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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

last modified: 2015-04-12 01:59:08 by Contributors

조선시대 아동복. 여자애는 조바위를 쓰고 당혜를 신었다. 남자애는 복건을 쓰고 전복을 입었다.

현대감각으로 디자인된 한복

Contents

1. 개요
2. 구조
3. 역사
4. 타국 전통복식과의 비교
4.1. 서양권의 인식
5. 한복에 대한 인식
6. 현대의 한복
7. 신체 노출
8. 대중문화 속의 한복
8.1. 한복 일러스트
9. 한복의 종류
9.1. 일상복
9.2. 겉옷/외출복
9.3. 관복
9.4. 고급복/귀족복식
9.5. 한국 갑옷
9.6. 특수복
9.7. 모자
9.7.1. 관(冠)
9.7.2.
9.7.3. 건(巾)
9.8. 전통신발
10. 관련 항목


1. 개요

2. 구조

기본적으로 상유하고(上襦下袴)[1] 양식을 띄고 있다. 알타이계 복식을 근간으로 상의와 하의가 나누어져 있어 여자는 저고리와 치마, 남자는 저고리와 바지로 구성된 활동적인 복식이다.[2] 또한 아한대성 기후조건 탓에 몸을 감싸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북방 호복에 연원을 두고 있으며, 한푸와 달리 치마 속에도 반드시 바지를 입는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한복은 속바지건 겉바지건 간에 바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 복식사에서 한민족 만큼 끈질기게 동형성을 지킨 민족도 드물다고한다. 다만 이후는 제외.

3. 역사

한복이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한 것은 고구려의 벽화에서였다. 기본적인 형태는 상의와 끈, 하의, 그리고 모자에 두건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이후 차츰 변화하여 상의가 짧아지고 허리에 매는 끈이 고름으로 간소화되었으며 두건이 다른 형태의 모자로 대체되었다. 이후 만주족의 복식에 영향을 받은 마고자와 서양 복식에 영향을 받은 조끼가 추가되어 현대의 한복 형태가 완성되었다. 여기에 한복을 크게 간소화한 생활한복은 고름이 단추로 대체되고 소매가 줄어들어 일상생활에도 입기 편하게 만든 형태이다.

여성용 저고리는 그림에서 보다시피 미친듯이 짧아지고, 심지어 조선 말기에는 젖가슴이 아무렇지도 않게 노출될 정도로 짧아졌다.[3][4] 치마는 반대로 무지막지하게 길어져서 가슴 바로 아래까지 치고 올라갔다.

4. 타국 전통복식과의 비교

일본기모노중국한푸치파오, 한복 중에 가장 만들기 어려운 것은 한복이다. 그중에서도 조선시대의 한복이 가장 어렵다. 일단 치파오는 서양복식에 가까운 형태, 한푸와 기모노는 재단을 하지 않고 옷감의 폭을 그대로 사용하여 봉제만을 하지만 한복은 안감과 겉감을 '창구멍' 이란 구멍을 통해 뒤집기 때문에 바느질이 어렵고 재단도 복잡하다.

하지만 입는 절차와 활동에 있어서는 오히려 한복이 가장 간편하다. 특히 여성 복장의 경우 활동성은 한푸, 기모노와 차이가 크다. 또 한가지 큰 차이는 호복의 영향을 받기 전의 한푸와, 12~13세기부터 한복에서 분화된 기모노가 한 벌 통옷으로 되어있는 반면, 알타이계 호복이 기초가 된 한복은 상의와 하의가 나뉘어져 있으며 여성도 치마 안에 반드시 속바지를 착용한다 .

옆나라들과 비교할 때 복장이 풍성하고 단아한 것이 멋이 있으며, 현대 들어서는 각종 사극 등에서 활발하게 복원과 재창작이 이루어지는 중이다.

삼국시대 한복의 경우 기모노, 한푸(정확히는 호복의 영항을 받은 한푸)와 상당히 많은 접점을 지니고 있다. 한복, 한푸, 기모노의 기본 형태는 일반인의 눈으로는 거의 구분이 불가능할 정도로 비슷하며, 백제, 가야 쪽 한복의 경우 기모노의 형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으로 연구되고 있다.

여담으로 기모노와 한복의 차이를 이야기할때 옷깃이 목을 감싸느냐 감싸지 않느냐로 구분하려 드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의미 없다. 조선시대에 들어 깃이 섶과 구분되도록 재단하는 형태가 유행하긴 했지만 조선시대 이전의 한복은 깃의 형태에서 기모노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있다.

4.1. 서양권의 인식

현대에 들어 한복이 한국적인 대표 문화 요소로 자리잡았다고는 하나 아직 갈 길이 먼 듯 하다.

서구권에서는 y자 모양 옷깃의 동아시아 전통의상을 싸잡아서 기모노로 부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거의 동양의 전통의상이라는 뜻으로 고유명사화 했을 정도이다. 이에 의해 한복이 기모노(그들이 생각하기에 동양 의상을 총칭하는)의 하위개념이라고 아는 이들도 많다.[5] 2008년 캐나다의 모 잡지에서 셀린 디옹이 내한해서 한국전통문화를 체험하는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한복을 기모노로 표기했다(…) 다행히 국내의 모 블로거가 그에 대해 정정요청을 했지만, 아직 해외에서 한복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부족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일 것이다. Google에 Korean Kimono라고 쳐보면 한이 나온다.

이미 패션용어에서는 넓은 소매y자 옷깃, 허리띠 같은 부분을 통틀어 기모노 스타일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만큼 서구에서도 기모노가 대중화돼서 그 이미지가 정형화되어 고대~근대를 아우르는 한복의 형태까지도 기모노로 인식하게 만들어 주객이 전도되는 안습한 상황이 현재진행형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또 다른 예로, 미국 할로윈 축제 한국팀 참가 후기 포스팅에도 현재 서구권 일반인들의 한복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시궁창인지 적나라하게 나온다. 목가리개까지 상당히 적절하게 고증된 고구려 갑옷을 사무라이라고 하거나… 한복전문가 자문 아래 철저히 고증하여 사극에서 사용됐던 한복을 게이샤 의상으로 부르는 등.

