비대 등 외국에 노출되는 부대에 지급하고 있다.
  • 그린베레
         1961년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은 노스캐롤라이나의 포트 브래그를 방문했다. 육군 특전단의 윌리엄 P. 야보로 준장[* 그린베레의 대부. 2차 세계대전 당시 육군 공수부대 창설을 주도했으며, 해당 부대에서 사용하는 여러 장구류 등을 직접 고안하기도 했다. 1965년경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전회담 남측 대표이기도 했으며, 당시 북측 장성과의 회담에서의 독설은 유명하다. 중장 예편, 2005년에 사망했다.]은 정식 군모(軍帽)가 아닌 녹색 [베레모]를 쓰고 브리핑을 했다. 케네디 대통령이 "멋지다"고 하자 야보로 준장은 "저와 전 대원들이 오랫동안 이 모자를 원해왔지만 군 규정때문에 마음대로 못 쓴다"고 대답했다. 백악관은 이듬해 대통령 특명으로 녹색 베레모의 공식 착용을 허용했고, 이 때부터 그린베레는 미 육군 특전단의 상징이자 별명이 됐다.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2/26/2010122601060.html]
  • 길창덕
         흔히 만화가로 알려졌지만 '''[[군인]]'''이기도 했고,더불어 '''[[훈장]]'''까지 받았다. 그래서인지 무덤에는 만화가 길창덕이 아닌 '''군인 길창덕'''이라는 이름으로 묘비가 세워졌는데 본인 뜻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만화에서도 [[반공]]적 요소가 강했는데([[판문점]]에서 멀리 보이는 [[wiki:"조선인민군" 북한 군인]]들을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난다는 어린 주인공들 대사를 봐도....),아무래도 6.25를 겪고 ["실향민"고향에서 강제로 나와야했으며] 전쟁에도 참전했던 분이니 더 그런 성향이 깊을 수 밖에 없었다.
  • 김훈 중위 사건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 241 [[GP]] 3번 [[벙커]]에서 경비[[소대장]] 김훈 [육군] [정보][중위]([[wiki:"육군사관학교" 육사]] 52기)가 사망한 채 발견된 사건.
  • 나무
          * [[판문점]]의 미루나무 : 지금은 베어지고 없다만,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항목 참조. 이 나무 한그루 때문에 '''["제3차 세계대전" 지구가 멸망할 뻔했다]'''(...)
  • 남북통일/인프라
         이중에서 무엇보다 가장 우선순위인 것은 [[1번 국도]]와 경원축, 동해안 [[7번 국도]]이다. 1번 국도와 7번 국도는 이미 이어져 있다. 1번국도의 경우 [[판문점]]을 지나는 구 노선과 개성공단을 지나는 현재 노선이 모두 수요가 많을 것이다.
  • 대동강 맥주
         2000년대 초반부터 남북 화해무드가 무르익었을때 종종 수입되었는데, [[연평도 해안 포격 사태]] 이후 수입이 완전 중단됨으로서 홈플러스 등지에서 구입하는 방식으로는 맛볼수 없게 되었다. 다만 개성공단에 출입하는 직원들이 개성에서 구입하는 방식 또는 [[판문점]], [[통일전망대]] 등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이러한 방식으로 구할수 있는 대동강맥주는 2번 병맥주이며 몰트와 호프,백미(30%)로 양조된 5.5% 알콜함량(640ml)이다.
  • 대성동
         휴전협정에 따라 남방한계선 이북에 조성한 유일한 남측 마을이다. 조금만 북쪽으로 올라가면 [[판문점]]이 있고, 바로 코앞에는 [[북한]] [인공기]가 보이며, 북한 기정동 마을도 육안으로 흐릿하지만 볼 수 있다. 덤으로 재미없기로 유명한(...) [대남방송]도 가끔 들을 수 있다. ~~한국 라디오에선 크레용팝이 빠빠빠 부르고 에이핑크가 미스터 츄하면서 노래부를 때, 북한 라디오에선 김정일 김정은 충성이라고 진지한 말투로 방송하고 앉았으니 퍽이나 재미있을 듯~~
  • 대한민국/외교
         때문에 외국인에게 "한국하면 아시는 거 있어요?"하고 물어보면 대부분 '''[[판문점]]'''이라고 대답한다. 대체적으로 외국에서 보는 [[한국]]의 시각은 요즘은 많이 나아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6.25 전쟁]]', '분단국가' 이미지가 강하고 그와 관련된 노래들(그리운 금강산)이 해외에 널리 알려졌다. 세계적인 테너인 [[플라시도 도밍고]]도 내한해 이 곡을 불렀다.
  • 대한적십자사
         == 판문점채널 ==
         '대한적십자사'는 [[판문점]]에 채널을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적십자회'와 민관 대화외교채널로서 활용중이다.
  • 댄수다
         탱고 커플인 [모니카](허민)와 ~~[wiki:"스윙스"펀치라인킹]~~ [막시무스](김재욱)는 상당히 [[19금]][wiki:"섹드립" 스러운(…) 대화][* 예를 들면, 막시무스는 모니카에게 여름 휴가를 [[판문점]]으로 가자고 한다. '''판문점은 접촉 장소이기 때문에'''(…). 또, 막시무스는 자신의 꿈이 [[폭주족]]이라고 말한다. 모니카가 왜 하필 폭주족이냐는 말에 막시무스는 '''[[속도위반]]할 수 있으니까!!'''라고 말한다(…). [[건전지]]를 선물해주겠다는 막시무스의 말에 모니카가 묻자 막시무스 왈 '''건전지는 힘세고 오래가니까!!'''(...)]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다.
