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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만화

last modified: 2015-04-13 20:58:50 by Contributors


목차

1. 역사
2. 대우
3. 한국 출판만화의 문제점
3.1. 검열과 탄압
3.2. 불법공유와 대여점 문제
3.3. 출판만화 시장의 붕괴와 도피
3.4. 내부의 위기
4. 웹툰의 성장
5. 구조
5.1. 웹툰
5.2. 출판만화
6. 관련 항목

1. 역사

1909년부터 1910년까지 대한민보에 거재된 삽화(이도영作)가 한국만화의 시초다. 하지만 대한민보에 거재된 삽화은 일제의 국권침탈과 경술국치로 대한민보가 폐간되어 끝났다. 이후 1920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창간되면서 시사만화가 연재되기 시작했고 1924년 멍텅구리 헛물켜키[1]가 인기를 누리면서 4컷 유머 만화가 인기를 누렸다. 1930년대 일제가 시사만화에 대한 탄압을 자행하면서 시사만화의 전성기는 끝났고 그 대신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신문, 잡지에서도 아동, 유머 만화가 유행을 탔다. 하지만 태평양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는 국군주의적 작품이 대세를 이루는 등의 암흑기를 겪었으며 1945년 해방후에 만화행진을 시작으로 만화잡지가 창간되는 등 봄을 맞으려고 하나 싶었지만 6.25 전쟁으로 상당히 초토화되었다.

그 후 1950년대 중반의 회복기를 거쳐 만화잡지 - 단행본 시스템이 시도되었으나 열악한 경제환경과 과도한 경쟁으로 인해 자멸하였고, 1950년대 말에 만화노점이 진화(?)되어 만화방이 널리 생겨나면서 독자층이 대거 확대됨에 따라 따라 주류 자리를 차지한 대본소 만화는 1980년대 중반에 합동출판사의 독점이 풀리고, 87년 민주화의 표현의 자유가 확대되면서 전성기를 누리나 얼마안가 정점을 찍고[2] 작가층들이 만화잡지로도 이동하고, 여러가지 요인이 겹치며 만화잡지에게 밀리면서 쇠락이 시작되었고, 만화장르도 아동용 대신 성인용이 주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쇠락하기 시작한 대본소 만화 자리를 대신하여 다시 부활한 잡지만화계는 일본식 코믹스 시스템을 그대로 모방했지만 역시 경쟁이 치열해지고, 수요가 한계에 이르는 1990년대 중반에 정점을 찍은 뒤, 청소년보호법 파동과 외환위기, 불법 공유, 웹툰의 확산 등의 여러 복합적인 문제로 인해 쇠락하고 말았고, 그나마 남은 출판만화들도 일본만화의 양식을 모방한 작품들이 상당수다. 이 와중에 웹툰학습만화가 급부상함에 따라, 결국 잡지만화는 주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웹툰과 학습만화가 만화계의 대세를 차지하게 됨에따라 만화시장도 학습만화와 웹툰 위주로 돌아가게 되었다.

2. 대우

만화가가 대우를 별로 받지 않고 아직까지도 한국에서 만화라고 하면 그저 어린이들이나 보는 것이라는 사람도 적지는 않다.[3] 또한 만화라고 하면 일본 만화의 영향 때문인지 폭력적이고 잔인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청소년 유해매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다. 만화계 역시 60~80년대엔 정부의 검열을 받고 90년대에는 YWCA 아줌마 단체들에게 심의윤리위의 주 타겟이 되는, 그야말로 안구에 습기가 차는 상황이었다.[4]

그런데 이 사람들이 퓰리처상까지 받은 같은 작품들을 보면 뭐라고 반응할지 궁금하기도 하다. 이런 대안 만화가 우리나라에서 인기있을 리가 없지... 이 작품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유태인 학대를 주제로 하기 때문에 폭력적인 면이 있다. 근데 인기있는 만화는 오락적인 폭력과 잔혹성을 넣은 경우가 대부분인 게 현실이다.

한편 위의 이유만 내세우며 남 탓만 하고 자신들의 문제[5]를 돌아보지 않으며 징징대기만 하는 만화가들이 많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공장장이라며 까이기는 하지만 대여점 책임론을 역이용한 김성모, 시장이 큰 일본에서 활동하기도 하는 양경일, 임달영, 성인층을 만화로 끌어들이고 드라마/영화화까지 되고 있는 허영만 등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은 만화가들도 분명히 있고, 웹툰이나 학습만화 같이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에서 벗어난 길도 개척되어 왔기 때문이다.

여점 등에 의해서 만화시장이 침체중이라는 말을 하는데(물론 출판만화 시장이 계속 쇠락하고 있는 건 맞다), 웹툰과 학습만화가 잘 나가고 있으며, 시장 규모를 놓고 보면 한국의 만화 시장 규모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거대 매체이다.

