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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last modified: 2015-04-08 18:16:18 by Contributors

Contents

1. 철학자
1.1. 생애
1.2. 사상
1.2.1. 국가(정체)
1.2.2. 철인 정치
1.2.3. 소년애와 플라토닉 러브에 대한 오해
1.3. 대화편
1.3.1. 진위 논란
1.3.2. 한국어 번역본
1.4. 평가
2. 텔레비전


1. 철학자


"전통적 유럽 철학의 가장 안전하고 일반적인 정의는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로 구성된 것이다."[1](The safest general characterization of the European philosophical tradition is that it consists of a series of footnotes to Plato.)
-앨프리드 노스 화이트헤드, <Process and Reality: An Essay in Cosmology>에서.

그리스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제자[2]이다.

그리스어: Πλάτων(Pláton)
영어: Plato (플레이토)

1.1. 생애

고대 그리스 아테네 출신이다. 출생연도는 정확하지 않으나, 기원전 430~429년으로 잡거나 기원전 428~427년으로 잡는다. 사망연도는 기원전 348~347년으로 추정된다.[3] 플라톤의 어머니, 아버지 모두 아테네의 명문 귀족 집안이다. 그의 가족들은 그의 저서에서 여러 차례 언급된다. <국가>에서는 아버지의 가계와 형제 아데이만토스, 글라우콘을 언급한다. 어머니 가계는 <카르미데스>, 어머니가 재혼해서 낳은 안티폰은 <파르메데니스>에 대화의 전달자로 나온다. 그러나 플라톤 자기 자신은 전체 대화편에서 단 세 차례만 언급한다.[4]

'플라톤'이라는 이름은 '넓다'는 뜻인데, 이마 또는 어깨가 넓어서 붙여진 별명이고 본명은 '아리스토클레스'라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의 법정 연설문인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아리스토클레스'가 아닌 '플라톤'이라고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본명이 '아리스토클레스'라는 이야기는 낭설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법정에서 별명을 쓴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잖아). 실제로 동시대에 '플라톤'이라는 이름이 그리 드문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어쨌든 장대한 키에 대단한 거한이었다고(과장이 있겠지만 기록상으로는 2m에 가까웠다고 할 정도) 하며 레슬링 대회[5]에 출전하기도 했다. 그리스는 知와 體의 조화를 중시했기에 학자들 역시 운동 경기에 나서는 경우가 많았으며 소크라테스 역시 레슬링에 도전한 적이 있다고.

플라톤은 어려서부터 호메로스를 좋아했다고 <국가>에서 밝힌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6]에 의하면 그는 디오니시오스에게 문법 수업을 받았고, 그는 그림을 그리고 를 짓기도 했는데, 나중에는 노랫말과 비극을 지었다고 한다. 아테네 비극 경연대회에 참여하려고 했었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가 만류하자 디오니소스 극장 앞에서 자신의 시를 불살랐다고 한다. 시가 엉망이었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결정적인 사제관계는 플라톤이 스무살, 소크라테스가 죽기 8년 전인 기원전 407년이라는 견해가 있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사제관계는 몇 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를 만나기 전까지 플라톤은 원래 친가, 외가 모두 엄청난 명문가로, 그의 외삼촌인 카르미데스와 외가족 5촌 당숙인 크리티아스는 30인 정권의 핵심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서 플라톤도 젊은 시절에는 정치에 뛰어들고자 하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고, 친척들 덕분에 정치권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정치판에 환멸을 느끼게 되며, 정권 싸움 과정에 카르미데스와 크리티아스가 살해당하자 이런 생각은 굳어진다. 아테네에 주정이 들어서자 다시 한 번 정치에 욕심을 내지만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어이없는 이유로 고발당했고, 재판에서 배심원들 투표에 의해 사형당하자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뗀다.

소크라테스가 처형된 뒤,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다른 제자들과 함께 메가라, 키레네의 다른 철학자와 수학자를 찾아갔다. 그리고 피타고라스 학파를 찾아갔고, 거기서 다시 이집트의 성직자를 찾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이러한 기록에 이어서 플라톤은 세 차례나 시라쿠사이[7]를 방문했다고한다.[8] 첫 번째 방문은 플라톤이 마흔두 살이었을 때였다. 시라쿠사이에서 최고 권력자인 디오니시오스 1세가 플라톤을 환영했다. 그러나 플라톤은 디오니시오스를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9] 젊은 디온과의 만남을 통해 그를 제자로 생각했고, 그와 친밀하게 지냈다.

