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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자프로농구

last modified: 2015-01-15 09:47:06 by Contributo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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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국민은행 2014~2015 여자프로농구

대한민국의 농구 리그
한국프로농구 한국여자프로농구(WKBL)

Contents

1. 개요
2. 출범 배경
3. 탄생
4. 성장
5. 팬덤
5.1. Inside WKBL
5.2. WKBL JJANG
5.3. I Love WKBL
5.4. 디씨인사이드 한상진 갤러리
5.5. 디씨인사이드 여자농구 갤러리
6. 가맹팀

1. 개요

1997년 2월 24일에 창립해 1998년 7월 28일에 첫 리그를 연 한국의 여자 농구 프로리그. 약칭은 리그 주최 기구인 한국여자농구연맹 이름을 따서 WKBL.[1]

2. 출범 배경

1990년대 들어서면서 하향세를 그리기 시작한 여자 농구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규모에 비해 13개로 많았던 실업팀의 구조조정부터 시작해 갈수록 입지가 줄어든 여자 농구의 입지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세미프로 형태로 리그를 만들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딱히 인기가 없던 여자 농구에 굳이 돈을 쓸 필요는 없었고, 선수 입장에서도 굳이 안정적인 직장을 잃어가면서 프로 선수가 될 필요는 없었다. 남자 농구의 경우, 1990년대 농구대잔치의 엄청난 인기로 인해 기업도 돈이 된다고 뛰어들었고, 선수들도 실업팀 급여보다 더 많은 돈을 원했던 상황이었지만, 여자의 경우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말은 나왔지만 계속 지지부진한 상황이 이어졌다.

하지만, 1997년 찾아온 외환위기는 여자 농구의 프로화를 촉진시켰다. 경제 위기로 인해 13개나 달하던 팀이 순식간에 5개로 줄어들면서 이제는 프로화를 통해 이슈를 부각시키지 않으면,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든 것이다. 그래서 지지부진하던 프로화 작업은 순식간에 이뤄졌다.

3. 탄생

출범 당시에 엄청난 우여곡절이 있었다. 어차피 13개 팀을 다 끌고 갈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선수층의 향상을 위해서도 몇 팀은 해체되는 것이 맞았는데, 문제는 그 속도가 너무 빨랐고, 해체되는 팀의 수가 너무 많았다는 점.

  • 1997년 4월 3일 : 보그룹 부도 사태로 치명타를 입은 제일은행 여자농구단이 해체. 이 때만 해도 어차피 프로화에 금융권 팀이 동참하기 어렵다는 것을 남자 농구를 통해 봤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 1997년 8월 11일 : 태평양 여자농구단이 신세계로 넘어갔다. 이 때까지는 괜찮았다.

  • 1997년 11월 19일 : 국화장품 여자농구단 해체. 실업팀의 첫 해체였다.

  • 1997년 12월 2일 : 코오롱 여자농구단이 27년의 역사를 끝으로 해체되었다.
  • 1997년 12월 12일 : 외환은행 여자농구단이 해체되었다.

  • 1998년 1월 23일 : 대웅제약 여자농구단이 농구대잔치 도중 해체를 통보했다.

그래도 이 시점에서는 13개팀이 8개로 줄어든 상황이라 그래도 버틸만 했다. 애당초 프로화에 동참한 삼성생명, 대산업개발, SK증권, 신세계, 신용보증기금 정도에 한 두 팀, 이를테면 국민은행 정도를 끌어들이면 해 볼만하다고 본 것. 그래서 1998년 2월에 첫 리그를 출범시킬 계획이었다. 그러나...

  • 1998년 2월 10일 : 1997-98 농구대잔치 우승팀 SK증권이 우승 다음 날 해체를 통보했다.

이 결정이 치명타였다. 프로에 동참하기로 약속한 SK증권이 돌연 해체를 선언해 버린 것. 이 결정은 여자 농구의 쇠락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사례였는데, 왜냐하면 바로 직전에 SK그룹이 남자농구의 진로 카스를 무려 250억에 인수해서 SK 나이츠를 창단했기 때문이다. 남자농구는 신생팀[2]도 250억에 팔리는데, 여자농구는 우승팀도 버려지는 상황...미약하게나마 돌아가던 프로화 움직임은 여기서 올스톱이 되었고, 팀이 무더기로 해체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서울은행의 해체 선에서 간신히 수습하고, 해체 선수 드래프트를 했는데, 1순위인 정진경이 신용보증기금행에 대해 불복하고[3] 대만으로 떠나면서 열받은 신용보증기금이 7월 30일에 팀을 해체시켰다. 이로서 5개로 팀은 축소.