  • 디 인터뷰
         이를 방송으로 지켜본 북한주민들은 김정은이 신이 아닌 자신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인간이란 사실에 당혹해하고 판문점에서 방송을 시청하던 북한군 병사 중 한명은 저런 놈을 지도자로 모셨다며 분개하기까지 한다. 흐느끼며 널 친구라고 생각했다는 김정은의 말에 데이브는 '''나도 널 친구라 생각했고 모두가 너에 대해 거짓말을 하는 거라 여겼지만 가짜 식료품점을 보고 너도 가짜 친구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지 보여주겠다며 다른 나라들을 날려버리겠다는 김정은의 말을 인용하며 '''친구는 다른 친구의 나라를 날려버리지 않는다'''고 일갈한다.
         《[[월드워Z]]》 이후에 참 오랜만에 [[오산]] 공군본부가 나온다. 독약을 다른 북한군 장교가 껌인줄 알고 씹어 먹어버려서 다시 제조하는 곳이 바로 오산 공군본부. 물론 후에 그 장교는 [[끔살]]. 그리고 [[판문점]]도 등장하는데 [[대한민국]]이 나온 것은 이게 전부. 이 때 남북한의 형편상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나오는데, 남한 쪽 헌병 쪽 TV는 최신 HD 벽걸이 TV. 북한쪽은 아날로그형 TV로 나온다. ~~별 의미없는 부분에선 완벽 고증 성공~~ 제임스 프랭코가 세스 로건에게 북한에서 탈출할 방법에 대해 이야기할 때 [[마이클 펠프스]]가 했다면서 [[일본해]]를 '''헤엄쳐서''' 일본으로 가는 게 어떠냐는 언급이 있다. 데이브가 국제 정세에 무지함을 드러내는 개그씬으로, 사실 국제적으로 동해보다 일본해가 더 많이 쓰이는 용어이기는 하다. 다만 이 영화가 한반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해라는 용어를 쓰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지라도 ~~일본기업 소니가 제작사이니~~ 그냥 바다라고 말하던지 다른 중립적 용어로 쓰는게 좋았을 것이다. 애초에 한국말과 한글을 발고증한 이런 삼류 영화에게 그걸 바라는 것은 사실 무리긴 하다.
          게다가 작중에 표기된 한글 표기들도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예를 들면 북한 헬기 문 옆에 새겨진 "주의 비행 중 문을 열지 마십시오." 라고 적혀있어야 할 문구가 "'''주위''' 비행 중 문을 열지 마십시오."라고 적혀있다든지,--주위를 날아다니는사람에게 열지 말라고 하는건가-- [[주석궁]] 입구의 검문소에 부착되어있는 8각형의 "정지" 표지판엔 "'''받아막다'''" 라는 단어가 쓰여있다든지, 후반부 [[김정은]]의 인터뷰 장면에서 판문점에서 남북한 군인들이 보고있는 TV 자막에 "'''하면대면'''" 이라는 한글이지만 한국어는 아닌 알 수 없는 단어가 적혀있다든지 하는 식이다.
  • 땅굴
         [[대한민국]] 국내에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파인 굴이 몇개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북한이 남한 방향으로 판 땅굴이다. 학교 등에서 판문점을 방문할때 반드시 들르는 코스. 더불어서 안보교육도 같이 받는 경우가 많다.
         1978년 [[10월 17일]]에 발견된 제3땅굴은 제2땅굴과 거의 같은 규모이다. [[판문점]] 남방 4km지점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된 이 땅굴은 아치형으로 1시간에 3만여명의 무장병력을 이동시킬 수 있는 규모이다. 게다가 역대 북한의 땅굴 중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겨우 44km에 불과하다!)''' 땅굴이었기 때문에 발견 당시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일으켰다.
  • 랜드마크/목록
          * [[판문점]]
  • 멘탈 오메가
          * 태평양 전선(Pacific Front)[* [[동아시아]] 국가들 중 공산주의 국가([[중국]] 등)를 제외한 자유진영 국가([[한국]], [[일본]] 등)들이 모여 만든 듯한 연합체. [[일본]] 쪽의 느낌이 강한데 [[대한민국]] 출신 유닛은 [[보라매]] 하나 밖에 없다.][* 그 보라매 전폭기도 자위대의 냉동무기 기술을 만나 냉동폭탄을 투하한다는 설정이다.] : 연합군의 힘 위주 진영. 전체적으로 내구력이 타 연합군 진영에 비해 높으며, 냉동 계열의 무기를 보유한다.[* 참고로 레드얼럿 세계관에서도 태평양 전쟁 자체는 벌어졌기에 미군이 일본에 주둔했던 적이 있으며 미션11에서 카네가와 군수산업 과학자들을 빼내던 중 이 기지에 들르기도 한다.] [* 여긴 망했다고 보긴 좀 그런 상황인데 일단 소련 미션4에서 블라디보스토크 쪽으로 침공하더니 제대로 공격하지도 않고 후퇴하고, 중국의 침공으로 점령 당했으나 중국이 너무 쉽게 점령해서 소련이 의심했는데… '''소련 미션11에서 양쪽이 손잡고 소련을 뒷치기해서 세계를 자신들 손안에 넣으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늬들이 정신을 못차려도 너무 못차리는 구나~~진실이 밝혀진 뒤 남아있던 마이다스ICBM을 모두 파괴하고 승승장구하나했으나 소련군 플레이어에 의해 미션12에서 졌고 더군다나 이들이 너무 강해지는 걸 원치않던 엡실론과 테러조직 스콜피온 셀에 의해 판문점에서 분쟁이 일어나고 동맹이 깨져서 서로 치고박고 싸우는 상황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MNy2NS6NY0U 세력 탐구 #1]
          * 특이점 (Singularity. 한반도 '''[[판문점]]'''): 초반에는 멀버랑 바이러스만 주어져 엡실론 어뎁트를 얻을때까지 돌아야 한다. 이 미션이 특이한게 목적에는 연합군의 건물도 파괴하라는 항목이 있으나, 그냥 소련군의 [[철의 장막]]만 파괴하면 승리한다. ~~문제는 그게 어려워서 그렇지.~~
  • 문규현
         총 3회 [북한]에 간 경력이 있으며, 첫 번째로는 [1989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남북 동시 통일염원 [[미사]]의 일환이라는 명목으로 입북하여 [[평양]]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2번째로는 같은 해인 [1989년] 7월 평양청년학생축전에 역시 밀입북하여 참가한 [임수경]의 [판문점] 귀환 목적으로 다시 밀입북했으며, 남한에 돌아오자마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되어 구속되었으며, 징역 5년을 선고받고 2년 6개월간 복역한 후 형집행정지로 가석방되었다. 3번째로는 [1998년]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단과 함께 방북하여 [평양] 통일대축전에 참가하였다. 이 때 발표한 인사말 문제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다시 구속되었으나 보석으로 가석방되었다.
