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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군

last modified: 2015-09-25 02:24:29 by Contributors

서유럽군대
영국군 프랑스군 네덜란드군 아일랜드군 벨기에군 룩셈부르크군 모나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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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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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헌병

예술의 나라답게, 각 군별 로고가 매우 현대적이면서도 그럴싸하다.

목차

1. 개요
2. 수뇌부
3. 예산과 경제규모
4. 역사
4.1. 고대
4.2. 중세
4.3. 근세
4.4. 프랑스 혁명~나폴레옹 전쟁기
4.5. 19세기
4.6. 제1차 세계대전
4.6.1. 엘랑 비탈 교리
4.6.2. 청년학파
4.6.3. 서부전선의 주력을 책임지다
4.7. 제2차 세계대전
4.8. 한국전쟁
4.9. 현대
4.10. 현대 프랑스군의 이미지
4.11. 외인부대
5. 군별
6. 프랑스군의 무기개발사
6.1. 전투기
6.2. 헬리콥터
6.3. 미사일
6.4. 개인화기
6.5. 공동개발 관련 에피소드
6.5.1. 유로파이터 프로젝트
6.5.2. 토네이도 프로젝트
6.5.3. 라파예트급 호위함
6.5.4. 차기 호위함 사업: FREMM급
6.5.5. 에어버스 A400M
6.5.6. 기타
7. 프랑스의 역대 사기 행각 전설?
8. 프랑스군의 장비
8.1. 1, 2차 대전 당시
8.2. 현대
8.2.1. 육군
8.2.2. 해군
8.2.3.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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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군
GFP 순위[1] 6위 (2015년 2월)
상비군 228,656명
예비군 195,770명
육군력
3.5세대 전차[2] 432 대[3]
전차 총합 432대
장륜형 전차 장갑차 300대[4]
장갑차(APCs/IFVs) 총합 8,468대 (2011년)
견인포 750문
자주포 149대
MLRS 60대
수송 차량 13,748대
공군력
4.5세대 전투기[5][6] 77기[7]
4세대 전투기[8][9] 149기[10]
3세대 전투기[11] 36기[12]
조기경보관제기(AWACS) 4기
조기경보기 2기[13]
전자전기(SIGINT) 3기
공중급유기 14기
공군기 총합 약 790기
헬리콥터 810기 (2011년)
항공기 총합 1,757기[14] (2011년)
해군력
해군 전투함 총합 289척
주력 수상함
7천톤 이상 ~ 8천톤 미만 준이지스 전투함 2척[15]
6천톤 이상 ~ 7천톤 미만 준이지스 전투함 1척(+10척)[16]
6천톤 이상 ~ 7천톤 미만 전투함 1척[17]
4천톤 이상 ~ 5천톤 미만 전투함 9척[18]
3천톤 이상 ~ 4천톤 미만 전투함 5척[19]
2천5백톤 이상 ~ 3천톤 미만 전투함 7척[20]
1천5백톤 이상 ~ 2천톤 미만 전투함 1척[21]
1천톤 이상 ~ 1천5백톤 미만 초계함[22] 10척[23]
1천톤 미만 초계함, 고속정 18척
모함, 상륙함, 수송함
7만톤 이상 ~ 8만톤 미만 항공모함 (+1척)[24]
4만톤 이상 ~ 5만톤 미만 항공모함 1척[25]
2만톤 이상 ~ 3만톤 미만 강습상륙함 3척[26]
1만톤 이상 ~ 1만5천톤 미만 LPD 1척[27]
1천톤 이상 ~ 1천5백톤 미만 LST 3척[28]
1천톤 미만 상륙함 24척[29]
잠수함
1만2천톤 이상 ~ 1만3천톤 미만 SSBN 4척[30]
4,500톤 이상 ~ 5,000톤 미만 SSN (+6척)[31]
2,400톤 이상 ~ 2,500톤 미만 SSN 6척[32]
잠수함 총합 10척(+6척)
예산
방비 총합 612억 달러 (2013년)[33]


1. 개요



Forces armées françaises. 프랑스군대.

이상하게 한국에서는 이탈리아군 뺨치는 막장 군대의 대명사로 종종 언급되곤 하며, 해외에서도 1, 2차 대전 때의 온갖 한심한 삽질들 덕분에 굉장히 저평가받곤 한다. 마지노선 같은 경우는 군대에 아무 관심이 없는 사람조차도 대충 알 정도니 이미지가 안 좋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정확히 따져 보면 근대 이래 20세기 말까지도 항상 세계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군사강국이었다.[34]
덧붙여 역사적으로 영국과 전쟁단계에서 승리한 몇안되는 국가이기도 하다. 백년전쟁국독립전쟁이 대표적.
대신 나라를 거덜내버렸지만

역사적으로 유럽에서는 프랑스 다른 육군강국인 스페인-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조, 프러시아, 러시아 등의 쟁쟁한 나라들과 수 세기에 걸쳐 대적했고, 루이14세 시기엔 말년엔 패했지만 치세내내 뛰어난 장군들과 높은 전투력으로 유럽내 패권을 유지했고, 해상에서도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과 경쟁해야 하는 조건 속에서도 당대 열강의 자리에서 물러난 적이 없으며 당시 세계 최강의 해군을 보유한 영국을 상대로 공존관계를 수립하는 18세기까지 전세계의 바다에서 서로 충돌하며 승패를 주고 받는 저력을 보여준 군대였다. 특히 나폴레옹의 대육군 시기엔 다른 유럽국가에 총공깽급 전투력을 보여줬으며 유럽 연합국이 힘을 합해 다구리를 쳤어도 연전 연승하다가 나폴레옹의 실책성 원정후 몰락 이후에야 역시 다구리로 프랑스를 굴복시키는게 가능할 지경...

근대에 들어서도 유럽 내 최강국으로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에 패하기는 했으나, 실제로 19세기 이전부터 1차 대전을 거쳐 2차 대전 직전까지도 육해군을 통틀어 군사강국의 위치에서 유럽 내 주요국가에서 탈락한적이 없고, 전술교리나 군사장비 기술 또한 프랑스 군에서 선도적으로 만들어졌다. 해군에 있어서도 영국 다음가는 거대한 규모를 갖추고, 최초의 군용 스크류 추진 증기선 나폴레옹 호의 도입[35], 최초의 항양장갑함 글루와 호의 도입[36]등으로 해양제국 영국과 경쟁했다. 최초의 근대식, 현대식 야포를 개발한것도 프랑스이며, 총검을 뜻하는 영단어 바요넷(bayonet)이라는 말이 프랑스어 바요네뜨(baïonnette) 에서 유래되었듯이, 근대적 총검술도 일본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 (아래 1차대전 부분 참조)하지만 2차대전때 삽질하는바람에...

그래서 현대 군대의 많은 명칭이 프랑스 육군에서 유래한다. 현대의 부대단위인 사단(division), 연대(regiment), 군단(corps)도 이름에서 알다시피 모두 프랑스군에서 유래한 개념이다 그리고 영어의 계급명인 위관(lieutenant), 영관(colonel), 장군(general), 원수(Marshal), 그리고 무기로는 수류탄을 말하는 그레네이드(grenade)도 모두 프랑스 육군에서 유래한 것이다.

현재 프랑스군(Forces armées françaises)은 육군(Armée de terre), 해군(Marine nationale), 공군(Armée de l'air), 국가헌병대(Gendarmerie nationale)[37]의 4군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한국에 한정해서는 라팔 몇 대 팔아보려 했을 뿐인데 친미적인 한국의 밀덕들의 터무니없는 모욕을 한 몸에 받게된 불쌍한 군대다. 라팔이 좋냐 F-15기 좋냐 하며 치고박고 싸운건 한국 밀덕들인데 그 싸움이 만들어낸 증오는 엉뚱하게 프랑스군이 다 뒤집어 썻다.[38][39]

2. 수뇌부


통수권자 국방/퇴역군인장관 국방참모총장[40]
© Jean-Marc Ayrault (cc-by-2.0) from
대통령
프랑수아 올랑드
장이브 르 드리앙 육군대장
피에르 드 빌리에르
장군

육군참모총장 해군참모총장 공군참모총장 국가헌병사령관
© Jef Pruvot (cc-by-sa-3.0) from
육군대장
베르트랑 라마도
장군
해군대장
베르나르 로겔
제독
공군대장
데니스 메르시에
장군
헌병대장
데니스 파비에르
장군

3. 예산과 경제규모


(2000년~2014년) 프랑스명목 GDP [41], 경제성장률, 국방비 흐름[42]
종류 2000년2001년2002년2003년2004년2005년2006년2007년2008년2009년2010년2011년2012년2013년2014년 추정치
전체 명목 GDP(10억달러; 약 1조원) 1,496 1,485 1,623 1,877 2,221 2,324 2,486 2,858 2,709 2,217 2,296 2,464 2,470 2,523 2,847
경제성장률(%) 4.3% 2.1% 2.2% 3.9% 3.1% 3.2% 2.7% 3.4% -0.7% -5.1% 1.6% 1.1% 0.2% 1.7% 3.2%
영어위키 국방비 자료[43]: SIPRI(10억달러; 약 1조원) 33.8 33.2 36.4 45.9 53.0 52.9 54.5 60.5 66.0 66.8 61.7 62.7 58.9 61.2

중국 춘추시대 초기 제나라의 정치가이자 사상가인 관중(관이오)이 말하길 부국강병, 즉 경제력이 곧 군사력이라 했다. 사실상 군사력과 경제력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서 국가의 경제규모나 경제력이 떨어지면 군사력도 쇠락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군사력의 예산 항목을 볼 때는 해당 국가의 경제성장률, 명목 GDP도 함께 보아야 한다. 이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GDP 대비 국방비도 국방예산의 중요한 참고자료이다. 프랑스의 국방예산은 2009년에 정점을 찍은 후 경제위기(유로화 위기) 등의 영향으로 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경제규모는 확대되고 있지만 국방비는 정체되는 형국이다.

4. 역사

4.1. 고대

현재 프랑스 지역은 고대에는 갈리아라고 불렸고, 켈트족(골족)의 영역나와바리이었다. 골족은 전사계급을 우대하는 호전적인 야만족이었고, 가끔식 로마를 침략하기도 하였다. 로마제국의 카이사르는 골족의 침략을 뿌리뽑을 심산으로 이곳에 쳐들어가 부족사회에 머물러 있던 골족을 정복하고 10여년만에 이곳 전체를 로마의 영지로 삼았다. 골족에서도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라서 베르킨게토릭스 같은 지도자가 나와 골족을 모두 규합하여 로마군에 대항했으나, 그 당시 로마군은 넘사벽의 레벨로 적 지휘관도 하필이면 카이사르 전쟁을 잘했기 때문에 얄짤없이 패한다. 이후 갈리아는 완전히 로마의 수중에 들어가고, 그곳의 골족은 거의 정체성을 잃고 로마화되었다. 심지어는 자기네들 언어까지 잊어버리고 로마의 언어인 라틴어를 지껄이게 된다. 베르킨게토릭스는 19세기 민족주의가 고양되었을 당시 나폴레옹 3세에 의해 프랑스의 독립투사로서 영웅화되어다. 근데 나폴레옹 집안은 프랑스 본토도 아닌 코르시카출신인데...이곳은 오랫동안 이탈리아 문화권이었던지라...알고보면 나폴레옹 집안쪽은 로마에 더 가깝다.[44]

이후 게르만족이 동쪽에서 온 훈족의 침략을 받아 서부로 이동하자, 이 지역은 게르만족에게 유린되었다.[45] 게르만족의 일파인 프랑크족이 이 지역을 차지했고, 그래서 이것이 현재의 프랑스의 유래가 된다. 프랑크족은 평야가 대부분이고 온후한 기후에 농사도 잘 되는, 그야말로 유럽의 노른자위 땅을 차지한 덕에 다른 부족과는 달리 안정된 국가를 건설했다. 이에 따라 스페인 방면으로 쳐들어오는 이슬람권의 침공을 번번히 격퇴하여 유럽의 방파제 역할을 했고, 이슬람 기병에 대응할 기병양성을 위해 전사들에게 토지를 분배하고 말을 키우게 함으로써 초기적 봉건제를 실시, 이후 기사계급을 낳는다.

4.2. 중세

이후 바이킹의 일파가 현 노르망디에 정착하면서 프랑스 왕에 복종, 이들의 후손이 노르만족이 되면서 기사의 전술 변화를 초래한다. 이 노르만족 기사들은 바로 바다 건너 맞은 편의 영국을 정복해 노르만 왕조를 낳았으며 지중해까지 진출해 교황과 야합하여 시칠리아의 이슬람 세력과 나폴리의 비잔틴 잔당을 박살내고 아풀리아 공국과 시칠리아 백국을 건설한다. 후에 교황에 의해 시칠리아 왕국으로 승격되는 등 전 유럽에서 정복과 위세를 떨치고 십자군의 주축이 되면서 프랑스 기사=최강 신화를 낳는다.
프랑스는 1214년 북프랑스의 부뱅에서 필리프 2세가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영국의 존 왕과 독일의 오토 4세의 연합군을 격파했다.그리고 손자 루이 9세가 비록 실패했으나 두 차례 십자군을 주도하면서 13세기 프랑스는 서유럽의 중심 국가로 부상한다.
하지만 백년전쟁 초기 크레시, 푸아티에 전투를 비롯하여 삽질로 인해 국왕(장 2세)까지 사로잡히고 아쟁쿠르 전투 등으로 잉글랜드에 탈탈 털렸지만 후에 국력을 회복하고 잔다르크의 활약 등으로 영국을 프랑스 영토에서 상당부분 축출하는데 성공한다.사실 백년전쟁 당시에는 잉글랜드가 결혼 파워로 프랑스 영토 절반을 가지고 있었고, 영국 역시 자국 영토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 입장에서는 내전이었다

르네상스 시기에 프랑스 출신 용병들은 독일 용병들과 함께 이탈리아인들 사이에서 얘깃거리였는데 용맹성보다는 어떻게든 이길려고 미친듯이 발악해서. 교활하고 잔혹한 것으로 유명했다. 어쨌거나 1515년에만 해도 이탈리아에서 스위스군을 쳐부수는 등, 백년전쟁 후 잠깐동안은 잘 나가긴 했다.