외국 전통의상에 대해 무지하기에[6] 가장 인지도 있는 아시아 국가인 일본의 의상으로 부르는 것이겠지만, 올바른 명칭은 아니다. 어디 옷인지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하던가

5. 한복에 대한 인식

물론 전통복식을 입으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주변 인식과[7], 다른 해외의 복식에는 유난히도 관대하면서 자국의 복식의 개량화에는 유난히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물론 대부분 나라에서 고유 의상(custom clothing)은 특별하게만 입고, 구별시켜 부르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전통 의상을 구분 없이 전부 뭉뚱그려 '한복'이라 부르는 용법부터 이분법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있으며 순우리말 표현 없이 그냥 한복이라고 부르는 점에 대한 비판도 있다. [8] 현대에는 디자이너들이 여러 형태로 어레인지하는 동시에 한복 고유의 미를 그대로 살리고 있다.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복의 모습은 상당히 편향된 것으로, 한복에는 매우 많은 변형이 존재한다. 하긴 애초에 모든 사람들이 한가지 옷만 입고 살았을리가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극히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이는 과거의 복식 연구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9] 직물로 만든 옷은 삭아버리거나 색이 바래서 오래 못 가므로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 여담이지만 일본 기모노 또한 대외에 알려진 것은 매우 정형화 된 이미지이다. 사실 어느나라인들 의상 전문가가 아닌 이상 한두가지 이미지로 기억하지만.

6. 현대의 한복

6.25 전쟁이 터지기 전후까지만 해도 시골만 가도 대다수 민중의 옷은 흰 한복이었고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도시에서도 [10] 갓과 도포를 입은 어르신들이 많았다.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시골만 내려가면 양반가 어르신네들은 갓과 도포를 차려입고 계셨고 지금도 가끔 그런 분들이 계시다. 하지만 이젠 제사 때조차 도포를 잘 안 입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80년대 후반까지만 하더라도 여대생들은 졸업식에서 한복을 입고 참석하는 경우도 많았다.

전국노래자랑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80년대만 해도 방송 속에 여성들이 한복 차림으로 많이 나왔던 시절이 있다. 이 항목에서도 나오듯이 이 방송에서 제발 한복 좀 입고 나와달라고 하며 어쩌다가 한복차림으로 나온다면 카메라가 더 일부러 그 사람을 방송한다고 할 정도...

우리나라의 한 젊은 여성이 한복을 입고 유럽일주를 해 화제가 되었다.# 이외에도 한복을 입고 세계일주를 한 남성도 있었다. [11]

학교에서 한복을 입은 선생님들은 거의 한문 아니면 국사 선생님이다. 아니다 가끔 국어 선생님들도 입으신다 다만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

명절이거나 특별히 민족정신을 고취해야 할 이유가 없는 한 한국인들은 입지 않는다. 다만, 유치원에 다니는 아동의 경우 생일잔치에서 한복을 입기도 한다. 과거 량한복이 일부 유행하긴 했지만 요즘은 그닥.[12] 다른 많은 한국의 문화 요소가 그렇듯 실생활에 자리잡고 있는 역동적인 문화라기보다는 그저 대외에 한국을 드러낼 때만 쓰이는 일종의 상징적인 박제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옆나라 일본이 기모노를 하나의 패션으로 재해석해서 상품화한다거나, 유카타를 젊은이들의 새로운 트렌드로 만든 것을 볼 때 지금 한국의 현실은 굉장히 안타까운 이야기이며, 이는 우리가 본받아야 할 부분일 것이다.

그래도 드라마 《》을 계기로 퓨전한복 열풍이 시작되고 이후 걸그룹들이 명절이면 무대에 퓨전한복을 입고 나온다거나,# 많은 디자이너들이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일상에서도 어색하지 않게 충분히 입을 수 있는 한복들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있는 등 지금도 꾸준히 현대적인 재해석과 어레인지가 시도되고 있으며, 민족사관고를 비롯한 일부 학교에서 개량한 한복을 교복으로 채택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특히 2000년도 들어 나오는 생활한복들은 1980~1990년대의 칙칙한 개량한복들과 달리 많이 세련된 편.

전통복식을 섹시하게 개량하는 것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미 널리 행해지고 있다. 만주족의 창파오의 바지를 없애서(말 그대로 하의실종 패션이다) 옆의 트인 부분을 통해 드러나는 맨다리에 포인트를 주는 중국의 차이나 드레스나, 길이를 극단적으로 줄여서 미니스커트로 만드는 일본의 유카타 등등... 솔직히 한복만 그렇게 만들지 말란 법이 없다. 실제로 한복 패션쇼에서는 그런 시도가 이뤄지고 있으며, 한복을 다룬 보그지에서도 그런 스타일을 보여준 바 있다. (관련 포스팅)

또한 근래의 한복들의 경우 전통한복과 달리 입고 벗기에 편리하도록 재래식 한복의 옷고름 대신 단추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물론 재래식 한복에서 단추를 안 쓴 것은 아니지만,[13] 재래식 한복은 깊이 여며서 입은 상태에서 고름을 묶는 게 일반적이라 단추의 사용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러나 현대 개량한복은 활동의 편리함을 강조하다 보니 쉽게 벗을 수 있도록 예전보다 여밈이 줄고 고름은 전통적인 디자인인 맺음단추나 그 외 적절한 단추로 대체하고, 추가로 장식성을 강조하기 위해 위에 화려한 자수를 놓은 천을 덮기도 한다.[14] 이때 마과처럼 단추끈이 긴 것보다는 가사나 면제배갑의 단추처럼 단추끈을 짧게 하고, 단추끈과 옷의 연결부위에 자수 등으로 장식하는 게 일반적이다.


무복으로 입는 쾌자.(출처)복잡한 옷고름을 자수와 맺은단추로 간결하게 처리하였다.


조선 순사의 모습. 1890년 5월 10일자 <런던뉴스>에 실린 삽화라고 한다.* 옷고름을 단추로 대체한 모습이 눈이 띈다.

설날이나 추석 연휴에 이걸 입고 롯데월드 등의 놀이공원에 가면 자유이용권 가격이 할인된다!

