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표도르 예멜리아넨코


Fedor "The Last Emperor" Emelianenko

Фёдор Влади́мирович Емелья́ненко
Fedor Vladimirovich Emelianenko / Fyódor Vladímirovich Yemel'yánenko
표도르[1] 블라디미로비치 예멜리야넨코


국적 러시아
종합격투기 전적 38전 33승 4패 1무효
9KO, 16서브미션, 8판정
3KO, 1서브미션
생년월일 1976년 9월 28일
신장 / 체중 183cm / 115kg[2]
링네임 "마지막 황제"[3]
주요 타이틀Rings 5대 무차별급 챔피언
Rings 무차별급 토너먼트 우승
Rings 앱솔룻 클래스 토너먼트 우승
PRIDE 2대 헤비급 챔피언
PRIDE 2004 헤비급 그랑프리 우승
WAMMA 헤비급 챔피언

관련항목 : PRIDE 역대 챔피언


2000년대 MMA 헤비급의 최종보스[4], MMA 최고의 레전드 중 한 명. '60억분의 1' 등의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베이스는 삼보.[5]

Contents

1. 소개
2. 전적
2.1. Rings
2.2. PRIDE
2.3. Affliction
2.4. Strikeforce
2.5. M-1 Global
3. 파이팅 스타일
3.1. 전성기
3.2. 몰락
4. 기타
4.1. 악역
4.2. 한국과의 관계
4.3. 제작과정 훈련과정
4.4. 별명
4.5. PRIDE 해체 이후의 행보
4.5.1. Zuffa와의 협상
4.5.2. 패배 이후
4.5.3. 복귀 가능성
4.6. 에밀리아넨코 알렉산더
4.7. 바딤 핀켈슈타인
4.8. 효도르의 저주
4.9. 거품설
4.10. 최면술 드립과 진실공방

1. 소개

fedorsweater.jpg
[JPG image (59.46 KB)]


뒷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소년시절 모습. 앞줄에 크로캅

1976년 소련 우크라이나공화국 루한스크에서 태어났다. 2세에 부모를 따라 러시아 공화국으로 이주하여 흑해 연안의 도시인 스타리 오스콜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용접공, 어머니교사였고 누나가 한 명, 동생이 두 명 있다. 동생 둘 모두 격투기에 입문하였는데 차남인 알렉산더 예멜리아넨코가 2003년, 그의 막내 동생인 이반은 2010년 MMA에 데뷔하였다.

1991년에 고등학교를 마쳤으며 1994년엔 단과대 무역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그는 러시아 군대에서 군 소방수로 일했다. 1999년엔 첫 아내인 옥사나와 결혼하였고, 같은 해 마샤를 얻었다. 이들은 2006년에 이혼하였다. 2007년에는 둘째 딸을 그의 오랜 여자친구인 마리나에게서 얻었고 2009년에 마리나와 재혼하였다. 취미는 독서와 음악감상, 그리고 그림 그리기라고 하는데, 실제 표도르가 홈페이지에 올린 그림[6]을 보면 재능이 있다. 표도르(효도르)는 독실한 러시아 정교 신자로 알려져 있다.

2008년에 80명의 러시아 스포츠인 중 하나로 선정된다. 상트 페테부르크에서 2008 베이징 올림픽성화 주자로 뛰기도 하였다.

최근에 마리나와 이혼하고 다시 첫 부인 옥사나와 재혼했다.

2. 전적

2.1. Rings

종합격투기로 뛰어들기 전에는 유도와 삼보 선수로 활약했으며, 꽤 좋은 성적을 거둬오고 있었다. 그러나 금전적인 문제로 인해 2000년 일본 격투기 무대인 Rings에서 종합격투기 선수 생활을 시작한다.

Rings는 일본의 실전 프로레슬링이 종합격투기로 변형되되는 과정에서 찰성된 단체로, 안면 파운딩이 금지된 대회였다. 이는 효도르에게 불리한 룰로 여겨지게 된다. 레알 그렇게 생각하던 시기가 저에게도 있었습니다

2000년 5월 마틴 라자로프와의 데뷔전에서 길로틴으로 승리, 이후 3연승을 거둔다. 같은 해 12월에 99 킹 오브 킹스 토너먼트 B블럭 예선에 참가했는데, 1차전에서 히카르도 아로나와 대결하게 된다. 이 승부는 연장까지 가는 접전끝에 효도르의 승리로 끝났는데 아로나가 그라운드에서 우위를 잡고 있었는데 효도르가 판정빨로 이겼다는 의혹이 있었다.[7] 확실히 3라운드 내내 아로나가 위에서 압도했던 것은 사실이다. 유효타는 효도르가 좀더 많았고, 연장에선 효도르가 아주 약간 우세했다. 근소한 차이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이에 대해 지금도 논란이 많다. 11년 뒤에 알게 되겠지만 효도르의 약점이 드러나게 된 경기.

그리고 2차전에서 만난 코사카 츠요시에게 그의 첫 '패배'를 당한다. 이 경기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데, 츠요시가 주먹을 잘못 날리면서 팔꿈치가 효도르의 안면에 적중, 출혈이 심해져 닥터체크를 통해 경기가 중단된 것으로[8] , 링스에서는 팔꿈치 패드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팔꿈치 공격이 금지되 있었는데 츠요시는 그 패드를 착용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이러한 공격은 규칙 위반이었다. 따라서 이것을 패배라고 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 대회는 토너먼트 형식이었기 때문에 상처를 입었던 효도르가 진출할 수 없었고 따라서 츠요시가 다음 회전에 진출하게 된다.

이 경기가 그의 전적에 1패를 안기긴 하였으나 모든 MMA 팬들은 이것이 부당한 것임을 알고 있었으므로 베우둠 이전까지는 사실상 무패행진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토너먼트에선 결국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가 우승하는데 그는 MMA에서 효도르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부각되게 된다. 효도르는 훗날 프라이드에서 츠요시에게 설욕을 하게 된다.

2001년에는 무차별급 토너먼트[9]에 참가하여 마우리시오 쇼군에게 첫 패배를 선사한 헤나토 소브랄을 판정으로 물리치며 결승에 진출, 5대 무차별급 타이틀을 두고 바비 호프만과 대결하게 되었다. 하지만 호프만이 어깨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타이틀은 그대로 효도르에게 돌아가게 되었다.

2001년 10월에는 앱솔룻 클래스 토너먼트에 참가해여, 2002년 2월 결승에서 크리스 해즈만을 KO로 꺾고 다시 한 번 우승을 차지한다. 이 토너먼트를 마지막으로 Rings가 해체되면서 효도르는 PRIDE로 무대를 옮긴다.

2.2. PRIDE

2002년 6월 PRIDE 21에서 그가 만난 상대는 Pancrase의 강자 네덜란드 출신의 세미 슐트였다. 당시 탄탄하지 못한 프라이드 헤비급에서 챔피언 후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의 기량을 갖추고 월등한 하드웨어를 가진 그를 상대하는 효도르를 보며, 사람들은 과연 이길 수 있을까 하며 흥미롭게 지켜봤다. 211cm, 116kg의 거구를 상대로 182cm, 105kg의 효도르는 신체적으로 매우 불리한 상태였다. 그러나 효도르는 3라운드 내내 슐트를 관광태우며 만장일치 판정승으로 프라이드에서의 첫 승리를 장식하게 된다.

2002년 12월의 상대는 당시 PRIDE 2인자라는 이미지의 히스 헤링이었다. 효도르는 다크호스 정도의 이미지였으나 이 경기에서도 1라운드 내내 전매특허인 얼음 파운딩을 작렬 시켰고 그라운드에서도 우위를 점하여 완전히 히스 헤링의 얼굴을 곤죽으로 만들어 버린다.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헤링은 경기 내내 하위 포지션에서 난타당했고 헤링을 응원하던 관중들은 얼음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져 갔다. 얼마나 처참하게 맞았는지 1라운드가 끝난 뒤 닥터 스톱으로 경기가 끝나게 된다. 당시 그라운드에서 이런 강렬한 펀치를 날린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레슬러의 압박형 G&P와는 전혀 다른, 온몸의 체중을 날리는 강력하면서도 날카로운 펀치는 MMA에 또다른 형태의 완성형 파이터가 탄생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94.gif
[GIF image (168.66 KB)]


이 경기로 타이틀 도전권을 얻게된 효도르는 2003년 3월 16일,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와 헤비급 타이틀 매치를 갖게 된다. 당시 노게이라는 콜먼, 헤링, 심지어는 떠오르던 야수 밥 샙까지 무너뜨리며 당대 최강의 사나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었으며 감히 누가 그를 이길 것인가 예측마저도 되지 않는 존재였다. 당시 그의 지구력과 그라운드의 기술은 최고라고 평가받고 있었다. 허나 효도르는 선제 타격으로 우위를 점한 뒤 노게이라가 방어에 급급하게 만든다. 그 뒤 노게이라가 서브미션의 게임을 즐긴다는 것을 간파, 철저하게 탸격으로 노게이라를 농락하였으며 그의 모든 관절기를 파쇄, 헤링전에서 보여줬던 얼음 파운딩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이때 무려 20여 분 동안 노게이라를 그라운드와 파운드에서 두들겼다. 경기 후 세명의 심판들이 모두 3:0의 만장일치로 효도르의 판정승을 선언하였으며 효도르는 프라이드 헤비급 챔피언 자리에 오른다. 그는 이 타이틀을 프라이드가 없어질 때까지 지킨다.

fb.gif
[GIF image (1.29 MB)]


석달 뒤 2003년 6월에는 IWGP 헤비급 챔피언 출신 후지타 카즈유키와 맞붙는다. 이때 효도르는 경기를 일찌감치 끝내려는 의도로 선제 공격을 하였으나 후지타의 훅이 효도르의 오른쪽 얼굴에 강타하여 효도르는 휘청거리기 시작한다. 이후 테이크다운을 당해 가드에 몰리지만 후지타의 공세를 원천봉쇄하며 체력을 회복했고, 이스케이프 후 스탠딩에서 바디킥+원투 콤비테이션으로 다운을 빼앗은 후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마무리지었다. 효도르는 경기 후 가진 인터뷰에서 '후지타는 단 한방만 적중시켰을 뿐이나 이것이 꽤나 셌다.'라고 소감을 밝힌다

그 뒤 2003년 8월에는 개리 굿리지와 경기를 갖는다. 굿리지와의 경기에서 그는 타격에서 강타하여 다운 시킨 뒤 그라운드에서 연타를 퍼부어 TKO승을 하게 된다. 이때 효도르는 손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고 뒤이어 수술을 하게 된다. 이 때문에 그는 한동안 링을 떠나야 했다.

df.gif
[GIF image (492.62 KB)]


이 당시 효도르는 당시 떠오르던 강자, 미르코 크로캅과 경기를 가질것이 거의 확실시 되었으나, 이 부상때문에[10], 프라이드 측에서는 잠정 타이틀을 걸고 크로캅과 노게이라의 대진을 성사시키고 이 대진에서는 노게이라가 승리한다.