플라톤은 학당 '아카데미아'를 세웠다. 아카데미아는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서 서기 529년에 폐쇄될 때까지 천 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한다. 아카데미아는 오늘날의 고등교육 기관인 대학과 비슷하다. 아카데미아의 입구에는 기하학을 모르는 자, 이 문을 들어서지 말라! 쓰여 있었다고 한다.수학을 못하면 대학 못가는 건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플라톤은 여러 제자를 두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제자는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이 세운 학당 '아카데미아'에서 공부했다. 플라톤은 아리스토텔레스를 아카데미아의 정신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플라톤이 죽고 나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다가, 자신의 학당, '리케이온'을 세운다.[10]

사실 플라톤 당시의 아테네는 스파르타와의 펠로폰네소스 전쟁 등으로 인해 매우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플라톤은 이러한 사회상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철학을 택했던 것이다. 실제로 그의 철학은 현실 극복과 바람직한 사회 구현에 목적을 뒀다. 실제로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정치권에 진출해서 몰락해가는 아테네를 다시 일으키고자 힘썼다.

말년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리스, 아테네, 시칠리아의 정치적 상황은 불투명했다. 디온은 살해 당했으며, 플라톤의 친구들도 대부분 죽었다. 그러나 그는 많은 저술을 남겼다. 플라톤은 81세의 나이에 사망했고, 아카데미아에 묻혔다.

1.2. 사상

플라톤의 대표적인 저작은 <향연>, <국가론>, <법률> 등이 유명하다.

플라톤이 쓴 저서의 대부분은 주로 소크라테스가 다른 사람과 주고받는 대화 형식의 문집이었다. 사실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일화에 대해서 알려진것들의 절대다수는 다 이 제자 플라톤의 문집으로 알려졌기에, 정작 살아있던 당시엔 모든 시민의 분노를 샀던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미화되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11]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또 다른 제자인 세노폰이나 그의 사상에 비판적이었던 희극 작가 아리스토파네스가 그린 소크라테스는 플라톤의 대화편에 묘사되어있는 이상적이고 비극적인 소크라테스와는 매우 다르다. 그리고 플라톤의 후기 저작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사상등이 플라톤에 의해서 왜곡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12]

신화적 설화로 표현되는 들을 비판했는데, 이것은 당시 그리스 사회에서 일어나던 보편적 현상이므로 플라톤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 지식인들은 신화는 신화로 여기고, 그보다는 원리적으로 신들을 생각했다. 당연히 당시 사회에서는 현대와 같은 무신론자는 나타날 수 없었다.

1.2.1. 국가(정체)[13]

'국가론'을 보면 플라톤은 세상의 정치체제를 5개로 구분하는데, 최선자정체(aristokratia), 명예지상정체(timokratia), 과두정체(oligarchia), 민주정체(dēmokratia), 참주정체(tyrannis)가 그것. 좋은 순서순이다. 이걸 보면 알 수 있듯이, 플라톤은 민주주의를 두 번째로 안 좋은 정치체제로 분류했다. 반대로 두번째로 좋은 정치체제인 명예지상정체는 본문에서도 언급되듯이 스파르타적인 정치체제를 가리킨다.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나라를 구성하는 계층을 세 개로 나누었다. 하나는 통치자 계층, 또 보조적 수호자 계층, 장인 계층이 그것이다. 쉽게 말해 정치 지배자, 행정 관료, 노동 계층으로 보면 된다. 이중 플라톤은 정치 지배자 계층에 한하여 부인과 자녀 공유제와 사적 소유의 금지를 제시한다. 이것을 말한 의미는 다음과 같다. 높은 위치에 있게되면 타락하기 쉬운 정치 지배자를 견제하기 위해 사적 소유를 금지하며 자신의 사적 이익과 가족이나 친척에 얽매여 그릇된 정치 판단을 막기 위하여 이를 제시한 것이다. 흔히 플라톤이 제시한 정치 체제를 귀족중심적이라고 비판하는데, 이렇듯 보통 생각하는 귀족중심체제와는 거리가 있다.[14][15] 그리고 통치자 계층과 수호자 계층에게 체육과 음악을 가르쳐 정신과 육체를 수양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는 거부한다. 이는 그가 시가 이데아의 모방을 또 모방한 것에 불과하며 거짓만을 말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중요한 점은 플라톤은 국가론에서 이를 제시한 다음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 자신 또한 이것이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함을 알고있다' 의미는 무엇인가? 플라톤은 이상적인 하나의 본으로써 이를 제시한 것이다. 타락하고 부패한 정치인들에게 마음속에 이성 속에 이런 본을 지니고 정치를 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16]

다만 여기서 언급되는 민주정체는 오늘날의 대의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아테네 특유의 직접민주정체이다. 소크라테스도 시민의 투표로 죽었다. 아테네에서는 재판의 판결도 투표로 했기 때문. 플라톤이 왜 민주정체를 싫어했는지를 알 수 있다. 사실 현대의 민주주의는 1. 기회의 평등을 추구한다는 점 2. 혈통이 아닌 능력으로 지도자 자리를 쟁취한다는 점을 보면, 당대에 존재했던 어떤 체제보다도 플라톤 사상에 가까운 체제이다.

