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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플로이드

last modified: 2015-03-25 20:25:53 by Contributors

Pink Floy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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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닉 메이슨(드럼), 시드 배릿(데뷔앨범 기타, 2집 앨범 기타 일부), 이비드 길모어(기타), 저 워터스(베이스), 리처드 라이트(키보드, 신시사이저)[1]

영국 출신 전설적인 록 밴드. 종종 이들을 미국 그룹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보이지만 영국 그룹이다.

목차

1. 연보
1.1. 데뷔부터 시드 배릿 시절까지
1.2. 과도기
1.3. 전성기
1.4. 로저 워터스의 독주 체제
1.5. 데이비드 길모어 리드 체제
1.6. 그 후
1.7. 기타

1. 연보

Pink Floyd Discography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A Saucerful of SecretsSoundtrack from the Film MoreUmmagummaAtom Heart MotherMeddleObscured by Clouds
The Dark Side of the MoonWish You Were HereAnimalsThe WallThe Final CutA Momentary Lapse of ReasonThe Division Bell
The Endless River


1.1. 데뷔부터 시드 배릿 시절까지


시드 배릿. 그는 초창기 핑크 플로이드의 거의 모든 것을 이끌었다.

1964년 처음 결성했다. 당시 멤버는 로저 워터스, 리처드 라이트, 닉 메이슨, 클라이브 멧커프, 줄리엣 게일, 키스 노블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핑크 플로이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라는 이름은 당시 활동하던 블루스 연주자 핑크 앤더슨과 플로이드 카운슬의 이름을 각각 따온 것이다. 처음에는 이름이 비롯한 것처럼 평범한 블루스 밴드였지만, 시드 배릿이 가입하면서 점점 사이키델릭 록으로 음악적 성향이 변해갔다.

클럽 공연 등으로 대중적인 인기가 높아지자 그들은 1966년 음반사와 계약을 맺고 Arnold Layne, See Emily Play 등의 싱글을 발표하다가[2], 1967년 핑크 플로이드는 첫 앨범 《The Piper at the Gates of Dawn》을 발표했다(이 앨범에 수록된 Interstellar Overdrive(해석하면 성간비행 인터스텔라가 아니다)는 사이키델릭 연주곡의 정수로 꼽힌다.). 또한 이 데뷔 앨범은 사이키델릭 록의 절정기였던 1967년에 나온 많은 앨범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이키델릭 앨범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러나 밴드의 인기가 점점 높아짐에 따라 멤버들은 압박감을 느끼게 됐고, 시드 배릿은 이를 이겨내기 위해 약물을 복용하면서 결국에는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결국 1968년 시드 배릿이 탈퇴하고 대신 데이비드 길모어가 들어오게 된다.[3] 다만 두 번째 앨범은 시드 배릿이 참여한 곡과 데이비드 길모어가 참여한 곡이 섞여있다.[4]

1.2. 과도기


작사, 작곡, 편곡을 거의 도맡아 하던 시드 배릿의 탈퇴 이후 밴드는 새로운 방향을 모색한다. 사이키델릭의 색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한 앨범에서 몇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모든 곡들이 통합적으로 그 주제를 연출해가는 컨셉트 앨범을 지향해가며 곡마다 여러가지 음에 관련한 실험을 시도하는 본격적인 프로그레시브 록을 추구해가게 되며, 이것은 주로 리더인 로저 워터스가 자신의 정신세계에 기반해 추구한 것이다.

초기에는 Ummagumma같은 사이키델릭 성향이 강한 실험작들을 통해 독특한 음악 세계를 만들어나가다, Atom Heart Mother의 경우에는 사이키델릭 성향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보여주기도 한다. 클래식 오케스트라와 의미없는 가사의 혼합, 앨범 제목조차도 신문 기사에서 따온 '인공 심장을 가진 어머니'를 사용하며 자신들의 음악을 사이키델릭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반발심리를 표출한다. 그리고 이 앨범에서 알란 파슨스와 함께 작업하며 계란 굽는소리, 오줌 소리 등 각종 효과음을 사용하며 음악을 만들었고 이는 그들과 알란 파슨스가 작업한 두번째 앨범인 The Dark Side of the Moon에 중요한 밑거름이 된다. 이후 《Meddle》 앨범부터 그러한 프로그레시브적 취향의 컨셉트 앨범을 본격적으로 추구해가게 된다. 시드의 탈퇴 이후 겉잡을 수 없이 흔들리던 핑크 플로이드는 이 때 와서 안정을 되찾게 되고 본격적으로 훌륭한 음악을 만들 자질을 갖추게 된다.

