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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농구

last modified: 2015-04-11 20:47:42 by Contributors

대한민국 4대 구기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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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프로농구 V-리그 KBO 리그 K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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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015 KCC 프로농구

대한민국의 농구 리그
한국프로농구(KBL) 한국여자프로농구

Contents

1. 개요
2. 출범
3. 구성
4. KBL의 성공
5. KBL의 문제점
6. 한국프로농구 참가팀
7. 역대 챔피언 결정전
7.1. 챔피언 결정전 전적
7.2. 횟수
8. 한국 프로농구 관련 인물
9. 관련 사건
10. 공인구

1. 개요

1996년 10월 16일에 창립되어 1997년부터 리그를 시작한, 대한민국의 프로농구리그. KBL[1](Korean Basketball League), 일명 크블[2]이라고도 한다. 주관 단체는 한국농구연맹.

프로배구와 함께 한국의 겨울 스포츠의 양대산맥을 이루고 있다.

2. 출범

농구대잔치의 엄청난 흥행이 없었다면, 프로농구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1990년대 초중반 대학 농구가 실업 농구를 때려잡으면서 대학농구선수들이 오빠부대를 몰고 다니는 아이돌[3]화되고,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NBA의 흥행, 드라마 마지막 승부와 농구만화 슬램덩크의 폭발적인 인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한국 농구의 인기는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이에 남자 실업팀도 금융권 3팀(기업은행, 산업은행, 한국은행)처럼 스카우트에서 소극적인 팀은 사라지고, 점차 적극적으로 농구단을 운영하려는 팀이 늘어나고, 이런 농구 붐에 편승하려는 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삼성전자, 현대, 기아자동차의 3강 체제에서 1992년 SBS가 창단하고, 농구대잔치의 흥행을 주도한 두 대학, 고려대와 연세대를 축으로 한 신생팀의 창립 논의가 이어졌다.

그리고 급기야 프로로서의 출범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비금융권 실업팀 4개를 8개로 늘리고, 상무를 끼어서 프로로 출범하는 것. 동시에 외국인 선수도 도입하고, 입장 수입을 늘려서 자립하기 위한 논의가 전개되었다. 사실 이는 1991년부터 간헐적으로 나온 것이지만, 구체화된 것은 역시 농구대잔치의 엄청난 흥행. 실업 선수들에 대한 자극제도 필요했고, 새롭게 부상한 선수들의 몸값을 충족하기 위해서라도 프로화는 필수라는 인식이 점차 생겨났다.[4]

아마추어 농구계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프로화 작업은 점차 힘을 얻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농구대잔치의 흥행에 따라 1990년대 초에 난항을 겪던 팀 창단이 쉽게 이뤄진 점이 컸다. 동양제과, 대우증권, LG전자, 진로의 참여를 이끌어낸 후, 마침내 1996년 프로리그 출범을 공식 선언했다.

아마 농구와의 갈등이 점차 커졌는데, 아마추어 농구 육성 방안에 대한 문제, 졸업자 문제, 특히 샐러리 캡의 도입과 계약금 폐지에 대한 반발이 컸다. 그리고 마지막 농구대잔치 참가를 두고 갈등이 커지기도 했다. 농구대잔치는 결국 프로농구 개막을 조금 미뤄서 참가로 결정이 났지만, 나머지 부분은 오늘날까지도 잘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1996년 리그가 출범했고, 첫 시즌은 1997년 2월 21일에 열리게 되었다.

3. 구성

원래 KBL 창립 당시의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 8개 팀으로 일단 시작하고, 추후 진로와 LG가 참여.
  • 실업팀 7개와 상무의 참가.
  • 금융권 팀은 최대한 인수를 추진하지만 안 될 경우 해체. 그러나 사실상 인수를 방조했다.

그런데 상무가 전격적으로 불참하고, 대신에 운 좋게도 산업은행 농구단(+ 한국은행 선수 일부)을 나래이동통신이, 기업은행 농구단을 나산그룹이 인수하면서 8개팀으로 구색을 맞출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서울 연고는 공동 연고로 지정하는 방식을 취했고, 10개팀이 된 후에는 남북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새 팀의 가맹을 허가하지 않기로 결의했다.[5]

그러나 팀의 모기업과 연고지가 많이 변경되면서 팀의 구성 자체가 상당히 달라졌다.