1.2.2. 철인 정치

플라톤은 '철인(哲人) 정치'를 주창한 것으로 유명한데, '국가론'에 잘 나와 있다. 문제는 이 '철인'은 단순히 '지혜로운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초월하는 이데아를 인지할 수 있는 자'를 뜻한다. 단순히 똑똑한 사람이 지배자가 되는 게 철인 정치가 아니다.

그가 주장한 철인 정치를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시대를 앞서간 면모를 보여준다.

1. 모든 사람은 평등한 교육의 권리를 가진다.
2. 공정한 시험으로 뛰어난 인재를 선발한다.
3. 그 뛰어난 인재는 의무적으로 군복무를 거친다.
4. 수학, 과학, 음악 등의 집중교육을 받는다.
5. 다시 공정한 방법으로 인재를 거른다.
6. 너무 이론에 치우칠 수 있음으로 실무경험을 거친다.
7. 철학 교육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판단되는 자들에게 철학 교육을 한다.
8. 그 중 살아남고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에게 국가의 중대사를 맡긴다.(이 때가 대략 55세 즈음)

플라톤의 철학자 왕(Philosopher king)의 개념은 동양에서는 공자유교 사상에서 성인 지배자(Sage Emperor / ruler of Saint)라는 개념과 흔히 유사성이 지적받는다. 유럽 문명이 중국 문명과 본격적으로 접촉을 시작했을 때, 유럽의 사상가들은 중국의 통치 체계에서 이러한 점에 주목하기도 했다.

호메이니가 플라톤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있다. 즉,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야툴라라는 직책이 이러한 '철학자 왕'에 해당한다는 것이다.기사

1.2.3. 소년애와 플라토닉 러브에 대한 오해

플라톤 역시 당대의 트렌드를 따라 여자보다는 남성과의 사랑을 좋아했다. 일반적으로 고대 그리스에서, 운동경기, 전투, 정치, 철학, 수사술과 같은 높은 신분의 활동들은 자유인 신분의 남성들에게 국한되어 있었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남자 어른[17]이 18세 이하의 소년을 애인으로 삼는 문화가 자연스러웠다. 당시의 잘생긴 소년은 강한 성적 매력을 풍기는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아무리 잘생긴 남자 어른이라도 성적 매력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18]

못생긴 남자 어른들은 성적 욕망에 이끌려 소년들을 따라다녔다. 성적 욕망의 대상인 소년들은 그 욕망을 공유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되었고 그래야만 하는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에 비해 소년 애인은 남자 어른과의 관계에서 물질적 이득, 사회적 성공, 애호, 존경등의 다양한 연애 동기를 가질 수 있었지만, 성적 욕망이나 쾌락은 앞서 말했듯이 동기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물론 그 중에는 남자 어른이 소년의 성적인 욕망을 자극시킬 가능성도 있다. 통상 능동적인 역할공격의 남자 어른은erastēs(사랑하는 자)로, 수동적인 역할수비인 소년을 eromenos(사랑받는 자) 또는 padika(소년 애인)으로 지칭하는 것이 당시의 관행이라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소년애 관계는 대등하지 않았다.

이러한 소년애 관계는 남자 어른이 시민권을 따기 전인 소년에 대한 사회적, 교육적인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연애와 교육적인 기능, 그리고 사회적 지위가 결합되어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동성애와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소년애는 그리스 사회에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19][20]

