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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렌스 나이팅게일

last modified: 2015-06-16 23:00:22 by Contributors

젋었을 때의 모습[1] 노년의 모습

Florence Nightingale

영국간호사.

Contents

1. 소개
2. 백의 천사
3. 사망
4. 이런저런 루머들
4.1. 고평가되었다?
4.2. 독신을 강요했다?
5. 그외

1. 소개

영국인이지만 부모가 여행 중에 피렌체에서 낳았기 때문에 '플로렌스'라는 이름이 붙었다.[2] 언니 파세노프 역시 나폴리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나폴리의 그리스식 이름인 파세노프라는 이름이 붙었다.

2. 백의 천사

백의의 천사, 광명의 천사라 불리운 병의원 제도의 개혁자. 크림 전쟁 당시 30여명의 간호사를 데리고 이스탄불에서 종사하였으며 현대 간호사의 기틀을 잡았다. 이전까지의 간호사는 상당히 하대받는 직업[3]이었으며, 요양원에서 잡일을 하는 청소부에 가까운 이미지가 있었다. 때문에 당연히 명문가의 딸들은 간호사가 되지 않았는데, 이때 꽤나 잘나가는 집[4]의 귀한 막내딸내미(...)였던 나이팅게일은 가족들에게 '간호사가 되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라며 간호사가 되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때 집안의 분위기는 엉망이었고 아버지는 강제적으로 맞선을 여러번 보게했으나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어쨋든 결국 자신의 뜻을 관철하여 간호사가 된 이후 크림전쟁에 군 간호사로써 참여하게 된다. 위인전에 나오는 나이팅게일의 모습은 주로 이 시절의 모습. 당시 전쟁에서는 총맞아 죽는 병사보다 죽지 않을 정도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해서 사망하거나, 병사 내 전염병이 돌아 사망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이팅게일은 군 위생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위생때문에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지원을 해달라는 내용의 편지를 각종 통계자료를 만들어 제시하며 끊임없이 보냈으며, 결국 영국의 지원을 받아낸다. 즉,위생을 처음 도입했다이미 1600년대 부터 위생의 개념이 있었으며 1800년대 초중기에 위생법등이 발효되었음덕분에 영국군의 사망률은 40%때에서 2%로 감소하는 기적을 보게된다(!) 이후 나이팅게일이 영국군의 사망률을 눈에 띄게 감소시킨 점, 그리고 밤마다 등을 켜고 병사들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돌아다닌 점 등의 이미지가 합쳐져 '백의의 천사'라는 이름으로 각종 언론에서 앞다투어 보도하며 나이팅게일은 유명세를 얻게된다.

전쟁 중 나이팅게일은 지역 풍토병에 걸려 죽을때까지 침대에서 생활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때 나이팅게일은 크림전쟁에서 얻은 유명세를 이용하여 기부를 받아(더 정확히는 funding을 받아) 자신의 간호 철학[5]을 고스란히 담아낸 최초의 근대식 병원을 설립했다. 당시 전염병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학설이 존재했다. 하나는 히포크라테스 부터 시작된 장기설(나쁜 공기가 병을 만들어낸다)였고, 또 하나는 당시 막 발견되기 시작했던 미생물설(미생물이 병을 만들어낸다)였다. 현대에는 미생물설이 맞는 것으로 결론이 났지만, 당시에는 장기설이 조금 더 우세했고, 나이팅게일도 장기설의 강력한 지지자였기 때문에 이 병원에서는 공기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 창문의 위치, 크기, 간격, 환풍기의 위치, 갯수 등 공기를 깨끗하게 하기 위한 조건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나이팅게일이 지지했던 학설이 틀린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지금 보면 굳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조건들도 포함되어 있었으나, 병이 전파되지 않기 위한 환자와 환자사이의 최소거리, 환자가 편안함을 느끼도록 온도, 습도 등을 조절할 수 있도록 할 것, 환자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개인별 조명을 설치할 것 등 현대 병원설계에서도 다수 포함하고 있어 병원 건축에서도 상당히 참고하고 있는 것들도 많다. 그러나 환자와 환자사이의 최소거리 라던지, 간호사 1명당 담당하는 최대 환자의 수(간호사가 환자의 이름, 가족관계, 몸상태 등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어야한다고 하며, 이를 위한 최대 환자 수는 12명이라고 규정하였었다.) 등은 병원의 수익문제로(...) 지켜지고 있지 않은 것들이 훨씬 많지만, 원칙상 지켜야 하기는 한다는게 중론. 참고로 나이팅게일이 세웠던 병원은 다른 병원보다 환자의 만족도나 회복속도가 월등히 좋다고 한다.
그녀의 업적을 기리기위해 국제적십자에서는 매년 세계의 우수한 간호사들에게 나이팅게일 상을 수여하고 있으며 나이팅게일 선서는 간호사들의 좌우명으로 알려져있다.