이렇게 많이 바뀌었음에도 각 구단별 홈페이지에서 과거의 이력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그나마 가장 충실한 팀이 삼성이고 그 다음이 KCC. 역시 전통의 두 팀! 오오. 모비스는 기아 시절과의 단절을 계속 추구하다가 마지못해(?) 과거 역사를 반영했지만 그 외에는... KGC에서 SBS 농구단의 역사는, 동부에서 산업은행 농구단의 역사는(물론 나래와 TG삼보도), KT에서 기업은행 농구단의 역사(물론 나골코 시절도)는 찾을 길이 없다. 그나마 역대 감독란(그것도 프로 출범 이후 한정)에서 겨우 흔적을 찾을 수 있을 뿐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선수 구성이 많이 바뀌어 이제 그런 것들이 점점 무의미해지기는 했지만 말이다.

4. KBL의 성공

분명 문제점도 많지만 KBL은 겨울 스포츠 중에서 프로로서 상당히 잘 자리잡은 종목이다. 첫 해 40만 관중 동원을 시작으로 2001-02 시즌 이후에는 꾸준히 100만 관중을 넘기고 이를 유지하고 있다. 리그 운영에 있어서도 한계가 많지만, 그래도 이 정도로 깔끔하게 운영하는 것도 드문 편이다.

외국인 선수의 도입은 KBL이 빨랐고[9], 미디어데이도 KBL이 최초로 시작했다. 방송사와 적극적으로 중계를 위해 노력한 것도 역시 KBL이 먼저. 아무래도 회원사 중에 SBS가 있었기에 방송중계가 수월했으며[10], 농구대잔치 시절 주관방송사였던 KBS에서도 프로출범 초창기 때 지상파에서 주말 빅 매치업을 중계해주기도 했다. 초창기 KBL의 운영은 후발 프로리그로서는 상당히 수준급의 운영을 보여준 편이다. 홈페이지 운영도 상당히 뛰어난 편.

이렇든 저렇든 KBL이 겨울 스포츠의 터줏대감인 것은 분명하다.

5. KBL의 문제점

그러나 2000년대 후반 들어 KBL의 인기는 급락하기 시작했고 반대로 프로배구 V-리그가 KBL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는, 아니 사실상 넘어선 상황이다.[11]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간략히 추리면 다음과 같다.

  • 외국인 선수에 대한 지나친 의존
    아무래도 농구라는 종목의 특성상 피지컬이 우월한 외국 선수들이 더 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데, 문제는 이 외국인 선수들에게 지나치게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국내 선수들이 들러리가 된 것이다.
    이는 배구도 매한가지의 문제이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오는 선수들의 역량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배구의 경우 외국인 선수가 자유 계약 방식으로 온 선수들이라서 돈은 엄청 깨지지만[12] 기본적으로 국가대표로 뛸 만큼 능력이 있는 선수들근데 남자 배구는 그런 특급 선수를 모셔와도 우승은 한 팀 뿐인 게 문제고, 여자부는 실험 대상[13]인 것이 문제인데 반해, 농구의 경우 트라이아웃으로 외국인 선수를 영입했기에 운영 비용은 덜 들지만 선수들의 능력이 별로인데도 불구하고 역량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국내 선수들은 외국인 선수들의 보조로 역할이 격하되는 효과를 낳았고, 한국 농구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렸다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특히 빅맨 선수진은 서장훈,김주성, 하승진 등 '역대급' 이외에는 전멸하다시피 되어버렸다. 자세한 내용은 외국인 선수 항목을 참조 바란다.

  • 스타 발굴 실패
    농구 대잔치의 대흥행을 기반으로 출발했지만, 세월이 흘렀음에도 농구대잔치의 스타들에만 의존하고, 이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스타 발굴에는 완전히 실패했다. 올스타전 팬투표 1위에 9년 연속 이상민이 뽑혔다는 것이 단적인 사례. 프로 출범 이후 스타로 부상한 선수는 김승현, 김주성 정도가 유일하다. 이것도 따지고 보면 외국인선수에 지나치게 의존한 탓이 크다. 외국인들이 20~30점씩 다 해먹고 국내선수들이 10점 넣으면 많이 넣는 상황에서 국내 스타가 탄생할래야 탄생할 수가 없는 것. 그나마 한때 1인 보유 체제로 전환하고 최진수, 오세근 등의 기량 좋은 신인들이 활약함으로써 서서히 스타들이 탄생하기 시작했으나, 협회는 제도 변경 한 시즌도 안 되어서 다시 2인 보유 1인출전제로 전환하였다. 그 이유는 외국인 선수가 부상이나 불미스러운 일 등 전력에서 이탈할 때를 대비하여 미리 대체 선수를 마련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팬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2015~16시즌 부터는 외국인선수 2명 출전제를 예고하고 있다.

