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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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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주요 학생운동 단체
대협
1992년
해산
한총련
2011년
이적단체 지정
한대련
활동중


줄다리기.jpg
[JPG image (87.82 KB)]

[1]
[2]


Contents

1. 개요
2. 한총련의 구성 및 성향
3. 한총련의 한계와 비판
4. 한총련의 현재

1. 개요

대한민국대학생 단체. 흔히 줄여서 "한총련"이라고 말한다.
공식 웹사이트는 http://hcy.jinbo.net/zbxe/ 였지만 2011년 8월 26일자로 방송통신위원회의 명령으로 홈페이지 폐쇄. 사유는 이적단체 판결. 공식 웹사이트상에서는 한국대학총학생회합으로 나오고, 페이지 제목은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으로 나오는 등 두 표기방법이 혼재되어 있다.

1980년대 학생운동을 이끌던 대협을 계승하여 1993년에 구성되었다. 1997년 대법원에 의하여 이적단체로 규정되었다. 표어는 창립시에는 '생활·학문·투쟁의 공동체'였으나 1995년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는 불패의 애국대오'로 변경하였다.[3]

현재는 안습의 극치. 전의경의 주적이었던 것도 같지만 현재 상황을 보자면 초라하기 그지없다.

2. 한총련의 구성 및 성향

기본적으로 한총련은 의장 아래 대의원을 직선 총학생회장, 단과대 학생회장들로 구성한다. 원칙적으로 한총련은 대학생들을 대표하는 단체로서 중립이어야 하나, 1994년 조문논쟁과 주사파 파동이 있은 후에 자주대오가 압도적으로 우세하게 된다. 이에 따라NL계열이 절대 다수파를 확보했고 조국통일을 지향하는 등 실제적인 성향은 NL(그중에서도 강경파)로 변모하게 된다.

지역별로는 서울(서총련), 강원(강총련), 경기인천(경인총련), (충청총련), 광주전남(남총련), 전북(전북총련[4]), 대구경북(대경총련), 부산경남(부경총련)으로 지역별 총학생회 연합이 있으며 각 지역총련별로 지구를 둔다. 제주(제총협)지구는 지역적 특수성으로 지역총련과 동격인 특별지구로 한다.

3. 한총련의 한계와 비판


han.jpg
[JPG image (55.76 KB)]

96년 연세대 사태, 일명 한총련 사태 당시 사진. 저 사건 전이나 후나 저와 비슷한 일을 수도 없이 저질렀다. 물론 가면 갈수록 장비가 진화돼 감에 따라 강도는 더더욱 심해졌다.

반독재 민주주의를 지향하지만 자신들의 조직이 대단히 수직적이고 권위주의적이며, 남자 간부들은 매우 가부장적인 가치관을 가진 경우가 많다. 일부 간부들은 잘못된 여성관을 입밖에 함부로 내뱉어 여러가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예를 들면, 경찰에 체포를 당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에, 학교 밖으로 나갈 수 없는 남성 운동원(특히, 자신과 같은 간부들)을 위해 여성 운동원들은 성(性)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는 개소리를 내뱉는다던지... 한마디로 위안부나 하란 소리다. [5] 사실 저건 한총련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일부 좌파세력, 특히 NL계열의 문제라 타 진보주의자(특히 PD계열 단체)와 자유주의자들이 이를 엄청 까대기도 한다. 극과 극은 통한다.

그리고 더욱 심각한 문제로, 주장하는게 정권타도밖에 없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 민주당 이 집권을 하였음에도 이적단체 규정을 해제해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여전히 정권타도만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웠으며, 전경의 여학생 성추행 사건이 발생하였을 때 그것이 명백히 해당 전경 개인의 자질문제임에도 당시 모 대학 한총련 계열의 한 총여학생회 후보의 캐치프레이즈가 반여성적 정권타도 였을 정도로 80년대에 사용하던 정권타도라는 도그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심각한 병크를 보여주었었다. 더군다나 저 캐치프레이즈는 평소 한총련 간부 본인들의 극 가부장적 성향과 여성관에 반대되는 것으로, 정권타도만 주장할수 있다면 말도 바꾸는놈들이란 인식을 심어주었다. 이래서 사람은 평소 처신을 잘해야 하는거다

우선 종북적 성향을 가진 대학생 단체라고 비난받고 있으며 일부 대의원과 중앙집행국원들은 주체사상을 추종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는 진보 세력 내에서 종북주의자 논쟁과 더불어 큰 떡밥으로 작용하고 있다.