손이 나은 뒤 2003년 12월 이노키 봄바예에서 나카타 유지를 역시 1라운드에서 KO시키며 승리한다. 한데 복귀전을 PRIDE가 아닌 봄바예에서 가졌기 때문인지 봄바예의 프로모터들이 DSE의 사주를 받은 야쿠자의 협박을 받는 사태가 벌어졌다.

2004년에는 다시 PRIDE로 돌아와 헤비급 GP 개막전에 출전하여 PRIDE 2000 무차별급 그랑프리 우승자이자 UFC 전 헤비급 챔피언 출신인 마크 콜먼과 맞붙는다. 콜먼의 묻지마 태클에 밀려 TD를 허용했으나 가드에서 암바를 성공시키며 2분 11초만에 승리를 거뒀고, 이로써 그가 타격전뿐 아니라 그라운드의 기술도 뛰어난 선수임을 입증한다.

2f.gif
[GIF image (205.29 KB)]


뒤이어 2004년 6월에는 GP 2라운드에서는 역시 전 UFC 헤비급 챔피언인 케빈 랜들맨과 경기를 가졌다. 랜들맨은 효도르를 상대로 환상적인 수플렉스를 성공시켰으나 효도르는 거의 대미지를 입지 않은 듯 곧바로 스윕에 성공했고, 파운딩에 이은 암락으로 승리를 거둔다. 이로써 해머하우스는 효도르에게 1,2인자가 모두 패하며 PRIDE 헤비급에서의 영향력을 급속히 잃게 된다.

2004년 8월에는 GP 결승전에서 오가와 나오야를 가볍게 암바로 제압, 결승에서 다시 한 번 노게이라와 격돌했다. 그라운드 상황에서 노게이라가 효도르의 미간에 박치기를 했고, 효도르는 이로 인해 미간이 심하게 찢어지며 경기 속행이 불가능해진다. 비록 반칙이었으나 노게이라에게 고의는 없다고 판단되어 이 경기는 무효처리되고 약 네 달 후인 12월 31일의 남제에서 3차전을 기약하게 되었다.

3차전에서 효도르는 다시금 그의 천재적인 게임플랜을 보여주는데,3차전에서는 아예 그라운드로 돌입하지 않는 전략을 선보인다. 이는 뜻밖이었는데 그 이유는 첫번째 경기에서 효도르가 노게이라를 그라운드에서 내내 우세함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노게이라도 특급의 선수인 이상,언제까지고 그라운드 게임만 하면 본인도 불리할 수 있다는것을 인지하였던 것이다. 이때 경기 1라운드에서 효도르는 노게이라를 경기 시작후 9분에 걸쳐 타격을 가했으며 유도식 메치기로 노게이라를 그라운드에 몇차례나 매다 꽂았다. 2라운드와 3라운드에서는 효도르는 테이크 다운식 방어와 카운터 펀치로 경기를 이끌었으며 그 결과 다시금 3:0 판정승을 거둔다. 이로서 효도르는 60억 분의 1의 사나이의 명칭-당시 그랑프리의 부제-와 잠정+정식 헤비급 타이틀을 거머쥐게 된다.

d2.gif
[GIF image (1.01 MB)]


표도르의 주 무기인 펀치-TD 연계.

다음해인 2005년 효도르는 크로캅과 헤비급 타이틀 방어전을 치르기로 한다. 크로캅과의 대전의 2003년부터 거론된 꽤나 유명한 떡밥이었는데 당시 크로캅은 K-1에서 프라이드로의 전향을 성공적으로 하였으며 강자들을 연이어 꺾으면서 자신의 랭킹을 높이 끌어올였다. 그 뒤 크로캅은 효도르에게 공개적으로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보였는데 따라서 프라이드 측에선 두 선수간의 대결을 2003년 말 쯤에 개최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효도르는 프라이드와의 계약상의 문제로 잠시 프라이드를 떠나 이노키의 붐 바예 프로모션과 계약을 하였기 때문에 두 선수간의 매치를 성사 시킬 수 없었고 이에따라 프라이드 측에선 잠정 챔피언 타이틀 매치를 벌여 노게이라와 크로캅과 맞붙게 하였다. 이때 노게이라가 승리하였고 때문에 통합 타이틀 전에선 크로캅이 아닌 노게이라가 효도르와 대결한 것이었다.

그 뒤 노게이라의 패배이후 크로캅은 효도르에게 도전하고자 하였으나 랜들맨에게 패배하여 이것을 실현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워터맨을 꺾고 부활한 뒤 랜들맨과의 재경기에서 그를 이겼으며 뒤이어 마크 콜먼을 꺾음으로써 랭킹 1위에 오르게 된다.

이로써 2005년 8월 28일에 마침내 크로캅과 효도르는 맞붙게 된다. 이는 종합격투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잘 알고 있는 유명한 매치였다.[11] K-1 출신인 만큼 타격에 능한 크로캅을 상대로 효도르가 그라운드 위주의 플레이를 할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효도르는 타격 위주로 경기를 운영한다. 크로캅은 1라운드에서 잽을 적중시켜 효도르의 콧뼈를 골절시킨다. 효도르는 이러한 부상에도 불구하고 크로캅의 타격을 잘 피하면서 적절하게 그라운드로 유도하였고 체력이 약한 크로캅을 체력을 천천히 소모시킨다. 이로써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효도르가 유리해 졌고 그렇게 크로캅을 농락한 효도르는 3:0 판정승을 거두면서 명실공히 헤비급 최강의 남자임을 보여줬다.

d9.jpg
[JPG image (16.08 KB)]


이후 2005년 남제에서 줄루징요를 26초만에 정리해버리고(…) 2006년 10월의 미국 대회에서 다시 만난 마크 콜먼을 관광태운다. 2006년 남제에서는 마크 헌트를 상대로 방어전을 치룬다. 이때 랭킹 1위였던 크로캅이 UFC로 떠났으므로 마크 헌트가 랭킹 1위 자격을 갖고 있었다. 효도르는 발가락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바를 성공시킨다. 그러나 헌트는 이것에서 빠져나왔으며 역으로 기무라를 두 번이나 거는 놀라온 모습을 보여줬다. 그러나 효도르는 이 두번의 기무라 공격을 모두 버텨내었고, 그 후 그라운드에서 탈출하여 다시 헌트의 탑을 뺏은 뒤 8분 15초 경 역으로 헌트에게 기무라를 걸어 탭아웃을 받아내며 승리를 거둔다. 이때 효도르는 헌트와의 경기에서는 가드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이며 훗날 약점으로 지적될 모습을 처음으로 드러냈다.

2007년 3월 Bodogfight에서 당시 미들급 1위였던 맷 린들랜드를 상대로 복귀전을 치뤘다. 경기 초반 슬램을 당할 뻔하다가 로프를 잡아서 막아내었고[12] 탑 포지션을 내주었으나 린들랜드의 하체관절기를 방어한 후 포지션을 뒤집어 암바로 승리를 거뒀다.

2.3. Affliction

프라이드의 해체 이후 그의 거취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효도르가 프라이드가 망하기 직전 러시아의 불독(=Bodogfight)에서 경기를 벌인 바 있었고 따라서 그가 불독에 갈 것인가에 대해 논란이 있었는데 그의 매니저인 바딤과 불독 대표 칼빈 아이레와의 사이가 나빴기 때문에 성사되지 않는다. 그 뒤 척 리델은 효도르가 UFC로 올 것임이 확실하다고 발티모어 선 지와의 인터뷰에서 말하여 UFC 행이 유력해져 보였다.

이때 UFC데이나 화이트 사장은 효도르와의 계약에 대해 상당한 흥미를 보였다. 그는 UFC 76 진행 도중 옥타곤에 등장, 효도르가 2007년 말이나 2008년 초에 계약을 했으면 한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또한 그는 효도르가 UFC에 온다면 당시 챔피언이었던 랜디 커투어와 타이틀 매치를 벌이게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이 계약은 성사가 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효도르의 매니저인 바딤이 UFC가 M-1 프로모션측에게 사업에 참여하게 해주길 원하였고, 효도르가 세계 컴뱃 삼보 대회 출전을 허가해 주어야 한다고 말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화이트는 효도르가 UFC에서 2007년 말에서 2008년 초에 경기를 갖길 원하였는데 이는 효도르의 삼보 토너먼트 출정 일정과 겹쳤다. 따라서 UFC와의 계약은 결렬됐으며, 효도르는 2007년 10월 러시아 종합격투기 단체인 M-1과 2년간 6경기에 출전하는 조건으로 계약하게 됐다.

