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한국 사극

last modified: 2015-03-28 17:36:33 by Contributors

목차

1. 개요
2. 작품 목록
3. 인기 소재
3.1. 고대
3.2. 삼국시대
3.3. 고려시대
3.4. 조선시대
3.5. 일제강점기 이후
4. 고질적인 문제점
5. 한국 사극의 클리셰
6. 한국 사극의 고증무시 사례 및 암묵의 룰
6.1. 각본 연출 관련
6.2. 소품 연출 관련
6.3. 기타 연출 관련
7. 사극의 트렌디화
8. 자주 듣는 단어들
9. 관련 항목


1. 개요

한국내에서 사극이라 하면 단순히 과거 또는 과거로 짐작되는 것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 전반을 통틀어 부르는 경향이 있지만 이는 과거 역사를 소재로 다루는 극에 대한 다양성이 부족했던 시기의 분류가 지금까지 내려오는 것이고, 실제로는 지극히 이질적인 여러 경향들을 억지로 뭉뚱그려놓은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엄밀한 역사적 사실[1]을 바탕으로 한 역사관을 갖추고 있는 극이라면 명백히 사극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전통적인 사극이기 때문에 정통사극으로 자주 불린다.[2] 명백한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당대의 시대상을 충실하게 재현하고, 그러한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드라마도 있을 수 있다. 이런 것은 일반적으로 시대극(時代劇)이라 불린다.[3] 그리고 과거시대를 일종의 모티브로 하여 작가의 주관을 개입시켜 구상한 시대 속에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경우도 있을 수 있는데, 2000년대 중반부터 보편화된 소위 트렌디 사극 중 상당수가 이 범주에 포함된다. 트렌디 사극들은 역사적 고증이나 재현에 초점을 맞춘다기 보다는 현실과 다른 환상적 공간으로서 사극이라는 배경만 차용을 하는 경우가 많다.[4][5]

사실 '다양한 사료를 통한 교차고증으로 성립된 역사적 사실'이라는 틀 안에서만 용인될 수 있는 것이기에, 2000년대에는 사극으로 분류할 수 없는 내용임에도 사극으로 정의되는 드라마도 존재한다. 이런 경우 엄밀하게 따진다면 사극이라고조차 할 수 없는 것이며 이후 제작자 및 감수자의 사려 깊은 분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극 같지도 않은 사극을 제작해놓고 그것을 사극이라 주장한다면 그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겠는가?

특히 조선시대 사극같은 경우에는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에 자주 시달리는 편인데, 실록에서 일정 부분을 누락하였다고 왜곡한다고 하지는 말자. 사극은 어디까지나 드라마이지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물론 지나치게 역사적 사실을 뒤바꾸거나 연도도 혼동하여 쓰는 경우에는 지나친 역사왜곡이라고 비판당해도 할 말이 없다.

아래의 목차는 사극이 다루는 시대를 기준으로 역대의 사극을 분류한 것이다.

2. 작품 목록

3. 인기 소재

3.1. 고대

삼국시대 이전은 사료가 너무 부족하여 거의 사극으로 다루지 않는 편이다. 주몽이 예외적으로 이 시기를 다뤄 흥행에 성공했지만 고증은 반쯤 포기한 판타지 사극으로 평가받는다. 뭐 삼국시대도 사료가 많이 부족하고 고증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

3.2. 삼국시대

2000년대에 이 시대를 배경으로 한 사극이 많이 제작되었다. 사료가 매우 부족한 시대이므로 구조적으로 작가의 상상의 여지가 대거 개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역덕후, 특히 고증덕후들은 이 시대 배경의 사극을 좋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국사에서 가장 치열하게 전쟁이 벌어졌던 스펙타클한 시대였기 때문인지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의 경우 이 시기가 대부분이었다. 작품으로는 삼국기[6], 황산벌, 대조영, 연개소문[7], 선덕여왕[8], 평양성, 계백, 대왕의 꿈[9], 칼과 꽃 등.

3.3. 고려시대

고려시대는 이전 삼국시대보다는 사료가 풍부하지만 조선시대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사료가 적고 고증의 어려움이 있어 자주 다뤄지지 않는 편. 오히려 사료가 더 적은 삼국시대보다 더 적게 다루어지는 감이 없잖아 있다. 태조 왕건의 흥행으로 한때 고려사 시리즈가 제작되기도 했지만 왕건 이후로는 크게 성공한 경우가 없는 편. 이 시기를 다루고 있는 대표적인 사극으로 태조 왕건, 제국의 아침, 기황후, 천추태후, 무인시대, 무신, 신돈 등이 있다.

  • 여말선초 : 고려 말기부터 조선 개국 시기까지의 혼돈시기는 왕조교체과정에서 일어나는 정치적 암투가 자주 일어나고 공민왕, 이성계, 정몽주, 이방원 등 역사적으로도 매력있는 인물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자주 소재로 다뤄진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용의 눈물정도전이 있다.

3.4.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승정원일기의 자세한 기록 덕에 모든 시기를 사료에 입각해 다룰 수 있으며, 기록이 너무나 자세한 관계로 고대사 사극과는 반대로 상상이 개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10] 모든 시기가 자주 다뤄지지만 현종이나 세도정치기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 세도정치기는 그나마 순조는 정조시대 사극에서 세자로 얼굴을 비추고, 철종은 흥선 대원군이 주인공일 때 집권 전 모습으로 종종 나오지만, 현종은 마의 말고는 제대로 등장한 게 드물다.(예송논쟁이라는 중요한 사건이 있기는 하지만.)

보통 조선시대 정통 사극은 여말선초와 임진왜란, 구한말 시대의 3개 시대가 가장 인기가 높고, 종류도 많다. 아무래도 이 시대가 역사적으로도 중요하고 극적인 삶을 산 인물이 많기 때문.

남자가 주인공일 경우 주로 임진왜란이 많이 다뤄지고 여자가 주인공일 경우 주로 장희빈이 많이 다뤄진다. 따라서 사극에서 남자 주인공으로 가장 많이 다루어진 인물은 충무공 이순신, 여자 주인공으로 가장 많이 다루어진 인물은 장희빈이다.

3.5. 일제강점기 이후

4. 고질적인 문제점

현재 한국내에서 창작되고 있는 사극에 대해서 사극으로서 갖추어야 할 역사적 사실에 대한 고찰 또는 극으로서 지녀야 할 연출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일반적인 고증과 관련된 부분에서부터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오류나 과도한 영웅주의 또는 편의주의적인 재해석, 그리고 잘못된 역사관을 억지로 밀어붙이는 데서 오는 치명적 오류까지 다양하다.

