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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옥선

last modified: 2015-04-15 14:17:35 by Contributors


조선 후기 각선도본에 그려진 판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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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해진도에 그려진 판옥선. 거대한 기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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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해진도에 그려진 판옥선들. 태극북과 색기(色旗)와 천막들은 훈련 때에 덧붙인 장식으로 보인다. 상태가 좋은 기록화들을 보면 상당히 알록달록하다. 항상 소형선들이 함께 그려지므로 일반적인 운용법을 알 수 있다.


영화 명량에서 등장하는 임진왜란 시기의 판옥선. 가장 잘 알려진 모습이며, 주력선답게 가장 격렬한 싸움을 치러야했다.

Contents

1. 개요
2. 역사
3. 설계와 구조
4. 크기와 전투력
5. 단점
6. 서브컬쳐에서의 판옥선
7. 관련 항목

1. 개요

판옥선. 板屋船. Plate Roof Ship

1555년(명종 10년) 을묘왜란 이후에 개발된 조선 수군의 주력 전투선. 다른 이름으로는 전선, 판옥전선이라고도 한다. '판옥선'의 판은 널판지 또는 판자를 뜻하고 옥은 집 또는 지붕을 뜻한다. 즉 기존의 함선을 판(Plate)으로 한층 더 쌓고, 무관(武官)들의 지휘 및 전투용으로 망루(Roof, Watchtower)를 올린 배라고 보면 된다.

2. 역사

1406년(태종 8년)까지 조선 수군 전함은 크기에 따라 대선, 중선으로만 불렸다. 세종대에도 대충 크기에 따라 대선, 중대선, 중선으로 불리지 특별히 따로 정해진 규격이 없었다. 게다가 가장 큰 대선은 소수에 불과해 당시 조선 수군 전함 대다수는 병선이라 불리는 중간 크기 배로 이루어 졌다. 1465년(세조 11년)에 전투와 조운을 겸할 수 있는 다목적 전함 개발이 추진되어 맹선이 건조되었다. 맹선은 정해진 규격에 따라 대맹선, 중맹선, 소맹선으로 나누어 각각 80명, 60명, 30명이 승선 가능한 전함이었다. 그런데 삼포왜란, 사량왜변, 을묘왜변을 거치면서 더이상 맹선으로는 제대로 대항할 수가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원래 맹선은 수심 낮은 서해안에서 조운선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좌우 폭이 넓고 배밑은 얇고 평평하고 갑판도 평평한 구조로 되어있다. 그래서 무겁고 속도가 느려서 잽싸게 움직이는 왜선을 추적하기 힘들었다. 그래도 왜선보다 크고 각종 총통들을 탑재할 수 있어서 대응에는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16세기부터 왜구들이 조총과 누각 대선을 타고오면서 맹선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결국 새로운 전선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는데, 이때 소함주의자와 대함주의자간의 토론이 이어졌고, 결국 대함주의자들의 의견대로 판옥선이 탄생했다. 이후에는 다른 함선들이 보조용으로 돌려지고, 판옥선이 직접 싸우는 역할을 맡았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3. 설계와 구조



맹선과 마찬가지로 판옥선도 배밑이 평평한 평저선이었다. 조선 후기 기준으로 판옥선중에서 가장 큰 상선(上船)은 크기가 19.7~21.2m, 일반적인 판옥선은 크기가 15.2~16.6m였다. 길이는 임진왜란~17세기 기준으로 대선은 본판(배밑)이 22.4m~23.17m, 상부는 26.13m~27.03m였으며, 차선은 배밑이 17.60m~20.68m, 상부는 20.53m~24.12m였다. 가장 작은 차차선은 배밑이 15.20m~20.2m, 상부는 17.73m~23m정도 되었다. 조선 후기 기준으로는 상선은 배밑이 27.7m, 상부는 32.8m였으며 일반 판옥선은 배밑 20.8m, 상부는 23.4m였다. 배수량은 불확실하나 최소 80톤~최대 280톤 내외로 추정된다.

구조를 보면 일단 네모진 통나무 15개를 이어 붙여 배밑을 만들고, 양현에 판재 7쪽 하나하나에 서양의 클링커 이음과 유사하게 턱을 따서 이를 짜맞춘 뒤 나무못을 박아 고정시켜 뱃전을 형성했다. 이물비우는 직판[1] 널빤지로 15쪽을 이어 붙이고 고물비우와 양현을 붙인 다음, 뱃전 위에 멍에를 걸고 그 위에 귀틀을 짜고 겻집을 깔아 1층 갑판을 만들었다. 노는 양쪽 뱃전에 있는 멍에 뺄목에 각각 9척씩 걸었다.

