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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승진

last modified: 2015-01-20 10:13:03 by Contributors


전주 KCC 이지스 No.0
하승진
생년월일 1985년 8월 4일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부천시
출신학교 삼일상고 - 연세대학교
포지션 센터
신체 사이즈 221cm, 138Kg [1]
프로입단 2004년 NBA 드래프트 2라운드 46번(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
소속팀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2004~2006)
애너하임 아스날(2006~2007)
전주 KCC 이지스(2008~ )

2008~2009 한국프로농구 최우수 신인
김태술(서울 SK 나이츠) 하승진(전주 KCC 이지스) 박성진(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

2010~2011 한국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MVP
함지훈(울산 모비스 피버스) 하승진(전주 KCC 이지스) 오세근(안양 KGC인삼공사 농구단)

KBL 최고의 인간 전봇대
한국 농구의 인간 동충하초

서장훈이 골리앗이라면 나는 올돌골이다

Contents

1. 개요
2. 선수 생활
2.1. 아마 농구 시절
2.2. 폭풍 2도움의 시절 - NBA
2.3. 전주 KCC 시절
3. 스타일 - 유형균형

1. 개요

현재 생존해 있는 대한민국 남자 중 최장신[2] [3] [4]

대한민국 농구 역대 최장신 센터.[5] 그리고 현재까지 대한민국 농구 역사상 유일한 NBA 경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이다. 결국 NBA에서 정착하는 데 완전 실패했지만, 대한민국 무대로 돌아와서 정상급 센터로 군림하고 있는 선수다. 전주 KCC 이지스의 스타이자, KBL의 이슈메이커. 별명은 하킬[6]

대한민국 농구 팬들에게는 이래저래 애증이 교차하는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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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2014-2015시즌 KCC프로농구 타이틀스폰서 조인식에 수염을 기른채로 등장하기도 했다.

2. 선수 생활

2.1. 아마 농구 시절

아버지 하동기 씨도 농구 선수였고, 누나인 하은주 역시 농구 선수인 농구 집안이다. 삼일상고 1학년 때 이미 키가 2m 15cm였고, 삼일중 시절부터 그를 본 삼일상고는 온갖 노력 끝에 기어이 그를 같은 재단인 삼일상고에 넣는데 성공했다. 고교 농구에 갑자기 등장한 키 2m 15cm의 거인의 출현의 결과는? 고교농구 정ㅋ벅ㅋ. 창단 이래로 36년 간 전국대회 우승이 없던 삼일상고는 하승진의 효과를 앞세워 고교 농구를 초토화시켰다.

하승진 자신은 우월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 이미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농구 유망주가 되었다. 사실, 지금의 하승진의 키 221cm는 NBA 센터들 중에서도 최상위권이다.[7]역대 족적을 남긴 센터들과 비교하면 샤킬 오닐보다 5cm 크고 카림 압둘자바보다는 3cm 클 정도. 야오밍보다는 5cm 작다. 그랬기 때문에 그 당시부터도 NBA 도전 이야기가 많이 나왔고, 그 자신도 그런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우월한 사이즈를 놀릴 수 없던 대한민국 농구계는 고교 3학년 때, 이미 하승진을 국가대표로 발탁하기도 했다.

일단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여 김태술, 양희종과 함께 연대의 전성기를 만들어 낸 후, 연세대 1학년을 마치고 NBA 드래프트에 응시했다. 당초 높은 순번에도 지명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일천한 경험이 문제가 되며, 결국 2라운드에 지명되었다. 참고로 이 드래프트의 전체 1순위는 드와이트 하워드.

2.2. 폭풍 2도움의 시절 - N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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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라운드 지명을 받은 선수 치고는 비교적 후한 3년 계약을 맺으면서 NBA에 첫 발을 내딛나 했지만, 개막과 동시에 로스터에 들지 못하고 NBDL에서 기량을 연마해야 했다. 다행히 시즌 중반에 로스터에 합류하는가 싶더니 부상으로 데뷔가 연기되어 결국 데뷔는 2005년에 이르러서야 했는데, 첫 경기에는 별 다른 기록을 내지 못하다가 두 번째 경기에 이르러 뉴욕 닉스와의 경기에서도움 2개를 기록하며 자신의 첫 기록을 남겼다. 그 때 남긴 전설적인 짤이 바로 위에 나온 폭풍 2도움(...).