고증 관련해서는 당대에 등장할 수 없는 물건이 등장하거나, 대표적으로 불멸의 크리넥스가 있다. 당대의 문화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면 등이 비판의 대상이 된다. 조선시대 병사들이 항상 추레한 포졸복만 입고 다니고, 조총을 들고 다녀야 할 시대에도 삼지창을 들고 다니면서 칼질 한 번에 죽어나가는 건 그야말로 고질적인 문제.[12] 2000년대 후반 들어서 해결되는 기미가 보이나 싶더니만 이번에는 중세 판타지에서나 볼 법한 갑옷이 등장하는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 덕분에 같은시기 혹은 비슷한 시기를 다룬 사극에서조차 방송국에 따라 갑옷 및 복식등이 완전히 다르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

사건 또는 인물에 대한 오류로는 있어야 할 인물이 안 나오고 기록도 없는 인물이 대신 나오는 경우, 죽어야 할 인물이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있는 경우[13], 더 후세의 인물이 이상하게 꼬여서 나오는 경우나[14] 극의 갈등이나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서 역사적 인물을 왜곡에 가까울 정도로 재해석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조선왕조오백년인조임금과 불멸의 이순신원균과 일본 측 인물 전원이나 명성황후불꽃처럼 나비처럼명성황후 민씨를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15]

또한 극 전개를 위해 안이하게 가상의 러브라인을 너무 많이 차용한다.[16] 그러다보니 정치적 입장이 달라서 생긴 대립이 그냥 질투 때문에 그랬다는 식으로 폄하되기 일쑤(해신이나 불멸의 이순신 등). 나아가 지나친 나머지, 정복군주의 이야기를 그린다거나 하는 당초의 기획의도는 어디로 가고, 전쟁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 채 왕실 집안의 막장 드라마를 찍고 있다거나, 그 극단적인 반대로도 간다. 당연히 둘 다 바람직하지 않다.

잘못된 역사관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환단고기와 같은 위서에 영향을 받은 경우나 민족주의적 태도가 지나친 경우[17]를 들 수 있다. 사실 위에 서술된 오류 전반의 원인이라고도 볼 수 있는 것으로, 상업적 고려를 넘어선 상업적 알량함이 한도를 넘어선 경우라 하겠다. 특히 고대사 부분에서 이런 오류를 범한 경우 대개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것은 역사적 사실'이라고 못을 박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 폐해가 크다. 가장 대표적인 역사 왜곡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연개소문천추태후기황후, 정복군주 3부작(근초고왕, 광개토태왕)일 것이다.

물론 비판을 통해서 올바른 역사 지식과 역사관을 전달하고 사극의 질적 향상을 꾀하는 것은 바람직하며, 지나치게 원론적인 선에서 머무른 도를 넘은 비난은 옳지 못할 것이다. 또한 앞서 언급했던 카테고리의 문제나[18], 현재와 과거의 역사 연구 성과 차이로 인한 오류[19], 고증을 지나치게 훼손하지 않는 부분에 대한 묘사에 대해서는 극적인 허용으로 보아야 할 것도 있으며, 이후 문제가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 역시 수정해야 하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사실 이런 문제점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극도로 열악한 사극 제작환경, 특히 제작비 문제가 심각하다. 아무리 철저한 고증을 하고 싶어도, 고증해줄 전문인력이 결코 공짜로 일해주진 않는다. 그리고 고증을 받아도 과연 그것을 반영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일단 시청률이 나와야 사극을 만들던 말던 할 것 아닌가.

5. 한국 사극의 클리셰

한국 사극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된 부분이다. 주인공이 선하기만 하고 고결하다보니 오히려 시청자들이 주인공의 주요 적을 더 매력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태조 왕건에서 주인공은 왕건이었지만,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끈 캐릭터는 왕건이 아닌 견훤궁예였다.

이러한 클리셰를 따라가지 않는 경우도 가끔 있는데, 무인시대정도전이 대표적이다. 무인시대에 경우 아예 주인공들이 권력욕에 의해 타락한 무인들이며, 정도전의 경우 주인공을 개혁가로 나타내면서도 한편으로 정도전의 독선적이고 비타협적인 부분들을 그려냈다.

  • 주인공은 착하다
주인공이 말도 안될 정도로 착해지는 것은 물론이고, 띄워주려는 인물도 비정상적으로 착하게 된다. 주몽의 소서노와 천추태후(드라마)의 천추태후와 근초고왕(드라마)의 근초고왕이 대표적인 예. 이게 가장 극단적이 되버릴 뻔한 사례가 기황후(드라마)로 초기 기획에선 충혜왕을 남주로 설정하여 연산군을 능가하는 막장 군주를 고려의 자주성을 회복하려한 강건한 왕으로 그리려다가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을 받고는 가공인물인 왕유로 교체하였다.

  • 적은 다 나쁜 놈
적대인물의 역사적 의의는 무시되고, 무조건 극악무도한 나쁜 인물로 묘사된다. 게다가 그 방법이 지극히 유치해서 실소를 금치 못할 때가 있다.

이를테면 정순왕후같은 경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실제론 딱히 악역이라 잘라 말할 수 없지만 정조를 배경으로 한 사극들을 보면 상당한 경우 100% 악역으로 등장한다. 이렇다 보니 사극에서 매력적이고 이중적인 면모를 가진 악역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처음에 나빠보이는 놈이면 그냥 나쁜놈. 이게 가장 극단적이 되버릴 뻔한 사례도 기황후(드라마)로 충혜왕의 강간 피해자인 경화공주를 악역으로 만들려다가 충혜왕을 왕유란 가공 인물로 바꾸면서 경화공주도 설정에서 삭제하였다.

  • 주인공의 고난
물론 주인공이 고난을 겪는 것이야 극적 관점에서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시대와 고증을 무시하여 비정상적인 고난을 겪으며 그 과정에서 주인공이 거의 찌질이가 돼버리거나 명예훼손을 겪을 정도다. 한국 사극은 정도가 너무 심해서 거의 마조히즘 수준이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이순신 장군에게 역적 가문이라는 고증에도 맞지 않는 고난을 덮어쒸운 것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광개토태왕(드라마)에서 있지도 않은 형 담망과의 왕위 계승 논란과 역시 지겹도록 우려먹는 국상 일당의 반란도 있다. 선덕여왕(드라마)의 경우 선덕여왕이 자신을 죽이려는 칠숙을 피해 몽골 근처의 타클라마칸 사막까지 도망치며 온갖 고생을 하는가 하면 로마 사람을 만나는 기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그리고 고대의 경우 약속이나 한 듯 대부분의 주인공은 노예신세를 필수요소마냥 겪는데, 천민의 설움 및 밑바닥 인생도 경험해봐서 아는 지도자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설정이다.

