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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

last modified: 2015-03-28 08:48:44 by Contributors

NHL 동부 컨퍼런스
메트로 디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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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hington Capita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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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York Island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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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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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bus Blue Jackets)

엠블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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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
Philadelphia Flyers
­
창단 1967년
연고지 펜실베이니아필라델피아
홈구장 웰스 파고 센터[1]
스탠리 컵
(통합우승)
2회
1973–74, 1974–75
컨퍼런스 우승 8회
1974–75, 1975–76, 1976–77, 1979–80, 1984–85, 1986–87,
1996–97, 2009–10
프레지던트 컵 0회
-
디비전 우승 16회
1967–68, 1973–74, 1974–75, 1975–76, 1976–77, 1979–80,
1982–83, 1984–85, 1985–86, 1986–87, 1994–95, 1995–96,
1999–00, 2001–02, 2003–04, 2010–11

Contents

1. 소개
2. 역사
3. 기타

1. 소개


NHL 동부지구 메트로 디비전 소속팀. 남자의 팀. 그래도 필라델피아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안습하다.

2. 역사

오리지널 식스 시대를 벗어나 확장 프랜차이즈를 연 1967~68시즌부터 참가한다. 원래 필라델피아 이글스의 부사장이었던 에드 스나이더가 보스턴 셀틱스 농구를 보러 갔다가 보스턴 브루인스 티켓을 사러 온 팬들의 장사진을 보고 하키팀이 장사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필라델피아에 유치하려는 계획을 세우면서 시작되었다.


플라이어스는 70년대부터 빠르게 강호로 도약했다. 프레드 셰로의 지도아래 69년 지명한 젊은 센터 바비 클락과 레프트윙 빌 바버, 골텐더 버니 페런트등의 선수를 중심으로 전력을 끌어올려 1973,74년 보스턴 브루인스,버펄로 세이버스를 꺾고 팀창단 최초의 스탠리컵 우승을 2년 연속으로 장식한다.[2] 스탠리컵 3연패에도 도전하지만 가이 라플뢰르가 이끄는 몬트리올 커네이디언스에 패해 3연패에는 실패했다. 이때 플라이어스의 성공사례는 2010년 HBO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브로드 스트릿 불리스(Broad Street Bullies)로 영상화 되었다.

이때의 성공 이후에는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캐나다팀들의 절대강세에 눌려 3번이나 스탠리컵 파이널에서 패하는 등 콩라인 신세를 겪는다. 버니 페런트를 잇는 명예의 전당 골텐더 론 헥스탈이 맹활약했지만 가이 라플뢰르,웨인 그레츠키가 이끄는 몬트리올 커네이디언스,에드먼턴 오일러스에 눌려서 80년대는 다소 안습했다.


플라이어스의 90년대를 시작한 인물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Big E 에릭 린드로스.

아이스하키라면 환장하는 캐나다 온타리오주 런던에서 태어난 197cm 120kg의 당당한 체격에도 뛰어난 기술을 겸비한 초특급 유망주 에릭 린드로스는 1991년 전체 1순위로 퀘벡 노르딕스에 지명된다. 당연히 퀘벡의 팬들은 열광했지만, 에릭 린드로스는 이런 퀘벡팬들의 성원을 성대하게 배신하고 입단 거부로 드러누워버린다. 당시 퀘벡 노르딕스는 WHA에서 합류한 후발주자였기때문에 NHL내에서는 몬트리올 커네이디언스와는 경쟁이 되지 않는 팀이었고, 팀의 재정상태가 취약했기 때문에 린드로스에게 많은 계약금을 주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이런 핑계로 린드로스는 불어를 쓸줄 모른다(퀘벡 시문서 참조)등을 이유로 노르딕스에선 절대 안뛴다라고 선언해버린다.

