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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ɔ) from

(ɔ) F. Hartmann from

(ɔ) Gustav-Adolf Schultze (d. 1897) from

Friedrich Wilhelm Nietzsche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1844년 10월 15일 ~ 1900년 8월 25일

"신은 죽었다! 신은 죽은 채로 있다! 우리가 그를 죽였다! 살해자 중에서도 가장 극악무도한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즐거운 학문(1882) 中

천재를 논할 때 반드시 거론되는 인물.
니체 이후의 철학에는 니체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있다.[1]
일명 망치를 든 철학자. 19세기에 활동했던 독일의 시인, 음악가, 문헌학자, 문화 비평가, 그리고 문제적 인간. 급진적인 사상으로 실존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철학의 근간을 마련했다. 특유의 공격적 비판 때문에 오해되기도 하며, 평가 또한 천재 혹은 악마로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2]

Contents

1. 생애
2. 사상
3. 음악 그리고 문화
4. 오해와 진실
5. 인용구
6. 저서
7. 한국어판 전집에 대해
8. 관련 항목


1. 생애

목사였던 아버지는 5살 때 사망하고 할머니 집에서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쇠약했다고 한다. 1864년 본 대학교에 진학해 신학과 문학, 그리고 그리스 문헌학을 배웠다. 아이러니하게도 철학 역사상 가장 극단적으로 기독교를 비판한 철학자지만, 가장 기독교적인 집안에서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언어와 음악에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문돌이답게 수학에는 별 재능이 없었다. 니체는 젊은 나이 24살 때 바젤 대학교 문헌학 교수가 되는데 이 시기에 그는 아무런 학위가 없었다. 한마디로 아직 아무런 실적이 없는 학생을 다른 대학에서 교수로 데려간 몇 없는 소수의 경우이다. 당시 바젤 대학교는 리츨(F. W. Ritschl) 교수의 추천과 니체의 문헌학에 대한 특출난 재능 때문에 이러한 이례적인 결단을 내렸다고 한다.

1870년 보불전쟁에 의무병으로 종군했으나 병으로 귀환, 그 후 죽을 때까지 계속 병마에 시달렸다. 1879년엔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바젤 대학교 교수직을 사임. 이후 유럽 이곳 저곳을 떠돌며 요양을 하며 집필 활동을 하다가 1889년 1월 3일[3] 투린의 카를로 알베르토 광장에서 마부에게 채찍질 당하는 말을 보고는, 울며 감싸안다 넘어지는데, 이것이 니체가 맨 정신을 가졌던 마지막 사건이다.

정신 발작을 일으켜 몸과 마음이 더 쇠약해지고 10년동안 부모님과 여동생의 보살핌에 살았다고 한다. 결국 1900년 바이마르에서 사망하게 된다. 정신병으로 말년엔 거의 제 정신이 아니었다고 한다. 식분증 증세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 외 평생 결혼을 안 했는데, 1866년 매독 치료를 받는다. 1882년 루 살로메[4]라는 마성의 여인과 친분을 맺고 그녀에게 호감을 느껴 청혼을 했으나 차여버린다.[5]

2. 사상

"주거를 제공하고, 오락을 제공하고, 음식과 영양을 제공하고, 건강을 주었음에도 사람은 여전히 불행과 불만을 느낀다. 사람은 압도적인 힘[6]을 원하는 것이다."
-아침놀 中

니체는 도덕에서 선악 개념을 지양하였고, 미추 개념과 더불어 호오 개념을 지향하였다.[7] 니체는 데카당[8]의 가르침이 삶을 좀먹고 겸손, 순종 따위의 소극적인 미덕을 강조한다며 비판한다. 니체는 데카당과 인간말종[9]을 비판했으며, 개별적 인간들이 '노예도덕'에서 벗어나 종래의 인간을 뛰어넘은 위버맨쉬(Übermensch)가 될 것을 주창했다.
그는 위버맨쉬가 되는 단계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낙타의 단계:생의 의지[10]에 의한 고통을 참으며 검약,인내.

사자의 단계:생의 의지를 비롯해서 기존의 모든 기준,도덕에 반기를 들고 극복.[11]

어린이의 단계: 종래의 인간을 뛰어넘어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존재.

니체는 집단주의를 혐오했다.

모든 공동체는 항상 사람을 천박하게 만든다.