  • 박근혜정부/2013년
          * [[북한]], 남북 간 불가침합의 파기 및 [[판문점]] 연락망 폐쇄를 선언
  • 북한
         대표적인 관광지는 [[백두산]], [[금강산]], ~~[수원시] [권선구]에 있는~~ [[칠보산]], [[신의주]], [[평양]], [[개성]], [[판문점]], [[마식령 스키장]] 등이 있다.
  • 비무장지대
         잘 모르는 사람들은 흔히 휴전{{{+1 선}}}이라는 이름 때문에 어디에 철조망 하나 치고 그것을 경계로 남쪽엔 한국군이, 북쪽엔 북한군이 있어 서로 얼굴 떡하고 마주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도 한데, 실제론 행정상의 구분선이 있고 그 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이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서 각각의 경계선을 쳐놓고 있어서 그 두개의 경계선 사이에 빈 공간이 존재하는데 그것이 DMZ이다. 위에 언급한 개념과 그나마 근사치에 해당되는 개념은 [[판문점]]의 경계선이다.
         판문점 인근의 [[JSA]] 구역을 제외하고 '''원칙적으로는''' 군 병력이 상주할 수 없는것이 규칙이나 남북 '''양측'''에서 '민사행정경찰'(명칭은 민정경찰(남한), 민경부대(북한))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군 병력이라고 쓰는 사람들을 [[GP]]에 배치하고 있다. 사실 휴전 이후로 1970년대까지 자주 DMZ에서 양측 병력간 총격전이 벌어져 연간 서로 수십명씩 사상자가 나오곤 했다.
  • 빌리 조엘
         한국과 관련된 가사는 3번 나온다. [wiki:"6.25 전쟁"North Korea, South Korea], --빤문좀--[wiki:"판문점"Panmunjom], --싱먼리--["4.19 혁명"Syngman Rhee]. 6.25 전쟁은 미국에서도 많은 피를 흘린 전쟁이며, [[이승만]]은 4.19 혁명 이후 미국으로 망명했기에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다.
         [wiki:"로젠버그 사건"Rosenbergs], [wiki:"수소폭탄"H-Bomb], [wiki:"복싱"Sugar Ray], [wiki:"판문점"Panmunjom]
  • 서부전선 포격 도발 사건
         군사전문가들은 서신의 앞뒤 내용이 따로 놀고, 판문점을 거쳐 전해진 서신인 점을 고려 하면, 국군의 29발의 대응사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해 서둘러 추가한 내용일 것이란 조심스러운 분석을 내놓았다.
         [[북한]]은 언제나 그렇듯, 우리는 한적없다고 배째고 나왔고[*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으로 유명해진 것이지만 북한은 말도 안되는 우기기로 나선다. 미군이 도끼를 먼져 던져 날아오는 도끼를 받아 되던졌다고 하는 등, 말도 안되는 일을 박박 우기다 사진 자료가 나오자 조용해진 적이 있다] 국방부는 [[DMZ 목함지뢰 폭발 사건]]의 후처리 문제로 골아픈 상황에서 직접 포격까지 날아오자 근 20여 년간 유례 없을 정도의 강경대응을 선언했다.
         오후 5시 30분, [[판문점]]에서 김관진 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이 평화의 집에 입장해 북측의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비서를 기다렸는데 북한측의 사정으로 1시간이 지난 6시 30분에서야 회담이 시작된다.
  • 세계대전Z/국가별 상황
         더군다나 북한에 잠입한 [[스파이]]들로부터도 연락이 모두 끊겨 북한 내부의 정보를 파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연락 채널 폐쇄, [[판문점]]과 [[비무장지대]]에서 북한군 병력 철수, 남파공작원 파견 중지 등 북한의 이해할 수 없는 행보는 이미 [[서울]], [[포항]] 및 [[대구]]에서 감염사례가 터지고 나서 한국판 [[레데커 플랜]]인 '''창 독트린'''의 힘겨운 실행[* 북한과 다르게 남한은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열린 사회를 가지고 있어서 데모가 일어나는 등 문제가 많았다. 생각해보면 솔직히 '''[[wiki:"예비군" 전 국민의 절반이 총 잡으면 군인 되는 곳]]'''에서 국민들을 고기방패로 쓰려고 했는데 저항이 없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레데커 플랜과 마찬가지로 발안자의 성을 딴 듯한데, 장모 씨가 세운 계획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인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따르면 '장'은 'Chang'으로 표기되기 때문이다. 한국에도 창씨가 있기는 하나 희귀 성씨이다.], [[목포]] 소개, [[강릉]] 고립 및 [[인천]]에서의 [[wiki:"용커스 전투" 좀비 저지 실패]]로 이미 머리 아픈 정부를 더더욱 힘들게 한다. 점점 암울해져가는 상황 속에서 정보부는 일본처럼 인구의 재정착을 위해서 러시아 [[캄차카 반도]]에서 비밀리에 첩보작전까지 실행하지만, 다행히 창 독트린이 힘겹게 성공하고 전쟁 경험[* 이 소설이 나온 2000년대 기준으로 계산하면 [[베트남 전쟁]] 때이다.]이 있는 4,50대를 중심으로 단결해서 좀비 사태를 해결했다고 한다.
