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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바롭스크의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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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바롭스크의 레닌 광장
2. 도시 특징과 역사 ¶
17세기 러시아 카자크 탐험가들이 아무르 강가에 세운 캠프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도시가 형성되었다. 이 캠프는 당시 카자크의 지도자인 하바로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고 이 이름이 그 뒤로 쭉 이어진다. 중국과 러시아가 영토싸움을 많이 벌였던 곳으로, 1689년 청나라와 러시아간의 네르친스크 조약에 따라 150여 년 동안 청나라에 복속되었다가 1859년 아편전쟁중에 정신이 없던 틈을 타서 러시아는 아이훈 조약으로 다시 이 지역을 되찾았다.[4]
19세기 후반부터 러시아의 극동지방 개발이 시작되자 하바롭스크에 학자, 군인 등이 들어오게 되었고 본격적인 도시발전이 이루어졌다. 20세기 초반에는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건설되어 극동의 부동항으로 가는 통로가 되었다. 하바롭스크를 직접 가보면 아무르 강가를 따라 아름다운 옛 러시아 도시의 느낌이 물씬 나는데 그것들이 다 이 시기의 유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러시아가 일본 전범들을 상대로 연 하바롭스크 전범 재판이 열렸던 장소이며, 마지막 황제인 푸이가 만주국의 붕괴 이후 1950년까지 5년간 머무르기도 한 곳이다.
소련 시절만 하더라도 블라디보스토크보다 큰 도시였으나, 소련의 해체 이후 인구가 줄어서 현재 극동 연방관구에서는 인구수 기준으로 2위를 차지하는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블라디보스토크의 위치는 연해주(프리모르스키 크라이) 남쪽 동해안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러시아 극동지방 전체의 행정적, 정치적 중심지는 아직 하바롭스크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