웨인 그레츠키,마리오 르뮤를 능가하는 가능성을 가진 유망주의 홀드아웃에 격분한 퀘벡팬들은 거품을 물고 린드로스를 비난했지만 린드로스는 끄떡하지도 않았고, 결국 퀘벡 노르딕스는 린드로스를 트레이드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이를 덥석 문 것은 필라델피아 플라이어스. 플라이어스는 팀의 80년대를 책임진 레전드 론 헥스탈에 신예 유망주 피터 포스베리,스티브 듀신등을 포함해 6명의 선수와 1라운드 지명권,현금등 어마어마한 대가를 퍼주고 린드로스를 영입했다. 그리고 퀘벡팬들에게 린드로스와 플라이어스는 그야말로 공적이 된다.[3] 그리고 3년이 지난 1994~95년, 퀘벡 노르딕스는 GG를 치고 콜로라도주 덴버로 연고이전을 하고만다.

거한 대가를 치르고 에릭 린드로스를 영입해 팀의 기둥으로 삼은 플라이어스는 린드로스를 중심으로 윙 마이클 랜버그, 존 레클레어, 센터 로드 브린다모어, 수비수 에릭 데쟈댕 등 막강 스타들을 앞세워 94년부터 승승장구했다. 비록 스탠리컵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전성기였던 지난 70년대 이후 팀의 두번째 르네상스 시대를 여는데 성공을 했다. 다만, 이 린드로스를 영입하기위해 내줬던 스웨덴출신 센터 피터 포스베리는 콜로라도에서 포텐이 터지면서 NHL을 대표하는 스웨덴 스타로 콜로라도 애벌랜치의 황금기를 열어준 반면 린드로스는 1994시즌 MVP를 수상하는등 초반 맹활약했지만 큰 체격과 거친 플레이스타일에 따르는 고질적인 뇌진탕과 잦은 부상으로 기대만큼 압도적인 커리어를 보내지 못한채 단장과의 불화로 8시즌만에 플라이어스를 떠나고 만 것. 그리고 결국 NHL선수로써는 너무 이른 33세의 나이에 현역 은퇴했다[4].

2004년 파업이후 플라이어스는 2000년대의 에이스였던 시몽 가녜,마이크 크누블등이 노쇠화를 겪으며 신예 클로드 지로와[5] 야쿱 보라첵,웨인 시먼즈를 중심으로 전력을 재편했지만 2012~2013년에는 아쉽게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2010년의 보스턴 브루인스와의 동부 컨퍼런스 결승전으로 전설로 남았는데 첫 3경기를 내주는 바람에 싹쓸이패 탈락을 당할뻔 했으나, 마지막 4경기를 죄다 이겨버리는 무시무시한 괴력을 발휘해 스탠리컵 결승전에 진출한다[6].

3. 기타

펜실베이니아주 전통의 라이벌 피츠버그 펭귄스와의 라이벌리가 치열하다.

필라델피아팀 전통답게 리그에서 가장 피지컬한 하키를 하는 팀으로 악명이 높다. 몸싸움은 기본으로 들어가고 바디첵 역시 무시무시한 수준을 자랑한다. 괜히 브로드 스트릿 불리스라고 불리는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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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본래 '와코비아 센터'였으나 '웰스 파고'가 '와코비아'를 인수합병해 정정됨.
  • [2] 이는 전부 신생팀이었던 NHL 서부지구 최초의 우승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동부지구는 NHL 초창기부터 소속되었던 오리지널 식스였기 때문에 당시 서부지구 팀들은 2부리그 취급을 받았었다.
  • [3] 다른 종목의 예를 든다면 해태 타이거즈와 박재홍의 관계를 생각하면 된다.
  • [4] 그의 동생이었던 브렛역시 뉴욕 아일랜더스에게 지명되었지만 역시 뇌진탕이 결과가 된 잦은 부상으로 프로무대에 제대로 서보지도 못하고 조기은퇴했다.
  • [5] 현지에서는 '져루'라고 부른다
  • [6] 참고로 이 기록은 1942년의 토론토 메이플 리프스와 1975년의 뉴욕 아일런더스에 이어 세번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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