  • 연세대 사태
         [[한총련]]은 [[광복절]]을 기념하여 [[북한]]에서 열린 민족통일대축전에 2명의 대학생을 참가시키고, 그들의 귀환에 맞춰 [[집회]]를 갖고 귀환하는 학생들을 환영하기 위해 [[판문점]]으로 행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대로 2명의 학생이 민족통일대축전에 참가하는 데에 성공하고, 한총련은 [[연세대학교]]에 모여 집회를 가지려고 했으나 정부는 이를 원천봉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당시 연세대에는 2만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였고, 정부는 서울·경기의 [[전경]]을 동원해 연세대를 포위하였다. 이때 연세대에 진입하지 못한 학생들이 [[한양대]], [[홍익대]], [[동국대]] 등을 거점으로 삼고, 연세대에 포위당해 있는 학생들을 구출하기 위해 [[사수대]]를 만들어 [[신촌]] 등 연세대 주변지역에서 전경과 산발적인 싸움을 벌였다.
  • 연세대학교
         정확히는 12~20일 까지 벌어진 일들을 총칭한다. 한총련이 광복절을 맞아 [[판문점]]으로 평화 행진을 계획했고 이를 막으려는 경찰과 충돌하게 되면서 격렬한 시위로 발전했다.
         경찰은 원래 시위 인원을 7천여명 정도로 예상했었는데 실제로는 그 두배가 넘는 2만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했다. 이들은 판문점으로의 진출이 좌절되자 연세대에서 농성을 시작하였고[* 시위가 격렬해진 주요한 이유 중 하나는 동년 3월에 벌어졌던 '김영삼 대선자금 공개 및 국가 교육 재정 5% 확보'요구 집회에서 95학번 법학과 노수석이 사망한 것이라고 이해된다.] 연세대에 이르지 못한 시위대들은 '''[[한양대]]''', [[동국대]], [[홍익대]] 등등 여러 대학에 분산되어 시위를 하게 되었다.
  • 용가리
         내용은 외국 폭격기([[B-52]]로 보인다)의 중앙아시아 사막지대 핵폭격으로 깨어난 괴수 용가리가 지하를 헤치고 한반도로 접근, [[판문점]] 부근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내서 서울로 내려와 깽판을 친다는 내용이다. 1964년 실시된 중국의 로프노르(Lop Nor/Nur, 羅布泊·罗布泊) 핵실험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설정이다.
         흥행에도 성공을 거두었는데 당시로서는 자주 볼 수 없는 괴수 영화인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판문점]]에서 나타난 괴물'''일 것이다. 일본의 [[고지라]] 역시 전후 10년이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의 공포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는 점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용가리 역시 전쟁이 끝난지 10년을 조금 넘겼을 뿐이어서 아직 전쟁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이 작품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다.
  • 이수근(북한)
         [[박정희]] 정부에 의해 판문점을 통하여 위장 귀순한 [[간첩]]으로 몰려 1969년 7월 3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이수근은 당시 [[북한]] 중앙통신사 부사장으로 있으면서 [[조선노동당]] 대남사업총책 이효순으로부터 위장 월남 귀순하라는 지령을 받고, 1967년 3월 22일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를 취재하다가 오후 5시경 회의가 끝나자 재빨리 UN군측 대표인 준장 밴 클러프트의 승용차에 뛰어올라 극적인 탈출에 성공함으로써 월남 귀순하였다.
  • 임수경 방북 사건
         45일간의 방북을 마친 임수경은 [[8월 15일]] [[문규현]] [[신부]]와 함께 [[판문점]]을 통해서 귀환한다. 이것도 처음에는 안된다고 했는데 [[단식투쟁]]을 해서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귀환 이후에는 [[안기부]]로 가서 조사를 받은 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5년형을 선고받고 3년 5개월간 복역 후 [[1992년]] 2월 가석방되었다.
  • 자유의 다리
         [[휴전]] 협정이 조인된 후, 대한민국군과 UN군 포로 12,773명의 장병이 이 다리를 통해 돌아왔다. [[판문점]] 부근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와 함께 남북의 회담이 있는 때면 대한민국 협상대표들이 이 다리[* 지금은 물론 다들 통일대교를 건넌다.]와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판문점으로 갔다.
  • 장단군
          금릉, 어룡리가 수복되어 있고 [[판문점]]이 어룡리에 있다. 한편 경릉리에 고려 [[문종]]의 능인 경릉이, 눌목리에 고려 [[숙종]]의 능인 영릉이 있지만 둘 다 북한 땅.
