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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맥그리프

last modified: 2015-01-12 16:17:24 by Contributors


이름 Frederick Stanley McGriff
생년월일 1963년 10월 31일
국적 미국
출신지 플로리다주 탬파
포지션 1루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1년 드래프트 9라운드(뉴욕 양키스)
소속팀 토론토 블루제이스(1986~1990)
샌디에이고 파드리스(1991~1993)
애틀랜타 브레이브스(1993~1997)
탬파베이 데빌레이스(1998~2001)
시카고 컵스(2001~2002)
LA 다저스(2003)
탬파베이 데빌레이스(2004)

1994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MVP
커비 퍼켓
(미네소타 트윈스)
프레드 맥그리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제프 코닌
(플로리다 말린스)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2.1. 역마살의 시작
2.2. 애틀랜타 시절
2.3. 말년
3. 은퇴 이후
4.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1. 개요

Crime Dog
1990년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한 타자. 충분히 준수한 활약을 펼치고 은퇴했지만, 불행히도 그가 뛴 시대가 스테로이드 시대라서 폭증한 홈런 개수 때문에 임팩트가 완전히 잊혀져 버린 선수. 그리고 한 팀에서 오래 뛰지 못하고 이 팀 저 팀을 떠돌아야 했던 저니맨에 가까운 선수이기도 하다.

통산 성적은 0.284 493홈런 1,550타점 2,490안타.

2. 선수 생활

2.1. 역마살의 시작

지명은 뉴욕 양키스에서 받았지만, 1982년 양키스는 그를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 시켰다. 어차피 1루수 자리에 돈 매팅리가 건재한 상황에서 9라운드에 지명한 1루수에게 돌아갈 자리는 많지 않았다. 토론토에서 맥그리프는 꾸준히 성장하며, 마침내 1986년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을 수 있었고, 1987년 20홈런을 치면서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 34홈런을 치면서 두각을 나타냈고, 1989년에는 36홈런으로 아메리칸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점차 전력이 강해져가던 토론토는 그러나 올스타 2루수 로베르토 알로마를 얻기 위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 접촉했고, 마침내 트레이드가 성사돼서 토론토가 로베르토 알로마와 조 카터를 받고, 샌디에이고가 토니 페르난데스와 프레드 맥그리프를 받게 되었다. 토론토는 이 트레이드를 발판으로 1992년과 1993년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면서 손해 없이 트레이드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샌디에이고도 초반에 트레이드로 잃은 것은 없었다. 샌디에이고에 온 1991년 31홈런을 친 맥그리프는 이듬 해인 1992년 35홈런을 기록하며 다시 내셔널리그 홈런왕에 올랐다. 그렇게 샌디에이고에서도 주포로 활약했는데, 문제는 샌디에이고가 곧 FA로 풀리는 그를 잡을 자신이 없어서 시즌 중간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트레이드 한 것이다. 그리고 이 때 받은 세 명의 선수는 모두 망했다. 딱 하나 도니 엘리엇만 기억에 남는데, 그가 잘 해서가 아니라 도니 엘리엇이 가진 체인지업 그립을 어느 야수 출신의 투수에게 가르쳐 준 것 때문에 그렇다.

2.2. 애틀랜타 시절

1993년은 샌디에이고와 애틀랜타 시절을 모두 합쳐 37홈런을 때려냈다. 이게 맥그리프의 생애 최다 홈런이었다. 1994년에는 단축 시즌 임에도 불구하고 34홈런을 쳐냈고, 1995년 27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주전 1루수로서 충분히 실력을 보여줬다. 월드시리즈에서도 홈런 2개를 날리며 자기 몫은 충분히 다 했지만, 그리고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도 차지했지만, 이 때 애틀랜타를 상징하는 것은 위엄쩌는 3인방인지라 스포트라이트하고는 전혀 상관없었다. 안습

여하튼 PO에서도 꾸준히 자기 역할은 다 하는 선수였지만, 32세 시즌이었던 1996년을 기점으로 점차 성적이 하락하기 시작했다. 1997년 22홈런을 치는 것을 본 애틀랜타 구단은 상대적으로 노쇠화가 빨리 왔다고 판단하고, 맥그리프를 신생팀 창단을 위한 보호 선수 명단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그를 지명한 것은 그의 고향 근처에 생긴 신생팀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였다.