NL의 특성상 전체주의적 요소를 강요하기도 하며 학생회의 권한을 중시하기 때문에 직선 학생회가 세워지지 않으면 가입 자체가 불가능하다. [6]

한총련은 이름으로는 총학생회 연합이나 상명하달는 구도로[7], 96년 연세대학교 사태 이후에는 PD 세력이 아예 따로 나오는 한총련 탈퇴 파동이 있기도 하였다. 이는 97년 이석 구타 살인사건 이후에도 이어져 사실상 소수단체로 전락하게 된다.(그렇다고 영향력이 아주 없어진건 아니지만)

이름 그대로 총학생회 연합으로 각학교 학생자치단체장을 회원으로 하나 지도대상은 가입한 각 대학 총학생회에 소속된 개별 모든 학생으로 하고 있는 좀 야리꾸리한 형태를 하여 학생들에게 자신들의 룰을 따를 것을 강요한다. 그 이유는 직선의 직선으로 당선되었기 때문에 직선이나 다름없다라는 원시적인 이유이다. [8] 그렇기 때문에 학생은 자신이 투표한 직선학생회장의 판단에 책임을 지고 직선학생회장의 투표권 행사로 세워진 한총련의 행보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 저 룰을 한국 정치에 그대로 대입하면 정당과 상관없이 국회의장이 짱먹게 되는 해괴한 형태가 된다. 이 논리는 주체사상과 정확히 부합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수파인 PD계열과는 항상 대립하였다, 그리고 학생회에 지나친 권한을 부여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친 한총련계 학생회를 세우려 하는 문제점도 비판받았다. 만약 비 운동권및 한총련에 반하는 학생회장 후보가 선거에 출마하면...? 정말 수단 방법 안 가렸다. 선거운동 차원에서도 다굴 치고 물리적으로도 치고(...) 나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나간 다음이 문제.

등록금과 같은 대학생의 문제에 대한 투쟁 대신, 반미 운동 등 기성 정치에 치중한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건설적 비판과 소수 의견이 전체 대학생을 대표한다는 미명 하에 묻혀진다는 점이고 이는 한총련의 노선을 필요 이상으로 강경하게 만듬과 동시에 일반 학생들도 등을 돌리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일년 스케쥴을 짜는 데 있어 각 대학교 학생회의 현안과 입장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빡빡하게 짜서 하달하기 때문에 각 대학교 학생회가 학생복지 및 당면 현안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게 되어 학생회가 제 기능을 못하는 문제점도 컸다.

물론 이들이 대학교 현안에 매달린다고 해봐야 뭔가 해결될 거라고 생각한다면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일단 건설적 비판과 대안이 막혀있다. 즉 학생복지를 향상 시키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는 얘기. 그냥 닥치고 해대는 강경 일변도의 투쟁으로 얻어내는 게 있나 의심스럽다. 무엇보다 이들이 잡고 있는 학생회는 정말 거짓말 안하고 일년 내내 반미, 파업, 정치 투쟁하느라고 바빴다. 그럼 학교 현안은.....가끔 잊을 만하면 해주기는 한다.(반미, 파업 등에 들이는 공에 10분의 1도 안들이는 데다가 왠지 하다 마는 듯한 느낌이 강한건 착각이다.) 참고로 학교 밖이 아니라 학교 안에서의 얘기다. 학생회장 선거 공약마저도 주한미군을 몰아내겠습니다., FTA 반대 가 있었다. 본질적으로 학생의 권리와 자치를 위해 뽑아주는게 학생회장인데 주한미군 몰아내기와 FTA반대가 그거랑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문. 대한민국이 전체주의 독재국가에서 탈피한지 이미 오래된 시점까지도 '학생=혁명의 기수'란 구세대적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외 각종 학생자치와는 무관한 문구도 포함돼있었다. 이거 없으면 무슨 죽일 놈 취급이라도 받는 듯이.

해마다 대한민국 국토를 남쪽에서 북쪽으로 훓어주면서 각 미군기지 앞에서 폭력 사태를 벌였다. 이때 동참해 주는 건 민주노총과 그 관련 단체들. 참고로 전의경 1년 행사(?)중 제법 큰 것이 이 통일선봉대와의 싸움질이다. 그 외에 가장 큰 행사는 5월 노동절 대회와 11월 농민의 날 및 노동계 하반기 투쟁.
그외 한총련의 깃발을 볼 수 있는 곳은 각종 파업 등 큰 시위 판이다. 거의 꼬박꼬박 나온다. 그중에서도 확실하게 볼 수 있는 곳은 폭력시위다. 티비에 나올 정도로 큰 폭력시위라면 100% 확률로 이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4. 한총련의 현재


정말 상큼하고 깔끔하게 망했다.