  • 전주비빔밥
          * 1997년 11월 아무 예고없이 故 [[마이클 잭슨]]이 [[전북]] [[무주]]리조트를 방문한 일이 있었다. 그의 방문목적은 당시 유력한 [[대통령]] 후보였던 故 [[김대중]] 대통령의 측근인 유종근 前 [[전라북도]] 도지사를 만나 [[판문점]]에서의 세계평화 콘서트를 개최하기위한 것이었다. 당시 마이클 잭슨이 전주와 무주에 머무르게 되자 그에게 전주 비빔밥을 대접하게 되는데 고추장은 빼고 간장을 비볐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은 이 맛에 반해 그 뒤로 방한할때는 항상 호텔식으로 전주 비빔밥을 찾았고 신라호텔에서 이 일을 계기로 '''마이클 잭슨 비빔밥'''이라는 메뉴를 개발해 외국인들 사이에서 히트를 쳤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의 이런 전주 비빔밥 사랑은 국내에서 엄청난 화제가 됐다. 이를 계기로 [[대한항공]]의 [[기내식]]으로 전주 비빔밥 메뉴가 개발되는 등 마이클 잭슨이 의도치않게 한식 세계화의 동기부여를 해준 셈.
  • 정승조
         2007년 5월 8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남북 [[장성]]급 회담이 열리기에 앞서 남측 대표인 정승조 국방부 정책기획관과 북측 대표인 김영철 중장(우리 군의 [[wiki:"소장(계급)"소장]]급)이 악수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기획관 시절에는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아 북측 수석대표였던 김영철 現 [[정찰총국]]장을 상대하여 군사보장 합의서를 도출해냈다. 김영철은 우리 군이 2010년 [[wiki:"천안함 피격사건"천안함 폭침사태]] 등 최근 각종 대남 [[도발]]을 기획·집행한 것으로 지목하고 있는 사람으로, [[김정은]]의 핵심 측근이다. 2007년 5월 판문점 북측 구역인 통일각에서 열린 제5차 군사회담 당시 정승조 소장이 김영철과 신경전을 벌이면서 회담이 당초 일정보다 하루 더 열리기도 했다.
         2011년 7월 15일 제임스 서먼 한미연합사령관과 정승조 한미연합군 부사령관이 판문점을 방문하고 있다.
  • 제1연평해전
         해전 직후 1시간이 채 안 되어 [[판문점]]에서 열린 유엔군 사령부와 [[북한군]] 사이의 장성급 회담에서 이 문제가 거론되었는데, 이 회담에서 북한측은 한국측이 먼저 도발을 해왔다는 억지 주장을 펴는가 하면, 더 나아가 NLL이 국제법상 북한에서 12해리 이내이기 때문에 함정이 출동한 지역은 북한 영해라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교전에서 일방적으로 패배한 북한의 주장은 당연히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회담은 양측의 입장 차이만 드러낸 채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 조국통일범민족연합
         [[2012년]] [[3월 24일]]에는 김정일 사망 100일 ~~축하~~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범민련 부의장 ~~로수히~~노수희가 한국 정부의 허가도 받지않고 [[방북]] 했다. 북한에서 104일 동안 ~~[[관광]]~~머물며 한국 정부를 비난하고 [http://imnews.imbc.com/replay/nw1200/article/3090253_5786.html '''김정일의 죽음이 민족의 가장 큰 상실이며 최대 슬픔''']이라는 [[개드립]]을 날리며 북한의 [wiki:"프로파간다" 선전]도구로 이용당하다가 7월 5일 [[판문점]]을 통해 [http://news.kbs.co.kr/society/2012/07/05/2498594.html 돌아왔다]. 이에 대해 범민련 남측본부는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687936 노수희 방북은 칭찬할 일]이라는 드립을 상큼하게 날렸다.~~[[답이 없다]]~~ 그리고 [[우리민족끼리]][* 3번 항목의 그 우리민족끼리다. 1번, 2번항목이 아니다..]에서는 그 사건을 가지고 제대로 디스를 했다... [http://youtu.be/xTRb9ILs5Ko 관련영상 링크] 그리고 최근에는 박근혜 정부를 향해서도 비난의 목소리를 날리는 듯. [http://tongil-i.net/2006/bbs/bbs/board.php?bo_table=state&wr_id=994 이것만 봐도 바로 드러난다.] 요약하자면 '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를 20년 이상 후퇴시킬 적대정책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고위급 대화를 즉각 재개하고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하라'라는 내용인데 [[wiki:"이뭐병" 이건 뭐...]] ~~[[천하의 개쌍놈들]]~~
  • 조선인민군 육군
         2014년 여름부터 위에 나온 신형 방탄헬멧이 [판문점] 경비대에 지급된 것이 관측되었다.
  • 조선인민군/열악한 현실
         실제로 그나마 사정이 좋은 [[DMZ]] 민경부대들도 TOD를 통해 살펴보면 보통 하는 일은 농사에 겨울엔 초소에 근무 투입도 안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땅이 척박한 고지 정상에 GP가 위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민경부대들은 화전을 일구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가끔 밭에 불을 놓다가 GP 초소(북한군 GP는 거의 대부분이 지하화 되어있고 초소 하나만 달랑 나와있는 경우가 많다.)를 태워먹는다거나, 불을 끄지 못해 며칠동안 GP 주변 고지가 불덩어리(...)가 되는 ~~보는 입장에서는 그만한 개그가 없지만~~ 웃지못할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이 덕에 대북 정보 수집 첩보원들은 정보수집이 아주 쉬워졌다고 한다. 그 이유로 [[판문점]]에서만 군인이 있다. 물론 보여주기식이지만...심지어 [http://www.nocutnews.co.kr/show.asp?idx=1319865 '''돈만 주면 핵실험장 정보조차 얻을 수 있다.''']