2.3. 말년

탬파베이의 간판으로 지목되어 이적한 그였지만, 19홈런으로 노쇠를 막지는 못했다. 그래도 1999년 32홈런으로 부활하고, 2000년에도 27홈런을 치면서 다시금 살아나는 듯 했고, PO을 노리던 시카고 컵스가 2001 시즌 도중에 그를 트레이드 해 갔다. 2001 시즌 도중에 탬파베이에서 19홈런을 치는 모습을 보고, PO에 도전하기 위해 맥그리프를 선택한 것.

컵스에서도 자기 역할은 충실히 다 했다. 2001년 이적해서 12홈런을 쳤고, 2002년에는 다시 30홈런을 때려냈다. 하지만 현지 언론의 평가는 박했는데, 수비력이 좋지 않았고 돈만 밝힌다는 이유로 까였다(...) 그리고 이 시점에 컵스는 최희섭에게 더 큰 기대를 걸던 시점이라... 결과적으로 최희섭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컵스는 맥그리프를 잡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500홈런 고지까지 남은 개수는 불과 22개였지만, 진짜로 노쇠가 온 맥그리프는 끝내 이 고지를 넘지 못했다. 2003년 다저스에서 겨우 13개를 때려내는데 그쳤고, 최후의 기회를 준 고향팀 탬파에서 친 홈런의 개수도 고작 2개, 타율은 0.189에 그치며 결국 은퇴하고 말았다.

3. 은퇴 이후

고향 팀 탬파베이 레이스의 자문역으로 활동하고 있고, 역시 탬파지역의 야구 관련 프로에 종종 나가고 있다. 탬파베이 에서는 그래도 상당한 활약을 한 선수이기 때문. 그보다 더 활약한 선수는 칼 크로포드 정도일 뿐이다.

4.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명예의 전당 입성 가능성은 상당히 빠듯한 상황이다. 1루수로서 수비력이 은근히 좋지 않았다는 평가도 평가지만, 가장 큰 문제는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것. 홈런왕을 두 차례 차지하기는 했지만 40홈런을 넘긴 적은 한 번도 없고, 수상은 올스타 5회와 올스타전 MVP 1회, 실버슬러거 3회가 전부다. 꾸준함으로 승부를 봐야 했는데, 노쇠화가 일찍 오면서 끝내 500홈런에 도달하지 못한 것도 뼈아픈 부분.

여기에 한 팀에서 가장 오래 뛴 기간이 5년에 불과할 정도로 프랜차이즈의 속성이 약한 저니맨이라는 점에서 골수 지지표를 얻는 것은 쉽지 않을 듯 하다. 실제로 그와 가장 유사한 커리어를 가진 것으로 나타난 리 맥코비, 윌리 스타젤, 제프 배그웰, 프랭크 토마스, 카를로스 델가도는 모두 한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1]였다는 이미지가 강한 선수들이다.

어쨌든 이런 점 때문에 명예의 전당 입성이 쉽지 않을 것으로 점치는 사람들도 많은데,[2] 다만, 2000년대 후반 약물 스캔들로 인해 평가가 상대적으로 더 나아졌다는 것이 큰 장점. 비록 500홈런은 넘기지 못했지만, 깨끗한 홈런왕이라는 이미지와 꾸준한 면모를 어필한다면 약물에 대한 반감을 등에 업고 명예의 전당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당장은 어렵다. 일단 첫 해 21.5%의 지지를 받았는데, 두 번째 해에는 17.9%로 오히려 더 떨어졌다. 상대적으로 유력 후보가 전무한 2012년 투표에서 득표율이 대폭 오르는지 여부에 따라 그의 입성 여부가 결정될 듯. 만일 대폭 오른다면, 10수 이상 해서 기어이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12년의 득표율은 후보에 오른 이후 가장 높은 23.9%를 마크했지만 2013년에는 20.7%에 머물렀고, 2014년에는 11.7%로 뚝 떨어졌다. 2015년에는 12.9%로 다시 올라가기는 했지만 이제 단 1번[3]의 기회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봐도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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