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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거슨 젠킨스

last modified: 2013-12-14 03:52:39 by Contributors


이름 Ferguson Arthur Jenkins
생년월일 1942년 12월 13일
국적 캐나다
출신지 온타리오주, 채탬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62년 자유계약 입단(필라델피아 필리스)
소속팀 필라델피아 필리스(1965~1966)
시카고 컵스(1966~1973)
텍사스 레인저스(1974~1975)
보스턴 레드삭스(1976~1977)
텍사스 레인저스(1978~1981)
시카고 컵스(1982~1983)

시카고 컵스 영구결번
No.31

1971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
밥 깁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퍼거슨 젠킨스
(시카고 컵스)
스티브 칼튼
(필라델피아 필리스)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2.1.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절
2.2. 시카고 컵스 시절
2.3.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2.4. 말년
3. 스타일
4. 명예의 전당 입성


1. 개요

메이저리그의 한 시대를 풍미한 오른손 투수.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이며, 캐나다 출신 선수로 역사상 최초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다. 동시에 캐나다 출신의 흑인 선수[1]이기도 하다.

별명은 Fergie. 흔히들 그래서 그를 퍼기 젠킨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통산 3,000탈삼진을 기록한 선수이자, 빼어난 제구력과 완투 능력으로 정평이 난 선수다. 통산 성적은 284승 226패 평균자책 3.34, 3,192 탈삼진.

2. 선수 생활

2.1. 필라델피아 필리스 시절

원래 묘기 농구팀인 할렘 글로버터스에서도 잠시 뛰었지만, 결국 야구를 선택해서 1962년 필라델피아에 입단했다. 마이너에서 숙성한 후, 1965년 시즌 막바지에 데뷔했는데, 1966년 바로 트레이드되었다. 이 만패팀이 1966시즌 제법 성적이 나와서 그랬는지 베테랑 투수를 영입하고자 그를 트레이드 카드로 써 버린 것. 결국 이는 큰 실수가 되고 말았다.

2.2. 시카고 컵스 시절

1966년 컵스에서는 구원 투수와 선발을 오가면서 활약했고, 이듬 해인 1967년부터 본격적인 선발 투수의 길에 접어든다. 그리고 경악스러운 성적을 찍기 시작했다. 1967년부터 1972년까지 6년 연속 20승을 달성한 것. 이 기록은 워렌 스판만이 가지고 있던 기록이었다. 이 기간동안 매년 280이닝 이상 던졌고, 4차례나 300이닝을 돌파했다. 무엇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 기간동안 그가 기록한 완투가 140번이라는 것. 완투 머신으로 미친듯이 던지면서 그래도 이 기간동안은 제법 괜찮았던 컵스의 성적을 이끌었다.

그런데 팔 빠져라 던졌는데도 상복이 별로 없었다. 1967년 사이 영 상 투표 2위, 1970년 사이 영 상 투표 3위, 1972년 사이 영 상 투표 3위를 기록한 것. 사실 이 기간 중에서 스티브 칼튼이라는 괴수가 27승을 찍어버렸던 1972년은 그렇다 치더라도 1967년과 1970년은 경쟁자들에 비해 그리 밀리지 않았다. 밀린 것은 딱 하나, 이런 유형은 투수가 늘 그렇듯이 승률이었다. 그랬다. 같은 기간 팔빠져라 140완투를 했는데도, 매년 두 자리수 패배를 기록하면서 승률을 깍아먹었다. 평균자책도 다 2점대 아니면, 3점대 초반인데(...)

하지만 박복하지는 않아서 1971년 사이 영 상을 차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해는 경쟁자인 톰 시버가 더 잘 던진 해였다. 승률도 좋았고, 구위의 압도적인 면에서도 더 나았다. 당장 조정평균자책점이 젠킨스가 142로 훌륭했지만, 시버는 194를 찍어버렸다(...) 그래도 사이 영 상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워낙 고생한 것에 대한 동정표 + 다승 및 이닝, 완투는 시버보다 더 나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팔 빠져라 던지다가 결국 1973년 부진에 빠지면서 평범한 성적으로 시즌을 마친다. 그러자 컵스는 그를 바로 트레이드시키면서 버렸다(...)

2.3. 텍사스 레인저스 시절

하지만 텍사스에서 보란듯이 재기에 성공했다. 1974년 328.1이닝을 던지며 25승을 거두고, 무려 29완투에 성공한 것. 이 기록은 아직까지도 텍사스 레인저스의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이다. 다만 사이 영 상 투표에서는 치열한 접전 끝에 당시 강팀이었던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캣피시 헌터에게 밀려 2위를 차지했다. 그 이듬해 또 무리한 탓인지 평균자책이 4점대 근처로 올라가자 텍사스 레인저스보스턴 레드삭스로 그를 트레이드 시킨다.