오늘날 육체적 사랑과 대비되는 정신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플라토닉 러브[21]는 플라톤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를 처음 쓴 사람은 이탈리아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Wikipedia:마르실리오 피치노(1433-1499)다. 그는 플라톤 전집을 라틴어로 처음 번역하면서 유럽 전역에 플라톤의 사상을 소개했다. 마르실리오 피치노는 플라톤의 에로스 개념과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단테의 개념 등을 결합하면서 '플라토닉 러브'라는 개념을 재해석하여 만들어낸다. 그에 따르면 '플라토닉 러브'는 플라톤이 묘사한 사랑이고, 그것은 즉 신의 사랑이었다. '플라토닉 러브'는 마르실리오 피치노의 편지와 그가 주석을 단 <향연>과 에서 처음 쓰였다. 피치노의 '플라토닉 러브' 개념은 15,16세기 전반 유럽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문학작품에서 '플라토닉 러브'는 피치노의 철학적인 배경과 분리되고 희석되었다. 또한 플라토닉 러브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시민들 사이에서 보편적으로 이루어졌던 소년애와 맞물리면서 그 의미가 변질되기 시작한다. '플라토닉 러브'는 남자 어른과 소년과의 동성애, '에로스'는 이성애로 오해되었다.

영어 '플라토닉 러브'라는 말이 처음 쓰이게 된 것은 영국의 작가 윌리엄 데버넌트(William Davenant)의 책, 희극 <The Platonick Lovers>(1635)이다. 윌리엄은 작품에서 <향연> 내용을 토대로 덕과 진리 사이에 있는 선(善)에 대한 사랑을 플라토닉 러브라고 주장했다. 이후 플라토닉 러브는 영국 왕실과 상류사회의 중요한 패션힙스터으로 자리 잡는다. 사랑을 육체적인 대상물로 표현하는 것은 저급한 계층에서나 하는 이야기며,사랑은 품위가 있어야 하며 고매해야 진정한 사랑이라는 분위기가 퍼진 것이다.

이렇듯 오늘날 육체적 사랑과 대비되어 쓰이는 '플라토닉 러브'라는 말은 원래의 에로스[22] 어원에서 많이 멀어진 채로 쓰인다고 할 수 있다.

1.3. 대화편

플라톤은 주로 저서를 희곡처럼 대화형식으로 남겼는데, 당시는 지금처럼 철학 논문을 쓰는 법이 정립된 시기도 아니었으며,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영향도 큰지라, 플라톤의 모든 저술은 등장인물이 나와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논의가 전개되는 형식을 따르고 있다.

제목은 주로 중심이 되는 등장인물의 이름인 경우가 많고 가끔 주제를 담고 있는 것도 있다. 간혹 'XX에 대하여'라는 식으로 부제가 붙어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후세 사람들이 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1. 초기 대화편
- 크라테스의 변론
- 크리톤 : 사회계약론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짧은 대화편이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의 동갑내기 친구였다.
- 케스
- 시스
- 르미데스 : 카르미데스는 플라톤의 외삼촌이다.
- 에우티프론
- 히피아스
- 히피아스 : 현대에는 위서로 간주된다.
- 로타고라스 : 프로타고라스의 '인간은 만물의 척도다'라는 주장이 나오는 대화편이다. 플라톤은 이를 도덕 상대주의로 여겨 비판한다.
- 르기아스 : , 국가 다음으로 분량이 많은 대화편이다. 지금은 소실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에, 어떤 농부가 이 대화편을 읽고 감명을 받아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플라톤에게 배움을 얻고자 아테네에 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 이온 : 화학에 대한 대화편이다

2. 중기 대화편
- : 초기와 중기 사이의 과도기적 대화편으로 간주된다. 플라톤 인식론의 중심을 이루는 '상기설'이 등장한다.
- 이돈 : 소크라테스의 사형 집행 날을 배경으로 한다.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인상적이며, 소크라테스가 세계 4대 성인 중 하나로 추앙받는 데에 기여한 대화편이라고 할 수 있다. 내용적으로는 소크라테스의 영향에서 벗어난 플라톤의 독자적인 철학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 대화편이다.
- 국가 : 가장 유명한 대화편. '법률' 다음으로 분량이 많으며, 10권으로 되어 있다. 다른 대화편들의 10배 분량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원래 제목은 'politeia'로, '국가'보다는 '정치 체제'가 맞는 번역이다.
- : '국가'와 함께 가장 널리 알려진 대화편에 속한다. 향연에 참석한 사람들이 술을 퍼마시면서 '사랑'을 주제로 이야기하는 내용이다.
- 키비아데스 I : 현대 학계에서 위서 여부를 놓고 논란이 있는 대화편이다. 대체로 진서로 간주하는 편이며, 그런 논쟁을 떠나서 다른 어떤 대화편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대화편이다. '인간 본성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 키비아데스 II : 대체로 위서로 간주된다.
- 이드로스 : 전반부는 '사랑'을, 후반부는 '문자 비판'을 주제로 한다. '문자 비판'의 내용은 꽤 흥미로운데, 사람들이 지식을 익히기보다는 문자로 적어놓기 때문에 머리를 쓸 일이 적어져 기억력이 후퇴한다고 주장한다. 왠지 인터넷에 대한 비판으로도 쓰일 수 있을 것 같다.
- 우튀데모스 : 소피스트들의 궤변이 나오는데, 대화가 후반부에 가면 너는 개와 돼지의 형제고 아버지는 수퇘지고 하는 식으로 엉망진창이 된다. 소피스트들을 풍자 혹은 비판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진 대화편이다.
- 네크세노스
- 라튈로스 : 대체로 중기 대화편으로 간주되지만 후기 대화편으로 볼 수 있는 내용도 담겨 있어서 플라톤이 노년에 일부 내용을 수정한 것으로 추정된다.