6. 한국 사극의 고증무시 사례 및 암묵의 룰

6.1. 각본 연출 관련

전쟁
  • 개인이 수천 단위로 죽어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나라까지도 손쉽게 말아먹는 전쟁이 사극에서는 그저 높으신 분들의 서바이벌 게임이다. 이런 경향은 특히 고대사 사극에서 심한 편인데, 단순히 조연들의 열폭이나 라이벌 의식으로 가볍게 전쟁이 벌어지는 일도 다반사. 강조하지만, 전쟁은 인류 최악의 범죄이자 모든 범죄의 총합이다.
  • 전쟁이 중심이 되는 사극에서는 시기적 문제고 뭐고를 넘어서 그림이 되는 전쟁 장면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이를 위해서는 역사서를 새로 쓴다. 동시에 방영했던 연개소문에서 살수대첩이 나와야 할 이유와 대조영에서 안시성 전투가 나와야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광개토태왕의 서막을 장식한 요동성 전투의 경우는 시대 배경, 공간 배경, 등장 인물을 싸그리 씹어먹은 대표적인 경우.[20]
  • 주인공이 출진하기 전에 연설할 때는 "가기 싫으면 안가도 좋다"고 외친다. 그러면 부하들은 "장군과 싸우겠습니다."하며 전부 주인공을 따른다. "저는 싸우지 않겠습니다."하고 거절하는 사람은 없다. 선택은 자유 네 목숨도 자유 이건 뭐 카이사르도 아니고 근데 알렉산데르 세베루스도 이 드립 치다가 군단병들이 진짜로 해산해서 망했어요가 된 적이 있었다.
  • 사극 속에서의 전투는 무조건 백병전. 진법 전술 그런 거 없다. 정말로 가뭄에 콩나듯 한두번 나오기도 하는데 그것조차도 주가 아니라 방진짜서 무리가 충돌하는거 한장면 보여주고, 다음 장면에는 바로 적아군 할거없이 뒤엉켜서 1:1로 칼춤벌인다(...). 이야 맞건 말건 일단 상대한테 먼저 붙는 게 중요하다.[21] 심지어 모 사극에서는 몇 마리 풀었더니 기병 전체가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3m도 안 되는 거리에서 활을 쏘는 신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레골라스?[22]
  • 싸울 때는 고래고래 함성을 지른다. 물론 사기 높이고 공포를 줄이려고 소리 지르거나 북 두드리는건 있었다고 하지만, 야습할 때에도 그런다? 물론 적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위압하려는 목적이면 가능하지만 문제는 야습 갈 때부터 그러니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것.
  • 장수는 공격력도 맷집도 일반병과는 다르다. 졸병 하나를 잡는 데는 화살 하나로 충분하지만, 장수를 잡는 데는 화살 십여 개가 쓰인다. 근데 현실은 장수가 먼저 가버리면 나머진 모랄빵 직행이니까 어쩔수없다고 또 칼잡이 장수 하나가 창 든 병사 여럿을 순식간에 쓸어버리는데, 일일이 칼 부딪히며 싸우는 것은 장수가 아니다. 그냥 한 번에 몇 명씩 베어야 한다. 괜히 몸을 한 바퀴 돌리면서 상대방을 베어주는 것이 포인트. 철갑옷을 입었건 가죽 갑옷을 입었건 강화복을 입었건 주인공의 횡베기에는 자비가 없다. 다 한방이다.(...)
  • 수성전 시 장수는 총지휘관이건 아니건 모두 '문루에 서서' 지휘를 한다. 총지휘관이 최일선에서 지휘를 맡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데, 정작 총지휘관이 지휘하라고 만들어놓은 장대는 어디가고... 다만 귀주성 전투에서 김경손의 예에서 보이듯 분전시 문루에서 지휘하는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근데 여기서 김경손은 총지휘관이 아니었던데다 분명히 앉아서 독전했다.
  • 주인공 및 주연급은 일당백이다. 사극을 보다보면 장수나 왕은 적진에서 무쌍난무하고, 졸개들은 그냥 칼이나 창만 들고 있다가 죽는 역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거기에다 폼생폼사라서 방패같은 거추장스러운건 집어치우고 칼 한자루만 꼬나쥐었는데도 수십명이 넘는 중무장한 적병들을 상처 하나없이 썰어넘기는 신기를 보인다. 척준경도 최소한 방패는 지참하고 싸웠거늘 적병들이 주인공에 대한 예우를 어찌나 철저히 해주는지, 어떤 상황에서든 비겁하게 한꺼번에 덤비지 않고 1:1로 덤벼주는것은 덤.(...)
  • 전투신 찍을때 전사자 수를 너무 과장해서 늘린다. 한 예로 찬란한 여명 신미양요,병인양요 장면에서 조선군이 미군, 프랑스군과 대등하게 싸운것처럼 묘사해 역사적으로 막강했던 두나라 군대가 화력으로 열세였던 조선군의 화승총과 대포에 수십명씩 쓰러지는 참담한(...) 모습을 보여준다.[23] 2014년 최대 흥행작 명량에선 무리하게 백병전을 넣어서[24] 조선군 대장선 희생자가 많은걸로 묘사해 이순신장군의 명량해전 전공을 왜곡해버렸다.[25]
  • 상당수의 장수들이 전쟁 나오는 데 투구를 안쓰고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러면 머리에 화살맞고 요단강 익스프레스. 이러는 건 이유가 있는데 투구 때문에 얼굴이 잘 안보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인 경우도 있다.