2007년 12월에는 DSE의 후신 격인 연말 이벤트 대회 야렌노카에서 초청선수격으로 참가하여 최홍만과 이벤트성 매치를 벌였다. 한 경기에서 2번의 탭을 받아내며 가볍게 승리. 총 2번의 암바가 들어갔는데 첫번째 암바가 들어갔을 때 최홍만이 효도르의 허벅지에 친 탭을 레프리가 뻔히 보면서도 인지하지 못했다.[13] 효도르는 탭을 느끼고 그립을 풀었는데 그냥 그대로 진행됐고, 1분 후 두번째 암바를 잡아냈다. 참고로 이 때 심판이 그 악명높은 시마다 유지였다.명불허전

조용히 살아가던 그는 2008년 7월 19일 Affliction에서 전에 UFC 헤비급 챔피언에 두번 오른바 있던 팀 실비아와 미국 캘리포니아 주 애너하임에서 맞붙게 되었다. 이는 종합격투기 팬들을 흥분시킬 또 하나의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다...그런데 결국 34초만에 펀치 러시에 이어 그라운드로 돌입, 바로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TKO승. 팀 실비아가 허리부상 이후 운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해 UFC에서 퇴출된 상태였지만, 전 UFC챔피언에게 일방적인 초살 KO를 이끌어 내는 모습에 미국 팬들에게도 강렬한 이미지를 심을 수 있었다.

9c.gif
[GIF image (1.45 MB)]


경기 직후 랜디 커투어 이 등장, 효도르와의 대결을 잠깐 동안 조율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둘의 대결은 성사 일보 직전까지 가기도 했고 데이나 화이트는 커투어가 UFC 91에서 브록 레스너에게 승리할 경우 두 선수의 대결을 주선할 의사를 비쳤다. 하지만 커투어가 레스너에게 패하면서 이 대결은 무산된다.

2009년 1월 25일에는 M-1 Affliction에서 전 UFC 챔피언인 안드레이 알롭스키를 맞아 또다시 1라운드 KO 승을 거두었다. 초반에는 알롭스키의 정교한 타격에 방어로 일관했지만 트리플 악셀 플라잉 니킥에 카운터를 꽂아넣으며 그대로 실신시켰다. 알롭스키는 월등한 체격과 복싱 테크닉을 이용해 효도르의 테이크다운 시도를 모두 무력화 시키고 코너에 몰아 유리한 위치를 잡았지만 무리수를 두다가 한방에 골로 갔다. 알롭스키로서는 다잡은 경기였다고는 할 수 없어도 모처럼 만든 좋은 상황을 오바질하다 날려버렸다는 평은 피할 수 없게 됐다. 반면 효도르는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지 발로 날아오는 덕분에 "이게 왠 떡?" 하면서 주워먹었다.

18.gif
[GIF image (Unknown)]


2009년 7월에는 조쉬 바넷과 대결할 예정이었으나 바넷이 약물 테스트에서 양성반응을 보이며 아웃됐고, 리저버로 투입될 예정이던 비토 벨포트와의 대결마저 무산되어 버린다. 이 사건을 계기로 Affliction이 MMA 사업을 철수했고 효도르는 Strikeforce행을 선택했다.

2.4. Strikeforce

2009년 11월 7일 미국 시카고 시어스 센터 아레나의 Strikeforce에서 알롭스키를 1라운드 22초만에 KO시킨 브렛 로저스와의 경기를 가졌다. 1라운드 시작하자마자 레프트 잽에 코가 찢겨 출혈을 보였으나, 곧바로 TD를 성공시키며 우세를 잡았다. 그리고 2라운드 풀스윙한 라이트 훅을 적중시키며 실신 TKO 승을 거뒀다. 2라운드 1분 46초.


2010년 6월 26일 대회에서는 파브리시오 베우둠과 경기를 가지게 되었다. 초반에 펀치러쉬에 베우둠이 미꾸라지 권법을 시전 적절히 주먹을 섞다가 드러누워버렸다. 이것을 다운당한 것으로 오인한 효도르는 성급하게 파운딩을 난사하며[14] 마무리를 지으려다가 베우둠의 트라이앵글 초크에 잡히고, 암바까지 내주며 탭아웃을 했다. 1라운드 1분 7초. 황제의 충격적이면서 허무한 첫 패배. 그의 장점을 하나도 살리지 못한 경기였다.

2c.jpg
[JPG image (11.53 KB)]


경기 뒤 효도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넘어져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일어설 줄도 모른다. 사람들이 나를 우상으로 여기지만 나 역시 질 수도 있는 인간일 뿐이다. 하지만 신의 가호로 재경기를 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이길 것이다." 베우둠은 효도르를 지칭하여 '세계 최강의 사나이'라고 격찬한 뒤 그의 우상이라고 말하였다. M-1 글로벌의 바딤은 자신의 최고 목표는 효도르와 베우둠간의 재경기를 치루는 것이라고 공언한다. 하지만 베우둠이 팔꿈치 수술로 장기 결장하게 되면서 재경기는 무산된다.

효도르는 2010년 말에 Strikeforce의 헤비급 챔피언인 오브레임과의 대결을 하고 싶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오브레임의 K-1 출전 관계로 무산되고 효도르는 2011년 Strikeforce 헤비급 토너먼트에 참전, 2월 13일 개최된 토너먼트 1차전에서 안토니오 실바와 경기를 가졌다. 1라운드는 스탠딩 타격으로 적절히 버티다가 종료. 2라운드는 시작과 동시에 실바에게 테이크다운을 당한 뒤..체격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풀마운트까지 내주는 수모를 당하면서 맹렬한 파운딩과 함께 암트라이앵글 초크까지 당했다. 막판 니바를 시도하기도 했으나 실바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효도르를 향해 손가락을 흔드는 제스쳐를 취했다. 결국 2라운드 종료 이후 파운딩의 후유증으로 인해 오른쪽 눈이 심하게 부어올라 닥터는 효도르의 오른쪽 눈이 안보이므로 이 경기를 진행시킬 수 없다고 하여 닥터 스탑을 하게 된다.

경기 뒤 가진 인터뷰에서 효도르는 은퇴의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 아마도 이것이 마지막 경기일 것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적절한 때 인것 같습니다. 그동안 너무도 감사했습니다. 난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행복한 선수생활을 해왔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주님의 뜻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실바와의 경기 후 은퇴를 선언했는데 경기 후 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효도르의 매니저인 바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생각에 효도르가 그렇게 말한 것은 예상치 못한 패배를 한 것 때문에 감정이 고양된 상태여서 그런 것 같다. 이번 경기의 결과가 과연 정당한 지 모르겠다. 만일 닥터 스탑으로 경기가 끝나지 않았다면 3라운드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어떻게 알겠는가? 때문에 내 생각엔 여러분은 효도르가 케이지에 복귀하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한 뒤 그는 덧붙이길 효도르가 어떤 판단을 하건 자신은 존중할 의향이 있다고 하였다. 하지만 바딤은 은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고, 효도르는 3일 후 은퇴선언을 번복한다.

2011년 7월 30일. 댄 헨더슨을 상대로 복귀전을 가졌다.. 1라운드가 시작 직후 둘은 격렬하게 공방을 시작했는데, 효도르는 헨더슨의 왼손훅을 맞아 비틀거리기도 했고, 결국 헨더슨이 효도르를 케이지에 몰아붙이며 더티 복싱을 시전하며 자신에게 유리하게 게임을 풀어나갔다. 1라운드가 거의 막바지로 접어들었을때, 헨더슨이 더티복싱을 풀며 링 중앙에서 다시 둘의 타격전이 이어졌을때, 효도르가 밀어 붙이면서 날렸던 펀치에 걸려 넘어지며 밑에 깔린 하프가드상태가 되는 듯 했으나 순간적으로 헨더슨이 스윕, 옆으로 빠져나오면서 효도르의 겨드랑이 사이로 펀치를 집어넣었는데 이것이 적중, 효도르가 무릎이 풀리면서 엎드린 상태로 쓰러졌다. 헨더슨은 계속 효도르의 머리를 향해 해머링 등 추가 타격을 시도했고 레프리는 헨더슨을 막으며 효도르의 TKO패로 시합을 종료시켰다.

MMA의 발전에 비해 표도르의 경우 한 방 펀치력을 제외하면 기술 수준 등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부진은 예견이 되었지만, 헨더슨전의 기량은 부진 정도가 아니라 은퇴를 심각하게 고려해야할 수준이었다. 덧붙여 다운을 빼앗은 뒤 파운딩을 내리꽂을때 불안정한 포지션에서 두들기다가 간단하게 스윕을 당했는데 헨더슨이 보여준 스윕 자체는 딱히 고난이도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MMA에 주로 나오는 스윕중 하나였다. 2011년 8월 5일, 데이나 화이트가 기자회견을 통해 스트라이크 포스에서 효도르가 퇴출됐음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2.5. M-1 Global

2011년 11월 M-1 Global에서 제프 몬슨을 러시아로 불러들여 3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이 경기에서는 극도로 몬슨의 그래플링을 경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스탠딩 위주의 전략을 펼쳤다. 몬슨은 계속 태클을 시도하고 클린치를 유도했으나 효도르가 잘 막아냈고 타격전으로 몰고가 압도적인 우세를 보였다. 몬슨은 이노키알리까지 가며 그라운드 게임을 유도했으나 효도르가 끝내 응해주지 않은 채 만장일치로 효도르의 승리가 선언됐다. 일단 제프 몬슨을 꺾었다는 점에서 아직 일정 수준 이상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15], 약점으로 평가받던 레슬링에서도 몬슨의 태클을 모두 방어해내는 좋은 모습을 보였다. 지루한 경기에 그라운드 게임을 회피했다는 비난도 있었으나 이것은 전략적인 운영에 충실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옳다.[16] 다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좋은 시합내용은 아니었고[17], 연패를 끊었다는 의의는 있을 지언정 정상권과는 거리가 있는 기량이었다는 평이 대세.