첫 시즌에 가바지 타임 위주로 뛰면서 커리어를 이어 갔지만, 부족한 면이 많았다. 애당초 기회를 잡기가 애매한 상황.[8] 결국 한 시즌을 뛴 후, 밀워키 벅스로 트레이드됬다가 바로 방출되면서 허무하게 커리어를 접어야 했다. NBDL에서 재기를 모색하기도 했지만, 결국 미국 생활을 접고 국내로 돌아가게 되었다.

NBA에서의 커리어 하이는 로스앤젤레스 레이커스를 상대로 기록한 13득점 5리바운드 1스틸.

어쨌든 하승진의 미국행은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것이었다. 한국인도 어떻게든 하면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지만, 동시에 NBA가 결코 우월한 키만 가지고도 살아남을 수 없는 괴수들의 천국임을 다시금 보여 주기도 했다.[9] 그리고 하승진 자신도 잦은 부상으로 인해 팀의 신뢰를 받지 못한 것 역시 사실. 하승진의 진출에 자극을 받은 방성윤미국 진출 시도나 최진수의 농구 유학은 부수적인 효과이기도 했다.

어쨌든 귀국을 결심하고 2008년 드래프트에 신청하면서 하승진의 미국 생활은 막을 내렸다.

2.3. 전주 KCC 시절

하승진의 드래프트 참가 선언으로 그렇지 않아도 인재들이 많다고 소문난 2008년 드래프트는 더욱 치열해졌다. 행운의 1순위를 가져간 팀은 바로 전주 KCC 이지스. 허재 감독의 복코가 또 한 번 빛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정작 시즌 초반에는 KCC는 엄청 해멨다. 하승진도 공백 때문에 기량 발휘가 잘 되지 않았고, 서장훈과 롤이 겹치면서 출전 시간 문제가 생긴 것. [10] 이 때문에 하승진은 시즌 중반에 허재 감독에게 항명으로 비춰지는 행동을 하며 큰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다행히 이는 허재 감독이 잘 참고, 하승진을 달래면서 일단 수습. 하승진 자신도 그 뒤로는 수그러드는 행동을 보이면서 역시 자제했다. 그리고 서장훈을 트레이드시키면서 하승진의 입지를 살려주는 방향으로 나갔다.

그 뒤로는 KCC가 연승을 달리면서 항명 파동은 잊혀졌고, 정규시즌 3위로 시즌을 마친 KCC는 업셋을 거듭하며 2008-09 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성공했다. 하승진의 가세는 무엇보다 KBL에서 별다른 적수를 찾기 힘든 우월한 신체조건 때문에 KCC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했고, 이를 반증하듯이 KCC는 하승진 합류 이후, 3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기록했다. 다만 2009-10 시즌에는 부상으로 인해 챔프전에서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모비스에게 패하는 것을 지켜봐야 했다.[11]

사실 하승진은 정규 시즌에 부상이 잦은 편이라서[12] 정규 시즌에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선배인 서장훈김주성이 정규 시즌 MVP를 2회씩 수상한 것과 비교해 볼 때, 특히 이 두 선수가 2년 만에 첫 MVP를 수상한 것과 비춰볼 때는 분명 정규 시즌 활약은 기대만큼은 아닌 모습. 하지만,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르고 나왔을 때는 분명 그 키와 높이를 감당할 KBL 선수들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에서 용병과 1:1로 매치업이 가능한 몇 안되는 선수이며, KCC가 플레이오프에서 항상 괴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1등 공신이다.
덕분에 KCC는 2010-11 시즌에 다시금 우승을 차지했고, 이 때 챔프전 MVP는 하승진의 몫이었다.

KBL에서의 본인의 커리어 하이는 2011-12 시즌에 안양 KGC인삼공사를 상대로 기록한 33득점 19리바운드.