  • 연고 밀착 실패
    여러가지 사정으로 모기업이 바뀌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새로 인수한 기업들이 새 색깔을 입힌다는 명분으로 연고지 이전과 프랜차이즈 스타의 트레이드 등 무리수를 많이 두었다. 이때문에 기존 팬층이 해체되고 팀의 연속성이 끊어진 경우가 많다. 여기에 더해서 연고지에 밀착하는데도 대부분 실패했다. KBL 구단 중에서 연고 정착에 성공했다고 평가될 수 있는 곳은 전주, 원주, 창원 정도. 나머지는 경기때만 연고지 체육관에 가서 경기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특히, 원주와 인천, 고양, 안양을 제외하면, 다른 구단들은 자신들의 홈에 숙소가 없다.
    그럼 어디에 있느냐고? 서울 연고인 삼성과 SK(이 두 팀은 서울 안에 마땅한 부지가 없지만...), 울산 모비스와 전주 KCC의 훈련 체육관은 용인시에 있다.[14] 1980~90년대 실업농구팀들이 대부분 용인시에 위치한 각 대기업들 연수원 한켠에 체육관과 숙소를 지어서 사용했는데, 프로농구로 넘어와서도 계속 사용중이다. 이름만 실업에서 프로로 바뀌었지, 팀도 프런트도 코치도 그대로 이어졌기 때문에 운영하는 마인드도 그대로고 지역연고는 전혀 신경도 안 쓰고 있다. 그나마 원주, 안양에서 각각 완벽히 정착한 원주 동부 프로미, 안양 KGC인삼공사만이 거의 유일하게 지역밀착에 성공한 사례로 꼽을 정도다. 이 때문에 KBL의 지역연고 정착에 대해 비판하는 쪽에서는 용인시 리그라며 폄하하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용인시 항목 참고 바람.[15] 그리고 울산 모비스는 메인 숙소인 용인 말고도 울산에 숙소가 하나 더 있으며, 창원 LG는 2014년 초까지 서울 방이동에 체육관 및 숙소가 있었지만 13~14 시즌이 끝나면 LG 트윈스와 함께 경기도 이천시로 옮길 예정이고, 부산 KT는 전용 체육관인 올레 빅토리움을 수원시에 개장했다! 수원에 지은 이유는 KT산하 스포츠단을 한곳에 모아놓고 관리하기 위함이란다.[16] 한마디로 자기네들 운영의 편의만 생각하고, 연고팬과의 밀착, 팬서비스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프로농구 KT 얌체짓…부산시민이 뿔났다 같은 기사가 자주 뜬다. 그리고 잦은 연고지 이전으로 인해 원래 프로농구팀이 있었던 도시인 대전, 대구, 광주, 수원, 청주[17], 여수는 현재 프로농구팀이 없는 실정이다. 관련 기사

  • 프랜차이즈 스타의 부재
    트레이드는 분명 오프시즌의 재미지만, 그 트레이드가 너무 잦은 편이다. 그래서 한 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의 육성에 실패했다. 어차피 기량은 죽어라 노력해도 NBA를 따라가기 어렵다면 감정을 이입할 프랜차이즈 스타가 필요한데, 좀 이입하려고 하면 샐러리캡, 혹은 팀 컬러 변화를 이유로 트레이드된다. 지방 연고팀의 경우는 연고 학교 출신 선수가 매우 부족하다. 울산 모비스에 울산 무룡고 출신이 단 한명도 없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18] 또한 2001년에 있었던 대대적인 연고 변경 이후에 나타나고 있는 지역 출신 프랜차이즈 스타의 부재도 인기 하락에 한 몫 하고 있다.

  • 미디어 관계 설정 실패
    KBL은 창립과 동시에 SBS 윤세영 회장을 초대 총재로 영입하는 등 미디어와의 관계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중계권료를 둘러싸고 지상파 3사와 분쟁을 벌이다가 케이블채널인 엑스포츠에 독점 중계권을 판 것을 계기로 완전히 지상파와 틀어지게 되었다. 2005년부터 시작된 중계권 분쟁으로 2006년말부터 약 2년 간 지상파 방송들이 농구 중계는 물론 소식조차 단신으로 처리해 버리면서 농구가 잊혀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5대 김영수 총재와 KBL은 '강건너 불구경'식으로 손을 놔버렸다. 거기에 V-리그KBS의 긴밀한 관계영원한 동반자를 생각한다면 KBL 초창기와 같은 인기를 재연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정우영 항목을 참고 바란다.

  • 승부조작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프로농구 승부조작 사건 참고.

