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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명일

last modified: 2015-04-05 12:28:55 by Contributors



원주 동부 프로미
표명일
생년월일 1975년 12월 23일
국적 한국
출신학교 양정고 -명지대학교
포지션 가드
신체 사이즈 182Cm, 79Kg
프로입단 1998년 드래프트 8번(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소속팀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울산 모비스 오토몬스(1998~2002)
전주 KCC 이지스(2002~2007)
원주 동부 프로미(2007~2010)
부산 KT 소닉붐(2010~2012)

2003~2004 한국프로농구 최우수 후보선수상
박규현(창원 LG 세이커스) 표명일(전주 KCC 이지스) 이병석(울산 모비스 피버스)

2002~2003 한국프로농구 기량발전상
황진원(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 표명일(전주 KCC 이지스) 이병석(울산 모비스 피버스)

Contents

1. 소개
2. 프로 선수 시절
2.1.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2.2. 전주 KCC 이지스
2.3. 원주 동부 프로미
2.4. 부산 KT 소닉붐
2.5. 은퇴
3. 지도자 시절
4. 모래반지 빵야빵야

1. 소개

한국의 농구 선수.

명지대학교 시절 팀의 주전 가드였지만, 인지도가 아주 높은 선수는 아니었다. 대학 시절에는 팀 전력도 약했고, 가드로서의 역량도 신기성에게 밀린 상황. 그래도 1998년 프로 첫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8번에 지명되어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로 들어가게 되었다.

2. 프로 선수 시절

2.1.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

그런데 생각보다 프로에서 쏠쏠한 활약을 보여줬다. 초년 시절에는 강동희의 백업 가드로 상당히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 것. 물론 강동희를 능가한 것은 아니지만, 강동희에게 휴식 시간 정도는 벌어줄 역량은 보여줬다. 두 시즌 밥값은 한 후, 군에 입대해서 상무에서 복무하던 도중에 트레이드 소식을 접한다. 기아의 색깔을 지우던 모비스의 최희암 감독이 그도 트레이드 카드로 쓴 것이다. 2002년 5월 1일, 3:3 트레이드의 대상자가 되어 그렇게 팀을 전주 KCC 이지스로 옮겼다. 김동언, 송태영, 표명일이 전주 KCC로, 구본근, 이상영, 김태진이 모비스로 가는 트레이드였다.

2.2. 전주 KCC 이지스

전주 KCC 이지스에서는 이상민의 뒤를 받쳐주는 백업 가드의 역할을 수행했다. KCC 이적 첫 해 전 경기에 다 나오면서 이상민에게 제대로 휴식 시간을 주는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성실한 플레이에 적당히 준수한 패스와 수비력으로 비록 주전으로는 다소 미흡하다고 하더라도 백업 가드로서는 나무랄데 없는 활약을 보여줬다. 그 결과 2003-04 시즌 KCC 우승의 한 축을 담당하며 우승 반지도 얻었고, 그 해 기량발전상과 우수 후보 선수상에 선정되는 영광도 안았다. 그렇게 KCC의 백업 가드로서 다른 팀의 주전 제안도 뿌리치고 FA로 KCC에 남았고, 2006-07 시즌에는 득점력도 향상되어 최고의 백업 가드로 명성을 얻었다. 이상민이 시즌 개막 이후 얼마 안되어 부상으로 전력이탈한 와중에 11월 12일 LG 세이커스와의 홈 경기에서 3점슛 10개를 포함 무려 40점을 넣으며 팀을 승리로 이끌기도 했는데, 이 경기를 계기로 '표비'(...)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3. 원주 동부 프로미

그런데 2007년 1월 KCC와 동부가 3:3 트레이드를 단행하면서 표명일은 원주 동부로 이적하게 되었다. KCC가 포워드가 부족하다고 판단하자 포워드를 얻기 위해 표명일을 카드로 쓴 것. 이 결과 KCC는 동부로부터 김영만, 정훈, 길태를 얻었고, 동부는 표명일과 청운, 백주익을 얻었다. 결론적으로 이 트레이드는 동부의 승리. 김주성이 차지하는 샐리러 때문에 특급 가드를 얻기 어려웠던 동부는 표명일의 영입하며 가드진의 로또를 긁었고, 이 로또가 터졌다.

신기성의 이적 이후, 제대로 된 가드가 없어 고생하던 동부는 표명일의 이적 이후 구색을 갖춘 가드를 운용할 수 있게 되었고, 표명일은 주전 가드로 활약하며 동부의 2007-08 시즌 완벽한 우승을 이끌어 냈다. 백업 가드에서 주전 가드로 우승을 이끌며 주목을 받은 것. 물론 성적은 두 자리 수 득점도 아니었고, 어시스트도 특출나지 않았지만, 이 정도 활약만으로도 우승에 보탬이 되기에는 충분했다.

2.4. 부산 KT 소닉붐

2009-10 시즌 이후 FA가 되자, KT로 이적한 전창진 감독은 신기성을 내치고, 그 자리에 표명일을 영입했다. 그런데 영입한 것까지는 좋은데, 연봉이 무려 4억. 그리고 표명일은 망했다.(...) 다행히 KT가 포워드 중심의 농구로 가드진의 부실함을 최대한 만회해서 그렇지, KT의 표명일은 KCC의 특급 백업, 동부의 우승팀 주전 가드의 명성을 다 날려먹는 삽질로 일관해서 표4억으로 까인다.(...)

하지만, 이렇게 까여도 역대 수준급의 식스맨 중에서 표명일의 이름이 들어갈 것은 분명해 보인다. 말년에 너무 많은 돈을 받고 부진해서 그렇지, 표명일 정도의 장수한 키식스맨은 드문 편. 식스맨으로 한정하면, 역대 KBL에서 수준급의 식스맨이었음은 분명하다.

2.5. 은퇴

2012년 6월 27일 은퇴를 선언했다. KT의 지원으로 2년간 미국 샌디에이고로 건너가 지도자 연수를 받는다. 이로써 드래프트 첫 세대인 94학번 선수들이 모두 현역에서 은퇴하게 됐다.

3. 지도자 시절

지도자 연수를 받은 뒤, 원주 동부 프로미의 코치로 선임 되었다.

4. 모래반지 빵야빵야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들어 맞았다면 이미지와 동영상이 같은 순간에 같은 장면에 있을 수 있다. 어떻게 일어난 일인지 나도 모르겠어서 당황스럽다

사실은 "뭘 반칙이지 말이많아"라 카더라 하지만, 이 항목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표명일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위의 동영상. 일명 모래반지 빵야빵야로 불리는 몬데그린 영상이다.[1] 참고로 뒤의 유재학 감독은 서로 다른 장면을 합친 합성이다. 즉, 표명일이 유재학 감독에게 욕한 것은 아니라는 것. 실제로는 전주 KCC 이지스와의 경기에서 상대 외국인 선수 칼 미첼과 몸싸움 도중 욕을 내뱉은 게 임재현에게 한 것으로 와전이 됐다. 외국인 선수와 기싸움을 벌이는 과정이었다고 한다. 실제 뭐라고 했는지는 보는 이의 상상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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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르게 들리는 게 아니라 입모양이 다르게 보이는 것이니 엄연히 말하면 몬데그린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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