국가는 냉혹한 괴물이다. ... 국가가 사라진 저편을 보라. 무지개와 위버맨쉬에 이르는 다리가 보이지 않는가?[12]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다만 니체 사후에 그의 여동생과 독일정부 어용학자들이 니체가 남긴 문서를 조작하여 그를 전체주의 사상가로 비쳐지게 만들었다.

그는 인간이 정언적 규범을 뛰어넘어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니체사상은 악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1. 허무주의(니힐리즘); 최고 가치의 상실
1.1 어원; Nihil = 없음.
"없음에서는 없음만이 나온다. Ex Nihilo Nihil "
- 파르메니데스
1.2. 존재론; 모든 신은 죽었다. 이제 우리는 초인이 살기를 원한다.
1.2.1 무신론; 신은 죽었다. 우리가 신을 죽여버렸다.
1.2.2 무아론; 이를테면 Cogito 명제 비판. 교적 무아론과의 비교가 필요하다
"생각이란 것은 그것이 원할 때 내게 오는 것이지, 내가 원한다고 하여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선악의 저편
1.3 인식론;
1.4 가치론; 최고 가치가 상실된 상태. 즉, Nihil한 상태
1.5 반(反)이상주의;

2. 윤리학;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2.1 자연과 규범
2.2 선과 악
2.3 데카당

3. 니체와 계보학
3.1 디오니소스
3.2 소크라테스
3.3 기독교
3.4 불교

4. 몇몇 논쟁거리들
4.1 니체는 무신론자가 아니다?
- 전혀 틀린 소리이다. 오히려 니체는 신이라는 개념을 단 한번도 진지하게 취급하지 않았다고 서술한다.
"신, 영혼, 저편세계, 영혼, 영혼의 구원, 영원한 나라, ... 이런 것들은 내가 어렸을 때조차도 단 한번도 진지하게 취급하지 않았던 개념들이다."
-니체
또한 자서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신론이란 내게 있어서 직관적인 사실이다."
-이 사람을 보라 中

4.2 니체는 매독 떄문에 미쳤다?
- 사실이 아니다. 뜬소문을 잘 믿는 사람들이 퍼뜨린 우스운 논란거리.

5. 기타
5.1 상인계급과 속물근성
- 니체가 비판한 인간유형은 아주 거칠게 말할 때 두 가지 종류이다. 이상주의자 유형과 인간말종 유형이다. 다시 말해, 근본주의자[13] 혹은 인간말종 유형이다. 니체가 말하는 인간말종은(Der letze Mann), 공리주의적 인간이다. 다시 말해 일상에 안주하는 인간상이다.

5.2 진화론
니체는 진화론에 어느정도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해보인다.
"인간이란 원숭이와 초인 사이에 놓인 밧줄이다."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많은 단계를 거쳐 인간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도 그대들의 내부에는 벌레같은 부분이 많이 남아 있다."
- 차라투스트라

그렇다해도 니체가 다윈의 의견에 전적으로 찬동한다고 볼 수는 없다. 문헌을 읽어보면 니체는 진화라는 개념을 자기식대로 해석하여, 자기극복이라는 개념으로 활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생물학적 진화' 혹은 '우생학'과 무관하다.

"이것이 영국적인 천박함이다. 다윈은 정신의 강함을 고려하지 않았다."
- 우상의 황혼, '반(反) 다윈'

5.3 비도덕주의
"이 페르시아인(차라투스트라)의 이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도 내게 물어보지 않았다. ... 차라투스트라는 도덕이라는 오류를 최초로 고안해낸 인간이다. 그렇기에 그는 도덕의 오류를 최초로 인지한 인간임이 분명하다. 성실성을 통한 도덕의 자기 극복, ... 이것이 차라투스트라의 이름이 지시하는 의미이다.
<이 사람을 보라> , '나는 왜 하나의 운명인가?', 3번글.




길게 주절거렸는데, 짧게 정리해보자.
니체는 허무주의자이다. 그렇지만 염세주의자는 아니다. 니체는 본질주의를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허무주의자이다. 즉, 본질에 대해서 '그런 것은 없다'고 말하는 입장을 취하는 사상가이다. 천국이든 저편세계이든 뭐든 그런 것들은 죄다 믿지 않는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니체는 저승을 믿지 않고 그것의 가치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가 이승에 대해서도 허무적인 입장을 취하느냐고 묻는다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니체는 지상에서의 삶을 유일한 삶으로 단언한다. '인생에 대한 사랑'은 니체 철학의 표재어 중 하나이다.