그나마 사정이 나은 금융회사였던 국민은행은 팀을 존속시켰고, 공적자금이 들어간 상업은행은 가장 오래된 여자 농구팀이라는 그 타이틀 때문인지 차마 팀을 없애지 않고, 결국 프로화에 동참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1998년 7월 28일에 리그가 처음 시작되었다. 하지만, 한 번에 8개 팀이 해체되면서 나온 선수들은 다 흡수할 수 없었고, 이는 그 무렵에 졸업한 선수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7명의 고교 졸업생들은 대만으로 귀화해서 농구를 이어가는 참담한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다.

4. 성장

대한농구협회와 갈등도 빚었지만, 어차피 무더기 팀 해체과정에서 무력했던 농구협회를 생까고, 농구인들에게 존경받던 이성구 선생[4]을 회장으로 추대해 일단 출범은 했고, 그 뒤로 성장을 위해 당시 집권당 새천년민주당의 중진의원이던 김원길를 총재로 영입했다.

원길 총재는 다른 협회의 수장들에 비하면 능력이 있는 편이었다. 이성구 선생의 잔여임기 3년은 물론 세차례 더 연임하면서 1999년부터 2012년 4월까지 재직한 김원길 총재 아래서 여자 농구는 최소한의 생존 가능성을 살리는데 성공했다.[5]

발전기금을 모으고, 스폰서나 경품 협찬을 땡겨오고, 리그 운영의 원칙을 세웠다.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대회 타이틀 스폰서를 가맹 팀들이 돌아가면서 맡는 원칙이 세워졌고, 선수들의 연봉과 FA가 틀이 잡혔으며, 여자 농구 유망주 육성을 위해 기금을 모으기 시작했고, WKBL 회관을 만들었고, 자체 방송국인 WKBL TV도 만들었다. 참고로 김원길 총재는 시즌 때 말 그대로 매일 농구경기 관람할 정도로 열정적인 분이다. 노친네가 남시스럽게 시상식때 전주원 입술 가까이에 뽀뽀할정도로 전주원 광팬이기도 하다 # 그리고 무엇보다 김원길 총재 체제의 가장 큰 업적은 호생명 농구팀을 만들어 팀을 여섯 개로 늘리는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이로서 멸망 직전까지 갔던 여자 농구는 극적으로 회생하는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김원길 총재는 정계에서 물러난 이후 구단에 영향력을 거의 행사하지 못했고, 7구단 창단이 유력했던 교보생명 창단에 실패했다. 게다가 장기집권으로 인한 피로도가 누적되며 슬슬 교체여론이 힘을 받고 있었다. 결국 신세계 해체라는 최악의 상황과 이를 전혀 수습하지 못하고 우왕좌왕대는 모습을 끝으로 쓸쓸하게 퇴장하고 만다.

외국인 선수 제도는 초창기에 중국 선수를 영입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 뒤 KBL 처럼 드래프트와 자유 계약 선발제를 반복하면서 외국인 선수들을 영입했다. 그런데 점차 너무 수준높은 외국인 선수[6]가 오면서 국내 선수의 기량 발전이 정체된다는 지적이 있자, 2007-08 시즌[7]부터 외국인 선수 제도를 아예 폐지했다. 그래서 한국의 여타 프로 스포츠 중에서 외국인 선수가 뛸 수 없는 유일한 리그다.[8]

어쨌든 한국의 여타 여자 스포츠 중에서는 그나마 성공적으로 살아남은 축에 속한다. 다만 2000년대 후반부터 신한은행의 독주 체제가 형성되면서 결과가 뻔하다는 고민은 계속 남고 있다. 시청률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결과가 뻔하면서 모기업들의 관심도가 현저히 낮아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한 것. 심지어 단골 우승팀인 신한은행도 우승을 당연히하면서 투자에 소홀하다는 비판도 나오는 실정이다. 이런 우려는 금융권 위주의 리그 운영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던 신세계의 해체 선언으로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만일 신세계가 해체되고, 인수팀이 없어진다면 여자 농구는 IMF 이후, 다시금 위기에 빠져들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결국 후임자를 찾을때까지만 재임하겠다던 김원길 총재가 계획보다 조금 일찍 사퇴했다.

