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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후돈

last modified: 2015-07-28 11:48:14 by Contributors

夏侯惇, ? ~ 220
'하우돈'이 아니다

중국 후한말에서 삼국시대의 인물이자 삼국지의 등장인물. 조조의 최심복이자 사촌.[1] 는 원양(元讓)이다.

Contents

1. 개요
2. 공적
2.1. 맹장 하후돈은 허구
2.2. 애꾸눈 - '맹장 하후돈' 이미지의 1등 공신.
2.3. 알고보면 인자한 목민관 하후돈
3. 죽음
4. 평가
4.1. 정사 삼국지
4.2. 긍정적 평가
4.3. 부정적 평가
5. 후손
6. 대중문화 속의 하후돈
7. 관련 항목


1. 개요

패국 초현(譙, 지금의 안휘성 부근) 사람으로 조조를 처음부터 수행했다. 조조가 연주 자사를 맡을 때부터 동군 태수로서 봉직한 조조 세력의 중심 인물이다.

진류(陳留), 제음(濟陰) 태수를 맡았고 군직도 두루 거쳤으며, 만년에는 대장군에까지 올랐다. 조조의 최측근으로서 권력의 정점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을 저지르지 않았으며, 항상 베풀기를 좋아해 수중에 남는 재물이 있으면 다른 이에게 나눠줬으며 당시 흔했던 부정축재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군중에서도 스승을 모시고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람이 좋아서 조조군 내에선 부하들에게 가장 인기가 많았다. 능력은 나무랄데 없었지만 깐깐하고 엄격했던 장료나 전공 욕심이 강해 부하들을 험하게 부리곤 했던 서황의 수하들은 내심 하후돈 밑에 가기를 원했다고 한다.

명실상부 조조군의 2인자로 부하들을 인자하게 다스리고 정복한 임지를 진수하며 효과적인 군정을 베풀었기에 조조의 신임은 모든 장수 중에서 으뜸이었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조조가 위나라를 개국한 후 신하들에게 위왕으로서 관직을 수여할 때, 자기 밑이 아닌 친구처럼 대하려고 (혹은 다른 신료와 아예 서열 자체를 다르게 해주려고) 위가 아닌 후한 조정의 관직을 내리려 했던 것이다. 한과 위는 형식상 황제국과 제후국 관계였기에 동급이라도 당연히 한의 관직이 위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후돈 본인이 끝까지 고집을 부려 위의 관직을 하사해야 했다. 이래저래 인격자.[2]

알고보면 삼국지연의에서는 끝판왕, 여포를 안드로메다로 보낼정도의 맹장이다. 한쪽 눈을 잃은 상태에서 안량문추를 베어죽이고 5관6참 하는 장면 마지막에 관우와 승부를 겨뤄 비긴다. 이정도 겨루는 상대라면 장비와 함께덤벼도 못이긴 여포서황, 방덕 등이 있겠지만 자세한건 뒤에서 설명. 한쪽눈으로 겨뤘다면 차라리 적토마를 하후돈에게 주는게 맞지 않았을까.

조조가 죽고 조비가 즉위하자 대장군에 임명되었지만,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후돈이 조조와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낸 관계로 게임이나 만화 등의 여러 매체에서는 조조의 절친한 친구로 나오며, 주로 조조를 아명인 '아만'이나 자인 '맹덕'으로 격의 없이 부르는 것으로 묘사되는 편이다.

2. 공적

2.1. 맹장 하후돈은 허구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군에서도 손꼽히는 용장의 이미지로 나타나서, 늘 조조가 싸울 때는 최선봉에 나서며 오관참장 편에서는 천하의 관우와 대등하게 맞짱을 뜨는 모습도 보여준다. 결국 장료가 정리. 그 밖에 조조가 동탁에게 벗어날 때 서영을 베어 죽이며, 원술의 부장 교유를 찔러 죽인다. 서주에서 여포군의 맹장 고순과도 겨루다가 40합 만에 우세를 점했다가, 고순의 부장 조성(曹性)이 기습적으로 쏜 화살에 맞아 한쪽 눈을 잃는데 이때

'이 눈은 아버지의 정(精)과 어머니의 피로 이루어진 것인데 어찌 함부로 다룰 수 있겠느냐'

라는 말과 함께 화살 꽂힌 눈을 화살째 뽑아서 씹어 삼키고는 조성을 베어 죽인다. # 그 무서운 장면!