특히 Meddle 앨범의 Echoes라는 곡은 20분이 넘어가는 길이의 대곡으로, 핑크 플로이드가 추구하는 음악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블루스와 사이키델릭의 융합, 그러면서 동시에 프로그레시브 적인 곡 구성, 예술적인 가사로 우주적인 사운드를 구현해냈다.

1.3. 전성기


마침내 1973년 《The Dark Side of the Moon》을 발매하면서 이들은 전설의 자리에 올라가게 된다. 핑크 플로이드의 모든 앨범 중에서 가장 상업적으로 성공한 앨범이며, 이 앨범은 미국 차트 1위를 기록했다. 게다가, 전세계적으로 4천만 장 이상 팔렸으며, 영국 앨범 차트에 301주 이상, 빌보드 앨범 차트에 741주 이상 기재되었다.[5]

비틀즈의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앨범을 제작한 당대 최고의 엔지니어 앨런 파슨스가 제작한 이 앨범에 담긴 음들은 여러 사물들의 소리들의 자연스러운 어울림을 담아놓은 것이나 미세할 정도로 투명하고 깔끔한 악기음 등등 당시로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것이었다. 리더 로저 워터스는 《The Dark Side of the Moon》 이래 자신의 경험과 정신세계에서 기반한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가치관을 건조하고 냉담한 선율로 앨범에서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그 뒤 Wish you were here 앨범을 발표하며 핑크 플로이드는 그들의 명성을 계속해서 이어간다. 본래 이 앨범의 아이디어는 집안에 있는 물건을 이용해서만 녹음하겠다는 것이었지만, 방향을 바꾸어 소외와 상실에 대한 주제로 앨범을 만들었다.(Shine on you crazy diamond 제일 앞부분에 유일하게 그 흔적이 남아있다. 물을 채운 와인 잔 가를 문지르는 소리를 다중녹음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 앨범에서는 시드 배릿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나오는 데 이는 앨범을 녹음했을 당시의 일화로 인해 더 강해졌다.

앨범을 녹음할 때 녹음실에 시드가 찾아왔지만 그가 너무나 변한 나머지 멤버들은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이때 시드는 위에 나온 모습과는 전혀 달라진 대머리의 뚱보 아저씨의 모습이였기 때문이었다(놀라운 건 간지나는 이목구비는 변하지 않았다고 한다). 흠좀무.][6] 나중에 그들은 이러한 상황을 슬퍼했다.

그 외로 이 앨범에는 핑크 플로이드의 명곡으로 꼽히는 Shine on you crazy diamond가 수록되어 있다. 2개의 파트로 나눠진 이 곡은 수많은 팬들이 꼽는 명곡 중의 명곡인데, 가사를 들어보면 눈치챌 수 있겠지만 이 노래는 위대한 천재성, 그리고 어떤 의미로는 그 천재성 때문에 부서져버린 시드에 대한 헌사에 가깝다. 앞글자들을 따면 SYD가 되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1.4. 로저 워터스의 독주 체제


내가 혼자 다해먹을 거야!![7]

순조로운 음악적 경력을 이어가는 듯 싶었던 핑크 플로이드였지만 로저 워터스의 독주 체제가 시작되면서 분열의 조짐이 보이게 된다. 이 시기에 발표된 《Animals》, 《The Wall》은 여전히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담은 걸작이였지만 동시에 그들의 스완 송이기도 했다.