그러나 다행히 새로운 총재로 최경환 전 지식경제부 장관을 추대하고, 하나은행을 끌어들이면서 신세계 인수에 성공, 일단 급한 불을 끄는데 성공했다. 대신 리그의 특성은 이제 완전히 금융권 팀들의 대리전으로 변했다. 1997-1998년 프로출범준비기간동안 프로화를 하지않고 해체한팀들이 거의 금융팀들이었다는걸 생각한다면 역사의 아이러니.

5. 팬덤

특정 팀이 아닌 WKBL 전체의 팬들이 모이는 곳은 크게 Inside WKBL과 WKBL JJANG 그리고 디씨의 여자농구갤러리가 있다.
앞의 두 곳은 다음카페

5.1. Inside WKBL

링크
WKBL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거의 다 모인곳. 카페운영진은 대개 90년대 혹은 2000년대 초반부터 여농을 봐온 사람들이다. 70년대 여농(실업시절)을 본 사람도 존재한다. 크보팬들이 몰린 곳에 비하면 평화로운 곳이라 할 수 있으나 이곳 역시 사람사는 세상...
시즌 중 심심치 않게 키배가 벌어지며 신고게시판에는 신고자와 신고당한자 간에 키배가 또 벌어진다;; 심한 경우 서로간에 전번까고 통화하여 마무리 짓는 일도 발생... 그래도 처럼 오프라인상에서 문제 일으키지 않는 것만도 다행[9]

이곳에 모인 팀별 팬들을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 신한팬들: 2000년대 초반 대 하이페리온 시절부터 응원하던 사람들과 전주원, 최윤아, 김단비 선수의 팬들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충성도도 높으며 응집력 또한 뛰어나다. 신한의 리즈시절에는 카페 내에서 신한까와 엄청난 키배를 벌였다. 그 때문인지 키배력으로는 카페 최강!! 허나 팀이 더이상 과거의 성적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 오자 조금씩 김이 빠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 팬들: 90년대부터 박정은, 이미선 선수를 응원해온 팬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농팬계에 오랫동안 발을 담궜던 이들이 많아 오래 전 일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키배력과 응집력은 신한 다음이며[10]구단에 대한 충성도는 신한 보다 더 하다. 더불어 지나친 충성도와 애착을 엉뚱한 방향으로 분출한 이들도 많다. 13년 6월 기준으로 현재까지 카페에서 강퇴 내지 경고를 받은 이들이 대개 신한 또는 삼성팬들... 참고로 유명 탤런트이자 박정은 선수의 남편 분인 한상진씨도 이 카페 회원.

  • KB팬들: 과거에는 어떠했는지 모르나, 현재는 변연하 선수를 따라 삼성에서 넘어온 팬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팀에 대한 애착이나 충성도는 삼성을 능가한다.[11]kb까가 별로 없어서 인지 키배력은 삼성보다 떨어지고 KDB팬들과 비슷하다. 다만 삼성에서 넘어온, 충성심 높은 팬들이 많기에 제대로 열받으면 삼성을 능가할 수도 있다.
    팬들이 주로 응원하는 선수는 변연하와 정선화 선수.

  • KDB팬들: 예전 금호생명 시절 응원하던 사람들은 많이 사라지고 새로이 유입된 팬들이 대다수. 하지만 케디비 팬게시판 주요 인물들은 오랜 금호팬들. 팀에 대한 애착과 충성심은 아무래도 신한과 삼성에 비하면 밀린다. 주로 한채진, 신정자 선수를 주로 응원하는 팬들이 많기에 키배가 벌어져도 응집력이 위 3부류에 비하면 현저히 밀린다. 키배에 있어 신한과 삼성이 방어 및 반격이라면 케디비 팬들은 주로 방어로 끝낸다. 하지만 12-13시즌 옥자감독의 삽질에 크게 실망한 팬들이 점점 무섭게 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요 응원선수는 한채진, 신정자, 김보미[12], 이연화, 강영숙 선수.