2003년부터 프랑스에서도 관심을 받기 시작하고 있으며, 만화축제 중 하나인 굴렘 국제만화전에 한국 만화가 소개되고 있고 한국 만화 특별전에도 초청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렇듯 세계적으로는 만화가 재미있는 오락 매체로 여져지지만, 문화 예술 분야에서는 인기와 명성이 낮은 편이다.(프랑스에서는 만화가 제9의 예술이라고 하긴 한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오덕과 대중, 예술 3가지를 포괄하는 접점으로서 가장 광범위하게 보급된 문화라 할 수 있다. 애니메이션만 해도 보는 사람만 보지만 만화는 이른바 '일반인'들도 부담없이 가볍게 볼 수 있기 때문에 많이 즐기는 편이다. 게다가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이 담긴 만화도 늘어나면서 과거와 달리 무작정 나쁘게 볼 수가 없어진 것이다.

3. 한국 출판만화의 문제점


3.1. 검열과 탄압

3.2. 불법공유와 대여점 문제

3.3. 출판만화 시장의 붕괴와 도피

출판만화는 등장 당시부터 1980년대까지 일제총독부와 독재정부로부터 갖은 수난을 당했고(물론 해방직후와 1950~60년대 초반의 리즈시절이 있었긴 하다. 하지만 잠깐이었을 뿐이었다.)특히 1970년대엔 만화에 대한 무자비한 검열에다가 정병섭군 자살사건으로 인한 인식의 저하, 합동출판사의 독점까지 겹치면서(이 문제는 1982년 경 합동총판의 독점구도가 완전히 깨져서야 해결되었다.) 만화가들의 사회적 지위는 그야말로 바닥 오브 바닥까지 추락했다. 1980년대 중반 합동출판사가 몰락하고 민주화 이후 만화검열제가 완화되면서 상당히 나아졌지만 그 나아졌다던 1990년대에도 YWCA 서울 모니터회로부터 지속적인 태클을 당하고 정부로부터도 만화방 규제, 청보법 파동으로 간간히 피해를 입기도 했으며 90년대 말~2000년대 초반의 복잡한 요인(외환위기, 스캔본, 구매 의식 등)이 겹쳐 한국 만화계는 큰 타격을 받았으나[6], 학습만화의 약진과 웹툰의 활성화로 재부흥했다.

(ɔ) Nicolas Poussin from


참고로 이 시기 만화계가 침체기에 빠지면서 상당수의 만화가 지망생이 흉노족을 피해서 고트족로마제국으로 침입했듯이 게임계(게임원화가)로 도피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인원이 게임계로 몰려서 새로운 헬게이트를 만들어 버리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상황이 게임업계의 부흥을 이끄는데 일조하였다. 만화가 지망생이나 관련학과 졸업생들 중 상당수는 원화가로 이직하였고 그 중 일부가 다시 3D 그래픽 디자이너나 기획자, 게임 애니메이터 등으로 전직하였다. 물론 게임업계 인원이 전체 만화 관련 인물은 아니다. 프로그래밍은 IT, 전산학과 관련 사람들이 많고 기획자 중에는 문과출신, 장르소설 관련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임 인력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그래픽군이고 그 중 상당수는 만화에 한 다리(관련학과, 취미) 걸치지 않은 사람이 적다. 때문에 만화계, 게임계에선 여성가족부YWCA, 정부 정책에 상당히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3.4. 내부의 위기

한국 만화의 몰락에 대해 대여점이나 문화검열에만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저것들이 한국 만화에 중대한 타격을 주긴 했어도 그것만이 몰락의 이유는 아니다. 해적판과 공장만화를 양산한 출판사들, 최소한의 작가정신도 결여되어 한국만화를 싸구려로 만든 만화가들, 만화를 '상품'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독자, 실용성은 밥 말아먹은 만화교육기관 등도 한국 만화의 몰락에 충분히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시장 문제를 어느 하나로만 설명하는 건 엄청난 오판. 애초에 규제만이 원인이라면 규제는 완화되었지만 시장 자체는 옛날에 비해 확실히 줄어들은 21세기의 한국 만화 시장이 설명되지 않는다.

사실 한국 만화 망했다만 연발하는 건 만화업계에 도움이 하나도 안 된다. 망했다는 소리 듣고 기분나빠 할 사람들은 결국은 정부나 대여점 주인들이 아니라 업계인들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한국 만화 망했다는 소리 듣고 눈 하나라도 깜짝할 사람들이었으면 처음부터 제대로 했을 것이다. 어떻게든 한국에서 만화 그리겠다고 노력하는 사람들 옆에서 한국만화는 이미 끝났다라고 초를 처봤자 양적인 변화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

4. 웹툰의 성장

현재는 웹툰이란 공짜에다 짬내서 보고 컴퓨터 안 꺼도 되는 인터넷 만화가 한국의 만화계를 크게 부흥시키고 있다. 네이버 웹툰의 힘을 빌려 웹툰작가는 한국의 웬만한 유명인 수준이 되었다. 출판만화 작가들은 서서히 웹툰으로 연재처를 옮기고 있고, 학생들이나 사회에서는 무슨 웹툰을 보는지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웹툰은 이제까지 있었던 출판만화 시스템과 구별되는 것이 많다. 작가우선체제, 종스크롤식 무한화면 등 여러가지 장점이 많으며, 무엇보다도 골 아픈 스캔본 문제를 쿨하게 씹어버리고 무료로 읽을 수 있으며 광고비와 조회수를 통해 비교적 공정한 수입 분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외국의 웹코믹과는 매우 다른 특성과 그 특성을 살릴 수 있는 포털 사이트의 시스템 구축으로 시너지 효과가 생성되었다.