그러나 그는 2010년 아시안 게임에 참가했으나 은메달에 그쳐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다. 2011-12 시즌을 마치고 2012년 7월경 결혼한 후 같은 해 7월 26일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였다. 개인 훈련을 안 하다가 리셋되는 게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와는 달리, 결혼한 후 느낀 게 있었는지 복무하면서 훈련은 물론 체중 감량에도 적극적으로 임하였다. 허재 감독도 기대하는 듯하다. 2014년 7월 25일에 소집 해제 되었다. 공백기 때문에 팬들은 기량에 대해 우려했지만 개막전에서 17득점 13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골밑에서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이날은 3점슛도 꽂아넣어 팬들을 충격으로 몰고갔다. 다만 팀은 졸전끝에 패배했다

그러나 그 후 점점 떨어지는 모습을 보였는데 3초룰 폐지가 하승진에게 오히려 독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상대의 더블팀에 맥을 못추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고 전보다 체중을 감량해서 그런지 골밑에서 압도하는 모습도 사라졌다. 그리고 수비에서는 여전히 발이 느려 상대의 중거리슛에 맥없이 당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득보단 실이 더 많은 상황.. 설상가상으로 부상까지 당했다. 2015년 1월1일 새해에 부상에서 복귀를 했으나 리오 라이온스의 팔꿈치에 맞아 코뼈 골절이 의심되는 부상을 입었다. 그렇게 피를 흘리며 퇴장하는데 한 관중이 모욕하자 흥분하여 달려들었지만 주위 경호원들이 말렸다.[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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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 SK와의 경기에서 동료 김지후한테 머리에 공을 맞는 굴욕을 당했다(...).

3. 스타일 - 유형균형

부실공사로 지은 전봇대형 센터
우월한 신체 조건을 앞세워서 골밑을 장악하고 있다. 다만 스킬 면에서는 다소 투박하는 평가. 기름손이라 불리는 볼 핸드링의 미숙이라든가, 공격 시 위치 선정 면에서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 대표적인 모습. 이 때문에 우월한 신체조건을 바탕으로도 하고도, 국내 무대에서 기대만큼의 활약을 보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잘 하는 편이지만, 솔직히 하승진의 신체 조건이라면 그야말로 KBL을 정ㅋ벅하는 모습을 기대한 것이 사실인데,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것이 중론.

큰 키가 따라오는 필연적인 한계인 기동력의 문제가 특히 그렇다. 이는 수비에서 드러나는데 도움 수비 이후에 이를 커버해주는 기동력이 현저하게 낮아서 수비에서 문제가 나타난다. 특히 상대가 발 빠른 센터를 앞세워 가드와의 투맨게임으로 일관할 경우 속수무책으로 털리는 경우가 많다. 이는 국제 대회에서 높은 키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스피드에 휘둘리는 결과를 낳아 수비력 저하로 이어지는 경우로 나타나고 있다. 허나 공격에서는 몰라도 수비에서는 상당한 위력을 가지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자유투도 좋지 않은 편이다. 50% 안팎의 성공율을 가지고 있다. 연장 접전에서 자유투 1구를 성공시키자, 그야말로 절규에 가까운 괴성을 지른 것은 유명한 에피소드.

하지만 이런 나열한 단점들은 동시에 하승진에게 거는 기대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농구가 역대 가져보지 못한 거물급 센터로서의 자질을 가진 선수이기 때문에 더 잘하고, 더 뛰어난 모습을 보이기를 희망하는 것. 분명 몸을 제대로 만들고, 완성된 하승진은 KBL에서 따라올 적수가 없는 위력적인 모습을 선보이고 있다. 다만, 그게 잦은 부상과 리셋의 반복으로 인해 기대와 실망을 자꾸 되풀이한다는 것이 문제일 뿐. 분명 하승진의 스킬은 투박하기는 해도 우월한 신체 조건을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고 있고, 그럭저럭 센스도 괜찮은 편이다.