  • 하나외환팬들: 과거 신세계 리즈시절(90년대후반~2000년대 초반)팬들과 소수의 새로 유입된 팬들로 구성. 신입팬들과 기존 팬들이 같이 여론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 전성기 시절 이문규 감독 체재이후 신세계의 성적이 바닥을 치자 팬들도 빠져나가고 남아있는 팬들의 희망고문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마치 크보의 어떤구단팬들이 떠오른다. 대개 온순한 성향이라 키배는 잘 안 벌어지고 벌어지더라도 강하게 스파크가 일어나지 않는다. 위의 KDB보다도 더 작은 규모로 벌어지고 끝난다. 다만, 팬들의 구단에 대한 애착과 충성심은 거의 KB팬들 버금가는 수준. 전투력만 떨어질 뿐

    김정은, 김보미 선수가 가장 인기있는 편.

  • 우리은행팬들: 2000년대 중반 잘나갔을 때만 해도 많은 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정신나간 사람이 사고 친 뒤 팀이 수렁에 빠졌고, 이 꿈도 희망도 없는 기간동안 기존팬들이 썰물빠지듯 빠져나갔다. 지금은 리즈시절 팬들, 비밀번호 찍던 시절 들어온 극소수와 대다수의 신입들로 이루어져 있다. 내성적이고 점잖은 분위기라 그런지 키배에 거의 맞딱뜨리지 않고 좋게좋게 끝내는 편.[13] 신입팬들은 거의 다른팀을 좋아하다가 12-13시즌부터 갈아탄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대다수는 구단에 대한 애착이나 팬들끼리 응집력은 거의 최하이다. 카페내 팬게시판 활동이 가장 뜸하다. 심지어 12-13시즌 통합우승 당시에도 팬게시판 반응은 별로;;; 차라리 11-12시즌 희망고문시기에 팬게시판 활동이 그나마 왕성했다. 정리하자면, 13년 현재 wkbl 6개 구단 팬들 중 온라인 활동은 가장 뜸하고 선수 개개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오프라인 상에서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인기있는 선수는 김은혜[14], 양지희, 박혜진, 이승아 정도이다.

5.2. WKBL JJANG

[링크
이 곳은 Inside WKBL과 달리 카페 분위기가 삼성생명쪽에 편향되어 있다. 사실 이 카페 구성원들은 원래 Inside WKBL 소속으로 09년, 신한팬들과 키배를 거하게 벌인 뒤 Inside를 나와서 만든 곳이다. 삼성 편향과 친목질이 어느 정도 진행된 카페로 신입회원들이 낄 자리가 별로 없다. 홍보람 선수 팬들이 많으며 구단 관계자가 있는지 특정 회원들의 선정보가 며칠 뒤 점프볼에 실리기도 한다.

2014년 4월 현재 카페 회원들의 활동이 많이 뜸해졌다.

WKBL에 처음 입문하는 팬들은 되도록이면 가입하지 말자.

5.3. I Love WKBL

링크
Inside WKBL의 전신. 08년 까지 국내유일 여농카페였다. 현재 Inside와 WKBL JJANG 운영진들도 원래 이 카페 소속. 이 카페 이전에 팬진이라는 사이트도 있었다고 한다. 분위기 좋게 이어져오던 카페가 08년, 당시 운영자가 사고를 터트리면서 카페 회원들이 이 카페를 떠났고 지금은 유령카페.[15] 허나 예전 팬들이 제작한 자료들이 조금은 남아있기에 혹시 WKBL팬들의 고대자료에 관심있는 팬들은 한 번 방문해 보길(물론 가입과 등업신청은 필수다).

5.4. 디씨인사이드 한상진 갤러리

최근 여자농구 팬들의 핫 플레이스. 탤런트 한상진이 삼성생명 박정은 코치의 남편이라는 이유로 여자농구팬들이 이곳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정식 갤러리 신설도 계획하는 듯.[16][17] 이연화 선수를 갤주로 삼고있으며 전체적인 분위기는 디시답지않게 식물식물한 편이다.[18] 물론 어딜가나 어그로는 있기 마련. 경기 있는 날은 돈 날린 토쟁이들의 선수 까는 글이 꽤 많다. inside wkbl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듯. 어그로꾼이 오면 '너 인싸충이지?'하는 댓글이 꼭 달린다. 소소한 갤러들의 활동으로 시간이 늦어지면 거의 정전갤이 된다. 새벽이 되면 가끔 출몰하는 점프볼 손대범 기자 덕분에 갤이 흥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14년 4월 현재 갤 구성원은 KB팬들이나 신한팬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삼성팬들도 한 두명정도 있다.