이들이 한국 학생운동에 끼친 영향은 긍정적인 면, 부정적인 면 양면 모두에서 엄청나기 때문에 학생운동의 대명사로 남아있긴 하다. 그러나 현재의 한총련은 사실상 껍데기만 남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연대사태로 존립기반이 흔들리던 한총련은 제5기 집행부 출범식을 무리하게 강행하는 과정에서 이를 진압하던 전경 1명을 숨지게 한 데 이어, 지나가던 선반공을 프락치로 오인하고 집단폭행해서 살인한[9] 연속 병크를 작렬시키며 좆망 테크를 타기 시작한다.

PD계열 대의원들은 1997년 연대사태를 전후로 떨어져나와 전국학생회협의회(전학협), 전국학생연대회의(2005년 전국학생행진으로 개칭)을 구성했다. 전학협은 2004년 해소하여 현재 사회당 학생위원회나 대학생사람연대 등 서클 중심의 단체로 바뀌었다. 이외에도 학생사회주의정치연대(학사정연), 다함께 등등 다양한 집단으로 떨어져 나왔고, 비운동권이 당선된 학교는 곧바로 한총련 탈퇴 루트를 타는 현상이 발생했다.

여기에 대학등록금 인상과 기숙사 및 하숙비 인상 등으로 갈수록 경제난에 시달려서 정치나 사회에는 크게 무관심해진 요즘 대학생 및 젊은이들의 입장과 더불어 경제호황기 시절이었던 전성기 때와는 달리 크게 말라버렸다는 혹평을 받았다. 또 1993년 대통령 김영삼의 문민정부, 1998년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2003년 노무현의 참여정부 등 민주화를 지향하는 정부가 출범하면서 과거 전두환, 노태우 시절의 정권과는 다른 성향의 분위기까지 더해져서 한총련의 지위도 점차 말라들었다는 것. 게다가 1997년 문민정부 임기말에 일어난 IMF 구제금융기와 실업난과 경제난으로 대학생들의 미래까지 암담해지게 되면서 이 때를 계기로 대학생들의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매우 낮아지게 되었던 계기까지 맞게 된 것도 원인이었다.[10]

그래도 한총련이란 조직은 21세기 초반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고, 조직력도 상당했었다. 그러나, 2003년 혁신계열인 연세대 총학생회장이 한총련 의장으로 취임하면서 "새로운 학생운동단체 수립"을 내걸었고 이후 정통계열인 NL 비선과 정통계열에서 개량화된 NL 혁신과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결국, 2006년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이 구성되면서[11] NL 혁신을 주축으로 한 대다수의 한총련 가입 학교는 한총련을 탈퇴하고 한대련으로 활동 범위를 옮겼고, 정치적 한계로 소수화된 NL 비선 중에서도 선두급이었던 전남대 총학생회조차 한총련을 탈퇴하고 한대련으로 이적(?)하였다. 한총련이 이적단체여서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활동이 어려웠다는 점도 한 몫 했다. 그런데 이런 걸 보면 요새도 이적단체 컨셉을 유지하고 있는듯. 참고

결국 지금은 극히 소수의 학교(혹은 단과대학 학생회)만이 한총련에 남아 있다. 남아 있는 동네도 썩 잘나가지 못한다. 레알 망했어요.

대표적으로 서울대학교 공대나 자연계는 확고한 한총련 지지파이나, 03-04학번 이후로 자연대에서 운동권은 소멸했다. 이유는 04학번이 단대 학생회장을 맡을 때 자연대 학생들의 의견수렴을 하지 않고 멋대로 성명서를 발표해 자학대회[12]에서 탄핵발의 되는 사건이 있었고 (탄핵발의와 탄핵은 다르다. 당시 연서를 받아 탄핵 발의만 되었고 실제 탄핵을 하는데 필요한 정족수인 대의원의 3분의 2가 모이지 않아 탄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그 뒤로 09년도에 단대 학생회가 들어설 때까진 자연대는 학생회가 없었다. 공대쪽 역시 큰 영향력은 지니고 있지 않은 듯. 그래도 몇 년 동안이나 단과대 학생회를 차지하는걸 보면 죽지는 않은 모양이다.[13]