4.3. 근세

백년 전쟁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군사강국으로 떠오른다. 전쟁중의 경험과 서유럽에서 가장 많은 인구수와 경제력 강한 왕권을 바탕으로 한 상비군으로 자연스레 대외 팽창 정책이 본격화 된건 15세기말 샤를 8세시기 이탈리아 원정인데 초반에 선전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후 프랑수아 1세때 결국 그 유명한 파비아 전투에서 카를 5세의 정예군에 제대로 궤멸당해 왕이 사로잡히는 캐굴욕을 겪었다. 그리고 이후 스페인테르시오가 유럽 최강의 지위를 차지하고 프랑스군은 군사 강국임에도 유럽에서 패권국의 위치로는 아직 떠오르지 못했다. 기병 대국답게 16세기에도 기병+포병의 체제를 고수했으나, 아무리 유럽 제일의 기병을 갖고 있어도, 파이크때문에 돌격을 못 하니 하고는 게임이 안 됐다.(…)

이후 17세기 직전까지 위그노 전쟁으로 한동안 자기들끼리 투닥대며 구석에서 버로우하다 안정을 되찾고 30년전쟁을 기화로 전비를 증강한데다가[46] 루이 14세 때에는 사실상 서유럽내 가장 강력한 군대로 떠오른다. 네덜란드의 마우리츠가 개혁한 방식의 군대가 스페인의 테르시오를 압도하고 표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군사체제가 표준화된 상황에서는 인구나 경제력 면에서 가장 국력이 강한 프랑스가 우세를 확립할 수 있었다.] 루이 14세 때 상비군이 40만[47] 이었다. 루이 14세의 군대는 네덜란드 독일등지에서 싸우면서 전 유럽군대를 상대했지만 유럽전체를 합친 병력보다 프랑스 병력이 더 많을지경... 물론 이것이 가능한건 17세기 루이14세때 이미 프랑스 인구가 2~3천만에 달 할정도로 영국의 네다섯배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의 거의 세배에 달하는 인구빨에 넓은 농경지를 바탕으로한 경제력 때문이다.[48] 이시기에 엄청난 인구빨의 위명 덕에 유럽의 짱깨 타이틀도 얻는다.

이후 루이 14세 말기 17세기말 18세기 초부터 프랑스의 국력이 휘청이기 시작하는데 대규모 상비군의 바탕이었던 프랑스의 경제력이 계속되는 루이14세의 전쟁 덕후질로 국고가 바닥나면서 펠리페 2세의 스페인처럼 재정 망테크를 타기 시작한다. 루이 14세는 그러나 이러한 와중에도 부잣집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프랑스는 유럽 최강국이 었기 때문에 군사력에서도 오랜 전통과 뛰어난 장수들을 바탕으로 를 놓지 않았는데 루이 14세시대에는 네덜란드를 여러번 조지러 가서서 사실상 열강에서 탈락시키고[49] 스페인에게서 벨기에 일부를 빼았았으며[50] 아메리카와 인도 식민지에서도 식민지 팽창을 주도했다. 하지만 마지막 전쟁인 스페인 왕위계승전쟁에는 프랑스는 영국-오스트리아-네덜란드 연합군 전체와 대등한 수준의 병력을 뽑아내고 있었지만, 영국의 존 처칠[51]과 사보이의 외젠[52]의 활약에 의해 한때 큰 위기에몰렸다., 드냉 전투에서는 영국이 빠지자마자 오스트리아-네덜란드 연합군을 상대로 압승을 거두는 등 건재함을 과시하였지만....전쟁에서 프랑스가 기사회생한건 연합국측이 밀던 요제프 1세의 형(레오폴트 1세)이 갑자기 죽어서 계속 밀다간 카를 5세처럼 스페인과 오스트리아를 같이 먹을까봐 틀어진것이[53]이라 프랑스가 외교적 수세에서 벗어난것이지 프랑스가 군사적 승리로 마무리 된것이 아니었다. 루이 14세 시절 다른 전쟁과 달리 전 유럽을 압도하진 못햇고 오히려 밀리게 되는데 사보이 외젠과 영국 존 처칠에게 여러차례 호구 털리면서 루이 14세의 유럽 패권 물거품이 되버렸다.

이후 루이 15세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때는 모리스 드 삭스(Maurice de Saxe)라는 걸출한 군인이 활약하며 [[바이에른]카를 7세프로이센 편을 들면서 숙적 오스트리아를 터는데 일조 했고 동맹의 역전이후에는 총부리를 바꿔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 영국과 프로이센프리드리히 2세와의 전쟁에 뛰어들지만,역시 프랑스의 유럽 지배 야욕(?)을 분쇄하려는 영국과 동맹을 맺은 프로이센에게 패배한다. 프리드리히 2세한테 7년전쟁에서 러시아나 오스트리아 군대는 프로이센 군대를 연구해서 프리드리히의 군대를 몇번 격파하기도 하지만 그냥 프랑스군은 승점 셔틀 7년전쟁의 식민지 전쟁은 영국이 유럽 지상전은 돈줄을 대면서[54] 잘싸우는 프로이센프리드리히 2세에 맡기고 식민지 전쟁에 주력한 반면 프랑스는 이도저도 아닌 전략으로 힘이 분산되면서 식민지에서 분투한 병력들은 영국에서 충원되는 압도적인 적군 물량에 밀리면서 사실상 프랑스 식민제국들은 코딱지만큼 남기고 몰락한다.

한편 유럽지상전에서 졸전의 원인은 지휘관 인선이 퐁파두르 부인이랑 친하냐에 따라 결정되고 이 당시 작전 제대는 아직 연대 수준에 머물렀는데 프랑스군의 연대장들은 전부 예외없이 '귀족 나으리'[55]들 이라서 어느부대가 공격하니 보조공격을 하라거나 방어를 명하면 자신이 돋보이지 않기 때문에 쌩까는 전형적인 당나라 군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로스바흐 전투의 참패 이후에도 지휘관이 퐁파두르와 친해서 뇌물로도 구워삶고 처벌은 흐지부지 넘어갔다... 이후 프로이센은 거의 멸망의 위기에서 러시아 여황제의 사망과 영국이 다시 유럽전에 참전 하면서에 기사회생한건 사실이지만, 프랑스는 이미 오래 전에 로스바흐에서 프로이센에게 패배해서 전열에서 이탈해 있었다. 전쟁말에 영국과 동군연합인 하노버에 찝적거리다가 영국,하노버,헤센-카셀,브라운슈바이크 연합군에 박살나면서 라인강 서쪽으로 철수한다....

이 때쯤 프랑스는 유럽에서 국력이 최강이었기 때문에 군사적인 면에서는 양과 질에서 밸런스를 갖춘 육군대국이긴 했지만 이제는 유럽에서 육군 전투력는 양적으론 러시아군, 질적으로 프로이센군으로 양분된다.[56] [57]한편 루이 15세는 7년전쟁때의 프랑스 육군의 한심한 전투력에 충격을 받고 귀족들의 반발을 물리치고 사관학교를 설치하고 전통 귀족이 아닌 부르주아 자녀들도 받아들이게 되는데 이 수혜자가 10여년 후 입학하는 나폴레옹.... 앞서 연대장(대령)들의 추태와 머릿수 부풀리기 스킬로 군수품 떼먹기를 감시하기위해 중령(Lieutenant-colonel)직위가 나오게 되는것도 이 시대 이다.

10여년 후 프랑스군은 미국 독립전쟁에서 미 본토에서 미국과 연합하여 대규모로 작전한 유일한 군대이다. 미국 독립은 프랑스가 완성시켰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프랑스군의 참전은 지대한 역할을 했다. 참고로 웨스프포인트도 생시르를 모방했다. 그런데 현재 미국과 프랑스의 관계를 보면 참 역사의 아이러니..사실 놀랄 일은 아닌게 당시 프랑스는 미국의 독립을 바랐다기 보다는 눈엣가시인 라이벌 영국을 골탕먹이기 위해 미국을 지원한 것이었다. 그리고 재정이 폭삭 망하고 프랑스 혁명 크리(...) 이렇듯 서로 간의 정치적 계산에 의해 지속적으로 바뀌는 게 국제 정세이기 때문에 오늘날 딱히 미국과 프랑스 사이가 원만하지 못하다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4.4. 프랑스 혁명~나폴레옹 전쟁기

혁명 정부 초기 프랑스군은 무리한 귀족계급 장교 축출로 군이 혼란에 빠져들었고 혁명기간의 혼란으로 군수 산업이 마비되어 병사들이 군복과 군화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심지어는 총이 부족하여 창과 몽둥이를 들어야 하는 웃기지도 않는 사태에 직면하기도 했다.

그러나 7년전쟁 이후 프랑스군은 사단의 개념을 고안하고 포병을 혁신하는 등 많은 발전을 이룬 상태였다. 나폴레옹 등장전에 1793년 라자르 카르노가 의용군을 기존상비군(30만)과 합쳐 혁명군은 75만을 징집하는데 이러한 국민개병제 실시로[58] 프랑스군은 전례없는 규모로 팽창했으므로, 혁명이 점차 안정기에 접어들고, 혁명에 찬동하거나 반항하지 않는 성향의 귀족 출신 장교들이 복직되고 유능한 병사들이 장교로 승격되면서 서서히 프랑스를 노리는 유럽 각국의 군대를 완전히 격파하기 시작 했고, 나폴레옹과 그의 유능한 원수들이 군을 지휘하면서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을 지상전에서 격파, 프랑스 대 육군[59]은 사실상 무적의 군대로 변신했다. 일반적으로 프랑스 육군의 최강 시대는 앞서 루이 14세시기와 나폴레옹 시기를 뜻한다. 또한 이 시기 나폴레옹이 처음으로 군단 규모의 작전제대를 활용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프랑스군의 빛나는 성공에는 심각한 약점이 있었다. 프랑스의 산업도 발전하기는 했지만, 산업 발전 정도에 맞춰서 군대가 팽창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된 문제들 중 하나는 보급의 문제인데, 프랑스의 대육군은 보급의 상당부분을 현지에서 조달했다. 이것은 프랑스군의 규모가 그렇게 빠른 속도로 불어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한데, 절대왕정 시대의 군대는 약탈을 허용하면 군대를 통제할 수 없게 되거나 심하면 와해되기 쉬웠던 반면 혁명기의 프랑스군은 얼마든지 약탈을 하면서도 군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프랑스 혁명군은 이를 반대로 이용해서 보급이 따라오는 속도에 구애받지 않는 기동력을 과시할 수 있었다. 거기다가 혁명초기 다른 나라는 상비군 전력이라 20만~30이 한계 였고 국경밖으로 싸우러 가는 병력은 그보다 한참 적었지만 프랑스는 가뜩이나 인구도 많은데다가 징병제를 실시 70만 이상의 병력을 보유했다.군의 규모가 리즈시절이 지나고도 1812년 러시아 1813년 독일에서 수십만씩 말아먹고 나폴레옹 전쟁 끝물이던 1814년에도 징집가능 연령 인구가 100만에 실제로 40만 이상을 동원했다. 실제로 싸운 병력의 질이 떨어진 것과 별도지만 나폴레옹이 1814년에 누가봐도 막장테크 탄 상황에서 뭘 믿고 버텼냐를 보면 이런 병력수가 바탕이었다. 이런 대육군(Grande Armée)을 바탕으로 전 유럽을 상대로 전쟁이 가능 했지만 다른 나라들도 프랑스에 쳐발리면서 기존 군대의 기득권을 타파하고 프랑스와 유사한 동원 체제를 확립하자 비교우위도 사라지게 된다.

그리고 육군이 엄청나게 팽창한 것과는 달리 해군은 빠른 속도로 불어날 수 없었다. 배의 재료가 되는 발트산 목재는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입수할 수 없었고, 배를 건조하는 기술이나 해전에서의 기술과 같은 것은 혁명으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사실 프랑스 해군의 조선술은 영국보다 오히려 뛰어났지만 나머지 부분, 특히 인적자원 면에서 숙련된 선원의 부족과 함께 군함과 함대를 지휘할 함장과 제독 등의 역량도 해군장교단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구호기사단 출신 귀족사관들이 혁명의 와중에서 외국으로 망명하면서 잔류한 일부 사관들과 고참선원들이 제대로 된 훈련과 검증과정을 밟지 않고 승진하는 바람에 영국 해군에 비해 전반적으로 모든 능력이 부족했다.

그러나, 프랑스 해군의 사관들은 혁명 이전에도 영국의 해군사관들에 비해서 저돌적으로 적함에 접근하여 싸우는 경향이 부족하여 완승할 싸움을 고전 끝에 신승하거나 무승부로 낼 싸움을 참패로 바꾸는 경우가 많았다. 미국 독립전쟁중 인도양에서 자신의 함대보다 압도적인 영국 인도양 함대를 상대로 초근거리 접근전을 영국보다 먼저 강요하여 대등하게 싸워냄으로써 결과적으로 쇠퇴일로이던 인도 내 프랑스의 영향력을 회복시틴 쉬프랑 생 트로페와 같은 장교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또한 육군의 현지에서 조달하는 방식은 비교적 부유한 지역에서만 효과적인 것이었다.[60] 농업 기술의 낙후와 산지가 많은 환경 탓에 가난한 스페인 농촌은 대규모의 프랑스군을 부양하는데는 무리가 있었고, 이 때문에 소수정예의 영국군이 우위에 설 수 있었다. 러시아 원정에서는 같은 결과가 훨씬 대규모로 나타나게 되었다. 게다가 장기적으로 프랑스군을 부양해야 하는 '해방된' 피지배민족들의 분노는 계속 쌓여만 가고 있었다. 결국 스페인에서의 끝이 안 나는 게릴라전쟁, 그리고 러시아 원정의 실패로 전 유럽이 다시 프랑스의 적이 되어 총공세를 시작, 나폴레옹과 그의 군대는 몰락의 길을 걷는다.