2015년 현재 한복을 배울 수 있는 교육과정이 있는곳은 배화여자대학교 전통의상과, 원광디지털대학교 한국복식과학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미술공예학과 등이 있다. 추가바람

7. 신체 노출

흔히 한복 하면 모에화 등, 매체의 창작물에 도입하기 부적절한 옷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치파오, 아오자이 같은 경우는 몸의 태를 드러내고, 기모노는 선이 딱 떨어져서 한복보다는 상대적으로 그리기 수월한 편이지만, 한복은 몸의 태를 전혀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한복의 의상 패턴을 파악하지 않으면 특유의 선을 살릴 수 없다는 주장이 있으며, 몸매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복장이라 천을 줄이지 않으면 섹시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크나큰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있다.

그러나 사실 이건 한복의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리일 뿐이다.

위에서 언급한 '몸의 태를 드러내지 않는 형태'는 수많은 이들이 한복 고유의 특징으로 인식하고, 한복은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후술하겠지만 현재 알고 있는 포대자루같이 펑퍼짐한 치마저고리의 실루엣은 기껏해야 구한말에 정립된 형태이며, 한민족은 여태껏 옷을 입은 이래 삼국시대 이전부터 조선시대까지 한복은 남녀를 불문하고 허리 선이 드러나는 디자인이었다. 특히 조선시대 한복은 흔한 인식과는 정 반대로 조선 초부터 시대가 흘러갈수록 점차 몸매를 드러내는 형태로 바뀌어간다.

시대별_변천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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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성 한복의 변천사

위 자료를 보면 알 수 있지만 상의 저고리가 점점 타이트해지며 짧아지더니 가슴 윗부분까지 올라가 버려서 가슴가리개[15]라는 것을 허리에 두르지 않으면 가슴 아래 선이 전부 노출돼 버렸다. 패션쇼에서는 이를 노리고 아예 모델의 가슴 아래의 둥근 선이 완전히 노출되게 디자인된 무지 야한 한복도 있었다(…) 사실 가슴가리개를 해도 저고리가 극단적으로 짧은 경우 겨드랑이가 노출된다.


가슴가리개는 허리에 넓은 천을 두르고 띠로 고정시킨 것이다. 초기의 브래지어처럼 가슴을 가리고 조이는 역할을 하는, 상의의 맨 아래에 착장하는 속옷이다. 여기에 색색의 자수를 장식해 놓아서 아름다움을 한층 돋보이게 만들기도 했다. 가슴가리개는 몸매를 강조시켜 한층 섹시하게 보이기 때문에, 현대에 들어 만들어지고 있는 퓨전 한복이나 한복 드레스에서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 무식한 사람은 이를 기모노의 오비(허리띠)라며 까는 개드립을 날리기도. 이뭐병.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몸매를 드러내지 않는 한복은 구한말에 유행하던 스타일인데, 가슴가리개를 생략하고 허리에서 여며지던 치마를 길게 만들어 가슴 위 겨드랑이까지 끌어올린 것이다. 이는 구한말의 여성해방과도 약간 관련이 있는데, 가슴가리개는 일단 조인다. 기능만 보자면 가슴조이개에 더 가깝다. 코르셋이 허리를 조인다면, 이건 가슴에서 허리까지 꽉꽉 다 조인다. 애들도 얄짤없어서, 이제 겨우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는 10대 초반 소녀의 가슴을 치마 말기로 조여놓으니 지금 생각하면 성장에도 방해가 되었을 듯. 그래서인지 현대에 들어 가슴가리개를 유지하고 있는 퓨전한복은 가슴둘레에 맟춰 제작함으로써 가슴부분을 조이지 않는 형태로 나오고 있다.

조선 중기까지는 저고리가 남성의 것처럼 길고 한복 치마는 허리에 둘렀다. 인체구조상, 치마가 허리부터면 대강 둘레만 맞으면 적어도 밑으로 내려가진 않는다. 그런데 저고리가 짧아지고 가슴가리개가 생기니, 이젠 가슴가리개를 죄지 않으면 그대로 치마가 밑으로 훌러덩(…) 그러니 목숨 걸고 조여야 한다. 코르셋이 따로 없다.

구한말부터 유행한 치마는 치마에 어깨끈이란 안전장치를 달아, 짧은 저고리는 유지하면서도 여자들이 마음놓고 좀 뛰어도 괜찮게 한 거다. 어깨허리라 하여, 점퍼스커트처럼 어깨에 걸쳐서 입어 여민다. 이 형태는 개화기 때 이화학당미국인 여교장 J.월터가 위의 가슴조이개(…)가 청소년기 소녀들의 건강상 좋지 못하다 하여 보급한 것이다.

저고리를 다시 늘리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한복 치마 형태에서 활동성을 극대화하려면 이렇게 가슴가리개를 생략하고 어깨끈을 달며, 통치마로 만들어 여밀 필요가 없게 하고, 치마 길이는 땅에 쓸리지 않게 짤막히 하는 게 최고다. 즉 현재 북한의 한복 치마 형태나, 유관순이 입은 한복 치마를 생각하면 된다. 실제로 이화학당 등 구한말 여학교들 중심으로 활동성 높은 통치마 입기를 권장했고, 이렇게 몸매를 드러내는 가슴가리개 한복에서 몸매를 드러내는 펑펑한 한복 형태로 바뀌는 과정 중 기존 어른들의 반응은 당연히 '쯧쯧, 요즘 애들은 발랑 까져서…'

묘하게도 현대에 들어서 만들어지고 있는(더욱이 일반 대중들에게 인식되는) 한복은 대다수가 이렇게 가슴가리개를 생략하고 치마가 겨드랑이까지 올라가는 형태이다. 물론 이런 디자인도 충분히 매력이 있으며, 한복의 절제되면서도 가리는 멋과 치마의 풍성한 선을 높이 사기도 하지만 일부 젊은 한복 디자이너들은 이 디자인을 포대자루같다면서 경계하며 대차게 까기도 한다. 흠좀무