한 달 후 12월에는 Dream의 연말 이벤트인 겡끼데스까 오미소카에서 이시이 사토시에게 KO로 승리했다. 시원스러운 KO 시합이었지만 워낙 미스매치라 그냥 떡밥. 실은 성사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고 한때 시합 자체가 취소될 위기에까지 놓이기도 했다. 이시이가 일본 유도를 대표하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고 효도르 역시 유도계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시합이 열릴 수 있었다는 의견도 있었다.

2012년 6월 21일 페드로 히조와 대결하여 초반 펀치공격으로 다운을 뺏은 후 파운딩을 먹여 약 2분여만에 실신 KO승을 거두었다. 이후 기자회견에서 2번째은퇴 선언을 하며 마지막 황제는 링을 떠나게 되었다.

3. 파이팅 스타일

타격이나 그라운드 양면에서 사각을 찾아볼 수가 없는 '뭐든지 잘하는 선수'로 현대 MMA에 최적화된 격투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의 만능형 스타일이었다. 자세한 건 밑에서 후술.

3.1. 전성기

삼보를 베이스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플링, 서브미션에 능숙하고 무엇보다 밸런싱이 뛰어났다. 특히 상위 포지션에서 상대의 가드를 뚫고 날리는 강력한 파운딩이 일품. 히스 헤링전에서 유명세를 탄 이 스타일은 이후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얼음 파운딩'으로 굳어진다. 스탠딩 타격에서도 그만의 독특한 펀치 궤적을 이용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는데 2000년대 중반의 경기들을 보면 경량급 못지 않은 핸드스피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밸런스가 엄청나게 좋아서 체중을 크게 이동시키는 펀치를 연타하면서도 중심축은 흔들리지 않는다. 클린치 상황에서 유도식으로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는 테이크다운 능력도 일품. 가장 무서운 것은 이 두가지가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것이다. 우선 빠르고 강력한 펀치를 연타한 후 거리를 좁혀 클린치 상황을 만들고, 테이크다운을 빼앗아 탑포지션을 얻어내는 것이 승리공식.

그라운드에서 상위 포지션일 땐 효도르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불리는 '얼음 파운딩'을 구사하여 때릴 건 다 때리면서 탑 포지션으로 이동해 서브미션으로 끝내는 형식이었다. 기무라 록, 암바, 리어네이키드 초크를 능란하게 구사하며 가드 포지션으로 깔렸을 땐 겉모습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특유의 유연함으로 유유히 빠져나가거나 서브미션을 구사하는 척하며 위에 올라타거나 등 뒤로 돌아가 리어네이키드 초크로 끝내는 식.

신체적 능력도 뛰어나지만, 무엇보다도 냉정하고 완벽한 멘탈도 강점이다. 상대의 스타일에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자기 위주의 판을 만들어 나가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 도통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포커페이스로 시합에 이겨도 타이틀을 따내도 도무지 표정에 변화가 없을 정도다. 상대 선수들은 그의 표정을 볼 때마다 혼란에 빠졌고, 도무지 감정을 읽어낼 수가 없기에 오히려 상대방이 심리적인 압박을 느끼기도 했다. 또 경기에서 일어날수 있는 최악의 상황들 후지타와의 경기에서 럭키펀치를 정확히 맞고도 후지타를 껴안고 회복해 초크로 끝내고, 랜들맨에게 백을 잡힌 상태에서 머리부터 떨어지는 슬램을 당한 후에도 침착하게 대응하는등 경기중에 생기는 최악의 상황에도 흔들림없이 대처했다.

UFC 초대 웰터급 챔피언이자 희대의 명 트레이너인 팻 밀레티치는 "그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다. 그 어떤 파이터라고 하더라고 자기보호를 위한 본능이 있는데, 그에게서는 전혀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모기가 무섭다고 농담처럼 이야기 한적이 있긴 한데.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의 하지 않으며, 타이어 매달고 달리기, 장작패기, 타이어 무거운 해머로 내려치기, 턱걸이 등의 안드는 자연적인 방법으로 근력 훈련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8] 이때문에 한때 록키식 트레이닝이 재조명을 받기도 했다.

가장 큰 약점은 피지컬이다. 일단 피부가 너무 약해서 안면 스크래치가 TKO가 될 수 있는 MMA 선수로서는 심각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안토니오 호드리고 노게이라와의 경기에서 버팅으로 안면 출혈이 생기면서 노 게임이 선언되었고, 링스시절 코사카 츠요시에게 커팅으로 닥터 스톱 TKO를 당했다.

그렇다고 그것을 무시할 정도의 좋은 몸을 타고난 것도 아니다. 183cm/105kg의 체중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이것은 의도적으로 증량한 것으로 20대 초반에는 70kg 대였다고 한다. 실제로 그의 신장(183cm)은 라이트 헤비급의 포레스트 그리핀(191cm)이나 미들급의 앤더슨 실바(188cm)보다도 작다. 많은 전문가들이 효도르의 적정 체급은 미들급 정도로 보고 있다. UFC의 배드 마우스 프랭크 미어로부터 '살만 찌운 돼지'라는 독설을 듣기도 했는데 190cm/109kg의 미어가 작은 편에 속하는 UFC 헤비급에 비교하면 경기전 감량조차 안하는 효도르의 체격은 약점이다. 그런데 이 체격으로 203cm/118kg의 팀 실비아나 196cm/120kg의 브렛 로저스를 줄줄히 잡아내니 거의 묘기대행진의 수준이라고 볼 정도.

그래서인지 전성기에도 미들급의 앤더슨 실바, 웰터급의 조르쥬 생 피에르, 라이트급의 BJ 펜 등 타체급의 강자들처럼 압도적인 우세를 점하지 못하고 항상 아슬아슬한 경기내용을 보여주었다. 미들급이 증량만 한 상태로 헤비급에서 싸우고 있던 거니까.

3.2. 몰락

이렇듯 전성기에는 신체조건 이외에는 무결점의 파이터로 알려져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며 점차 기술적으로도 약점을 드러내게 된다.

가장 큰 약점은 바로 패턴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강한 선수라도 정상의 자리에 오르면 수많은 도전자들의 분석의 대상이 되어 그 약점을 드러내게 된다. 정상에서 싸워나간다는 것은 그 약점을 보완하면서 지속적인 기량의 향상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인데 효도르는 이 부분에서 어느 정도 한계를 보였다.

첫번째는 타격패턴이다. 현대 MMA의 펀치 테크닉의 기본은 복싱인데 효도르는 다른 선수들에 비해 잽이나 스트레이트보다는 훅성의 펀치를 즐겨 사용했다. 궤도가 커진다는 단점을 빠른 핸드 스피드와 돌진력으로 보완했고 여기에 클린치 테이크다운을 연계시키며 굉장히 재미를 보았다. 거의 Rings 시절부터 써온 패턴인데 확실히 오래 썼다. 이걸 최초로 완벽하게 봉쇄한 선수가 알롭스키였는데 알롭스키는 효도르를 철저하게 분석하여 펀치 싸움에서 압도했고 심지어 클린치 테이크다운조차 한차례 무력화시켰다. 비록 카운터를 허용하며 실신 KO패를 당했으나 알롭스키가 효도르를 상대로 우위를 잡고 있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19]

또한 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하더라도 그래플링이 뛰어난 편에 속했으나, 패턴이 모두 공략되고 선수들의 기술 수준이 향상되면서 시대에 뒤처지고 말았다. 게다가 인터뷰에서 '난 삼보 말고 다른 건 안배움'이라고 말하면서 완성형 웰라운드 파이터로 여겨지던 그가 실은 컴뱃 삼보로만 싸워오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어쨌든 그 결과가 베우둠 전에서 확실히 드러나면서 웰라운드로 여겨졌던 그의 그래플링 기량에 대한 대대적인 재평가가 이루어졌다.[20]

가장 큰 약점은 레슬링인데, 이것은 00년대 MMA형 레슬라이커들의 약진과 무관하지 않다. 일단 하단태클 방어력은 전성기에도 약점으로 꼽혔고, 이외에도 전체적으로 클린치 싸움에서 밀리는 경우가 점점 늘어났다. 아로나-콜먼-랜들맨-안실-헨더슨에 이르기까지 레슬링에서 전부 밀렸다. 특히 레슬러들과 주짓때로들의 그라운드 스킬이 엄청나게 향상된 반면 효도르의 기술은 여전히 그대로였기 때문에 그라운드에서도 총체적 난국이 이어졌다. 과거 링스에서 하위 체급인데다 주짓떼로인 아로나에게 그라운드에서 고전한 약점이 그대로 이어져서 프라이드가 망한 뒤에는 베우둠전에게 당한 트라이앵글을 시작으로 안토니오 실바에게 전방위 관광을 당했고 심지어 하위 체급에서 활동하던 헨더슨에게까지 레슬링에서 밀리는 모습을 보였다.
실은 이러한 레슬링 스킬의 정체현상은 비단 효도르 뿐 아니라 러시아의 삼비스트들을 비롯, PRIDE 상위권 파이터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21] 그도 그럴게 프라이드 시절에는 레슬러라고 해봐야 전성기가 지난 마크 콜먼, 케빈 랜들맨 정도였으나 프라이드가 망하고 북미로 넘어와 케이지 컨트롤에 능숙한 선수들과 대결하면서 약점이 고스란히 밝혀졌다.