"형제들이여, 나 그대들에게 간청하노라. 이 대지에 충실하라. 하늘나라의 희망을 말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을 믿지 말라. 그들은 이 대지를 지치게 하는 자들이다. 그렇게도 천국이 좋으면 빨리 죽어버리라지."
- 차라투스트라


그렇다면 근본적인 가치가 상실된 상태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1. 데카당; 기독교인, 불교인, 소크라테스

참고) 데카당이란 무엇인가?
"지금껏 지상에 존재해온 현자들은 한 가지 주장에 대해서 그 의견의 일치를 보여왔다. 그들은 삶이란 살아갈만한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이런 현자들은 사실 까마귀의 모습으로 지상의 썩은 고기맛을 보러 몰려든 미물은 아니었을까? ... 지극한 경의를 표하며 헤라클레이토스만은 여기서 예외로 한다."
<우상의 황혼>, '철학에서의 이성에 관하여'

  1. 디오니소스

"나를 이해했는가? 디오니소스 vs 못박힌 자"
- 이 사람을 보라

참고) 못박힌 자(the crucified)
"이는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를 받은 자라 하였음이라"
- 갈라디아서 3:13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 신명기 21:23

니체는 아마도 이 구절을 의도한 것이라 생각된다.
즉, 생의 긍정(디오니소스) vs 생의 부정(저주받은 자)

3. 음악 그리고 문화

니체는 10대 시절부터 짧게 작곡 활동을 했었다. 안타깝게도 청년 시절 이후부터는 본업인 저술에 몰두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작곡에 할애하지는 않았지만, 바쁜 활동 와중에도 오페라나 오케스트라를 염두에 두었다고 한다. 음악 스타일은 슈만과 흡사했다고.

이러한 니체의 음악에 대한 관심은 당시의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와 가까이 지내는 결정적인 이유가 된다. 27살에 쓰여진 니체의 '비극의 탄생'을 통해서, 니체는 예술 본연의 정신을 살리고 있는 작곡가를 바그너로 지목하고, 그와 많은 사상을 공유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에 여러가지 이유로 니체는 바그너를 혐오하게 되고 니체의 에세이 '바그너의 경우', '니체 대 바그너'를 통해 바그너를 강하게 비판한다.

니체는 바그너와 결별한 뒤부터 1889년 전까지 바그너를 공격하는 글을 여러 차례 썼다. 가장 완숙미가 넘칠 시기에 바그너를 공격하는 글을 여러 개 썼는데, 정작 바그너의 음악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바가 없었던 걸로 보인다. 그가 바그너에게 했던 비판은 재미는 있을지 몰라도, 가치가 없었고, 그렇기에 잊혀졌다. 아버지로부터 벗어나려는 아들도 아니고(쇼펜하우어를 자신의 정신적 스승으로 여겼던 니체로서는 바그너의 말기 오페라에서 신에 대한 인정과 사랑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고 이후 극심한 정신분열상태가 더욱 심해졌다. 애초부터 바그너와 친해진 연유도 일찍이 쇼펜하우어와 교제하며 그의 사상을 사랑하고 지지했던 바그너를 니체가 존경했기 때문이었다. 즉 바그너가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배신 (?)했다고 생각한 이상 니체는 더이상 바그너와 함께할 이유가 없었던 것.

어쨌든 바그너와의 열렬한 키배(...)와는 관계없이, 음악 자체에 대한 그의 태도는 전반적으로 호의적이었다. 음악이 인간 특유의 감성과 낭만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을 높이 샀으며, 따라서 음악 중에서도 교향곡 등의 순수 기악보다는 즉흥 연주곡, 소나타등을 더 선호했다. 그가 한 때 바그너에게 끌린 이유 역시 바그너의 음악에 들어있는 그리스 비극으로의 회귀라는 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그의 스탠스에도 변화가 어느 정도 오는데, 이는 "비극의 탄생"에 그가 1884년에 붙인, "자기비판에의 시도"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오해와 진실

무신론자였다가 말년에 정신병으로 죽었다는 점 때문에 공연히 종교계(당연하겠지만 특히 기독교 계통)의 샌드백이 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신은 죽었다'라는 말이 알고 보면 온건한 의미라고 방어하는 측도 생겨났지만 근거없는 헛소리다.