그러나 이 모든것은 연의의 허구로 정사에선 눈에 띄는 군사적인 업적이 거의 없다. 조조가 서주를 공격할때 연주에 남아 복양을 지키다가 여포에게 대패하여 복양을 빼았겼다. 이 때, 여포의 계략에 넘어가 포로가 되었다가 부장이었던 한호의 기지로 간신히 풀려났다. 이때 순욱, 정욱의 활약이 없었다면 조조는 연주의 여포와 서주도겸에게 둘러싸여 오도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을 것이다. 다만 조조가 서주를 치려는 것 자체가 무리수[3]였고 여포의 뒤에는 연주내에 두터운 지지기반을 가진 장막이 있었기 때문에 하후돈이 아니라 다른 장수였더라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여포를 토벌할때는 유비를 도우러 갔다가 고순에게 패배했다. 조조가 형주로 눈을 돌릴 무렵에는 이전우금을 부장으로 딸려주며 신야의 유비를 공격하게 했지만 매복이 의심된다는 이전의 충고를 무시하고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복병에 걸려 패했다.

정사 삼국지에서는 기전체의 특성상 본인 전기에서는 어지간하면 안 좋은 이야기는 안 써놓고, 공적과 미담은 어떻게든 붙이려고 하는데 하후돈은 정말 군공이 너무 없기 때문에 눈물이 나온다. 그가 맡은 직책과 비중에 비해 지나치리만큼 공적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너무 두드러진다.

2.2. 애꾸눈 - '맹장 하후돈' 이미지의 1등 공신.

실제로도 애꾸눈이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연의의 기록보다 훨씬 이전으로 복양에서 여포와 싸울 때 쯤 날아오는 화살에 맞아 한쪽 눈을 잃은 것 같다.[4]

하지만 실제로 화살에 맞아서 애꾸눈이 되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의 시신경은 뇌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물컹한 안구를 화살이 못 뚫을 리 없으니 이 부분에 화살을 정면으로 맞으면 즉사다.

정말 화살에 맞아서 애꾸가 된 케이스라면 날아온 화살이 방패등의 장애물에 맞고 튕겨져서 속도가 떨어진 화살에 맞았을 가능성도 있다. 힘이 없는 화살이라 눈 근처나 눈꺼풀, 혹은 안구에 가볍게 상처를 입었는데 감염 등의 이유로 시력을 상실했을 가능성이 있다.

애꾸눈이 된 뒤로 병졸들에게 맹하후(盲夏候)[5]라는 별명이 붙었는데 조조군에 하후씨인 장군이 두 명(하후연)이 있었기 때문에 두 명을 비교해서 "장님 하후"라고 한 것이다. 이 별명 때문에 본인은 애꿏은 거울을 부숴버릴 정도로 싫어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그래도 부하들을 죽이거나 처벌했다는 기록은 없고 거울에만 화풀이하고 만걸 보면 역시 사람은 좋았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하는 사람에게 그 장애를 놀리는 별명을 붙인건데, 현대라도 충분히 고소감이고 그 시대라면 상관을 모욕한 죄로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은데 자기 혼자 화풀이하고 넘어갔다는건 대단히 너그러운 행동이다.