         [[DMZ]]의 [[미합중국 육군]] [[헌병]]|북한 육군|[[대한민국 육군]] [헌병].[* 계급이 중위이고 녹색견장을 찼는데 지휘관 휘장을 차지 않은 것으로 보아 헌병 소대장.] 사진 중앙에 있는 북한군은, 당시 '''[[물고기]]를 잡기 위해 [[바다]]로 나왔다'''. [[폭풍]]에 휘말려 남한까지 떠내려 왔다가 DMZ를 통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한국군이나 미군이나 [판문점]에서 근무하는 장병들 특히 헌병 [[병#s-3|병]]들은 그 중에서도 가리고 가려뽑은 건장한 [병사]들이기는 하지만, 북한군의 저 모습은 '''저건 좀 아니지 않나''' 싶다. 사실 저 군복도 '''낡은 군복을 보이기 싫은 북한군의 요청으로 그 날 [[공수]]되어 들어온 것을 입고 갔다'''고 한다. 저 사진이 찍힌 건 [[2006년]]인데, 그때는 그래도 괜찮았던 편으로 지금은 북한군 장병들의 키가 저보다 훨씬 더 작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 [[대한민국|아랫동네]]는 [[밑|아래]]에 있어서 [[장신|아래]]를 보면서 싸워야 하고 [[북한|윗동네]]는 [[위]]에 있어서 [[단신|위]]를 보면서 싸워야 하는 건가~~
         북한군은 근본적으로 사실상 징병제에 가까운 형태인 지원병제를 취하고 있었다. 이는 북한군의 과거 병력이 한국군보다 적었다는 사실에서도 기인한다.[* 75년 판문점 도끼사건 당시 북한군 총병력은 55만 명이었다. 당시 한국군은 60만 명이었다.] 기본적으로 군에 복무하면 조선노동당 입당 등이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똑같이 [[중국]]도 군필자가 [[중국 공산당]]에 입당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이유는 [[중국 인민해방군]]의 수뇌부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중국 공산당]]이기 때문.]
         물론 한국군도 수도방위사령부가 있고 수도군단이 조직되어 있기는 하지만, 한국군은 기본적으로 적의 선제 공세를 막아낸 후 진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군대고 서울은 [[판문점]]에서 고작 30km 떨어진 도시다.[* 북한에서 최전방도시 취급하면서 4군단을 짱박아놓은 [[해주]]조차 [[판문점]]에서 직선으로 85km나 떨어져 있다.] '''그렇다, 여러분들이 [[육군훈련소|논산]]에서 [[행군]] 훈련할 때 [[완전군장]] 메고 무박으로 걸어다녔던 그 30km다.''' 그런데 북한은 휴전선에서 140km나 떨어진 평양 한 곳만을 방어하는 데 전 군의 10%에 달하는 병력을 묶어놓고 있는 것이다. 다들 잘 알겠지만 북한은 '''[개드립|선제타격을 통해 남조선을 해방시키겠다고]''' 대놓고 떠들어대는데도 말이다. ~~뭐 하자는건지~~
  • 팀 스피릿
         특히 1982년 1월 28일 [[판문점]]에서 개최된 제410차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에서는, 이 훈련을 전쟁도발을 위한 준비라고 주장한 북한측에 대해서 [[국제연합]]군측이 평화를 위한 방어훈련임을 강조하고, 이의 확인을 위해 한·미 연합사령부가 정전위원회 공산측 대표의 요청에 따라, 1990년 3월 [[폴란드]]의 로만 유지비크 육군 대령과 마제 페트리카트 대령이 방한, 참관하여 방어용 훈련임을 확인하였다.
  • 파주시
         [[북한]]과 접하고 있으며 [[판문점]], 임진각, [[경의선]], [[1번 국도]] 등이 있는 탓에 통일의 관문이라는 별명(?)도 있다. 북한에 쌀을 보내거나 개성 공단으로 갈 때는 당연히 통일로를 통해 간다.
  • 파주시/행정
         과거 면소재지는 지금은 북한에 있는 눌목리이다. 현재 남한 관할인 법정리는 금릉리,어룡리 딱 2개리만 있다. 그나마도 면의 동남쪽 끄트머리만 남한령이고 나머지는 전부 북한으로 넘어갔다(…). 북한이 점거하고 있는 법정리는 경릉리,눌목리,대원리,분지리,선적리,전제리 등이 있다. 어룡리에 그 유명한 [[판문점]] JSA 공동경비구역이 있다.
  •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한국어]]: 판문점 도끼만행(살인)사건
         1976년 8월 18일 [[판문점]]에서 일어났던 남북한 '''무력충돌'''에 이어 [[전쟁]]이 일어날뻔한 사건이다. '판문점 도끼 만행' 이나 '판문점 도끼 살인사건([[북한]])', 'Axe Murder Incident' 또는 'Tree Cutting Incident([[미국]])' 으로 불린다.
         당시 [[UN]]군 자격으로 [판문점]에 주둔해 있었던 [[미군]]과 [[한국군]]은 제3초소 부근 시야를 가리는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지시하고 있었다. 당시 판문점 내에는 별다른 군사분계선이 존재하지 않는 단어 그대로의 [공동경비구역]이었는데, 한국군 측 3초소는 북한군 초소 3개소에 포위당한 지점에서 항상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래서 가장 고지대에 위치한 4초소측에서 3초소를 지켜보고 있어야 했는데, 문제는 [wiki:"크고 아름답다" 크고 아름답게] 자란 미루나무가 4초소의 시계를 방해했던 것이다. 따라서 3초소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미루나무의 가지치기를 해야만 했다.