그래도 이러한 긴 치마[16]를 응용한 한복 원피스나 한복 드레스도 만들어지고 있으며, 최근 2010년대 들어 만들어지고 있는 생활한복이나 개량한복의 치마가 허리에서 여며지도록 짧아지고, 저고리 길이도 점차 길어지는 추세이니 구한말의 이러한 디자인 변화를 마냥 비난하기보다는 현대의 한복 디자인에 다양성을 부가하는 요소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치파오나 기모노의 아름다움에 괜히 열폭해서 한복도 아름답게 만들 수 있다고 징징대는 것이 절대 아니다.
상의+치마의 형태도 예쁘게 디자인할 수가 있으며 이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굳이 은밀한 노출이 아니여도 된다.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옆나라 일본 오덕 모에 계열에서 잘 통하는 옷 중 하나가 상의+하의의 노출 없는 무녀복이다. 똑같이 같은 상의(저고리)+하의(치마)의 구조인 한복도 표현을 잘 한다면 특유의 미를 살리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게다가 현대와 같이 타이트한 복장으로 몸매를 드러내는 패션은 사실 등장한지 얼마 안 된 새로운 유행이다. 한중일 삼국 전통복장을 보면 이런 종류의 의상은 사실상 없었다. 치파오는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원래 복장에서 하의실종된 형상을 드레스와 접목시킨 형태이고 일본의 전통 기모노는 자국 내에서도 몸매 안 드러나기로 유명한 복장이다. 몸매를 드러내는 것은 목욕 가운 비슷하게 쓰이는 유카타를 작은 사이즈로 입는 정도이고, 전통 기모노에서 드러나는 것은 발과 목깃 아래로 보이는 목덜미 정도여서 아예 이것만 취급하는 페티시즘까지 있을 정도이다. 따라서 2차원에서 과감히 벗길 필요가 있을 때는 이쪽도 하의실종시키고 부르마나 학교 수영복 같은 걸로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방식을 한복에 적용시킨다면 옆트임이나 노팬티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노출도를 보이게 된다. 가슴 위로 올라가는 조선 말기 속저고리에 다리속곳만 입은 것을 상상해 보자.

8. 대중문화 속의 한복

  •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인영화에서는 벗기면 또 나오고 벗기면 또 나오고 벗기면 또 나오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 MMORPG마비노기》에는 남녀 각각 4종류의 한복 세트가 있다. 구군복/기녀복을 제외하면 정확한 명칭은 없고 처음 나온 년도를 붙여서 부른다.
    • 05한복의 경우 조선시대 이후의 복식을 토대로 디자인 되어 있다. 여성복은 당의를 기반으로 한 치마저고리이며, 남성복은 마고자를 기반으로 만들어져 있다.
    • 06한복은 2005년도 한복에 군데군데 포인트를 주었다. 여성복은 밑동과 곁마기, 소맷부리의 색을 달리하여 포인트를 주었으며, 남성복은 쾌자를 입고 있다. 염색을 잘 하면 예쁘지만 어울리는 복장과 캐릭터가 한정되는지라 인기는 비교적 적다.
    • 07한복은 고구려를 위시한 삼국시대의 한복을 토대로 만들어져 있다. 여성복은 고유의 주름잡힌 치마에 무릎 위까지 오는 긴 저고리를 대(허리띠)로 여민 형태이며, 남성복은 반비(조끼)를 입고 역시 대로 앞섶을 여민 형태를 하고 있으며, 관모도 있다. 이 의상은 북미 서버에도 2011년 추가되었다. 깔끔한 디자인으로 단순한 이벤트 의상을 너머 평소에 입고다니는 유저도 많았던 복장이다. 또한 일본 유저가 디자인한 양 로브의 디자인도 07한복을 베이스로한 디자인이다. 다른 외국 서버는 추가바람
    • 2011년엔 한복이란 이름이 아닌 구군복과 기녀복이 이벤트로 등장했다. 마비노기 특성상 남성 한복의 인기는 여성 한복에 비하면 안습한 수준이었으나 구군복은 마비노기 역사상 여캐 의류에게 비교당해 까이지 않은 얼마 안 되는 옷 중 하나다. 특히 남성 자이언트가 염색 잘 된 구군복을 입으면 포풍패기가 느껴지므로 여성유저들에게 인기를 얻을 수 있다. 기녀복도 한복 이벤트 중에서는 가장 성공한 의류로 손꼽히며 특히 반투명 처리된 무릎 아래 부분에서 나오는 묘한 색기로 큰 인기를 얻었다. 뽑기형 상자에서 나오는 의상이지만 확률도 높은 편이라 구하기도 쉽고 입고다니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 던전 앤 파이터에는 몹시 많이 개량된 한복이 나온다.
  • 세계관에 한국적인 소재를 많이 넣은 블레이드 앤 소울에서도 한복 형태의 옷이 많이 등장한다.
  • 네이버 웹툰 '까치 우는 날'은 한복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하지만 웹툰 자체는 그냥 묻혔다(...)
  • 네이버 웹툰 별의 유언의 캐릭터들은 전부 한복을 입고 있다. 고증은 조금 미흡한 편이나[17] 캐릭터성에 있어서는 성공한 편에 속한다. 그리고 한복모에는 쇼타의 충분조건이라는 선례를 남겼다
  • 리그 오브 레전드의 한국 런칭기념 챔피언으로 아리가 추가되어 한복을 입고 나왔다.
  • 2014년 EBS수학 교사 세미가 한복을 입고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 비주얼 노벨 작가 지나가던개가 한복에 모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스토리를 담당한 무인세계, 방구석에 인어아가씨, 데드엔드 99%의 등장 여캐들 중엔 꼭 한명 이상은 한복이나 개량한복을 입고 있다.
  • 비주얼 노벨 아날로그 어 헤이트 스토리의 등장인물인 *뮤트가 한복을 입는다. *현애의 경우는 오버라이드 터미널에서 change_outfit 명령어를 입력해서 한복으로 바꿀 수 있다.