3. 후기 대화편
- 파르메니데스 : 플라톤이 본인의 이데아론에 대해 스스로 의문을 제기하는 대화편이다.
- 아이테토스 : 인식론에 큰 영향을 끼친 대화편이며, 특히 여기서 제시되는 '앎' 개념은 현대 인식론에서도 약간의 수정만 거쳐서 인정되고 있다. 후기 대화편이지만 초기 대화편의 형식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 피스테스 : 줄거리 상으로 아이테토스의 바로 다음날이 배경이다. 후반부는 존재론에 관한 내용인데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현대 존재론의 거장인 하이데거가 그의 저서 재와 시간에서 인용하는 바로 그 대화편이다.
- 정치가 : 줄거리 상으로 피스테스의 다음날이 배경이다. 피스테스에서 등장한 손님과 우리가 아는 소크라테스와 동명이인인 소크라테스의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 마이오스 : 우주론을 다루는 대화편으로, 현대 물리학자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 크리티아스 : 극 상으로는 티마이오스와 이어진다. 미완성의 저작으로, 이제 막 흥미진진해지려는 차에 뜬금없이 뚝 끊긴다. 노년의 플라톤이 '법률'편의 저술에 집중하기 위해서 이 대화편의 저술을 포기했다고 보기도 한다.
- 레보스 : '즐거움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 : 플라톤 최후의 저서이며 대화편들 중 분량이 가장 많다.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지 않는 유일한 대화편이며, 대신 플라톤 자신이라고 볼 수 있는 익명의 아테네인이 등장한다. 플라톤은 이 대화편을 퇴고하지 못하고 죽었고 플라톤 사후에 한 제자가 출판했다. 즉, 다듬지 않은 초고 상태로 출간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문장이 깔끔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한때는 위서로 간주되기도 하였지만, 현대 학계에서는 플라톤의 진본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1.3.1. 진위 논란

플라톤의 대화편하면 항상 빠지지 않는 것이 진위 논란이다. 이는 플라톤의 대화편뿐만 아니라 고대 서양에서 저작된 작품들은 항상 이러한 논란을 거치는 것이 특징이다.

이처럼 진위 논란이 발생할 수 있는 배경에는 고대의 문화적 상황이 있다. 우선 고대 그리스 당시에 상당한 정도로 위작 유통 시장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다수 있다. 갈레노스에 의하면 저명인사가 저술한 서적뿐만 아니라 편지까지도 도서관들이 비싼 가격에 사들였다고 한다. 저명인사들의 저작들을 입수하려는 알렉산드리아나 페르가몬 등의 도서관이 위작 저술과 유통을 통해 돈을 벌어보겠다는 비양심적 지식인들의 주요 표적이 되었던 것이다.

반면, 그러한 비양심적 행위와 달리 당대 교육 현장에서 이루어졌던 관행도 위작 논란의 한 배경이 될 수 있다. 당시 학교에서 수사학을 배우는 학생들은 어떤 잘 알려진 인물이 쓸만한 내용의 글을 연습 삼아 써 보는 일이 비일비재했고, 그 중에는 교사들도 자신의 이야기를 어떤 위대한 인물의 이름에 실어 큰 고민없이 개진했고 공표하던 관행이 있었다. 이런 식의 악의 없는 위작들이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우연히 남겨져 후대인들을 오해시킬 여지가 있었을 것이다.

다만 이러한 진위 논란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는 또 다른 논란이 될 수 있다. 진위 논란의 대상인 한 대화편을 플라톤의 것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그 함축과 파장이 매우 크다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진위 문제에 지나치게 매달리다가 플라톤의 대화편들이 담고 있는 가치 있는 내용들이 제대로 음미될 기회가 줄어든다면 그것 역시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1.3.2. 한국어 번역본

2014년 10월 2015년 3월 현재 플라톤의 대화편 전편은 한국어로 번역 발간되지 않은 상태이다. 일본은 이미 20세기 초에 중역한 전집을 내었고, 70년대에는 고대 그리스 원전 번역 전집을 내었으며, 현재는 원전 번역 전집이 복수로 있는 정도이다.