문제의 원인이 훈련방식에 있다는 주장이 있다. 동생인 알렉산더마저 언급할 정도로 자주 제기되었는데, 훈련량은 매우 높지만 정작 그 내용은 체계적이지 못하고 비과학적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의 훈련은 매번 폐쇄된 환경에서 소수의 스탭들에 의해 진행되어 왔으며 연패 이후에도 네덜란드에서 타격만 가끔 교류하는 방식을 고수한다. 이른바 '록키식 트레이닝'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적인 방식으로 이는 체계적인 훈련과 기술교류를 중시하는 현대 MMA의 흐름에 역행하는 방법이었다. 계속 이기던 전성기 시절에는 합동훈련 등으로 전력을 노출시킬바에는 아예 교류를 안하는 것이 이익이라는 의견도 있으나 연패 이후 현대 MMA에서 주짓수, 레슬링을 연마하지 않는 것은 어리석은 교만이라는 주장이 있었고, 결국 한계를 보이고 말았다.

물론 그의 몰락의 원인을 전적으로 기술적인 정체 탓으로만 돌리는 것도 옳지 않다. 노쇠화를 비롯한 신체능력의 저하 또한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효도르는 MMA 무대에서 10년간 30번이 넘는 경기를 치렀는데, 이 상황에서 몸이 온전하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다. 1976년생이라는 나이 또한 적지 않은 수치라고 할 수 있다.[22]

기술이 정체되는 것 또한 프로 파이터의 운명이라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정상권에서 30전 이상의 전적을 가진 파이터가 스타일을 개조해서 성공한 사례는 없다. 기술체계를 바꾼다는 것은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지만 반대로 장점 또한 모두 없앨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전적이 늘어간다는 것은 파이터로서의 수명이 깎인다는 것을 의미하고, 그 중 전성기를 누릴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3~5년 정도다. 오히려 효도르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그 기간이 길었다고 할 수 있겠다.[23][24]. 그리고 효도르 역시 네덜란드에서 킥복싱을 배우는 등 새로운 무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문제는 그 노력의 방향이 대세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거다. 주짓수와 레슬링을 소홀히 했으니까. 참고로 레드데빌은 효도르와 게가드 무사시 이후로는 이렇다할 세계구급 선수를 배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는 러시안 탑 팀도 마찬가지다.(세르게이 하리토노프는 골든 글로리로 이적했으니 예외[25].)

그러나 효도르를 잡은 안토니오 실바와 댄 헨더슨의 약빨이 빠진 후의 처참한 경기력이 드러나자 급속도로 그를 재평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4. 기타

모스크바 남쪽의 소도시인 스타리 오스콜(Старый Оскол, Stary Oskol) 출신으로 우크라이나계 러시아인이다. 때문인지 우크라이나 출신인 이고르 보브찬친과도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 하지만 러시아 국기를 두르는 세리머니나 블라디미르 푸틴의 초청을 받은 일화 등을 생각하면 그의 정체성은 러시아인이라고 보는 쪽이 옳을 듯 하다.

쇼맨쉽 마이크웍이 전혀 없고 항상 매너 좋은 모범생이다. 다르게 말하면 캐릭터에 임팩트가 없는데 극강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따로 캐릭터를 만들 필요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유명해지기 전에는 대우가 별로 안좋았다. 노게이라와의 타이틀전에서는 5천 달러만 받고 싸웠다, 반면 노게이라는 30만 달러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PRIDE 챔프에 등극한 뒤에는 1천만 ~ 1천5백만엔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어플릭션이나 스트라이크포스에서는 30만 달러 정도를 받았다. 하지만 실비아, 알롭스키가 각각 80만, 150만을 받은 것을 감안하면 실력에 비해서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고 있지 않다. 오죽 딱했으면 별 상관도 없는 마크 콜먼이 '효도르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라고 말했을까.

00년대까지만 해도 북미에서의 상품성이나 인지도는 그저그랬는데, 00년대 후반부터는 미국에서 활약하면 미칠듯한 피니시율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10년대 초반 무렵에는 인기가 상당히 올라갔다. 실례로 CBS를 통해 방영된 2011년 2월의 실바전은 평균 74만 명의 시청자수를 기록하며 역대 Strikeforce 기록을 갱신했다.

물론 러시아에서의 인기는 국민스타급이다. 일례로 2011년 M-1에서 가진 복귀전은 거의 10년 만에 러시아에서 치른 시합이었는데, 여기서 22,000명의 입장객과 750만 가구(생방송 490만)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참고로 관중이 2만명을 넘어가는 이벤트는 UFC 대회를 통틀어도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체형은 보다시피 배나오고 둥글둥글한 귀여운(!?) 체형이라 운동부족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데, 사실 운동량이 많아도 방법에 따라선 근육의 크기와 힘이 쎄질뿐 지방이 많이 소모되지 않기도 하며, 지방소모에 신경을 안쓴다 던가 식사량이 지방과 칼로리가 많을 경우 아무리 운동해도 저런체형이된다. 실제로, 효도르의 몸을 잘 살펴보면 근육양이나 체형 자체는 상당히 단련된 형태다. 비슷한 예로 유도선수들에게서 저런 경우가 많이 보인다.

한국에서는 친근한 얼굴 때문에 의외로 '귀엽다'라는 평을 많이 듣는다.(…) 아이스크림 두 개를 든 사진을 슈렉과 일치시킨 합성도 있다.

삼보를 비롯한 러시아의 격투기, 전통문화 홍보에 관심이 많다. 심지어 베우둠에게 패배한 후에도 '내가 잘못해서 진 것이지 삼보가 약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할 정도.

BJ 펜, 료토 마치다 등과 더불어 약물을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추측되는 몇 안되는 선수 중 하나. 오브레임의 증량건을 들어 올림픽급 검사 드립을 치거나 '어떤 검사라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장담하는 걸 보면 내추럴이 맞긴 맞는 듯.

2010년 5월 정계 진출설이 돌면서 은퇴설이 돌기도 했다. 스트라이크포스와 계약된 2경기를 치르고 곧바로 하원의원 선거에 진출할 것이라고 한다. 근데 떨어지면... 이에 대해 효도르측의 의견이 나왔는데, 정계 진출은 맞으나, 은퇴 여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니 떨어지면 돌아와야 한다니까 결국 떨어지고 돌아와서 졌다. 제대로 망했다.

성격도 굉장히 착한데다 멘탈도 매우 좋다. 광팬들과 그의 매니저 바딤 핀켈슈타인만 아니면 까일 일이 없는 선수. 빠가 까를 만든다까가 빠를 만든다 두 공식의 수혜자

카와스미 아야코가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과연 여왕님이라고나 할까. 기사왕은 격투황제를 존경하는가. 링크

2012년 5월 18일 러시아 MMA연맹 초대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2013년 김보성과 같이 영웅: 샐러멘더의 비밀이라는 으리 영화에 출연[26]했다.


그는 시비가 붙어도 조용조용하게 말로 해결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그런데 솔직히 누가 시비를 걸겠어 비슷한 성격을 가진 러시아 운동선수가 있던 것 같은데

히스토리 채널 인간 병기에서는 삼보편에서 사범으로 출연해서 진행자인 제이슨 챔버스, 빌 더프에게 삼보를 가르쳐주고 그들에게 대전상대를 정해줬다. 제이슨 챔버스의 말로는 표도르가 직접 나와서 대련하지 않은 게 천만 다행이라고 했다.

4.1. 악역

평소의 매너 좋은 모습에서는 상상하기 힘들지만 PRIDE에서는 악역 최종보스 이미지였다. 과묵하고 성실한 이미지를 어레인지하여 냉혹하고 차가운 이미지로 마케팅에 들어가 '차가운 눈동자(冷たい瞳)의 챔피언'이 되었고 오히려 그에 맞서는 랜들맨, 오가와, 노게이라 등이 '뜨거운 영혼(熱き魂)'의 선역[27]으로 부각되었다. 물론 현실은 시궁창이었지만.[28] PRIDE의 아이돌 출신 여성 해설자인 코이케 에이코는 노게이라가 효도르에게 난타당하자 울어버리기까지 했다.

북미권에서도 'ice cold'한 이미지로 통한다. 이쪽은 어째 돌프 룬드그렌같은 이미지다. 테마곡인 Era의 'Enae Volare Mezzo'는 북미 PRIDE 해설자이자 UFC 4대 헤비급 챔피언인 바스 루텐이 가장 좋아하는 테마곡이라고 한다.

terminator.jpg
[JPG image (12.23 KB)]


대강 이런 식

이 때문일까? 일본에서는 경기장에서의 엄청난 환호와는 달리 인기가 거의 없다. 일본의 한 잡지에서의 종합 격투기 선수 인기 투표에 따르면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약 2%정도밖에 안됐다고 카더라.[29] 미국에서도 밉상으로 통한다. 러시아인인데다가 전UFC 챔피언을 4 관광시킨 탓도 있고 거기다 그 넷 중 세명이 미국인이다. 그래서 일본에서건 미국에서건 그가 승리하기를 바라는 팬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때문에 PRIDE에서는 탑독임에도 청코너에서 등장한다던가 하는 일들이 있었다. 관중들의 반응을 들어보면 대부분 상대선수를 응원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의 유일하게 관중들로부터 엄청난 응원을 받았던 경기가 있는데 바로 베우둠전이다. 데뷔 이래로 그렇게 환호를 받은 경기가 없었는데 그만 져버렸다.