백의의 천사라는 별명 탓에 흰 간호사복을 입은 가녀린 이미지이지만 실제 사진을 보면 전혀 아니다.[6] 그리고 업적도 현장 근무를 하는 간호사라기보다는 행정가에 가깝다.[7] 성격 역시 온화하고 부드러운 귀족 여인이라기 보다는 독불장군 스타일. 배짱도 좋고 집안도 좋은 그녀가 개혁의 칼날을 휘둘렀기에 그전까지의 전근대적 병원 행정과 간호사의 지위가 진일보했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다.

실제로 그녀는 크림 전쟁 종결 이후 한때 봉사한 적이 있었던 구빈원의 의료 복지 체계 확립을 위해 노력했다. 크림 전쟁의 전쟁 영웅으로 대우받은 지라 인맥도 넓었고 꾸준히 주장한 덕에 동조자들 및 조력자들을 쉽게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조력자들을 통해 자신의 주장 근거를 더욱 확충하고 논리를 보강할 수 있었고. 중간에 그녀의 제안에 호의적인 자유당이 선거에서 패하는 악재가 터지는 바람에 원안대로 추진하지는 못했지만 결국 자신의 제안을 통과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는 영국에서 1911년에 실시될 국민보험법과 1946년 시행된 전국민 의료복지의 선구적 조치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통계 자료의 시각화에 공헌한 것으로 평가되며, 통계 관련 서적에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크림전쟁에서 영국군 사망 원인에 관한 도표 가 유명하다. 후에 영국 왕립 통계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으로 선출될 정도.

위인전 같은 데서는 크림 전쟁 때 이야기만 나오기 때문에 오해하기 쉬운데, 의외로(…) 크림 전쟁 이후에도 상당히 오래 살았다. 지금 기준으로도 장수한 편인 아흔 살[8]. 사실 정말로 예상외로 오래 살았기 때문에 말년에는 영국인들조차도 나이팅게일이 아직 살아있다는 걸 알고 놀랐다고 한다(…). 참고로 이 말년에 제자인 팬위크[9]와 간호사 면허 제도 때문에 아주 긴 기간동안 싸웠다. 나이팅게일은 간호란 희생정신, 사랑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면허제도에 거부감을 가졌으나, 팬위크는 전문성을 강조하면서 면허제도를 주장하였다. 결국 나이팅게일의 사망으로 나이팅게일측의 힘을 잃었고 나이팅게일 사후 9년 후 영국에서 간호사 면허시험이 시작되었고 대부분의 국가의 간호사들은 면허시험을 봐야 했다.[10]

대단히 오래 살았기 때문에 대영박물관 아카이브에 육성이 보존되어 있다.

3. 사망

관을 운구하는 모습 묘비
나이팅게일은 1910년 8월 13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공적을 기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으며, 유해는 햄프셔 주 웰로에 있는 성 마거릿 교회 내의 묘지에 안장되었다.

사인이 매독이라는 근거없는 소문이 있다.[11] 이는 얼토당토 헛소리. 다만 전쟁 후 눈에 띄게 쇠약해졌고 말년에는 중증 치매로 고생해서 죽기 얼마 전에 에드워드 7세가 훈장을 내렸을 때는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못했고 자신에게 무엇을 주는지도 분간을 못할 정도로 쇠약해졌다.