현재 시중 서점에 나와 있는 번역본 대부분은 영어판, 일어판을 중역(重譯)한 것이다. 특히, 이러한 중역본 중에서 국가가 큰 비중을 차지해, 각 중역본 마다 전달하고 있는 의미가 다름을 느낄 수 있다.
고대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한 것으로는 서광사에서 나온 박종현의 역주본과 숲에서 나온 천병희 번역본 그리고 고중세 철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술 단체인 정암학당에서 발간한 것이 있다.

박종현(朴琮炫)[23] 후술할 천병희는 박종현 번역본에 대해 "박 교수의 번역은 아주 정확할 뿐 아니라, 그 속에 텍스트에 대한 외경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더불어 박종현은 플라톤 원전을 꾸준히 번역해 온 것을 인정받아 2003년 인촌상 학술부문을 수상하기도 했다#. 다만, 번역자가 한국 철학계의 초석을 닦은 인물인만큼 번역본이 현대의 어문 체계와는 어느 정도 거리감이 있다[24]. 또한, 주해의 질적 차원은 탁월한 수준이지만 양이 너무 많아, 철학 입문자에게 번역자가 의도치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한국 철학계 내에서 오랜 기간 동안 교재로 사용되어 온 번역본이기도 하다.

천병희[25] 번역본의 경우 주로 영어 및 독일어판을 많이 참고했으며, 자신의 40년 번역경력이 말해주듯, 독자들의 입장에서 읽기 쉽게 번역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주석도 장황하기 보다는 오히려 단문으로 이루어지거나 그리스어 원어를 로마자로 적어놓은 부분이 많다. 현재도 꾸준히 플라톤 대화편을 번역하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향연>, <국가> 등 다수의 원전 번역서를 냈다.

정암학당[26] 번역본의 경우에는 애초 컨셉 자체가 전집 완역이기 때문에 출간이 처음 시작된 2007년 이래 꾸준히 원전 번역서가 이제이북스에서 출판되고 있다. 정암학당의 번역 기조가 기존의 번역서들을 존중하는 가운데 현재의 동향에 최대한 맞추는 것이라, 번역 문체가 원전의 의미를 살리면서도 매우 쉽게 다가오는 것이 특징이다. 전집 중 키비아데스, , 초월번역 수준에 해당하는 번역서들이 상당수 있으며, 국내에 최초로 소개하는 대화편들이 많은 만큼 학계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1.4. 평가

플라톤은 소크라테스뿐만 아니라 피타고라스파르메니데스에게서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변화하는 것은 가짜고, 불변하는 초월적 존재만이 진짜 존재(실재)하는 것이라는 존재론을 플라톤이 계승했고, 이것이 향후 서양철학과 중세신학의 기본 틀이 되었다. 중세 초기 기독교 신학은 플라톤의 철학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27] 때문에 플라톤적 형이상학과 유대교적 유일신 사상의 융합이 신학의 시초라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그래서 이트헤드"지난 2000년 동안 서양철학은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에 불과하다."라고 말한 것. 물론 스피노자쇼펜하우어, 니체 등의 예외는 있지만, 스피노자도 데카르트의 철학에서 출발한 인물이고, 쇼펜하우어와 니체는 기존 서양철학에 대한 반동과도 같기 때문에 모두 플라톤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26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항상 첫 손에 꼽히는 사람이 바로 플라톤이다. 플라톤의 이데아[28]론을 통해 서양철학사를 상징하다시피 하는 세부철학인 관념론이 탄생하게 되었고, 이러한 관념론을 신神의 입장에서 연구한 것이 중세철학이고, 인간의 입장에서 연구한 것이 근대철학이며, 부정하려 하는 것이 현대철학이다. 때문에 그의 철학적 업적과 영향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2. 텔레비전

