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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마운트배튼

last modified: 2015-10-03 19:26:01 by Contributors

Philip Mountbatten

젊은 시절 노년

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이며, 에든버러 공(Duke of Edinburgh)이라는 직함으로도 알려져 있다. (한국에서는 에든버러공 보다는 보통 필립공이라고 호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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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마운트배튼의 문장

Contents

1. 직위
2. 생애
2.1. 유년기
2.2. 청년기
2.3. 장년기
2.3.1. 결혼
2.3.2. 여왕의 부군
3. 가족 관계
4. 건강 문제
5. 무개념
6. 기타

1. 직위

보통은 '에든버러 공 필립 전하(His Royal Highness The Prince Philip, Duke of Edinburgh)'로 지칭하며, 공식적인 칭호는 '에든버러 공작, 메리오네스 백작, 그리니치 남작, 가터 훈장의 기사, 씨슬 훈장의 특별기사, 대영 제국 훈장의 기사, 오더 오브 메리트 훈장의 회원, 오스트레일리아 훈장의 컴패니언, 뉴질랜드 훈장의 회원, 여왕 공로 훈장의 컴패니언, 파푸아 뉴기니 로거후 훈장의 치프, 캐나다 훈장의 컴패니언, 캐나다 무공 훈장과 캐나다 군대 훈장의 커맨더, 여왕 폐하의 영광스런 추밀원과 캐나다 추밀원의 의장, 해군 최고 사령관이신 필립 전하(His Royal Highness The Prince Philip, Duke of Edinburgh, Earl of Merioneth, Baron Greenwich, Royal Knight of the Most Noble Order of the Garter, Extra Knight of the Most Ancient and Most Noble Order of the Thistle, Grand Master and First and Principal Knight Grand Cross of the Most Excellent Order of the British Empire, Member of the Order of Merit, Companion of the Order of Australia, Additional Member of the Order of New Zealand, Extra Companion of the Queen's Service Order, Royal Chief of the Order of Logohu, Extraordinary Companion of the Order of Canada, Extraordinary Commander of the Order of Military Merit,1 Canadian Forces Decoration, Lord of Her Majesty's Most Honourable Privy Council, Privy Councillor of the Queen's Privy Council for Canada, Personal Aide-de-Camp to Her Majesty, Lord High Admiral of the United Kingdom)'이다.

2. 생애

2.1. 유년기

1921년 6월 10일 그리스의 코르푸 섬에서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 안드레아스와 바텐베르크의 공녀 앨리스의 고명아들로 태어났다.[1] [2] 어머니인 앨리스는 청각장애라는 신체적인 문제를 극복하고[3] 자녀를 돌보는 데 정성을 쏟았다. 하지만 다음해인 1922년 안드레아스의 형인 그리스 국왕 콘스탄티노스 1세가 폐위되면서 안드레아스에게도 추방령이 내려지자, 앨리스는 친척인 영국 국왕 조지 5세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역시 친척이었던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일가의 영국 망명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했다가 그들을 죽게 만든 경험을 한 조지 5세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그리스에서 철수하는 영국 군함에 이들을 몰래 승선하도록 해 앨리스 일가는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다.

2.2. 청년기

그리스에서 영국으로 건너간 필립은 외삼촌인 루이스 마운트배튼 백작[4]의 집에 머물며 해군으로 복무했다. 왜 가족과 같이 있었지 않았냐면 어머니는 신경쇠약에 걸려 수녀원으로 들어가고, 누나들은 독일 왕족들과 결혼해버렸고, 아버지는 필립을 버리다시피 하고 모나코에 있는 카지노를 전전했기 때문(...) (결국 1944년 말 모나코에서 사망. 참고로 필립공의 차남인 앤드류 왕자의 이름은 안드레아스 왕자에게서 딴 것이라고 함). 큰외삼촌인 조지 마운트배튼이 죽자 작은 외삼촌인 루이스 마운트배튼이 아버지 역할을 하였다.

영국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해군에 입대해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여러 해전에 참전해 훈장을 수여받았으며 계급도 중위, 대위, 소형선 부장 등을 거쳐 종전 후에는 그리니치 해군대학에서 강사로서 교편을 잡기도 했다.