8.1. 한복 일러스트

9. 한복의 종류

9.1. 일상복

  • 저고리
  • 치마
  • 바지
  • 마고자
  • 배자 - 저고리 위에 덧입었던 옷으로, 소매, 섶, 고름이 없고 깃이 마주 대어 있는 형태이다. 단추를 달거나 겨드랑이 밑에 끈을 달아 앞에서 매어 입기도 했다. 저고리보다 조금 긴 길이감에 다양한 디자인을 적용할 수 있어, 수 년 전부터 남자 한복에서 마고자 대신 배자를 입는 것이 유행하여 요즘에는 남자 한복에 조끼와 마고자를 빼고 대신 소매 없는 배자를 넣는 것이 일반적이다. 남자 배자는 마주 댄 깃이나 여미는 깃 둘 다 적용할 수 있고, 허리띠를 대거나 옷고름을 다는 등 다양한 디자인이 있다.
  • 유관순 교복[19]

9.2. 겉옷/외출복

  • 쾌자
  • 답호
  • 도포 : 고려-조선시대 외투. 두루마기와 흡사하지만 조금 더 복잡하다. 나중에는 두루마기로 흡수.
  • 개치마 : 장옷과 비슷하지만 치마 형태라 소매가 없으며, 망토에 가깝고 상류층 여성들이 주로 입었다.
  • 장옷 : 여성들이 외출할 때 머리에 쓰는 옷. 두루마기 형태로 서민 층 여성들이 주로 입었다.

9.3. 관복

  • 구군복
  • 조복- 주로 왕실의 생일이나 경축일 외에도 정월 초하루와 동지 그리고 조칙 등을 반포할 때 입던 관복. 조선시대 관련 사극에서 가끔 보이기도. 금관이라는 모자와 세트로 착용하기 때문에 "금관조복"이라는 관용구로 흔히 불린다.
  • 곤룡포
  • 사포
  • 곤복
  • 적의 - 왕비의 예복. 상당히 복잡한 구조로서 조선시대 왕비옷을 검색해보면 감상할 수 있다.
  • 제복(祭服)
  • 단령 - 관리가 주로 조복 이외에 평상시에 입었던 근무복. 직급마다 색이 달랐으며,[20] 어떤 관직이나 신분이냐에 따라서 가슴과 등에 붙이는 흉배에 수놓아져 있던 동물이 달랐다. 왕족은 기린, 문관은 , 무관은 백호를 수놓는데, 당상관(정 3품 이상)은 2마리가 그려져 있고, 당하관(그 이하)쪽은 1마리. 관복 착용 시에는 사모를 모자로 쓴다.
  • 원삼 - 왕실의 후궁들, 왕비, 옹주, 공주들이 입는 예복. 평민층은 일생에 한 번 혼례 때 입을 수 있었다. 이것을 엄청 간략하게 줄인 한복이 궁궐의 당의.

9.4. 고급복/귀족복식

  • 당의 - 평복을 모두 착장한 위에 입었다. 소례복이자 궁중의 일상복.
  • 활옷 - 결혼식 복장이기도 하다.
  • 심의(深衣)2
  • 철릭
  • 직령

9.6. 특수복

  • 사규삼 : 남자 어린이가 관례 전에 입던 평상복이다. 땋은 머리에 복건을 쓰고 사규삼을 입으며 조대를 띤다.

영친왕 이은이 입던 사규삼.*
  • 기녀복 : 기생만 입는 옷이 따로 있었던 게 아니다. 흔히 말하는 작고 좁은 저고리와 풍성한 말기치마 역시 한 시대의 유행이었을 뿐 기생만의 복식은 아니었다. 기생이란 일종의 트랜드세터이기도 했던지라 그들이 입는 스타일은 곧 유행이 되었다. 그러나 기생은 사치를 엄격하게 규제했던 조선에서 몇 안되는 예외대상이었다는 점으로 인해 민간에 그대로 퍼지지는 못했다.
  • 속옷

여성용 속옷. 드로워즈(블루머) 형태의 널널한 반바지형 속옷을 겹쳐 입어 치마의 볼륨감을 살렸다. 우측의 다리속곳처럼 굉장히 앞서간 형태도 보인다(…)[21] 상의는 가슴가리개→속적삼→속저고리, 하의는 다리속곳→속속곳→속바지→단속곳→너른바지→무지기치마[22]→대슘치마[23]순으로 입었다. 밑이 뚫려있는 개당고와 막혀있는 합당고를 번갈아가며 겹쳐입어(...) 변소 가기가 매우 불편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평민이나 천민들이 저 많은 속옷을 일일이 챙겨입기는 힘들었다. 속옷 역시 값비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평민층은 속바지나 단속곳까지, 양반들은 너른바지나 무지기치마까지 입었으며, 대슘치마는 궁중에서만 입었다. 실제로 속치마나 속바지가 노출될 일이 많아 바지의 아랫부분만 좋은 옷감으로 짓는 꼼수를 쓰기도 했다. 의복을 짓는 옷감까지 세세하게 법으로 규정했을 정도.[24] 남자는 여자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간소한데, 대신 겉옷을 많이 껴입으니 피장파장. 삼국시대에도 속옷을 여러 겹으로 입었을 거라 추측되고 있으며, 고려 시대에는 말총을 솜처럼 넣어 부풀린 마미군(馬尾裙)[25][26]이라는 속치마[27]고려양으로 인해 원나라로 건너가기도 했다. 물론 이후에 중국에서 고려양이 까이면서 마미군도 싸잡아 디스당한다.
  • 무복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입는 옷. 각 굿거리마다 중심이 되는 신이 다르기 때문에 입는 무복도 달라진다. 다만 충청도 무속의 법사의 경우 강신이나 선굿보다는 독경과 앉은굿, 설위설경(設位設經)[28]이 중시되어 특별히 정해진 무복은 발전하지 않았고, 보통 두루마기나 개량한복에 모자를 쓸 경우 갓이나 고깔을 쓴다.
  • 물옷
    재래식 해녀복을 말한다. 1970년대부터는 고무로 된 해녀복을 입는다. 엄밀하게는 물소중이만을 말하며, 넓게는 물소중이 위에 덧입는 물적삼, 머리를 감싸는 물수건, 헝겊모자인 까부리를 포함한다.

물옷의 이름들.* 자세한 사항은 해녀 항목 참조.