LG전자에서 만든 평면 브라운관 TV 브랜드. 자매품으로는 플래트론(Platron)이 있는데, LG에서 개발한 내외면 완전 평면 브라운관의 이름이자, 모니터의 브랜드 명이다. LCD 모니터 제품도 플래트론 브랜드를 계속 사용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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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서양 철학사는 플라톤의 각주에 불과하다"라는 번역으로 널리 알려져있다.
  • [2] 소크라테스가 꿈을 꾸었는데, 꿈에서 그는 백조 새끼를 무릎 위에 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 백조 새끼에게 날개가 돋더니 기쁜 듯 소리를 질러대며 날아가 버리더라는 것이다. 그 다음날 플라톤을 소개받자, 그는 '이 친구가 바로 그 백조로군'하고 말했다고 한다.
  • [3] 그리스의 역법에서는 한 해의 시작이 하지 근처였는데 플라톤이 태어나고 죽은 달을 모르기 때문에 현재 달력으로 몇 년도인지 알 수 없다.
  • [4] <소크라테스의 변론>에서 두 차례, <파이돈>에서 언급된다. 모두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사형 재판과 죽는 날에 관련있다.
  • [5] 레슬링 선수 아리스톤에게 체육 수업을 받았다고 한다.
  • [6] 고대 그리스 전기 작가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의 저자이다.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은 동서문화사에서 중역본으로 나왔다.
  • [7] 시칠리아 섬의 중심 도시국가
  • [8] 그러나 관련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많은 견해차가 있다고 한다.
  • [9] 확실하진 않지만 디오니시오스 1세가 시라쿠사이에서 아테네로 돌아가는 배를 바꿔치기해서 플라톤을 노예로 팔아버리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플라톤은 시장에 끌려나왔으나, 그를 알아본 친구가 대금을 지불해준 덕분에, 플라톤은 풀려났다고 한다.
  • [10] 플라톤이 죽고나서 스페우시포스라는 사람이 아카데미아를 이끌어간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 점에 삐졌다는 주장도 있다.
  • [11] 보통 변론에 나오는 소크라테스가 역사적 소크라테스에 가깝지 않을까 추측하지만 이것마저도 불확실하다.
  • [12] 플라톤의 전기저작등과 소크라테스의 말이나 사상이 너무 차이가 난다고 한다.
  • [13] 원문에 의하면 '정치체제(polity)'에 가까운 제목이다. 라틴어로 Respublica라 번역되어서 여기에서 영문 번역명 Republic과 국문 번역명 '국가'가 튀어나왔다. 그리스어 원전을 번역한 박종현 역은 이를 반영해 <국가·정체(政體)>로 제목을 붙였다.
  • [14] 그러나 이렇게 플라톤을 옹호할 수는 없는 것이 플라톤이 제시한 것은 엄연히 귀족정이 맞다.애초에 소위 말하는 '타락한 귀족정'이라는 개념은 현실을 비판할 때나 쓰이게 되지 제대로된 정치사상가가 이를 주장하는 일은 없다. 어디까지나 민주주의와 귀족정을 구분짓는 것은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가 아니면 일반대중에게 있는가하는 차이이다. 그리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자란 대중이 철인이기는커녕 어리석고 비열하며 천박하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권력을 나누어 주어야한다고 말하는 사람이다.철인통치론을 귀족정이라고 비판하는 상당수 사람들의 문제점은 플라톤이 귀족정을 주장했다고 오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엄밀한 의미에서의)민주주의자라고 오인한 데에 있다.
  • [15] 현대에 성립된 권력을 공평하게 배분하는 '민주주의'라는 개념과 고대 플라톤의 직접 민주정체와 과두, 참주정체는 의미가 다르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여러 정체를 비판하고 있지만 그의 반민주적인 입장만 부각된 듯하다. 다만 플라톤은 '혈통에 의해서 계승되는 귀족정'은 부정했으며, 모든 인민은 평등하게 교육받아야한다고 주장했다. 즉 모든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똑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 이론에서의 '철인'은 귀족이라기보다는 능력에 의해서 그 자리를 쟁취한 인간에 가깝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플라톤 사상이 오늘날의 민주주의와는 같지 않더라도 민주주의와 통하는 면은 어느정도 있다고 볼 수 있다.
  • [16] 재미있는점은 동양의 공자 역시도 그와 비슷한 면이 있다는 것이다. 흔히 공자는 '주나라'라는 '좋았던 과거'를 단순히 그리워하는 사람으로 오해되곤 하는데, 사실 공자 사상에서 '주나라'는 실제로 있었던 역사상의 주나라라기보다는 '세상에 존재한 적이 없는 가공의 사회이지만, 인간이 마땅히 추구해야할 이상적인 사회'에 가깝다. 공자 역시도 주나라에 대한 정보는 당대에 이미 상당수 유실되어서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 [17] 기혼자일 수 있다.
  • [18] 동성이지만 성적인 욕구가 없기에 이런 점에서 소년애는 동성애와 구분된다.