정치/외교
  • 왕의 견해가 마음에 안 들면 논리적 설득 없이 일단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신하의 잘못이 드러나 왕이 꾸짖으면 일단 "신들을 죽여주시옵소서". 물론 죽고 싶어하는 신하는 한 명도 없다. 또한 왕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답변으로는 만병통치약급에 해당하는 답변인 "망극하옵니다."를 남발한다. 왕이 꼬장을 부리면 자기 말대로 안 따라주면 지들끼리 모여서 왕의 뒷담화를 깐다. 생각해보면 후자는 있을 법하다. 아니 후자는 완벽한 고증이긴 한데, '당파죄'라는 건 들어봤나 모르겠다.[26]
  • 적은 무조건 악하고,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적을 베지만 아주아주 자비롭고 선량한 인물로만 그리는 '1차원식 묘사'가 너무 많다. 또한 암군이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거나, 성군이 사실은 겉만 번지르르한 막장 군주였다는 이론을 펼친다. 근거? 글쎄? 있던가? 그런걸 새로운 해석이라고 포장할 여지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사극들이 그런 괴상한 해석들을 내놓고 있어서 특이한 것이 오히려 특이하지 않고 낡은 것이 되어버리는 경우다.
  • 근대적인 기준으로 선역은 자주적이다. 강대한 군사력, 대외적인 확장, 혹은 배째라 외교. 배를 짼다면 누가 쨉니까? 바로 니가 쨉니다. 세종대왕명나라와 대립한다는 식의 연출이 대표적. 물론 세종이 조선의 문화적 기틀을 잡은 것은 사실이지만, 외교적으로는 사대주의를 포기한 적이 없다. 그 사대주의라는 것도 원래는 우리의 인식처럼 부정적인 의미만이 아니다.
  • 크고 아름다운 대륙 하악하악. 이들 사이에서 환단고기는 이미 정사다.[27] 드라마를 위한 픽션이란 얘기도 안한다. 오히려 연출자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역사적 사실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사극 연출자들의 기본적인 소양이 문제다.

아역
  • 역사적 기록이 부족하기 짝이 없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다루면서도 어린시절부터 다루는데, 본래는 그들의 역사적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한 장치이지만 어느새 주객전도가 되어서 개연성 따위는 눈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고 단지 아역배우를 통해서 인기를 끌거나 실제로는 없는 드라마를 창조하기 위해서인 목적이 대부분이다. 특히 멜로라인을 어린시절에 다 만들어버리는데, 특출나게 기록이 남아있는 조선시대 이후의 몇몇 인물들이나 기록이 상대적으로 많은 군주급 인물들 제외하면 어린 시절에 뭐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때문에 당연히 모조리 상상. 이게 로맨스 RPG가 되어버리는 경우도 잦다. 아니 대부분이다.
  • 출생의 비밀은 기본 클리셰. 위의 '주인공의 고난'과 엮여서 어린 시절에 밑바닥 인생으로 굴러떨어지는 연출은 널리고 널렸다. 선덕여왕에서는 여주인공이 아예 서역의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자라기도 한다.

경제
  • 드라마 상도의 인기 이후 툭하면 대규모 상단 집단이 나온다. 주몽에서는 심지어 부족장이 상단의 수장을 겸하고 있고, 삼한시대에 조선시대 같은 상단 활동을 하고 있다. 실제로 사치품의 분배와 같은 역할은 해도, 생산물의 유통 같은 행위는 당연히 그들 소관이 아니었다.
  • 정치에 관여하는 거상은 악역에게 붙는다. 거상은 악역에게 자금을 대고 악역은 거상의 편의를 봐주는 그렇고 그런 관계. 하지만 구체제의 아성을 무너뜨려야 하는 주인공에게는 당연히 적일 따름이다.

6.2. 소품 연출 관련

복식
  • 조연들은 그런대로 상투를 제대로 틀고 있지만, 주인공장발에 봉두난발이다. 봉두난발은 천민들이나 하고 다니는 머리스타일이었고, 더욱이 사극에 나오는 것처럼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생머리는 그런 거 없다. 혼인을 안하면 상투를 틀지 않는다고도 하지만, 정작 미혼 남성이 트는 총각머리나 떠꺼머리는 그거 먹는 건가요 취급.[28]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상투에 장발이라는 해괴한 스타일도 나온다. 이런 건 머리숱이 아무리 많아도 모자란다.
  • 한복도 시대를 뛰어넘어 조선시대 후기의 복장이 가장 보편적이다. 말총으로 만든 흑립은 성종 즈음에서야 나온 것이고, 그 이전까지는 가늘게 쪼갠 대나무를 바구니처럼 엮어서 만든 흑립을 써야 맞다. 또한 허리 위로 올라가는 저고리도 임란 이후에야 등장하는 것이고, 조선 전기의 저고리는 허리 아래로 내려올 정도로 길었다.[29]
  • 시대를 거슬러 올라갈 수록 옷과 머리모양이 더욱 화려해진다. 물론 고려시대의 벽화 등을 보면 많이 올린 머리들이 발견이 되기도 하고 조선 이전시대는 귀족사회로 사치에 대한 제한이 약했기 때문에 고대의 장식이 더 화려한 것은 사실에 가깝기도 하며, 애초에 이런 생활사적인 부분들은 자료가 많이 남지 않으니 상상의 영역이 많이 들어가기에 그렇다.
  • 재탕이 많다. 문제는 신라시대의 복식을 조선시대에도 재탕한다는 점. 선덕여왕에서 사량부 부원의 복식이 동이에서는 모자만 덧붙여서 포졸복으로 재활용했다. 그렇다면 천 년 동안 똑같은 옷을 입었다는 게 되는데?