이들의 분열은 워터스의 강력한 영향력과 그에 불만을 가진 멤버들간의 불화에서 시작되었다. 특히, 로저 워터스는 《The Wall》 녹음 도중 리처드 라이트를 탈퇴시켰다. 명분은 낮은 기여도와 코카인 복용.[8]

어찌됐건 《The Wall》은 영국 차트 3위, 미국에서는 1980년에 15주 동안 1위를 차지하였으며, 1100만 장이 넘는 판매고를 올렸다.[9] 이 앨범은 1982년에 나온 앨런 파커 감독의 영화 《Pink Floyd : The Wall》의 모티브가 되었다. 독주 체제 하에 나왔다고는 해도 핑크 플로이드 커리어 상 최고의 앨범의 자리를 다투는 작품 임은 틀림이 없다.

로저 워터스가 마지막으로 참가한 《The Final Cut》은 사실상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이라기 보단 로저 워터스의 솔로앨범이었다.[10] 이 앨범을 끝으로 결국 워터스는 1985년 12월 핑크 플로이드를 탈퇴한다.

1.5. 데이비드 길모어 리드 체제


후에 길모어와 메이슨은 핑크 플로이드로 계속 활동하려고 했으나 로저 워터스와의 법적 공방[11]을 겪기도 하였으며 인터뷰에서 서로 디스도 했다. 존 레넌폴 매카트니도 아니고[12] 1996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핑크 플로이드가 입성할 당시 워터스는 참석하지도 않았을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다.

어쨌거나 데이비드 길모어는 핑크 플로이드의 리더를 맡게 되고 《A Momentary Lapse of Reason》을 발표한다. 워터스 특유의 냉소적이고 어두운 분위기가 사라지고 좀더 가볍고 경쾌한 음악이라 기존 팬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앨범이다. 또한 1994년 《Division Bell》을 발표하는데 전작보다는 좀 더 분위기 있고 무게가 있다. 놀랍게도 이 앨범은 당시의 음악적 조류와 거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미국 차트에서 모두 1위의 성적을 거두게 된다. 이후 핑크 플로이드는 정규 음반을 발표하지 않고 라이브 활동만 전개하게 된다. 물론 로저 워터스도 따로 라이브 활동을 전개한다.

1.6. 그 후


로저 워터스와 3인 체제의 핑크 플로이드간의 불화가 계속 이어지는 듯 했으나 2005년 7월 2일 로저 워터스를 포함한 모든 멤버가 라이브 8 콘서트에서 모여 공연을 하였다. 마지막에 포옹하는 멤버들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 이 공연 직후 핑크 플로이드의 과거 앨범 판매량이 급등하였다.[13]

핑크 플로이드는 프로그레시브 록을 작업해왔지만 그러면서도 데뷔초부터 현재까지 사이키델릭 록의 센스를 잃지않은 많지 않은 밴드이며,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중 가장 사이키델릭적 성향이 강한 밴드중의 하나이다.[14]

여러모로 험난하고도 치열한 명부마도의 길을 간 위대한 밴드. 록의 불모지 한국에서도 일단 이름만 나왔다 하면 엄청나게 팔리는 밴드. 특히 7-80년대 세대들에게는 각별하다. 이들의 대표곡인 Time은 70년대에 한국 광고 BGM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2006년 7월 7일 초기 리더였던 시드 배릿이 당뇨로 세상을 떴다. 그리고 2008년 9월 15일 키보디스트였던 릭 라이트가 으로 세상을 떠났다.

2014년 7월, 20년만의 신보 "The Endless River"가 나온다는 소식이 SNS를 통해 돌았으며 그 해 11월 10일에 발매 되었다. 《Division Bell》과 비슷한 시기에 녹음되었으며 릭 라이트가 참여한 마지막 앨범이다. [15] 원래 인스투르멘탈 앨범으로 가려 했으나 고민 끝에 데이빗 길모어의 보컬이 녹음되었다고 한다. 워낙 오랜만의 앨범인지라 거의 보컬이 없는 느긋한 페이스의 음악인데도 불구하고 꽤 잘 팔렸다고 한다. 음악적인 평은 사실 그냥저냥하지만..

1.7. 기타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핑크 플로이드의 팬이며 핑크 플로이드의 곡을 들으며 작품을 쓴다고도 한다.

