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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니키아

last modified: 2015-06-25 23:40:58 by Contributors

페니키아(Phœnicia)는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중심으로 고대 지중해에서 활동한 상업민족이다.

Contents

1. 개요
2. 정치
3. 문화
4. 상업
5. 종교

1. 개요

라틴어: Phœnicia
영어: Phoenicia

고대에 레바논, 시리아,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북부에서 활동했던 민족.

페니키아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phoenix'이며, 이는 진한 갈색이나 보라색으로 염색된 천을 뜻하는 말이었다고 한다. 페니키아 인들이 화려하게 염색된 천을 많이 팔고 다녀서 그랬거나, 혹은 그들 자신의 피부색이 갈색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하지만 정설은 없다. 그들 자신은 자신들을 'Kena'nai'라고 불렀다는 설도 있는데, 이는 상인을 뜻하는 히브리 어 계통의 말이라고 한다.

아무튼 이들은 기원전 1200년 경에 지중해에 나타나게 되었으며, 상인으로서 각지에 나타나면서 페니키아 사람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들의 기원은 보다 오래된 것을 보이는데 헤로도토스는 티레의 건설을 기원전 2750년 전후로 비정하고 있으며, 기원전 3000년 쯤이라는 설도 있다.

이들의 항해술의 기원을 청동기시대 말기에 히타이트, 이집트, 미케네 문명을 공격한 바다의 민족과 연관짓는 경우도 있다.

2. 정치

페니키아를 '페니키아 민족'이라고 싸잡아 부르는 건 외부의 관점에서의 일이다. 공통된 종교, 언어를 가지고 있기는 하나, 페니키아 인들은 독립성이 강한 도시 단위로서 정치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페니키아 인이라고 싸잡아서 부르기보다는 각각의 도시 국가 이름으로 불렀다. 성경에서 나오는 두로와 시돈이 바로 지중해 인근의 페니키아인 항구 도시인 티루스(티레)와 시돈이다. 티루스는 값비싼 보라색 염료인 티리언 퍼플(Tyrian Purple)의 산지로도 유명했으며, 에스겔 서에서 서술되는 심판받은 일곱 이방 민족들 중 가장 긴 심판을 받았다고 한다.

페니키아 도시들은 독립성이 강하였으며, 어느 정도 연대 관계는 있었지만 동족 의식이 그리 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알렉산더 대왕이 티레를 공격할 때 주변의 페니키아 도시들은 선박을 제공했다고 하며, 카르타고가 로마에 공격당할 때 우티카는 로마를 지원했다.

각각의 도시는 일반적으로 세습되는 왕정을 취하였다. 페니키아 계열 도시 가운데 중심이 되는 도시는 처음에는 '블로스'였고, 이후 , 티레로 옮겨간다.

3. 문화

페니키아인들은 최초로 갤리선을 사용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갤리선을 써서 해상 무역으로 번성하였다. 페니키아의 주신은 바알이었다. (성서에 뻔질나게 나오는 그 바알 맞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선 우라노스거세할 때 쓴 을 묻었더니 생겨났다 카더라.

현재의 알파벳의 원형이 된 페니키아 알파벳을 만들었으며, 이 페니키아 알파벳은 고대 그리스 알파벳, 에트루리아 알파벳, 로마 알파벳(라틴 문자)에 영향을 준 것으로 여겨진다.

지중해 여러 곳에 식민지를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로마와의 포에니 전쟁으로 유명한 카르타고(카르트 하다쉬트) 역시 페니키아인들의 도시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으로 레반트의 페니키아 도시가 몰락하자 카르타고가 서 지중해권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카르타고가 로마에게 멸망하면서 정치적 구심점을 잃고, 잔존 도시는 서서히 로마에 동화되면서 페니키아 문명도 무너지게 된다.

페니키아인들은 최초로 아프리카를 일주하였다. 헤로도토스가 이 말을 기록하면서 정오에 해가 북쪽에 떠 있었다니 거짓말인 거 같아서 믿기 힘들다고 부연했는데 역설적으로 오늘날 이 기록은 페니키아인들이 아프리카를 일주한 명확한 증거가 되고 있다. 적도를 지나 남반구로 들어가면 에 해가 북쪽에 보이기 때문이다.

4. 상업

상업 도시, 무역 도시라고 하지만 페니키아 인들이 살던 시기 지중해 세계의 무역은 현대적인 이윤을 추구하는 일반 상품 무역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페니키아의 수출품은 보라색 천, 레바논 나무 목재, 파피루스 종이, 정밀한 세공품 등이었다. 이러한 상품들은 당시로서는 아주 가격이 비싼 사치품 이었다. 일반 서민들이 바라는 품목은 아니었으며, 왕이나 지배자에게 의뢰를 받아서 '납품' 하는 형식에 가까웠을 것으로 보인다. 이 당시의 배는 지금에 비하면 너무 작고 운반량도 적어서, 애초에 대량 물자 수송은 불가능하니 고급 사치품을 조금씩 납품하는 정도가 아니면 도저히 수치타산이 맞지 않는다.

실제로 고고학적 조사 결과 팔레스타인 지역의 고대 도시에서는 광범위한 시장 부지는 발견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이 당시 페니키아 인들의 상업은 일반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지배자에 대하여 고급 물자를 공급하는 개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페니키아 인들은 화폐의 사용이 늦었고, 오히려 그리스 인들이 화폐 사용을 더 빨리 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상인으로 유명한 페니키아 사회 내부에서는 서민을 대상으로 하는 상업이 그리 활발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같은 사업은 페니키아 도시들에게는 '국가적'인 것이었으며 도시의 거의 모든 주민이 직간접적으로 사업에 연관되어 있었다는 점에서 상업 도시라고 부르기에는 충분하다.

5. 종교

페니키아의 종교는 다신교적이었으며, 각 도시마다 조금씩 신이 달랐다. 기본적으로 (El)과 바알(Baal)이 믿어졌고, 다른 신들은 이의 변형이었다.

  • 비블루스
    • 엘(El) : 주신격인 신. 기록상으로는 바랏트가 더 많이 등장한다.
    • 바랏트(Baalat) : '바알'의 여성형. 바랏트는 풍요를 상징하는 지모선적인 신으로서, 이슈타르, 이시스와 비슷하다.
    • 아도니스(Adonis) : 그리스 신화에 기록된 아도니스.
  • 시돈
    • 바알(Baal) : 주신. 비블루스의 엘에 대응한다.
    • 아슈타르테 : 비블루스의 바랏트에 대응한다. 이슈타르테는 시돈에서 가장 지배적인 신이었으며, 왕가도 아슈트라테를 섬기는 신관을 자칭하고 있었다.
  • 티레
    • 멜카르트(Melqart) : 도시의 신을 뜻하며, 바알에 대응한다. 멜카르트 자체가 바알에 바쳐진 칭호라는 설도 있다. 그리스에서 헤라클레스와 동일시 되어, '헤라클레스-멜카르트'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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