4.5. 19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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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왕정 복고를 거쳐 나폴레옹 3세의 제2제정기에는 다시 프랑스군의 위세를 떨치기 위한 전쟁을 추진한다. 영국과의 식민지 쟁탈전(프랑스 식민제국)에서 자주 밀렸지만[61] 또한 이탈리아 통일 과정에서 오스트리아군을 격파함으로써 프랑스군이 유럽내에서 아직은 강국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 듯이 보였다. , 크림 전쟁 전쟁에서 오랜 원수지간 영국과 손잡고 러시아를 관광태운다. 단 크림전쟁은 전쟁사적으로 유래없는 병림픽의 향연으로 영국과 프랑스군 모두 지휘관들이 무능했는데(단 프랑스에선 발라클라바같은 누가봐도 정신나간 병크는 없었다.), 영국군 25만 프랑스군 40만 러시아군 70만 이었느데 실질적으로 승기는 전쟁 초기에 연합국이 잡았지만 영국 프랑스 지도부가 둘다 너무 무능해서 전쟁을 쉽게 끝내지 못하고 돈잡아 먹고 시간잡아먹고 병력잡아먹는 요새포위전에 꼴아박으면서 전쟁이 길게 끌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영국 프랑스가 승리한것은 러시아군 지휘부는 더 무능했기 때문이었다.[62]

그러나 오스트리아군과의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라이플의 발전으로 화력이 강화된 시대적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여전히 나폴레옹 시대처럼 종대로 돌격하는 한계를 노출했다. 그런데 오스트리아군이 훈련이 부족하고 아직 라이플의 화력을 충분히 활용하는 법을 익히지 못해서 종대로 돌격한 프랑스군이 승리했고, 오스트리아군은 이 전투의 '교훈'을 살려 화력에 의존하는 대신 종대로 돌격해서 백병전을 벌이도록 군대를 다시 훈련시키는 바람에 프로이센에게 참패했다.(…) 뒤이어 프랑스군도 보불전쟁에서 프로이센 중심의 독일군에게 털리면서 위대한 군대의 후예의 유산은 화려한 군복과 철지난 명성임이 확인된다... 프랑스는 프로이센보다 우수한 무기로 무장하고 자국 무기의 우수성을 너무 믿었는데, 몰트케가 천재적인 전략으로 나폴레옹처럼 교전 지역에서 압도적인 병력을 동원하여 소수의 프랑스군을 박살내고 다닌다. 전쟁 기간 병력 손실은 프랑스군 38만 프로이센 위주 독일군 11만이었다.[63]
프랑스군은 단순히 나폴레옹 3세의 삽질이라고 보기보다 몰트케가 너무 뛰어났다.당시 전쟁론도 전쟁술에 비하면 듣보잡 취급이었는데 이분께서 하신 한 마디에 명저 판정 사실 몰트케는 국왕과 민간정부 심지어 국방부에 조차 '행동의 자유'를 보장 받았고프로이센의 경직된 체계를 생각하면 이례적인 케이스[64] 나폴레옹 3세는 자기도 나폴레옹 1세만큼 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져 멍청하게 병력을 산개하다가 3배의 군대를 끌고 온 몰트케에게 사로잡힌다.샤스포가 아무리 뛰어나도 3배 차이에서 나오는 화력을 버틸 수가 없다! 병사들의 용맹성 특히 스당 요새에서 포위 당했을때 자살에 가까운 기병돌격을 보여줬으나 프로이센 강철대포 앞에 산화하고만다....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는 프랑스군의 용맹함을 '진정 용감한 사람'들이라며 경의를 표했지만 정작 패전후 1차대전을 앞두고 프랑스군의 패전은 전략전술로 접근하지 못하고 공격 정신의 부족으로 결론내리는 병크를 내리는데 19세기와 1차대전때 참극이 벌어지는데 일조한다.

4.6. 제1차 세계대전




초기의 프랑스군
빨간바지에서 볼 수 있듯이 외모를 실속보다 더 중요시한결과, 본격적으로 쓰이게 된 기관총과 참호전에서 수많은 인명을 손실하였다. 기병 제복을 입으면 무릎을 접기 불편에 앉아 쏴 자세가 불가능했다. 게다가 19세기에 사용되던 쥬아브 복장까지 존속 하고 있었다. 결국은 알록달록한 제복은 프랑스에서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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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의 프랑스군
채도가 낮은 지평선 청색이라는 색으로 초기의 채도가 높고 알록달록한 복장에 비하면 인시성이 낮아 졌지만, 수풀이든, 참호전의 진창이든 카키색이나 녹색 군복에 비해 눈에 더 잘띄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의 영광이 무색하게도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의 프랑스군은 다른 여느 열강 군대와 마찬가지로 감투정신이 넘치는 병사부사관, 하급 장교들과 무개념이 넘쳐흐르는 고급 장교 및 장군들이 조합되어 있던 (어떤 의미에서)당대표준(?)을 자랑하던 군대였다. 이 무개념 장군들의 대표적 삽질사례로 '나폴레옹 시대의 영광을 재현하자.'라는 취지로 군복을 눈에 잘띄는 파란색으로 바꿔 1차대전 중 대량의 인명손실에 일조한바 있다.

프랑스군 군복은 대혁명 이후 전통적으로 파란색이었으나 보불전쟁 이후 검은 색으로 바뀌었다가 1차 대전 직전에 병사들의 사기진작(?)을 위해 다시 파란색으로 바뀐다. 그나마 전쟁 후반에 눈에 잘 띄는 채도가 높은 파란색에서 눈에 잘 띄지않는 채도가 낮은 파란색으로 바뀌게 된다. 이미 19세기 중반 부터 군복의 위장효과에 대한 개념이 서서히 형성되고 있었으나[65] 유럽 각국은 위장 효과보다는 사기와 지휘의 편리성을 이유로 전통적인 원색군복을 대체적으로 유지해 나갔다. 보어전쟁 초기까지는 눈에 잘 띄는 붉은색 군복과 하얀색 방서모를 착용했던 영국군도 때문에 보어인들에게 시도때도 없이 저격을 당해 대량의 인명손실을 내고 나서야 저시인성 카키색을 정식 군복으로 교체하게 되었다.

문제는 독일이나 러시아 등 영국의 이러한 뼈아픈 교훈을 즉시 받아들인 나라도 많았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던 나라도 상당수 있었는데 그 중의 대표적인 나라가 프랑스였던 것. 프랑스군도 위장색을 받아들이자는 말에 분노하며 위대한 군대는 저런 수치스러운 군복을 입을 수 없다고 주장했고, 한술 더 떠 프랑스 국방장관은 "붉은 바지는 곧 프랑스다 (Le pantalon rouge c'est la France!)" 선언하며 위장색을 거부해버렸다. 그 결과 1차 대전 초기 수많은 보병들이 기관총 앞에 어육신세가 되었다.

이 시기 프랑스군은 앞서 19세기 똥별이 가득한 전통 군대에서 역시 벗어나지 못하고 젊은 장교들은 똥별들이 차지하고 있는 군대에서 승진이나 출세길이 거의 막혔기 때문에 그나마 으리나 애국심으로 군에 남은 엘리트들은 승진 가능한 날짜를 세어 보다가[66] 군대를 뛰쳐나갔고 나폴레옹 시기 이후 합법적으로 병역을 대체할수 있는 제도 덕에 징병제에도 불구하고 머릿수만 많고 병력의 질은 뒤떨어졌다.[67]

특히나 프로이센 장군참모부를 바탕으로 한 독일과 달리 후술하겠지만 공격정신에만 집착하면서도 공세를 취할 작전능력은 매우 떨어져서 1차대전 직전 20세기 초에 독일에 대응하여 징병제를 3년으로 늘렸지만 1년에 겨우 12일만 소집하고 의회에서 좌파 계열 정당이 의회에서 "프랑스를 병영으로 만들 셈이냐!!"라는 비판 덕에 하루마다 출퇴근 하여 복무할 지경이었다.. 똥별이 가득차고 무늬만 군인들이 호구수만 차지했던 프랑스 군의 작전능력은 1913년 프랑스 육군의 군사훈련 판단으론 공세를 위해서는 준비가 무려 1주일이 소요되며 공세는 3일이상 지속하기 어렵다고 자체 평가 했다.[68]

이러한 군대의 약체화는 과거의 화려한 영광과 달리 프랑스의 인구는 나폴레옹시기까지 유럽의 짱깨로 불리던 물량에서 정반대인 극악의 출산률로 19세기 이미 독일에 인구가 추월 당하고 수백년 전 백년전쟁 당시 10분의 1에 불과했던 영국에도 밀리는 캐안습 국력을 찍어준다. 혁명 시기 프랑스 인구(2500만명)는 러시아를 제외한 서유럽에서 가장 많고 숙적 영국과 프로이센을 합친 것보다 많았지만 120년뒤 20세기 초반 프랑스의 인구는 두 배도 늘지않은 3800만 영국은 4배가 증가하여 4500만, 독일은 통일 후에 6500만에 달했다.[69] 더 이상 육군대국을 유지할 능력이 없어졌다. 물론 경제력에서도 공업화에 크게 뒤떨어지면서 농업국가(?)로 불릴 지경이었다.[70] 사실 지금도 프랑스는 유럽 제일의 농업국가이다.

이 시기 프랑스는 '엘랑 비탈(Elan Vital)'이라 불리는 왕성한 공격정신을 중시하는 사기론과 해군의 '청년 학파(Jeune Ecole)' 등 독자적 군사노선을 지향했는데, 이 두 가지는 프랑스군의 흑역사로 남게 되며 결과적으로 이 시대 이후 프랑스군의 이미지는 결정적으로 추락해버리고 만다.[71]

그러나 항공전에 있어서는 전방 기총[72]을 개발하고 에이스의 개념을 정립하였으며, 연합군 공인 최고 격추기록을 가진 르네 퐁크를 비롯한 수많은 에이스들을 배출하기도 하는 등, 상당한 기여를 한 것도 사실이다. 또한 프랑스군의 야전포 등은 성능과 생산성이 우수해서 유럽에 파병된 미군도 초기에는 프랑스제 장비를 대량으로 운용했다.[73]

4.6.1. 엘랑 비탈[74] 교리

엘랑 비탈 항목 참조.

4.6.2. 청년학파

제2제정기에 대대적인 투자를 받아서 강력한 함대를 건설했으면서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별다른 활약을 보이지 못하면서 제3공화기 시기에 해군예산이 감축일로에 이르렀던 프랑스 해군 내부에서 영국이 주도한 건함 경쟁과 전함 중심의 해군체계에서 벗어나 당시 신기술이었던 어뢰정잠수함 중심의 체계를 건설할 것을 주장했던 해군 전략을 주장하던 장교단들의 총칭이다. 청년학파의 주장은 일종의 비대칭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당시의 전함은 넬슨 시대처럼 거대한 전함들이 가까운 거리에서 포화를 주고받는 해전을 가정하고 만들어졌기 때문에, 전함의 대구경 대포는 위력은 강했지만 매우 부정확했고 사정거리도 짧았다. 더구나 이러한 대포는 주로 전장포였기 때문에 장전하는데 시간도 많이 걸렸다. 따라서 작은 어뢰정이 어뢰를 쏘고 달아나는데는 사실상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75]

그런데 소형함이라도 어뢰라면 한 발로도 전함을 격침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다수의 소형의 어뢰정이 대형함보다 훨씬 강하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했고 '장갑함 1척을 만들 예산으로는 어뢰정 60척을 건조할 수 있으므로 연안방어를 위해서는 어뢰정을 만드는 것이 보다 유효하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당시 상황에서 영국과의 전쟁을 상정한다면 매우 진보적이고 합리적인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전략은 지나치게 영국만을 고려한 수세적인 전략이었다는 점이다. 현대에 들어서도 연안방어 임무에 있어서는 다수의 미사일 탑재 고속정이 소수의 대형 전투함들에 비해 유리한 게 사실이지만, 대형 전투함들은 다양하고 많은 무장과 전천후 활동능력, 우월한 장거리 항행능력으로 인해 해상교통로 보호나 장거리 원정, 초계 등등 범용적으로 쓸 수 있는데 비해, 소형함 위주의 해군세력은 연안 방어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에 제한을 크게 받는 편이며 악천후 하 작전에도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무엇보다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대형함에 비해 딱히 확실한 우세를 유지하지도 못할뿐더러 소형함이 가진 신무기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면 군사적 가치가 뚝 떨어져버린다.[76] 결국 이와 같은 세력 편성안을 채택하는 것은 해상에서의 무력 투사를 포기하고 해안선에서의 수세전략을 편다는 것과 사실상 같은 말이다. 그런데 프랑스는 전세계에서 식민지를 경영하고 있었고, 독일이나 이탈리아와 같은 다른 강국보다 해군력에서 우위를 점할 능력이 있었다. 청년학파의 비대칭 전략은 이러한 해양 강국으로서의 지위(1등은 아니지만)를 스스로 버리고 수세만이 가능한 3류 해군으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했는데, 이는 프랑스와 같은 대국에게 적합한 전략이 아니었다.

