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한교원

last modified: 2015-03-31 14:43:42 by Contributors


전북현대 모터스 No.7
한교원 (韓敎元 / Han Kyo-won)
생년월일 1990년 6월 15일
국적 대한민국
포지션 윙어, 최전방 공격수
신체조건 181cm / 72kg
프로입단 2011년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팀 인천 유나이티드 (2011~2013)
전북 현대 모터스 (2014~ )
국가대표 9경기 1골

2014 K리그 클래식 베스트 일레븐
FW
이동국
FW
산토스
MF
임상협
MF
고명진
MF
이승기
MF
한교원
DF
홍철
DF
윌킨슨
DF
김주영
DF
차두리
GK
권순태

Contents

1. 개요
2. 클럽
2.1. 인천 시절
2.2. 전북 시절
3. 국가대표
4. 트리비아


1. 개요

K리그 클래식 전북 현대 모터스 소속의 축구 선수. 현역 K리거 중 무명 신화의 표본이라 부를 만하다.

2. 클럽

2.1. 인천 시절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던 선수는 아니었다. 지방대 중에는 축구명문 축에 드는 조선대학교의 스카웃망에 잡히기는 했으나, 조선대에서도 우선순위로 선발한 선수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조선대 축구부 쿼터가 꽉 차는 바람에 조선대 입학이 무산되었고 조선이공대학으로 입학하게 된다.[1] 갓 창단한 조선이공대 축구부에서 한교원은 메시놀이를 시작한다. 2010년 U리그에서 한교원이 찍은 스탯은 20경기 출전 18골(...) 전력이 떨어지는 팀에서 군계일학의 모습을 보여주며 조금씩 이름을 날리게 되고 그 결과 2011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인천 유나이티드에게 지명된다. 조선이공대가 배출한 최초의, 그리고 아직까진 최후의 K리거이다.

인천 입단 후 한교원은 성실한 훈련태도로 허정무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었고 역시 허카우터가 찍은 선수답게데뷔시즌 초반부터 꾸준히 출전기회를 잡는 행운을 얻는다.[2] 경기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출전시간을 점점 늘려나가더니 인천 공격진에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부상한다. 허정무 감독이 사임하고 김봉길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잡은 후에도 신임은 여전했다. 한교원의 2011 시즌 스탯은 29경기 3골 2도움.[3][4] 사실 11시즌에는 공격수로 뛴 경기보다 다른 포지션에서 더 많이 뛰었다.. 이를테면 센터백이나 윙백, 근데 윙백자리에서 원톱때보다 더 잘했다... 흠좀무

2012 시즌에는 잠시 부상으로 주전에서 밀려나며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수렁에 빠지나 싶었지만 그런 거 없었다. 금세 폼을 끌어올리며 데뷔시즌을 능가하는 28경기 6골 2도움의 스탯을 작성. 특히 홈에서 열린 서울과의 빗속 혈투에서 멀티골을 작렬한 경기가 절정이었다. 상대 수비수를 농락하고팀선배 접기현에 대한 오마주? 골키퍼가 손쓸 수 없는 구석으로 슈팅을 꽂아넣는 두번째 골 장면이 백미.

홍명보 감독도 한교원을 주목해서 올림픽 대표팀 소집훈련에 호출한 바 있으나 공식경기엔 나서지 못했다.

데뷔시즌인 11시즌에는 주로 최전방 골키퍼 빼고 다..에서 뛰었지만 12시즌부터 윙어로 포지션을 변경, 이후 특유의 근성[5]넘치는 플레이와 빠른 스피드, 의외성 넘치는 플레이로 주전자리를 꿰찼다.

그리고 이어지는 13시즌 현재는 다소가 아니라 많이투박해 보이지만, 의외로 수비수를 제껴내는 화려한 우당탕탕드리블과 중앙 침투로 인천의 핵심으로 자리잡았다.

2.2. 전북 시절

2014년 1월 5일 K리그 최고 윙덕후 최강희 감독이 이끄는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였다.

3월 8일 부산 아이파크와의 시즌 개막전에서 그림같은 시저스 킥으로 팀의 선제골이자 결승골 및 전북 소속으로의 데뷔골을 기록하였다. 그냥 시저스 킥도 아니고, 등 뒤에서 넘어오는 공을 등진 자세임에도 다리에 정확히 맞춰 넣은 초고난이도의 골.

10월 18일, 인천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또 한 번 고난이도의 골을 넣었다. 오른쪽에서 낮게 다가온 공을 오른발로 살짝 트래핑하고는 그대로 오버헤드킥으로 골을 넣었다. 이는 한 달 전, EPL에서 엄청난 슈퍼 골을 넣은 그라지아노 펠레의 골과 비슷하게 들어갔다.

특유의 근성넘치는 돌파와, 돌파 이후 이어지는 위협적인 크로스가 전북의 팀색깔과 어울려 시너지 효과를 보고있다. 또한 공격수로서 공격포인트도 착실히 올리며 닥공축구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는 중. 20라운드 성남과의 대결에서는 1골 1어시로 팀의 3-0 승리를 이끌어 부상으로 결장한 이동국의 빈자리를 훌륭히 메꿨다. 11월 9일자, 리그 10골 3어시 기록 중. 본래 이동국의 백업 선수인 카이오보다 더 많이 넣었다. 물론 한교원도 최전방에서 뛸 수 있지만

마지막 울산 현대와의 경기에서 이승기의 어시스트를 받고 선제골을 집어넣으며 11골 3어시로 2014 시즌을 마쳤다.같은 도움왕 후보였던 레오나르도의 패스를 골로 연결시키지는 못했다. 이동국 다음으로 팀에서 가장 많이 골을 기록하며 매우 성공적인 시즌을 가졌다. 2014 K리그 베스트11 오른쪽 미드필더 부문을 수상하였다.