  • 무능한 총재와 막장을 달리는 KBL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 자세한 내용은 한국농구연맹을 참고.

7. 역대 챔피언 결정전

7.1. 챔피언 결정전 전적

연도 타이틀 스폰서 우승 챔피언결정전
전적
승패현황 준우승
1997 FILA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1) 4승 1패 XOOOO 원주 나래 블루버드(3)
1997-98 FILA 대전 현대 다이넷(1) 4승 3패 XXOOXOO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3)
1998-99 현대걸리버 대전 현대 다이넷(1) 4승 1패 OXOOO 부산 기아 엔터프라이즈(2)
1999-2000 Anycall 청주 SK 나이츠(2) 4승 2패 OXXOOO 대전 현대 걸리버스(1)
2000-01 Anycall 수원 삼성 썬더스(1) 4승 1패 OXOOO 창원 LG 세이커스(2)
2001-02 Anycall 대구 동양 오리온스(1) 4승 3패 OXOXXOO 서울 SK 나이츠(2)
2002-03 Anycall 원주 TG삼보 엑써스(3) 4승 2패 OOXXOO 대구 동양 오리온스(1)
2003-04 Anycall 전주 KCC 이지스(2) 4승 3패 OOXXOXO 원주 TG삼보 엑써스(1)
2004-05 Anycall 원주 TG삼보 엑써스(1) 4승 2패 OOXXOO 전주 KCC 이지스(2)
2005-06 KCC 서울 삼성 썬더스(2) 4승 0패 OOOO 울산 모비스 피버스(1)
2006-07 현대모비스 울산 모비스 피버스(1) 4승 3패 OOXOXXO 부산 KTF 매직윙스(3)
2007-08 SK T 원주 동부 프로미(1) 4승 1패 OOXOO 서울 삼성 썬더스(3)
2008-09 동부프로미 전주 KCC 이지스(3) 4승 3패 XOOOXXO 서울 삼성 썬더스(4)
2009-10 KCC 울산 모비스 피버스(1) 4승 2패 OOXOXO 전주 KCC 이지스(3)
2010-11 현대모비스 전주 KCC 이지스(3) 4승 2패 XOXOOO 원주 동부 프로미(4)
2011-12 KB국민카드 안양 KGC인삼공사 농구단(2) 4승 2패 XOXOOO 원주 동부 프로미(1)
2012-13 KB국민카드 울산 모비스 피버스(2) 4승 0패 OOOO 서울 SK 나이츠(1)
2013-14 KB국민카드 울산 모비스 피버스(2) 4승 2패 OXXOO 창원 LG 세이커스(1)
2014-15 KCC 울산 모비스 피버스(1) 4승 0패 OOOO 원주 동부 프로미(2)

7.2. 횟수

우 승
울산 모비스 피버스 6회 97, 06-07, 09-10, 12-13, 13-14, 14-15
전주 KCC 이지스 5회 97-98, 98-99, 03-04, 08-09, 10-11
원주 동부 프로미 3회 02-03, 04-05, 07-08
서울 삼성 썬더스 2회 00-01, 05-06
고양 오리온스 1회 01-02
서울 SK 나이츠 1회 99-00
안양 KGC인삼공사 1회 11-12
준우승
원주 동부 프로미 5회 97, 03-04, 10-11, 11-12, 14-15
울산 모비스 피버스 3회 97-98, 98-99, 05-06
전주 KCC 이지스 3회 99-00, 04-05, 09-10
서울 삼성 썬더스 2회 07-08, 08-09
서울 SK 나이츠 2회 01-02, 12-13
창원 LG 세이커스 2회 00-01, 13-14
고양 오리온스 1회 02-03
부산 KT 소닉붐 1회 06-07