내 나이 열두 살에 나는 기발한 삼위일체를 생각해냈다
: 즉 신-아버지, 신-아들, 신-악마라고 하는.
나의 결론은 신이 자기 자신을 사유하는 과정에서 신성의 두 번째 인격을 창조했다는 것이었다.
자기 자신을 사유할 수 있기 위해 그는 자신에 반대되는 것을 생각해내야 했다는 것.
말하자면 창조해야 했다는 것이었다. - 그럼으로써 나는 철학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유고 17권

니체는 그 특유의 공격적인 철학 때문에 여성 차별주의자라는 오해도 있지만, 이것은 명백히 잘못된 사실이다. 니체는 생전에 여성과 많은 교류도 있었거니와, 그의 글을 옳은 방향으로 해석하면 오히려 다른 철학자들보다도 여성을 우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장 큰 예로 그의 저서 선악의 피안에서 진리를 여성에 비유한 적도 있다.[14][15] 니체는 여성이 여성성을 뛰어넘어 남성의 영역에 이르는 것을 경고했지만 여성성 그 자체를 폄하하진 않았다. 특히 여동생에게 하악하악하는 시스콘이라는 루머가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이 루머는 니체가 썼다는 '나의 여동생과 나'라는 책 때문에 생긴 것이다. 이 책은 후에 위서로 밝혀졌으며, 방대한 문헌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출간하여 현재 정본으로 평가받는 비평판 니체 전집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여동생과의 사이는 매우 나빴다. 그리고 여동생이 반유대주의자와 결혼하자 둘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듯이 많은 사람들이 히틀러와 같은 파시즘과 반유대주의의 철학자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문제는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스 니체가 극렬 인종차별주의자였다. 그녀는 니체 사후 니체의 철학을 자기식대로 해석해서 그의 저서를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그 예가 '힘에의 의지'라는 저서인데, 원래 니체가 저술 중에 포기한 책이다. 그런데 여동생은 니체의 저술 노트를 문맥을 왜곡하고 멋대로 편집하여 니체의 원래 의도와 완전히 다르게 만들었다. 현재 이 책도 비평판 니체 전집에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니체는 철학적인 사상 이유로 유대인들을 공격하긴 했어도, 히틀러와 같이 인종과 같은 이유로 인해 유대인을 공격하진 않았다. 예를 들어 니체는 유대인의 노예도덕이 기독교의 근본이라고 비판했지만, 그 반면에 유대인을 오랜 고난의 세월을 통해 단련된 가장 질적으로 뛰어난 민족이라 평했고, 반유대주의자들이 유대인들을 공격하는 논거가 단지 유대인들의 돈에 대한 시기와 질투, 원한 뿐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또한 유대인들의 예술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이 저서에 들어가 있다. 애초에 그가 바그너와 갈라선 이유 중에는 바그너의 완강한 반유대주의적 성향도 포함되어 있다.

이래저래 여러가지의 오해는 물론, 오해받는다는 오해를 받고 있다. 그러나 니체의 범유럽 식민주의에 짓밟힐 대상으로 내정되어 있던 우리들 눈으로 봐선 전혀 불쌍할 거 없는 유럽중심주의 식민주의자가 먼저 보이는 것이 당연할지도. 다만, 그러한 식민주의적 태도는 당시 유럽 지식인들의 일반적인 전제였고, 그 역시 인간이었기에 그러한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의 사상이 제국주의, 파시즘 등을 미화하는 데 악용되기 쉬운 건 사실이나, 애초에 그것들을 미화하기 위해 태어난 사상은 아니라는 소리. 선악의 저편만 봐도 그가 국가주의적, 종교적 집단광기를 혐오한다는 것을, 우상의 황혼만 봐도 그가 독재와 파시즘에 대해 반감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광에 있는 아포리즘들은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니체는 인종을 청소하라 주장하고, 디오니소스가 육화한 것이고, 핀란드 귀족의 피가 흐르고, 알렉산더 대왕의 아들이다.

5. 인용구


나는 나의 운명을 안다. 언젠가 나의 이름에는 엄청난 사실이 추억으로 연상이 될 것이다. 즉 세상에서 전대미문의 대 위기와 가장 심원한 양심의 갈등, 그리고 이제까지 신뢰되고 요구되었으며, 신성시되었던 모든 것에 거역하며 만들어졌던 결정에 대한 추억 말이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하나의 다이너마이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 속에는 어떤 종교의 창시자와 같은 사고방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란 천민의 관심사이다. 나는 신앙을 갖고 있는 무리들과의 접촉 뒤에는 손을 닦고 싶다.
나는 최초의 비도덕주의자이며 이것이 또한 나를 탁월한 파괴자로 만든다.
-이 사람을 보라 中