어쨌거나 현재는 한대련이 사실상 한총련의 위치를 이어 받았다고 할수있다. 한대련은 이적단체로 규정되진 않았으나, 아직도 이적단체의 영향이 남아있기 때문에 국가정보원이나 경찰, 검찰 등에서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리고 2011년 8월 26일, 방송통신위원회의 명령에 의해 사이트가 폐쇄되었다. 호스팅 업체는 폐쇄 조치에 이의를 제기했지만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조치가 적법하다고 판결하였다.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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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미군 스트라이커 여단의 훈련중 난입한 한총련 학생들. 미군의 제지로 끝나기는 했지만 당시 장갑차와 실탄등까지 동원된 훈련이란 점에서 엄청난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고한다
  • [2] 2003년 여중생 장갑차 사고 사망 사건으로 인해 분위기가 악화된 상황속에서 났던 사건으로 도가지나쳤던 행동에 한총련의 본격적 내리막길을열게 된다.
  • [3] 이 표어의 변경은 한총련 주도 세력의 변화와 관련이 있다.
  • [4] 90년대 말을 전후해서 전북총련에 소속된 인물들이 한총련 쇄신운동을 벌이다가 한총련을 탈퇴하면서 극우로 전향(...)해 이른바 뉴라이트의 시초가 되었다.(이때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이 손 좀 썻다는 후문이 있다.)
  • [5] 이를 실제 행동으로 옮겼다는 이야기가 80년대부터 이어내려져 왔고 당했다는 여학생들의 증언도 간간히 들렸으나 사실 확인된 것이 없기 때문에 그냥 카더라 수준이다.
  • [6] 한총련은 학생회 연합단체이기 때문에(이는 전대협에서 이어져온 정통이다. 문제는 한총련으로 이름을 갈아엎었는데도 이 규정을 없애지 않았다는거지만) 일단 회원은 한총련 대의원을 직선 학생회장으로 두고 있는 단위의 대학생 전체다. 예를 들어 A대학교는 한총련에 가입해있고 A대학교 총학생회장이 한총련 대의원이라면 이론상으로는 A대학교 학생 전원은 한총련 회원이다. 회비의 경우 회원이 지불한 학생회비에서 일정 금액을 대학별로 분담금을 부담하는 것으로 한다. 개인 자격으로 한총련에서 활동할 수는 있지만 대개는 대의원을 겸하고 있으며 이는 회원 여부와는 상관 없다. 직선 학생회가 세워지지 않은 경우, 예를 들어 비대위가 건설되었을 때 대의원의 자격은 잃지만 활동은 계속할 수 있다.
  • [7] 하지만 의아하게도 (명목상으로 가장 높은)한총련 회장이 별로 손을 쓸수 없었고(...) 실질적으로 20~30명 정도의 집행부와 의원들이 물밑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했다고 전해진다. 물론 그에 따른 대가로 "의장님"이라고 존칭을 붙히며 엄청나게 대해주긴 했지만 한총련이 이적단체로 전락하면서 이 메리트도 없어졌다. 이는 한총련 회장에 당선되는 순간 바로 공개수배되기 때문(...)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이명준 저) 참고
  • [8] 직선의 직선으로? 그러면 이른바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직선'으로 뽑을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을 '직선'으로 선출한 것과 뭐가 다르지?
  • [9] 이석 치사 사건이라 알려지게 되었다##
  • [10] 전성기 시절에 활동했던 60년대와 70년대 초중반 시절의 대학생과는 달리 1997년 당시 대학생으로 있었던 70년대 중후반 시절의 대학생들부터 경제위기와 실업난이라는 중고(重苦)에 접하게 되면서 이 때부터 점차 대학생들의 정치 및 사회운동 참여가 저조해졌다는 일설도 있다. 이 당시 대학생들은 IMF 구제금융 위기와 기업들의 구조조정이라는 악재까지 겹쳐서 직업진로나 미래에 대한 암담함과 우울함이 다른 때의 대학생들과 매우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여기에 그 당시 존재했던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거나 망하게 된 것도 원인이 된 것.
  • [11] 단, 한대련이란 조직 자체는 2003년부터 있었다.
  • [12] 자연대 학생 대표자 회의를 부르는 말, 대개 단과대 학생 대표자 회의는 그 단과대학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지는데, 자연대라서 자학대회. 물론 여기에는 자조의 뜻이 담겨있다.
  • [13] 참고로 서울대 총학생회는 전통적으로 PD계열이 강세였다. 서울대는 한창 한총련이 흥하던 90년대 중반에도 한총련은 물론 NL계열이 한 번도 수권하지 못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즉, 서울대 총학생회는 역사적으로 단 한 번도 한총련에 속하지 않았으며 주요 대학 가운데 한총련 계열이 가장 힘을 쓰지 못하는 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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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3-09 21: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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