하지만 레드삭스에서 평범한 성적을 거두고 이닝 소화력도 떨어지자 보스턴은 2년간 그를 쓴 후, 다시 레인저스로 보내버렸다. 여기에는 불펜에서 강등된 후, 졸다가 걸리면서 찍힌 탓도 컸다. 이대로 사라지나 싶었는데 불굴의 의지로 다시 재기, 1978년 18승 8패로 성공적인 시즌을 보냈고, 텍사스에서 4시즌을 더 뛰게 되었다. 레인저스 말년은 예년처럼 위력적이고 압도적인 선수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로테이션을 지켜주는 선수의 위상.

1981년 5승 8패 4.50으로 부진하자, 자유계약 선수가 된 그를 텍사스는 잡지 않았다. 여기에 그가 고향인 캐나다에서 마약 소지 혐의가 적발되면서 더더욱 평가가 떨어졌다.

2.4. 말년

자유계약 자격을 얻어 그가 돌아간 곳은 바로 친정팀이나 다름없는 시카고 컵스. 여기서 또 다시 좀비처럼 부활에 성공한다. 평균자책 3.15를 기록하면서 살아난 것. 문제는 이 놈의 컵스가 늘 그랬듯이 득점 지원을 못하면서 14승 15패를 기록했다는 거지만. 대신 통산 3,000번째 삼진을 잡아내면서 메이저리그에 한 획을 긋는데는 성공했다.

1983년 부진한 성적을 내자 결국 40세의 나이를 끝으로 은퇴한다. 커리어를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결국 PO에는 한 번도 밟아보지 못했다. 문제는 그 이듬 해인 1984년 시카고 컵스는 39년만에 PO에 올라가는데 성공했다(...)

3. 스타일

빼어난 제구력으로 승부를 보는 선수였다. 아울러 공격적인 투구 스타일을 갖춘 선수. 그 증거로 그는 메이저리그 통산 볼넷을 1000개도 내주지 않은 선수다. 볼넷을 내준 것이 997개인데, 그러면서도 동시에 3,000탈삼진을 달성한 4명 중 한 명이다.[2] 완투 실력이 뛰어나서 역대 통산 완투부분 9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이닝당 볼넷 허용이 역대 5번째로 적은 투수.

다만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팀 복이 없어서 PO에는 단 한 번도 등판해 본 적이 없다. 그리고 팀 복 때문에 완투를 미친듯이 하고도 패전이 많아서 승률은 그리 좋지 못하다. 물론 여기에는 자기 잘못도 있는데, 공격적인 투구 스타일 때문에 통산 484피홈런을 기록해서 역대 3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것.[3]

그가 주로 뛴 홈구장들이 다 투수들이 유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좀 더 높이 평가를 받아야 한다. 특히 그가 가장 맹활약했던 1967년부터 1972년까지 리글리필드는 정말 타자들의 구장이었고, 팀 전력도 초극강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커리어 내내 단 한 번도 우승팀에서 뛴 적이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은근히 손해본 승수가 많았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4. 명예의 전당 입성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는 3수 끝에 1991년 75.4%라는 턱걸이 득표율로 들어가게 되었다. 3수만에 빨리 입성한 것은 다행이지만 득표율은 꽤 낮은 편인데, 그 이유 중에 가장 결정적인 것으로는 마약 소지 혐의로 징계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더해 지금이야 승수만으로 선수를 평가하지 않지만, 승률을 중시하던 당시 풍조에서는 좀 평범하기도 했었고. 한 마디로 말해 저평가 + 본인의 잘못이 겹치면서 다소 낮은 평가를 받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 입성으로 인해 그는 캐나다 출신 야구 선수 중 최초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선수가 되었다. 여러가지로 개고생하다 겨우 헌액된 버트 블라일레븐이 떠오르는 대목. 하지만 블라일레븐은 법규를 날린 것과 젠킨스보다 훨씬 처절한 승률 외에는 젠킨스보다 크게 떨어진 면도 없는데 14수나 해야 했다(...)

그는 시카고 컵스의 모자를 쓰고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는데도 이 당시 그렉 매덕스가 31번을 달아버리면서 결국 그의 등번호는 매덕스와 함께 2009년에 이르러서야 결번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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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캐나디언인 것도 특이한 점이지만, 더 중요한 점으로 흑인 투수 HoFer란 점을 들 수 있다. 재키 로빈슨 이래 전설적인 흑인 강타자들이 시대를 주름잡았지만, 히스패닉 혈통이 아니면서 니그로리그를 거치지 않은 명예의 전당 흑인 투수는 밥 깁슨과 젠킨스 뿐이다. 물론 신체적인 조건, 운동능력의 차이 등의 요인도 있지만, 히스패닉계 투수들이 성공을 거듭하는 가운데 본토 출신 흑인 에이스의 명맥이 끊겨버린 것(현역으로는 CC 사바시아, 데이빗 프라이스 정도가 전부다)은 굉장히 아쉬운 부분이며 인종차별 떡밥으로 전개될 수 있는 사안이기도 하다.
  • [2] 커트 실링, 페드로 마르티네스, 그렉 매덕스가 나머지 선수들.
  • [3] 재밌게도 역대 피홈런 2위는 그와 가장 유사한 커리어를 가진 빈 로버츠다. 1위는 제이미 모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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