갑옷
  • 개나 소나 전신갑옷을 입고 다닌다. 조선시대를 다루는 사극에서는 입으라는 갑옷은 안 입고 포졸복만 입어서 문제지만, 고려 이전으로 올라가면 너무 입어서 문제. 당시 갑옷과 같은 군장은 국가에서 지급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준비해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다만 임진왜란 이전 조선군 갑옷의 주류는 찰갑계열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 당시 조선군이 벗고 싸웠다는 기록도 흔하다. 그리고 입고 싸웠다는 기록이나 그림은 한참 후에나 그린 것이나 주워 들은 것이다. 다만 조선군이 다 벗고 싸웠다고 단정짓기도 힘들고, 입고 싸웠다는 기록도 분명히 있으므로 기존 사극에서 조선군을 쾌자로 통일한 것은 단순한 고증의 선택일 뿐이다. 고로 포졸복이라 해서 고증이 잘못되었다는 비판은 맞지 않다. 오히려 17세기까지 전군에 군복을 입힌 나라가 얼마나 있었는가 생각하면 쾌자, 일명 포졸복을 폄하하기는 힘들다.
  • 그런 전신갑옷은 왠지 중세 이전의 서양 갑옷과 비슷해 완전 판타지를 방불케 한다. 주연의 경우에는 중국 갑옷인 명광개를 입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지는 것이 다반사. 동북공정 차라리 명광개 정도면 다행일까, 대부분의 고려시대 이전을 다룬 사극에는 어디 특촬물에나 나올법한 괴악한 디자인의 전신슈트가 튀어나온다.(...) 그나마 찰갑을 제현하려 애쓴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배트맨 갑옷. 자료가 풍부한 조선시대의 경우에는 이런 문제가 적지만, 당장 고려시대 이전으로 올라가면 그냥 판타지 영화 하나 따로 찍어도 될 정도로 웃지 못할 갑옷 디자인이 나온다. 가장 극단적인 것은 태왕사신기이다. 그리고 갑옷 제작 기술 수준이 조선시대는 되어야 제작 가능할 것 같은 갑옷들도 시대를 거슬러 등장한다. 특이한 경우로 명량도도 다카토라의 갑옷은 고증을 충실히하면 개그(...)캐릭터가 되어버리기에 원형을 적절히 변형하며 고증을 포기한 경우가 있다.
  • 장군들은 일상생활에서도 갑옷을 입는다. 밥 먹을 때도 입는다. 조정에서 회의할 때도 입는다. 실제로 이랬다가는 곧장 반역죄로 엮어서 목을 치는 게 가능했는데도 말이다.[30] 궁궐 안에서 갑옷을 입었다는 것 자체가 상대방을 해할 목적이 있다고 판단되는 것이고, 그 상대방이란 당연히 왕. 오늘날로 따지면 국방부장관이 국무회의에 단독군장을 하고 총을 휴대한 채 들어가는 셈이다. 미쳤냐?[31][32]
  • 그러면서도 엑스트라가 아닌 이상 절대로 투구를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몸값 비싼 배우들의 얼굴을 가리니까... 그들에게 투구 따위는 장식일 뿐이다. 실제 강선식 라이플이 등장하기까지는 투구는 원거리 병기에 대한 효과적인 방어수단이었고, 일본의 전국시대에는 원거리 병기에 의한 사상이 절대 다수였는데도 말이다. 투구로도 모자라서 금속으로 만들어진 면갑까지 쓰는 판이었고, 이렇게 투구를 쓰고 면갑으로 얼굴까지 보호하는 장수는 사실상 화살로는 죽일수가 없었다.[33] 물론 절대로 투구를 쓰지 않은 장수도 실제로 있긴 있었다. 그게 손견인데, 그래서 손견은 뒷통수에 화살 맞고 죽었다. 폼생폼사의 최후

무기
  • 가장 강력하고 익숙하고 쓸모 많고 대중적인 도끼아웃 오브 안중. 백병전에서 무기는 무조건 칼 아니면 창이다. 물론 기술이 발전하면서 강도가 높아진 검과 기마술이 확산되면서 필요가 커진 창이 도끼의 수요를 밀어내긴 했지만, 당장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무기의 비중을 살펴보자.[34] 검을 지닌 하급 병졸들은 그 살벌한 전장에서 방패하나 없이 검 한자루만 들고 나대다가 죽는다.(...)
  • 그마저도 창은 장식용 또는 포졸용 무기로 쓰이고, 실제 전투 장면에서 주로 쓰이는 것은 이다. 멋있다는 점 이외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심지어 기마전의 경우에도 칼을 쓰는 경우가 보이는데, 이럴 거면 굳이 말을 탈 이유가 없다. 기병돌격? 그거 뭔가요 먹는 건가요. 물론 마상에서 칼 못쓸것도 없긴 하지만 마상에서 다루기엔 애매한 검의 길이때문에 마상검술을 제대로 해먹으려면 사용자가 월등히 실력이 좋아야 한다. 문제는 그렇게 애먹으며 마상에서 칼질하느니 차라리 창같은 장병기 드는게 훨씬 효율이 좋다.(...)
  • 조선시대를 다루는 사극의 당파로 통일된다. 물론 당파는 적군의 공격을 창날로 막아내기 수월하다는 잇점이 있었지만 창보다 짧고, 만들기도 어려우며, 무게도 더 나가기 때문에 결코 주력으로 쓰일만한 무기는 아니었다. 게다가 정작 당파라는 것 자체가 명나라 후기 척계광[35]이 왜구를 토벌하면서 새로 개발한 신무기로, 조선에서는 임진왜란 때에서야 명군이 들어오면서 도입된다. 고로 임진왜란 때 조선군의 주력병기는 당파가 아니라 일반 창이었다. 그리고 당파는 삼지창과는 다르다, 삼지창과는!
  • 이미 조총이 보편화된 조선 후기에도 포졸들이 당파 들고 어리버리하게 따라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쓰는 조총도 무조건 심지에 불 붙여서 발사, 장전 그런 거 없다. 다만 이 점에 대해서는 2010년에 추노라는 걸출한 고증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분명히 비무장한 범죄자에게도 포졸은 육모방망이는 커녕 창부터 들이댄다.
  • 활 쏘는데 검지로 시위를 당기는 서양식 활쏘기, 정확히는 '지중해 사법'을 구사한다. 검지를 포함한 네게의 손가락으로 활시위를 당기는 이 사법은 엄연히 정식으로 있는 사법이긴 하지만 동아시아의 사법은 결코 아니다. 몽골이 원류이며 중국한국에서 주로 쓰인 활쏘기 기법인 '몽골리안 사법'에 의하면 엄지로 당겨야 한다. 게다가 엄지에 끼는 깍지는 어디로 갖다 버렸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러면 엄지손가락이 너덜너덜해지기 십상. 패왕애인? 손가락은 내다버리는 것 이 몽골리안 사법은 최종병기 활에 매우 자세히 나온다. 그나마 이 부분은 추노최종병기 활 이후로 많이 지적되어서 그 후로 상당히 개선되었다.
  • 산적이나 왈패들이나 사대부나 정규군이나 궁중별감이나 전부 칼을 손에 들고 다닌다. 가끔 다른 손을 사용해야 할 일이 있으면 칼을 든 손을 바꿔서 연기한다. 동개일습과 환도 띠돈매기는 어따 갖다버리고 등장인물 전원이 손에 칼을 들고 서서 뻘쭘하게 이야기할 때도 있다. 소품이라도 칼이 꽤 거추장스러울텐데 연기자들도 힘들 듯.[36]
  • 칼은 모조리 일본도다. 엄밀히 말하자면 칼의 길이. 조선의 환도는 그 길이가 일본도에 비해서 짧았는데, 일단 현대에 소품 맞춰놓은 것이 죄다 일본도 방식이라 그런지도 모른다. 물론 나름대로 이걸 보충하기 위해서 칼자루나 칼집을 환도 방식으로 해서 보충하고는 있으나, 임진왜란 이전의 기준에서도 다들 날길이가 긴 것만을 쓰고 있다. 예산 때문이라 하니 예산이 해결되기를 바라자.
  • 칼을 들고 조금만 움직여도 금속성의 소리가 난다. 검을 뽑을 때는 기본이고[37], 심지어 그냥 들어올렸는데도 '채앵!'하면서 금속성의 소리가 난다. 진검을 만져본 사람은 알겠지만, 실제 칼은 그렇게 쉽게 금속성 소리를 내지 않는다. 당장에 죽도만 해도 쉭 소리내는게 힘든 판에 하지만 이건 실제 진검이 아닌 조잡하기 그지없는 소품을 사용하면서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는 것 보단 효과음을 추가하는 게 더 박력(?)있어 보이기 때문일지도. 때문에 효과음 자체를 없앤다기 보단 조금 더 고증에 맞는 효과음을 사용하는 게 좋을 것이다.근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검을 구경하거나 만져볼 일이 없으니 고증에 맞춰도 모르잖아? 안될거야, 아마.
  • 칼싸움을 하다가 칼을 서로 맞대고 힘겨루기하는 장면이 꼭 나온다. 실제로 이런 짓 하다간 유술에 걸리기 딱좋다. 검사는 칼만 가지고 싸우지 않는다. 주먹질도, 발길질도 모두 검사의 무기다. 일단 살고 봐야 하지 않는가. 사실 이런것보다 더 큰 문제는 방패를 안들고 다닌다는거다.(...)
  • 화포로 포탄을 쏘면 포탄이 명중한 부분 주위의 병사들이 피해를 입는다. 날아간다 어? 비격진천뢰가 기본 포탄이었나?[38]
  • 야습하는데 장비에 잿물 바르기 같은 간단한 준비도 안해가서 조명에 날붙이가 반짝거린다. 실제로 이러다간 당연히 적에게 들킨다. 보초병은 괜히 세워두는 게 아니다. 오크 수준의 지능인 듯.