         지휘를 해야 할 경비대장이 먼저 죽은 데다가, 워낙 사건이 순식간에 일어나서 대기 중이던 기동타격대조차 어떻게 손을 쓰지 못하고 사건이 끝났다. 이 사건으로 여러 병력들이 부상을 당했고 경비대장 아서 보니파스 대위와 소대장 마크 배럿 [[중위]]는 현장에서 참혹하게 살해를 당했다. 당시 판문점 감시단에 계시던 분이 월간조선에 회고한 바에 의하면 인민군이 가지고 있던 '''"미국에 대한 적개심"''' 때문에 도끼로 수도 없이 찍어서 거의 토막시체가 될 정도였다고 한다.--인간성이 뭐죠? 먹는건가요?--
         그러나 그래도 이 사건을 써먹고는 싶었는지, 몇 시간 뒤에 스리랑카에서 진행중이었던 [[비동맹회의]]에서 '''"이 사건은 미국놈들 탓이다."''' 라며 한미주둔군을 질타하는 결의안을 제안했고 결국 승인되었다(...) 물론, 이 사건의 주동자가 누군지 확실하게 밝혀지자마자 정세는 확실하게 북한에게 불리하게 돌아섰다. 위에 적혀있는 대로 기자들이 찍은 사진들이 신문에 실리자마자 주동자는 북한, 피해자는 미국이라는 정의가 확실하게 성립되었다. ~~애초에 잘 생각하고 행동했어야지?~~ ~~판문점의 중심에서 세계를 외치다~~
         [판문점] 경비초소에는 기존처럼 애매한 경계 대신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확실한 경계'''가 세워졌다. 경계 밖에 있던 상대편 초소는 모두 철거되고 현재와 같은 상태가 되었다. 벌목된 미루나무의 일부는 판문점에 전시되어서 방문객들에게 공개되고 있으며 미루나무 밑동 앞에도 표석이 세워져 있다. 이 미루나무 밑동은 판문점 관람 코스에 들어있기는 하지만, 버스 안에서만 관람이 가능하다.
         한국에서도 이 사건을 다룬 두 편의 영화가 있는데 하나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판문점 미루나무 작전>'''이라는 영화이다. 두 편 다 이낙훈과 태현실이 주연을 맡았다.
         외국인들에게는 관광명소가 된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담당하는 미군 부대는 원래 캠프 키티호크였으나 이 사건이 발생한 뒤 캠프 보니파스로 이름이 바뀌었다.
         사건의 발단이라고 할 수 있는 박철 중위와 경비대는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잘 먹고 잘 살고 판문점에서 심심하면 행패'''를 부렸는데, 8년후 판문점 소련 관광객 귀순사건 당시 경비병 간의 총격전에 휘말린 후 '''영원히 판문점에서 사라졌다.''' 이때 카투사 소속 장명기 상병이 전사했다. 공식적인 문서는 없지만 그 때 미군 경비병들에게 벌집이 된 북한군 시체 중 하나가 박철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사망 추정인 박철 이외에도 이 사건 이후 판문점 북측 경비원 전원이 교체되었다. 책임자는 숙청돼서 ~~[[아오지]]~~ 수용소에 갔다는 이야기도 있을 정도다. --잘가라 이 [[천하의 개쌍놈]]--
  • 평양 속옷투하
         [[2013년]] 10월 16일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비외른 보리(Björn Borg)가 만든 [[속옷]] 브랜드 '비외른 보리'가 2013년 10월 31일 런칭을 앞두고 "하늘에서 속옷을 투하하겠다"며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인터넷 투표에서 [[북한]]의 [[평양]]이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8&aid=0003128959 압도적인 표차로 선정되었다.]][* 2위는 [[대한민국]]의 [[인천]], 3위는 [[서울]]이다(...). 심지어 4위는 또 세계에서 가장 살벌하다는 '''[[판문점]]'''이다!! [[흠좀무]].--[wiki:북한 북쪽]이 워낙 막장이니 [wiki:대한민국 남쪽]도 막장이라 생각하는듯-- 그외 독도(?!),부산,광주,개성(?!),베이징,후쿠오카,도쿄,칭다오,청진,원산,울산,대구,문경,파주,여주,고양,수원,부산 [wiki:"필요한지" 등등등]...[[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죄다 대한민국 도시들과 북한의 도시들이 몰표 받았다. 그리고 북한 도시 [[추가바람]].][* 하나같이 순위 1위부터 40위까지는 대한민국과 북한의 도시들이다.][* 의외로 중국이나 미국이 없었다. 그나마 우리나라와 북한을 제외한 곳은 스톡홀름과 도쿄 밖엔 없었다.]
  • 평양직할시
         북한 당국도 이러한 점을 노려서 북한 관련 관광상품엔 오로지 평양과 금강산, 그리고 [[판문점]] 정도만 허용해준다.[* 개성공단은 사업체 관련인이 한정적으로 들어올 수 있는 구역일 뿐이지, 관광지가 아니다. --남조선이 기어들어온 구역을 굳이 외국인들에게 보여줄 이유가 없다.--] 이와 같은 '관광 코스'들은 당연히 '''방문객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매우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 있는데, 그래서 평양을 비롯한 관광 코스를 찾은 관광객들은 발전한(?) 평양의 모습을 보고 '북한도 생각보다 잘 사네'라고 생각을 한다고. 하지만 여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남한의 60년대 ~ 70년대(혹은 그 이하)를 연상케 하는, 그야말로 반전세계(反轉世界)가 펼쳐진다. 다만 그런 모습을 구경하려면 가이드--라 쓰고 감시자라 읽는다--의 매의 눈깔부터 어떻게든 처리해야 하는 점이 문제. 이 외에도 북한이 자국의 모습이라며 공개하는 모습들(새로운 시설 건축, 시민들의 모습 등)은 죄다 평양의 모습 뿐이다. 따라서 평양의 겉모습만 보고 북한 전체를 평양과 동일하게 판단하는건 어리석은 짓임을 유념해두자. (이해가 어렵다면, 어째서 북한이 '평양만' 방문을 허용해주는지를 생각해보자. 참고로 대한민국은 일단 입국 허가만 받으면 어느 동네건 대한민국 땅이라면 여행자가 아무런 제한 없이 자기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데 북한은 그렇지 않다) 참고로 언론과 출입을 엄히 통제하는 평양의 특성상 타 지역 주민들은 평양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다는걸 알고나 있을런지도 의문(상기한 이만갑 프로그램의 경우만 해도 타지역 출신 출연자들은 평양 사정을 거의 모르는듯한 눈치다).