또한, 오히려 하승진은 그 키 때문에 과소평가되고 있는 선수이다. 하승진을 무시하는 대부분의 안티들의 의견은 '키빨'인데, 애시당초 농구는 피지컬이 어느 스포츠보다 요구되는 운동이며, 또한 국내선수는 국내선수끼리, 외국인선수는 외국인선수끼리 매치업 되는 하승진은 KBL에서 거의 국내 선수 중 유일하다시피 용병과 매치업이 되는 선수이다. 울보 변덕규에게 유명호감독이 해 준 말이 무엇인지 떠올려보자. 한마디로, 키빨키빨하며 무시하지만 다른 팀들이 외국인 선수에게 하승진을 마크하게 한다는 사실 자체가 절대 국내 선수가 막을 수 있는 선수는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것. 애시당초 용병의 키 제한이 폐지된 것이 하승진이 국내로 돌아왔기 때문이며, 또한 11-12시즌 국내 선수 중 수위급에 위치하는 오세근과의 매치업에서 33점 19리바운드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골밑을 폭격, 완승을 거두었다. 이래저래 말은 많지만, 그 피지컬 만으로도 현재 국내 최고의 빅맨임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팀원들의 사기를 높히고, KBL에 부족한 팬들과의 스킨십에도 적극적인 선수이기 때문에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선수인 것은 분명하다. 인터뷰 스킬도 좋고, 유쾌하고 상대를 도발하는 센스, 심리전이나 관중들의 열광을 이끌어내는 재주는 분명 KBL에서 여태껏 볼 수 없던 모습. 때문에 스타 기근에 시달리는 KBL에서 대단히 유니크한 선수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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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워낙 덩치라 크고 부상이 잦은 선수라 몸무게 변화가 굉장히 심하다. 몸상태가 좋을때는 130kg에서 150까지도 나갔었다고... 공익근무를 마치고 시즌 복귀를 준비중인 2014년 기준으로는 135~140정도라고 한다. 이게 어느정도냐고?? 이대호보다 많이 나간다.
  • [2] 역사상은 아니다. 기록상으로 대한민국의 최장신은 달성공원 키다리 아저씨로 유명했던 류기성(1926-1999)으로 하승진보다 4cm 큰 225cm로 알려져 있으며 그 외에도 대한민국 역사를 둘러보면 하승진보다 큰 것으로 알려진 장신들이 2-3건 언급되기했다. 다만, 하승진보다 키가 큰 것으로 알려진 남자들은 1980년대 이전 흑백인쇄를 했을 때의 신문기사로만 어렴풋이 나와있을 뿐 정확한 신장 측정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확실하지 않았으며, 이들이 나이가 들면서 2014년 현재는 거인병(前 여자 농구선수 김영희가 앓고 있는 병)등의 각종 질환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대한민국 역사상이 아닌, 현재 생존해 있는 인물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하승진이 최장신일 경우가 확실시된다.
  • [3] 사실 자그만 신문기사 하나로 키를 논한다면 과거 20세기초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세계의 거인들을 상대로 돈벌이하거나 이슈화시키던 서커스단이나 신문사에서 너도나도 거짓과 과장으로 거인들을 소개하기도해서 무리가있다. 실제 3m가 넘는다는 거인을 보도한것만 5건이 넘고 아프리카나 남아시아 중동의 거인들의 260cm 이상되는 체격으로 소개되는 일들이 많았는데 대부분이 신뢰가 있지는 못하고 부풀려졌다. 이런 이유로 한국에서 공식적으로 최장신은 류기성이며 그다음이 하승진이다.
  • [4] 북한으로 범위를 넓힌다면 이미 무려 235cm의 리명훈이 있다.
  • [5] 참고로 북한에는 하승진보다 14cm 더 큰 리명훈(1969년생)이라는 선수가 있었다. 이 선수도 당연히 NBA에서 눈독을 들였으나 NBA 진출에는 실패. 1990년대 후반에 농구인들 사이에서 "어서 통일이 되어야 서장훈을 PF로, 리명훈을 센터로 쓸 텐데"라는 말이 돌기도 했다. 1999년 통일농구대회에서는 점프도 제대로 안 하고 덩크를 하고, 180cm의 조성원을 루저로 만들어 버릴 정도로 위엄쩌는 키가 부각된 사진들이 눈길을 끌었다.
  • [6] 하승진 + 샤킬 오닐.
  • [7] 루키 시즌 기준으로 숀 브래들리(228) 야오밍(226)파벨 포드콜진(226) 다음으로 컸다. 하승진과 비슷한 신장은 221로 표기된 지드루나스 일거스커스가 있었지만 하승진은 맨발키기 때문에 (NBA는 보통 농구화를 신고 잰다) 실제론 하승진이 약간 더 컸다.