경제
  • 계산은 무조건 화폐로. 삼국시대나 통일신라 때도 화폐를 사용한다. 한국 역사에서 한국의 정부에 의해 유통된 최초의 화폐는 고려 성종 때 만들어진 건원중보이며[39], 이것도 사용이 잘 안 돼서 목종 때는 관영 상점에서만 겨우 사용되었을 뿐이다.[40] 고려 후기에는 원나라의 영향으로 지폐의 일종인 저화가 쓰이기도 했지만 어음 수준이었고, 조선에 들어서는 태종, 세종대왕이... 이후 효종조의 김육에 이르기까지 경제에 대해 지식이 있는 재상들이 화폐를 유통시키려고 갖은 힘을 썼으나 안습. 숙종조에 가서나 겨우 화폐경제가 정착할 수 있었다. 다만 주몽에서는 중국 화폐인 명도전을 사용하므로 아주 틀린 고증이라고 할 수는 없다.
  • 조선시대 사극 중 언제 어디서든 주막, 술집같은 시설이 존재한다.[41]

음식
  • 술을 마시면 안주를 절대 먹지 않고, 잔치가 열리면 밥을 절대 먹지 않는다. 아버지들 이야기하시는 걸 구경하다 보면 알겠지만, 아무리 진지한 술자리라도 안주는 비게 되어있다.(...) 사실 소품 음식은 맛보다 화면에 나오는 연출을 위해 종종 가짜를 만들기도 한다. 소품이 진짜 음식이라도 장시간 촬영에 식거나 굳으며 맛은 안습해지고 맛은 둘째치더라도 NG낼 때마다 다시 찍으면서 배우가 배터지도록 먹어야하면 연기에 지장이 가는데다가 소품이 너무 줄면 다시 요리해서 촬영에 지장이 가기 때문이다. 특히 별 비중없는 장면인 경우 촬영에 지장이 생기면 안되기 때문에 먹는 척만 한다. 다만 하정우의 먹방이나 대장금처럼 먹는 것이 중요한 내용의 경우 배우들이 진짜로 먹는다.

과학
  • 의원이 높으신 분들을 상대로 진맥을 할 때 실을 매어서 실 끝에 느껴지는 진동으로 진맥을 한다. 호기심 천국에서 실제 한의사가 사극에 연출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실을 매어서 실험하는 장면을 보였는데 불가능하다는 게 밝혀졌다. 지체 높은 여인들을 진맥할 때 손목에 얇은 천을 감고 진맥을 했다고 하는데 이게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42]

6.3. 기타 연출 관련

  • 초반에는 간지 나는 싸움 장면이나 무희들이 대규모로 화려하게 춤추는 장면이 들어가서 시청자들을 끌어들인다. 물론 그 뒤로는 그저 줄곧 골방에서 등장인물 클로즈업 하는 장면.
  • 효과음은 '두둥!'이 60%를 차지하며, 왠지 방에 있는 사람 얼굴을 클로즈업 하는 장면이 방영분의 40%는 차지한다.
  • 제작비가 부족하면 화면에는 20명인데 100명이라고 우기기 식의 숫자 불리기도 많으며, 또는 CG를 동원해 숫자를 불리기도 한다. 다만 이것조차도 안습이면(...)
  • 가끔 전국이 일일생활권으로 통합되기도 한다.[43]
  • 주인공과 관계 깊은 조연들은 의형제로 엮는다. 주로 3명인 것으로 봐서는 삼국지의 영향이 크다.
  • 이따금 일본 닌자의 영향을 받은 특수요원 같은 부하가 있다. 좋은 예가 불멸의 이순신의 날발이와 대조영의 금란.
  • 개그 캐릭터가 한 명 이상 나오고 간혹 주인공을 누르는 인기를 구가하기도 한다. 이 분야의 킹왕짱 배우로는 임현식, 이계인, 이희도 씨가 있다.
  • 조선시대 이전인데도 감자를 먹거나 담배[44]를 피운다. 남미가 원산지인 이들 물자가 한반도에 유입된 것은 조선 후기이다.
  • 요즘에는 명칭 붙이는 것에도 귀찮아졌는지 어떤 인물이 멀쩡하게 살아있는데도 시호나 묘호를 붙여 호칭하는 경우도 있다.