"사랑하는 자는 경멸하기 때문에 창조하려고 한다! 자신이 사랑한 것을 경멸할 줄 모르는 자가 사랑을 알겠는가! 나의 형제여, 그대의 사랑, 그대의 창조와 함께 그대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그러면 나중에 가서 정의가 다리를 절며 그대를 뒤따라올 것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의 눈물과 함께 고독 속으로 들어가라. 나는 자기 자신을 넘어 창조하려고 파멸하는 자를 사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지금 이 인생을 다시 한 번 완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중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볼 것이기 때문이다."
-선악을 넘어서 中

"두려움을 알면서 두려움을 제압하는 자, 심연을 보지만 자긍심이 있는 자가 대담한 자다. 심연을 보지만 독수리의 눈으로 보는 자, 독수리의 발톱으로 붙잡는 자에게 용기가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사람은 대지와 삶이 무겁다고 말한다. 중력의 악령이 바라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가벼워지기를 바라고 새가 되기를 바라는 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더 이상 자신있게 사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차라리 당당하게 죽음을 택하라.

하루의 3분의 2를 자기 마음대로 쓰지 못하는 사람은 노예다.

"이것이 삶이던가?
그렇다면 다시 한번."

6. 저서

  • 테오그니스 선집의 역사
  • 소크라테스와 그리스 비극
  • 비극의 탄생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 아침놀 (청하판 '서광')
  • 즐거운 지혜 (청하판 '즐거운 지식') (책세상판 '즐거운 학문')
  •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16][17]
  • 선악의 저편 (책세상 개정판 '선악의 저편', 청하판 '선악을 넘어서') Jenseits von Gut und Böse[18]
  • 도덕의 계보 Zur Genealogie der Moral[19]
  • 힘에의 의지(권력에의 의지) Der Wille zur Macht[20][21][22]
  • 우상의 황혼
  • 안티 크리스트
  • 나의 여동생과 나[23]