다음 시즌에 이승기, 정혁 등이 전력에서 이탈하기 때문에 이동국도 다음 시즌에 잘할 지 보장할 수 없는 만큼 소포모어 징크스만 잘 견뎌낸다면 전북 현대의 에이스로서 완전히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부담이 크겠지만.

팀메이트인 발리슛의 제왕 이동국이 특훈이라도 시켜주는지 윙어인데도 불구하고 발리슛을 꽤 능숙하게 한다. 국가대표팀에서는 다이빙 헤딩슛을 보이는 등 공중볼 타이밍을 잘 잡는 편인듯 하다.


3. 국가대표


꾸준한 노력과 활약의 보답인지 9월 초 베네수엘라, 우루과이와의 A매치를 앞둔 대한민국 대표팀에 선발되었다. 등번호는 전북에서와 동일한 7번을 배정받았지만, 대한민국 국대 7번의 의미를 생각하면 부담이 될 법도 하다. 그래도 같은 포지션의 팀 선배인 이동국과 함께 선발이 되었으니 적응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듯. 인터뷰에서도 '동국이 형만 따라다니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중동 원정부터 이동국이 부상으로 국대에 뽑히지 못했다.

2014년 9월 5일 베네수엘라와의 친선경기에서 이청용 선수와 교체로 투입되며 A매치에 데뷔하였다.

10월 파라과이, 코스타리카 평가전에서 부상당한 구자철대신 선발되어 파라과이와의 후반전에 투입되었다. 만회골을 넣기 위해 라인을 끌어올린 파라과이 수비진을 손흥민과 함께 수차례 침투하며 좋은 기회들을 만들고 날카로운 슛을 때렸지만, 아쉽게 골을 넣지는 못했다. 같이 골을 넣지 못 한 팀 동료 이동국이 있어서, 이딴 놈들이 K리그 1위 팀 전북 현대 에이스인 리그라며 K리그까들에게 까이고 있다. 근데 한교원은 이제 겨우 국대 2경기째다. 아직 국대에 대한 부담감이 있을 법한 상황이라는 것. 이걸로 국대에 다시 안 뽑혀야 하는 여론은 있나 싶지만 너무 이르다. 이동국은 뭐, 경기 끝나고 차두리김승대에게 놀림받았으니......

아니나다를까 11월 14일 요르단 원정 평가전에서 차두리의 크로스를 깔끔한 헤딩슛으로 연결해서 A매치 데뷔골을 기록했고, 이 경기가 1-0 승리로 끝나면서 이 골이 결승골이 되었다. 이날 원톱으로 출전한 어느 부두술사가 이렇다할 활약을 보이지 못했기에 공격측면에서 지리한 경기가 될 뻔했는데 한교원의 득점 덕분에 의미있는 평가전이 될 수 있었다. 슈틸리케호의 황태자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현재까지는 베네수엘라 원정부터 꾸준히 국대에 뽑히며 국대에는 거의 자리를 잡았다. 이를 증명하듯, 2015 아시안 컵에 이름을 올렸다.

2015 아시안 컵에서는 이청용, 이근호 등에게 밀려 거의 뛰지 못 하다가 오만 전에서 부상당한 이청용 대신 교체 출전, 호주 전에서 선발 출전을 하였다. 호주의 탄탄한 수비에 이근호, 구자철과의 호흡이 안 맞아 공격 면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 했으나 특유의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김창수와 함께 수비 면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래도 공격이 좋지 못 했기 때문에 한교원으로서는 아쉬운 일. 김창수의 반칙이 있은 뒤, 경고를 받기도 했다.[6]

준결승전에서는 전반에 헐리웃 액션질을 하는 바람에 잘못하면 남태희처럼 벌금형을 물게 생겼다...

4. 트리비아

선수프로필에 따르면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여자친구가 있었는데 축구부한테 뺏겨서라고 한다(...)강백호???
참고로 전북현대 홈페이지에 있는 선수소개 내용들중 웃긴건 재미를 위해 창작된것들이다
----
  • [1] 조선대와 조선이공대는 같은 재단 소속. 이를테면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입단했는데 팀에 자리가 없어서 바로 위성구단인 엑셀시오르로 임대 간 김남일과 비슷한 케이스랄까?
  • [2] 당시 동포지션의 경쟁선수들이 동반 부진, 부상 등에 빠졌던 이유도 있어서 행운이라 한 것.
  • [3] 공격포인트가 부족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교체출전 또는 교체아웃된 경기가 많음을 감안하자.
  • [4] 게다가 팀내 공격포인트 1위... 뭐 사실 전체적으로 득점이 빈곤했다.
  • [5] 본인이 인터뷰에서 자신의 장점이라고 언급했다.
  • [6] 김창수가 반칙으로 호주 선수와 충돌이 있자 이를 말렸으나 그것을 호주 선수가 한교원이 자신을 때렸다고 어필한데다, 바로 이후 상황에서 한교원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사이 호주 선수의 프리킥이 한교원의 몸에 맞자 심판이 한교원이 고의적으로 프리킥을 방해했다고 판단하여 경고를 받았다. 본인으로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는 경고였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3-31 14:43:42
Processing time 0.1986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