여기에 멍에 뺄목 위에 신방도리를 걸고 그 위에 기둥을 세운 다음, 상장 위에 이물과 양쪽 뱃전을 따라가면서 여장이 상장의 언방 위에 뱃집 멍에를 걸고 널빤지를 깔아 2층 갑판을 만들었는데 여기에는 일종의 지휘소인 장대와 이물돛대, 고물돛대가 있다. 이물돛대와 고물돛대는 뉘었다 세웠다 할 수 있게 장치가 되어 있었다. 고물꼬리에는 널판을 깔지 않고, 난간이 없이 비어 있다. 여기에 선미옥란을 설치해 대소변을 보거나 뭍에 오르내리게 할수 있었다.

이처럼 갑판이 2중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요원인 격군(格軍)은 1층 갑판에서 안전하게 노를 저을 수 있고, 전투요원들은 2층 갑판에서 방해받지 않은 채 전투를 수행할 수 있었다.

승선인원은 시대와 크기에 따라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명종실록에는 50여명이 탑승했다고 기록되어 있는 반면에, 선조실록 1606년 12월 24일 기록에는 "거북선은 전쟁에 쓰기는 좋지만 사수(射手)와 격군의 숫자가 판옥선의 125명보다 많아 활을 쏘기에 불편합니다"라고 되어 있다. 보통 선장 1명, 신호용 깃발로 신호를 다루는 기패관 2명, 선박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훈도 1명, 선박 창고를 관리하는 선직 2명, 항해 요원으로 추정되는 무상 2명, 키를 잡는 타공 2명, 돛줄을 조정하는 요수 2명, 닻을 다루는 정수 2명, 군졸들의 군기와 질서를 바로잡는 포도장 2명, 활을 쏘는 사부 18~22명, 화약과 탄 장전을 맡은 화포장 10~14명, 화포를 맡는 포수 24~26명, 노를 젖는 격군 120~160명이 승선했으며 조선 후기에 배가 커지면서 약 200명이 탑승한 경우도 있었다.

4. 크기와 전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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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유럽의 전열함처럼 강력하고 거대한 선박들이 알려지면서, 크기와 화력에서 밀린다고 평가하기도 하지만 분명히 위협적인 전투선이었다. 구조적으로 취약점이 없는 견고한 선체를 보자. 또한, 전통적인 한선답게 내구력에 모든 설계를 집중했다. 이는 전투력을 떠나서, 좁고 거칠은 남서해안을 오다니기 위한 목적이었다. 재현품들도 잘 보면 살벌한 느낌을 받을수 있다.


만화 '코주부'로 유명한 고 김용환(金龍煥, 1912~1998) 화백이 그린 명량대첩도.* 관련링크

동양판 갤리어스와 전열함의 역할을 오가는 함종이라고 할수도 있는데 이는 판옥선이 개발된 시기의 지정학적인 의미라고 봐야한다. 실질적인 크기와 배수량으로 보면 유럽의 선박들이 워낙에 거대했기 때문이다. 항해 기능을 비교하자면 더욱 평가가 떨어진다. 판옥선의 이러한 평가는 대다수 동양의 선박기술이 화포 적재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방향에만 머물렀기에 얻어진 자화자찬이다. 결국 동양 함선들은 이후에도 화포전투에 관한 기술을 대규모로 발전시키지 않았다. 유럽과 비교해서 전쟁이 자주 없었던것도 이유중 하나라고 할수 있겠다.

이렇게 만든 판옥선은 크고 단단하기 짝이 없어서 화력 면에서나 근접 전투에서나 일본 수군에게 우위를 점할수 있었다. 서양에서 연안 함대 하면 딱 떠오르는 갤리선의 강화판 갈레아스 처럼 연안 방어용이면서도, 갤리선 같은 중소함선이 아닌 중대형함이라는 매우 희안한 특성을 가진 함종이기도 하다.

판옥선은 24문 이상의 화포를 적재했다. 적재하는 화포는 조선 초기에는 천자총통, 지자총통 등 대형포였으나 임란을 거치면서 현자총통이나 불랑기포등 중형포의 비율이 늘어난다.

대포를 만들 구리도 부족한 상황이었는데다 한 번 사격에 들어가는 화약량도 고려를 해야했다. 판옥선 한척에 탑재할 수 있는 화약과 탄의 수량은 한정되어 있고, 당연히 대구경총통보다 중소구경 총통을 다수 운용하는 것이 화력면에서도, 전투 지속능력에서도 우월하다. 난중일기를 보면 초반부에는 대형 총포류와 중소형 총포류가 같이 언급되나 중후기로 가면 대형 총통류에 대한 언급이 사라진다. 다만 그렇다고 대형 화포가 전혀 안 쓰였다고 장담할수는 없으며 대형 대포에 대한 기록이 사라진것은 자료 유실일수도 있다. 예를 들어 일본놈들이 자료를 파괴했거나 빼돌렸다거나 식으로 말이다. 워낙에 역사기록 조작에 전문가인 작자들이니 말이다.