또 다른 문제는 프랑스의 전략이 영국 해군을 자극해서 적극적인 기술 혁신을 일으켰기 때문에 결국 영국 해군도 제대로 견제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프랑스의 어뢰정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영국 해군은 암스트롱 후장포를 도입했고, 대포의 사거리와 정확도, 장전 시간이 비약적으로 개선되어 어뢰를 명중시킬 수 없는 먼 거리에서 정확하게 공격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결국 적당한 속사포를 갖춘 구축함[77]이 어뢰정을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게 되었고, 청년학파의 전략은 결과적으로 해군력의 약화와 건함경쟁에서의 이탈, 그리고 대형함 제조 능력의 저하만을 가져왔다. 어느 정도인가 하면 타국이 3년에서 4년 사이에 12인치포 4문을 연장포탑으로 장비하는 상비배수량 1만 5천 톤 규모의 표준형 전함을 만들어 내는 것에 반해서 프랑스는 1만톤에도 못미치는 11인치포 2문 장비형 해방전함조차 7~8년에 걸쳐서 만들고 있었다. 정규의 표준전함도 마찬가지였고. 이것은 순전히 건함예산부족으로 인해 조선소에 충분한 자금을 지불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만 말이다.[78]

4.6.3. 서부전선의 주력을 책임지다

상술한 여러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군은 처음부터[79] 끝까지 서부 전선에서 연합군의 메인 탱커이자 주력이었고 나폴레옹 전쟁 이후 최고의 전투력과 인재풀을 자랑하던 시기다. [80]

기존의 소수정예군에 의존해 1916년에야 대군을 투입하는 영국군[81][82], 오-헝제국은 탈탈 털어버리는데 유독 독일군에게 역대급 삽질[83]개전 초반 승기를 빼았긴 러시아군[84]과 전쟁 후반에야 참전한 풋사과 미군을 대신해서 독일군과 1:1 교전을 맡을 수 있는 질과 양을 가진 군대는 프랑스군밖에 없었다.

인재 면에서도 군부에는 나폴레옹 이후 프랑스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는 포슈, 베르됭의 영웅 페탱, 프랑스의 구원자 갈리에니조프르, 심지어 니벨 공세를 말아 먹으며 아군에게 도살자로 불린 그 유명한 마저도 당대엔 생소한 개념이었던 이동탄막사격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던 상당한 인재였다. 정계에도 제3공화국 최고의 대통령 앵카레와 프랑스의 호랑이로 유명한 르주 클레망소 수상이 존재했다. 1차 대전에서의 삽질은 프랑스만의 것이 아니고, 시대의 한계를 모두가 깨닫지 못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프랑스의 삽질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프랑스 영토 내에서 벌어진 탓에 자기 영토에 참호 파고 앉아 있는 독일군을 빨리 쫓아내고 싶어 안달했기 때문이다.

종종 프랑스군의 전력이 1917년의 항명사태 이후로 엄청나게 약화되어 주도권을 영국군에게 빼앗겼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것이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다. 프랑스 장군인 포슈가 연합군 총사령관을 역임한 것이 지상군에서 프랑스군이 무시 못할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2차 대전에서 연합군 총사령관에 장제스가 임명될 수 있었을지를 생각해보면 쉽다. 전쟁의 대미를 장식한 백일 전투에서도 프랑스군이 중추적 역할을 맡았으며 애초에 2차 마른 전투 이후 반격을 지시한 것도 프랑스의 포슈의 단독결정이었으며, 2차 마른 전투에서도 50개가 넘는 연합군 사단중 40개가 넘는 사단을 프랑스군이 맡았다는 것도 프랑스군이 서부전선 연합군의 중핵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애초에 프랑스군에 대한 분석은 묘하게도 프랑스쪽 작가보다 영미권 작가가 많으며 영국이나 미국의 비중을 늘리는 과정에서 주력인 프랑스군이 자주 누락되었고, 영국원정군 총사령관 글라스 헤이그의 일기를 의심없이 참고해 이런 성향이 더욱 심해졌다. 허버트 조지 웰즈백일 전투를 묘사하면서 프랑스군을 공기 취급해서 욕먹은 적이 있다. 친프랑스파로 유명한 윈스턴 처칠도 1차대전을 회고하는 책에서 조프르를 좀 심하게 깠는데 그 이유가 갈리폴리의 삽질을 덮으려는 노력이라는 추측도 존재한다(...) 게다가 프랑스군이 2차 대전에서 크게 말아먹는 바람에 "나폴레옹 이후 되는 게 없는 프랑스군" 이미지를 키웠다.

21세기에 들어서 이전까지 거의 인용되지 않던 프랑스쪽 자료를 바탕으로 프랑스군을 재평가하는 수정주의 시각이 늘은 덕분에 참고할 서적이 좀 더 많아진 편이다. 그것들도 죄다 영문 자료지만. 관련 내용으로 Elizabeth Greenhalgh 교수의 <The French Army and the First World War>나 양차대전에 대한 수정주의 시각을 담은 <Britain and France in Two World Wars: Truth, Myth and Memory>을 추천한다.

4.7. 제2차 세계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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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간기에 소련, 독일 등이 앞으로의 육상전은 전차 중심의 기동전이 될 것으로 예상한데 반해 제1차 세계대전처럼 참호전이 될 것으로 예상하여[85] 마지노 선만 열심히 만들어댔으면서 정작 중요한 전략, 전술 발전은 거의 없었다. 동맹인 영국과 마찬가지로 기동전과 보병전 독트린을 놓고서 지휘부가 치고 받는 바람에 실 전술 개발[86]은 지지부진했으며 더 나쁜 것은 참호전의 트라우마 탓으로 구식 보병전에 압도적으로 경도되었다는 점이다. 해군강국인 영국과는 달리 전통적 육군국인 프랑스에게 있어 이는 더욱 치명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단 독일이 마지노 선을 우회할 것은 예상하고 벨기에 국경에 주력을 배치했지만, 독일군이 프랑스가 전혀 생각못한 르덴 숲을 관통하여 진격하자 혼란에 빠졌다. 사실 전쟁 발발 전에도 아르덴이 기존의 인식처럼 천연 요새이기는 커녕 적들 기갑 병력을 위한 고속도로 수준이라며 방어를 보강해야한다는 보고서가 여럿 제출되었지만 똥별들이 무시하는 바람에 6주 광탈의 스타트를 끊게 되었다. 게다가 공군 발전을 등한시하여[87] 제공권이 장악당해 독일 공군의 폭격에 대응하지 못하고,[88] 보유한 전차는 무전기도 없어 유기적인 전투를 전혀 치르지 못하는 등 삽질의 극에 달하는 모습만 보여주다가 결국 파리가 함락당하자 항복한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 군함들이 독일군에 넘어갈 두려워한 영국해군이 프랑스 군함들을 자침시키는 등 안습스러운 상황이 이어진다.

허나 프랑스 군대는 흔히 우리가 생각하듯 약체이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 프랑스군과 싸운 독일 병사 / 장교들의 평가처럼 프랑스 군대의 병사들과 하급장교들은 독일군에 뒤지지 않는 왕성한 투지와 우수한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어리석은 윗대가리들이 역시 문제였다. 특히 1940년 5월 10일 ~ 14일간의 프랑스 침공 초반부에는 짧은 4~5일만에 프랑스 2군이 대거 무너지면서 막장화된걸로 비춰지지만 이 4~5일간의 독불국경일대에서의 전투에서 프랑스군은 혼란한 지휘부에도 불구하고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분투한 소부대가 상당히 많았다. 포격 등으로 유선 통신선이 두절되어 후방의 사령부와 두절된 부대일수록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서도 끝까지 항전한 경우가 잦은 걸 보면 최고 사령부의 명령이 오히려 하급 부대들을 혼란스럽게 한 걸지도 모른다. 2차대전 초반을 다룬 프랑스군 사진을 보면 전차병은 대부분 부상당한 상태였거나 전차 자체가 여러번 피격되어 박살난 사진이 많은 것도 이에 해당한다. 그냥 손들고 항복했다면 전차 자체가 그렇게 집중포격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을테니. 여러 모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군의 모습이 떠오를거 같지만 이탈리아는 윗대가리와 병사 모두다 멘붕상태라.

특히 [[덩케르크 철수] 이후 프랑스군은 마른전선에서 며칠이나마 버티며 분투했고 최후까지 벌어진 레스트일대의 공방전에서도 전황타개를 모색했지만 초반에 손실병력과 장비가 너무 컸고 공군력 자체가 열세한 관계로 패전을 피하지 못했다.당시 레노내각이 보르도까지 수도를 옮겨가며 항전을 다졌지만 항복하자는 여론이 근소하게 높아 결국은 초반 전국의 수모를 겪게 된다.

게다가 프랑스군은 과거부터 요새축성등에는 상당한 기술력을 갖고 있었는데 그 프랑스군이 자신들의 특기인 요새를 지나치게 맹신해 마지노선에 거의 올인을 해버린 상태라 육군의 기갑현대화나 전술개발,공군력 정비등에 있어서 여력이 없었던것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또한 독일군과 처지가 상당히 다른게 프랑스군인데 유럽 제2위의 해군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렇잖아도 빡빡한 살림에 해군력에도 투자해야 했고 프랑스군은 산하 136개 사단중 정규급 및 A급 사단이 전체 편제에서 절반정도밖에 확보가 안된것이 치명적인 약점이 되게 된다.그리고 그 해군력은 1940~1944까지 별 활약 못하다가 영국에게 얻어맞고 자침하다가 이탈리아 해군에게 인양되는 수모가지 겪는 판

당시 영관급 장교였던 샤를 드골은 1930년대 중반부터 독일군의 기계화를 예상하고, 프랑스군도 기갑전에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가올 독불 전쟁을 예상한 몇 권의 저서를 내어 참호전을 고집하는 육군 수뇌부를 바보 멍청이라고 비난했으나[89], 당시 프랑스 정국은 개판이었고, 군수뇌부는 정치권의 비위를 맞추느라고 혁신적인 시도 따위는 하지도 않았다. 사실 프랑스 침공 당시 프랑스군 전차들은 독일의 주력이었던 2호전차에 뒤지지 않았으며 전격전 따위는 최근에는 거의 신화로 치부되는 현실이라서 수뇌부만 개념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프랑스군은 그렇게 참패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일단 독일군이 아르덴 숲을 넘어오자 프랑스군 지휘부는 공황에 빠져서 순식간에 무너저버렸다.


독일군 지휘관들처럼 기갑전에 대한 이해가 풍부했던 당시 드골 대령은 200대의 전차를 가진 제4 기갑사단을 이끌고 1940년 5월 14일 아르덴 숲 접경 몽코르네에서 독일군에 반격을 해서 승리를 했고, 이게 프랑스 침공에서 거의 유일한 프랑스군의 승리였다. 이 공적으로 드골은 준장으로 승진했다. 그러나 전의를 잃은 프랑스군 지휘부는 파리가 함락당하자 항복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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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프랑스군에 합류했던 프랑스 외인부대[90]

영국으로 철수한 장병들이나 식민지에 있던 프랑스인들은 드골의 지휘아래 자유 프랑스를 결성하였다. 자유 프랑스군은 1944년 당시, 55만명이나 되는 비교적 대군이었고, 프랑스가 해방된 이후에는, 150만으로 병력이 급격히 늘어나서 서부전선을 담당하였다. 이런 대군이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에 프랑스는 제2차대전 종전 후에 승전국의 말석에 낄 수 있었다. 자유 프랑스군은 영국과 미국의 원조로 무장하고 있었고, 특히 무장은 물론, 군복마저 미군과 똑같을 정도였다.

세계적인 기량을 가졌으나 공군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했던 수뇌부때문에 프랑스 침공 당시 아무것도 못해보고 영국으로 망명한 프랑스 공군 조종사들은 동서에서 주목할 활약을 했다. 서쪽에서는 영국공군의 제326, 327,328 비행중대를 이루면서 스피트파이어를 몰고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맹활약을 하여 독일 아프리카군단을 패배시키는데 일조했다. 동쪽에서는 소련공군에 편입되어 유명한 노르망디-니에멘 연대로 개편, 야크기를 몰고 맹활약했다. 이들의 전과가 눈부셨기 때문에 전쟁이 끝난후, 스탈린은 감사의 표시로 그동안 정들었던 야크기를 몰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었다. 이 부대(1/30 노르망디-니에멘 전투비행중대, Escadron de chasse 1/30 Normandie-Niemen)는 아직까지도 프랑스에서 현역이다.

4.8. 한국전쟁

세계대전 종전 후 프랑스의 첫 대규모 전장은 한반도였다. 당시 프랑스군은 여유전력이 없었지만, 영국이나 터키도 여단 병력을 보내는데 자기들만 뒤처질 수는 없었기에 2차대전 및 인도차이나 전선의 참전경험자를 중심으로 지원병을 모아 파병했다. 이때 지휘관도 물론 자원을 받았는데, 여기 지원한 양반이 르빅 전투의 영웅이자 프랑스군 현역 중장몽클라르 장군(…). 이 부대는 규모가 대대였기 때문에 미군 23연대 휘하로 배속되었고 연대장인 대령중장을 지휘해야 하는 괴상한 모양새(…)가 되자 스스로 대대장을 자처해 중령계급으로 부대를 지휘했다. 하지만 어쩌면 당연하게도, 유엔군 사령부에서는 이 양반을 장군으로 대우해 줬다.

사실 프랑스군은 그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했다. 연합군 수뇌부는 물론이고 일반 장교들 및 언론기자 전원이 가진 '프랑스군'에 대한 이미지는 1940년의 패배한 군대의 이미지였던탓 때문에 어느 지휘관도 이 1천 명의 프랑스군 보병들을 자기 지휘하에 넣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들을 배속받은 미 23연대장도 명령을 받았으니 받아들인 것 뿐이지, 받아놓고서도 과연 프랑스군이 제대로 싸울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인식은 프랑스군의 실제 전과로 깨끗하게 날아가 버렸다. 1951년 2월 평리 전투중에 본대의 측면을 방어하던 1개 소대, 단 25명의 프랑스병이 총검돌격으로 중공군 1개 대대를 쫓아버리는(…) 상황이 발생한 것. 이런 짓을 하고도 프랑스군의 피해는 부상자 단 2명이었다. 전투종족이냐?[91]

돌격을 지휘한 소대장은 그 공으로 미군으로부터 엄청난 찬사를 받고 은성훈장까지 수상했는데, 이에 대한 프랑스 대대 장병들의 평가는 간단했다고 한다. 다음은 대대장 몽클라르 중장중령의 발언.