그 외에도 죠죠의 기묘한 모험의 작가인 아라키 히로히코가 좋아하는 밴드인 듯. 크레이지 다이아몬드, 에코즈, 아톰 하트 파더 등 여러 스탠드의 이름에 그들의 곡명을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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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1968년에 찍은 이 사진은 시드 배릿과 데이비드 길모어가 같이 있는 이유만으로 상당히 유명하다. 이 당시 길모어는 정신 질환과 약물 중독에 시달리던 시드 대신에 무대에 올랐던 대타 멤버였는데 시드의 탈퇴(정신질환 탓인 걸로 알려졌지만 정확한 이유는 불명)로 결국 후임을 맡게 된다.
  • [2] 이 두 곡은 1971년작 컴필레이션 앨범 《Relics》에 수록되어 있다.
  • [3] 유명한 일화로, 시드가 무언가를 열심히 휘갈기다가 '내가 작곡한 곡이야 들어봐'라며 멤버들에게 건내줬는데 그 종이는 였다고...
  • [4] 2집 앨범 《A Saucerful of secrets》의 마지막 곡 Jugband blues는 시드 배릿이 밴드 내에서 마지막으로 작업한 곡이다.
  • [5] 이는 기네스북 기록이다.
  • [6] 리처드 라이트의 말에 따르면 로저 워터스와 Shine on you crazy diamond의 보컬 파트를 작업하고 있던 도중 한 대머리의 수상한 청년이 들어와 갑자기 양치질(...)을 하고 다시 앉기를 반복하는 등의 이상한 행동을 보였는데 한 45분쯤 작업하다 어느 순간 그가 시드라는 걸 알아차렸다고.
  • [7] 사실 이건 1970~80년대 당시가 아니라 뒷날 늙은 뒤의 사진이다. 워터스는 혼자가 된 후 특유의 쇼맨십으로 오지 오스본 공연 때마다 특이한 복장과 컨셉을 자주 사용했다.
  • [8] 재미있는 건 그럼에도 투어는 같이 다녔다는 점이다. 세션 자격으로. 정작 핑크 플로이드가 The Wall 투어 시에 들었던 비용을 못갚았기 때문에 라이트만 돈을 벌게 된 상황이 되었다. 그 이후 라이트는 《Final cut》에서는 완전히 빠졌고, 《A Momentary Lapse of Reason》에서 세션으로 참여, 그리고《Division Bell》에서 다시 정식 멤버로 돌아온다.
  • [9] 미국음반산업협회 RIAA에서는 하나의 더블앨범 샀을 때 두 장 판매한 걸로 인정하기에 2300만 장이 판매된 것으로 나온다.
  • [10] 실제로 앨범에는 로저 워터스에 의한, 핑크 플로이드가 연주한 앨범이라 표기되어 있다.
  • [11] 핑크 플로이드라는 이름에 대한 소유권 공방전. 결국 이름은 길모어와 메이슨이 가지는 데 성공했지만 《The Wall》과 《The Final Cut》은 워터스의 것이 되었다.
  • [12] 특히 워터스는 《A Momentary Lapse Of Reason》을 형편없는 음악에 가사는 삼류라고 깠다. 길모어는 워터스더러 "그는 과대망상증 환자다"라는 식으로 말을 했으며 라이트는 그를 '도저히 같이 일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 [13] 《The Wall》은 3,600% 증가. 《Wish You Were Here》가 2,000%증가, 《The Dark Side Of The Moon》이 1,400% 증가, 《Animals》가 1,000%증가하였다. '0'이 실수로 하나 더 붙은 게 아니다. 즉 《The Wall》은 기존 판매량의 36배만큼이나 더 팔렸다는 소리다.
  • [14] 현재 활동하고 있는 밴드 중에서 이들의 음악 성향과 가장 비슷한 밴드로 라디오헤드가 꼽힌다. 꼭 무슨 직계 라인을 탔다고 말하는 것은 무리이겠지만 정말 코드가 비슷하기는 하다. 평단과 대중 양쪽에서 모두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까지. 실제로 핑크 플로이드의 드러머 닉 메이슨은 핑크 플로이드를 따라하는(Tribute) 밴드 중 라디오헤드를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 [15] 정확히는 그가 살아있었을 당시 함께 녹음하고 작업했던 곡들이 삽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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