하후돈이 연의에서 용장, 맹장으로 묘사되는 것도 이 외눈 탓이 커보인다. 악의 화신인 조조의 오른팔로서 외눈의 악당이라는 기믹이 주어진 것이다. 이는 사람이 어수룩한 허저나 일찍 죽은 전위, 초반 듣보잡 역인 조인, 관우와 친분이 있었던 장료서황, 위나라 장수들 중에 짬밥이 제일 적었던, 그러니까 조조군 짬밥을 가장 조금 먹은 장합[6] 등보다 악역을 맡기에 이상적인 요소이다. 게다가 조조가 거병한 초기에는 선두에 서는 역을 맡은 적도 있으니, 용장 캐릭터를 만들기에는 별 무리가 없었을 것이다. 독안룡이라는 별명처럼 중세 중국에서도 애꾸눈은 뭔가 쎈 악당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극의 재미를 위하여 하후돈에게 맹장의 이미지를 입힌 것이다.[7]

하지만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무장으로서 애꾸눈은 큰 약점이다. 원근감을 잃어버리는 데다가 무장은 말을 타고 다녀야 하는데 애꾸일 경우 눈을 잃은 쪽 방향으로 방향전환이 심각하게 어렵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사에서 애꾸눈이 된 하후돈은 무력을 크게 상실하게 되었을 것이다.

물론 장군이 꼭 전열의 선두에 직접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이 시대의 전쟁이라는 것이 장군에게 직접적으로 위해가 가해져서 장수가 창칼을 휘둘러야 하는 사태가 벌어지지 말라는 법은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리스크 때문에 결국 조조군 전선의 후방 총책을 맡는 것으로 보직을 변경하게 된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전설의 아가리 파이터 예형이 조조의 부하들을 놀릴 때 하후돈을 '완체장군'이라고 칭했는데 이것 때문에 예형이 하후돈만은 높게 봤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그 '완체'란 말 자체가 '사지멀쩡한'이란 의미로 말한 것이라 오히려 애꾸인 하후돈도 놀리기 위해서 비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2.3. 알고보면 인자한 목민관 하후돈

하후돈의 실제 군재는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답이 안 나온다. 조조도 장군으로서 실무를 맡기는건 자제하기 시작해서 복양 전투 무렵부터 본격적인 목민관의 길을 걷는다. 여포와의 싸움에서 군사가 부족해지자 모병에 힘쓰고, 고향에 큰 가뭄이 들었을 때 앞장서서 흙을 날라 저수지를 만드는 등 인자하고 솔선수범하는 목민관으로서의 자세를 보여주었다. 다스리던 영지에서 홍수가 났을때는 몸소 흙을 짊어지고 둑을 쌓았다는 일화도 있다.

이쪽 기록이 주목을 받게 되면서 DC 삼국지 갤러리에서 시작된 행보관이란 별명이 넷상에 널리 퍼지게 된다. 병사들에게 '어머니처럼 상냥하게 대해주는' 이미지나 여러 모습으로 보아할 때 사실은 행보관이 아니었을까 하는 농담이 나온 것.

한중에서 장로와 싸울 적에 길을 잃고 적진으로 가 버렸는데 당황하지 않고 적을 물리쳤다는 걸 보면 확실한 짬밥은 있던 모양이다.[8] 창천항로삼국전투기가 이 에피소드를 넣었다.

3. 죽음

삼국지연의에서는 조비의 부름을 받아 입궐하다가 하늘에 떠 있는 복황후의 유령을 보고 기절해 그 뒤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고 하지만 어디까지나 창작일 뿐이고, 실제로는 노환으로 죽었다. 사실 이 시대 기준으로 60살이면 상당한 고령자에 해당된다. 지금이야 의학이 고도로 발달했기 때문에 누구나 왠만하면 80살까지는 다 살기 때문에 이게 나이가 많은 건지 체감하기 힘들지만 적어도 그 시대에서는 고령인 나이임이 틀림없다.

그 밖에도 연의에서 파생된 일부 작품에서는 번성에서 촉군을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촉군에게 발리고 죽는 듣보잡인 하후존의 역할을 떠맡고 그 장수 대신에 하후돈이 번성에서 죽는 굴욕을 겪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로 한결작의 곱빼기 만화 삼국지.[9]

화려한 일세를 풍미하고 안락한 노후를 보내다 천수를 다했다는 점 때문인지 삼국전투기에서는 대부비토 콜레오네의 죽음 장면으로 패러디했다.