여기에 황자총통이나 별황자총통, 백자총통(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에서 들어온 소형 화포)같은 중소구경 화포나 신기전, (하지만, 판옥선 시대의 신기전은 신호용 도구의 성격이 강했다.) 완구[2] 등의 다양한 화기들을 대량 탑재해 운용했다.

반면 일본 수군은 주로 대조총이나 중소구경 화기를 이용한 원거리 저격과 적극적인 도선을 통한 선상백병전을 주로 수행했다. 기본적으로 조선 수군과 같은 일제사격 등의 조직적인 전술이나 대포에 의한 대규모의 피해상황이 드러나지 않는 점으로 보아, 그 화력에서 조선수군에 크게 밀리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임란 당시의 기록에도 일본군의 대포급 무기중 확인된것은 대조총과 대조총에 의한 피해는 주로 대조총에 의한 장수 저격 정도였다. 일본의 함선이 함포를 동아줄로 묶어 놓았다는 식의 루머가 떠도는데 이는 '조선전역해전도'를 통해 잘못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함선의 기본적인 체급과 그 체급을 바탕으로 한 우월한 화포 탑재량, 결정적으로 조직적으로 화포의 사격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했던 전술능력을 통해 판옥선은 아다케부네는 물론이고 그 이하 세키부네 같은 일본 함선과 비교해서 압도적인 화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여기에 판옥선은 효율적인 전통식 노[3]와 평저선이라는 구조 덕분에 선회력이 뛰어나 비교적 빨리 방향을 전환해 유연한 상황대처가 가능했다.

더욱이 판옥선은 가시나무(뾰족한 가시가 돋은 나무가 아닌 도토리 비슷한 '가시'라는 열매가 열리는 상록성 참나무류)나 참나무, 소나무 등 단단한 나무를 이용해 건조되었고 나무판의 두께도 두꺼워서 내구도가 높은 반면, 일본 수군 전투함들은 강도가 떨어지는 녹나무, 삼나무를 사용한데다 선체의 두께도 얇고 가볍게 만들어서 내구도가 빈약했다.

크기면에서도 일본 수군 주력 함선들을 압도했다. 일본 수군의 주된 전투 방식은 적선에 도선하여 근접전을 펼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일본 수군 주력 함선인 세키부네(関船)나 코바야부네(小早船)는 판옥선보다 크기가 훨씬 작아 도선하려면 아래에서 위를 향해 기어 올라가야 했다. 그 와중에 판옥선에 있는 병사들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쏘는 화살과 던지는 돌을 버텨야 했다. 설사 올라가도 각있는 목봉인 능장(稜杖)이나 단창으로 무장한 조선 수군 군졸들과 싸워야 했다. 프로이스의 일본사에 따르면, 조선수군은 일본군 배만 보면 환호성을 지르며 공격하고, 미늘창 다루는 솜씨가 매우 뛰어나 중국인들도 두려워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물론 이는 절대적인 우위는 아니어서 칠천량 해전에서는 일본군의 도선을 허용해 배를 빼앗겼다는 기록도 있다. 당연히 전부 군사훈련을 안시키고 판옥선에 기생태우고 다니며 술먹고 놀기만 한 원균의 책임이다.

5. 단점

판옥선은 갑판 위에 갑판을 하나 더 올린 구조에 바닥이 평평한 평저선이라 배 크기와 흘수가 낮다. 때문에 악천후 속에서 항해하기 어려웠고 거친 풍랑을 만나면 쉽게 균형을 잃고 전복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때문에 임란 이후에는 2층 갑판의 방패판들을 착탈식으로 만들어, 유사시 떼어놓아 바람이 통과하도록 하여 폭풍에 저항성을 높여 보자는 논의가 있었다. 더욱이 평저선이라는 구조 상 유체 저항이 낮아 속도가 느리고 안정성이 떨어진데다 운용인원이 너무 많아 대양에서 항해하기엔 부적합했다.

다만 판옥선이 처음부터 한반도 서남해안 항해에 최적인 연안 방어용 전함임을 염두하면 큰 문제는 아니었다. 더욱이 평저선이라 해도 표해록에 나온 것처럼 밸러스트로 바닥에 짐을 두어 균형을 잡으면 풍랑을 만난 상태에서도 배의 좌초를 막을 수 있다. 또한 첨저에 가까운 화선이나 정크선도 풍랑을 만나면 위험한 것은 매한가지다. 정크선항목 주석에 나오듯, 첨저식 정크선 신주도 달랑 3미터만 높이기만 해도 선원들이 '풍랑 만나면 대체 어쩌려고 그러나.'하는 기록이 고려도경에 나온다.