  • [19] 여성과의 사랑과 성관계는 종족번식의 본능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순수하지 못하고, 번식이 불가능한 동성과의 사랑이 본능 따위 포함되지 않은 순수하고 진정한 사랑이라고 했다. 그 시대의 여자는 남자들과 엄격하게 분리된 생활을 했다. 어린 나이에(14세 정도에) 결혼을 했다. 결혼 생활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역할 분리는 엄격하게 유지되었고, 활동 공간 역시 나누어져 있었다. 가사를 돌보고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것이 여자들의 일이었고 집 밖으로 나갈 일은 거의 없었다. 스파르타를 제외한다면 고대 그리스에서 여성은 반쪽짜리 2급 시민이자 아이를 낳는 태반 역할로 취급 당했다.
    이런 연유로 낭만적인 사랑은 자유인 남성과 정부와 흔하진 않지만, 남자 어른과 소년 애인만 가능했다. 여성과 결혼하지 않고 평생 지속되는 배타적인 소년애 커플은 흔하지 않다고 한다. <향연>에 나오는 아가톤과 파우사니아스가 그렇다.
  • [20] 다만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에 들어서는 그리스인들 사이에서도 이성애를 중시하는 풍조가 도래하게 되었다. 루키아노스에 따르자면 심지어 이성애vs동성애를 놓고 어느쪽이 좋은지 철학자 사이에 논쟁이 있었을 정도.
  • [21] 유명한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플라토닉 러브를 가장 변태적인 사랑이라고 평한 바가 있다(…).
  • [22] 플라톤의 저서 <향연>은 여러가지 에로스에 대해 쓰였다. <향연>에서 플라톤은 육체적 욕망으로부터 출발해 정신적인 것의 추구, 교류를 통해 영혼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로 인해 지식의 아름다움을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지식의 아름다움은 다양한 이야기와 사유를 산출하게 된다. 이를 포괄하는 것이 아름다움 자체(= 좋음)이다. 에로스를 추구하는 최종단계에서는 아름다움 자체(= 좋음)를 갑자기 알려지는 것이 가능해진다. 몸에만 해당하는 아름다움이 아닌, 아름다움, 좋음 자체를 연습하는 일이 삶을 가치있게 만들어준다고 한다.
  • [23] 한국 철학 1세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학계에서 비중이 큰 학자이다. 한국 철학계의 초석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그것이 전부라고 평하기도 한다. 다만, 현재 철학계 원로들의 지도 교수 뻘 되는 인물이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 [24] 실제로 현재 《플라톤의 네 대화편》이라는 번역본의 초판(《플라톤 대화편 선집》, 1967)을 보면, 오늘날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한자어가 너무 많이 나와서 한국어 번역본임에도 읽기가 어렵다(이전에 박종현 번역판이 일본어 중역판이라는 오술이 있었는데, 이 초판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21세기 들어 철학계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젊은 연령층의 학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이러한 텍스트들을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당시 난해한 한국어 번역본으로 인해 '고대 그리서 철학=난해'라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졌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한 한국어 번역본은 일상적인 대화 속에 진리를 넣고자 했던 플라톤의 의도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과 일반인들을 유리시킨 측면은 다분하다. 다행히 1990년대 말부터 기존의 박종현 번역본들이 서광사에서 대대적으로 개정되면서 난해한 문투는 많이 개선되었고, 번역자 스스로도 시대적 흐름에 부응해 최대한 간결하게 쓰려고 노력은 하는 듯 싶다.
  • [25] 독문학자이자 고전어학자. 본래 학부에서 독어독문학과를 전공하고 독일에 독일어를 전공하기 위해 유학을 갔으나, 현지에서 고전문학을 접하였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어뿐만 아니라 라틴어에도 정통하다. 교양 수준에서부터 학술 수준까지의 수요를 두루 충족시키는 번역 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다. 참고로, 동백림 사건의 피해자이다.
  • [26] 30~40대의 비교적 젊은 신진 학자들로 구성된 학술 단체이다. 국내에서 학부를 졸업하고 그리스나 영국에서 고대 철학을 전공한 학자들이 많다. 여러 명의 인물들로 이루어진 구성체인 만큼 번역본 마다 문체가 다양하다. 고대 철학의 본 고장에서 익힌 감각과 최신 연구 성과가 반영된 번역서들이 많다.
  • [27] 니체는 기독교는 대중을 위한 플라톤주의라고 말하기도 했다
  • [28] 생각, 관념을 지칭하는 idea, 이상을 지칭하는 ideal등의 단어들 모두가 이데아를 어원으로 두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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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08 18: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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