7. 사극의 트렌디화

과거 사극도 결코 서적을 통한 재현과 드라마를 위한 역사적 사실의 일부 수정 등 고증의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나, 그래도 일단 실제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이 소재이자 곧 주제였고,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대장금을 비롯하여, 2012년의 해를 품은 달 등 역사적 사실 보다는 캐릭터성에 기반한 시나리오가 등장하며, 역사적인 배경은 설정 정도의 위치로 물러나게 된다. 여기에 막장연애드라마의 시나리오를 작성하던 여성작가들이 대거 투입되며, 배우 또한 선이 굵은 배우보다는 젊은 여성층에게 인기있는 선이 가늘고 여린 배우나 아이돌들이 투입되게 된다.어쨌든 캐릭터성에 의존해서 간지러운 연애극을 찍으며 아이돌 예능 보듯이 시나리오를 짜니 역사 덕후는 물론 기존의 사극 남성 시청자들은 뒷목을 잡는 중. 나라가 뒤바뀔 정도의 사건이 십대의 연애 싸움으로 포장되는건 다반사다. 대사도 하오체가 아니라 지위고하 막론하고 요즘애들 말하듯 평어체로 말해서 "이건 옷만 바꿔입은 현대 멜로물이지 사극이 아니다."라는 말까지 듣는 지경.

물론 이런 사극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지 않은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이 설정 정도로 물러나고, 대신 캐릭터성에 의존했지만 좋은 평가를 받은 드라마들도 있다. 대장금이나 추노처럼 좋은 평가를 받은 드라마도 있으며, 공주의 남자처럼 퓨전사극임에도 정통 사극을 자처하는 것들보다 역사적 인물에 묘사가 충실하다는 평을 받은 드라마도 있다.

역사적 배경을 설정으로 넣고, 새롭게 창조된, 혹은 재해석된 인물들로 트렌디한 드라마를 제작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창작을 넣더라도 역사적인 큰 틀은 변경하지만 않으면[45] 역사왜곡이라고 까이진 않기 때문이다 . 문제는 역사적으로 극적인 사건을 배경으로, 그 중심인물들을 왜곡하며 사극이라고 장난질을 하는 것. 정통 사극보다는 현대적인 트렌디 드라마에 익숙한 젊은 여성 시청자층을 '쉽게' 공략하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인다. 특히 그 역사왜곡과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이 큰 문제이다. 뭐 사실 이러한 문제는 퓨전 사극만의 문제만은 아니다.

특히 더이상 픽션이라고 옹호하기 힘든 인물들이 나오는 드라마가 나오고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무리수를 두어도 역사가 어떻든 사극이 어떻든 연예인은 예쁘고 나만 재밌으면 된다는 옳지 못한 행태가 일반인에게 널리 퍼졌다는 것을 보여주며 단순한 재미를 위한 사극의 문제에 심각성을 보여주었다. 방송사 중에서 이런 문제점이 심한게 MBC 사극 기황후 시점으로 MBC 사극은 사극이 아닌 왜곡물이라고 봐야 한다고 주장이 나온다