8. 한국 프로농구 관련 인물

10. 공인구

리그 출범때부터 매 시즌 스타가 제작한 공으로 사용하다가제발 공좀 바꿔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2014~2015시즌부터 드디어 나이키로 바뀌면서 다들 좋아했는데! 알고보니 정식 후원계약도 아니었고, 결국 공인구가 없는 상태가 되버렸다.이 틈을 비집고 현재는 아디다스가 공만 빼고 후원하는 듯 하다. KBL 또 다른 난맥상, 공인구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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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이 KBL로 검색해도 이 항목으로 들어올 수 있다.
  • [2] 빡치면 좆크블이라 부르자
  • [3] 이 당시 연세대 농구부 숙소 앞에는 오빠들을 보기 위해 몰려든 소녀팬, 여대생팬들이 엄청난 장사진을 치고 있었고, 경기때마다 체육관 가득 여성팬들의 함성이 울려퍼졌다. 요새 국내 최정상급 남자아이돌의 인기에 비견될만한 수준.
  • [4] 당시 농구대잔치의 흥행을 이끈 대학 농구선수들은 화보집 촬영과 방송출연 등 사실상 아이돌 연예인처럼 활동하고 있었다. 이미 A급 연예인 수준의 인기를 누리던 선수들한테 실업농구의 월급쟁이 생활이 성이 찰리도 없었다.
  • [5] 이 때문에 기업은행은 새로 팀을 창단해 다시 프로농구에 뛰어들려다가 접어야 했다. 결국 소원을 이룰 수 없게 된 기업은행은 여자 프로배구 신생팀을 창단했으니 바로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다.
  • [6] 이는 신세기통신이 SK텔레콤으로 인수되면서 빚어진 일이다. SK는 두 시즌 동안 나이츠와 빅스를 둘 다 운영했으나 결국 나이츠를 단독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결정짓고 전자랜드에 매각하게 된다.
  • [7] 팀 이름만 바뀌었지, 실제로 모기업은 동일하다. 나래이동통신은 삼보컴퓨터 자회사.
  • [8] 엄밀히 말하면 창단 당시에는 경남 LG 세이커스였지만, 창단 때도 경기는 창원에서만 했다.
  • [9] 여기에 자극 받아서 프로야구도 1998년 시즌부터 외국인 선수를 도입했다.
  • [10] 애초에 이것을 노리고 SBS 윤세영 회장을 KBL 초대 총재로 영입했다.
  • [11] 물론 여기에 여러가지 감안할 점은 있다. 먼저 시즌 관중동원은 100만 명을 모으는 KBL이 40만 명을 모으는 V-리그보다 앞선다. 시즌 총 270경기를 치르는 KBL이 남녀 합쳐서 총 216경기를 치르는 V-리그에 비해 더 많은 관중동원을 할 수 있다. 거기에 KBL은 몇몇 연고지를 빼면 100만 이상의 대도시를 연고지로 삼고 있지만, V-리그의 팀 중 100만 넘는 인구의 연고지가 서울, 인천, 대전 정도밖에 안된다. 거기에 체육관의 관중수용 능력도 차이가 큰 편. 그래서 관중동원의 단순 수치는 KBL이 V-리그에 앞선다. 그러나 방송중계 쪽으로 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KBL가 엑스포츠와의 단독계약으로 기존의 지상파 3사의 자회사 방송국과의 관계가 영 좋지 않았고, 이 틈을 V-리그와 KBS N 스포츠가 전경기 중계라는 카드를 꺼내며 전세가 역전됐다. 그래서 시청률의 경우, KBL이 겨울판 K리그라면 V-리그는 겨울판 KBO리그가 된다. 경기당 시청률의 경우 KBL은 0.2%까지 떨어진 반면, V-리그는 남자부 1.0% 안팎, 여자부 0.6~0.7%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한다. 심지어 그 여자부 경기도 2014-15 시즌에 시청률 1%가 넘는 경기가 여러번 있었다.
  • [12] 28만 달러 상한선이 있긴 한데 유명무실하다.
  • [13] 10-11시즌 한정 외국인 선수의 3세트 출전 금지와 차기 시즌인 15-16시즌 트라이아웃 도입도 여자부가 먼저 시행한다.
  • [14] 오리온스의 숙소와 훈련장도 대구광역시를 연고로 두던 시절에는 용인시에 있었으나 고양시로 연고 이전 후 숙소와 훈련장도 모두 고양시로 옮겼다.
  • [15] 프로농구와 겨울 스포츠의 맥을 같이 하는 V-리그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소속 팀 연고지에 숙소와 훈련장이 없는 구단들이 많다. 15-16 시즌 도중 본사가 김천시로 이전하면서 같이 내려갈 도로공사와 첨부터 대전에 숙소를 둔 인삼공사, 새 숙소를 연고지에 둔 현대캐피탈을 제외하면 나머지 팀들의 숙소는 수원(LIG 손보), 의왕(한국전력), 용인(나머지 모든 구단)에 있다.
  • [16] 실제 올레빅토리움에는 사격, 야구 등 다른 종목 선수단도 모두 들어와있다.
  • [17] 다만 광주와 수원은 한동안 여자 농구단이 있었지만 이전했고, 청주는 여자 프로농구팀이 현재까지도 있다.
  • [18] 하재필이 트레이드되면서 안양고 출신 최초로 안양 연고 팀에서 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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