5.5. 디씨인사이드 여자농구 갤러리


2014년 10월 말경에 드디어 여자농구갤러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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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Women's Korea Basketball League, 더 정확하게는 한국여자농구연맹의 약어가 WKBL이다.
  • [2] 진로 맥카스는 선수지명만 해놓은채 모기업이 부도가 나면서 창단식도 못한 상태였다.
  • [3] 신세계로부터 거액의 제안을 받고 입단 직전까지 갔는데, 드래프트에 포함되면서 일이 꼬였다고 한다.
  • [4] 농구원로로 행정가이자 외교관으로 농구 발전에 많은 공헌을 한 인물이다. 지금도 남자농구 모범선수상은 이성구기념상으로 이름붙여 기리고 있을 정도. 이 당시 이성구 선생의 나이는 87세였다. 2002년 타계.
  • [5] 그와 더불어 김원길 개인의 삶에도 보탬이 되었다. 김원길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 16대 대선 경선 당시 민주당을 탈당해 후단협을 만들어 정몽준 후보를 지지하다가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되자 한나라당에 입당, 2004년 17대 총선때 한나라 후보로 출마했다가 탈당 행적 때문에 총선시민연대의 낙선대상으로 선정되기도 하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 속에서 낙선했다. 총선직후 장관시절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정계은퇴를 선언하였다. 정치생명이 끝장나면서 다른 사회활동은 포기하고 여자농구에만 올인한 것이다. 야구계의 신상우 총재와는 정반대
  • [6] 타미카 캐칭과 같이 미국 현역 국가대표가 왔다. ㄷㄷㄷ 잘 이해가 안 된다면, KBL에 케빈 가넷, 케빈 듀란트, 르브론 제임스가 외국인 선수로 뛴다고 생각하면 된다. 역시 세계구급으로 유명한 호주의 렌 잭슨이 온적도 있다. 이는 미국 WNBA가 그리 많은 연봉을 주지 않기 때문에 유명 선수라도 생계를 위해 알바를 뛰어야 하는 여자 농구의 상황 때문이다.
  • [7] 이 때부터 겨울리그, 여름리그로 나눠 치르던 것을 단일 시즌으로 바꿨다.
  • [8] 2012 - 2013시즌부터 외국인 선수 제도가 부활했고 각 구단은 1명씩 선수를 영입했다. 해당 선수들은 3라운드부터 출전했다. 2013 - 2014시즌부터는 2인 보유, 1인 출전으로 바뀌었다.
  • [9] 하지만 12-13시즌 60-70대 분들 중 일부가 경기 중 나눠주는 음료수, 상품 등을 갈취했다는 목격담이 Inside WKBL 카페에 올라왔다.
  • [10] 위에 기술한 신한 리즈시절, 신한까들의 선봉을 맡았다.
  • [11] 대표적인 예로 11-12, 12-13 시즌 올스타 팬투표율을 보면 국민은행 선수들은 기본 1만표를 넘는다.
  • [12] 13년 FA당시 하나외환으로 이전하면서 과거가 되었다.
  • [13] 사실, 이 카페가 생기고 나서 우리은행에 시비건 글이 거의 없었다.
  • [14] 13년 5월 은퇴하면서 과거가 됨. 사실상 우리은행에서 가장 인기 높았던 선수였다.
  • [15] 13년 초 어떤 사람이 새로이 운영자를 맏으면서 다시 시작해보려 하는것 같지만 아직은... 카페 대문만 봐도 07-08시즌 때 그대로이다.
  • [16] 2014년 3월부터 갤신갤에 많은 글을 올리고 있다. 일베로 간 글도 꽤 있다.
  • [17] 허나 이선태 갤러리를 원하는 중고딩 여학생들에게 많이 밀린다;;
  • [18] 하지만 원래가 인사이드 다음 카페에서 선수, 감독 비난을 마음대로 하지 못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기에 앞으로는 장담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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