2.3. 장년기

2.3.1. 결혼

1939년 해군사관학교를 시찰하던 조지 6세 부부는 동행한 두 딸 엘리자베스와 마가렛 공주의 수행을 필립에게 맡겼는데 당시 13살이었던 엘리자베스 2세가 이때 필립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한다. 이후 7년 동안 둘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연정을 키웠다. 엘리자베스가 20살 성년이 되던 해에 둘은 결혼을 결심했지만 그리스 왕족 출신인 필립은 영국에 뿌리가 없었고 누나들이 독일왕족들과 결혼했다는 사실로 반대 여론이 컸다고 한다. 결국 필립공은 엘리자베스를 위해 그리스 왕위를 포기하고 영국인으로 귀화, 그 후 조지 6세로부터 결혼을 승낙받은 필립은 외삼촌 마운트배튼 백작의 권유에 따라 어머니 앨리스의 가문 바텐베르크를 영어식으로 바꾼 마운트배튼을 성씨로 삼고 이름을 그리스어 필리포스에서 영어인 필립으로 개명했으며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함과 동시에 종교도 동방정교회에서 성공회로 개종했다.

왼쪽부터 마가렛 공주, 엘리자베스 2세, 필립,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결혼식은 1947년 11월 20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되었는데, BBC가 촬영한 당시의 로열웨딩이 컬러 기록영상으로 남아 있다. 결혼식을 마치고 다시 해군에 복귀한 필립은 몰타에 배치되어 소령, 부함장을 역임했다.

참고로 엘리자베스 2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장남 에드워드 7세의 증손녀이고, 필립은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 딸 앨리스 공주[5]의 증손자로, 둘 다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으로 모계로는 8촌이다. 또 필립의 조부인 게오르기오스1세는 덴마크 크리스티안 9세의 둘째아들이고, 엘리자베스 2세의 증조모인 알렉산드리아는 크리스티안9세의 장녀로 부계로는 7촌관계이다. 덧붙이자면 필립은 역시 빅토리아 여왕의 후손인 스페인 국왕 후안 카를로스 1세와 소피아 왕비 부부와도 친척관계이다. 후안 카를로스 1세는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 비어트리스 공주의 증손자로, 필립과는 7촌이고(바텐베르크 가문으로는 7촌, 빅토리아 여왕을 기준으로는 8촌), 소피아 왕비는 필립의 큰아버지인 그리스 국왕 콘스탄티노스 1세의 손녀이므로 필립과는 오촌의 비교적 가까운 친척 관계이다.

2.3.2. 여왕의 부군

종전 이후 대내외적으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느라 골초가 된 조지 6세의 건강이 계속 악화되자 추밀원은 1951년 엘리자베스 2세와 필립을 국왕 대리로 임명했고 부부는 국왕 대리로서 영연방을 순방했다. 1952년 2월 6일 케냐에 체류하는 도중 조지 6세의 서거 소식을 접한 필립은 다른 수행원들을 물리친 후 직접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었고, 이때부터 앨버트 공 사후 91년만에 등장한 여왕의 부군으로서 필립의 임기도 함께 시작되었다.

급히 귀국한 부부의 앞에 놓인 첫 번째 문제는 왕가의 명칭 변경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필립의 외삼촌인 루이스 마운트배튼 백작은 남편의 성씨를 따라 영국 왕가의 명칭이 윈저 왕가에서 마운트배튼 왕가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조지 5세의 왕비이자 조지 6세의 모후이며 엘리자베스 2세의 조모로서 아직 생존해 있던 메리 대왕대비가 격노해 '영국의 왕가는 앞으로 계속 윈저가 될 것'이라고 윈스턴 처칠 수상에게 통지했다. 입이 가벼운 외삼촌 때문에 마운트배튼 왕가는 고사하고 마운트배튼-윈저 왕가로 바뀔 일말의 가능성조차 사라져버려 필립은 이따금씩 "영국에서 자식에게 가문을 물려주지 못하는 남자는 나뿐"이라고 자조하곤 한다고(…).[6]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되는 게, 그와 여왕의 후손들은 마운트배튼-윈저라는 성(surname)을 쓴다.[7] 다만 왕가의 이름(family name)은 계속 House of Windsor라고 부를 것이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surname=family name이지만, 영국 왕가의 경우 앞으로 surname은 Mountbatten-Windsor, family name은 House of Windsor라고 하여 구분하겠다는 것이다.[8] 즉 성씨는 달라지더라도 왕가의 이름은 계속 Windsor로 고정된다는 뜻이다.


아내 엘리자베스 2세와는 결혼한지 60년을 훌쩍 넘긴 노년의 왕족 부부이지만 아직까지도 금슬 좋은 부부애를 자랑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2세가 전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것에는 남편 필립공과의, 잡음 하나없이 안정적이었던 결혼생활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들이 엄마아빠의 좋은 금슬을 못 물려받은 통에 이미지를 구기고 있다 여왕의 부군이라는 위치 때문에 항상 아내보다 한발 물러서 있어야만 하는 데다가 엘리자베스 2세가 국정을 혼자 살펴[9] 필립이 정치적으로 발언권을 가지는 일은 극히 드물다. 대신 여왕을 대리해 해외를 순방[10]하거나 각종 학술단체 또는 자선단체의 후원자를 맡는 등 민간 활동에서 다른 왕실 가족들과 함께 얼굴마담(?)을 하고 있다.