  •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이런 굴욕 끝에 미국은 그나마 미합중국을 위해 싸운 [군인]은 반드시 고향에 돌려보내며 죽었으면 시신이라도 거둬들인다는 원칙은 지킬 수 있었으니 나포 11개월 뒤인 1968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에 비로소 승조원 82명과 전사자 시신 1구는 [[판문점]]을 통해 송환되었다. 당사자와 그 가족들에게는 생애 최대의 성탄절 선물이었을 게다. 전사자 유족에게는 안 된 일이었겠지만.[* 여담이지만 이때 함장이 80년대 회고한 바에 의하면 억류 승조원들이 억류 기간 동안 식사로 단무지를 하도 먹어서 지금도 무만 보면 피한다고 한다. 이들은 억류 기간 중에 전기고문을 당하는 것 이외에도 '''남한 스파이의 말로'''라고 고문당해서 피투성이가 된 남녀를 보여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 사건이 끝난 후 8년 뒤인 1976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미류나무(美柳,서양버드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둘러싸고 벌어진 폭력사건(이른바 [[8.18 도끼만행]])으로 미군은 재차 한반도 주변에 기동부대를 전개한다. 이번엔 아예 폭격기가 [[휴전선]] 상공까지 위협하듯 날아갔고 명령이 떨어지면 한미연합군이 휴전선을 넘어 [[개성]] 및 연백(延白)[* 강화도 맞은편 황해남도 연안군과 배천군(한자로는 백천(白川)이라 쓰고 배천으로 읽는다). 38선 이남으로 6.25 이전에는 개성, 옹진과 함께 대한민국 관할지역.] 평야까지 북진할 계획도 세워놓고 있었다 한다.[* 북측이 완강하게 저항할 경우 '''전술핵''' 사용도 고려했다고. 후덜덜...] 이렇게 강력한 대응책에 이번에는 [[김일성]]이 쫄아서 유감 메시지를 전해줄 차례. 미군으로서는 푸에블로의 굴욕을 어느 정도 만회한 셈.
  • 프레이저
         젠체만 하지 세상 물정 모르는 아들들에 비해 트러블이 있을 때에 중재자 역할 같은 [[어른의 사정]]에 밝은 편. 미드에서는 드물게 [[한국전쟁]] 참전용사라는 설정이 있어 한국어 대사가 몇번 나온다. 아시아계 여자를 꾀러 안녕히 가세요 [[개드립]]을 날린다던지 (...) [[판문점]], 평택같은 표현이 몇번 나왔다. ~~어떤 면에서는 [[wiki:"권진수"꽈찌쭈]]보단 잘하더라~~
  • 헨더슨 소령 사건
         1975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UN군 사령부 소속 미 육군 소령 W.D.헨더슨이 북한 측 군인들에게 심하게 구타당한 사건. 영문 위키피디아에도 기록될 정도로 꽤나 비중있는 사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군이 아닌 미군이 당한 사건인지라 국내에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진 않다.
         때는 북한의 대남 도발이 끊이지 않았던 [[wiki:"제4공화국" 4공]] 시절. 당연히 남북한 최정예 군인들과 미군이 코앞에서 서로 정렬해 있는 [[판문점]]의 [[JSA]]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그날 JSA에 UN 소속으로 근무하던 헨더슨 소령은 판문점 건물 근방의 한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에 뜬금없이 북한의 기자 한 명이 소령에게 자리를 비키라고 ~~어그로를 끌었고~~ 시비조로 말을 걸어왔고, 기분이 언짢아진 헨더슨은 당연히 무시했다. 그러자 그 기자는 ~~2차 어그로~~ 소령에게 침을 뱉었고, 그가 발끈해서 일어서자 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물론 헨더슨도 그 기자에게 카운터를 날렸고, 이를 본 북한군 몇명이 헨더슨에게 달려든다. 헨더슨은 그 자리에서 북한 군인들에게 둘러쌓여 심한 구타를 당했고, 목뼈가 부러지는 등의 중상을 입는다.
         이 사건으로 인해 안그래도 엉망인 북미관계는 더 악화되어, 결국 [[판문점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나는 데도 영향을 끼친다. 양 국 군인들끼리 벌어진 구타사건일 뿐이지만 [[중소 분쟁]]같은 대형 사건도 비슷한 사건을 통해 일어난 사건인 만큼 역사적으로 꽤나 비중있는 사건이다.
  • 휴전선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에 세운 군사분계선 팻말. 실제로 이곳의 휴전선(군사분계선)은 이 다리 밑의 하천(사천강)을 지나가지만, 물 위에 팻말을 못 두니 뭍으로 올려서 세워놓았다. ~~다리 위에 세우면 되잖아~~
          * [[판문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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