"뭐라고! 우리 병사들이 한 총검돌격은 보병전술의 기초 중의 기초잖아! 그런데 저 양키놈들은 그걸 가지고 왜 난리인 거지?!"

몽클라르 중령이 투덜거리거나 말거나 미군은 감명을 받았고, 8군 사령부는 예하 전 미군에게 총사령관 리지웨이 장군 명의의 이런 명령서를 내려서 경악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총검은 아마도 연합군의 최후의 비밀무기는 아닐지라도, 귀관들이 무시할 수 없는 전략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총검이 단지 통조림 깡통을 따기 위해서 고안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든 장병들은 유의해 주길 바란다. - 리지웨이 -

이후 프랑스군은 휴전협정이 체결될 때까지 치열하게 계속해서 싸워 연인원 3,421명이 참전, 전사 262명·부상 1008명·실종 7명의 손해를 냈다. 참전병력은 적었지만 워낙 치열한 전투에 많이 투입되었던 터라, 한국전쟁 참전 외국군 사상율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후 이 병력들은 베트남전이 격화하면서 한국에서 철수, 베트남으로 간다.

미군 부대의 카투사처럼 프랑스군에도 일부 한국인 장병이 배속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프랑스군이 베트남으로 가기 직전까지 프랑스군과 함께 복무했다.

4.9. 현대

세계대전 이후 국력저하로 식민지 유지를 못하게 된 실정에도 식민지의 독립 요구를 깔아 뭉개려다가 베트남 전쟁에서 얻어 터지고 알제리 전쟁으로 쪼인트 까이는 한심한 꼴을 보이며 자존심을 구기고, 전통적인 유럽의 육군강국이라는 이미지를 잃어버리기에 이른다. 사실 이것은 프랑스군의 문제라기보다는 프랑스 정치가들의 문제다. 당연히 즉시 독립을 시켜줘야했을때 안들어줬기 때문에 프랑스군이 수습을 해야했고, 프랑스군이 패배가 예상되는 전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미지와는 별개로 냉전기 프랑스군은 실제로는 다방면으로 고른 능력을 갖춘 강한 군대였다. 다만 비교대상이 슈퍼파워 미국과 이길 싸움만 골라가며 하는 영국, 제2차 세계대전에서의 강국 이미지가 남아있는데다 때깔나는 지상장비 잘 뽑아내는 독일인데다,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털리던 바람에 깎아먹은 그 놈의 이미지가 문제였다.
게다가 제일 중요한 2차대전의 전훈인 요새의존을 디엔비엔푸전투에서 재활용하면서 무너진게 가장 크다

냉전기간 중에는 미/영과의 마찰로 나토를 탈퇴한 바 있다. 다만 이 사건은 탈퇴는 프랑스만의 문제로 인한 것이라고 하기 곤란하다. 1956년에 있었던 제2차 중동전쟁 당시, 소련은 이집트군을 제압한 영/프 연합군에 대해 핵공격 위협을 한다. 아직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던 영/프 연합군은 다 이긴 전쟁에서 굴욕적인 철수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양국의 핵개발 드라이브는 급물살을 타게 된다.

여기까지는 딱히 문제가 없었으나, 핵실험에 성공한 영국은 자국을 배신했던[92] 미국편에 곧바로 붙어 프랑스의 핵개발을 방해하기 시작한다.

동맹군으로서 함께 싸웠고 함께 핵공격위협을 받았던 사이 안 좋은 이웃나라영국이 적으로 돌아섰다는 사실에 프랑스의 국내여론은 좌파/우파, 보수/진보, 여당/야당 할 것 없이 단합하여 '조국의 핵무장'을 지지했고, 이러한 범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은 프랑스 정부는 국방비의 무려 25%를 핵개발에 쏟아넣는 강경드라이브 끝에, 1960년 핵개발에 성공한다.

이 와중에 영국에 느낀 배신감, 미국이 소련과 손잡고 프랑스의 핵개발을 저지하려고 나섰던데서 깨닫게 된 '영원한 동지도 적도 없다.' 등은 프랑스가 나토를 탈퇴하는 초강수를 두도록 만든 원동력이 된다.

이후 프랑스는 미국이나 소련과는 좀 다른 독자 노선을 걸으며 중동을 비롯하여 여러 나라에 무기를 팔아먹었다. 이스라엘이 중동전쟁에서 미라지로 재미를 보자 아랍 각국이 소련제 무기 대신 미라지를 사들이기도 했다. 게다가 미제 무기보다는 싸고 러시아제 무기보다는 신뢰도가 있다는 이미지 때문에 틈새시장에서 의외로 많이 팔아먹었다. 걸프전 직후 걸프전에 투입된 미제 무기의 압도적인 성능 및 냉전의 종료로 미제 및 러제, 독일제 등의 무기들을 구하기가 쉬워진 덕분에 틈새시장도 많이 넘아가 판매량이 상당히 감소했지만, 2000-2010년 10년간의 무기 수출량은 미국, 러시아, 독일에 이어 세계 4위의 무기 판매국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중국에 밀릴 공산이 매우 크다.

어쨌든 냉전 기간 동안에는 비록 나토에서 탈퇴하긴 했지만 집단안보체제를 구성하고 있는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냉전 당시의 프랑스군은 전쟁 발발시 나토의 지휘 체계 내에 편입되어 영국군/서독연방군과 함께 나토 지상군의 중핵을 맡을 예정이었으며, 규모 역시 6개 기갑사단/3개 경기갑사단/3개 기계화보병사단, 거기에 각 1개의 공수사단/공중기동사단/해병사단을 보유하고 있는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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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 ISAF의 일원으로 작전중인 프랑스군 보병. 여단 규모급으로 파견되어 있다.)

프랑스군은 냉전의 종결과 함께 그 규모 면에서 상당한 규모로 감축이 진행되어 왔고, 현 시점에서 과거의 육군 대국의 모습을 연상하기는 어려운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구성과 편제 면에서는 여전히 나름대로 알찬 모습을 유지하고 있어 향후 유럽군이 창설될 경우 유럽군의 중핵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게다가 영국은 2008년 9월 세계금융위기의 여파로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입고 육해공 전 영역에서 대대적인 감축에 들어간 상황이며, 독일 역시 꾸준히 병력이 감축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현재도 유럽 제1육군국인 프랑스의 유럽 내에서의 비중은 점점 높아져갈 예정.

2011년 5월 현재 프랑스 육군은 총 3개 기계화여단과 2개 기갑여단, 2개 경기갑여단[93], 각 1개의 공수여단과 산악여단을 예하 단위부대로 삼고 있다. 병력의 감축을 첨단화로 보완하고 있다.

샤를 드 골급 항공모함으로 상징되는 해군 역시 상당한 경험과 규모를 갖추고 있다. 예산이 딸려 드 골의 후속함 건조 사업이 휘청이고 있지만(...) 그래도 FREMM 프로젝트와 호라이즌 프로젝트를 통해 대잠/방공 호위함 도입 사업을 성공리에 이어가고 있고, 신형 공격원잠의 취역 역시 착착 맞춰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거기다 러시아에 수출까지 된 상륙함 건조 노하우를 갖춘 데다 신형함도 취역 중이라는 점까지 봤을 때 프랑스 해군의 전력은 상당히 탄탄하다. 게다가 전략 원잠도 갖추고 있으니 핵 억지력의 한축으로도 상당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유럽 제1해군국이던 영국이 급속도로 함대를 축소하고 대잠초계기도 이미 전량 퇴역시켜버린 상황에서 이대로라면 몇 년 내로 프랑스가 유럽 제1해군국의 지위를 획득하리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다만 공군은(...) 현재 라팔의 도입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상태임에는 분명하나 그 수량이 충분치 않고, 여전히 미라지 2000과 미라지 F1이 공군의 주력을 차지하고 있어 세대교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이후로는 그 독일마저 군축의 대열에 대대적으로 합류함으로서 현재 프랑스는 사실상 EU에서 군사력으로 1위를 하는 국가가 되었다. 유럽은 냉전 이후로 러시아와의 전면적인 화해무드가 들어섬으로서 대대적인 군축을 단행해왔다. 냉전 이후 한동안은 전세계에서 가장 마찰이 없는곳중의 하나가 유럽이었기에 이러한 군축이 크게 문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세계금융위기 이후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유럽 국가들은 같은 유럽인들이 보기에도 너무할 정도의 군축을 해왔고, 결국 유럽에 두번다시 안일어날것만 같던 군사적 마찰이 일어나자 다시금 군축이 문제삼아지기 시작했다. 이후로 다시금 러시아의 위협이 대두되기 시작했고, 여기서 나온 결론은 유럽연합은 당분간 군사적으로 망했어요. 이로서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제대로 주력이 되서 대처할만한 유럽국가는 사실상 프랑스와 폴란드 정도밖에는 없게 되었다.

프랑스군의 2014년 10월 27일 기준 지상군 편제는 다음과 같다.

  • 1기계화여단
    • 1저격병연대[94][95]
    • 1스파히연대[96]
    • 1해병포병연대[97]
    • 3공병연대
  • 2기갑여단
  • 3기계화여단
    • 1해병연대[102]
    • 92보병연대[103]
    • 126보병연대[104]
    • 68포병연대
    • 31공병연대
  • 6경기갑여단[105]
    • 1외인기병연대[106]
    • 2외인보병연대[107]
    • 21해병연대[108]
    • 3해병포병연대
    • 1외인공병연대
  • 7기갑여단
  • 9해병경기갑여단
    • 해병기갑연대[114]
    • 2해병보병연대[115]
    • 3해병보병연대[116]
    • 11해병포병연대
    • 6공병연대
  • 11공수여단
    • 1후사르공수연대[117]
    • 1샤쇠르공수연대
    • 2외인공수연대
    • 3공수해병연대
    • 8공수해병연대
    • 35공수포병연대
    • 17공수공병연대
  • 27산악보병여단
    • 4샤쇠르연대[118]
    • 7산악샤쇠르대대[119]
    • 13산악샤쇠르대대
    • 27산악샤쇠르대대
    • 93산악포병대대
    • 2외인공병연대

4.10. 현대 프랑스군의 이미지

현재 프랑스군의 이미지는 한국의 밀덕후 사이에서는 강군도 아니고 약군도 아닌 그저 그런 평범한 군대[120][121] 취급이지만 나토를 탈퇴하고 자주국방에 골몰한 결과 21세기 현대 유럽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독자전쟁능력을 갖춘 나라다. 나토 하에서 공군/해군만 집중적으로 키운 영국, 육군만 비대해진 독일[122]에 비해 육해공 삼군이 가장 균형을 이뤘다고 평가받고 있으며, 한국의 참여정부 시절 만들어진 국방개혁 2020 방안도 프랑스군을 모델로 했다고 한다. 세계적인 경제난과 군축으로 영국과 독일이 대규모 군축을 감행한 현재는 명실상부 러시아군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다.

핵무기항공모함도 보유하고 있는데, 미국이나 러시아 같은 나라에야 비할 수 없지만, 아프리카의 소국 정도는 충분히 위협할 수 있으며 서부 아프리카의 질서를 유지하는 지역강국이다. 그래서 예전 식민지에서 정변이 일어났다고 하면 프랑스군이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많은 사상자가 생겨도 정치적으로 문제될 것 없는 외인부대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해외파병에도 나름 공을 들이고 있다. 알제리, 베트남의 실패 사례가 눈에 띄지만, 아프리카의 프랑스 권에서 프랑스 군의 개입은 상당히 효과적인 사례도 많았다.

외인부대가 가장 언론에 자주 노출되기 때문에 이들이 프랑스군의 정예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외인부대 뿐만 아니라 프랑스 정규군의 정예도도 높다. 특이하게 해외에 자주 출동하는 해병대(Troupes de Marines)가 해군소속이 아닌 육군소속이다.  

친미적인 니콜라 사르코지가 집권 이후 수십년만에 나토에 복귀했다. 나토에 복귀한 이유는 사르코지의 성향도 성향이지만, 현재 프랑스 경제상황이 나빠서서 자주국방을 하기에는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국가 헌병대와 그 소속의 대테러부대GIGN은 상당한 실력을 자랑한다. 1950년대부터 70년까지는 독립을 요구하는 바스크인이나 알제리 독립단체의 테러를 겪고, 70년대부터는 프랑스에 몰려 사는 각국의 망명자들을 노리는 암살 및 테러 등에 시달려온 탓에, 그동안 축적된 대테러전 노하우는 세계 최고의 경지에 달해 있다. 1994년에 테러범에 납치된 에어 프랑스기 납치사건도 인질 전원무사, 테러범 전원 사살로 깔끔히 해결하여 프랑스군의 다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4.11. 외인부대

프랑스가 보유한 군대 중 프랑스인이 아닌 사람들로 구성된 외인부대가 존재한다. 우리나라에도 제법 알려져 있다. 자세한 것은 외인부대 문서의 1번 항목 참조.

5. 군별

6. 프랑스군의 무기개발사

자주국방이라는 이름 하에 무기체계 국산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기본적으로 프랑스의 유럽 내에서의 패권 추구와 궤를 같이 하고 있는데, 독자적인 군사적 역량이 없이는 동서의 초강대국-미국/러시아와의 유럽 내 패권 경쟁에서 적극성을 유지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위해 무기의 국산화에 많은 역량을 투입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밀덕후사이에서는 이런 프랑스의 국산화 추구가 상당히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밀덕후가 자주국방을 우습게 보다니 일본의 국산화 삽질 때문에 한국 밀덕후들 사이에서 무기 국산화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예전에 있었긴 하지만, 일본의 국산화가 워낙 특이한 케이스라서 그꼴이 난다는게 알려지고 한국군이 계속해서 K-2 흑표 전차와 FA-50 공격기를 개발하는 등 무기 국산화를 하려는 의지가 보이자 현재에는 완전히 사라졌다 해도 좋은 상태이다. (물론 국산 무기가 국방부에서 선전한것보다는 훨씬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계속 만들어봐야 결국은 좋은 무기가 나올게 아닌가.) 오히려 국방부나 ADD의 발표를 곧이 곧대로 믿고 국산무기가 타국무기보다 무조건 좋다는 국뽕이 설쳐서 문제될판..