6. 서브컬쳐에서의 판옥선

충무공전 시리즈에도 등장. 충무공전1에서는 조선과 왜 양쪽에서 사용하며(…) 자체 전투력은 없지만 아군이 탑승해 전투가 가능하다. 포수 8명을 태우면 거북선을 능가하는 화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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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전 동영상의 판옥선1. 가운데 배가 판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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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군(…)판옥선 함대의 모습.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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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과 판옥선이 합세한 조선 수군의 모습. 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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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게임상의 판옥선의 모습. 저 뗏목이 판옥선이다. 참고로 일본 것도 동일하다.

충무공전2에서는 명백한 고증오류의 모습으로 겉모습은 정상적인 판옥선인데, 기능은 그저 수송선. 거기다 충무공전 1때처럼 아군 유닛들이 탑승해 발포할 수도 없고 그냥 화살을 쏜다(…). 게다가 생산 가격과 스펙 모두 일본의 수송선과 동일하다. 판옥선의 굴욕이다. 때문에 게임이 출시되고 나서 제작사를 강력히 비난한 유저들도 많았다고 한다. 트리거 소프트는 무슨 생각으로 판옥선을 철저히 경멸한건지 모르겠다.

임진록 시리즈에서도 대대로 조선 수군의 기본 병력으로 등장. 실제와 마찬가지로 회전력은 좋으나, 속도가 거북선보다 빠르다는 고증오류가 있다. 그리고 임진록2의 경우 대포가 아닌 소신기전을 쏘아 공격. 충무공전2 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고증오류다. 결정적인것은 임진록2 시리즈에서 누각선보다 생명력이 적다는 사실이다. (고증이 중요하지 균형이 중요하냐!!!?)

이재창의 소설 기시감 연대기에 등장하는 솔시스 연방의 파녹스급 중순양함은 판옥선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더불어 우주전함 거북선은 말 그대로 거북선(…).


불멸의 이순신에선 당연히 조선수군의 주력함으로 등장, 왜선들을 신나게 날려버리는 모습을 볼 수있다. 그러나 치명적인 고증오류로 인해 일본수군의 세키부네와 동급의 크기로 나오는 굴욕을 보았다(...) 2014년 7월에 개봉한 명량에서도 그 강력한 판옥선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는 세키부네가 임란 후반기에 등장한 어느정도 커진 세키부네의 모습[4]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크기면에서의 고증도 어느정도 개선되었다. 자세한 건 항목 참조.

참고로 외국 함선들이랑 덩치가 비슷하다면, 구조적으로는 판옥선이 훨씬 튼튼한 경우가 많다. 쓰임새를 연안에서의 화포싸움에만 한정해서 모든 기술을 때려박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항해기능을 생각한 목재선박이라면, 비슷한 체급일 때 판옥선보다 튼튼하기가 힘들다. (...) 뚜껑만 하나 씌웠더니 거북선이 탄생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

분명한건 임진왜란 휴전기에 조선 사신들이 일본에서 돌아올때 바람이 거칠었는데도 판옥선을 타고 무사히 돌아왔다는 기록이 분명히 있다. 당시 일본에서 출발하려 할때 일본인들은 바람이 거칠어 출항이 불가하다고 했지만 판옥선 책임자는 출항이 가능하다고 했으며 판옥선이 동해를 거쳐 부산까지의 항해로를 절반이나 건너오자 그제서야 일본애들이 출항이 가능하다고 했다고 한다. 연안선이라고 단순히 고기나 잡는 어선으로 생각하는건 엄청난 편견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경우다. 현대식 대양함대 이론을 단순히 옛날시대에 적용하여 연안배 주제에라고 무시하는건 아무 의미가 없는 멍청한 소리다. 연안용 배들이라고 다 같은건 아니기 때문이다.

7.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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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조선 후기에는 곡목으로 만들기도 했다.
  • [2] 당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격진천뢰가 몇 점 바다에서 발견된 바 있다.
  • [3] 전통 노는 서양식 노와 달리 비스듬하게 물에 찔러넣으면서 힘도 별로 안들이면서 아주 쉽게 배를 조종할 수 있었다.
  • [4] 커졌다 하더라도 크기나 갑판, 여장의 높이는 판옥선이 더 우세하다. 대놓고 수평으로 널빤지를놓고 건너가던 불멸때와는 달리 널빤지를 경사지게 올려놓은 채로 도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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