4. 이런저런 루머들

여러가지로 '인류의 선'을 대변하고 있는 인물이지만, 이 사람도 자세히 파고 들면 온갖 구린 소문이 돌아다닌다. 위의 사망 이유에 대한 소문은 그것의 단편. 사실 당대에는 나지도 않은 소문이다.

4.1. 고평가되었다?

지나치게 고평가되었다는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실제로 크림 전쟁 당시 간호사로 현지에서 활동한 시기도 길지 않고, 그나마도 후방 병원에서 있었으며 크림전쟁 이후의 활약도 거의 없다. 끽해야 자문 정도. 높이 평가 받은 것은 고위신분의 백인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그 반대편에 있는 메리 시콜[12]의 재조명과 더불어서 역으로 더 까이고 있기도 하다.

잘못 알려진 사실도 많은데, 이는 전부 위인/역사 만화 때문이다(...). 위인 만화에선 마치 나이팅게일이 젊은 시절에 크림 전쟁에 간호사로 나간 것처럼 묘사되어서, 20대 즈음의 묘령의 나이에 나간 것마냥 묘사되어있다.[13] 특히 해당 인물을 집중 조명하지 않고, 잠시 짚고 넘어가는 식으로만 다루는 역사 만화에서 그러한 점이 더 심하며, 이 때문에 나이팅게일이 20대, 심한 경우 10대에 종군 간호사로써 활동한 줄 아는 사람까지 있다. 하지만 크림 전쟁이 일어난 것은 1853년, 거기다 그녀가 간호사들을 이끌고 간 것은 1854년이다. 그녀의 나이 34세 때 일이다. 성년기를 지나, 중년을 향해가는 나이였다.

4.2. 독신을 강요했다?

나이팅게일에 대한 구린 소문의 근원은 그녀가 당대로서는 드물게 독신을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즈비언이 아닌가 하는 먼 훗날의 호사가들의 말이 있긴 했지만 나이팅게일의 여러 개혁이 탄력을 받았던 것은 그녀의 활약이 빅토리아 시대의 낭만성과 결합했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다시 말해 성녀 마리아 사촌동생급의 지나친 미화는 있을지언정 당대에는 구린 소문은 없었다는 게 지배적이다.

하지만 행정적인 측면에서는 대단히 인 점이 있었다. 크림 전쟁 후반기에 영국에서 또다른 간호부대가 파견되었는데 간호부대의 책임자가 자신과 동급이라는 이유로 마구 간섭하고 왕따 항의해서 결국 이 책임자는 자신의 부하 직원을 남기고 영국으로 소환된다.

후임자로 온 의사와 간호사들은 직책으로는 동급이지만 사실상 졸개 나이팅게일의 부하직원 취급을 받았었다….