나토에 의지하지 않는 독립적 무기체계 구축을 목표로 했으나 가용가능한 예산의 제한되지만 투자해야하는 분야는 다양하기 때문에 무기체계의 신규 구축에 적은 예산이 투입되고-적은 예산으로 개발기간이 길어지고-개발기간이 길어져서 소요 예산이 증가하고-예산이 없어 개발이 지연되고-그러는 사이 신기술이 개발돼서 개발목표가 변경되고-그러다 보니 다시 개발기간과 소요예산이 늘어나는 식으로 비효율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123][124]. 또 이를 위해 독자구격을 사용하다보니 총기류와 같이 민간 시장의 파이가 큰 분야의 경우 범용성 부족으로 세계시장에서 퇴출당하다시피 하게 되기도 했다. 또한 지나치게 프랑스 우선주의를 채택하는 바람에 다른국가들간의 공동개발사업을 여러번 파토내기도 했다.[125]

미스트랄, 미라지, 엑조세 시리즈 등은 호평을 받으며 오랜시간을 지내왔지만 냉전이 끝난현재는 더이상의 틈새시장 개척 및 가용가능 예산의 한계로 미제와 러제, 새로운 다크호스로 떠오른 중국제가 무기시장을 지배하는 요즘에는 더이상 수출길을 뚫기가 힘들어져[126] 다시 나토 및 공동개발 쪽으로 돌아가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도 나토 쪽으로 치우치는것을 우려했는지 러시아와도 상당한 협력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 평균 이상-세계 수위권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비슷한 경제규모를 가진 독일, 영국이 자국의 자연조건에 특화된 특정 분야에서만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한 것에 비하면, 다소 비효율적이지만 전 분야에서 세계수준을 달성하고 있는 프랑스의 역량이 과소평가될 만한 수준의 것은 아님을 기억하자. 미국, 러시아, 중국에 치여 미래가 안 보인다는 점은 똑같지만.

6.1. 전투기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군으로 활약한 미라지 전투기, 그리고 그 후계기종인 미라지 2000, 엑조세 공대함 미사일 등이 장기간 호평을 받아 왔다. 인도군의 미라지 2000의 운용은 매우 만족스러워서 인도군은 Su-27이나 MiG-21 같은 러시아제 전투기와 함께 프랑스제 전투기를 계속 사용하고 있다. 잘 안 팔리기로 유명했던 라팔조차도 이런저런 전투기 수집해서 박물관 꾸미는 게 취미인 인도에 대량으로 팔렸다.

6.2. 헬리콥터

가젤 무장헬기도 괜찮은 무기로 꼽힌다.

6.3. 미사일

프랑스가 만든 엑조세 공대함 미사일은 포클랜드에서는 아르헨티나군이 발사하여 영국군 구축함 하나를 침몰시켰고, 이란-이라크 전쟁 중이었던 1987년에는 이라크군이 당시 이라크 우방이었던 미 해군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프리깃 스타크호를 적인 이란의 군함으로 오인해 발사, 대파시키기도 했다.

미스트랄 휴대용 대공미사일은 성능을 인정받아 25개국에 수출되었으며, 크로탈 지대공 미사일은 한국의 천마 지대공 미사일의 개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6.4. 개인화기

서유럽 국가 모두가 나토 표준인 7.62mm탄을 쓰고 있는데 유일하게 7.5mm탄 사용을 고집하며 30년을 버틴 근성(?)을 자랑한다. 사실은 대전 후의 경제적 혼란과 이어서 벌어진 베트남과 알제리에서의 막대한 자금소모 및 핵개발에의 우선적인 국방예산 배정으로 인해 나토 규격으로 소총탄약을 교체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토 탈퇴로 탄종을 통일할 이유도 없었고...결국 이것은 프랑스제 총기가 세계시장에서 퇴출되는 결과만을 불러왔다. 그래도 핵개발이 일단 마무리된 1970년대 이후에 채용된 돌격소총이나 다른 화기들은 나토 규격의 탄약을 사용하는 화기로 통일시켰다.[127]

기관총 역사의 데스크림존쇼샤기관총[128]을 제외하고서라도 1차 대전시 주력 소총인 Fusil Mle 1886 레벨 소총은 볼트액션 + 튜브식 탄창이라는 골룸한 결합으로 재장전에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 것으로 유명하고,[129] 2차 세계대전 중 쓰던 주력 소총 MAS-36안전 장치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며(덤으로 '예술의 나라'라는 선입견을 한참 부수는 못생긴 외관으로도 유명하다.), 냉전기간의 MAS 49/56는 20, 30발 탄창 시대에 10발 탄창을 끝까지 고집한[130]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도 냉전을 기점으로 이런 안습한 상황에선 어느정도 벗어나기 시작했다. 전후 전군을 최대한 빨리 무장시키기 위해 '급조한' MAT-49는 같은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국의 스텐 기관단총보다 높은 생산성과 신뢰성을 가지고 있어서 만족할만한 성능을 지니고 있었고, 베트남 전쟁 및 과거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을 통해 공산권으로 유입되면서 만족스러운 평가를 얻고 또 공산권에선 이걸 7.62X25mm 토가레프 탄을 사용하는 버전으로 마개조해서 써먹었는데 역시 만족스러웠다고.

현재 쓰고 있는 제식 소총인 FA-MASAUG와 함께 실전배치된 대표적인 불펍소총으로 알려져 있다. SA80 못지 않은 똥총이라는 평가와 쓸만한 불펍 소총이라는 평이 공존하는데, 불펍형의 일반적 문제인 탄피배출을 FAMAS의 특유의 문제로 오인되는 경우도 있다. 일단은 결함투성이였던 영국의 SA80보다는 훨씬 낫고 SA80보다 못하면 그건 총이 아니라 구멍난 막대기겠지만 안정성으로도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세한건 FA-MAS해당항목으로...

권총은 옛날부터 유독 약했다. 과거 식민지겸 이웃인 벨기에가 총기류로 유럽과 미국을 쥐었다폈다 하는 것을 비교하면 미묘한 부분. 현재도 주력 권총으로는 이탈리아베레타를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얼마되지 않는 국산 권총들도 대부분 해외제품의 모방 수준. 그래도 제2차 세계대전때 사용된 Mle. 1935 권총은 후에 SIG P210계열의 조상에 해당하는 우수한 설계였다...탄이 약해서 문제였지만.

6.5. 공동개발 관련 에피소드

항상 일관적으로 독자성을 주장하기 때문에 만사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할것을 강력히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에 해리어의 전신인 NATO표준 수직이착륙기 P1145계획을 말아먹고[131], 유럽표준전차 개발을 함께 하던 서독과 틀어지고[132], 재규어 사업에서 자국의 이익만 요구하다가 영국이 불만을 품게 하더니, 이후 토네이도 개발과 유로파이터 개발과정에서도 결국 탈퇴한 등의 에피소드가 있다.
하지만 이러한 에피소드들 역시 왜곡되었거나 과장된 것이 많으며, 무기개발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바 있는 국가라면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이러한 케이스는 몇개씩 찾아낼 수 있다.

6.5.1. 유로파이터 프로젝트

유로파이터 개발시 프랑스산 엔진 사용과 함재기형의 개발, 그리고 최종 조립공장을 프랑스에 둘 것을 주장했다가 제뜻대로 안되자 탈퇴했다고 한국의 밀덕후들에게 왜곡되어 알려져 있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이것은 부차적인 문제고 실제로는 설계 컨셉에 영국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었다.[133]
이는 '바르샤바 조약기구 국가와 가까운지라 공대공/공대지 모두를 커버할 수 있는 기체'를 원하는 프랑스의 컨셉과, '대륙과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어, 북해를 건너 날아드는 소련 폭격기의 요격에 중점을 둔 기체'를 원하던 영국의 컨셉이 너무나도 달랐기에 벌어진 일로, 이를 프랑스의 이기주의 때문이라 모는 것은 사실을 완전히 왜곡하는 것이다. 이것이 만약 이기주의라면 자국의 지정학적 특성에 맞추었기는 마찬가지인 영국의 주장 역시 이기주의의 극치이기 때문.
그리고 결과적으로 유로파이터는 공동개발국들이 자국이익만 우선시한 결과 유지비가 극도로 치솟았으며, 개발국들조차 어떻게든 내다 버리려고 애쓰는 애물단지가 되었다.

반면 라팔은 리비아 내전등에서 준수한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126기에 이르는 인도MMRCA사업을 따내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다. 심지어 유로파이터 측은 인도에 어떻게든 팔아보기 위해 프랑스가 과거 제안했던 함재기형 유로파이터까지 '돈만 내면 만들어 드릴게요' 라고 내밀고 있다. 이럴거면 프랑스가 함상형 만들자고 할때 같이 만들었어야지

6.5.2. 토네이도 프로젝트

토네이도 역시 프랑스 입장에서는 애매해 보일 만도 한 것이, 프랑스는 이미 토네이도와 유사한 쌍발/가변익/대형기체인 미라지G 시리즈를 만들어 본 바가 있었으며, 너무나도 비싼 획득비용 및 유지비에 놀라[134] 시제기까지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업을 접고 주머니 사정에 맞고 대량운용이 가능한 단발 소형전투기인 미라지2000을 만들었던 선례가 있었다.

6.5.3. 라파예트급 호위함

국내 밀덕계에서는 미완성된 전투체계 때문에 급하게 땜빵격으로 만들어져서 제 성능을 못낸다, 또는 플랫폼의 가능성에 비해 턱없는 수준의 무장이라고 조롱당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건 자국의 천톤짜리 호위함에도 함포 서너문에 하푼을 탑재하는 모습을 보던 한국 밀덕들이 프랑스가 해외영토 초계임무를 위한 경무장 원양초계함을 운용해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되었다. 정확히는 원양초계함의 존재 그 자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원인이 컸다.

프랑스의 해외영토는 비교적 가까운 북아메리카의 생 피에르도 4000km 이상, 남태평양의 누메아는 16000km 이상 떨어져 있기에 이런 곳에 정기적으로 초계임무를 보내기 위해서 내파성이 우수한 대형선체와 낮은 유지비를 갖출 필요가 있었고 라파예트급도 이런 목적에 맞도록 설계되었다. 라파예트급이 체급에 비해 경무장을 갖춘 것은 평시에는 적은 유지비[135]를 바탕으로 해외순방용, 초계용 등으로 쓸 수 있도록 한 컨셉인 것이다.

6.5.4. 차기 호위함 사업: FREMM급

영국, 이탈리아와 공동으로 차기 호위함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자국산 방공체계, 자국산 방공미사일, 자국산 선체로 건조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느라 사업을 질질 끌다가 결국 참다 못한 영국이 나가버림으로써 사업이 반쯤 박살나 버렸다.
허나 초도함이 건조되기로 예정되었던 시기보다 22개월이나 늦긴 했으나, 어차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국가들은 무기개발이 예산부족으로 인해 지지부진한 것이 일반적이다. 22개월 지연 정도면 어찌보면 준수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유로파이터 프로젝트의 경우엔 프랑스 탈퇴 후에도 독일(어휴 바르샤바조약군 지상군 막아야 하거든요? 지상공격능력&인해전술 가야해요!)과 영국(안돼 폭격기 막아야돼!)이 컨셉안을 놓고 다투느라 컨셉 확정에만 10년 가까이 걸렸으며 2013년 현재도 개량안에 대한 공동개발국의 생각이 전부 달라... 업그레이드형의 개발이 난항을 겪고 있다.
그리고 프로젝트에서 탈퇴하고 독자노선을 걸으려던 영국군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직격탄을 맞고 그만......

6.5.5. 에어버스 A400M

A400M프로젝트 역시 프랑스가 부당하게 까이는 경향이 있는 사업이다.
라팔의 엔진인 M88을 베이스로 하는 터보프롭 엔진을 프랑스가 주장했던 것을 예로 들며, 조루엔진 M88을 쓰는 바람에 A400M도 막장이 됐어요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웹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데, M88 베이스의 엔진은 A400M계획 초기에만 주장되었고 실제로 채택되지 않았으며, 검토착수 후 오래지 않아 포기되었으므로 A400M 개발지연의 주역 역시 아니다. 오히려 프랑스는 최대도입예정국이었던 독일이 물량을 줄이고, 영국이 C-130을 구입하면서 도입수량을 줄이는 과정에도 자국물량을 줄이지 않고 사업축소의 충격을 흡수한 바 있다.

6.5.6. 기타

현재는 최신전차인 르클레르와 신형 전투기 라팔의 도입으로 위세를 떨치지만, 신무기 도입에 군예산이 거덜나서 병사들의 복지 비용이나 장비 가동 비용에 빵구가 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7. 프랑스의 역대 사기 행각 전설?

2002년경부터 인터넷에 굴러다니는 글로서, 한국에서 프랑스군의 이미지를 상당히 갉아먹은 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글은 전부 거짓말이고, 프랑스가 작성자를 고소해도 할 말이 없는 글이다. 항목 참조바람.