9.7. 모자

9.7.1. 관(冠)

  • 변형모(弁形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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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우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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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디 북방계 방한모에서 비롯된 관모. 고구려에서는 절풍으로 불렀으며 소골[29]도 변형모로 보는 것이 대세. 삼국시대 이전부터 한민족에게 보편적으로 사용되던 고깔모자. 한마디로 한국 관모의 기본형이라 할 수 있다. 머리둘레에 맞춰 쓰기도 하고 머리 위에 살짝 올려놓을 정도로 작게 만들기도 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은 새의 깃털을 꽂았다.(조미관, 조우관) 변형모는 일본의 관모 에보시(烏帽子)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보통 식물의 섬유나 비단, 말총 등으로 만들지만, 현재는 금 또는 금동으로 만든 유물들이 전해지고 있다.
  • 백라관 - 고구려의 왕이 쓰던 관모. 백라, 즉 희고 얇은 비단으로 만든 관이라는 것 외에 확정된 것이 없다. 백라관의 구체적인 모습에 대해서는 안악 3호분의 정체와 깊은 관련이 있는데, 안악 3호분을 왕릉으로 보는 견해는 무덤 주인이 쓰고 있는, 내부에 책(幘)을 쓰고 흰 비단을 덮은 관모를 백라관으로 보며 근초고왕(드라마)에서는 이 설을 토대로 백라관을 재현해 호평을 받았다. 반면 안악 3호분을 동수묘라고 보는 견해는 이 관모는 백라관이 아니라 중국에서 유행한 농관(籠冠)류의 관모로 보며[30] 백라관의 구체적인 형태에 대해서는 절풍 등 고구려의 전통적인 관모와 같이 변형모가 아니었을까 추측하기도 한다.
  • 익선관 - 임금이 정무를 볼때 쓰던 모자. 중국 송나라 시대에 만들어졌으며 한국은 조선 세종때 들어와 정착. 곤룡포와 세트로 착용한다.
  • 유관 - 임금이 공식 행사에 참석할때 쓰던 모자, 황제의 것은 통천관, 왕의 것은 원유관이라 하며, 사포라는 옷과 세트로 착용한다.
  • 면류관 - 우리가 흔히 황제의 모자라고 알고있는 모자. 그 시기마다 전부 다 달랐지만, 조선시대에는 1층짜리를 주로 사용. 즉위식이나 책봉식, 종묘 제례 의식 등 국가의 중요 의례시에 입는 왕의 최고 정장이다. 곤복이라는 복장과 세트로 착용한다.
  • 사모 - 문무백관이 단령 등 관복을 입고 쓰던 모자. 고려 말기에 들어와 조선시대 정립. 지금도 전통 혼례식때 신랑쪽이 쓰기도 한다.

9.7.2.

갓(모자) 항목참조. 엄밀히 말하면, 갓 종류는 관이면서도 평상적인 복식에 들어간다. 초립, 패랭이도 마찬가지. 즉 갓은 관(冠):예식모자과 건(巾):두건 사이에서 생겨난 한국전통의 고유한 형태의 복식인 것이다. 실제로 한국 전통 의상에서 남성전용 모자라고 하면 대부분이 갓을 연상하거나, 여기에서 파생된 모자들이 많다. 한국에서 자생한 대표적인 전통모자는 대부분 갓(립)에 속한다!

이런 형성사유에 걸맞게, 흔히 갓 종류로 분류하는 이런 고려중기-조선시대에 들어서, 몽고의 영향으로 목장이 늘어나고 말들의 생산량이 늘어나면서 대부분의 모자들의 재료가 말총으로 만들어진다. 이전에는 대나무와 종이로 만든 것이 대부분이었다. 대표적인 것이 너울.

  • 흑립, 백립, 주립 등. (갓(모자) 항목 참조)
  • 탕건 - 사대부 계층에서 주로 쓰던 관. 지금도 무형문화재로써 제작되어지고 있다. 왠지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나올때 초시들이 자주쓰는 모자로 나온다.
    • 망건 - 상투를 튼 머리가 흘러내리지 마라고 쓴 그물망 같은 머리끈. 물론 양반들만 그랬고 평민들은 그런거 없었다. 그냥 수건이나 천을 두를 뿐. 하지만 중인들도 갓을 쓰기 위해서 망건을 두르는 경우가 잦았다.
  • 정자관 - 흔히 훈장님모자라고 알고있는 모자. 이것 자체만 쓰는것이 아니고 망건위에 탕건을 쓰고 이것을 덧쓰는 방식이다. 5000원 지폐의 주인공이신 율곡 이이 선생이 쓰고 있는 것이 정자관이다.
    • 사방관 - 정자관의 일종. 네모난 원통모양. 정약용 초상화의 모자가 이것.
  • 전립 - 가죽으로 만든 갓으로서, 포졸들이나 구군복에서 쓰는 가죽제 갓. 전투용갓이라는 뜻으로서, 현재의 군용모자와 비슷한 역할이다.
  • 삿갓
  • 너울

9.7.3. 건(巾)

건은 삼국시대부터 동아시아에서 남녀 보편적으로 두르던 복식이다. 한마디로 두건이라고 보면 되는데, 우리 조상들도 두건형태를 즐겨 썼다. 갓이 우리민족의 가장 대표적인 모자형을 이른다면, 건류(두건)은 조상들이 가장 일상적으로 두르고 다녔던 모자류에 속한다. 즉, 일상적인 머릿수건.

  • 책(幘) - 건의 일종으로 머리 둘레에 맞게 두르며, 머리 뒷부분이 두 갈래 혹은 한 갈래로 솟아오른 형태를 하고 있다.참조 그런데 고분 벽화에서 발견되는 책은 중국에서도 발견되는 관모이기 때문에 고구려의 책은 중국의 책과는 형태가 다르다고 하는 기록을 바탕으로 이는 중국에서 수입한 관모이지 고구려식 책은 아니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 복건 - 흔히 도련님모자 라고 부르는 모자. 유학자들이 쓰고 다니기도 했다. 1000원권 지폐의 주인공이신 퇴계 이황 선생이 쓰고 있는 것이 복건이다. 하지만 정작 퇴계선생은 복건이 스님들이 쓰는 모자와 비슷해서 싫어했고 대신 정자관을 쓰고 다녔다고 한다.
    • 유건 - 유생들이 주로 쓰고다니던 모자. 정자관과 유사하나 전혀 다른 모자이다. 자세한 모양은 신윤복의 그림에 나와있다. 성균관 스캔들에 나오는 유생들이 쓰고 다니는 것이 다 유건이다.
  • 건귁 - 여성용 전통두건류를 이르는 말. 현대에도 여성들이 목욕 후에(또는 시골의 경우 밭일할 때) 타월 등을 머리에 감은 것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이런 형태를 바로 건귁이라고 한다. 당연히 두건류답게 일상적으로 두루 썼다.