7. 한국어판 전집에 대해

니체 전집은 휘문출판사판(1969년), 청하출판사판(1982년), 책세상판(2000년) 총 세가지가 있다. 원고의 방대함과 치밀함은 책세상판이 높지만 번역 질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물론 청하판은 80년대에 나왔고 중역이 많지만 그럼에도 니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책세상판과 달리 중요한 서문/평이 실려있으며 번역의 질이 우수한 작품도 있다. 대표적으로 니체의 말년작인 선악의 피안(청하 '선악을 넘어서')가 그렇다. 책세상판도 일부 단권으로 된 책은 서문이 달려있으며(ex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책의 뒤에 해설이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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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특히 포스트 모더니즘에서 그러하다. 과학철학에도 일정한 영향을 끼쳐, 과학이 곧 진리라는 기존의 과학맹신적 견해는 폐기되었다.
  • [2] 정작 니체 본인은 세간의 오해를 특이한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었다. 다음을 참조하라. <선악의 저편>에서, "모든 심원한 사상가는 오해되는 것보다 이해되는 것을 더 두려워 한다. 왜 그대는 그것을 나처럼 그다지도 힘들게 생각하고자 하는가?"
  • [3] 일부 기록에서는 1월 7일
  • [4] 이 여자가 친교를 쌓은 남자들이 흠좀무하다.
  • [5] 다만 루 살로메의 회고에 의하면 니체는 자신보다 17살이나 연상이었고 지독한 사시로 인해 자신을 똑바로 보지도 못했고 치질까지 앓고 있어서 10분마다 앉는 자세를 바꿨다고 한다. 아무리 자신의 의견을 주의 깊게 새겨 들어주는 유일한 사람이라도 이런 남성에게 육체적인 매력은 갖기 힘들었을 것이다.
  • [6] 원문 Macht. 이 Macht를 일본 쪽에서 권력으로 해석하고, 국내 학계에서 이걸 그대로 "권력"으로 따서 쓰는 바람에 병림픽 니체와 나치즘, 반민주주의논쟁 등의 떡밥에 활발한 불씨가 지펴졌던 바 있다. 21세기 이후에는 이걸 으로 옮기는 추세이다.
  • [7] <도덕의 계보> 제 1 논문의 제목을 참조하라. '선과 악 혹은 좋음과 나쁨'
  • [8] 퇴폐적인 것. 이를테면 기독교, 불교, 소크라테스 등
  • [9] 현실에 안주하는 인간. 동물수준의 욕구만을 가진 인간. 공리주의적 인간. 걍 알아듣기 쉽게 대충 말하면 tv보고 섹스하고 쇼핑하는 것 말고 다른 정신적 욕구는 없는 속물.
  • [10] 니체는 쇼펜하우어의 생의 의지라는 개념을 받아들였다.
  • [11] 여기에는 전통,규범,타인도 포함된다. 그래서 위버맨쉬는 항상 고독하며 그래야 한다고 니체는 말한다.
  • [12] 바이킹 신화에서 무지개는 신들의 세계(아스가르드)에 이르는 다리이다. 니체는 이런 식의 패러디를 즐겨 사용하는데, 다른 예를 들어보면 <우상의 황혼>은 '신들의 황혼(라그나로크)'의 패러디이다.
  • [13] 개독, 정치병 환자 등
  • [14] 해당 책 서문 첫 번째 문장부터 나온다.
  • [15] 진리가 여성이라고 가정한다면, 어떠한가? 모든 철학자가 독단주의자였을 경우, 그들이 여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혐의는 근거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까지 그들이 진리에 접근할 때 가졌던 소름 끼칠 정도의 진지함과 서툴고 주제넘은 자신감이 바로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기에는 졸렬하고 부적당했다는 혐의는 근거 있는 것이 아닐까?
  • [16] 흔히 차라투스트라, 짜라투스트라로 번역되는데, 특이하게도 '짜라두짜'라고 번역한 책이 있다. 그런데 번역평이 상당히 좋다. 다른 번역들보다 읽기가 수월하다고. 무엇보다 원문이 운문으로 쓰여졌다고 하는데, 그것을 유념하고 번역했다는 것이 주목할만하다. 사람에 따라선 우상으로 표상되는 기존의 가치들에 망치를 들이대며 부숴버리기를 촉구하는 패기 넘치고(...) 간지가 철철 흐르는 기존의 '차라투스트라'적 어투가 아닌 점에 대해 소소한 불만을 표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용전달이 가장 수월한 번역이라는 점은 대체로 동의. 비유를 하자면 대충 개역개정 성경과 새번역 성경의 차이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 [17] 2007년에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지>라고 나왔다가 절판되고, 2012년에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로 다시 나왔다. 인터넷에 찾아보면 두 책의 역자 이름이 다른데, 사실 동일인물이다.
  • [18] 보통 니체 입문으로 이 책 또는 도덕의 계보를 추천한다. 책세상판 전집에서는 아예 둘을 한 권에 묶어서 냈다.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니체 저작 중 가장 유명하다고 할 수 있지만, 짜라투스트라는 말 그대로 니체 철학의 정수를 함축적으로 담은 책이다. 그래서 짜라투스트라는 니체에 대해 어느 정도 개념이 잡힌 후 읽는 게 좋다. 흔히 니체의 발언으로 인용되는 문구들을 "간주곡" 부분에서 찾아볼 수 있다.
  • [19] 역사적으로 도덕에 대한 관념이 변화했는지 연구한 서적
  • [20] 권력과 힘 모두 영어로 power이고 독일어로는 Macht이다. 협의의 정치용어로 오해가 있는 권력보다는 광의의 생生에의 의지를 추동시키는 것으로서의 Macht, 힘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실제로 책세상 니체 전집에서는 힘에의 의지로 번역했다. 권력에의 의지는 일본판 오역을 그대로 옮기면서 한국에 상륙했다고 전한다.
  • [21] 그런데 이 책은 니체가 집필한 것이 아니고 1897년 그의 여동생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니체문서보관소가 니체 사후 유고를 모아서 집필한 것이다. 그래서 니체의 의도와는 다르게 파시즘적인 사상을 담고 있는 책이 되어버렸다. 현재는 니체의 저서로 인정하지 않으며, 다만 니체가 집필을 위해 남겨뒀던 유고만을 인정한다.
  • [22] 이것과 관련해서 더 알고 싶은 사람은 이 글을 참조할것.
  • [23] 니체의 자서전이라고는 하는데 위작으로 판명 났다. 위에 나온 <짜라두짜는 이렇게 말했다>의 권미 해설에 따르면 이 책은 1960년대에 철학자들에 의해 가짜라고 밝혀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 책에선 니체가 시카고,뉴욕,샌프란시스코와 함께 디트로이트를 언급하며 그 곳에서 강연하고 싶다고 말하는데, 디트로이트의 폭발적인 발전은 헨리 포드가 디트로이트에 자동차 공장을 세운 1903년 이후이다. 니체는 1900년에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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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4 19:5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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