8. 프랑스군의 장비

8.1. 1, 2차 대전 당시

8.2. 현대

8.2.1. 육군

8.2.3.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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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http://www.globalfirepower.com/
  • [2] 전차를 세대별로 구분하는 기준
  • [3] 프랑스군의 전차 보유 수량, 프랑스육군의 르클레르 전차는 3세대 전차와 별도로 3.5세대로도 분류한다. 주력 전차 항목을 참고바람.
  • [4] AMX 10 RC는 장갑차이나 105mm 주포를 탑재해 화력은 전차급이다. 이러한 종류의 병기는 준전차급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물론 객관적인 수치에서는 수평적인 비교를 위해 전차로 포함시키면 안된다.(AMX 10 RC 관련 데이터)
  • [5] 4.5세대 전투기 분류법 참고.
  • [6] 4.5세대 분류법 (2)
  • [7] 프랑스 공군 전투기 보유 수량
  • [8] 4세대 전투기 분류법 참고.
  • [9] 4세대 전투기 분류법(2)
  • [10] 4세대 전투기인 미라지 2000을 9대 추가로 보유하고 있으나 훈련기이다.
  • [11] 3세대 전투기 분류법 참고.
  • [12] 프랑스 해군 항공기 보유 수량
  • [13] 프랑스 해군 소속
  • [14] 이 항목에 기재된 항공기 총합은 유사시 동원 가능한 헬기나 경찰급의 헬기도 모두 포함하는 수치다. 공군기 총합과는 틀리니 사소한 오해로 삭제하거나 수정하지 말기 바람.프랑스군의 항공기 총합 출처
  • [15] 만재 7,050 톤 호라이즌급 (2척)
  • [16] http://fr.wikipedia.org/wiki/Classe_Aquitaine, FREMM급
  • [17] 르비유급 만재 6,100톤.
  • [18] 방공 호위함 카사드급 만재 4,950 톤(2척)/대잠 호위함 조르쥬 레그급 만재 4,500 ~ 4,830 톤(7척)
  • [19] 경 스텔스 호위함 라파예트급 3,600 톤(5척)
  • [20] 경 정찰 호위함 프로레알급 2,950 톤(6척)/OPV 바트로스급 만재2,800 톤(1척)
  • [21] OPV 고윈드급 1,500 톤 (1척)
  • [22] 1천 5백톤 미만 초계함이나 고속정은 대부분 대규모 함대전에서 유효한 전력이 아니다. 이것들은 특작부대를 막을 때 한정적으로 유효하다.
  • [23] 초계함 스티엔도르브급 1,250 톤(9척)/OPV 말린급 1,100 톤(1척)
  • [24] 항공모함 PA2 75,000톤급
  • [25] 항공모함 샤를 드 골급 42,000 톤
  • [26] LPH 미스트랄급 만재 21,300 톤(3척)
  • [27] LPD 푸드로급 12,000 톤(1척)
  • [28] BATRAL급 1,330톤(3척)
  • [29] LCU CDIC급 750톤(1척)/LC CDIC급 300톤(4척)/LCM CTM급 150톤(19척)
  • [30] 자세한 내용과 출처는 SSBN 항목을 참고하기 바람. 르 트리옹팡급, 수상배수량 12,640 톤
  • [31] 수상배수량 4,765톤 바라쿠다급
  • [32] 수상배수량 2,400 톤, 루비급
  • [33] http://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military_expenditures
  • [34] 현재는 중국과 인도의 약진으로 순위에 따라서는 5위 밖으로 나갈 때도 많다. 현재 1, 2, 3, 4위는 미국-러시아-중국-인도(혹은 미국-중국-러시아-인도)로 사실상 고정된 것이나 다름없으며, 5위 자리를 놓고 프랑스와 영국이 다투고 있다.
  • [35] 스크류 추진 증기선은 이전까지 쓰이던 외륜 추진 증기선에 비해 포격에 의한 손상 가능성이 없고, 특히 속도면에서 압도적인 고성능을 발휘했다.
  • [36] 프랑스가 도입한 글루와 호는 기존의 목재 선체에 장갑을 증설한 형태로, 지금과 같은 철제 선체에 장갑을 두른 형태는 글루와에 대항하여 건조된 영국의 워리어 호가 최초다.
  • [37] 대한민국 국군의 헌병과는 달리 인구가 적은 시골이나 정부기관에 대한 경찰업무도 담당한다. 옛 일본 육군 헌병대와 비슷하다.
  • [38] 아래에 기술된 반불성향 밀덕들이 지어낸 이야기들 대부분이 FX사업때 라팔 도입 찬성측을 공격하기 위해 지어낸 것들인데, 현재에 와서 판단하면 이 글을 쓴 사람은 단순히 밀덕들이 아니라 전문가인듯 하다. 그 이유는 아래와 같다. 정보기관이나 군심리전 전문가가 지어냈을지도 모르는일이다.
  • [39] 이건 소위 '라팔리언'들이 하도 깽판을 친 탓이 컸다. 지금이야 곧잘 개그 소재로 쓰이지만 그 당시엔 소수인 밀매 중에서도 또 소수인 항공매니아들이 맘 편하게 대화하고 놀 수 있었던 공간을 뒤집어 엎고 흔들어버린 라팔떡밥을 진심으로 혐오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이런 사람들은 엉뚱하게 프랑스군에 화살을 돌린 것. 사실 프랑스측이 라팔 판촉에 적극 나서서 한국이 도움이 되면 되었지 손해가 된일은 없다. 대체로 이전까지 한국군의 대규모 군수입찰에서는 고위층에 대한 로비(혹은 뇌물)가 결정적이었는데, 닷소측은 라팔을 팔기 위해서 여론전을 실시했고, 대중들에게 라팔을 적극 홍보했다. (홈페이지제작, 항공기 관련 행사에서 기념품 증정, 언론사 기자들 견학) 이때문에 보잉도 적극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프랑스나 닷소의 홍보전은 극렬라팔리언들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한국에 도움이 되면 되었지 손해를 준건 없다. 덩달아 한국밀덕후들은 닷소와 보잉 양사로부터 수많은 홍보자료나 기념품을 챙길수 있었다. 잘못을 했다면 극렬 라팔빠들이 잘못한거지, 닷소나 프랑스가 한국에 사기를 치거나 한국을 디스한 적은 없다. 사실을 제대로 알자.
  • [40] Chef d'État-Major des armées
  • [41] (2000년~2014년)프랑스의 명목 GDP, 경제성장률 흐름
  • [42] 스웨덴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tockholm International Peace Research Institute, SIPRI)-군비자료
  • [43] List of countries by past and projected military expenditure (current US$)
  • [44] 실제로 나폴레옹 1세는 바로 명분을 내세워서 황제로 즉위했다.
  • [45] 이때 게르만족은 현대 독일민족이 아니고 잡다한 민족들을 통틀어 로마시대에 붙인 것이다. 다만 로마시대에 현대의 독일 땅은 게르마니아라고 불렸다. 대충 오랑캐들 사는 땅 정도..
  • [46] 이 당시 전쟁사적으로의 의미나 당시 유럽최강군대는 영국도 프랑스도 독일도 아닌 스웨덴 구스타브 2세 아돌프의 군대다. 12세때까지 군사강국위치였다.
  • [47] '프랑스의 절대왕정' -서정복(충남대 명예교수)-
  • [48] 단 이시기의 병력은 농사꾼들 징병시킨것이 아니라 세금을 바탕으로 고용한 용병이다.
  • [49] 1678년 영국의 찰스 2세와 손잡고 네덜란드를 쳤지만 패배했다 그러나 승자였던 네덜란드의 국력도 기울었다. 네덜란드의 국력은 17세기 중엽 한때 대서양 밖으로 나가는 무역선의 4척중 3척이 네덜란드 배였다. 그러나 루이 14세의 인해전술(?)을 막아 내느라 국력이 기운다.
  • [50] 루이 14세의 아내(스페인 공주)가 지참금을 챙겨오는대신 스페인 상속권을 포기한다는 결혼 이었는데 스페인의 국력이 기울여서 결국 지참금을 덜 챙겨와서 상속권 드립을 치며 벨기에를 뺏으러 갔다. 애초에 마자랭이 스페인이 재정이 어려워 결국 미납할것을 내다봤고 결혼을 추진했다고 한다.
  • [51] 20세기 영국 수상 윈스턴 처칠의 9대조상이다. 초대 말버러 공작
  • [52] 현재 프랑스영토인 사보이 출신의 대공으로 루이 14세의 궁정에서 자랐으나 출세를 못하자 오스트리아로 건너간다. 혈통상으로는 이탈리아인, 교육은 프랑스식으로 받았지만 활동지 오스트리아의 독일식 발음인 프린츠 오이겐(Prinz Eugen)으로 많이 알려져있다.
  • [53] 프랑스는 루이 14세의 도팽(왕세자)의 둘째 아들 필리프(펠리페 5세)를 밀었는데 당연히 왕세손 (프티 도팽)은 따로 프랑스를 물려받을 예정이었다. 그런데도 루이 14세가 사실상 위성국화 하는것을 저지하는게 목적이었는데 반대편 오스트리아를 밀다가는 오스트리아 스페인이 아예 통합되어 동군연합이 되기 때문에 프랑스와의 전쟁명분이 완전히 퇴색 해버렸다.
  • [54] 유럽에 지상군을 파견하지 않은건 아니다. 당시 수상이던 윌리엄 피트의 정책과 달리 조지 2세는 열렬한 유럽파였다.
  • [55] 루이 14세 때와 달리 궁정귀족 세력이 강해진것으로 실력보다 가문빨로 뽑힌다.
  • [56] 영국은 해상력으로 특화 육군은 <전쟁의 역사>의 저술자 몽고메리 장군 평가로는 존 처칠 이후 암흑기라고 본다.
  • [57] 특히 러시아군은 18세기 후반쯤엔 카프카스와 크림미아 지역을 터키에서 빼았고 인구와 국력이 급신장 지금의 미래 패권 국가로 예약된걸로 취급받는 현재의 중국 취급이었다.. 이미 이시기 프랑스의 인구수는 훌쩍 뛰어 넘는다.
  • [58] 프로이센의 상비군은 20만 오스트리아는 상비군이 30만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유럽서 저그 취급받던 러시아는 프랑스처럼 징병제 안해도 머릿수는 무한대급...
  • [59] La Grande Armee, '위대한 군대'이라는 뜻이지만 하지만 단순히 대규모라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 [60] 화려한 프랑스 요리들이 보여주듯이 프랑스의 농업생산력은 굉장히 높다. 무슨 말이냐고? 일단 배부터 채운 다음에 맛을 따질 것 아닌가? 실제로도 프랑스는 지금도 서유럽 제일의 농업생산력을 자랑하는데도 농산품 가격 유지를 위해서 전체 경작지의 절반 가량을 놀리고 있다. 대체 무슨 나라냐, 프랑스는.
  • [61] 말이야 '쟁탈전'이라고 하긴 하지만 19세기에 영국과 프랑스가 식민지 문제로 총탄을 주고받은 적은 없다. 두 나라는 19세기에는 대체로 같은 편이었다. 유명한 '파쇼다 사건' 때마저도 두 군대는 그냥 대치하기만 했다.
  • [62] 버나드 로 몽고메리著 <전쟁의 역사> 무능과 별도로 시대상이 변했는데 각국의 전쟁수행방식 자체가 뒤떨어것도 큰 요인이다.
  • [63] 사망자만이 아닌 실종 포로등의 전투 손실이다. 당시 국력을 보면 프로이센은 인구가 1800만 프랑스는 3000만이었다.
  • [64] 육군 최고사령관은 명목상 국왕이다. 참모총장은 군의 실질적 통수권자로 총리나 민간정부 국방부에도 책임을 지지 않고 오로지 국왕에게만 책임이 있었다. 원수 진급도 국방부 장관 론(Von Roon)보다 참모총장 몰트케가 빨랐다.
  • [65] 대표적인 위장을 위한 군복 색인 카키색은 인도 주둔 영국군이 종래의 흰색군복이 눈에 잘 띈다는 것을 깨달은 뒤 흙이나 커피, 홍차, 카레를 묻혀가며 만들어냈다...
  • [66] 지휘부가 7~80대이고 40대 대위 50대 소령은 흔한 일이었다. 장군이 되려면 일단 장수를 해야 했다(...)
  • [67] 1차대전 발발 직전 프랑스 육군의 정규군은 60만 (독일은 55만)에 달했다. 독일에선 머릿수가 많으면 병력의 질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군국주의 국가에서 고병력을 보유하지 않았다. 인구도 더 많았다.
  • [68] 8월의 포성- 바바라 터크만-
  • [69] 다른 나라에 비해 프랑스의 인구증가저조는 유럽사의 미스테리라 학자들 연구 대상이다. 영국과 독일은 신대륙으로 인구 유출이 있는데도 몇 배씩 늘었는데 프랑스는 이민자도 적었다. 나폴레옹 시절 상속법 변경으로 인한 저출산 여파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확실치는 않다.
  • [70] 철강 생산이 독일의 4분의 1 영국의 절반 이하일 정도. 프랑스의 산업생산 정체는 여러 서적에서 다루고 있다. 니얼 퍼거슨의 <증오의 세기> 폴 존슨의 <모던 타임즈> 등을 참조하기 바람. 둘 다 영국인이라 의심(?)할지 모르지만 위키백과 프랑스어 판에서조차도 존 키건 등 영미학자들 출전이 수두룩함.
  • [71] 이 또한 헛소리로 1918년의 프랑스군에 대한 독일군의 고평가와 처칠이 1930년대에 "프랑스군덕분에 참 다행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고평가되었다.
  • [72] 극초기에는 총알이 프로펠러를 날려버리지 않도록 프로펠러에 금속 판을 덧대어 총알을 튕겨내게 하는 것이었다(초기 비행기 재질이 그렇듯이 프로펠러도 나무였다.). 문제는 이것도 도탄 때문에 비행기에 손상이 가고 프로펠러는 주기적으로 교체해야만 했다. 이후 독일군이 전방 기총이 달린 프랑스 전투기를 입수한 다음에는 캠축을 활용해 프로펠러가 기관총 앞에 오면 아예 발사가 되지 않도록 하는 싱크로나이즈드 기어를 만들게 되는데(물론 연합군도 금세 따라서 만들었다.), 이렇게 양군에 모두 전방 기총이 장착되면서 비로소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도그파이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 [73] 야드파운드법 일색인 미군에서 인치가 아닌 155mm 구경 포탄을 쓰는 이유가 바로 프랑스의 영향이다.
  • [74] 앙리 베르그송의 "창조적 진화"에 쓰인 단어인데 오용되었다.