5. 그외

  • 터키 이스탄불의 위스퀴다르(Üsküdar) 부근에 그녀가 크림전쟁당시 근무했던 야전병원이 남아있다. 본래 오스만 군대가 병영으로 사용하던 곳으로 전쟁이후에도 한동안 병영으로 쓰였다가 현재는 버려진상태. 조만간 터키정부에서 박물관을 세울 예정이라고 하나 언제 완성될지는 알 수 없다. 오늘날 이름은 하미디예 병영으로 항구에서 멀지 않은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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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라곤 해도 얼굴만 봐도 알겠지만 이 때도 나이가 꽤 들어있었다. 제리 베럿이 이후 나이팅게일의 모습을 보고 당시의 상황을 상상하여 그린 그림이 있는데, 그 그림에서도 비슷한 얼굴로 나온다. 즉, 사진은 못해도 크림 전쟁 종결 이후 찍었다는 것이며, 36세는 넘은 사진이다. 참고로 네이버캐스트에 있는 1858년에 찍은 나이팅게일의 사진이 있는데, 위와 거의 일치한다. 링크
  • [2] 피렌체를 영국에서는 플로렌스라고 부른다. 베네치아는 베니스, 밀라노는 밀란, 나폴리는 네이플스….
  • [3] 일부 병원을 제외하고 병원 위생도 의사도 그 당시에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의사가 되려던 음악가 베를리오즈는 아버지가 직접 가보라구 말해서 18살 나이에 프랑스 파리 대병원에 가서 쥐가 넘치고 지저분한 병원을 보고 구역질을 하며 의사를 포기하고 작곡가가 되던 것처럼 당시 유럽이고 웬만한 나라 병원 현실이 이랬다. 부잣집은 병원가느니 아예 스스로 웬만한 병을 치료했을 정도.
  • [4] 아버지는 꽤 부자였으며 지역 시의원이었기에 그 지역에서 명문집안으로 그녀도 어릴적부터 아가씨 소리 듣으며 귀하게 자랐다. 아버지는 나중에 주지사 선거에도 나갔으나 낙선했다.
  • [5] 요약하자면 '쾌적함을 느끼는 환경에서 환자의 회복이 더 빠르다. 간호사는 환자의 회복을 돕기 위해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 [6] 못생겼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물론 가녀린 이미지도 아니고.
  • [7] 나이팅게일은 현장에서 묵묵히 일하는 전문가라기보다는 행정가, 정치가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 [8] 참고로 나이팅게일과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5살 차이밖에 안 난다.
  • [9] 나이팅게일이 간호학 이라는 학문의 시초인 이유는 간호사 제도를 확립했기 때문이라기보다 간호철학을 확립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서 팬위크는 현대 간호사의 제도적인 부분에 많은 발전을 가지고 왔다. 영국간호사 협회의 창립자이자 ICN(International Conference of Nursing)의 초대 회장이기도 하다.
  • [10] 결과적으로 간호사들이 전문직으로 대우받는데 큰 기여를 했기 때문에 현대 간호학자들의 입장은 나이팅게일과 팬위크 둘 다 큰 기여를 했다는 것. 물론 대중적 인지도나 간호철학에서의 영향력은 팬위크가 나이팅게일에게 상대가 되지 않고, 간간히 간호학 개론에서 이름을 보이는 수준.
  • [11] 매독에 걸리면 보통 일찍 죽는다고 하지만 매독에 걸리고도 82살 장수를 누린 스페인 화가 고야라든지 덴마크의 여화가인 렌 블릭센이나 슈만의 아내인 라라 슈만도 매독 증거가 꽤 끈질기게 있음에도 둘 다 77살까지 살았다든지 하는 예외는 있다.(세 사람에 대하여 매독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반대 의견도 오래 살아서이다.) 다만, 나이팅게일은 주장이 다르긴 하지만 대다수 의사들에겐 매독 사망은 낭설이라는 게 대세.
  • [12]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자메이카 태생 흑인으로 크림 전쟁의 참상이 알려지면서 간호사로 갈 것을 결정했으나, 영국에서도 크림 전쟁 현지의 나이팅게일 간호사단에서도 흑인이라서 탈락. 자국에서는 군의로 활동하는 등 경력도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전방에서 응급치료에 나서서 결국 현지 병사들의 제보에 의해서 터키, 영국, 프랑스 3개국에서 훈장을 받았지만 재정적 지원이 없어서 결국 사비로 의료소 운영하고 크림전쟁 끝난 다음에는 병에 빈곤속에서 사망. 워낙 삶 자체가 드라마틱했고, 초상화가 최근 발견되면서 근래에 와서야 주목받고 있다. 그 영향으로 EBS 식채널 e에도 등장했다.
  • [13] 나이팅게일 뿐만 아니라 뉴턴이나 에디슨든 성격이 매우 괴팍했던 인물들도 매우 선한 사람으로 그려지는 것이 위인/역사 만화의 특징이다. 위인전 때문에 에디슨이 테슬라를 견제하기 위한 병크들을 몰랐던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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