또한 의전 서열상 영국군 최고 계급 보유자로, 영국 육, 해, 공군의 원수 계급을 보유하고 있고, 2011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로부터 해군 최고사령관(Lord High Admiral) 직위를 넘겨받았다.

3. 가족 관계

(뒷줄) 앤드루 왕자, 앤 공주, 에드워드 왕자, (앞줄) 찰스 왕세자, 엘리자베스 2세, 필립

엘리자베스 2세와의 사이에서 찰스 왕세자, 앤 공주, 앤드루 왕자, 에드워드 왕자 등 3남 1녀를 두었다. 필립과 엘리자베스 2세는 선남선녀로 불릴만큼 둘 다 젋었을 때 꽤 출중한 외모를 자랑했는데, 어째 자식들 외모는 영 아니라는 평. 또한 영국 군주정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해로하고 있는데 정작 자식들은 막내아들 빼고 전부 이혼하는 바람에 왕실의 체면이 크게 손상되었다(…)

필립 본인도 그렇거니와 아내 엘리자베스 2세 역시 장수하고 있어서 2007년에는 결혼 60주년을 축하하는 행사가 있었고, 2011년에는 필립의 아흔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행사가 거행되었다. 생일 전날 BBC와 인터뷰한 필립은 '(여왕의 부군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어도 아무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며 '스스로 여왕 배우자의 교본을 만들어가며 지금에 이르렀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4. 건강 문제

각종 대내외 업무를 무리없이 수행하고 있지만 워낙 고령이다보니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뉴스가 간간이 나오곤 한다. 2011년 12월 23일에는 가슴 통증을 호소해 병원에 입원해서 관상동맥경화 수술을 받고 27일 퇴원했다. 2012년 6월 4일에는 전날 있었던 수상 퍼레이드에서 비가 오는 날씨에 두 시간 동안 선 채로 참석한 후유증으로 급성 방광염 증세를 보여 런던 킹 에드워드 7세 병원에 입원했다가 9일 퇴원했다. 2013년 6월 6일, 복부 수술을 위해 런던클리닉에 입원했다.

5. 무개념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영국인답게[11] 기행을 자주 벌여서 아내인 엘리자베스를 당혹케 만드는 일을 자주 벌였는데 인도에 가서 영국에 의해 학살된 사람들의 위령비를 보더니 "우리가 이렇게 많이 죽였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나의 대영제국은 이렇지 않아! 이건 대영제국을 모독하려는 행위다!"라고 했다가 인도인들이 격노하는 바람에 졸지에 후일 방문한 엘리자베스 2세가 인도 극우파 시위대들에게 온갖 애꿎은 모욕[12]을 다 당해야 했다.

1961년에는 영국 여자들은 요리를 못한다고 주장했으며 근데 이건 맞는 말인것 같은데? 1982년, 솔로몬 제도의 인구성장율이 5%란 말을 듣자 "당신들 다 미쳤군."이라고 외쳤고 1984년에 케냐를 방문해선 현지 여성보고 "당신 여자 맞소?"라고 물어 구설수에 올랐고 1986년에는 중국에 오래 머무르면 중국인들처럼 눈이 찢어진다고 주장했으며[13] 1994년에는 케이맨 제도를 방문해서 "당신들은 모두 해적의 후손이야."라고 돌직구를 날렸고 1997년에는 주차요원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1998년에는 파푸아뉴기니에 다녀왔다는 영국 학생에게 용케도 안 잡아먹혔구나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2001년에는 왕실에서 공연을 한 엘튼 존에게 마이크 좀 끄고 노래를 부르라고 조롱했다.

2002년에는 오스트레일리아 방문 도중에 여왕을 환영하기 위해 전통 무용을 보이던 어보리진들에게 아직도 창을 서로에게 던져대냐고 야만인 취급하는 농담을 하여 영국 왕실은 개망신을 당했다.

마운트배튼.png
[PNG image (1.95 MB)]

부군의 기행에 난감해하시는 여왕 폐하의 용안을 보라!