그래도 MMA계의 전설에 대한 예우로 야유를 받는 일은 별로 없으며, 환호를 받은 상대선수들도 죄다 효도르보다 원래 인기가 많은 선수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아무나 이겨라" 분위기(…) 콜먼 전에서는 미국 무대 데뷔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중들이 죄다 'Fe-dor' 챈트를 하기도 했다. 모 안습 챔프의 경우는 야유를 받았다(…) 그렇다고 효도르도 일방적으로 환호를 받은 건 아닌데, 입장할 때 야유를 받다가 상대를 KO시킨 후 관중들이 놀라서 벙쪄있다가 환호를 받으며 퇴장한다.

하지만 노게이라가 그랬듯이 이 분과 경기를 했으면 야유를 받았을 듯.[30]

4.2. 한국과의 관계

삼보 세미나를 위해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으며, 무한도전에 출연해 멤버들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정상급의 선수치고는 배가 좀 나오고 뚱뚱해보여서 안티들에게는 '효돼지'라고 까인다.아니,까인다기 보다는 다른나라엔 이런 별명이 없다. 별칭으로 부르기는 하는데,,,또한 2005년 이후부터는 떡밥 매치가 대다수였기에 "효공무원"이라는 별명으로 까이기도 한다. 하지만 러시아를 제외하고 가장 인기가 있는 나라가 한국이란건 변함이 없다. 프라이드 이후 몇몇 경기는 러시아와 한국에서만 중계권을 산 적도 있다. 참고로 무한도전 토이 애니메이션 "무한도전의 휴일"에 하하의 게임친구로 나왔다. 이걸도 보아서 무한도전이랑은 꽤나 친숙한듯.

흑역사가 되어버린 선유꿀 광고가 있다. 이 광고로 '꿀도르' 란 별명도 얻었다.


효도르가 이 광고에 대해 15억원대 소송을 걸었으나 패소했다. 그 이유는 "선유꿀 좋아요" 해놓고(...) 이걸 문제삼아 광고를 찍었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게 말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선유꿀에서 이미 M-1 스탭들에게 체류비 명목으로 3억원 가량의 금액을 지급한 상태였다 카더라. 아마도 M-1측은 이후에 좀 더 떡고물이 떨어질 것으로 기대했는데 생각대로 되지 않자 소송을 걸었던 모양. 여담으로 이 광고는 마비노기 메인스트림에서 패러디 되었다.

한국언론의 뜨거운 사랑을 받아 쇼프로에도 자주 얼굴을 비치며 온라인 게임 런칭 이벤트나 CF도 외국인 스포츠맨 중에선 독보적으로 많이 출연한다. 심지어는 동생인 에밀리아넨코 알렉산더 역시 효도르의 동생이란 타이틀로 스타킹에 출연한 적이 있다. 드라마 <내조의 여왕>에도 카메오로 출연. 사실 쇼맨쉽이 떨어져 실력에 비해 인기가 없는 편인데 한국에 왔을때 열광적인 반응에 감명을 받았다고.

2008년 방한 때는 이파니와 데이트를 한적이 있다. 유명 격투기 선수와 플레이보이 모델의 만남이어서 해외 언론에서 스캔들성 기사가 나기도.

2010년 9월에는 대한삼보협회 명예회장직을 맡았다. 더불어 11월에 다시 한국을 찾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사랑의 김장김치 담그기' 행사에 참석, 같이 온 아내와 함께 김장절대 2번 항목이 아니다! 2번항목이었다면 효도르 는 아마 지금도 감옥에 있었을 것이다을 담갔다. 평소에 김치를 매우 좋아한다고도 밝혔다. 평소에 김치를 먹는다는 말은 립서비스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래도 김치를 잘 먹기는 한다. 묵은지를 소화해내는 몇 안되는 외국인 중 하나.


4.3. 제작과정 훈련과정

표도르의 체형은 마치 격투기를 하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격투에 최적화되어 있다. 살은 찌우되 움직임에 제한이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찌우고 키도 180cm를 웃도는 키라 리치에서도 밀리지 않다.

훈련에 대해서는 링크에 나오는 바와 같이 주로 산에서 한다. 산에서 달리기를 비롯하여 체력훈련과 기술훈련을 하며 특별히 비싼 도구를 사용하진 않는다. 산에서 달리기를 할 때는 타이어를 끌고 달리는 경우도 있고 그냥 달리는 경우도 있다. 또한 커다란 쇠망치로 타이어를 내리치는 등 타이어를 최대한 활용해서 훈련을 한다.

4.4. 별명

링네임 이외에도 많은 별명을 가지고 있다.

  •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ロシアン ラスト エンペラ. 일본에서 유래했다. Rings의 마지막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붙여졌다. 셔독의 링네임이나 북미에서는 '러시안'을 빼고 'The Last Emperor'라고만 한다.

  • 얼음 주먹
    氷の拳. 일본에서 유래했다. 히스 헤링을 파운딩으로 때려눕힌 경기가 너무도 인상적이었기에 붙여졌다.

  • 얼음의 혼
    氷の魂. 일본에서 유래. 항상 침착냉정한 멘탈과 악역의 이미지가 겹쳐져 만들어짐.

  • 60억분의 1
    역시 일본에서 유래. 그가 우승한 PRIDE 2004 헤비급 그랑프리의 부제이기도 하다.

  • 효돼지
    한국에서는 동글동글한 체형과 얼굴이 귀엽다며 이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다만 일본이나 미국에서는 이런 친근한 이미지는 없다. 일본에도 비슷하게 효부타(돼지)라는 별명이 있다.

  • 효느님, 효돌신
    한국 한정. 급의 기량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빠들이 붙여준 별명.

  • 꿀도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아니, 필요없다.

4.5. PRIDE 해체 이후의 행보

00년대 PRIDE 헤비급은 UFC조차 능가할 정도로 극강의 라인업이었고 그 중심에는 효도르가 있었다. 비록 몸값은 조쉬 바넷보다도 낮았지만 그가 가진 최강이라는 이미지는 MMA 시장에서 절대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PRIDE가 없어진 후 그의 행보에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4.5.1. Zuffa와의 협상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아끼다 똥 된 경우. 그야말로 5년 간에 걸친 밀당의 현장을 볼 수 있다.

2007년 UFC가 제의한 몸값은 4경기에 경기당 200만 달러(보너스를 제외한 순수 파이트머니만!). 이것은 효도르가 몸값에서는 한번도 이겨보지 못했던 크로캅(35만달러)이나 UFC의 살아있는 신화인 척 리델(50만달러, 당시 최고액)보다도 높은 금액이었으며 2013년 현재에도 깨지지 않고 있다. 아마도 비공개 사항일 계약금이나 커머셜 피를 합치면 이 금액은 갑절에 이르렀을 것을 예상되었다. 하지만 효도르는 이를 거절하고 Affliction, Strikeforce 등 2위권 단체로 발걸음을 돌렸는데, 이때문에 많은 논란이 일기도 했다. 여기서도 UFC에서 계약 조건으로 내걸은 것과 비슷한 수준의 파이트머니를 수령했기에 바딤이 다 가져가서 그렇지 파이트머니 액수 문제를 제기하기엔 논란이 많이 따랐다.

Zuffa와의 첫 번째 협상은 결렬되었으나 Affliction에서 보인 활약이 워낙 임팩트가 있었기 때문에 2009년 Affliction의 철수 이후 다시 Zuffa의 입질이 시작됐다. 이 때 UFC가 제안한 조건은 다음과 같다.

  • 파이트 머니는 경기 당 300만 달러.
  • 데뷔와 동시에 타이틀전.
  • PPV 수당 지급.[31]
  • 삼보 출전 가능.[32]
  • M-1 홍보 허용.

Zuffa의 조건은 유례없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만약 이 계약이 실행되었다면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을 역대 최고의 대전료였을 것이다. M-1 홍보 조항은 M-1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을 수 있으며, 옥타곤 바닥에 M-1 로고를 새겨넣는 정도까지 허용했는데, UFC가 자신들의 스폰서가 되어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몇몇 의류 브랜드의 옷을 입지 못하게 한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 조건 역시 퇴짜를 맞으며 UFC행은 다시 한 번 좌초된다. 또한 이 쯤 되자 팬들과 안티 사이에서 농담으로만 돌았던 효도르 도망설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고 효도르의 안티가 늘어나기 시작한것도 이 시기였다.

표도르 측은 독점계약과 종신계약 조항 등을 물고 늘어졌으나 M-1의 본심은 따로 있었다. 바로 'UFC와의 공동개최'가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Zuffa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이었다. M-1의 요구조건은 한 마디로 표도르를 빌려줄테니 파이를 갈라먹자였는데 북미에서 맨땅에 헤딩해가며 UFC를 일궈 온 Zuffa와 데이나 화이트가 그걸 받아들일 리 만무했기 때문. 결국 표도르는 공동개최를 받아들인 Strikeforce와 계약을 맺는다. 그리고 백사장은 이를 갈았다


money2.gif
[GIF image (865.86 KB)]


돈을 들고 쫓아오는 화이트와 도망치는 효도르. 왜 돈을 주는데 받지를 못하니 더 줘

그러던 것이 2011년 Strikeforce에서 퇴출당한 이후에는 갑을이 완전히 역전되어 표도르측이 UFC에 러브콜을 보내는 웃지 못할 일이 일어난다. 이번에는 Zuffa 측이 완강하게 거절의 의사를 표시, 급기야 M-1이 공동개최도 필요없다며 어필하는 사태까지 벌어졌으나 UFC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2차례나 UFC행을 거절한 표도르의 행보는 많은 팬들의 불만을 사기도 했다. 최강자의 자리에 있던 그가 최고의 무대에서 싸우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 물론 데이나가 공동개최를 받아들였다면 성사되었을 수도 있지만 애초에 무리한 요구조건이었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M-1과의 공동개최를 받아들인 Affliction과 Strikeforce는 그 말로가 좋지 못했다.[33]

또한 이 과정에서 '표도르가 무서워서 UFC에 안간다'는 일명 겁도르설이 떠돌기도 했다. 한때 많은 팬들의 공감을 얻기도 했지만 결국은 돈 때문에 벌어진 일임이 드러났다. 그래봤자 팬 입장에선 오십보백보지만.

