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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라

last modified: 2015-10-07 19:32:51 by Contributors



중국의 왕조 국가. 이 명칭을 쓰는 나라는 여럿이 있다.

Contents

1. 중국 최초의 왕조 / 전설상의 국가
1.1. 역사
1.2. 실존 논쟁
1.3. 여담
2. 오호십육국시대의 왕조
2.1. 북하(北夏)의 황제
3. 서하
4. 원말명초의 왕조

1. 중국 최초의 왕조 / 전설상의 국가

중국의 문헌에서 기록된 최초의 왕조 국가. 전통적으로 중국 한족을 화하(華夏)족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바로 이곳의 국명에서 유래된 것이다. 다만 아직 관련 유적이 미미하여 실존이 인정받지는 못했다. 국성은 사(姒).[1]

1.1. 역사

하나라의 역사는 요, 순에서 이어지며 신화적인 경향이 강하다.

건국자는 . 상서 등 문헌에 의하면, 요순시대 엄청난 홍수가 일어났는데, 우의 아버지 치수에 실패하여 추방 당하고 죽자, 그 뒤를 이어서 중국 전토에 이르는 치수 사업을 벌인다. 그리고 이를 성공한 공으로 임금에게 선양받아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한자인 禹라는 글자의 형태는 으로 을 쥔 형상에서 비롯되었는데, 이는 우 임금이 뱀으로 상징되는 의 범람이라는 환란을 평정한 영웅으로 여겨졌음이 암시되었다.

상서사기에서는 그의 사후 하나라의 왕위가 우의 아들에게 세습되면서 왕위 세습이 제도화되었다고 하는데, 죽서기년에서는 본디 백익에게 선양할 생각이었으나, 우의 아들이 백익을 죽이고 왕위에 올라서 세습이 고착되었다고 하는 이설도 전한다.

마지막 왕인 걸은 은나라주왕과 더불어 하걸은주라고 불리는 고대의 2대 폭군에 들어갈 정도로 엄청난 인간말종이었다. 말희라는 미녀에게 현혹되어 나라를 망치고 은나라 시조 성탕에 의해서 멸망되었다고 한다. 이후 은나라는 달기와 엮여서, 주나라는 포사와 엮여서 멸망했으니까, 연속해서 3대 왕조가 미녀에 의해 국가를 망치게 된 셈이다. 경국지색 으아아아(...)

사마천은 사기에서 흉노를 하후의 후예라 하면서 하나라와 연관짓고 있지만 근거는 없다.

1.2. 실존 논쟁

자세한 왕계가 전하고 선진시대의 여러 문헌에서 언급이 되는 왕조라서 실존했을 가능성은 농후하지만 적어도 현재까지는 고고학적으로 분명한 증거가 없다. 현재 하나라의 후보지로 뽑히는 곳이 뤄다먀오(洛達廟) 등의 지역이지만, 문자 자료가 없어 실증은 불가능하다. 중국에서는 2000년 사회과학원이 종료한 중국의 하상주단대공정에 의해서 실존하는 국가로 확정되고 연대가 추산되었지만, 해당 결과는 국제 사학계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만일 실재했더라도 조그만 지역 하나 차지하는 원시부족이었을 것이다.

중국의 뻘짓은 하나라나 요순이전의 삼황오제까지 역사적 사실로 끌어올리려고 시도하는 것에서도 잘 나타나는데, 이것을 근거로 든 것이 1980년대 발굴된 요동지방의 한 고대 유적이었다. 근데 이지역은 그당시 도저히 중국문화의 원류인 황하문명의 영역이 아니었으니(...)그렇다고 환빠들처럼 이곳을 환국으로 단정하기도 뭐하고(...) 참(...)

멸망 패턴이 항상 똑같다는 점국가 막장 테크은나라하나라의 존재가 주나라의 역사를 토대로 창작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한 이유가 되었다. 갑골문자의 발견으로 은나라의 존재는 더이상 아무도 의심하지 않지만 하나라는 아직 이같은 의심에서 자유롭지 않다.

은나라의 갑골문금문 기록은 하나라의 존재를 부정하는 근거들 중 하나인데, 이는 갑골문에서 탕왕은 은왕조의 창시자가 아니라 은왕조를 중흥시킨 왕일 뿐이며, 갑골문에서 탕왕을 칭송하는 내용은 많이 보이지만 그 중에서 하왕조나 그에 해당되는 강한 적을 물리쳤다는 언급은 전혀 없는 등 갑골문에서 하왕조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갑골문에서는 하(夏)라는 글자조차 식별되지 않으며, 갑골문에서의 1년은 춘하추동이 아니라 단순히 춘추로 구별했다. #

1.3. 여담

크툴루 신화 세계관에서는 하나라 시대에 르뤼에 이본의 중국어판 번역인 나인성본전(螺湮城本傳)이 만들어졌다.

2.1. 북하(北夏)의 황제

대수 묘호 시호 성명 연호 재위기간 능호
1대 세조(世祖) 무열황제(武烈皇帝) 혁련발발(赫連勃勃) 용승(龍昇) 407 ~ 413
봉상(鳳祥) 413 ~ 418
창무(昌武) 418 ~ 419
진흥(眞興) 419 ~ 425
407 ~ 425 가평릉(嘉平陵)
2대 - - 혁련창(赫連昌) 승광(承光) 425 ~ 428 425 ~ 428 -
3대 - - 혁련정(赫連定) 승광(勝光) 428 ~ 431 428 ~ 431 -

407 ~ 431. 남흉노족인 혁련발발(赫連勃勃)아 발발이 치와와이 세운 나라로 북하(北夏), 호하(胡夏), 혹은 혁련하(赫連夏)라고도 부른다. 흉노의 선조가 고대 하나라 하후씨의 후손이라는 전설을 바탕으로 하여 하를 국호로 정하였다. 역사상 마지막 흉노 국가이다.

3. 서하

서하 항목 참고.

4. 원말명초의 왕조

1363년 ~ 1371년 사이에 오늘날의 사천성 지방에서 건국된 왕조. 황제의 성씨를 따 명하(明夏), 혹은 (蜀)이라고도 한다.

1363년 원나라 말기의 군웅 명옥진(明玉珍)이 황제에 즉위하여 국호를 대하(大夏)라 하고 수도를 중경(重慶)에 두었다. 1368년 명옥진이 36세로 죽고, 아들 명승(明昇)이 즉위하였으나 1371년, 주원장의 공격을 받고 항복해, 8년만에 멸망했다.

명승은 항복 후 명나라 수도 응천부(남경)로 이송되어 귀의후에 봉해졌으나, 하나라의 유신들의 일부가 명나라에 저항하다가 진압되자 이듬해 남녀 28명을 데리고 고려로 망명하여 서촉 명씨의 시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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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부분이 엄청난 떡밥 중 하나인데, 최초의 문자로 보여지고 있는 갑골문이나 홍도문들은 상나라 3기인 은허시기 이후를 중심으로 발굴되고 있다. 그런데, 그보다 600여년이나 빠른 하나라 초기의 인물인 하나라 우의 후손들의 성씨를 사(姒)라고 사기에서 표현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 [2] 하나라는 오호십육국시대보다 천년도 더 전의 국가이다. 고로 하나라의 시대가 오호십육국시대인 것은 아니다. 헷갈리게 써놨네...즉, 흉노족이 세운 하나라와 중국 최초의 나라라고 말하는 하나라는 한자는 같지만 다른 나라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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