물론 웹툰 시장에는 고질적인 문제가 아직 남아 있다. 연재의 간단함과 입문이 쉽다는 점으로 인해 퀄리티가 떨어진다던지, 장점이자 단점인 연재에 대한 전문적인 편집과 고려가 부족한 1인체제 등 앞으로의 문제점은 산재해 있다. 그러나 이는 시간을 두고 볼 문제이고, 이러한 단점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한국 웹툰 시스템의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니 한국의 만화 시장의 미래엔 청신호가 켜졌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웹툰은 최소한 앞으로 한국 대중문화 중 아주 대표적이고 대중적인 매체 중 하나로 뿌리를 박고 있는 상황이다.

자세한 것은 웹툰, 노컷 캠페인 항목 참고.

출판만화에서 활동하던 기성작가들의 경우 고질적으로 뛰어난 작화실력에 비해 좋은 스토리텔링 능력이 부족하다는 문제점이 크다. 그래서 일본 쪽으로 진출하는 작화가들도 많은 편. 입시만화나 만화과가 주로 작화가 양성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라 빠른 시일내에 개선되기 어려운 문제일 듯하다.

5. 구조

5.1. 웹툰

독립적인 생태계를 구축하기도 하고 만화계와 관련없다가 웹툰으로 뛰어든 경우도 많지만 현재 웹툰은 한국 만화계와 관련이 꽤 크다. 위에서 말했다시피 현재 대한민국 만화의 주류. PPS를 통한 광고 수입이나 트래픽 증가로의 고료를 통해 수입을 버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레진코믹스처럼 직접 현찰박치기(...)를 시전하는 경우도 있다.

대개 웹툰 연재처에 있는 만화 도전 코너를 통해 웹툰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그리다가 연재처 눈독에 들어와 스카우팅으로 뽑혀가는 케이스도 있고, 버티고 버티던 기성 만화가도 점점 웹툰을 이용하는 일이 늘고 있다.

5.2. 출판만화

가장 대표적인 시스템은 잡지 - 단행본의 일본식 만화잡지 시스템과 신문연재 - 단행본 시스템으로, 그 외에 대본소 시스템도 있었으나 만화 대여점의 감소에 따라 현재는 사실상 절멸 상태이다. 만화잡지를 가지고 있는 출판사는 서울문화사, 대원씨아이, 학산문화사로 각각 아이큐 점프, 영 챔프, 찬스 플러스를 발간하고 있는 상황이나 사실 이쪽도 다른 잡지를 모조리 폐간하고 각각 두세개 정도만 남긴 현황이다. 이는 원래 일본식 만화잡지 시스템의 대대적 도입을 시도한 1990년대의 흐름에서 나온 것인데 실패로 전문 프로듀스 방식을 제대로 도입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또는, 허영만 등의 한국 만화가가 신문에 만화를 연재하기도 하는데, 당연히 신문은 만화 전문지가 아니기 때문에 만화를 한번에 많이 실을 수도 없으며 한 만화도 한 지면 정도에만 실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에서 오히려 더 주류인 경우는 연재 없는 단행본. 영사 같은 대규모 출판사가 먼나라 이웃나라를 출판한다던지 등의 학습만화를 출판하는 경우가 더욱 흔하다. 이런 출판사에서는 대부분 만화를 일반적인 책과 같은 측면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 아이 공부시키려는 부모들이 전집형태로 구매하며, 유명한 것들은 홈쇼핑에서 쉽게 유통된다.

6. 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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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참고로 독립운동가 안재홍도 멍텅구리 헛물켜기의 스토리 작가를 맡은바 있다.
  • [2] 왜 1970년~80년대 중반이 전성기가 아닌지는 합동출판사, 만화 검열제 항목 참조.(한마디로 질적으로 60년대 초반보다 후퇴했기 때문)
  • [3] 이는 경무대 똥통사건 이후 군사정권의 만화탄압과 정병섭군 자살사건이 원인이다.
  • [4] 하지만 일각에서는 YWCA가 만화/애니에 영향을 준 게 없다고 하는 주장하기도 한다.
  • [5] 질적 부족, 시대 변화에 도태
  • [6] 다만 이 시기에도 광수생각이나 힙합, 오디션처럼 100만부 넘게 팔아치운 만화는 엄연히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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