4.5.2. 패배 이후

베우둠전과 실바전에서의 패배로 그의 가치는 대폭 하락하게 되었다. 애초에 효도르라는 파이터가 가진 가치는 그의 무패 전적에서 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8년간 수성해 오던 셔독 랭킹 1위를 내주었고, 헤비급 내에서의 입지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M-1 또한 효도르와 동반 몰락 중.

2010년 베우둠에게 패할 때만 하더라도 '최강에서 물러났을 뿐, 여전히 강한 선수'로 평가받았으나 2011년 정상권과는 거리가 멀었던 안토니오 실바에게 패하면서 헤비급에서의 영향력을 거의 상실했다.

한 체급 아래의 댄 헨더슨과의 경기에서도 KO패를 당한다.

셔독 랭킹은 베우둠전에서 3위, 실바전 후에는 8위로 내려앉았고 헨도전 이후에는 랭킹 밖으로 밀려났다.

그러나 효도르를 잡은 안토니오 실바와 댄 헨더슨의 약빨이 빠진 후의 처참한 경기력이 드러나자 급속도로 그를 재평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4.5.3. 복귀 가능성

2011년 첫 은퇴 당시에는 복귀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고 실제로도 은퇴 발언 이후 단 3일만에 번복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2012년 두 번째 은퇴 이후로는 아예 복귀하지 않기로 못을 박아버린 듯 하다.

기실 효도르는 Affliction 시절부터 은퇴를 암시하는 발언을 해 왔고 2010년에는 정계진출 의향을 보이며 본격적으로 은퇴 후의 인생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M-1 Global의 운명을 고스란히 지고 있는 형국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은퇴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만도 사실이다. 효도르 없는 M-1은 그 가치가 대폭 하락하기 때문. 게다가 M-1에게 착취당하고 있는과 공동전선을 펴고 있는 Strikeforce 역시 그가 이탈할 경우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M-1의 바딤 핀켈슈타인은 실바전 후의 인터뷰에서 '효도르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그를 설득해 보겠다'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효도르의 프로모션을 쥐고 흔들던 바딤의 말인 만큼, 이 발언이 갖는 의미는 크다. 게다가 Strikeforce의 스캇 코커 역시 '효도르가 리저버로 토너먼트에 난입하거나 베우둠-오브레임전의 패자와 싸울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아니 그럴거면 발렌타인이랑 로자리오는 왜 불렀는데

그리고 역시나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2011년 2월 13일 러시아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불과 3일만에 은퇴를 번복했다. 가능하면 헤비급 토너먼트를 통해 복귀하고 싶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이미 노쇠한데다가 무엇보다 약점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졌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활약을 보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Strikeforce의 경우 꽤나 중대한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효도르의 상품성은 M-1 뿐 아니라 스포 입장에서도 상당히 중요한 카드이기 때문이다. 일단 은퇴는 막았고, 어떻게든 헤비급 GP에서 다시 한 번 굴려 보겠다는 것이 스캇 코커의 입장. 리저버 4인방은 그냥 지못미.

결론을 말하자면, 먹여 살리는 입이 여러개다 보니 은퇴도 마음대로 못했던 몸이었다. 안습.

이후 M-1과 계약을 맺었던 Strikeofoce가 UFC에 합병된 이후 3연패로 인해 퇴출당한 이후로는 주가가 많이 떨어졌고 매니아들의 관심도 많이 식었다.은퇴했는데도 반년넘게 위키에 작성이 안됐을 정도 이후 2012년 6월까지 M-1에서 3경기를 뛰고 은퇴했다. 예전에 비해 경쟁력도 상품성도 많이 떨어진 상황이었기에 M-1측도 은퇴를 말릴 생각은 없었던 듯 싶다.

2013년 1월, 데이나 화이트가 기자회견에서 바로 얼마 전까지 효도르와 협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밝혔다. 역시 은퇴한 브록 레스너를 불러와 달라스에 있는 스타디움에서 거대한 복귀전을 기획하고 있었고, 양측의 설득도 순조롭게 끝난 상황이었지만 그만 효도르의 아버지가 타계하면서 효도르는 복귀 의사를 잃고, 가족에게 충실하게단 말과 함께 협상을 그만두었고 그 소식을 들은 레스너도 복귀를 번복하였다.

팬들에겐 향후 효도르의 개인상황에 따라 복귀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주었다. 또한 수 년동안 겉으로는 그렇게 까대면서도 여전히 효도르를 대려오려고 한 데이나 화이트의 츤데레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4.6. 에밀리아넨코 알렉산더

동생인 알렉산더도 형과 같은 삼보의 강자이다. 형을 따라 PRIDE에 입성했으며 M-1 등의 무대에서 MMA 파이터로 활약하고 있다. PRIDE 시절 "나를 꺾을 상대는 동생 뿐이다."라고 말한 것은 유명한 일화.

2006년 PRIDE 무차별급 그랑프리에서 알렉산더가 미르코 크로캅에게 KO로 패했을 때 하이킥에 맞아 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크로캅이 파운딩을 하자 'Сука(쑤까)'[34]라며 욕설을 날렸다.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그로서는 이례적인 일.

그러나 바딤 관련으로 문제를 겪은 후 관계가 소원해진 듯 하다. 알렉산더가 스킨헤드와 어울리며 인종차별 혐의를 받으면서 더욱 악화된 듯.

4.7. 바딤 핀켈슈타인

M-1의 보스이며 효도르의 매니저이기도 한데, M-1이 사실상 공중분해된 뒤에도 효도르 한명만 믿고 다른 멀쩡한 단체들에게 공동개최를 요구하며 민폐를 끼치고 있다.

당연히 효도르에게는 전혀 득될 것이 없는 인간이지만 왜인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 사기꾼한테 속고 있다 동생인 알렉산더조차 효도르와 바딤의 관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 항간에는 효도르가 약점을 잡혔다느니 실은 M-1의 지분을 공동소유한 공생관계라느니 루머만 무성하다. 효도르의 UFC행이 좌절된 이유도 99.99%는 바딤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짚어볼 사실이 있다. 일단 M-1 측에서는 효도르가 자신들의 대주주이며 경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밝혔다. M-1 글로벌의 부사장이자 미국 책임자인 제리 밀렌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Fedor is part owner in M-1, and Fedor has complete faith in Vadim," Millen said. "Fedor was there in negotiations with the UFC, and he knows exactly what was offered, what was going on." #
(표도르는 M-1의 주주입니다. 그리고 그는 바딤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표도르는 UFC와 협상할때 같이있었으며 또한 UFC측에서 그에게 무슨 오퍼를 넣었는지 확실히 알고 있었으며 어떻게 상황이 되어가고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즉 표도르가 M-1 글로벌의 일부를 소유하고 있다는 공식으로 발언한 것이었다. 효도르가 M-1의 행보에 적극적으로 찬성하고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면서 까지 M-1의 사업 확장에 동의하는 것을 본다면 그가 소유한 M-1 글로벌의 지분이 상당히 많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물론 바딤 측과 표도르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얼마나 되는 지는 모르지만..

사실 효도르가 격투기 선수 답지 않게 국제 무역을 전공하였고 또한 이것을 수석으로 졸업할 정도인데 바딤의 봉이 돼서 그 몰래 돈을 뜯어내는 것을 순순히 당하고 있을리 없잖는가. 그간의 행보를 보면 효도르는 바딤과 함께 실질적인 M-1의 공동 소유자이자 공동 경영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35] 또한 효도르도 격투기 선수만 평생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때문에 그는 M-1을 경영 하는 것에 흥미를 갖고 있는 것 같고 있고 또한 이것은 그의 전공에도 맞다.

하지만 돈이 돌아가는 상황은 또 다르다. PRIDE가 해체된 이후 효도르는 매 시합마다 100만 달러 이상의 금액을 지급받아왔다. 그런데 이 금액 중 상당부분이 M-1의 주식에 투자되었다. 예를 들어 2011년 6월의 Strikeforce 대회에서 효도르가 받은 파이트머니는 150만 달러인데 효도르는 이 중 120만 달러를 M-1의 주식을 사는데 썼다. 2009년 11월의 Strikeforce 데뷔전에서 Strikeforce가 M-1 측에 지급한 금액은 230만 달러인데 그중 200만 달러를 바딤과 M-1이 절반씩 먹었고 정작 효도르에게는 30만 달러 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효도르가 이러한 자신의 투자행위에 대해 자각하고 있는가라고 할 수 있겠다. 과연 현금을 마다하고 구입할 정도로 M-1의 주식이 가치가 있을까. 물론 30만 달러도 결코 적은 액수는 아니고 구소련에서 청년기를 보낸 효도르의 경제관념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도 있다. 또한 이런 현상은 러시아 MMA 전반에 걸친 일이기도 하다. 일례로 러시안 탑 팀의 경우는 00년대 중반 무렵 지속적으로 선수들의 대전료를 갈취해오고 있었다는 것이 밝혀져 큰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실은 이 사건에 효도르와 알렉산더도 연관되어 있는데, 당시 에밀리아넨코 형제는 자신들의 대전료가 얼마인지도 모르는 상태였다고 한다.[36] M-1의 주장에 의혹이 더해지는 것은 이러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점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확실한 것은 효도르와 M-1이 불가분의 관계라는 것 정도.