같은해 디펜던트[14] 편집장이 엘리자베스 2세 즉위 50주년을 축하하며 왕실의 초청을 받고 방문하자 "당신 부른 적 없어, 왜 온거야?"라고 퉁명스럽게 맞이해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고,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런던 시청 개관식에 참석하여 "관광객들 때문에 런던이 너무 시끄럽다. 관광업을 중지하여 교통체증을 바로잡자."(...)라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방글라데시에 방문하여 유소년 클럽 회원들을 보고 대체 무슨 마약을 했길래 몰골이 그러니?라니 말을 했다. 영감님이 거의 이시하라 신타로 급이네

손주인 해리 왕자도 이런 기질을 물려받았는지 샌드허스트에 있던 당시에 같은 교육생인 파키스탄군 소속 아흐메드 라자 칸(Ahmed Raza Khan)에게 파키(paki)라고 일본이라면 잽스라고 대놓고 욕하고 중국이라면 칭크라고 욕하는 말이다불렀다가 욕을 먹자 전화를 해서 사과했다. 칸 본인이 나서서 외교문제를 고려한 탓인지 해리는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라고 변호해줬지만 이래저래 영국 왕실은 욕을 잡쉈다.

정리하자면 인격적으로 그다지 좋은 사람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6. 기타

화물 신앙 중에는 필립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도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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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필립의 위로 마르가리타(1905~1981), 테오도라(1906~1969), 케킬리아(1911~1937), 소피아(1914~2001) 등 모두 네 명의 누나가 있었는데 필립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큰 누나 마르가리타와 필립의 나이 차는 무려 16살! 참고로 셋째 누나인 케킬리아(세실)은 결혼 후 비행기 사고로 요절 함)귀한 아들이었기 때문에 하마터면 엘리자베스 2세와 결혼하지 못할 뻔했다. 그리스 왕실에 한때 남자 계승자가 모자라서 필립이 그리스 왕에 오를 뻔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 필립의 사촌들이 아들들을 낳으면서 해결된다. 그리고 그리스는 왕정 폐지. 필립은 결혼 잘해서 피해를 안본 케이스
  • [2] 루마니아의 마지막 국왕인 미하일 1세도 1921년생 동갑이지만 촌수로는 필립공의 5촌 조카가 된다. 필립공과 미하일 1세의 어머니인 엘레네 왕비가 사촌이기 때문
  • [3] 독순술을 익혔기에 그리스어, 독어, 불어, 영어로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어서 주변인들은 그녀의 장애를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 [4] 인도 제국의 마지막 총독이기도 했는데 IRA의 폭탄테러로 끔살당했다.
  • [5] 필립의 어머니인 앨리스의 외할머니.
  • [6] 근데 어차피 지금도 외가의 성을 쓰고 있기 때문에 원칙대로 부계혈통의 성씨를 쓴다면 글뤽스부르크를 써야하지만... 참고로 글뤽스부르크는 덴마크 왕실의 성씨다. 필립은 원래 그리스 왕족인데, 그리스 왕실이 덴마크 왕실의 분가이기 때문에 부계혈통으로 치면 덴마크 왕실과도 친척이다.필립의 조부인 그리스 게오르기오스1세는 덴마크 크리스티안9세의 차남이었음. 단, 1953년 덴마크 개헌으로 프레데릭 8세의 장남인 크리스타인 10세의 후손에게만 왕위 계승권이 한정되면서 이에 해당되지 않는 그리스 왕실의 덴마크 왕위 계승권은 없어짐.
  • [7] 서양에서도 대개 아버지의 성을 물려 주지만, 왕족·귀족의 경우 종종 부모의 성을 모두 합쳐서 쓰는 경우가 꽤 많이 있다. 외가가 왕가처럼 강력한 집안일 경우 대개 이렇게 한다.
  • [8] 영국 왕실의 공식 설명.#
  • [9] 조지 6세와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은 정부에서 보낸 서류를 상자에 넣은 다음 꺼내서 함께 들여다 보았는데, 엘리자베스 2세는 그 상자의 열쇠를 자기만 갖고 남편에게 주지 않았다.
  • [10] 인도 공화국을 방문해선 영국 식민지 시절 학살자 추모비를 딴지걸다가 여왕이 인도를 나중에 방문할때 극우파들의 야유와 비웃음을 실컷 당하는데 기여했다.친척 중 한 사람의 남편이 했던 말인 그 입 닥쳐라를 시전하자
  • [11] 필립 공이 친가가 덴마크-그리스라인, 외가가 독일라인인건 함정...
  • [12] 영어로 "대영제국의 늙고 위대한 암캐 여왕, 인도에 오신 걸 참으로 환영합니다."라고 대놓고 걸개를 달았다던지 왕실마차가 지날때마다 인도 독립가를 부르고 휘파람을 부른다든지 밤중에 호텔 근처에서 작고 섬나라 여왕이 크나큰 대륙 오자면 흥분해서 잠을 못자니까 자장가 불러준다고 스피커로 비웃어주기까지...
  • [13] 이건 진짜 얄짤없는 인종차별 발언이다.(...)
  • [14] 인디펜던트는 시론으로 왕실 폐지를 주장하는 언론이다. 가디언도 그렇다. 구독자들도 공화주의자가 많은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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