9.8. 전통신발

신목의 유무에 따라 화靴와 이履로 나뉜다. 화는 북방계에서 유래되었고 이는 남방계에서 유래되었다.

  • 짚신
    • 단총박이 - 짚의 속대로 꼰 총을 박아 삼은 짚신.
  • 미투리 - 날을 여섯 개로 하여 삼, 왕골, 면사 등을 이용하여 짚신처럼 삼은 신.
    • 지혜(紙鞋) - 종이를 꼬아 삼은 미투리.
  • 나막신 - 나무를 파서 만든 신으로, 우천시 신었다. 격자, 삽자, 극자(極子), 목극(木極)[31], 목리(木履)[32]라고도 한다.
  • 갖신 -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뜻한다. 장화처럼 목이 긴 신발과 짧은 신발이 있다.
  • 꽃신 - 여성들이 주로 신었다. 이름대로 아름답고 화려한 장식이 되어 있다.
  • 당혜(唐鞋) - 말이나 소가죽에 비단을 감싸고 신코와 뒤축에 눈을 새겨붙여 신울을 마름질한 뒤 안쪽에 백마피를 대어 둘레를 친 다음 신울과 밑창을 꿰어 신 골을 넣고 형태를 잡아가며 만들었다. 태사(太史), 완자(卍), 당초문을 수놓거나 무늬가 있었고, 신울과 눈의 배색은 다양했다.
  • 운혜(雲鞋) - 앞코가 제비부리 모양이라고 하여 제비부리신이라고도 불렀다. 바닥에 가죽을 대어 징을 박고 겉은 화려한 비단으로, 안은 융을 대었으며 신코에는 앞 머구리를 대어 죽엽을 새겨 붙였으며, 뒤꿈치에는 뒷 머루기를 대고 굼벵이를 틀에 끼워 붙였다. 조선 여인들의 가장 아름다운 신이었다. 신울 윗변과 아랫변에 앞 머구리와 같은 색의 비단을 둘렀다. 붉은 바탕에 청문을 놓은 것을 홍록댕기라 하였다. 혼례 시 어염집 여인들도 신을 수 있었다.
  • 태사혜
  • 적석/청석 - 예장 시 왕과 왕비가 신던 신발. 왕은 적석, 왕비는 청석을 신었다.
  • 기혜(妓鞋) - 기생이 주로 신던, 검은 가죽이나 비단으로 만든 외줄무늬 코의 외코신. 급이 높은 기생은 당연히 화려한 당혜나 운혜를 신었다.
  • 궁혜(宮鞋) - 궁중 여인들이 신던 신. 왼궁혜와 반궁혜가 있다.
  • 다로기 - 가죽의 털이 안으로 가게 하여 만든 방한용 긴 버선. 신발 대용으로도 신었다.
  • 노파리 - 융단으로 만든 방한용 신. 일반인은 천 사이에 솜을 넣었다.
  • 목화(木靴) - 나무나 가죽으로 바닥을 만들고 까맣거나 흰 사슴 가죽으로 목을 만들어 장화와 비슷한 형태를 띄었다. 관복이나 혼례시 신었다. 흔히 관리들이 신는 신발이 바로 흑목화. 물론 백목화도 있다.