  • [8] 사실 냉정히 말하면 하승진은 실력에 비해서는 기회를 꽤 얻은 편이다. 당시 포틀랜드는 팀성적도 형편없었고 쓸만한 센터는 조엘 프리저빌라 뿐이었다. 백업센터로 블럭의 달인 테오 래틀래프가 있긴 했지만 그는 부상에 허구헌날 시달리는 터라...결국 06시즌엔 직전 시즌에 경기당 1.4점 넣은 하승진이 4경기동안 주전으로 나오기도 했다. 그럼에도 최종 성적은 1년간 0.2점 올라 평균 1.6점(...)리바운드는 0.8개에서 1.6개로 급등(?)하긴 했다. 가장 큰 문제는 시즌이 끝나기만 하면 살이 찌는 등 몸관리를 못해 다음 시즌 트레이닝 캠프에서 매 시즌 부상을 입은 것. 포틀랜드가 아무 성과도 못내던 하승진을 2년이나 지켜본 건 맨발 221cm라는 어마어마한 피지컬 때문이었지만 결국 포기한 것은 몸관리가 전혀 안되는데 실망을 했기 때문이다. 참고로 고질적 몸관리 실패는 KBL에서도 이어졌다. 본인은 이게 본인의 거대한 체격 때문이라고 항변한 바 있으나, 서른이 된 최근이라면 몰라도 20대 초반부터 몸무게 관리조차 안 됐다는게...사실 하승진이랑 비슷하거나 더 부상이 심했던 아비다스 사보니스나 빌 월튼도 살을 못 빼서 다친 적은 없고, 만30세에 시즌 아웃됐다가 복귀한 후 시즌의 반의반도 소화못하고 다시 다쳐 은퇴한 야오밍도 몸무게 때문에 애를 먹은 적은 없다.
  • [9] 사실 숀 브래들리(229cm), 게오르그 뮤레산(231cm) 등 백인 빅맨들과 매뉴트 볼(231cm), 랄프샘슨(225cm)같은 흑인 빅맨들도 230가까이되면 오히려 피지컬과 기량면에서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 그나마 눈에 띄는 활약을 한 선수가 동양인인 야오밍(226cm)이라는 것이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 윌트 체임벌린부터 드와이트 하워드 샤킬 오닐, 카림 압둘자바, 디켐베 무톰보까지 대부분의 전설급 센터들의 키는 213~220 사이. 참고
  • [10] 사실 두 빅맨의 더블 포스트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두 선수는 kbl에서 가장 크고 느린 선수들인게 빠른 공수전환이 필수인 농구에서 두 선수를 동시에 기용하면 에로사항이 꽃핀다. 예를 들어 수비 리바운드 후 속공 및 얼리오펜스(상대수비진이 짜여지기 전에 공격하는것)에 참여가 힘든 선수가 둘이나 있게 되는 것. 다만 하프코트 오펜스에서는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는데 두 선수의 힘과 체격 때문에 왠만한 선수들은 매치업이 불가능한데다가 (특히 하승진은 외국인선수도 1대1로 막기 버겁다) 중거리슛 위주의 서장훈과 골밑 위주의 하승진은 공격범위도 겹치지 않기 때문. 그러나 수비에서는 여기서 얻은 어드밴티지를 까먹고도 남을 정도로 문제가 큰데 두 선수모두 느려서 수비범위가 좁고 골밑으로 국한되어서 외곽은 비는데 덩치 두명이 골밑에서 부대끼는 최악의 상황... 결국 둘이 로테이션으로 나와야하는데 국내빅맨중 세손가락안에 드는 선수들을 이렇게 기용하는간 비효율의 끝인지라 둘다 불만이 폭발할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농구에서 더블포스트를 할때는 한명이 느리면 다른 한명은 기동력이 있는 선수로 하는게 보통이다. 예전에 삼성이 했건 서장훈-오예대지의 경우 오예대지가 기동력이 어느정도 있어서 가능했던것.
  • [11] 다만 이 시즌에서 하승진은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거의 매 경기 20득점 10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수준급 용병인 레더와 아이반 존슨까지 가세하여 이 때의 KCC는 이길 팀이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그 놈의 부상만 아니었어도.
  • [12] 다른 선수들과 비교했을 때 사실 그렇게 잦은 편은 아니다. 다만 워낙 신체조건이 남들과는 달라 한 번 다치면 회복 속도가 늦은 편이고, 다시 코트에 복귀했을 때는 기량이 리셋되어 나온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인식되는 것. 하승진 본인도 이에 대해 속상하다는 심경의 글을 남긴 적이 있다.
  • [13] 관련 기사에 따르면 하승진은 이후 라커룸에서 울었다고. 관람객이 했던 말은 욕은 아니었다고 관람객 스스로 밝혔으나 아프지도 않은데 엄살부린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또한 바로 사과하려고 했지만 하승진 관계자들이 하승진 선수가 심경적으로 진정되지 않은 점 때문에 만류했다고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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