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 D R , A S I H C RSS

한민구

last modified: 2015-01-11 21:12:24 by Contributors


Contents

1. 개요
2. 생애
3. 여담

2. 생애

1951년 8월 30일 충청북도 청원군[1]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를 졸업한 뒤에 1971년에 육군사관학교 31기로 입학하였다. 1975년에 소위임관했다. 임관 당시 성적이 우수했는지 위탁교육으로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 진학하여 1979년에 학사 학위를 받았다. 영관급 장교이던 1992년에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외교안보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2]

군 경력으로는 1982년부터 1984년까지 육군사관학교 전사 (戰史)학과 교수를 지냈고 국방부 정책기획국 정책조정과장, 육군본부 비서실장과 전략기획처장, 제53보병사단장 등을 지냈다. 국방부에서 근무하다가 중장 시절에 수방사령관을 지냈고 육군 참모차장을 지내다가 바로 육군참모총장으로 영전했다.[3] 2010년에는 합동참모의장으로 영전했고 2011년에 군문을 나섰다. 야전군사령관을 지내지 않았는데 그동안 맡았던 보직 등을 보면 야전군 지휘관보다는 정책 등을 다루는 관료에 가깝다.

2014년 6월 30일에 김관진에 이어 국방장관으로 취임하였다. 취임 직후에 제28보병사단 폭행치사 사건이 언론에 공개되어 대국민사과를 하는 등 곤욕을 치르고 있다. 그러나 해당 사건은 한 장관이 취임하기 전에 발생한 사건이며, 그가 취임하기 전에 조직적인 사건 축소·은폐 의혹이 있었으므로 한 장관보다는 김 전 장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2014년 8월 5일에는 해당 사건에 책임을 지고 육군참모총장 권오성 대장이 사임했다.

3. 여담

할아버지가 의병장이었던 한봉수이다.

김관진 장관의 정책통이라 불릴 만큼 행정형 군인으로 유명했는데 합동보직을 거의 거치지 않은 그가 합참의장까지 달 수 있었던 배경으론 육사 동기인 황의돈 장군의 단점 때문이란 얘기도 있다. 합참에서 주요 합동보직을 두루 거친 황의돈 대신 그가 합참의장이 된 것이 부동산 투기 등 청문회에서 까일 수 있는 요소를 많이 지닌 황장군에 비해 유리했기 때문이라는 시선. 실제로 황의돈 총장은 부동산 문제가 불거져 6개월만에 사임했다.

업무 처리 방식이 치밀한 편이고 실제 성격은 점잖다고 한다. 2006년 열린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성깔 더럽기로 유명한 북한의 김영철[4]이 기싸움을 벌였을 때 그냥 허허 웃고 넘겼다고. 관련기사

사실은 위에서 언급한 그 회담에서 남한은 한창 농번기겠다는 얘기로 인사가 시작됐었는데 여기서 한민구 대표가 외국인 신부들 얘기를 꺼냈는데 그 얘기를 들은 김영철이 진심 못마땅한 표정으로 민족의 혈통을 더럽혀선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이 말에 한민구 대표가 미소를 잃지 않고 한강물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는 수준이라 다 같이 어울려 살면 문제될 거 없다고 받았지만 김영철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삼천리 금수강산이다. 잉크 한 방울 떨어뜨려선 안 된다'라고 강경하게 나오는 바람에 논쟁이 길어지고 분위기가 싸해졌다고 한다. 관련기사
----
  • [1] 2014년 7월 1일부터는 청주시이다.
  • [2] 이때 인연으로 2014년에 연세대에서 연세를 빛낸 행정인상을 받았다.
  • [3] 이 무렵 병 입영식이 신종플루로 인해 실시되지 않았다가 2010년 2월부터 재개됐는데 2010년 2월 1일 다시 열린 육군훈련소 입영식에 참모총장으로서 직접 참석했다. 그때 입대했던 사람들은 난데없는 포스타 등장의 임팩트 탓인지 전역 후에도 이를 기억하고 있다.
  • [4] 별명이 승냥이이다.
Valid XHTML 1.0! Valid CSS! powered by MoniWiki
last modified 2015-01-11 21:12:24
Processing time 0.1070 s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