추가 요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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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위에는 저고리, 밑에는 바지. 중국의 한푸는 기본적으로 위아래 한 벌인 통옷이지만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한 탓에 대체로 상의하상(上衣下裳)이라 한다.
  • [2] 고구려의 벽화를 보면 여자 한복은 치마 안에 바지를 입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 [3] 조선 말기까지 하층민들 사이에는 아들을 낳은 여자는 가슴을 드러내고 젖을 먹이는 풍습이 있었다. 이는 아들을 낳은 것을 과시하는 행동이었다. 다만 상류층 여성들까지 거리낌없이 유방을 노출하고 생활하지는 않았다. 이들은 정반대로 여자아이 때부터 두꺼운 가슴가리개로 꽉 조이는것이 관습이었다.
  • [4] 다음의 젖가슴을 드러낸 조선 여인의 흑백사진이 널리 알려져있는데, 이 사진은 단적으로 일제가 조선을 미개한 민족으로 격하시키기 위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쓰인 연출된 사진의 일환이다.관련기사-SBS 스페셜 '일제 사진, 그 비밀과 거짓말'
  • [5] 단 어디까지나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뿐이지, 학술적으로 동양의 전통의상이란 개념이 기모노로 고유명사화가 된 것은 아니다.
  • [6] 당장 아무 친구나 붙잡고 안달루시아와 타란텔라가 어느 나라 전통의상인지 물어보자. 사실 이 글을 읽고있는 위키러의 대부분도 생전 처음 듣는 단어일 것이다.
  • [7] 국수주의자나 사이비 종교 소속으로 오해받기도 한다
  • [8] 항목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사실 '한'은 한자어라기보단 순우리말을 한자로 가차해서 적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세월이 너무 오래 지나서 그런지 이젠 한이 한자어 같이 여겨져서 '한' 뒤에 순우리말 '옷' 같은 게 아니라 한자어 '복'과 합성된 꼴이다. 한옷이라고 해도 되긴 하지만, 민족주의 의식 이전에 대화 소통이 되지 않는다.
  • [9] 우리나라 전통 복식에 관해 서는 석주선이 가장 유명한데 소장품은 단국대학교 석주선 기념 박물관에 있다. 안타까운 건 1.4 후퇴 때 피난하면서 서울 수복 직후 살해당한 오빠 석주명이 평생 모은 나비 표본을 가지고 피난 하느라 복식유물을 집에 남기고 갔는데 피난 후 돌아오니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 [10] 지금은 드물지만 과거에는 대치동이나 잠실, 대앞에서까지 한복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많았다.
  • [11] 그가 갔던 나라는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페루, 미국, 체코, 이집트, 이스라엘 등지였다.
  • [12] 절에 템플스테이시 일반인이 입는 경우로는 지금도 많이 쓰인다. 혹은 무속인들이나 나이든 불자들이 종종 입기도 한다.
  • [13] 우리가 흔히 보는 것은 근대에 등장한 마고자 단추를 떠올리지만 조계종 스님들의 가사(태고종 가사는 전통방식을 고수하기 때문에 맺은단추가 없다)에서 볼 수 있는 매듭으로 만든 맺은단추(이건 삼국시대 단령과 같이 들어왔다고 추정된다), 원삼에서 사용한 원삼단추(암단추와 수단추로 나뉘어 있으며, 수단추로 암단추를 이어 고정한다. 고정이 끝나면 단순한 고정장치가 아닌 하나의 예쁜 장식이 된다.), 그 외에 수많은 단추 유물들에서 볼 수 있듯이 단추 자체는 예전부터 존재하였다.
  • [14] 단추 한두 개 만으로 잘 여며지지 않을 때는 재래 한복처럼 허리띠를 두르거나 단추를 더 단다. 다만 맺음단추를 더 다는 옷들의 경우 차이나 칼라에 맺음단추를 죽 달아 마과랑 구별이 안 가는 것도 있다.아예 제작 자체를 중국에서 하는 경우도 있다는 건 함정
  • [15] 가슴가리개는 치마 말기가 아니다! 말기는 치마를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치맛고름을 둘러 묶는 그 부분을 말기라고 한다. 한복 드레스에서 오픈숄더처럼 개량되는 부분. 말기치마라 해서 기생들이나 입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이쪽이 전통 한복이다. 원래 한복 치마에는 어깨끈을 달지 않았다. 가슴가리개는 가슴과 겨드랑이, 배 부분을 가리는 속옷인데, 이것이 있는 이유는 한복 속옷을 모두 착장한 모습을 생각해 보자. 속바지들과 치마는 허리에 두르고, 속적삼과 속저고리는 가슴에 있다. 그 사이가 비지 않는가! 뿐만 아니라 조선 시대에는 가슴이 큰 여자를 영 좋지 않게 인식했기 때문에 가슴가리개로 꽉꽉 조였다. 한복은 가슴이 작아야 입었을 때 더 멋나기 때문에 현대에도 가슴이 큰 여자들이 조이기 위해 입는 경우가 있다.
  • [16] 어깨끈도 있겠다. 원피스 형태겠다. 저고리만 제거하면 그야말로 우아한 드레스가 된다.
  • [17] 배경이 한반도가 아니니 별 상관 없을 수도...?
  • [18] 섶을 안 그린다거나, 동정 부분을 속옷을 겹쳐 입은 것으로 그린다거나.
  • [19] 유관순 하면 떠오르는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
  • [20] 당상관은 홍색, 당하관은 청색을 입는 경우가 많았고, 조선 후기에는 간소화를 위해 직급의 관계 없이 검은색으로 통일되는 경향이 있다.
  • [21] 물론 반쯤은 농담. 실제로 다리속곳은 생리대를 고정시키는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22] 무지기치마는 길이가 다른 각 단이 분리되어 치마를 띄워주는 속치마로, 단 수에 따라 3합, 5합, 7합이 있었다. 젊은 여자들은 각 단을 색색깔로 염색하였지만 나이든 여자들은 단색으로 염색했다. 모양새는 캉캉치마를 생각하면 쉽다. 곱게 염색된 무지기치마를 보면 일상복 못지않게 예쁘다.
  • [23] 대슘치마는 궁중에서 무지기치마 위에 착장하는 속치마였다. 일반적으로 치마를 풍성하게 지을 때 12폭으로 만드는데, 대슘치마는 속치마임에도 이에 못지않게 옷감을 사용하거나 아예 14폭을 사용했다. 모시에 풀을 먹여 빳빳한 백비나 창호지에 감싼 것을 아랫단에 덧대었는데, 이러한 대슘치마는 치마의 밑단이 자연스럽게 퍼지는 효과를 연출했다.
  • [24] 조선의 사치금지법과 복식 규제는 실로 엄격했다. 옷과 장신구만 보면 신분, 재력, 기혼/미혼, 아들 유무, 남편 유무 등의 요소까지도 알 수 있었다. 이 와중에 사실상 규제가 없는 것이나 다름없었던 이들이 바로 기생. 이들은 복식 규제와 사치금지법은 물론이고 가체금지령마저도 빗겨갔다.
  • [25] 명칭부터 '말 꼬리(말총) 치마'라는 뜻이다. 치마는 한자로 裳 이외에 裙이라고도 했다.
  • [26] 《寓圃笔记》:"发裙之制,以马尾编成,系于衬衣之内。体肥者一裙,瘦削者或二三,使外衣之张,俨若一伞。"<br> <br> 《菽园杂记》::“马尾裙始于朝鲜国,流入京师……于是无贵无贱,服者日盛。至成化末年,朝臣多服之者矣。阁老万公安冬夏不脱……。大臣不服者惟黎吏侍淳一人而已。此服妖也,弘治初始有禁例。”<br> 해석 추가 요망
  • [27] 국어사전에는 말총으로 만든 바지라고 서술되지만 사료에는 말총을 넣어 만든 속치마라 나온다. 애초에 군(裙)이라는 한자 자체가 치마를 뜻한다.
  • [28] 충청도 무속에서 쓰는 무구. 종이를 오려 무속신이나 부적, 진법 등을 나타낸 것으로 설경(設經)이라고도 한다.
  • [29] 자주색에 금은 장식이 되어 있다는 것 외에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으나, 오른쪽 그림의 맨 왼쪽에 있는 인물이 쓴 모자를 그 색깔로 보아 소골이라 추정한다.
  • [30] 실제로 중국 고분 벽화에서 안악 3호분의 주인공이 쓴 관모와 거의 유사한 관모가 그려진 것을 볼 수 있다.
  • [31] 굽이 있는 것
  • [32] 굽이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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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modified 2015-04-12 01:5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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