8. 자주 듣는 단어들

----
  • [1] 단순히 누가 언제 있었고, 언제 어떤 사건이 언제 일어났다는 것 정도가 아니라 그 시대의 주도적 인물이 어떤 생각을 했는가나 당대인들이 뭘 입고 뭘 먹었는가 하는 것까지를 포괄한다.
  • [2] 1990년대까지 방영된 사극, 예컨대 용의 눈물같은 경우가 여기에 포함된다.
  • [3] 단순히 극의 재미를 위해 그 시대의 일반적인 시대상을 왜곡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대왕 세종 또는 여인천하.
  • [4] 이 부류는 엄격하고 정밀하게 따진다면 사극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 [5] 대표적인 경우론 2000년대 후반 드라마들로 선덕여왕(드라마), 주몽(드라마) 등이 있다.
  • [6] 요즘 사극들이 워낙 고증을 안들호로 보내버려서 과거미화에 힘입은 것도 있지만 고증을 꽤 잘하기는 한 편. 근데 사실 허준 이전까지는 트렌디 사극, 퓨전 사극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고 어설프게라도 고증을 하고 보는 게 대세였다.
  • [7] 고당전쟁도 삼국통일전쟁의 일부이고 무엇보다 마지막에 고구려가 망한다.
  • [8] 어쨋든 마지막에 백제를 멸하는것까지 다루기는 하니까....
  • [9] 이 시기를 다룬 작품중에서는 삼국통일전쟁과 나당전쟁 모두를 관통하는, 삼국통일전쟁의 정석이라 할만한 작품인데도 정작 삼국통일전쟁은 후반부에 급하게 휘몰아치고 끝냈다.
  • [10] 가령 정도전(드라마)/역사적 사실과의 비교 항목이나 징비록(드라마)/역사적 사실과의 비교 항목을 보면 작중 자잘한 에피소드마다 일일이 남아있는 기록과 드라마 내용을 대조하고 있다.
  • [11] 임진왜란 못지 않게 크고 참혹한 외적의 침략이었던 여요전쟁, 여몽전쟁, 병자호란 같은 경우 사극 소재로 그다지 다루어지지 않는 편인데, 거란, 몽골, 만주족이 현재 민족 자체가 존재하지 않거나 별다른 민족감정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지금도 대한민국과 경쟁관계인 일본과 달리 드라마 내에서 아무리 적으로 띄워도 주목받기는 어렵다.
  • [12] 사실 조총을 위시한 화승총에서도 격발 문제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요소가 있는데, 현재 대한민국 사극 내용을 봐서 그러한 점까지 고증하라는 것은 사치를 넘어 불가능에 가깝다.
  • [13] 죽을 때가 한참 지났는데도 멀쩡하게 살아있었던 대조영의 설인귀와 걸사비우가 대표적
  • [14] 대표적인 예가 허준의 유의태. 유의태로 추정되는 '유이태'라는 인물은 150년 후 숙종때의 사람이다. 허나 이 경우에는 원작 소설 자체가 이런 오류를 가지고 있으므로 원작 충실에 따른 어쩔수 없는 오류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 [15] 인조와 원균, 명성황후의 공통점은 각본가 입장에서 미화를 시켜야 드라마틱한 갈등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여겨진다는 점이다. 많은 잘못된 정책을 펼친 바 있는 인조나 선량하기 짝이 없는 영웅을 사사건건 모함하는 무능의 극치(원균)나 망국의 위기에서 부정축재에 여념이 없었던 국모 같잖은 국모(명성황후)로 시청자들이 흥미 있게 볼만한 플롯을 만들어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 [16] 극 전개라기 보다는 한국에서 먹히는게 이런 멜로계열의 드라마다 보니 시청률을 위해 그런 측면이 크다.
  • [17] 대표적으로 삼국시대에는 없었을 '하나의 민족' 언급을 들 수 있다.
  • [18] 고전소설이나 만화를 재창작한 것으로 봐야하는 쾌도 홍길동이나 일지매, 일종의 가정을 바탕으로 하였다고 봐야 하는 바람의 화원 등.
  • [19] 예를 들어 조선왕조실록이 공유되기 이전 사극들에는 야사나 연려실기술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내용이 많이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양녕대군이 의도적으로 세자 자리를 포기했다는 설.
  • [20] 간단히 말해, 아예 공격측과 수비측의 자리를 바꾸었다.(...) 답이 없다.
  • [21] 사실 한국 사극의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건 제작비와는 상관 없이 순수하게 연출자들의 소양 문제다.
  • [22] 아닌 게 아니라, 실제로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따온 듯한 액션이 자주 보였다. 화살로 적 찌르기라든가...
  • [23] 두 양요에서 프랑스, 미군 전사자는 열명도 채 안된다.
  • [24] 명량해전 당시 안위의 판옥선에서 백병전이 일어났지 대장선에서 백병전이 일어나진 않았다. 애초에 이순신 장군의 주요 전략은 원거리 포격전이다. 왜군이 근접전을 잘하는데 판옥선에 도선하면 조선 수군이 불리해지니까.
  • [25] 참고로 난중일기에 나오는 명량해전에서 조선군 대장선 전사자는 두명이며 조총에 맞아 전사했다.
  • [26] 사림파 집권 이전까지는 당파를 만든 것만으로 정치적 범죄가 성립되었다. 기묘사화에서 조광조과 뒤집어쓴 죄목도 일차적으로는 당파죄다. 물론 '당파'라는 것의 기준이 엿가락이지만...
  • [27] 연개소문, 태왕사신기 등.
  • [28] 일본 사극도 고증에 충실하긴 하지만 촌마게를 젊은 배우들이 싫어해서 고증에 철저하지 않는 매체에서 덥수룩한 산발의 낭인으로 설정이 애용된다.
  • [29] 대체로 용의 눈물대왕 세종은 조선 전기를 다루면서도 시기에 맞는 고증을 하고 있다.
  • [30] 실제 무관들은 훈련이나 비상사태, 전시에만 갑주를 입었지, 평상시에는 궁궐에서 무관용 조복을 입고 다녔다.
  • [31] 중국사에 숱하게 등장한 독재자들을 묘사한 부분중에 빠지지 않는 것이 궁에서도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다닌다는 표현이다. 그만큼 비정상적인 행동이고 상식 밖인 행동이라는 뜻.
  • [32] 삼국지를 주제로 한 드라마에서도 궁안에서 갑옷입고 칼차고 다니는 인물은 동탁뿐이다.
  • [33] 고려말 활의 달인으로 이름을 날린 이성계도 온몸을 철갑으로 감싼 왜구 적장 아기발도를 그냥은 죽일수가 없어서 부장과 함께 화살로 면갑줄을 맞춰서 벗긴후에 맨얼굴을 쏴서 죽였다.
  • [34] 안악 3호분의 대행렬도를 보면 창보병이 12명, 도끼병이 10명, 창기병이 8명, 궁보병이 8명, 검보병이 4명이다.
  • [35] 1528년 출생, 1588년 사망. 그러니까 임진왜란 바로 전 시대의 사람이다.
  • [36] 추노뿌리깊은 나무에서는 그래도 이 점에 대해 제대로 고증이 들어간 편인데, 뿌리깊은 나무의 경우에는 띠돈으로 허리에 차기도 하고 손으로 들기도 하는데 운검의 경우 손으로 칼을 잡는 경우도 흔했다. 다만 문제는 칼을 두 손으로 받쳐들어야 맞다는 것이지만... 일단 허리춤에 패용하는 것이 나오니 잘 고증했다고 볼 수 있다.
  • [37] 칼집이라는 건 유사시를 대비해 날을 항상 날카롭게 관리해야 하는 칼을 보호하기 위함도 있지만 반대로 날카로운 칼에 인명이 상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존재한다. 때문에 칼이 딱 들어맞도록 만들며 사극에서 흔히 들리는 철커덕 거리는 소리도 나지 않는다.[46] 반대로 그런 소리가 날 정도로 헐렁하다면 애초에 칼집의 존재 의미가 사라진다.
  • [38] 명중한 부분이 예를 들어 성벽이어서 돌 파편으로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포탄 자체가 터져서 피해를 주는 걸로 묘사된다. 불멸의 이순신에서 전투신을 잘 보자.
  • [39] 그 이전에 명도전, 반량전을 비롯해서 중국돈이 쓰인 흔적은 보인다.
  • [40] 그럴수밖에 없는게 화폐를 사용하려면 농업 생산량이 늘어나고 상업이랑 각종 산업이 발달해야 하는데 이때는 그게 아니었다. 화폐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조선 후기는 이양법의 확대로 농업생산량이 증대되어 상업을 비롯한 각종 산업이 발달되니까 화폐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 [41] "주막이 등장한 것은 조선 후기(정확하게 말하자면 현종 이후 쯤으로 짐작된다)때부터일 것이다. 주막은 상공업의 발달을 전제로 해야 한다. 과연 임진왜란 이전에 지방 곳곳에 주막이 출현할 만큼 상품경제가 발달했을까?" ─ 《조선의 뒷골목 풍경》, 강명관
  • [42] 단지 1995년에 출간된 민담집인 '보배쌈지'(황구연 저)의 가장 마지막 에피소드인 삼계탕에 거의 비슷한 방법의 진맥법이 나오기는 한다.문제는 해당 저서가 '민담집'이란 이름답게 거의 야사에 가까운 이야기들을 모아둔 책이라는 점.게다가 해당 에피소드 내에서도 등장인물의 뛰어난 면모를 두드러져보이게 하기 위해 사용한 장치로,실타래 진맥이 '일반적인 방법이 아닌' 점을 이미 보이고 있기 때문에..
  • [43] 물론 가끔 실제 가능했다는 인물도 있긴 하지만, 당연히 극소수인 데다가 전설 같은 이야기다. 역참제를 이용한 파발정도나 가능?
  • [44] 요즘 나오는 담배인 시갈렛이 아니라 곰방대다.
  • [45] 아예 사건전개가 바뀌거나 사건전개의 중요한 인물이 사라지거나 하는 등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3-28 17:36:33
Processing time 0.0031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