  • [75] 사실 당시 영국에도 장전시간도 짧고 사정거리도 길고 정확한 강철 후장포가 있었다. 문제는 이들 대포는 민간업자의 손으로 만들어졌으며, 국영 조병창에서는 이런 후장포를 만들 값비싼 시설을 도입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영국 해군은 민간업자들이 만든 대포를 채택할 것을 거부했으며, 이런 자세는 프랑스 청년학파의 전략이 심대한 위협으로 다가올 때까지 계속되었다.
  • [76] 청년학파 시대의 어뢰정은 영국 해군이 암스트롱포를 장비하게 되면서 몰락했고, 현대 시대의 미사일 고속정은 대형함이 헬기를 장비하게 되면서 몰락했다. 둘 다 신무기로 무장하고 나올 당시에는 위력적인 무기체계로 평가받았으며 얼마 못가서 대책이 나와버려 망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 [77] 구축함(destroyer)이라는 이름 자체가 어뢰정 구축함(torpedo boat destroyer)를 줄인 말이다.
  • [78] 이런 개판 5분 전의 상황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전간기에 리슐리외급같은 건실한 전함을 만들어낼수 있었던것을 보면 프랑스의 대형함 제조 능력은 건재했다고 보는게 맞을 것이다. 애초에 청년학파의 연안해군 사상도 예산부족의 어려움속에서 대안으로 내놓았던것이니. 실제로 청년학파는 어뢰정으로 구성된 연안해군에만 집착한것이 아니라 순양함을 이용한 통상파괴작전도 중요시했다.
  • [79] 1차대전 초기에는 서부전선의 군대 그 자체에 가까웠고1916년에 영국군이 대거 투입된 이후에도 여전히 주력이였고 막판의 1918년의 백일전투에서도 주력이었다.
  • [80] 쉽게 말해서 2차대전 소련군의 역할을 1차대전에서는 프랑스군이 했다.
  • [81] 그러나 전초에 소수"정예"라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게 숙련된 영국군은 매우 뛰어난 분전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러한 정예병은 빠르게 소모되었다. 그래서 1916년까지 전선에 숙련된 영국군이 적었고 피터 심킨스의 경우에는 독일군이 상대적으로 영국군이 약체화된 1915년 서부전선에서 공세를 하지 않고 만만한 동부전선에서 전과를 올린게 결과적으론 마지막으로 1차대전을 독일이 승리할수 있는 기회를 걷어찬 것이라 평가할 정도였다.
  • [82] 1915년 이후엔 서부전선에선 프랑스 영국 독일 가릴것 없이 충원율 100%가 넘는 부대가 속출했다. 사망, 부상, 실종, 포로 등으로 손실된 병력이 편제의 100%를 넘어 일부 운빨 쩌는 베테랑을 빼고는 싹물갈이가 되었다.
  • [83] 탄넨베르크에서 1개군이 전멸 할 정도의 개삽질이었지만 마른전투 시기에 독일군 일부를 동부전선으로 이동시키서 프랑스엔 간접적(?)으로 도움이 되었다.
  • [84] 러시아군의 장비 교육훈련과 장교 수준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매우 떨어졌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정도는 박살냈다(...). 독일군의 도움이 없었다면 갈리치아 전선에서 오스트리아는 1914년에 붕괴했을 정도(...) 독일군은 서부전선에서 병력을 빼야했고 서부전선에서 압력이 줄어들었기에 프랑스군에 도움이 된게 사실이다. 프랑스 : 그걸 노리고 동맹한겁니다 애초에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병력을 투입한것도 러시아군 수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니콜라이 2세가 투입을 지시한 것. 이는 동맹국 프랑스와의 '으리'의리 때문이었다.
  • [85] 그보다는 참호전이 될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다. 1차 대전 당시 북프랑스 일대가 전장이 되면서 피해가 컸던 상황이 트라우마가 된 것. 이게 어느정도 였나 하면 미국으로부터의 밀 수입이 단 며칠만 늦었으면 프랑스 전역이 굶어야 했었다고 한다.
  • [86] 독일군은 프랑스에게도 KV쇼크 비슷한 상황을 겪어야 했다. 프랑스군의 경전차라는 놈은 1, 2호 전차를 아득히 뛰어넘었고 Char 시리즈에 오면 1:13의 전설까지 자랑했다. 문제는 역시 전술과 무전기 장비 여부.
  • [87] 포슈가 했던 "비행기는 장난감에 불과하다" 발언 때문에 종종 욕먹는데, 사실 이 발언은 1911년에 한 것이다. 이후 포슈는 1915년부터 항공 정찰에 적극적이었고, 1916년에는 항공정찰을 토대로 한 포병지원을 강조했던 바 있다. 따라서 프랑스가 2차 대전 때 공군 발전을 등한시한 것을 포슈의 책임으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 [88] 전투기 실 보유수에서는 프랑스가 독일보다 우세했다. 하지만 독일군이 공군을 통합적으로 운용한 반면 프랑스군은 축차적인 항공기 투입으로 자멸해버렸다.
  • [89] 오히려 독일군 총참모부가 이 책을 가져다가 프랑스군의 대응방안을 연구했다고 한다(...)
  • [90] 북아프리카 전역 중 가잘라 전투에서 독일군에게 빼앗긴 벙커를 재탈환하기 위해 돌격하는 모습이다. 이들의 분전으로 독일군은 유리한 위치에서 공세를 가하면서도 큰 손실을 입었고, 이들은 포위당한 상태에서도 한계까지 버티다가 귀신같이 빠져나갔다. 격전지였던 비르하케임은 지금도 외인부대에서 전설로 언급되는 성지이다.
  • [91] 사실 저런 소수 정예부대가 상대적으로 기량 및 훈련도는 낮고 수적으로 절대 우세한 적을 상대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총검돌격밖에 없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다. 그리고 저런 '이상적인 상황'이라면 총검돌격은 생각보다 성공율이 높다. 물론 상대 나름이지만 말이다.
  • [92] 미국은 영국과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맺었던 핵기술공유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영국의 핵개발에 도움을 주지 않은 전과가 있다. 당연히 영국은 이에 격분했다.
  • [93] 기계화여단에 가까운데, 예하에 거느린 1개 기병연대(프랑스군의 연대는 대대급 부대를 일컫는다.)는 105mm 포를 장비한 화력지원형 AMX-10 RC를 보유한다.
  • [94] 프랑스군의 연대는 타군의 대대에 상응하는 편제이다.
  • [95] 장륜장갑차로 무장한 기계화보병대대.
  • [96] AMX-10RC과 ERC-90으로 무장한 경기갑대대.
  • [97] 프랑스군 해병대는 육군 소속이다.
  • [98] 르클레르 전차로 무장한 기갑대대.
  • [99] 르클레르 전차로 무장한 기갑대대.
  • [100] 장륜장갑차로 무장한 기계화보병대대. 식민지군 시절의 전통을 이어받았다.
  • [101] 장륜장갑차로 무장한 기계화보병대대.
  • [102] AMX-10RC와 ERC-90으로 무장한 경기갑대대.
  • [103] 장륜장갑차로 무장한 기계화보병대대.
  • [104] 장륜장갑차로 무장한 기계화보병대대.
  • [105] 외인부대의 실질적인 주력 지상군 전력이 배치된 부대다.
  • [106] 장륜장갑차로 무장한 기계화보병대대.
  • [107] AMX-10RC와 ERC-90으로 무장한 경기갑대대.
  • [108] 장륜장갑차로 무장한 기계화보병대대.
  • [109] 르클레르 전차로 무장한 기갑대대.
  • [110] 장륜장갑차로 무장한 기계화보병대대.
  • [111] 장륜장갑차로 무장한 기계화보병대대.
  • [112] MLRS를 보유한 포병대대.
  • [113] 미스트랄 등을 주력으로 하는 방공포병대대.
  • [114] AMX-10RC와 ERC-90으로 무장한 경기갑대대.
  • [115] 장륜장갑차로 무장한 기계화보병대대.
  • [116] 장륜장갑차로 무장한 기계화보병대대.
  • [117] ERC-90으로 무장한 경기갑대대.
  • [118] 경기갑차량과 고기동차량, 그리고 헬기가 혼성편제된 기동대대.
  • [119] 산악기동차량과 장륜 장갑차로 무장한 경보병대대. 이하의 산악샤쇠르대대들도 동등한 편제다.
  • [120] 사실 21세기 들어서 쏘련이 무너지고 유럽이 군축하는 바람에, 20세기 같은 포스를 내뿜는 국가들이 없어졌다. 미군만 빼고.
  • [121] 비슷한 처지에 놓인 영국 같은 경우는 유지할 능력이 안 되는 식민지들은 쿨하게 놓아주되 엉겨붙는 녀석만큼은 귀싸대기를 맛깔나게 날리며 나름의 품위유지에 성공했지만,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광탈하고 전후 식민지들의 독립 과정에서도 여기저기 끌려다니며 끊임없이 털리는 모습만 보여준 탓에 그저그런 군대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물론 식민지에서 영 좋지 않은 일을 겪은 것은 전술한 대로 정치권의 잘못된 결정으로 프랑스군이 독박을 쓴 것이지만, 일반인들과 딜레당트들이 그런 사정까지 고려하지는 않는다.
  • [122] 물론 독일은 전범국이라 군사력의 균형 발전에 이런저런 제한이 걸려 있던 것도 사실이다. 거기다가 군축 이후에는 그 비대하다는 육군이 프랑스 육군과 거의 동급밖에 안된다!
  • [123] 가령 라팔의 경우 이런식으로 개발되다보니 30년 이상의 시간이 소모되었다. 또 다른 예로 라파예트급은 전투체계 개발에 시간이 걸려 임시로 운용되고 있고, 예산부족으로 루비급 같은 반쪽짜리 소형 공격원잠을 만들기도 했다.
  • [124] 그러나 유로파이터도 라팔과 비슷한 시기에 시작되어 비슷한 시기에 시제기가 나온것을 보면 프랑스만이 삽질했다고 보는것도 좀 무리가 있다. 세계경찰노릇을 하는 미국과는 달리 유럽국가들은 냉전이 해소되자 군비 확장에 큰 정치적 부담을 가지게 되었고, 이때문에 사업이 지지부진해진 것이지 프랑스, 혹은 다른 나라들이 전차 하나 만드는데 30년을 잡아먹고도 제대로 못한 모국가처럼 막장이라서 전투기 하나 만드는데 30년이 걸렸던 것은 아니다.
  • [125] 토네이도 계획에서 떨어져나가 덕분에 여전히 주력 공격기가 재규어가 사용되고 있다.
  • [126] 현재의 경우 지금까지 판 무기들에 대한 유지 보수 및 보충이 대부분.
  • [127] 일부 저격총들은 전용 탄약을 사용하지만 프랑스군의 특수부대용 화기나 하다못해 기관총 경우에는 FN 미니미FN MAG를 사용한다.
  • [128] 총열이 앞뒤로 길게 움직이는 괴이악한 구조에, 잔탄 세기 쉬우라고 20연발 탄창의 옆면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 놨다!
  • [129] 그래도 프로이센이 Gew88을 만드는 데 이놈을 베껴가기도 했고(물론 실패했지만….), 8mm 무연화약 채택으로 몇몇 구석에서는 나름대로 선진적이었던 녀석이긴 하다. 문제는 타국보다 먼저 채용하는 바람에 상당한 기술적 모험을 하느라고...
  • [130] 반자동 소총인 49식의 경우는 10발 탄창도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었지만, 49식에 자동발사 장치만 추가한 56식에게 10발 탄창은 분명 비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외인부대 같은 실전을 많이 치르는 부대에서 대용량 탄창 도입을 끈질기게 주장했으나 30여년을 씹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대단... 탄창과 같은 소모품도 의외로 조달비용이 만만찮은데다 궁핍한 재정속에서 치룬 알제리 전쟁과 연이은 핵개발 속에서 과연 대용량 탄창으로 교체하자는 주장이 국방예산의 배정순위에서 얼마나 우선적으로 정해질 것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 [131] 미라지VIII이 이때의 산물이다
  • [132] 레오파르트1, AMX-30이 이때의 결과물
  • [133] 아무리 프랑스가 자국이익을 내세워도 단순히 이런 문제로 탈퇴한다면 궁극적으로는 프랑스에게 더 해가된다. 한국 밀덕후들이 잘못알고 있는 것과는 반대로, 독일과 함께 유럽연합의 지도국인 프랑스는 자국보다 훨씬 경제사정이 안좋은 이탈리아나 스페인등의 합작국을 앞에 두고 이런식으로 행동할 수가 없다.
  • [134] 유로파이터의 위엄에 눌려서 그렇지, 토네이도의 운용비 역시 절대 저렴하지 않다.
  • [135] 무장이든 뭐든 일단 함선에 설치된 것은 유지비를 증가시키기 마련이다.
  • [136] 항목에도 씌여있지만 2030년까지의 독일군과의 공동도입을 목표로 KMW와 넥스터가 공동개발중이다.또 유럽표준전차 꼴 나면 막장이지만...
  • [137] 구식화한 AMX-10P를세대교체를 하기 위해 후속모델인 "VBCI"에게 바톤 터치하고 2008년 이후 퇴역하기 시작하였다
  • [138] http://fr.m.wikipedia.org/wiki/Panhard_General_Defense_Véhicule_blindé_léger 출처(프랑스어 위키)
  • [139] FAMAS를 대체해 채용했단 주장이 있으며,현재 육군 특수부대에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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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9-25 02: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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