4. 평가

하후돈은 동료들보다 떨어지는 군사적 업적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중요한 직책을 맡았고, 야전에서 맹위를 떨친 쟁쟁한 장군들보다도 훨씬 고위층인 대장군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임에도 이에 대한 별다른 설명이 없다. 이때문에 현대의 평가는 극과 극이다.

4.1. 정사 삼국지

정사 삼국지에서도 상당히 높은 평을 받는다. 무장으로서는 크게 성공하지 못한 인물이었지만 진수가 중시했던 인품과 학식 부문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무장에게는 평가가 짠 진수로서는 이례적인 케이스. 그의 인품을 보여주는 일화로서, 허창에서 하후돈의 무덤이 발굴되었을 때 무덤 속의 그의 부장품이라고는 검 한자루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의 죽기 전 직책이 한나라의 최고직인 대장군이었음을 고려하면 실로 청렴한 무인이었음을 보여준다.

4.2. 긍정적 평가

그가 임지를 다스리는 능력이나 보급 능력 등의 문제로 그 자리에 오른 것이라 추정되는 의견도 있지만 이에 대해서도 공적에 대한 특별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과연 그 정도로 유능한 인물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알길이 없다. 그의 인품에 대한 긍정적 평가도 여럿 있기에 그가 조조군 내부에서 정치적인 힘이나 인망 등을 가졌으리라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다.

당시 조조의 입장에서는 친족 우대는 반드시 나쁜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 아무래도 믿을 만한 친족들이 곳곳에서 활약해주면 조조를 중심으로 하는 '군벌 세력'은 조직력이 튼튼해지기 때문이다 조조 세력은 근왕, 협천자를 내세우기는 했으나 본질적으로 군벌 세력이며, 특히 세력내에 '조조의 막부'와 '헌제의 조정'이 공존하면서도 서로를 견제하는 모순적인 정치 상황에서 조조가 권세를 유지하려면 신뢰할 수 있는 친인척 인사들이 군부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어차피 조조 자신이 당대 최고의 군략가로서 중요한 원정에는 거의 항상 친정했고 일선에서 활약할 뛰어난 장군들도 많이 있었기에 하후돈의 군사적 능력 부족은 큰 결격 사항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즉, 조조가 원했던 대장군 감은 단순히 군사적으로만 능력있는 인재가 아니라,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면서 아래사람들을 적당히 아우를수 있는 충성과 인망을 겸비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래야만 헌제에 충성하는 자들이 군부에 파고들거나 군부의 장성이 헌제에게 직접 포섭되는 것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조조의 입장에서 최악의 상황은 자신과 거리가 있는 유능하고 인망 있는 장군이 나타나고, 헌제가 그를 포섭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자신을 제거해버리는 것이다.(즉, 여포동탁을 제거한 것과 같은 사례) 하후돈은 장군으로서의 능력은 빵점이었지만 이 부분은 더할나위 없었고 무장임에도 불구하고 문신들에게도 평가가 좋았으니 더할 나위가 없었다.

이러한 친족을 통한 군부장악 원칙은 아들 조비에게 이어져서 조휴, 조진이 대사마와 대장군이 도어 군부 중추에 자리잡는다. 물론 이들은 하후돈과 달리 능력자였지만. 조예사마의가 유능하다고 적극 푸쉬하고 그 일족까지 중용했는데 그 대가는 자기 무덤 흙 마르기도 전에 터진 쿠데타였다. 다만 조씨, 하후씨 일족의 인재풀이 고갈되었는지 조진이 죽은 뒤 당대에 사마의와 필적할 만한 인재가 나타나지 않았으니, 연이어 나타나는 반란과 외침 등 국가 위기 상황에서 사마의가 군공을 세우면서 세력을 확대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이는 결국 소수의 친족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친족 인사 등용 정책, 그나마도 황제와 가까운 인물은 적극적으로 배제했던 조씨 황실의 한계점이라고 볼 수 있다.