4.8. 효도르의 저주

효도르의 저주 항목 참조.

4.9. 거품설

4.10. 최면술 드립과 진실공방


----
  • [1] 러시아어 표기법에 따르면 '표도르'로 표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일본 격투기 무대에서 주로 활약하면서 일본쪽 표기와 발음에 의지하다보니 우리나라 팬들도 대부분 효도르라고 부른다. 종성 발음이 한국어에 비해 적은 일본어와 f 계열 발음이 현대 한글 표기에서는 안 쓰이는 한국어의 차이. 그런데 본인에게 '표도르'와 '효도르' 중 어느 것이 맞냐고 물어봤더니 '효도르가 맞다'고 대답했다는 말도 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이, 러시아어의 Ф는 영어의 f보다 훨씬 입술을 약하게 물기 때문에 입술 사이로 바람이 새는 소리가 난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이는 일본어의 ふ와 발음 방법이 같... 진 않고 소리만 비슷하다. 일본어 ふ는 무성양순마찰음.
  • [2] 경기때는 105kg.
  • [3] Rings 해산 전 마지막 챔피언이었던 것이 유래. MMA에서 '황제'를 링네임으로 사용하는 것이 허락된 유일한 선수다.
  • [4] 이를 의식한건지 PRIDE에서는 대놓고 악역 최종보스 기믹으로 밀어줬다.
  • [5] 사실 적어도 한국이나 일본내에서 삼보를 알리게된건 효도르 덕분이라 보면된다. 지금도 덕택에 미국선수중에서는 레슬링 출신들이 많은 것 처럼 동구권의 파이터들 중에서는 삼보선수출신들이 많다.
  • [6] 동화 일러스트같은 귀엽고 훈훈한 일러스트가 꽤 있다
  • [7] 둘의 체중차가 15kg나 났는데다 아로나는 일본에 오기전까지 상대가 누군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 [8] 효도르는 경기 뒤 이 팔꿈치 공격이 자신이 이전의 아로나와 가진 경기에서 입었던 상처를 벌어지게 하였다고 말하였다.
  • [9] 4대 무차별급 챔피언인 길버트 아이블이 PRIDE로 이적하며 타이틀이 공석이 되자, 이를 결정하기 위해 개최된 대회다.
  • [10] 이후에도 주먹 부상을 언급하면서 중요한 경기를 질질 끄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을 정도다. 다만 주먹부상은 바딤의 개드립에 활용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 [11] 이는 국내 기준으로 당시 방송사였던 XTM에서 세기의 대결이라면서 광고를 질리도록 많이 해줬던 덕분이었다. 어느정도 였냐면 시내버스 측면 광고판에도 광고를 붙였고, 해당 경기를 효도르 팬과 크로캅 팬을 초청해서극장에서 생중계 해주기도 했다. 크로캅 자체도 K-1 경력 등의 이유로 많이 알려져 있기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약 10%라는 당시 마이너 매체였던 MMA 중계로(그것도 외국 선수간의 대결로) 케이블 기준 대박 시청률이 나오게 되었다. 이 경기 이후 최홍만의 분전과 겹치면서 국내 격투기 붐이 일게 되는 계기가 된다.
  • [12] 이것때문에 한동안 까였고 효도로프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게 되었다.
  • [13] 다만 방송에서는 첫번째 탭아웃 장면이 심판에 가려져서 제대로 안 보였고, 효도르도 이것에 대해 일체 언급을 한 적이 없기에 진짜로 탭을 쳤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었다.
  • [14] 게다가 정타도 거의 없었다.
  • [15] 홈이라는 이점도 감안해야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2000년에 데뷔한 이래 약 10년만에 홈에서 갖는 경기이기도 했다.
  • [16] 실은 이 운영은 2004 남제에서 있었던 노게이라 3차전의 재탕이다. 그라운드에서 3연패를 당해놓고, 게다가 상대였던 몬슨은 노기 그래플링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의 강자인데 그 상황에서 또 다시 그라운드로 돌진한다면 그건 학습능력을 의심해봐야 한다.
  • [17] 더구나 이 경기가 있었던 11월 20일에는 UFC 139의 댄 헨더슨 vs 마우리시오 쇼군의 역사적인 명승부가 있었기에 더욱 비교가 되었다...
  • [18] 그렇지만 사실 타이어를 단다던가 턱걸이 등 무게로 근육을 단련시키는 것 자체가 웨이트 트레이닝이다. 바벨이나 머신운동이 웨이트 트레이닝이라는 선입견때문인데 실제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싫어하던 알리도 등근육 단련을 위해 장작패기를 하였다.
  • [19] 그렇다고 해서 "플라잉니만 아니었으면 알롭이 이겼다."같은 소리를 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 [20] 노게이라를 털면 되지 않았느냐는 의견이 많으나, 베우둠과 노게이라의 스타일은 엄연히 큰 차이가 있으며 주짓수만으로 보면 베우둠의 수준은 노게이라로서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을 정도로 뛰어나다. 어느 정도나면 주짓수 세계대회인 문디알 우승자 출신이었던 가브리엘 곤자가조차 상위를 잡아도 이노키 알리 포지션을 고수할 정도. 노게이라 역시 1차전과 달리 2차전에서는 압도적으로 그라운드에서 관광당했다.
  • [21] 그나마 레슬링 좋다고 칭찬받던 퀸튼 잭슨, 마우리시오 쇼군 등도 UFC 초반에는 탄탄한 레슬링을 기반으로 타격 스킬로 어느정도 성과를 내며 챔피언을 차지하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레슬링에서 발목을 잡혀 탑 컨텐더 경쟁권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 [22] 커투어나 헨더슨처럼 40세가 넘어서도 기량을 유지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게다가 헨더슨은 호르몬대체요법을 쓰고 있는 선수들이기도 하고.(랜디커투어의 호르몬 대체요법설은 널리 퍼져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조로건 역시 이에 대해 사과한바 있다) 러시아 남성들의 평균수명이 짧은건 무너진 사회안전망과 과도한 음주가 주원인이다.
  • [23] 단적으로 말하자면 효도르와 동세대(2000년대 초중반)의 탑파이터 중 2011년에 이르러서도 헤비급에서 정상권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선수는 거의 없다. 굳이 꼽아보자면 프랭크 미어 정도. 그리고 그 미어 조차 2012년 이후 부진에 빠지기 시작했다.
  • [24] 막상 베우둠이나 헌트같은 나이가 많고 스타일이 정체되었던 선수들이 스타일 개조와 함께 현대 MMA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것은, 새로운 기술을 기존 스타일에 융화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 [25] 하리토노프 역시 부진상태로 상향된 올라운더의 유행을 버티지 못했다.
  • [26] 배역 이름도 ФЁДОР표도르 - 동료들은 애칭인 페지아ФЕДЯ라고 부른다(데д는 야Я 앞에서 구개음화가 일어나서 '페댜'로는 들리지 않는다).
  • [27] 예외가 있다면 크로캅 전. 크로캅의 캐릭터는 '차갑지만 나쁜 놈은 아닌 사람' 이어서 이런 대립으로 끌고가기엔 여러모로 곤란했는지, 이 경기는 선악 대결이 아닌 초인간의 대결로 홍보되었다.
  • [28] 이런 구도를 짜놨으면, 누가 효도르를 어떻게든 '이겨줘야' 그림이 되는데 이 인간이 당최 안 지니까.;
  • [29] 참고로 1위는 약 50%의 지지율을 얻은 크로캅이며, 그 뒤를 노게이라, 세르게이 등이 이었다.
  • [30] 거기다가 커투어의 기믹은 캡틴 아메리카이다. 효도르는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이고...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뭐긴 뭐야 경기 시작과 동시에 USA 챈트 폭발이지
  • [31] PPV 수당은 어지간한 톱 스타가 아니면 받지 못한다. 심지어는 효도르 이상으로 인기가 많은 반더레이 실바같은 파이터들도 쉽게 받지 못할 정도이다. 효도르의 미국 내 상품성을 생각하면 파격적인 조건이라 볼 수 있겠다.
  • [32] 이 역시 UFC의 독점 계약을 생각하면 상당히 파격적인 조건이다. 이전 계약 당시 효도르 측이 문제삼았던것도 이 부분이었는데 쿨하게 허용해준 것.
  • [33] 다만 이것은 Zuffa 측에서 의도적으로 이들을 견제한 탓도 있다. 결과적으로 데이나의 선택은 정답이었으나 그것만이 정답이 될 수 있었다는 얘기는 아님.
  • [34] 개새끼 , 암캐
  • [35] 효도르가 M-1을 알리는 것에 얼마나 적극적인가를 보려면 그가 경기를 가지기 전 인터뷰를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안토니오 실바와의 대전에서도 어플릭션과 M-1 글로벌의 대회에 참여하여 기쁘다 라고 발언하며 이 대회에 M-1이 참여 하고 있음을 분명히 강조하였다.
  • [36] 이후 에밀리아넨코 형제는 RTT를 나오고, 이를 하리토노프가 비난하면서 PRIDE가 이걸 대립구도로 써먹는다. 실은 하리토노프도 곧 RTT에서 뛰쳐나왔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4-12 15:35:20
Processing time 0.4749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