4.3. 부정적 평가

인격은 나쁘지 않지만 능력은 무능하기 짝이 없는 낙하산 똥별. 빌헬름 카이텔이나 보로실로프급으로 평가하는 견해도 있다.

아예 능력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장군 같은 거창한 지위를 얻기에는 군사적 능력이 심히 함량미달인 인물인데 단지 조조와 친분이 깊었기 때문에 조조의 군부 장악 정책의 일환으로 대장군 자리에 박아넣었다는 것이다. 설마 무장중에 청백리에 충성심 있는 장군이 하후돈만 있진 않았을거고 대장군은 칼질 좀 하고 흙짐 짊어진다고 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하후돈의 군공이 범장 수준이라도 되었다면 어느정도 납득이 가능했겠지만, 하후돈은 조조가 떠먹여주는 전공도 못 받아먹고 체해버렸다. 어느 정도 체면 치례할 생각이었는지 몇 차례 군공을 쌓으라고 전장에 내보내기도 하는데, 하후돈은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거의 다 실패했다. 역시 친족 우대라는 지적을 받는 조홍은 목숨을 걸고 조조를 구해낸 적이 있고 한중전에서처럼 유능한 부하 장수들의 보좌가 있으면 아군 발목은 안잡은 반면 하후돈은 우금, 이전같은 유능한 장군들을 딸려줘도 패했다. 하후돈의 사례를 보고 조조의 인재기용이 능력증시라는 말에 회의를 품는 사람도 있다.

5. 후손

아들로 하후무와 그 외 2명이 있는데 다들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을 했다고 봐도 무방한 놈들이다. 하후연의 자식들이 나름대로 능력있었던 것과 매우 대비되는데 아마 부모의 나쁜 점만 골라서 닮았나 보다.

삼국지연의에는 진기(원술의 부하와 동명이인)라는 가공인물이 쿨가이 관우에게 희생된다. 진기는 여기서 하후돈의 부장으로 하후돈의 조카가 아니다. 정사에서 유비에게 토벌된 채양이라는 조조의 장수의 조카로 나온다.

6. 대중문화 속의 하후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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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다만 유전자 감식을 통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조조와 하후씨가 친척이라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 [2] 시대가 시대다 보니 당시 무장들은 능력과는 별개로 인격면에선 다소 거칠고 결함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위의 하후돈이나 촉의 조운, 오의 한당은 상당히 드문 케이스.
  • [3] 결과적으로는 좋았으나 기반이 부실한 상태에서 무리해서 적을 두들기는 격이였다. 조조도겸을 잡는게 무리임을 깨닫고 화친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 [4] 의외로 SD건담 삼국전에서 이 내용을 차용했다.
  • [5] 애꾸눈(=장님) 하후.
  • [6] 전술한 장수들이 관도대전 당시에도 조조의 부하였던 것과는 달리 관도대전 당시 장합은 원소의 부하였다.
  • [7] 현대물은 말할 것도 없다. 사가트하이데른을 보면 알 수 있다. 둘 다 애꾸눈인데 죄다 키가 크고 능력치가 좋다. 특히 사가트는 보스급이다. 특히 신대륙을 개척하는 바다 관련된 서양의 창작물에서 해적선장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애꾸눈이다. 애꾸눈 캐릭터에는 격투가, 군인 등 무(武)쪽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다. 사고율을 감안하면 의외로 당연한 건지도.
  • [8] 위서 장로전 주석 위명신주재동소표. 안습하게도 이 기록은 정작 정사 삼국지의 하후돈전에는 실려있지 않아서 다른 열전들과 자치통감을 참조하지 않으면 찾기 어렵기 때문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 [9] 특이한 건 이 만화에서 하후돈은 애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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